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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구원04] 당신의 구원은 안전한가(1)신자라도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
구요한 목사  |  jk054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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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9  19: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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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구원04]

당신의 구원은 안전한가?(1)

-신자라도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

   
 

“하나님께 선택 받고 예정된 사람은 사람을 천 명 죽여도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장로교 입장).

“한번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살인이나 간음,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침례교 입장).

“구원 받은 신자라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아는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떨어질(탈락할) 수 있습니다.”(감리교 및 성결교 입장).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칼뱅주의(Calvinism)와 사람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아르미니안주의(아르미누스주의. Arminianism)는 수백 년 동안 서로 피 터지게 싸웠지만 ‘서로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한 상태에서 어정쩡한 휴전을 유지해 왔다. 필자는 이후 이 둘을 편의상 하나님의 주권파와 사람의 자유의지파로 부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장로교와 침례교는 신학적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Once saved, always saved. OSAS)입장이고, 루터교, 감리교, 성결교 등은 ‘신자라도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신칭의를 주창한 루터교도 루터 사후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루터의 동역자이자 후계자인 필립 멜랑히톤의 영향으로 신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워낙 장로교 강세국이라 한동안 ‘신자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에게 예장 xx이 이단(성)으로 낙인 찍을 정도였다.

 

 

장로교 내의 ‘구원 탈락 가능성’ 주장들

 

한국 장로교 내에서도, ‘신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아는 보수 장로교 목사 중에서도 구원 탈락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더 많다. 다만 공개적으로 주창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던 참에 공개적으로 ‘신자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총신대원장을 역임하고 미국 플러신학교 교수로 재임하는 김세윤 교수다. 필자는 그의 성령은사론은 동의하지 않지만 막강한 장로교 대국 한국에서 구원 탈락 가능성을 주창한 용기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김세윤 교수가 2013년 ‘칭의와 성화’란 주제의 강의에서, 칭의된 신자라도 신앙생활 하는 동안의 선행 유무에 따라 종말에 가서 칭의가 완성된다, 즉 신자라도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는 ‘유보적 칭의론’을 주장하여 전통적 칭의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김 교수는 ‘전통적 칭의 교리가 잘못되어서 한국 교회가 구원파가 이단이라 정죄하면서 사실상 윤리도덕이 없는 구원파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원파는 ‘불신자가 한번 회개하여 거듭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불신자가 죄를 회개하여 신자로 거듭나는 ‘신분상의 회개’와 신자가 지속적으로 회개하는 ‘자녀로서의 회개’-성화 회개(요일 1:8-10)를 구분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신학적으로는 두 가지 회개를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Once saved, always saved. OSAS)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교회의 설교에서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한번 믿은 사람은 죽으면 천국 가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공하고 출세하거나, 은사 받고 신비적 체험을 많이 하는 것을 신앙생활 잘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윤리도덕적 삶이 소홀해졌다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김세윤 교수와 더불어 장로교의 최갑종 교수(예장 백석대 총장 역임),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 원장) 및 권연경 교수(숭실대 교수) 등도 자기 목소리들을 내면서 ‘신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신자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목회자나 학자는 많지만 대부분이 ‘침묵의 다수’를 형성하는 있는 상황에서 소수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편의 상, 개혁주의 내의 이런 주장자들을 전통적 구원론자(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와 구분하여 신(新) 구원론자(한번 구원 받은 자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로 부르기로 한다. 신 구원론 내에서는 톰 라이트의 ‘새관점학파’, 김세윤 의 ‘유보적 칭의론’ 등도 포함되지만 이런 것을 떠나서 ‘한번 구원 받아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을 신 구원론으로 부르기로 한다.

 

*아래 동영상은 김세윤, 권연경 및 최갑종 교수의 구원 탈락 가능성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다.

 

[리얼크리스천] 1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복음

[리얼크리스천] 2부 변질된 복음    

[리얼크리스천] 3부 이미 얻은 구원, 미래에 얻을 구원  

[리얼크리스천] 4부 복음의 회복과 한국교회의 미래

 

진정한 ‘믿음’은 ‘행함’ 보다 먼저 ‘내면 변화’를 가져온다

 

신 구원론자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믿음과 행함을 대척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믿음에 의한 내면의 변화와 성숙의 열매로서 나타나는 행함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은 점이다.

 

성령과 물로 거듭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요 3:5). 칭의는 신자의 신분 변화를 강조하지만 중생과 성화는 내면 변화를 강조한다.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칭의 되고 중생한 신자는 내면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탄생한 사람이다. 드러난 행함은 속사람의 결과이다(롬 7:22; 고후 4;16; 엡 3:16).

