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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Q&A] 바울 형이냐 디모데 형이냐극적 회심과 조용한 회심, 순간적성화와 점진적 성화
구요한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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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7  16: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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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형이냐 디모데 형이냐

-극적 회심과 조용한 회심, 순간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 9:3-9:17-22).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5. 이는 네(디모데)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 1:5).

“네(디모데)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딤전 4:14).

 

   
▲ 다매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 회심을 체험한 사울(바울)

극적 회심과 조용한 회심, 순간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은 크리스천들을 체포하기 기세등등하게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강한 빛이 둘러싸서 그는 땅에 떨어진 후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이 사건으로 소경이 된 사울은 금식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고 성령충만하여 눈에 비늘이 벗겨지고 동시에 조금 전만 해도 핍박하던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전파하기 시작했다.

바울의 경우는 예수를 만나서 ‘극적인 회심’ 체험을 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아나니아를 만나서 성령 충만을 받는 ‘순간적 성화’ 체험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바울이 이후에도 성령 충만을 경험했지만(행 13:9; 21:4) 동시에 점진적 성화도 이루어갔다.

그러나 디모데처럼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체험한 줄도 모르게 ‘조용한 회심’을 한 후 조용하고 은밀하게 ‘점진적 성화’만을 이루어 가는 사람도 많다. 주로 모태신앙인들이 이렇다.
 

반성령운동파들은 성령 체험과 같은 ‘제2의 축복’ 체험을 ‘위기 체험,’ ‘정상 체험’으로 인정은 하더라도 아직 구원의 서정-순서-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성령운동파는 성령 체험과 같은 ‘순간적 성화’ 체험을 ‘점진적 성화’와 더불어 구원의 서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한국의 차영배 교수도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

교회사를 볼 때, 영적 부흥 시기나 오늘날의 성령운동파의 집회에서는 바울처럼 극적인 회심과 순간적 성화 체험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때 바울처럼, 여러 가지 생소하고 이상한 영적 현상들-쓰러지고, 웃고, 딩굴고, 고함치고, 뛰는 등-을 체험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생경한 반성령운동파들은, 진정한 회심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온다는 ‘조용한 회심’과 ‘점진적 성화’ 교리에 경도되어 성령운동파를 비난한다.

반성령운동파들은, 성령운동파가 ‘경험을 바탕으로 교리를 세운다’고 비판하지만, 자기들이야 말로 극적인 회심 체험과 순간적 성화 체험이 결핍되어 조용한 회심과 점진적 성화만이 성경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자기들이야 말로 '영적 무경험으로 인해 인간의 논리로 교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성경은 바울과 디모데의 경우에서 처럼 분명히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회심 양상과 성화에 대해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사도 바울의 경험은 구속사적으로 단회적인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자체가 그들이 자기들의 극적인 회심 체험이나 순간적 성화 체험의 결핍-무경험-을 바탕으로 전개된 경험 신학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왜? 기존 교단 내에서도 실제로 성령 체험과 같은 순간적 성화 체험을 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나선 에드워즈의 변호

극적인 회심과 순간적 성화 및 그에 따르는 생소한 영적 현상에 대해 가장 고민하면서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설명과 변호를 한 사람은 미국 제1차 영적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나선 에드워즈이다.

에드워즈는 대각성 기간 중 여러 가지 회심의 양상을 목격했다.

1741년 가을 경, 에드워즈는 “괴로워서 또는 너무 기뻐서 울부짖고, 기절해 쓰러진 사람들로 온 집안이 가득한 것을 보는 것은 보통의 일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에드워즈는, 자신이 주도한 부흥기간 중에 이상한 영적인 현상들을 동반하는 집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회심의 여러 양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놀라운 회심 이야기』(A Narrative of Surprising Conversions) 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 지방의 부흥의 불길에 대해 곱상한 눈길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전형적인 이성주의자인 제일장로교회의 찰스 촌시(Charles Chauncy, 1705-1787)는 한 강의를 통해, 하나님의 유일한 사역은 ‘마음과 삶이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련의 집회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종교적 광란”으로 매도했다. 필자는 오늘날의 성령사역 대적자들을 보면 금방 찰스 촌시가 떠오른다. 찰스 촌시는 반(反) 부흥파의 기수였다. 그러나 오늘날 조지 휫필드, 조나선 에드워즈는 기억하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역사가 심판한 셈이다.

