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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Q&A] 기름부음 사역이란 무엇인가?-(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나누어 주시는 사역이다-
구요한 목사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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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3  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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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Q & A]

 

 기름부음 사역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받게 하시는 사역이다-

 

   
▲예수님이 안수하시는 모습

성경에서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 기름을 부어 성별하다'(anoint, 동사)로 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마샤’이고 헬라어는 ‘크리오’이다. 마샤에서 '메시야', 크리오에서 '크리스도'란 단어가 생성되었다.

'기름을 붓다'는 말이 구약에서는 주로 문자적으로 기름을 붓거나 바르는 행위를 말하는데 신약에 와서는 상징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향유-향기 나는 기름-를 붓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기름부음

성경에 기록된 기름부음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였다.

구약에서는 주로 제사장과 왕에게 기름을 부었는데(출 29:29; 레 4:3), 그래서 대제사장과 왕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 불렸다(레 4:3; 5, 16; 6:20; 시 132:10). 왕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왕적 신분으로 인정하거나 취임하는 것을 말한다(삼상 16:13; 삼하 2:4 등).

선지자에게도 기름이 부어졌고(왕상 19:16하; 대상 16:22; 시 105:15), 마귀로 타락하기 전의 그룹 천사장도 기름부음을 받았다(겔 28:14).

-성물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했다(출 30:22-33 등).

“방패에 기름을 바른다”는 말은 가죽 방패에 기름을 발라 출전 준비를 한다는 말이다(사 21:5).

-손님을 환대하는 표시이다.

날씨가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손님에게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지극한 호의’의 표시로서(눅 7:38, 46), 마사지 같은 효과를 통해 몸을 풀어주고 활성화시킨다.

-치유를 위한 기름부음.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치유하는 데 사용되었다(시 109:18; 사 1:6; 막 6:13; 약 5:14). 요즈음에도 치유사역자 중에는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치유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시체가 썩지 않게 기름을 발랐다(막 14:8; 눅 23:56).

-예수의 장사를 예비하는 기름부음.

신약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만한 기름부음은,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었다는 복음서의 기사이다(마 26:6-13, 막 14:3-9 등). 이것은 비상한 환대의 표시, 혹은 장사의 예비이기도 한 것인데, 그보다도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나타내려고 한 상징적 행위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다.

약속된 구세주이신 예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One)(시 2:2; 단 9:25) 즉 메시야(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이시다(요 1:41; 행 9:22; 17:2, 3; 18:5, 28).

-신약의 신자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신약의 신자들도 구원의 보증인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서(고후 1:21-22), 기름부음이 내주하기 때문에 이단성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고 한다(요일 2:20, 27).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기름부음은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히 1:9).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3).

즐거움의 기름이 부어질 때, 희락의 영, 거룩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필자가 한글 신학사전, 영어 신학사전을 여러 권 참조해 보았지만 오늘날 성령사역자들이 하는 ‘기름부음 사역’에 관한 언급은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대부분의 전통적인 신학자들은 필자가 예로 든 위의 구절들을 예수님의 메시야 선포식 정도로 이해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에게 기름붓듯 임한 성령은 누가가 말하는 “사역적이고 경험적 성령”을 말한다. 예수님은 비록 100% 신성을 갖추신 분이지만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에 사역하신 것으로 기록한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 하신 메시야 사역의 내용-치유, 축사 및 복음전파 등-을 기록한다.

오늘날 성령사역자들이 사용하는 ‘기름부음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예수님이 시작하시고 사도들이 이어 받은 메시야 사역-복음전파, 말씀 가르침 및 치유사역-을 계승해 가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성령운동파들이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서신서의 기름부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단점도 있지만 반성령운동파들의 누가의 기름부음에 대해 무지한 오류가 더 크다.

 

사람이 성령을 나누어 준다?

반성령운동파들은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을 나누어 준다'고 하면 ‘자기들이 성령 중개상이냐,’ ‘사람이 하나님이신 성령을 어떻게 나누어 주느냐?’고 비아냥거린다. 성경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 무지의 소치이다.

