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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수박사] 조나단 에드워즈-대각성운동의 챔피언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대각성운동의 챔피언, 지옥불 설교가, 체험적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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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5  1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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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대각성운동의 역사]
 

조나단 에드워즈 :

대각성운동의 챔피언

 

   


예영수 박사(Ph. D, Th. D., S Ed. D.)
LIFE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목차-
“새빛” 그룹의 영적 운동: 제1차 대각성운동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 대각성운동의 챔피언
에드워즈 목사: “지옥 불 설교가”
에드워즈 목사: 체험적 신학자
에드워즈 목사: 격렬한 감정주의를 경고 
에드워즈 목사: 은사보다도 은총의 중요성을 강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경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확실한 증표 5가지
성령을 거스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지 말라 경고


▶“새빛” 그룹의 영적 운동: 제1차 대각성운동

미국의 자유를 위한 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되어진 다른 종류의 영적 혁명이 미국을 휩쓸었다.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가 1729년 86세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그의 뒤를 이어 메사츠세츠 주의 노셈프톤(Northampton) 회중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이 키가 크고 온화한 젊은 목사가 미국과 세계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논 위대한 신학자요 복음전도자였다. 또한 미국 중부의 데오도르 프레링하에젠 목사와 텐넷트 목사 부자(父子)들를 중심한 “새빛”들의 영적 운동은 조지 휫필드 목사의 열정적인 영적 사역으로 대각성운동이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와 휫필드 목사를 중심한 “새빛”그룹의 영적 운동을 (제1)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이라 불렀다.

에드워즈 목사는 대각성운동 때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록』(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이란 글에 상세히 기록했는데, 대각성운동은 1740년을 넘어가면서 3가지 부류로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

(1) 대각성운동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로서 일상적으로 하던 예배 형식 이외의 어떤 것에도 반대하면서, 심한 감정적인 표현은 종교에 해롭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옛빛”(Old Lights)라고 부르며, 제일 과격하게 앞장선 목사가 보스톤의 찰스 초운시(Charles Chauncy) 목사였다.

(2) 대각성운동을 지지하지만 성격적으로 과격한 감정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제임즈 다벤포트(James Davenport) 목사는 거친 행동으로 대각성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3) 대각성운동을 주도한 사람들로서 열린 마음으로 두 과격파들 사이에서 중도 노선을 취한 온건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새빛”(New Lights)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각성운동 반대자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았으며, 대각성운동에 대해 감사했으며, 과격함은 어느 쪽이나 하나님의 역사에 필요한 측면이 아니라고 느꼈다.

에드워즈 목사는 온건한 그룹의 지도자였으며, 많은 목회자들이 에드워즈에 협조하여 대각성운동이 그 당시 영적 수렁에 빠진 교회를 되살리는 길이라고 인식했다.
 

   
▲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 대각성운동의 챔피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1758)는 철저한 칼빈주의 목회자로 18세기 중엽 미국 뉴잉글랜드에서부터 동부에 있는 13개주를 휩쓴 “대각성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에드워즈 목사와 휫드필드 목사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대각성운동은 두 가지 면이 두드러졌다. 하나는 성경을 중심한 말씀선포요, 다른 하나는 성령의 권능으로 쓰러지는 것과 같은 육체적인 현상이었다.

(1) 말씀 중심:

에드워즈는 자신이 목회하던 노셈프톤 강단에서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롬3:22)는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를 주제로 한 시리즈 설교를 하면서, 바른 교리의 부활, 깊은 죄의식, 즉각적인 회개, 극적으로 변화되는 삶, 복음주의적 전도 등을 강조했다. 열정적인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1734년 12월 에드워즈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엄청나게 임재하셔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기 시작하셨다... 참된 성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는 이 소도시에 영광스런 변화를 가져왔다.... 1735년 봄과 여름에는 온 도시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지금가지 그렇게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찬 적도 없었지만 그렇게 비탄에 빠진 적도 없었다. 거의 모든 가정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뚜렷한 증표가 나타났으며, 구원받았다는 확신 때문에 가정마다 기쁨이 충만했다.

