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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기 영적 대각성운동의 주역들과 조나선 에드워즈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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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5  0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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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초기 영적 대각성운동의 주역들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평가

   


예영수 박사(Ph. D, Th. D., S Ed. D.)
LIFE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1. 시작하는 말: 영적 대각성운동이 필요한 계절
        2. 영적 대각성운동과 그 영향
        3. 영적 대각성운동에 대한 오해와 찬성과 반대
        4. 영적 대각성운동의 새벽: 뉴잉글랜드의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
        5. 중부 식민지의 데오도르 제이콥 프레린귀센 목사
        6.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제1대각성운동과 조나단 에드워즈
        7. 영적 대각성운동의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평가
        8. 결론: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자
 

 

1. 시작하는 말: 영적대각성운동이 필요한 계절:

어느 목사가 필자의 핸드폰에 보낸 메시지에서 세월호 사건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세월호 침몰은 이 시대의 한국의 그리그도인들에게 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한국교회는 정상 향로를 이탈한 세월호와 같이 진리의 궤도에서 벗어나서 위태로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탄식하였다.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에 영적대각성운동이 필요한 계절이다. 성경을 토대로 해서 본다면, 마치 파도의 오르내림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영적 갱신을 경험하는 기간이 있는가 하면 영적 쇠퇴를 경험하는 기간이 있다. 영적 대각성은 제2대각성운동의 경우처럼 여러 해를 지속하지만, 반면에 1850년대의 제3대각성운동 때처럼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갱신운동의 바람이 지나가면 교회는 여러 해 동안 무기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주기가 200년 교회사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하나님의 영은 쇠퇴기간 동안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부흥과 능력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영적 대각성운동을 보면, 이스라엘이 범죄로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영적 대각성운동을 통해서 구원의 기회가 되도록 하셨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영적 대각성운동은 요아스왕 치하에서(왕하11장-12장), 히스기아왕 치하에서(왕하18장), 아사왕 치하에서(대하15장), 특별히 요시아왕 치하에서(왕하 22장-23장) 일어났으며, 스룹바벨 시대에도(스5장-6장), 느헤미야 시대에도(느 8장-9장, 13장) 일어났다.

신약시대 영적 대각성운동이 오순절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났다(행2장). 사도행전 4:23-37에서 우리는 무서운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기교회를 위해 준비된 영적 갱신운동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교회사의 영적 대각성운동의 패턴(양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미국의 초기 영적대각성운동의 주역들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대각성운동에 대한 평가를 소개함으로서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에 좋은 선례로 삼기로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 영적대각성운동과 그 영향: 

오늘날 세계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의 부흥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영적인 각성운동을 위한 부흥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경계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 같다. 영적 각성운동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실제로 방해하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있다. 그러한 태도는 성경을 크게 잘못 오해하거나 교회사에 대한 서글픈 무지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각성운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촉진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미국의 대각성운동은 교회의 크리스천들의 영적 각성과 함께 대단한 교회성장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사회 개혁 운동을 이룩했다. 부패, 부도덕, 불의, 무신론적 경향의 사람들이 정직, 순결, 정의, 거룩함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의 문화가 변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일먼저 사람들이 변화되었다. 미국의 반(反)노예운동, 형무소 개선운동, 아동 노동법, 여권운동 등은 주로 제2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주류교단의 대부분은 대각성운동을 통해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미국의 식민지 시대의 9개의 대학 중에 6개가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태어났다. 미국과 영국의 대각성운동은 전 세계의 복음적인 각성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외국선교 활동이 폭풍우 치는 여름날 건초더미 위에서 시작되었다.

1806년 메사추세츠 주의 윌리엄즈 대학의 각성집회 동안 사무엘 밀즈(Samuel Mills, 1783-1818)와 다른 4명의 학생들이 여름날의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건초더미 속에 들어갔다. 그들은 건초더미 속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선교사로 나가기로 서약을 했다. 이 그룹에서 미국의 제일 첫 선교사들이 외국으로 파송되었다.

