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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재정①] 유대인과 크리스천, 누가 더 부요한가?유대인이 10배나 더 부요하다. 그 이유는?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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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7  15: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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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재정①]

유대인과 크리스천-누가 더 부요한가?

 -유대인이 10배나 더 부요하다, 그 이유는?-

   
▲ 재정(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축복이다. 물질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보다 우선순위에 놓고 그것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미국의 어떤 크리스천 재정 사역자는, 크리스천 사업가인 친구가 유대인 회계사(=세무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친구는 자신의 세금 문제를 상담한 후, 회계사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당신에겐 유대인 고객도 있고 크리스천 고객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나요?”
“물론이죠”라고 회계사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누가 더 부요한가요? 유대인 고객인가요, 크리스천 고객인가요?”
“물론 저의 유대인 고객들이 더 부요하지요. 아마, 규모 면에 있어서 10대 1 정도라고 할까요.”

“유대인인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유대인 회계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객의 신•구약 성경을 집어 든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네 크리스천들은 구약 성경을 무시하지만 우리 유대인들은 구약에 기록된 재정원칙 대로 사니까 더 부요해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재정 원칙은 구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이 재정 사역자는 이후 다수의 유대인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당신들 크리스천의 신앙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후 만사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혜’ 아래 사는 크리스천들은 잠언이나 구약에 기록된 재정 원칙은 ‘율법’이라고 무시하면서 구약에 기록된 재정 원칙을 따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대인들은 ‘율법’에 기록된 재정 원칙에 순종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 의하면, 구약에 기록된 성경적인 재정 원칙을 따르면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정적 축복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현재 유대인은 전 세계에 약 1,5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 중에서 겨우 0.2% 정도를 차지하고 미국 인구 3억 명 중 2%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나머지 700만 명은 이스라엘에 그리고 나머지는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우 2%의 유대인이 세계에서 제일 막강한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영화, 음악 등-, 언론, 교육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좌지우지하고 있다.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의 30%,
-미국 동부 명문대학 재학생의 23%, 교수의 30~40%,
-미국 50대 기업 중 17개의 창업주이자 경영자,
-뉴욕과 워싱톤 유명 법률회사 변호사의 40%,
-미국 고위공직자의 15%,
-미국 하원의원 535명 중 35명(6.5%),
-미국의 파워 엘리트 100명 중 51명,
-미국 재벌 400명 중 23%,
-미국 IT기업 4인방 중(MS, Apple, Google, Facebook) 중 MS의 빌 게이츠는 개신교, Apple의 고 스티브 잡스는 모계 유대인, 구글(Google)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저커버거는 모두 유대인들이다.
-여론의 힘이 막강한 미국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3대 신문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요 소유주, 미국 3대 TV NBC, ABC, CBS-TV, UPI, 로이터 통신,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을 포함해 미국을 주도하는 언론인의 25%,
-유대인들은 초기 헐리우드 8대 영화사의 설립자였으며, 영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거 등도 이들 계통이다.
-유대인들은 또한 1999년 타임(Time)지 선정 20세기 최고 영향력을 끼친 4인 중 3인-아인슈타인, 칼 막스, 프로이드-을 배출했다. (다른 한 명인 찰스 다윈은 영국 출신)

이들은 교육열에 있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한국 부모들이 내 자녀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선망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의 막강한 영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왜 구약만을 가진 유대인이 신•구약을 모두 가진 크리스천들 보다 이 땅에서 더 형통하고 번성할까? 비록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신약을 인정하지 않지만 구약과 구약에 기초한 탈무드를 바탕으로 신앙과 교육을 해왔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 신자들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신령한 축복을 누리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가난과 궁핍과 고난 가운데서 살아야만 하는가?


-구약의 현세축복인 신약에서는 신령한 축복으로 승화되었다?

적어도 전통적인 신학은 그렇게 가르쳐왔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구약의 현세축복이 신약에 와서는 신령한 축복으로 승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계시가 미약한 구약시대에는 보이는 지상적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하셨지만 계시가 완전히 드러난 신약 시대에 와서는 보이는 축복이 차원 높은 신령한 축복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구약을 해석하는 두 가지 관점이 대두되었다.

