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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①] KBS 드라마 ‘정도전’과 ‘한국교회’둘은 판박이로 닮았다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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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0  15: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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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
 

KBS 드라마 ‘정도전’과 ‘한국교회’

- 둘의 상황은 판박이로 닮았다 -

   
▲ KBS 사극 드라마『정도전』화면 캡처

요즈음 KBS1의 주말 정통사극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인데 역사 공부를 한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태조 이성계, 충신 정몽주, 청렴의 대명사인 최영 장군 및 조선 창건의 소프트 웨어를 제공한 정도전이 주연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도전』이 한국의 현 상황을 속 뺐다고 하는데 필자는 오히려 한국 교계의 판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려 말, 왕권은 나약하고 권문세족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빨던 시기에 유학(儒學)을 전공한 신진 사대부들이 개혁을 주장하지만 수구파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대부들을 핍박한다.

한편, 국제 정세는 천하를 호령하던 원 나라 세력이 몰락하고 신흥 명 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기 시작 할 때이다.

 

5종류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
 

-권문세족 수구파 이인임

고려 최고의 귀족이자 술수가 뛰어난 권문세족(權門勢族)의 수장으로서 궁정의 시중(국무총리)이 되어 수하 부하들을 거느리면서 어린 왕의 지지를 바탕으로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한다. 그의 집에는 매관매직을 위한 사람들의 뇌물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는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하여 심지어는 목은 이색과 같은 사대부 수장의 지지까지 받을 정도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를 읽는 눈은 어두워서 망해가는 원 나라를 지지하고 흥하는 명 나라를 대적한다. 가렴주구와 친원 정책으로 인해 사대부들과 대립 갈등 관계에 놓인다.

이후, 최영과 이성계의 역공을 받고 귀양살이를 하다가 결국 죽게 된다.

 

-권문세족 보수파 최영

뛰어난 장수이지만 정치 감각은 둔해서 노련한 정치인 이인임의 단수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후 이인임 수하들의 비리를 신흥 군부 세력인 이성계와 연합하여 처리한 후 시중(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른다.

명 나라가 요동 지역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자 이성계와 사대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 나라를 치기 위해 거국적인 요동 정벌군을 동원했다. 이성계가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폭우로 인해 압록강 도강이 불가능하니 회군을 허락해 달라는 수차에 걸친 상소를 무시하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역풍을 맞아 “독단과 오판”으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죄목으로 숙청된다.

 

-변방의 촌뜨기 이성계

뚜렷한 배경이 없는 변방의 싸움 잘하는 장수에 불과했지만 희대의 책사 정도전을 만난 후 차근차근 중앙 정계의 요직에 진출하여 마침내 허울만 남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다.

 

-엘리트 출신 충신 정몽주

장원급제한 뛰어난 수재이자 고려의 병폐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온건 개혁파이다.

그는 고려 왕권은 유지하면서 권문세족의 혁파를 주장하는 온건 개혁파로서 오랫동안 이성계와 정도전과 한 배를 탔지만 이성계와 정도전이 역성 혁명을 도모하자 이들을 대적하다가 결국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조선 태종)에게 피살된다.

 

-풍운아 정도전

유학자의 산실인 성균관에서 정몽주와 의형제를 맺을 만큼 의기투합했지만 젊은 시절 권문세족의 수장인 이인임을 대적하다가 귀양살이와 야인생활을 10년 정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겪는다. 그는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맹자가 말한 ‘역성 혁명'-왕의 성을 바꾸는 혁명-만이 괴물 고려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킬 무장(장군)을 찾는다.

백성들에게 탐문해 본 결과 최영 장군이 백성들의 숭앙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최영의 사람이 되어 한 동안 관찰한다. 최영은 비록 청렴하고 곧은 사람으로서 왕실에 대한 충성심은 깊지만 백성에 대한 사랑은 부족함을 알게 된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개경(평양)에서 함경도 주둔군 사령관인 이성계를 찾아가서 목숨을 걸고 대업-역성혁명-을 간언한다. 이성계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상황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도전의 뛰어난 책략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중앙정부 권력에 핵심에 다가가다가 마침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의 태조가 된다.

그러나 왕권 국가가 아니라 왕은 상징으로 앉히고 재상들이 실권을 쥐고 정치를 하는 재상 국가-서양의 입헌군주국과 비슷-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조선을 세운 후 강력한 왕권 국가를 지향하는 이방원(태종)의 의해 제거된다.

 

고려 말 조선 초와 한국 교계

한국 교계는 지금 기로에 서있다. 한국 교계의 현 상황은 고려 말 조선 초처럼 불안과 기대가 교차되는 영적 난세이다.

한 동안 세계가 놀랄만한 성장을 누리던 한국 교계는 1990년도부터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서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소식 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다. 가득이나 전도가 되지 않는 시점에서 심심찮게 터지는 대형교회 유명 목사들의 스캔들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선호도는 불교, 천주교 다음으로 꼴찌이다.

대외적으로는 지금 성령운동이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성령운동에 동참한 교회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데 기존 교단들은 이런 운동을 오히려 이단시 하고 정죄하면서 한국 교회에 성령운동이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한국 교계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

이런 난세에 드라마 『정도전』과 같은 뚜렷한 캐릭터들이 저마다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고 있다.
 