1858-1859의 제3차 대각성운동은 미국과 카나다의 여러 도시의 기도회에서 시작되었는데, 목회자들로부터 된 것이 아니라 경건한 평신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3. 영적대각성운동에 대한 오해와 찬성과 반대:

영적 각성운동이 교회와 일반 문화에게 끼친 지속적인 축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 영적 각성운동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너무나 작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위대한 영적 강성운동의 위대한 유산을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약간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 운동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여, 영적 대각성운동을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이 없는 종교적인 열광주의자들의 시대적 운동으로 매도해 버리기도 한다.

역사학자 스위트(William Warren Sweet)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의 종교적 발전의 어느 단계도 부흥운동보다 오해와 헐뜯음을 당한 것은 없다. 각성운동은 가치 없는 싸구려 정체폭로의 희생물이 되었다. 부흥운동을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고등교육의 역사와 부흥운동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1)

미국의 고등교육 뿐 아니라 사회 개혁에도-노예제도 패지, 사회 정의구현 등-너무나 좋은 영향을 끼쳤다.

영적 대각성운동의 결과 많은 회심자가 생기고 기독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때문에 불신자들의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각성운동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좋고 유익 된 영향을 교회와 사회에 끼치게 되자, 비판 세력들은 부정적인 면을 찾아서 과장하고 조롱하였다. 그들은 공격의 목표를 과격한 광신주의적 태도에서 찾아내었다. 왜냐하면 항상 도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1차 대각성운동에서 몇 가지 문제에 부닥친 것은 사실이다. 제2차 대각성운동에서 미국의 거친 서부의 변방(邊方)에서 회의주의자들이 잘 사용하는 무기는 광신주의를 비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영적 대각성운동은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매사추세츠 주의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 1643-1729) 목사의 갱신운동은 좋은 열매를 맺었으며, 1737년 그의 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부흥운동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미국 동부에서의 제2차 대각성운동은 그 운동의 품위와 질서로 잘 알려져 있다. 만일 그 운동이 불명예스런 것이었다면, 그렇게 수십 년 동안을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는 그의 사역 초기에 질서와 품위를 주장했으며, 그의 집회에 참석하여 예수를 믿게 된 수천 명의 회심 자들은 성령의 능력의 기름부음을 받아 나오면서 광신주의적 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피니 목사의 1830-1831년의 로체스터 부흥집회를 연구한 역사학자 휫트니 R. 크로스(Whitney R. Cross, 1913-1955)는 “미국 역사에서 이보다 더 인상적인 부흥집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모습은 이 각성운동의 품위 있는 현상이었다”라고 말했다.

1857-1859의 제3차 대각성운동을 본 일반 신문에서도 평하기를, 백만 명 이상의 회심자들이 교회로 몰려오는데도 어느 곳에서든 조용하고 질서정연함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생할 수 있는 광신주의가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인 과도함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 대각성운동에 참석한 다수의 군중들은 대단한 질서와 심오하고 굉장한 진지함을 보여 주었다. 우리의 유산은 영적 대각성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대각성운돌을 주시도록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4. 영적대각성운동의 새벽: 뉴잉글랜드의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Solomon Stoddard, 1643-1729)는 명망 있는 청교도 목사로서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코넥티컷 강을 따라 서부 변방지역에 위치한 놀샘프톤(Northampton) 제일교회에서 1669년부터 1729년까지 60년 동안 목회를 했다. 미국의 영적 대각성운동은 전적으로 스토다드 목사의 목회사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헌신적이고, 복음주의 적이며, 영혼 구원을 위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접근할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스토다드 목사와 다른 청교도 목사들은 건국 이래 미국(뉴잉글랜드)의 영적 생활이 크게 파손되어 교회가 모두 함께 사멸되어버릴 직전임을 인식하고, 1679년에 “개혁 노회”를 구성했다.

그 당시 몇 사람의 청교도 목사들은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지식만으로는 뒷거름치는 교회에 활성화의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영적 각성운동이란 시대적 필요성에 연합된 기도와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 시대의 영적 재생을 위해서는 영적 각성운동만이 유일한 대답이란 것을 주장한 사람은 유일하게도 스토다드 목사 한사람이었다. 영적 각성운동이 시작되도록 성령의 위대한 역사가 스토다드 목사를 통해서 교회에 기름부음을 주신 것이다.

