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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구원05] 당신의 구원은 안전한가?(2)
구요한 목사  |  jk054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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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8  21: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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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구원05]

당신의 구원은 안전한가?(2)

-신자라도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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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한번 구원 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살든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이 한국 교회에 팽배해 있다. 나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으므로 천국 가는 티켓은 따 놓았으므로 사는 동안에는 지상적 축복이나 풍성하게 받거나, 아니면 초자연적 체험을 많이 하고 기적행하는 은사를 행하는 것이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해 있다.

 

필자는, ‘나는 예정 되고 선택 받았으므로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서 성직을 노골적으로 매매하는 목회자도 목격했다. ‘나는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했으므로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목격했다.

 

과연 그런가? 성경을 다시 보자.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3-5).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1).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4-16).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2-14).

 

몇 구절만 살펴봐도 하나님은 죄로 인해 타락한 사람을  ‘거룩하고 흠이 없이 하시려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 주신다(이신칭의). 타락한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므로(사 64:6) 인간의 어떠한 선행도 하나님의 의-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올림픽 수영 선수라도 태평양 한 가운데 떨어지면 혼자 힘으로 헤엄쳐서 육지로 나올 수 없는 것과 같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에 힘입어 죄인은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구원 받은 신자는 이제 성령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요, 성화의 삶이요, 구원의 목적이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목회자나 평신도는 애초에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인가, 구원은 받았지만 탈락선(線) 근처에서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선행이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끼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부모에게 열 자식이 있으면, 부모는 잘 되는 자식 보다 못 되는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간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하나님은 전능하고 전지하시기 때문에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식같이 관심을 갖고 대하신다.

 

하나님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친밀하신 분

 

하나님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 분이다.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1-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미물 같은 한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라면 왜 하나님은 늙은 욥을 따라다니면서 연단하시고 시험하실까?(욥 7:17-21) 필자도 욥 정도는 아니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을 당하면서 욥과 같은 고백을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다 보면, 성령 하나님은 내 마음의 생각, 말, 행동 하나하나가 말씀에서 벗어나면 성령의 근심과 시기와 책망으로 인도하시고(엡 4:30; 약 4:4; 요 16:8-9),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추구하면 기쁨과 평안으로 채워주신다(빌 4:6-7; 살전 5:6; 벧전 1:8-9).

 

만일 하나님 앞의 이런 영적 민감성을 자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는 상관 없는 율법주의 신앙생활을 하거나 신앙에서 아주 멀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연인이나 동료처럼 한 개인과 늘 친밀하게 동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영생 및 칭의는 구원의 여러 국면을 말하는 것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을 영혼 구원이라 하지만 복음서는 하나님 나라, 요한복음은 영생이나 생명,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는 칭의로 표현한다. 이런 주장은 김세윤이 『칭의와 성화』에서 최초로 강조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신약학자들도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니다. 현세는 여전히 죄와 마귀가 성령의 능력을 입은 신자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는 주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영생 또는 생명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서 신적 생명을 누린다(요 5:24-29). 그러나 완전한 영생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바울이 말하는 칭의도 마찬가지다. 예수를 믿는 자는 칭의된 자이고 칭의가 주는 양자됨과 성화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린다. 그러나 이 칭의도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한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2-14).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고전 9:27을 상급 받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사도 바울이 상급 좀 못 받는다고 해서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할까? 바울은 열심을 내어 많은 사람을 구원했지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이유는 자기도 구원에서 떨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영생 또는 생명 및 칭의는 구원을 표현하는 비유 또는 그림 언어다. 그러므로 칭의 하나만 쏙 빼서 단회적이고 영원하다고 하는 주장은 구원을 말하는 성경의 다른 그림 언어와 상충된다. 하나님 나라와 영생은 ‘이미’(already) 와서(가져서) 현재 누리지만 ‘아직은 아니고’(not yet), 미래에 완성될 것들이기 때문이다.

 

칭의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경에 의할 때, 신자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현재), 현재 구원을 받아가고 있고(현재),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구원의 완성을 받을 것이다(미래).

 

그런데 이 구원은 과거에 한번 받은 것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완성되어야 한다. 미래의 완성은 현재의 삶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신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는 권면과 경고가 많다. 진정한 신자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다. 이것은 공로적 행위(행함)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로서의 행함이다.

 

 

성화를 강조하면 행위 구원론자?

