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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 기존교단의 쇠퇴와 신사도교회의 부상상황 탓이냐 제도 탓이냐-기존교단 쇠퇴의 원인은 잘못된 제도 탓이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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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1  01: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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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
 

기존 교단의 쇠퇴와 신사도 교회의 부상

-상황 탓이냐 제도 탓이냐-
 

필자는 오늘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새로운 운동을 단순히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성령운동(Holy Spirit Movemnet) 또는 굳이 다른 운동과 구별 지을 필요가 있다면 신은사운동(New Charismatic Movement) 또는 뉴패러다임 운동(New Paradigm Movement), 이런 교회를 성령운동하는 교회, 신은사운동 교회 또는 뉴패러다임 교회라고 부르고 싶다.
필자가 여기서 사용하는 신사도~라는 용어는 기존에 사용된 용어나 개념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지 그 용어 사용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오늘날 교회의 찬양은 어떤 모습인가?

새찬송가나 통일찬송가에 수록된 노래만 부르는 교회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절대다수의 교회가 찬양과 경배와 같은 컨템포라리(현대) 찬양을 하고 있다.

목사나 평신도 사역자 중에서 신유와 축사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대의 기적을 부인하는 기적중지론자들도 야고보서 5장14절을 인용하면서 신유기도를 인정한다.

많은 교회가 중보기도사역을 하면서 지역의 무당, 점집, 절 등을 허물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구역예배 형태가 발전한 셀교회를 통해 기존 교인의 성숙을 도모하고 불신자 전도를 실시하는 교회들도 많다.

전통적인 교회의 교인들 중에서도 방언은 물론 음성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놀라지 말라.
만일 당신의 교회가 이런 사역을 하고 당신의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런 교회나 신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위 말하는 신사도 교회이고 신사도 운동가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신사도 교회의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사도 직분이나 선지자 직분도 알고 보면 이미 기존 교단이나 교회의 목회자 또는 평신도 사역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기능(들)’(functions) 또는 은사(들)(gifts)을 신사도 운동가들이 직분화[office] 시킨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신사도 교회’, ‘신사도 운동’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성령운동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 이런 운동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신사도’란 명칭이 거슬려서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마저 태우려는 극단적인 태도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가 알기에는 왜그너 교수가 ‘신사도적’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신사도적 교회의 중요 사역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왜그너 교수가 신사도란 용어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미국에 거주하면서 성령운동의 각종 사역-찬양과 경배, 쓰러지는 현상, 중보기도와 영적전쟁, 음성듣기와 예언사역, 알파코스 셀교회 및 G-12 등의 사역에 익숙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왜그너 교수의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변동』(C. Peter Wagner, Churchquake)을 중심으로, 기존 교회의 교세는 하락하는 데 어떻게 해서 신사도운동 교회들은 성장하는가를 정리해 보았다. 이런 교회들은 이전에는 ‘신사도적 교회’라고 불려지지 않았다. 다만 왜그너 교수가 나중에 이런 교회나 운동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고심하다가 ‘신사도적 개혁운동’, ‘신사도적 교회’라고 부른 것이다. 이런 운동이나 교회가 먼저 탄생하고 난 후 작명한 것이지 작명하고 난 후부터 이런 교회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피터 왜그너 교수와 『21세기 교회의 지각변동』


미국 기존 교단의 쇠퇴와 신사도 교회의 부상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된 개신교는 원래 독일에서 루터교회, 영국의 국교회(성공회),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 화란에서 개혁교회란 이름의 국가교회 형태로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다가 1620년 메이 플라워를 타고 미국에 온 영국의 칼뱅주의자들이 회중교회-나중에 침례교회로 갈라짐-를 시작하면서부터 정교분리 정책을 지향하는 미국에서 회중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와 같은 교단 형태를 띄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단도 기독교 역사에서는 겨우 500년 미만의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00여년 전에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교회가 설립되면서 지금까지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및 순복음교회(하나님의 성회)가 한국의 주요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


교단정치 제도를 가진 미국의 개신 교회들은 20세기까지는 그런대로 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65년에 접어들자, 미국의 주류 교단들-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등-은 역사상 처음으로 교세 감소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후 25~30년 지나자 교세는 지속적으로 감소되었다.