스토다드 목사가 동료 목사들에게 영적 각성운동의 필요성을 말했을 때, 단지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보였다. 그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와 글로서 부흥운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를 계속 전했다. 그는 목사들이 대부분 믿는 사람들의 도덕적인 의무와 축복에 관한 설교는 하지만 죄인들의 심판과 영원한 형벌에 관해서 미온적인 말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스토다드는 목사들이 마치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에게 나무라기를 부드럽게 한 것처럼(시 36:2) 하지 말고, 예수가 하신 것처럼(마 5:29,30) 멸망의 위험성을 경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교란 목사들의 기지와 달변을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부흥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로 타락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시는 위대한 기름부으심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다드 목사가 발견한 것은 그 당시 미국은 겨울나무처럼 교회는 영적으로 침체의 계곡에 빠져있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도 거의 느끼지 못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도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적 겨울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해서 위대한 영적 각성운동을 허락하시는 기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는 1712년 “성령의 강한 기름부으심”이란 설교에서 시편 92:12의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를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거룩함을 강하게 증가시키시고, 시편 85:6의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를 인용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린다고 했다.

스토다드 목사의 믿음의 실천: 스토다드 목사는 강력한 설교가 이다. 그가 설교한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그의 교회에서 1679년, 1683년, 1696년, 1712년, 1718년 등 5번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로 몰려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뉴잉글랜드 지방(미국 동부)의 많은 교회가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목회를 하면서 부러운 눈초리로 스토다드 목사의 교회로 몰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교회가 쇠퇴하는 동안에, 약간의 목사들은 목회 방향을 바꾸어 보다 복음적으로 설교를 하면서 부흥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스토다드 목사는 60년간 목회를 성공적으로 계속하다가 건강이 문제가 되자, 교회는 1727년에 스토다드 목사의 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를 선택하여 담임 목사를 돕도록 했다. 에드워즈 목사는 위대한 신학자이면서 영적 대각성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다른 지방에서도 아담스 목사의 목회지에서도 부흥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영적 대각성운동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5. 중부 식민지의 데오도르 제이콥 프레린귀센목사:

데오도르 제이콥 프레린귀센 목사(Theodorus Jacobus Frelinghuysen, 1691-1748)는 목사의 아들로서 독일에서 출생하여 홀란드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개인적인 회심과 사랑과 순종의 믿음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가르침에 헌신했다. 그는 1719년 9월에 미국으로 와서 4개의 네덜란드 이민 교회들을 섬겼다. 그는 열정적이며 담대하여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영적인 불을 붙이며 지속적으로 복음 전도에 힘을 섰다. 그 결과 미국 중부 식민지에 대각성운동을 위한 길을 예비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뉴저지 주에 도착하여 교인들의 해이한 태도에 크게 실망하였다. 경마, 도박, 주색 등 여러 가지 막돼먹은 행동은 보통 있는 일이며, 교회 출석은 편리할 때 하는 것이며, 예배는 형식적이며 의무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교인들에게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죄의 무서움을 분명히 인식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라고 설교했다. 영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아래서 화해, 용서, 성화,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총의 식탁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프레린귀센 목사는 회심하지 않은 교인은 성찬예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고는, 교인들의 대부분이 아직도 죄 가운데 잃어버린 자들이고 하여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미국의 화란 개혁교단은 1721년에 분열하게 되었다.

1726년 정열적인 젊은 장로교 목사인 길버트 텐넌트(Gilbert Tennent, 1703-1764) 목사가 뉴저지에 와서 프레렌귀센 목사와 뜻을 같이하고 원죄, 회계, 회심의 필요성,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 등에 대해 설교를 했다. 사람들이 조금식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 목사가 이들을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프레린귀센 목사가 주장하는 회심의 필요성과 교회의 엄격한 규율로 인하여 미국 변방지역의 목사의 권위와 교회의 질서가 유지하게 되었다. 회심자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하여 개인 기도회를 가졌으며 처음에는 회심 자들만 참여하게 했다가 1745년에 누구나 참여하도록 했다. 그 결과 목사가 없는 동안에 평신도인 장로로 하여금 설교하게 함으로써 평신도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는 1740년 복음의 빛을 높이 듦으로써 미국 대각성운동의 선구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8년 후인 1748년에 세상을 떠났다.