 

예수님의 옆의 강도는 신앙 고백 한번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행함(행위)이 있어야 구원 받는 주장을 행위 구원론이라 비판하는 전통적 구원론자들이 많다. 그러면서 비판자들은 ‘진정 구원 받은 사람은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믿음의 열매’는 무엇인가? 그들이 비판하는 행위 구원론자가 말하는 믿음의 열매와 별 다른 것이 없다.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신자가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은 애초에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일시적 믿음’을 가진 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 교회 안에는 구원 받지 않은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 보다 더 많다고도 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받은 사람의 표징(signs)와 거리가 먼 ‘신자’ 아닌 ‘교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옆의 구원 받은 강도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한 번 구원 받은 사람도 행위의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신 구원론의 주장에 반발한다. 임종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는 사람도 강도처럼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생전에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천국 상급도 없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 강도가 세상 죄에서 사면되어 오래 동안 지상에서 살다가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실한 신자로 살다가 죽었을까, 대도 조세형처럼 은혜를 간증하다가 나중에 도둑으로 돌아와서 죄 짓다가 죽었을까? 후자일 공산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강도는 지상에서 오랜 산 것이 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 옆 강도의 믿음은 예수님이 인정해주셨다. 행함은 없었지만 진정한 믿음을 통해 내면에 속사람이 탄생한 사실을 예수님이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은 누가 인정해 줄 것인가?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그 믿음이 진짜라고 누가 증거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진짜 신자라면 다음의 표징들(signs)을 보이면서 열매들을 맺어가야 한다.

 

-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신다(롬 8:16).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마 22:37-40).

-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한다(예배, 말씀, 기도, 찬양 등)(롬 7:16-23).

- 세상 풍조가 아니라 하나님 뜻 행하기를 좋아하고(순종)(롬 12:2), 육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고(갈 5:17-23),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간다(엡 4:22-24).

-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히 2:14-16).

- 목회자나 주변 동료들이 그의 언행을 통해 그가 ‘진짜 신자’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외에 하나님 나라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기적행하는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는 일(고전 14:1), 가족 및 이웃과 관계천국을 누리는 일(롬 14:17; 엡 5:21-6:4),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충성스럽게 섬기는 일, 불신자를 전도하고 약자를 돌 보는 일, 건전한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불의한 사회 문제 개선에 적극 동참하는 일 등이 믿음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사람 믿음 좋다’고 할 때는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시험과 환난과 풍파와 연단을 통과할 때 드러나는 그의 언행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성경 지식 많고 믿음 좋다고 하다가도 이런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의 언행을 보고 ‘그 사람이 아는 것은 많은 데 믿음은 없다(작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런 언행에 의해 믿음을 분별하는 것이 행위 구원인가?

 

 

믿음이 있다고 하여 교회생활은 잘 하지만 상습적 성추행,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집착, 원수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술과 담배에 찌들고, 세상에서는 거짓과 불법적 행위를 밥 먹듯 저지르는 사람을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고전 6:9-10; 갈 5:19-21) 한국 교회는 교회생활 잘하는 ‘교인’은 많이 양산했지만 신앙생활 잘 하는 ‘신자’ 양육에는 소홀했기 때문이 아닌가?

 

 

결국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라면, 내주하시는 성령의 증거, 본인의 확신 및 행함의 열매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그런데 타인에 의해 증거될 때는 행함의 열매로 분별된다(야고보서 참조). 성경도 행함(행위)의 열매로 믿음의 진정성을 분별한다는 구절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9-10).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1-22, 26).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천국의 모습이 필자의 구원관에 영향을 끼쳤다

 

지난 글에서 필자의 구원관이 바뀐 두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는 주변 사람들의 비판과 권유, 둘째는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과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의 불일치였다. 세번째 이유는 필자가 본 유명 목회자들의 천국의 모습과  많은 사람들의 천국·지옥 간증의 영향이다.

 

필자도 천국·지옥 간증책이나 동영상을 더러 봤지만 그런 것을 잘 믿지 않는 타입이다. 그런데 신성종 목사의 『신성종의 내가 본 천국과 지옥 책』을 보고-물론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이전에 보았던 캐서린 백스터의 천국·지옥 간증 책과 다른 책들 및 유튜브 동영상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사실 필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집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천국 집을 보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필자도 남들 못지 않게 나름대로 하나님 나라 일에 열심이고 수많은 어려운 순종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보이는 사역은 지지부진하여 갈등에 쌓여 있을 때였다.