에드워즈는 생소한 부흥 현상 때문에 부흥 자체를 부정하는 찰스 촌시의 주장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의 독특한 표식들”이란 설교를 통해 부흥 기간 중에 일어난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을 변호했다.

에드워즈는 서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영적인 현상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역이 아닌 것은 아니다. . . 일부의 편견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일에 대해 바른 소개를 받을 기회가 없었거나 외부로부터 잘못된 소개를 받은 것에 기인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체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기분 나뻐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다시 시작해야 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른 틀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 어떤 원칙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지지하고 확인해 주기 때문에 현재의 이런 현상들을 싫어한다. 확실한 것은 이런 현상들은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알미나안주의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에드워즈)는 자신들이 도구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 일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정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승하고 우리는 쇠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만약 누구라도 이 일을 믿지 않고 비판하고 반대하기로 굳게 작정했다면 그들은 그들을 깨우치고 구조해 주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자비에 자신들을 맡겨야 할 것이다”(같은 책, 83).

오늘날 막무가내 비판 일변도의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에드워즈가 행한 설교의 본문은 요한일서 4장1절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그의 설교를 요약하면 이렇다.

사도시대에 성령의 능력이 크게 부어져서 사도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풍성하게 역사하는 곳에는 사단의 가짜 역사도 활개를 친다. 이 때문에 교회는 이런 것들을 분별할 원칙이 필요하다.
 

어떻게 영들을 분별할 것인가? 성경은 그 원칙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이 말씀들을 통해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첫째 모든 것을 쉽게 믿어서 이상한 영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을 경계한다.

둘째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이 세상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가짜들이 많으므로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에드워즈는 이어서 현상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사역의 징후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징후가 아닌 것들’(no signs) 9가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쓰러지는 현상/쓰러지는 현상04 참조)
 

그러나, 대표적인 반성령운동가인 존 맥아더는 최근의 저서인 『다른 불』에서 성령운동파의 집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을 에드워즈가 제시한 5가지 분별법으로 비판하면서 성령운동파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조나선 에드워즈는 5가지 분별법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집회 시 일어나는 이상한 영적 현상 그 자체로 어떤 운동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맥아더는 에드워즈의 이런 주장은 언급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현상을 맹공격하여 에드워즈와 날선 공방을 벌인 찰스 촌시의 견해를 인용한다.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열매가 없는가? 찰스 촌시의 지적처럼 지나침도 있었지만, 교회사에서 제1차 대각성 운동이란 불리기에 합당할 만큼 열매가 훨씬 더 많다.
제1차 대각성 기간 동안, 뉴잉글랜드 지방 전체 인구 34만 명의 7%~14%에 이르는 2만5,000~3만 명이 교회에 등록했다. 프린스턴 신학교도 부흥 운동의 열매로 설립되었다. 특히 남부 지방에서는 침례교가 급성장하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조나선 에드워즈 :

이상하고 생소한 영적 현상들→’현상 자체’가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징후(들) 은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집회나 사교 집단, 심리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징후 이후 맺는 성령의 징후를 5가지 분별법으로 분별해야 한다.

5가지 분별법은 다음과 같다.

1.  그 사역이 진정한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2.  그것이 세상적인 것을 대적하는가?
3.  그것이 사람들은 성경으로 이끄는가?
4.  그것이 진리를 향상시키는가?
5.  그것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야기시키는가?

실제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은사운동의 열매를 미국의 퓨 재단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은사운동이 숫적인 급성장을 보일 뿐만 아니라, 반성령운동파의 비판과는 달리 교리에 대한 정통성, 도덕성, 경건(교회출석, 성경읽기와 기도), 전도에 대한 열정 및 사회적 참여와 같은 신앙의 열매 면에서 비성령운동파 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 존 맥아더 비판/존 맥아더의 다른 불 비판(2) 참조)
 

반성령운동파 :

이상하고 생소한 영적 현상들→’현상 자체’가 사교 집단이나 심리 현상임을 증거한다→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집회는 비성경적이다→교세가 늘지 않고 신앙의 열매 수준도 성령운동파 신자 보다 낮다.
 

영적 부흥기나 성령 집회에는 자주 생소한 현상이 동반된다. 

사도행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교회의 성장은 조용하고 은밀한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요란하고 가시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영적 부흥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반성령운동파들은 배워야 한다.