1968년→1994년→2011년 (단위 : 만 명)
남침례교. 미세한 감소
연합감리교(UMC). 1100→840→774
미국장로교(PCUSA). 420→370→277
성공회. 340→250→200

 

갤럽 여론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974년 미국 개신교 기존 교단의 성도 수가 51%였는데 1994년에는 35%로 하락했다. 반면에 “다른 개신교인들”(other Protestants)은 9%에서 24%로 증가했다. 다른 개신교인들에는 오순절파도 포함되는데, 오순절파 또한 1990년대에는 성장세가 주춤하고 이 기간 동안 왜그너 교수가 신사도적 교회라고 부르는 교회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신사도적 교회
 

왜그너 교수는 신사도적 교회를 4 그룹으로 나눈다.

미국의 독립교회 및 교단 내의 은사적 교회들. 빈야드 교회연합, 갈보리 교회연합, 윌로우크릭 교회연합, 새들백 교회연합, 포스퀘어교단의 처이 온더웨이(잭 훼이포드) 등. 이중 갈보리 교회, 윌로우크릭 교회 및 새들백교회는 비은사적이고 나머지는 모두 은사적 교회들인데 숫적으로 볼 때 전자는 20%, 후자는 80% 정도이다.

남미의 풀 뿌리 교회들. 외국 선교사가 설립한 교회가 아니라 남미 본토인이 설립한 교회들이다.

아프리카의 독립교회들. 서구의 선교사가 아니라 아프리카 본토인이 자기들의 문화에 맞게 설립한 교회들이다.

중국의 가정교회들.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가정교회들이다

『기독교백과사전, 2001』의 편찬자인 데이빗 배렛에 의하면, 2007년 현재, 전 세계 개신교 인구를 11억 6174만 명으로 추정하면서 이를 천주교를 포함하여 6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여기서 천주교 통계는 생략한다.)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Independents). 
  (4억3767만 명)

• 전통적 개신교 교단그룹(Protestants). 3억8581만 명.
•  러시아·희랍 정교회그룹(Orthodox). 2억2048만 명
• 영국성공회 그룹(Anglican). 8263만 명
• 기타 소수그룹(marginal Christians). 3513만 명을
  (소계. 7억2405만 명)

데이빗 배렛은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을 ‘신사도적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사도적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그룹의 전체 성도 중, 은사적 성도를 10%만 잡아도 7240만 명이고 약 30%로 추정하면 2억 1721만 명이다. 이를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과 합하면 전 세계의 은사적 성도는 6억5488만 명으로서 전체의 56%에 육박하는데 계속 증가일로게 있다. 신사도적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이슬람교 증가율을 능가하는 유일한 기독교 집단이라고 배렛은 말한다.

 

기존 교단 교세의 하락의 원인
 

기존 교단의 교회성장학자들은 교세 감소의 원인을 상황적 요인(contextual factors)이라 결론지었다. 상황적 요인이란 사회, 정치, 교육, 경제, 문화, 국제 밑 과학의 발달과 같이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인 때문에 교인이 줄어든 것이므로 교회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왜그너 교수처럼, 교세 감소의 원인은 상황적 요인 보다는 경직적이고 관료적인 교단의 제도적 요인(institutional factors)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기에는 소수의 의견에 불과했다. 따라서 13년 동안 기존 교단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자 다수의 생각이 바뀌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도적 요인이 교세 하락의 핵심적 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교단 교세 하락의 제도적 요인들의 7가지 특징


왜그너 교수는 기존 교단 교세 하락의 제도적 요인 7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1. 교단 시스템의 문제 부인
대부분의 교단 지도자들은 자기 교단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존 교단 내에는, 교세 증감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복음을 전하고 고수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므로 교세 감소가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2.  자유주의 신학
교세가 가장 큰 남침례교단을 제외한 미국의 대부분의 주류 교단은 자유주의 신학을 채택하고 있다. 보수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교단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자유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교단의 교세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3. 지나친 관용
자유주의 신학은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진지한 믿음은 그 자체로 타당성, 진실성 및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4. 잘못된 우선순위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주류 교단은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명령 보다 사회정의 실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전성기는 1960년대인데 이때부터 교세 하락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사회정의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잘못 두었기 때문이다.

5. 전도에 대한 혐오감
전도와 같은 회심활동은 불신자를 기분 나쁘게 한다면서 전도 자체를 혐오하거나 싫어한다.

6. 성장에 대한 회의
교단의 지도자 중에 수준 높은 교회는 성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 그 결과, 어떤 교회가 급성장하면 그 교회는 무엇인가 잘못된 교회라고 생각한다.