-교육의 방법

기름부음 사역, 성령 사역, 임파테이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선배나 교사가 후학이나 학생들에게 어떻게 지식이나 재능을 전수하는가?

-강의식 교육. 주입식 교육
-실천적 교육 또는 도제식 교육. 예체능의 경우
-인격적 교육? 멘토링

우리는 교육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위의 3가지 경우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주요한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안수나 다른 방법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전수하는 것이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출 34:9).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9-14).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5-17).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행 9:17-18).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기름부음 사역, 성령사역의 주요한 부분은 안수자가 피안수자에게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기도나 말씀을 듣는 중에, 찬양을 하는 중에 성령을 받기도 하지만 안수를 통해 받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전수 받으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다.

성경은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한 기록이 많다. 물론 신학적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성령 하나님이 안수자를 도구나 매체로 하여 피안수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흘러가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용어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해가 진다’, ‘해가 뜬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과학적으로 보면 틀린 말이다. 일몰, 일출 현상은 태양은 고정되어 있지만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상대 같은 과학적인 기관에서도 통상적인 용어인 일몰, 일출이란 말을 사용한다.

성령사역자가 기름부음 사역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 보기에 안수자가 피안수자에게 성령을 받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그런 식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에 있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 비판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네가 사도냐, 성령을 나누어 주게?’는 주장은 이제 그만 하자. 식상하다!)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인가, 내주하는 성령을 활성화시키는 것인가?

-오순절 성령 강림 단회성의 허구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 성령의 내주에 경도된 사람들은 성령은 (다시) 받게 하거나 성령이 다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주해 있는 성령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금도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오해한 데서 생긴 오류이다.

웨스스민스터 신앙고백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즉 한 본체와 한 권능과 한 영원성이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이다(요일 5:7; 마 3:16, 17; 28:19; 고후 13:14). 성부는 무슨 물질로 구성되거나 거기서 나오거나 그것에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에게서 탄생하시고(요 1:14, 18),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요 15:26, 갈 4:6)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2장3절).

(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 the Father is of none, neither begotten, nor proceeding; the Son is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성령 강림 단회론자의 논리에 의하면, 이렇게 영원히 계속 나오(시)는 성령은 어디로 가(시)는가?
결국 성령은 신자 속에, 교회 속에 내주하시지만 동시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인간 이성이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성경적이다.

성경에서 인간 이성이나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어디 이 뿐이랴! 
삼위일체의 신비,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등 수도 없이 많다.이런 것을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 그럴듯하게 설명하다 보면 무리가생기고 이단이 된다. 지금 정이철과 같은 오순절 성령 강림 단회론자들이 꼭 그런 식이다.  자기들이 틀렸으면서 성경 대로 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판한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어야지.

성령은 내주하시지만 에수님이 성부로부터 받아 지금도 부어주시기 때문에(요 14:26; 행 2:33 ) 우리는 기도나 찬양을 할 때, ‘성령을 부어주소서’, ‘성령이여 오소서’와 같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이철과 같은 반성령운동파는 ‘성령이 내려온다’, ‘은혜가 내려온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한다. 성경도 모르고 건전한 경험도 없는 무지의 소치이다.

정이철의 주장 대로 라면, 찬송가에 있는 성령 관련 가사의 대부분이 이단이 된다.
오순절에 한번 임한 성령은 더 이상 임하거나 내려올 수 없는데 성령 관련 찬송가 대부분이 '성령 강림을 간구'하거나 '성령을 다시 기다린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찬 182 (통일 169)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 강림함이라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다시 강림하다니?)

찬 183 (통일 172)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신자라면 이미 받은 성령을 왜 다시 기다리나?)

찬 184 (통일 173)
불길 같은 주 성령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오순절에 이미 강림하여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강림을 왜 간구하나?)