 

6.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제1대각성운동과 조나단 에드워즈:

미국의 자유를 위한 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된 다른 종류의 혁명이 미국을 휩쓸었다.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 목사가 1729년에 86세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목사가 그의 뒤를 이어 메사츠세츠 주의 놀셈프톤(Northampton) 회중교회에서 목회하게 되었다. 이 키가 크고 온화한 젊은 목사가 미국과 세계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놓은 위대한 신학자요 복음전도자였다.

1734년 에드워즈 목사는 노셈프톤 강단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롬 3:22), 즉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를 주제로 한 시리즈 설교를 하면서 복음주의적 전도를 강조했다.

1734년 12월 에드워즈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엄청나게 임재하셔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기 시작하셨다.... 참된 성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는 이 소도시에 영광스런 변화를 가져왔다.... 1735년 봄과 여름에는 온 도시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지금가지 그렇게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찬적도 없었지만 그렇게 비탄에 빠진 적도 없었다. 거의 모든 가정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뚜렷한 증표가 나타났으며, 구원받았다는 확신 때문에 가정마다 기쁨이 충만했다.... 반년 만에 이 도시에서 만도 300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되었으며, 특별히 16세 이상의 젊은 사람들이 구원의 반열에 참여했다.”2)

다른 목사들이 노프톤 부흥운동에 참여하여 메사추세츠 주와 코넥티컷 주의 20여개 도시로 확산되었다. 대각성운동의 열기는 이 집회에 참석한 목사들로 인해 미국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동시에 확산되었다.

 

다행히도 에드워즈 목사는 그 때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록』(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이란 글로 남김으로써 대각성운동은 1740년을 넘어가면서 3가지 부류로 나타났다.

(1) 일상 하든 예배 형식 이외의 어떤 것에도 반대하면서 심한 감정적인 표현은 종교에 해롭다고 하는 사람들. 이들을 “옛 빛”(Old Lights)이라고 부르며, 제일 과격하게 앞장선 목사가 보스톤의 챨스 초운시(Chareles Chauncy, 1705-1787)였다.

(2) 성격적으로 과격한 감정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로서, 제임즈 다벤포트(James Davenport, 1716-1757) 목사는 거친 행동으로 대각성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3) 열린 마음으로, 두 과격파들 사이에서 중도 노선을 취하려는 온건한 사람들. 이들을 “새로운 빛”(New Lights)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성운동 반대자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으며, 대각성운동에 대해 감사하고 있으며, 과격함은 하나님의 역사에 필요한 측면이 아니라고 느꼈다. 에드워즈 목사는 온건한 그룹의 지도자였으며, 많은 목회자들이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에 협조하여 대각성운동이 그 당시 영적 수렁에 빠진 교회를 되살리는 길이라고 인식했다.

 

7. 영적대각성운동의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견해:

조나단 에드워즈는 철저한 칼빈주의 목회자로 18세기 중엽 미국 뉴 잉글랜드에서부터 동부에 있는 13개주를 휩쓴 부흥운동인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의 중심인물이다. 그가 담임하던 코넥티켓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회심운동은 가는 곳 마다 “바른 교리의 부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칭의에 대한 강조, 깊은 죄의식, 즉각적인 회개, 극적으로 변화되는 삶” 등의 역사가 나타났다.

대각성운동에는 다른 중요한 역사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강력한 감정적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아주 격렬한 육체적 반응, 즉 기절한다거나 떤다거나 울부짖는다거나 충격을 받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어떤 때는 뛰거나 뒤틀리거나 춤을 추거나 무아지경에 빠지거나 입신을 하거나 환상을 보기도 했으며 웃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계속 웃어대기까지 하였다.