7.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에 대한 불신
일반적으로 기존 교단의 지도자들이나 신학교 교수들은 위원회나 당회 또는 운영위원회를 통한 집단 지도 체제를 선호한다. 권한이 카리스마틱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싫어한다. 기존 교단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비전을 추진하는 강력한 지도자들 싫어한다.
 
 

21세기에는 새 부대와 새 포도주가 필요하다


미국 연합감리교 소속의 저명한 교회성장학자인 라일 샬러(Lyle Schaller)는 1994년 “기존 교단에 장래가 있는가?”라는 보고서에서,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제도적 요인이 교세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담는 그릇을 급진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기존의 낡은 부대를 수선하는 것보다 새 부대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샬러는 주장했다.

왜그너 교수에 의하면 신사도적 교회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누가 새 포도주 역할을 할 것인가?
 

1. 신사도적 교회들
라일 샬러는 신사도적 교회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신사도적 교회야 말로 새 포도주 역할을 하는 교회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2. 기존의 주류교단에서 새 포도주 역할을 하는 교회들
비록 교단 내에서 환영을 받지는 못하지만 이런 역할을 하는 교회들이 있다. 호주의 하나님의 성회 교단은 교단 전체를 신사도적 교회 형태로 바꾸었다.


3. 새로운 형태의 교회연합

(1) 교단 내의 교회연합
동일한 교단, 동일한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기존 교단의 좋은 전통은 유지하면서 단점을 시정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연합회를 구성한다. 핵심 지도자는 주로 대형교회의 목사인데 물론 교단의 기존 지도자들이 이런 모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2) 교단 간의 교회연합
20세기의 50~60년대까지는 교단 임원이 활동의 중심이었지만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20년은 대형교회의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

(3) 지역교회 연합
지역의 대표 교회가 중심 역할을 하는데 교단 활동 보다는 사역의 동질성으로 인해 맺어진 지역 교회와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새로운 교회’의 명칭


왜그너 교수는 새로운 교회운동의 명칭에 대해 상당히 고심한 것 같다.

그가 고려한 명칭들은 다음과 같다.
 

1. 탈 교단 교회(Postdenominational Churches)
그러나 기존 교단인 포스퀘어 교단 내에서 신은사운동을 주도해 온 잭 훼이포드 목사는 ‘후기 교단’이란 용어를 심각하게 비판했다.
 

2.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es)
신은사운동 교회지도자들은 그들이 ‘독립적’(independent)이 아니라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이라 생각한다.
 

3. 은사교회(Charismatic Churches)
남미에서 ‘은사교회’라고 하면 성령운동 하는 천주교회란 인상이 강하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윌로우크릭교회, 새들백교회, 갈보리교회처럼 비은사적인 사도적 교회들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은사 교회들이 비은사적인 교회들과의 유대 관계를 갖기 위해 ‘은사적’(Charismatic)이란 단어 사용을 중지했다.
 

4. 회복교회(Restoration Churches)
1880년대 케인리지 부흥운동의 지도자인 바톤 리지가 설립한 ‘그리스도 제자 교회’ 교단은 자기들이 ‘회복 교회’란 이름의 소유주라고 생각한다.
 

5. 풀뿌리 교회(Grassroots Churches)
제3 세계에서 토착민에 의해 생성된 교회를 말하는데 외국 선교사 개척한 교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6. 신 교단교회(Neo-Denominational Churches)
교단을 운동, 친교단체, 협회, 네트워크, 또는 가족이란 생각하면 새로운 교회는 새로운 교단교회가 될 수 있다.
 

7. 새 패러다임 교회(New-Paradigm Churches)
“주류교단의 교세는 하락하지만 ‘뉴 패더다임 교회’는 성장하기 때문에 미국 교인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도날드 밀러가 사용한 용어이다.
 

8. 다음교회(The Next Church)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유럽의 전통과 관습이 폐기되고 새로운 형태의 예배와 소속감이 강조되는 교회가 바로 다음 세대 교회이다.