한 가지는 ‘신약에서 명시적으로 부인하지 않은 구약의 내용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신약에서 명시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구약 내용은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전통주의자들은 칼빈을 따라 후자의 해석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한때는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하는 내용이 신약에 없으므로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멜로디가 있는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되고 구약의 시편처럼 창(chanting)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요즈음 이런 주장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것이다.

이후 전통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착실하게 이어 받아 구약에서 강조하는 부요, 건강, 성공, 형통과 같은 지상적 축복은 차원이 낮은 것으로 간주하고 신약의 신자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가난, 고난, 궁핍의 삶을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이원론이자 신(新) 영지주의적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주의 일에 헌신하기 위해 가난과 궁핍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부요법칙,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영혼육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샬롬(well-being, peace)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물론 이 세상은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진리, 거룩함(엡 4:24)-을 회복하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처럼 타락으로 인해 마귀에게 빼앗긴 만물통치권-물권-을 회복하는 것 또한 신자에게 부여된 의무이자 권리라는 사실을 재각성해야 한다(창 3:17-19; 눅 4:5-7; 마 12:28-29 등).

우리가 가난하고 궁핍한 이유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을 타락으로 인해 마귀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속임수이다.
 

-정신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게 여긴 세상의 철학

세상의 철학도 한 몫을 했다.
플라톤은 ‘정신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어거스틴도 이러한 주장을 이어받아 영적인 일-성경읽기, 기도 등-은 고상하고 육체적인 일-직업과 사업 등-은 저급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해왔다. 천주교는 사제직은 고상하고 평신도직은 저급하다는 이원론을 지금도 고수한다.

개신교는 말로는 영육간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지만 아직도 은연 중에 영적인 일은 고상하고 육적인 일은 저급하다는 이원론적인 생각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 결과, 신자들이 은혜 받고 고난 받는 일은 담대하게 이야기 하지만 삶을 압박하는 재정, 질병, 실패의 문제는 쉬쉬하면서 각자가 하나님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교회에서 설교나 프로그램들은 영적이고 은혜로운 것이 절대 다수이지만 실제로 교인들 각자가 기도할 때는 재정, 건강, 형통 문제가 주류를 이룬다.

이 갈등, 이 모순의 원인은 무엇인가?

-영적인 것은 고상하고 육적인 것은 저급하다?
-구약의 기록은 신약의 우리와 상관이 없다?
-신자는 영적 은혜를 추구해야지 지상적 축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성경해석과 이원론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육적 축복을 가로 막고 있다.
구약만 가진 유대인들은 비록 예수를 믿지 않아서 영적 구원과 축복은 누리지 못하지만 지상적 축복은 누구 보다 풍성하게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의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만을 위한 재물, 나만을 위한 형통이 문제이지 하나님을 위한 재물, 하나님을 위한 형통은 성경에서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마 19:29; 눅 18:29-30).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박해를 받는다고 했지 가난하고 궁핍해 진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100배 이상 더 부요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구약의 육적 축복은 계시가 미약하고 신앙이 미성숙한 단계에서 보이는 축복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셨다. 초등학생을 다루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신약의 성숙한 신자는 영적 축복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대학생이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스크림이나 피자에 마음을 빼앗겨서야 되겠는가? 성인답게 고상하고 신령한 축복을 사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에게 재정과 형통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등학생 보다 더 필요하다. 초등학생은 자기욕구 만족 수준에 그치지만 대학생은 자기욕구도 만족시켜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욕구도 만족시키는 이웃사랑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생 보다 더 많은 물질과 축복이 필요하다.

즉, 신약의 신자에게는 구약의 지상적 축복은 물론 신약의 신령한 축복도 필요한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영적 축복도 필요하고 육적 축복도 필요한데 왜 영적 축복이 더 필요하니까 육적 축복은 필요없다는 식의 극단론을 제시하는가?

신령한 축복이 더 귀중하기 때문에 육적 축복은 필요 없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흑백논리, 이분법적인 논리다.

구약만 가진 유대인이 저렇게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데, 신•구약 모두를 가진 크리스천은 이제 신령한 축복을 누리므로 지상적 축복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성경 해석, 선악의 이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처럼 특정한 지도자가 특정한 상황에서 가난과 궁핍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난과 궁핍 또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기 위한 희생적 초석이지 가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하나님은 신자가 영적 축복도 누리고 육적 축복도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하신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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