마틴 로이드-존스(Martin Lloyd-Jones, 1899-1981). 웨일스 신교 목사이며 의사로서 20체기 영국 복음주의 운동의 개혁에 영향을 줌)는 『청교도 신앙』(The Puritans)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놀샘프톤 부흥운동(Northampton 1740-1742)의 주역이며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함께 대각성운동을 주도한 사람이며 칼빈주의자며 회중교회주의자로서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력과 갑작스럽고 극적인 회심을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청교도 신앙』, 강서문역, 생명의말씀사, 1990, pp. 359-382 참조).

에드워즈는 언제나 사도 바울을 가장 닮은 거성으로서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성경을 인용하여 무서운 말을 하였기에 그를 “지옥-불 설교가(hell-fire preacher)”라고 불렀다. 그는 유능한 신학자였고 동시에 위대한 복음 전도자이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체험적인 신앙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았다. 그는 굉장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 빼어난 지성과 독창적인 사고를 가졌으나 언제나 영적인 것이 지적인 것을 통제하게 하는 목회자였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철학과 사변을 성경에 굴복시키고 성경이 최고의 권위임을 인정했다. 그는 “열정적인 경건과 심오하고 통합된 지성을 조화시킨 사람”이었다.

에드워즈에게는 참된 덕이나 거룩함은 본질적으로 머리(head)보다는 가슴(heart)에 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가슴(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탁월한 부흥 신학자요, 체험 신학자요, 가슴의 신학자라고 하고, 그에게서 성령으로 불타고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지성을 발견한다.

에드워즈는 “놀샘프톤 부흥운동 설명”(An Account of the Revival of Religion in Northampton 1740-1742)에서 1741년 5월 가정 집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고 있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회심한 몇 사람들이 눈에 보이게 몸에 힘이 빠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님의 위대하심, 영광의 감정, 영원에 대한 무한히 깊은 감동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감정은 곧 온 방에 퍼져서 많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주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의 감정과, 존귀, 사랑, 기쁨, 찬양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와 비참한 상태에 대한 비탄에 잠겨있게 되었다. 그래서 온 방안은 울부짖음, 기절 등의 현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어 기도하고 찬양하며 상담하며 협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해(1741) 여름, 에드워즈는 16세에서 26세 사이의 젊은이들을 집으로 불러 집회를 가졌다. 그 때 그들은 크게 감동을 받아 겸손, 자책, 자기혐오, 사랑, 기쁨 등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기절(쓰러짐, 입신, trance)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해 8월과 9월에는 죄인들의 회심, 위대한 부흥, 특별한 외적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집회 장소는 울부짖음, 기절(쓰러짐), 경련, 비탄, 감탄, 기쁨 등으로 충만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감동이 되어 육체의 힘이 빠져 집에 갈 수가 없게 되어 집회 장소에서 밤을 지내야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입신 상태에서 24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낮 집회나, 저녁 집회나 밤 집회나 할 것 없이 계속 일어났다. 이러한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새로운 세대, 즉 놀샘프톤의 어린이들의 마음에 놀라운 역사로 나타났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깨어났을 때 사단이 끼어들어 기회를 악용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가 요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에 의하면, 에드워즈는 정말 거의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체험을 했으며, 그러한 것들을 기록하고 시험했다. 에드워즈는 자기 아내의 놀라운 체험에 대하여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그 부인은 공중에 뜨는 현상도 경험했다. 문자 그대로 그녀 자신의 노력이나 애씀이 없이 방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졌다. 그는 또한 집회 때 사람들이 기절을 하고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도 기록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외적 현상에 대해 비판함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지도 말도록 경고하는 동시에 육체로 이끌림을 받아 사단에게 기만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사람들이 야성적이 되지 않도록 경고함으로써 그는 언제나 양편에 경고를 했다.

에드워즈는 개인적인 체험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느끼지 못한 것은 쉽게 의심하는 강한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특이하고도 경이로운 체험을 옹호하는 말을 다음과 같이 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에 들어가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강하고 유쾌한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 일종의 환상을 보고, 마치 자신이 하늘에까지 올라가 영광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한 일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에드워즈는 자기 아내에게 주어졌던 놀라운 체험들을 상세히 기술하고 평가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변호하고 있다.