왜그너 교수는 이러한 여러 가지 명칭을 고려한 후 이런 교회를 ‘신사도적 교회’ 이런 운동을 ‘신사도개혁운동’이란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왜그너 교수가 사도적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미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어빙파들이 사용했고, 100여년 전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교단에서 ‘사도 교회’란 명칭을 사용했으며, 1906년 로스 엔젤레스 소재 아주사 거리에서 부흥이 일어난 사역원의 원래 명칭이 ‘사도믿음복음 선교회’이고, 아프리카의 독립교회에서는 ‘사도’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왜그너 교수의 관심을 끈 직접적 계기는 1995년 넷팩스(NetFax)라는 잡지가 “신사도적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었다. 거의 동시에 호산나 크리스천 펠로우십 교회의 에드 델피 목사가 섬기는 교회들의 이름이 “사도적 교회(들)”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적’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그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윌로우크릭교회나 새들백교회는 제외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1996년 초에 결정적 계기를 맞이했다. 왜그너 교수는 조지 헌터가 쓴 『비교인들을 위한 교회』라는 책의 출판 전 원고를 받게 되었다. 헌터는 그런 교회를 ‘사도적 회중’(apostolic congregations)이라 불렀다. 왜그너 교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친구이자 아즈베리신학대학원(감리교 계통) 학장인 헌터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도적 교회’란 용어 사용 허가를 공식적으로 받아내어 사용하게 되었다.
 


변화된 패러다임 


새 패러다임 교회, 신 은사적 교회 또는 신 사도적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도날드 밀러가 꼽은 ‘새 패러다임 교회’의 12가지 특징(Reinventing American Protestantism. 빈야드교회, 갈보리교회, 호프교회 연구 결과)

-그들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설립되었다.
-교인 대부분의 출생연도가 1945년 이후이다.
-목회자의 신학대학원 교육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다.
-예배는 현대적이다.
-평신도 리더십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소그룹 활동이 다양하다.
-목회자와 신자들이 정장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 취향의 상이성이 존중된다.
-목회자가 말이 적고, 겸손하고, 자신(의 약점)을 잘 드러낸다.
-인식적인 예배보다 몸을 사용하고 적극 참여하는 예배가 규범이다.
-성령의 은사(들)가 인정된다.
-성경중심이 가르침이 주제별 가르침 보다 우선한다.

 

조지 G. 헌터 3세가 꼽은 ‘사도적 회중’의 10가지 특징(아즈베리 신학대학원 교수·학장)

-충실한 성경적 내용
-진지한 기도
-잃은 영혼에 대한 긍휼한 마음
-전도 대명령에 대한 순종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
-목표 인종을 위한 문화적 적응
-소그룹 활동
-활발한 평신도 사역
-모든 신자가 평신도로부터 목회적 돌봄을 받음
-비신자를 위한 다양한 사역

 

엘머 L. 타운즈가 꼽은 8가지 특징(리버티 신학대학 교수)

-대형 교회
-가족적 분위기지만 소외되지 않음
-사회적 경제적 계층 초월
-은사적인 목회자가 지도
-독립적이자 상호의존적인 교회
-신약중심의 편향된 신학
-하나님의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한 열망
-신학이 아니라 방법으로 연결됨
 (*전통적인 교회가 교리 중심인 것과 대조-역자 주)

 

피터 왜그너가 꼽은 신사도 교회의 현저한 특징

1. 새 이름. 이름하여 신사도적 교회이다.
2. 새로운 권위 체계. 관료적인 권위에서 개인적인 권위로, 법적인 구조에서 관계적인 구조로, 통제에서 협조로, 이성적인 리더십에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전환되어 있다.
3. 새로운 형태의 사역자 훈련. 잘 훈련받은 자발적인 평신도 사역자들이 흘러 넘친다. 이들을 위한 교육은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통해 실시된다.
4. 새로운 사역 초점. 비전 중심적이며 미래 지향적이다. 굳이 과거를 따진다면 이들은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5. 새로운 예배 스타일. 현대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며 예배의 자세 또한 자유롭다. 소수의 연주나 독창자는 보기 힘들다. 회중 전체가 찬양자이자 예배자이다.
6. 새로운 형태의 기도. 예배 중 전 회중이 통성으로 기도하는 합심기도를 많이 한다. 또한 이들은 기도행진, 도보기도, 기도여행 등을 하거나 마귀의 세력들을 대항하는 영적 전쟁을 위한 중보기도에 역점을 둔다.
7. 새로운 모습의 재정. 전통적인 교회에 비해 재정적으로 풍부하다. 이런 교회에서는 헌금 많이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8. 교회 개척을 통한 전도. 잃은 영혼, 상처 받은 영혼에 대한 전도나 선교가 활발하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나를 축복하라"는 증후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불쌍하고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 사역도 활발하게 전개한다. 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본을 보인다.
9. 새로운 능력 사역. 교회성장의 기술적인 측면은 물론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에 개방되어 있다.
10. 셀 교회로의 전환. 많은 신사도적 교회는 셀 교회로 급전환하고 있다.