물론 이런 가사들은 신학으로 엄격히 따지면 조금씩은 문제가있는 표현이지만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한다는 큰 틀에서 보면 하등 잘못이 아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성 주장은 성경 기록과 위배된다

성령 강림 단회성 주장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이 한 번 강림한 후 교회라는 저수지에 고여 있으면서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리차드 개핀(Richard Gaffin)이나 박윤선은 사마리아와 고넬료 집에 임한 성령을 '확장' 또는 '연장'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다음의 성경 구절은 어떻게 되는가?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행 8:17).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저수지에 고인 성령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 오는가?

차영배 교수는 리차드 개핀의 오순절 성령 강림 단회성 주장을 비판한다.
리차드 개핀은 오순절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의 죽음,승천,부활과 연결된 단일복합적 사건이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승천및 부활이 반복될 수 없는 것처럼 성령 강림도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Richard Gaffin, Perspectives on Pentecost) . 차영배 교수는, 인류를 대표하여 예수님이 죄를 대신 지신 것은 대표성의 원리에 해당되지만 120문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어떻게 대표성의 원리에 부합되는가 라고 반문한다 (차영배, 『성령론』, 62-102).

D.A. 카슨(Carson)도 이렇게 주장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청교도들은 어떠한 극단적인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령 세례라는 구(phrase)를 일관성있는 전문술어로 택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며, 그들은 그 말이 성령의 넘쳐흐름, 또는 성령에 잠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따라서 부흥을 위해서, ‘오, 우리에게 새롭게 성령 세례를 주옵소서!’라는 의미로 기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D.A. Carson, Exegetical Fallacies, Baker Books House, 1984, 46-47).

결론적으로, 성령은 신자 속에 내주하시기도 하지만 지금도 성부와 성자에게서 계속 나오신다. 즉 성령은 내부에서 활성화되고 위에서도 부어지거나 내려오신다.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성경적이다


기름부음 사역, 임파테이션 사역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성령사역자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나누어 주는 사역을 기름부음 사역이라고 부르고 이런 사역을 임파테이션 사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성령운동파들은 말꼬리 잡는 데 천재다.
특히 정이철은 기름부름 사역을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나누어주는 사역'이라고 하니까  '구요한이 예수의 자리에 앉아있다', '구요한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라고 왜곡한다. 필자는 분명히 이 글에서 "물론 신학적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성령 하나님이 안수자를 도구나 매체로 하여 피안수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흘러가게 하신 것이다," "사람 보기에 안수자가 피안수자에게 성령을 나누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은 보지도 않는다. 정이철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성 환자이다.

한때 성령운동이란 말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운동을 하느냐?'고 시비를 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운동) 이란 말은 왜 사용하는가? 사람이 어떻게 종교를 개혁하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종교를 개혁하신 운동이듯, 성령운동도 성령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주도하시는 운동이다. 마찬가지로 기름부음 사역, 성령(의 은사)를 나누는 사역, 성령을 받게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은사를 나누시고 성령을 받게 하시는 사역이다. 이 점 오해 없기 바란다.
 

반성령운동가들은 성경에 있는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에 있는 구절도 인용하지 않으면서(사 61:1; 눅 4:18; 행 10:38),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무당 같은 사역이다’, ‘신약에 단지 2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실제로는 7번이다-라고 비판하면서 성경에 있는 '임파테이션'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트집 잡는다.
 

-바울은 '무엇'을 나누어주려(impart) 했는가?

롬 1:11에서 바울이 ‘나누어준다’(impart, 임파트)고 한 ‘신령한 은사’는 무슨 뜻인가?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카리스마)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make you strong, NIV).

문제는 여기에서 헬라어 ‘카리스마’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느냐이다.

카리스마는 성경에서는 주로 (구원의 선물로서의) 은사(롬5:15-16), 축복(롬 15:29) 및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호의란 의미의) 은사(롬 11:29)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곳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2:6; 고전 1:7; 7:7; 12:4, 9; 28, 30, 31; 딤전 4:14; 딤후 1:6; 벧전 4:10).