 

우연히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기도 중에 하나님께 천국 집 좀 보여달라고 했다. 그리고 깜작 놀랐다. 천국 집이 기가 막히게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성경 말씀 그대로 내가 지상에서 수고했지만 열매를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 천국에서 상급으로 그대로 쌓여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호기심이 나서 이러 저런 유명 인사들의 천국 집도 보여달라고 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이 세상에서 큰 사역하여 사람 영광, 세상 영광을 많이 누린 사람들의 천국 집은 형편 없었다. 성경 말씀 그대로였다.

 

지금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 대형교회 목사는 생전에 은사사역을 크게 두 번 대적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지만 죽기 전에 병치레를 하면서 회개했는지 겨우 구원을 받아서 천국 변두리에서 집도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가 지옥 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대형교회 목사는 사랑도 많고 헌신적이었지만 말년에 사역 욕심을 내는 바람에 많은 상급을 까먹고 집도 없이 천국 변두리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실 정도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구원 받은 백성들이 말씀 대로 살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무서운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도 천국 본 것을 마지 못해 제3자로 표현하는 겸손을 보였고(고후 12:1-5), 성경을 보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사람을 파송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눅 16:31), 천국 간증을 폄하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천국·지옥 간증은, 누가복음에서처럼 불신자를 향한 경고가 아니라(눅 16:19-31) 교인을 향한 경고성 간증이 훨씬 더 많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개인 차원에서 자신의 천국 입신 체험을 간접적으로 기록했지만 이후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천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한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초자연적 체험만 언급하면 위험하다면서 반발한다. 그렇다면 매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자동차 타지 말고 자전거 타자는 주장은 왜 하지 않는가? 그리고 진짜가 있으니 가짜가 있는 것이다. 가짜가 있으니까 진짜를 부인한다면 가짜 기독교가 난무하니까  진짜 기독교를 부인해야 하는가?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건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학자도 있는데, 그렇다면 성경만 보고 신앙생활 하면 되지 왜 목사들이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시키며, 성경만 보면 되지 왜 신학교를 다니고, 성경만 보면 되지 왜 외국 가서 비싼 돈과 시간 들여서 신학 학위까지 따는가?

 

핵심은 천국·지옥 간증 자체가 아니라 내용이 성경적이냐 아니냐 이다. 천국과 지옥 내용이 성경에 있지만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필요하시기 때문에 그 주제를 강조하시고 드러내어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시는 것이다.

 

물론 간증자들이 자기가 보고 들을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 이중에서 신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것들도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신학으로 환상이나 꿈을 전하고 다른 신학파들은 다른 신학의 관점에서 전한다. 온전한 성경도 교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므로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성경 기록이나 성경 가르침과 벗어나는 극단적인 것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가는 말

 

정리하면, 구원의 주도자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사람에게 허용하셨다. 주권파는 구원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택권을 허용하셨으므로 거부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무흠한 아담에게 타락하거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의지-자유선택권-을 허용하신 것처럼 구원 받은 신자에게도 타락하거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허용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용하신 자유선택권을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설명해야 하나님이 구원 받을 수 있는 모든 여건-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성령과 말씀을 통한 복음 전파 등-을 갖추시고 적극적으로 구원으로 초청하시지만, 자유 선택권을 사용하여 구원의 기회를 거부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셔도 하나님의 사랑이나 공의와는 전혀 상관 없이 당사자의 책임 하에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중시하고 사람의 자유의지를 약화시키는 칼뱅주의의 단점과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시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아르미니안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자유의지, 자유 선택권을 주셨듯이, 타락 후에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셨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을 받은 신자라도 성령과 말씀의 인도하심을 통해 믿음을 끝까지-개인적으로는 죽을 때까지-지키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는 영원한 구원, 영생의 축복을 누린다.

 

 

그러나 시험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지 못하여 중도에 믿음에서 떠나거나, 성경이 금지한 죄들을 지속적으로 짓거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거나(계시록 7교회에서 주님이 요구하신 “이기는 자”), 맡기신 소명을 충성스럽게 이루지 못하면 구원에서 탈락될 수도 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성경이 말하는 이루어가는 구원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 5:12; 6:10,21 등).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한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이기지 못하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 즉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
    (*어떤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가 ‘천국의 변두리’라고 하는데 천국에는 어두운 곳이 없다.
    또한, 천국에서 분통이 나서 이를 갈고 슬피 우는 자가 있는가? ‘바깥 어두운 데’는 ‘지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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