 

피터 왜그너가 대조한 옛 방식과 새 방식
 

-구세주로서의 예수에서 주님으로서의 예수로
-어린 양 예수에서 (유다의) 사자 예수로
-십자가에서 면류관으로
-칭의에서 성화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물 세례에서 성령 세례(체험)로
-광야의 삶에서 요단강은 건너는 삶으로
-말로 하는 기도에서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로
-악을 부인하고 무서워하는 것에서 영적 전쟁으로
-상담에서 축사로
-훈련에서 기름부음으로
-죄책감에서 죄에 대한 승리로
-(형식적) 예식에서 즉흥성으로
-성가대 찬양에서 성령 안의 찬양으로
-파이프 오르간에서 키보드로
-찬송가에서 찬양과 경배송으로
-스탭(목회자) 중심의 목회에서 몸(공동체)의 목회로
-예상에서 예언으로
-말하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고 듣는 것에서 분별하는 것으로
(옛 방식과 새 방식은 상호보완적이지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옛것의 좋은 것을 유지하면서 새것의 좋은 것으로 보완 또는 대체해야 한다-필자 주)

 

한국 교회의 경우
 

한국 교회도 1990년 이래 계속 침체 상태에 있다. 2005년 정부통계 기준 한국의 개신교인은 870만 명이었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이단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전문가들은 150~250만 명 정도를 이단으로 본다. 그렇다면 개신교인의 숫자는 2005년 기준으로 볼 때 620~720만 명에 불과하다.

더욱 불길한 소식은 지금 추세라면, 10년 마다 1%씩 추가적인 교회 이탈이 지속될 경우,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한국 개신교 인구(이단 포함)는 2060년 경에 550만 명, 2060년 경에 순수 기독교 인구는 300만 명대로 감소할 수 있다고 한다 (최윤식,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

교세 하락의 상황적 요인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 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제도적 요인은?

 

1. 교단 시스템의 문제 부인
 

한국 교회는 대부분이 교세 확장에 열심이다. 그러나 교단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관료적, 형식적, 전통지향적 교단 시스템의 보완이나 재정비가 필요하다.

 

2~3  자유주의 신학과 지나친 관용
 

신학과 신앙 모두 자유주의 성향인 기장 측의 대부분을 제외하면 한국 교회는 비록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더라도 보수 신앙을 견지하는 사람 많다.

 

4. 잘못된 우선순위
 

한국교회 중에서도 사회정의 실현을 영혼 구원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교회나 단테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영혼구원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그러나 보수교회에서는 사회정의 실현에는 미온적인 교회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5. 전도에 대한 혐오감
 

전도를 잘 하지 못해서 문제이지 전도 자체를 부인하는 한국 교회는 드문 것 같다.

 

6. 성장에 대한 회의
 

한국 교단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교세 성장을 염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 카리스마틱한 리더십에 대한 불신
 

현실적으로 볼 때 교회를 개척한 설립자는 직•간접적으로 카리스마틱하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나 일단 후계자 바뀌면 당회나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행정가를 선호하면서 성장 보다는 수성에 힘쓰는 교회가 많다. 한편 교회성장은 원하면서도 온순하고 현상유지적인 행정가형 목사를 선임하는 교회도 많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 교회는 상황적 요인, 제도적 요인에 더하여 교리적 요인 및 리더십 요인 또한 개신교 성장 정체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교리적 요인



물론 미국에서도 은사적 교회를 비판하는 존 맥아더, 행크 해네그라프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은사적 교회의 층이 워낙 두텁고, 이제는 반대자들을 대항하는 은사주의 학자들-웨인 그루뎀, 로드만 윌리암스 등-의 층도 두텁다. 또한 남미, 아프리카, 중국에서는 기존 교단의 기득권이나 교리적인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장로교 절대 우세의 나라인데 아직도 기적중지론에 젖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성령의 새로운 사역이 소개되어 싹을 좀 피우기 시작하면 반대자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서 교리적 명분의 집중포화를 퍼부으면서 성령을 소멸한다. 명분은 교리지만 실제는 교인 이탈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더 크다.