한국 목회자들이 많이 보는 보수적 성향의 『그랜드 주석』은 롬 1:11의 ‘카리스마’를 (1) 이방인에 대해 복음을 전해 주는 은혜 즉 즉 구원(Harrison)과 (2) 사도의 안수로 주어지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행 8:17, 18, Bengel)의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기적중지론자인 제임스 던은 ‘카리스마’는 바울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지만 ‘복음’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James Dunn, Romans, WBC).

한편 교회시대의 초자연적 은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성령으로 인한 역동성은 인정하는 중간 입장의 존 스토트는, 비록 바울이 고전 12장, 나중의 롬 12장 및 엡 4장에서 이 단어를 은사들이란 의미로 사용했지만, 은사는 주권적인 하나님이 나누어주시는 것이므로 여기의 ‘카리스마’는 초자연적 은사가 아니라 바울을 통한 가르침이나 권면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hn Stott, Romans, IVP).

그러나 존 스토트의 이러한 해석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그는 가르침이나 권면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람이란 매체가 없이 주권적인 하나님이 단독으로 하신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바울의 가르침이나 권면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감동-조명-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인간 바울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가르침이나 권면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가르침이나 권면도 나누고 신령한 은사도 나누는 것’이라고 했으면 훨씬 멋진 해석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반성령운동파의 기수인 이인규도 '카리스마'를 사용한 로마서의 몇 구절을 인용한 후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은 바울이 로마인에게 '영적 축복'이나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양심적인 성경 해석자의 태도가 아니다. '카리스마'가 성령의 은사로 사용된 구절들이 성경에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구절들은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증거하는 구절만 인용하는 것은 말씀을 왜곡하고 성도들을 오도하는 행위이다. 반성령운동파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인규는 또한 ‘사역적이고 경험적인 누가의 성령’과 '중생시키고 성화시키는 바울의 성령’을 구분하지 못하여, 성령은 말씀을 통해 받는 것이라면서 구원의 성령과 관련된 구절만 잔뜩 인용한다. 건전한 체험이 없으니까 성령사역자들은 A를 말하는 데 이인규는 엉뚱하게 B를 말하면서 동문서답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사역자들이 ‘성령을 나누어준다’는 말은 경험적이고 은사적인 성령을 말하는 것이지 구원과 관련된 성령이 아니다. 구원과 관련된 성령은 본인이 하나님 앞의 죄인임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를 영접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 Q & A-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참조).

 

성경이 분명하고 딱 부러지게 기록하지 않은 구절은 넓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내 식의 한 가지 해석만 주장하여 다른 해석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그러므로 너는 이단이나 사이비다'로 정죄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형제를 판단하는 월권 중의 월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가르치고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주듯,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들)도 사람이 나누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행 8:5-7; 9:17-18; 19:6). 그렇다면 신령한 은사(들)를 나누어준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은가?

신학교의 강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름부음 사역, 임파테이션 사역도 하나님의 것을 전수하는 중요한 교육방식 중의 하나이다. 성령사역자들은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주로 안수사역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전수하고 나누는 것(임파테이션)이다.

이런 사실은 필자의 사역은 물론 수많은 성령사역자들의 사역에서 증거되고 있다.
성령을 나누어 주고 은사를 임파트(또는 임파테이션) 하는 기름부음 사역은 성경 내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은사를 사모하면서 성령 집회에 많이 참석하여 사역자의 안수를 받다 보면 전수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딤전 5:22)는 문맥을 볼 때, 직분자 특히 장로를 함부로 안수하여 경솔하게 세우지 말라는 뜻이지 성령의 기름부음 전이를 경솔히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그런 것은 사도나 사도 시대에나 일어난 특수한 상황’(기적중지론과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전형적인 오류)이고, ‘희한한’ 은사이지 ‘보편적인’ 은사는 아니라면서 자기들이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성경 대로 구하고 받아서(고전 14:1) 사역 잘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판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신학에 부화뇌동한 미주의 일부 단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명과 함께 기름부음 사역을 하는 모 장로를 비판하고 대적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정말 그들이 바울처럼 하나님의 주권으로 왕창 깨어지지 않는 한 자기 의에 가득 차서 두고두고 이런 시비와 비판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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