...반년 만에 이 도시에서 만도 300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으며, 특별히 16세 이상의 젊은 사람들이 구원의 반열에 참여했다.”

다른 많은 목사들이 노셈프톤 부흥운동에 참여하여 메사추세츠 주와 코넥티컷 주의 20여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대각성운동의 열기는 이 집회에 참석한 여러 지방에서 온 목사들로 인해 미국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동시에 확산되었다.

(2) 성령의 권능의 역사:

대각성운동에는 다른 중요한 역사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육체적(감정적) 반응(manifestation)으로 나타났다--무아지경(입신), 쓰러짐(기절), 울부짖음, 뛰기, 춤추기, 움츠림, 거룩한 웃음, 환상, 음성 등.

에드워즈는 “노담프톤 부흥운동 설명”(An Account of the Revival of Religion in Northampton 1740-1742)에서 1741년 5월 가정집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회심한 몇 사람들이 눈에 보이게 몸에 힘이 빠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의 위대하심, 영광의 감정, 영원에 대한 무한히 깊은 감동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감정은 곧 온 방에 확산되어 많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의 감정과, 존귀, 사랑, 기쁨, 찬양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와 비참한 상태에 대한 비탄에 잠겨있게 되었다. 그래서 온 방안은 울부짖음, 기절 등의 현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어, 기도하고 찬양하며 상담하며 협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해 8월과 9월에는 죄인들의 회심, 위대한 부흥, 특별한 외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집회 장소는 울부짖음, 기절(쓰러짐), 경련, 비탄, 감탄, 기쁨 등으로 충만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큰 감동으로 육체의 힘이 빠져 집에 갈 수가 없게 되어 집회 장소에서 밤을 지새워야만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입신 상태에서 24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집회마다 계속 일어났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깨어났을 때 사단이 끼어 들어 기회를 악용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가 요한다고 경고했다.
 

에드워즈 목사: “지옥 불 설교가”

대각성운동 기간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말씀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외적 현상(manifestation)을 성령의 역사로 믿었다.

마틴 로이드-존즈(Martin Lloyd-Jones)는 『청교도 신앙』(The Puritans)에서 에드워즈는 노셈프톤 부흥운동(Northampton 1740-1742)의 주역이며, 조지 휫필드와 함께 대각성운동을 주도한 분이며, 칼빈주의자며, 회중교회주의자로서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역사와 갑작스럽고 극적인 회심을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그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새빛”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설교의 내용은, 사도 바울을 가장 닮은 거성(巨星)답께, 언제나 죄 가운데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인용하여 무서운 설교를 했다. 1741년 7월 8일 코넥티컷 주의 엔필드에서 행한 유명한 설교는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란 제목으로서, 그는 “오 죄인이여! 여러분이 처해있는 위험을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분노의 불길로 가득 찬 분노의 큰 용광로요, 넓고 밑바닥이 없는 지옥입니다...!”라 말하면서 영원한 멸망을 경고했다.

그는 1,000여 편의 설교를 했으나 이 유명한 한편의 놀라운 설교의 영향으로 교인들은 벌벌 떨면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결과 에드워즈를 “지옥 불 설교가”(hell-fire preacher} 혹은 “유황불 설교가”(창19:24, 계19:20)라고 불렀다.
 

에드워즈 목사: 체험적 신학자

에드워즈는 유능한 신학자이며 위대한 복음 전도자이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체험적인 신앙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다. 그는 굉장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 빼어난 지성과 독창적인 사고를 가졌지만, 언제나 영적인 것이 지적인 것을 통제하게 하는 목회자였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철학과 사변(思辨)을 성경에 굴복시키고 성경이 최고의 권위임을 인정했다. 그는 “열정적인 경건과 심오하고 통합된 지성(知性)을 조화시킨 사람”이었다.