 

또한 교단 내에서도 새 패러다임교회 방식을 도입하여 성장을 도모하는 교회가 많지만 이단 시비 열풍이 불어 닥치면 교단 차원에서 유사 사역금지, 교류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성장의 불꽃이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교리적 문제로 인한 것이다.

 

대표적인 갈등 관계에 있는 교리는 무엇인가?

 

필자가 아래에 제기하는 신학적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중요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기적중지론에서 기적지속론으로. 현장 사역 경험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에 중지되었다는 기적중지론을 고수한다. 그러나 현장 목회자나 사역자들 중에서는 기적지속론을 따르는 사람이 많다.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학이 잘못된 것이다.

 

구속사적 해석의 부족함을 모범적 해석으로 보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증거하는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과 사도는 신앙 인격과 사역의 모범이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사도를 포함한 성경 인물들을 신앙인격의 본으로는 여기지만 사역의 본으로는 여기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런 것을 시정해야 한다.

 

좌뇌신학과 우뇌신학의 조화, 이성과 감성, 경험과 교리, 듣는 복음과 보는 복음. 개혁신학은 이성시대, 계몽주의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21세기는 감성시대, 경험시대, 직관시대, 영상시대이다. 신학도 상황에 맞추어 재정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동시에 사랑이 하나님이시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하고 엄숙해야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는 기뻐 뛰면서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한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통회자복하고 회개해야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는 희락과 환희를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리더십 요인-윤리도덕적 요인



대형교회 목회자의 성추행, 공금횡령 및 논문표절 사건, 중대형교회의 세습, 교단 총회장 선거의 비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현장의 목회자나 성도들은 전도의 문이 쾅쾅~ 닫히는 것을 절감한다. 또한 신학교의 난립과 목사의 양산으로 인해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이 윤리도덕적인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한국 교회에 대한 제언

 

한국에서는 아직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독립교단의 교세는 약한 편이고 교단 소속의 교회에서 신사도 교회의 사역을 도입하여 잘 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장로교의 온누리교회는 은사적 교회로, 사랑의교회는 비은사적 교회로 뉴패러다임 교회의 선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역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해 오던 것이며 지금도 수많은 교회들이 이런 사역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신사도적 교회와 그런 교회에서 실시하는 사역이 그렇게 많은 사람의 비판과 관심을 끄는가? 왜그너 교수가 이런 교회를 ‘신사도적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한국에서도 공개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이란 명칭으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사도’ ‘선지자’ ‘사도적~’란 명칭을 사용한 것에 가장 큰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본다. 개신교에서 오랫동안 금기사항처럼 여겨졌던 ‘사도’나 ‘선지자’란 명칭을 갑자기 너무나 쉽게 공공연하게 사용하고 있느니 많은 사람들의 심기가 편할 리가 없다. 사도와 선지자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여기에서는 신사도적 교회의 성장과 기존 교단 교회의 하락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았다.

 

미국이나 전 세계의 교계 현황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교세가 하락하는 교회는 전통적 교단중심의 교회이고 교세가 성장하는 교회는 대부분이 비전통적 독립교회연합 및 신사도적 교회들이다.

 

이러한 현실과 추세를 한국 교회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전통적인 신학체계와 교단체계를 성우(Holy Cow)로 여기고 비판적 적대적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 아니면 건설적 비판과 수용적 자세를 취할 것인가?

 

실제로 현장 목회자나 사역자들은 교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신사도적 교회 사역의 많은 것들 즉 찬양과 경배, 알파코스, 셀교회, G-12, 중보기도와 영적전쟁, 치유사역, 임파테이션 사역 등을 도입하여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 신학에 젖은 교단에서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잘 모르는 몇몇 강성파의 주장만을 믿고 성급하게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여 그런 사역을 하는 소속 교회에 경고와 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성령이 소멸되고 성장세가 꺾이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아직 이런 일로 인해 교단 이탈 현상은 드물지만 기존 교단이 제도적 요인과 신학적 요인을 수정하지 않고 이런 강경책을 계속 펼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를 일이다. 목회자들의 소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양적 성장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성장을 가로막는 제도적 요인과 교리적 요인은 경직되고 잘못된 인위적 요인이다. 울타리를 쳐서 교인 이탈을 방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모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제도, 잘못된 교리 및 잘못된 리더십 요인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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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사랑합니다
(2014-05-07 15: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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