“그러한 체험들이 광신이거나 병든 뇌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나는 내 뇌가 그런 병에 오래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것이 정신 착란이라면, 인간 세계가 이러한 자비롭고 온유하고 덕스럽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정신 착란으로 다 사로잡힐 수 있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는 에드워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성령 사역을 최고로 강조하지 않는 변증학은 철저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필요한 것은 성령의 기름 부어주심이다...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라고 말하고는 “온통 신학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성령을 소멸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대각성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1741년, 조나단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표지(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라는 글을 씀으로써 모든 복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적 분별력을 가질 것을 권고 하였다.

다음은 에드워즈가 쓴 영적분별에 대한 글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이 글의 서론에서 성령의 영향이 많은 것만큼 성령의 보편적이고 특수한 영향을 마귀가 흉내 냄으로써 가짜도 많다는 것이다. 그는 요한1서 4:1의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를 인용하면서 가짜를 경고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에드워즈는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성령의 진정한 역사가 무엇인가를 구분하는 증거를 제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우리의 안내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1항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 일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1)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일이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방법으로 수행되어졌다고 해서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교회가 해왔던 방식”에 근거해서 어떤 일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역사 하신다. 성경에 나와 있는 예언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2)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강렬하다고 해서”
인간의 육체에 나타나는 현상, 즉 눈물을 흘리거나, 떨거나, 신음소리를 내거나,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몸을 뒤틀며 비통해 하거나, 몸에 힘이 빠져 쓰러진다고 해서 그것만 보고 그 역사를 정죄하거나 성령의 영향아래 있지 않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즉 몸의 힘이 빠진다든가 몸을 뒤틀며 비통해 한다거나 심지어 큰 소리로 울부짖는 일들도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의 뛰어난 영광, 자신을 희생한 놀라운 사랑으로 진정한 영적인 사랑과 기쁨 같은 것이 충만할 때는 육체적인 힘은 축소되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누구에게 나타나던지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의 어리석은 자는 없다.

3) “사람들이 너무 소란하거나 동요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너무 소란하거나 동요되었다는 이유만 가지고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영적이며 영원한 일들은 너무 크고 무한 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동요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시대에도 성령이 임할 때 도처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4) “사람들의 상상력에 강한 인상을 심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황홀경 가운데서 강하고 즐거운 상상과 일종의 환상 가운데 몰입하여 마치 천국의 황홀경에 쌓여 영광스러운 광경을 본다고 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쟁론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은 선지자들이 본 환상이나 바울사도가 황홀경 가운데 낙원에 간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에 우리의 온 영혼은 너무나 황홀경에 사로잡혀 몸의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아 힘이 빠져버려 온 몸의 구조가 와해되어 버리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5)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한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수행하실 때 여러 가지 방편들을 다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특정한 수단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 일에는 하나님이 관여하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의 좋은 본을 보고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과도 일치하는 말이다.

6) “사람들의 행동이 경박하고 변칙적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박하고 변칙적인 행동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일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강렬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7) “사람들이 잘못 판단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잘 못 판단한다든가 심지어 사탄의 속임수들이 한데 섞여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 전체가 다 성령에 의해 행해진 일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무오하게 인도하실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영향아래 행동하는 사람이 어떤 일에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은총이 있는 곳에는 부패함도 따르는 법이다. 그러나 주관적 충동이나 인상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계시처럼 생각하고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둠으로써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8) “사람들이 오류에 빠진다고 해서”
만일 회심했다는 사람들이 엄청난 오류에 빠지거나 창피한 일을 행한다고 해서 그 일이 전반적으로 성령의 일이 아니라고 쟁론할 수는 없다. 가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어떤 역사가 진짜가 아니라는 증명은 될 수가 없다. 이런 일은 개혁의 때나 대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많이 있었다. 어떤 일에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령의 참 역사가 영광스럽게 수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9) “설교자들이 심판에 대하여 너무 강조한다고 해서”
영원한 위험(지옥의 고통)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율법은 함께 전파되어야 하나 율법은 복음을 위한 길을 닦는 일이다. 사역자의 주된 임무는 복음을 설교하는 일이다. 설교자가 율법의 공포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하면서 자신은 주님을 잊어버리고 복음 설교를 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그 사람은 많은 것을 놓치고 말 것이다. 그렇다 해도 율법에 대한 강조 없이 복음만 설교하게 되면 그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제2항

참 성령의 사역임을 증거 하는 분명한 성경적 증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외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은사가 성령의 역사임을 분별하는 분명한 성경적 증표로 궁극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결과(열매)가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1)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
2) 그것은 사탄의 관심사-세상-에 대하여 반대한다.
3)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안에서 자라가도록 만든다.
4) 그것은 진리를 높인다.
5)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닫게 하여 그 영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임에 틀림이 없다.