에드워즈에게 참된 덕이나 거룩이란 본질적으로 머리(head)보다는 가슴(heart)에 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가슴(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탁월한 부흥 신학자요, 체험 신학자요, 가슴의 신학자라고 하고, 그에게서 성령으로 불타고 성령으로 충만한 지성을 발견한다.

 마틴 로이드-존즈 박사에 의하면, 에드워즈는 정말 거의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체험을 했으며, 그러한 것들을 기록하고 시험했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자기 아내의 놀라운 체험에 대하여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공중에 뜨는 현상도 경험했다. 문자 그대로 그녀 자신의 노력이나 애씀이 없이 방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졌다. 그는 또한 집회 때 사람들이 기절을 하고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도 기록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외적 현상에 대해 비판함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지도 말도록 경고하는 동시에 또한 그는 과도하게 육체로 이끌림을 받아 사단에게 기만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야성적이 되지 않도록 경고함으로써 그는 언제나 도에 지나친 과격한 양편 모두에게 경고를 했다.

에드워즈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것은 쉽게 의심하는 강한 성향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차가운 이성(cold reason)을 가진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불신행위를 규탄하고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특이하고도 경이로운 체험을 옹호하는 말을 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에 들어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강하고 유쾌한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 일종의 환상을 보고, 마치 자신이 하늘에까지 올라가 영광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한 일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에드워즈는 자기 아내가 체험한 놀라운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평가한 후 다음과 같이 변호했다.

“그러한 체험들이 광신이거나 병든 뇌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나는 내 뇌가 그런 병에 오래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것이 정신 착란이라면, 인간 세계가 이러한 자비롭고 온유하고 덕스럽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정신 착란으로 다 사로잡힐 수 있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틴 로이드-존즈 박사는 에드워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성령 사역을 최고로 강조하지 않는 변증학(辨證學)은 철저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성령의 기름 부어주심이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라고 말하고는 “온통 신학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다”고 에드워즈를 반대한 자들에게 경고를 했다.
 

에드워즈 목사: 격렬한 감정주의를 경고

극도의 감정주의를 옹호하는 제임즈 다벤포트(James Davenport) 목사는 격렬한 육체적 현상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좋다고 했다. 에드워즈는 과격한 사람들은 감정의 폭발을 그들 영혼가운데 있는 초자연적인 역사로 보는데, “몸에 일어나는 굉장한 감정적인 영향은 분명한 (성령의) 증거는 아닙니다”라고 함으로써 감정의 폭발보다는 마음에 호소를 했다. 그는 자기 설교를 듣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자제하라고 했다.

에드워즈는 자기와 함께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디도서 2:7-8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사역을 어둡게 할지도 모르는 어떤 과오나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우리의 최선의 방책은 겸손하게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며 영적인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엄격하게 자신을 감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에드워즈 목사: 은사보다도 은총의 중요성을 강조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 지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도바울은 모든 사도들 보다 환상, 계시, 기적의 은사가 많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뛰어난 영적인 지식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고 말하고, 사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증표는 사도들이 받은 은총 때문이지 은사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각성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1741년, 조나단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표지”(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라는 글을 씀으로써 모든 복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적 분별력을 가질 것을 권고했다. 그는 서론에서 성령의 역사가 많은 것만큼 마귀가 흉내냄으로써 가짜도 많다는 것이다. 그는 요일4:1의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를 인용하면서 가짜를 경고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경고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우리의 안내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 일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1)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교회가 해왔던 방식”에 근거해서 어떤 일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역사 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2)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강렬하다고 해서”
몸의 힘이 빠져 쓰러진다던가 몸을 뒤틀며 비통해 한다거나 심지어 큰 소리로 울부짖는 일들도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예수의 무한한 영광과 자신을 희생한 놀라운 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육체적인 힘은 축소되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누구에게 나타나던지 성령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의 어리석은 자는 없다.