-수구파 이인임

교단과 전통에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착실히 누리는 사람들이다. 필요하면 이단 감별사들을 내세우거나 교단 법을 악용하여 교권이나 기득권에 도전하는 자는 가차없이 제거하고 처벌하는 자들이다.

 

-보수파 최영

자신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지만 교단과 전통에 대한 충성을 하나님에 대한 충성으로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최영처럼 판세를 잘못 읽어서 성령사역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변방의 촌뜨기 이성계

배운 것 없고 신분도 보잘 것 없지만 백전노장인 이성계는 백성에 대한 사랑과 리더십,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 출중한 참모들의 조언으로 마침내 새로운 대업을 완성한다.

이성계는 오늘날 사도적 리더이고 정도전은 선지자적 참모라고 할 수 있다.

 

-온건 개혁파 정몽주

정직하고 올곧은 성격의 사람으로서 교단과 전통의 잘못을 개혁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성령운동에 어느 정도 동조는 하지만 전통과 교단의 울타리는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급진 개혁파 정도전

안으로는 교단의 무능과 부패, 본인은 물론 신자들의 피폐한 영적 상태를 안타까워하면서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추구하고, 밖으로는 성령사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선지자적 리더이다.

이를 완수하기 위해 이성계 같은 사도적 리더를 중심으로 기존 교단을 탈퇴하거나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서 성령의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채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전통적 교회와 성령운동하는 교회

세속사는 물론 구속사를 볼 때, 새로운 운동은 대부분 변방의 촌뜨기, ‘변방의 미치광이’(lunatic fringe)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이런 점이 이인임이나 최영 같은 보수파 '종교 귀족들'에게는 제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래서 얕보고 핍박하고 대적하지만 전통과 문약에 빠진 그들은 결국 신흥 세력에게 지배되거나 멸망된다.

헬라를 무너뜨린 로마, 천년 신라를 무너뜨린 고려, 콧대 높은 유럽 제국을 제압한 신흥 국가 미국, 무식한 어부와 세리 등을 사도로 부르신 예수님 등. 물론 새로운 국가나 운동이 완성되면, 천재 바울을 통해 교리 부분을 완성하듯, 국가나 교회도 지식인들이 대업의 구체적 콘텐츠를 완성해 간다.
 

성령운동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20세기의 성령운동 초창기에 의도적으로 무학자들을 들어쓰셨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12제자처럼 초기에는 무식하고 단순해야 새로운 운동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문약하고 아는 것이 많으면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비록 옳다고 생각해도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고, 명예 지위와 같은 기득권을 가진 것이 많아서 잃을 것이 많고, 동료들의 비판과 왕따를 두려워하여 제대로 행동을 못하기 마련이다.

왜, 예수님이 똑똑하고 착실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중에서 사도를 뽑지 않고 신분도 보잘 것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들어 쓰셨을까? 오늘날 성령운동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기존의 전문가 집단이 늘 새로운 운동이나 사상을 제일 비판하고 대적해 왔다. 자기들의 패러다임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은 객관적인 과학의 발달도 기존의 지식에 새로운 지식이 더하면서 발달된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충돌을 통해 정→반→합의 과정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가치와 사상을 다루는 인문학, 철학은 물론 교리 체계를 다루는 신학의 발달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충돌은 더욱 더 심하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면 기존의 집단은 늘 비판하고 대적하기 마련이다. 종교개혁을 대적하고 핍박한 천주교, 요한 웨슬레의 부흥운동을 비판하고 핍박한 성공회, 오순절 운동을 비판하고 핍박하는 기존 교단들, 신사도운동을 비판하고 대적하는 기존의 오순절 교단들. 한편으로는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용하면서 정→반→합의 과정을 겪어간다.

-무당굿하고 광란이라고 비판하던 찬양과 경배를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수용하고 있다.
-초창기에 선교단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비판 받은 제자훈련이 이제는 교회의 중요한 사역의 일부가 되었다.
-영적전쟁, 땅밟기 중보기도 등은 이미 많은 교회들이 수용하여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다.

결국, 기존 교회들은 앞으로는 비판하면서도 뒤로는 모두 수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 정도라도 유지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만일 한국 교회들이 미국의 주류교단-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등-처럼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유지했다면 벌써 변방의 조그만 단체로 쇠퇴했을 것이다.

 

한국 교회,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직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구파 이인임 처럼 교단의 정치 실세들이 내부에서는 정치력을 휘두르고 외부에 대해서는 이단 감별사들을 내세워서 성령사역을 대적하게 할 것인가?

보수파 최영처럼 국제 정세를 오판하면서-성령사역을 대적하면서-교단의 전통과 신학에 우직하게 충성할 것인가?

온건 개혁파 정몽주가 되어 교단의 울타리 내에서 개혁 운동-성령운동을 어느 정도 허용-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급진 개혁파 정도전처럼 기존 교단을 탈퇴하거나 새로운 단체를 설립하여 과감하게 새 포도주를 담을 것인가?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영적 판세에 대한 감각이 있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정몽주나 정도전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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