제3항

실제적인 추론:

1. 최근(그 당시)에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들 울부짖음, 비명, 육체의 힘이 빠지는 것, 불규칙적인 행동 등은 의심할 여지없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된 것이라고 감히 결론을 내린다.

울부짖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육체의 고뇌 속에 빠지는 것 등은 2종류가 있는데 (1)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이해하고 크게 비통해 하는 경우와, (2)주님의 위대하심, 기묘하심, 뛰어나심 등의 아름다운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 경우가 있다. 이런 고뇌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성을 가지고 완전하게 행동했다.

몸의 힘이 빠져버리는 것은 주님의 영광된 뛰어나심의 감정과, 또한 주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에 대한 놀라움과 동시에 사람들 자신의 외소 하고 비천하다는 자기혐오의 감정에서 된 것이다. 회심한 사람들은 사랑과 기쁨에 차서 눈물의 홍수에 젖어있게 된다.

오랜 세월동안 계속된 우주적인 영적 죽음 이후에 부흥운동이 나타날 때 무례하고, 불규칙적이고, 망상에 찬 행동 등이 나타나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지창조 때 단번에 완전한 세계를 만드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빛이 있어라”하고 말씀하신 후에 많은 불완전함과 어두움과 혼돈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2. 어떤 현상에 대해 결코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막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장려하라. 사도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령을 놀랍게 부어주셨을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혼란스럽고 정신 산만한 일로 보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들은 것으로 인해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놀랐던 것이다. 이사야 29:14의 말씀처럼 특별히 이해력 과 지혜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거부한 것이다. 경건하다는 자들이 그들의 형식주의적이고 미적지근 신앙 태도에 대한 책망을 받고 그들의 명예가 추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악의에 찬 반대를 하고, 하나님의 일을 악마의 일이라 비난하고, 그래서 성령을 거사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게 되었다.

에드워즈는, 만일 이러한 영적인 운동을 경멸한 어조로 말하고 악의에 찬 반대를 하는 자가 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3. 에드워즈는 자기와 함께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디도서 2:7-8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사역을 어둡게 할지도 모르는 어떤 과오나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우리의 최선의 방책은 겸손하게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며 영적인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엄격하게 자신을 감시해야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은사보다도 은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은사를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 지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모든 사도들 보다 환상, 계시, 기적의 은사가 많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뛰어난 영적인 지식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사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증표는 사도들이 받은 은총 때문이지 은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8. 맺는 말: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자

에드워즈 목사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록』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 초기 영적대각서운동에 대한 3가지 반응에 주의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첫째 반응은 영적대각성운동 자체를 이단성이 있다고 공격한 소위 “옛 빛” 계열로서 이단사냥꾼 챨스 초운시는 성령의 불을 소멸시키는 역할을 했다.

둘째 반응은 영적대각성운동의 성령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manifestation)을 강조하는 계열로서 제임즈 다벤포트 목사는 과격한 감정주의적인 면을 표출함으로서 대각성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셋째 반응은 영적대각성운동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는 “새 빛” 계열로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는 성령의 역사의 외형적인 형상도 감정주의적인 면도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지혜롭게 수용하였으며, 신학적으로도 증명하였다. “새 빛” 계열은 대각성운동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에 협조하여 대각성운동이 그 당시 영적 수렁에 빠진 교회를 되살리는 길이라고 인식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국교회에서 새로운 영적대각성운동이 일어나기를 함께 기도하는 일에 동참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미주 :

1) Christian History Vol. 8, No. 3, Issue 23, p. 6.
2) Ibid., p. 12. (Jonathan Edwards,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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