개신교의 역사를 보더라도 초기의 종교개혁의 핵심은 바른 교리를 통한 천주교와의 결별이었지만 이후의 운동들-요한 웨슬레의 부흥운동, 미국의 케인리지 부흥운동, 제1,2차 대각성 운동, 웨일즈 부흥운동, 오순절 운동, 교단 내의 은사운동, 지금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은사운동에는 대부분이 생소하고 이상한 영적 현상이 동반된다. 영적 현상이 생소하고 예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부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 삼간 태우고 구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는 격이다.

개인의 신앙여정도 마찬가지다. 성경 인물은 물론 역사적으로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성령 체험과 같은 순간적 성화 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사도행전의 12제자와 사도 바울을 위시하여, 영국의 영적 부흥을 주도한 요한 웨슬레, 미국 제1,2차 대각성운동의 조나선 에드워즈와 찰스 피니, 20세 부흥운동의 D.L 무디 등.

그러나 반성령운동가들은 대부분이 기적중지론자인 칼빈, 벤자민 워필드, 리차드 개핀, 에드윈 파머, 존 맥아더, 행크 해네그라프 및 한국의 서O원, 김O성 같은 신학자의 영향을 받은 최O경, 정O철, 박O택, 이O규 같은 사람들이다.

 
바울 형과 디모데 형

바울 형과 디모데 형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우리는 바울 형과 디모데 형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바울처럼 극적인 회심과 순간적 성화 체험을 한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담대하고 열정적이다. 바울 형의 단점은 바울과는 달리 열광적이고 감성적이라 교리 체계가 부실하고 삶의 규모가 없을 수 있다. 반성령운동파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인의 주류를 이루는 디모데 형의 단점은 유약하고 우유부단하여 현재 상태에 만족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거나 폄하하기 쉽다.
 

그 결과는?

성실하고 인내는 잘 하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계 2:17), 교리와 전통은 바르다고 자부하지만 바른 행위가 따르지 못하는 사데 교회(계 3:1-6), 미지근하고 세상 것을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계 3:14-22)와 같은 죽은 정통의 교회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신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바울 형과 디모데 형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은 본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 제시하는 대안 

지금 한국 교회는 교세 감소와 윤리도덕의 부재로 인해 교회 선호도 추락으로 이중 몸살을 앓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교단의 위상 높이기를 좋아하고 교세 확장을 중시하는 교단들, 특히 장로교는 이제 반성령운동의 기치를 내리고 성령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성장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은사운동에 동참한 교회들이다.
 

은사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은사운동, 다른 양상의 회심 체험이나 성화 체험을 부인하는 신학을 개혁하라
기적중지론에 경도된 교단의 어르신들이나 신학자들을 재교육시켜라. 성령운동파의 교회들을 방문하고 신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실제로 맺는 신앙의 열매를 확인하라.
개혁주의, 웨슬레안주의, 성결주의, 오순절주의, 은사주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경주의이다.

-강의식 예배와 축제식 예배를 혼합적으로 운영하라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강의식 예배와 성령운동파의 축제식 예배를 시차적으로 운용하면서 성도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교회가 많다. 한국에도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교회가 증가하고 있다.

-집회 시 나타나는 생소하고 이상한 현상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
알파코스와 셀운동교회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이런 훈련의 금지명령을 내린 교단도 있다.

이런 것도 선별적으로 허용하라.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이 생소한 현상을 체험하고 선호하는 것에도 시한이 있다. 개인별로 볼 때, 빠르면 6개월 늦으면 3년 이내에 이런 현상이 점점 나타나지 않는 것을 필자는 목격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제 본격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성령운동파는 초자연적 체험으로 인해 마음 문은 열려있는 데 말씀 양육이 부족하여 문제이고, 반/비성령운동파는 말씀 양육은 하는데 메마른 심령에 쏟아 부으니 변화와 능력은 없고 머리와 귀만 커져서 문제다. 생소하고 이상한 현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마음문을 쉽게 열고 마음밭이 잘 기경되어 있기 때문에 마른 논에 물 들어가듯 말씀을 잘 빨아들인다.

-선호파와 비선호파를 교육시켜라
지역교회에서 담임 목회자가 교육하거나 교단 차원에서 교육하는 것도 좋다. 사람들은 체험도 없고 잘 모르면 반대하고 비판하기 마련이다. 교인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단으로 몰고 가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반대가 있어서 교회가 시끄러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윈-윈(win-win)이 된다. 어차피 교세도 늘지 않는 상황에서 변신을 위한 희생적인 모험이 필요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힘들다면 모른 체 하고 허용하라.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대적하여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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