3) “사람들이 너무 소란하거나 동요되었다고 해서”
영적인 일들은 너무 크고 무한 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동요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시대에도 성령이 임할 때 도처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4) “사람들의 상상력에 강한 인상을 심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황홀경 가운데서 천국의 영광스러운 광경을 본다고 하여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쟁론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은 선지자들이 본 환상이나 바울사도가 황홀경 가운데 낙원에 간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이 때에 우리의 온 영혼은 너무나 황홀경에 사로잡혀 몸의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아 힘이 빠져버려 온 몸의 구조가 와해되어 버리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5)“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특정한 수단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 일에는 하나님이 관여하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의 좋은 본을 보고 영향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성경과도 일치한다.

6)“사람들의 행동이 경박하고 변칙적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경박하고 변칙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강렬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7)“사람들이 잘못 판단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잘못 판단한다든가 심지어 사탄의 속임수가 한데 섞여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 전체가 다 성령에 의해 행해진 일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성령의 영향아래 행동하는 사람도 어떤 일에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은총이 있는 곳에는 부패함도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주관적 충동이나 인상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계시처럼 생각하고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둠으로써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8) “사람들이 오류에 빠진다고 해서”
회심했다는 사람들이 엄청난 오류에 빠지거나 창피한 일을 행한다고 해서 그 일이 전반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쟁론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은 종교개혁 때나 대부흥 때마다 많이 있었다. 어떤 일에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다고 해서 그 일 자체가 곧 성령의 참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9) “설교자들이 심판에 대하여 너무 강조한다고 해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율법에 대한 강조 없이 복음만 설교하게 되면 그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확실한 증표 5가지

에드워즈 목사는 “성령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표지”에서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의 장점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일시적인 “열광주의”가 비록 보기 이상한 모습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각성운동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확실한 증표는 5가지 “확실하고 분명한 성경의 증거”로 증명되어졌다고 말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서 선포한다.
2) 사탄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운다.
3) 성경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성경의 진실과 신성을 공고히 한다.
4) 진리의 영으로 인도되는 특징이 있다.
5)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보여 준다.

결론 부분에서 특수한 현상들 즉 육체의 고뇌 속에 빠져 울부짖고 비통해하며, 주님의 위대하신 영광 앞에 자신의 왜소하고 비천함으로 육체의 힘이 빠져버리게 되고, 회심한 사람들은 사랑과 기쁨에 차서 눈물의 홍수에 젖게 되고, 불규칙적인 행동을 하는 등은 의심할 여지없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되어진 것이라고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다.
 

성령을 거스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지 말라 경고

에드워즈는 어떤 현상에 대해 결코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막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장려하라고 말했다. 사도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령을 놀랍게 부어주셨을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혼란스럽고 정신 산만한 일로 보았다. 이사야 29:14의 말씀처럼 특별히 이해력 과 지혜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했다. 경건하다는 자들이 그들의 형식주의적이고 미적지근 신앙 태도에 대한 책망을 받고 그들의 명예가 추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악의에 차서 반대를 하고, 하나님의 일을 악마의 일이라 비난하고, 그래서 성령을 거사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에드워즈는 대각성운동에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영적인 운동을 경멸하는 어조로 악의에 차서 반대하지 말 것을 청중들에게 경고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마12:22-23).

나는 여러분들이 가말리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희망합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성령의 역사를 반대하거나 반대하는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죄만큼 인간의 영혼에 해롭고 위험한 죄는 없습니다.... 성령을 넘치게 부어 주실 때에...성령의 역사를 악의에 차서 반대하고, 비난하고, 마귀의 역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짖는 것 외에는 달리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며 그리고 바로 이런 반대 행동이 내적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계속해서 침묵하는 목사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비밀스럽게 반대하는 행동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처럼, 침묵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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