 

사람은 믿음에 의한 내면 변화가 없어도 보이는 행동(행함)은 어느 정도 위장할 수 있다. 성경 내용 많이 알고 교회생활은 잘 하지만 본인 내면의 성숙이나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 등은 엉망인 신자들(?)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지 않은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먼 신자들(?)도 너무나 많지 않은가?

 

진정한 믿음은 먼저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고 변화된 마음에서 나타난 것이 성경이 말하는 행함이 아닌가? 예수님 옆의 강도도 믿음으로 내면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행함이 없어도 구원 받은 것 아닌가?

 

성경이나 예수님도 겉의 행동 보다 마음의 동기나 상태를 더 중시하셨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26.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6-27).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신 구원론자에 대한 전통적 구원론자의 반격

 

김세윤이 소위 말하는 유보적 칭의론을 주장하자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당연히 비판의 포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신 구원론은 신자의 윤리도덕적 타락이라는 상황에서 생성된 비성경적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상황과 관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서 뚝 떨어진 신학이 있는가? 개혁주의 기적중지론은 로마 천주교나 급진주의자들 및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의 기적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조작된 ‘가짜 뉴스’(신학)가 아닌가?

 

개혁주의 구원론도 로마 천주교가 선행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상황에서 생성된 신학 아닌가? 문제는 천주교적인 것은 무엇이든 부인하고 반대로 가다 보니 전통적 구원론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중심의 무리한 구원론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상황과 무관한 신학은 없다. 소위 말하는 정통신학(?)은 주변의 다른 신학-자유신학, 웨슬리 신학, 은사주의 등-을 반박하고 자신들의 신학을 변증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신학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경적 객관성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가 더 많다 다른 교파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전통적 구원론과 편협한 개혁주의 신학의 울타리에 갇혀있는 자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전통적 구원론자’에서 ‘신 구원론자’로의 변신

 

필자도 전통적 구원론을 주장하는 신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오래 동안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전은 여러 군데서 오기 시작했다.

 

첫째,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필자의 구원관을 바꾸어 놓았다.

 

필자도 신학교에서 안토니 후크마, 루이스 벌콥 및 존 머리(머레이)의 개혁주의 구원론을 배운 대로 한동안은 전통적 구원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전이 와서 결국은 전통적 구원론을 버리고 신 구원론을 채택하게 되었다.

 

구원 탈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구원 탈락 가능성 관련 구절들을 하나씩 몇 달에 걸쳐 연구하면서 그 동안 궁금하거니 미심쩍었던 구절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치 체증이 가라앉은 듯 성경이 새롭게 다가왔다.

 

 

전통적 구원론의 안경을 벗고 성경을 다시 보니 많은 구절들이 새로운 의미로 와 닿았다. 이전에는 잠언을 볼 때 나는 ‘의인’이므로 ‘악인’에 대한 말씀은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인’이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짓는 죄(롬 1:28-32), 불의한 자들이 짓는 죄들은(고전 6:9-10) 의인인 나와 상관 없는 죄들이라고 생각했다. 첫 사랑을 잃어버려도 상급 좀 덜 받는 것이지 구원 탈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계 2:7, 11 등).

 

 

그런데 전통적 구원론의 안경을 벗고 성경을 다시 보니, 비록 내가 신분적으로 ‘의인’이라도 죄를 지으면 ‘악인’이고, 불의한 죄를 계속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와 신령한 축복을 누렸더라도, 하나님의 어려운 시험대를 통과하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다가, ‘이러다가 지옥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경각심에서 돌이킨 경험도 있다. 정말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전통적 구원론의 편견 없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구원을 주경신학적으로(Biblical-theologically) 다루면 이신칭의는 일회적이고 영원하다는 주장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아는 어떤 사모도 처음에는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으로 배웠지만 성경을 계속 읽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요즈음 이런 사람들이 많다.

 

 

둘째, 전통적 구원론과 상충되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하나님이 하신다’와 ‘사람이 한다’는 구절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사람)가 한다’는 대부분의 구절들을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신다’고 해석해야 하는데, 전통적 구원론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구절이 나오면 마치 ‘사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홀로 하신다’고 확대해석하고, ‘사람이 한다’는 구절들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사람의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에게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고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한 사람이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성경은 왜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요 3:16)고 하는가?

 

 

일반적으로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해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그러나 나태와 방종에 젖기 쉬운 신자들에게는 사람의 자유의지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다’, ‘사람이 한다’는 구절들을 상황과 문맥을 고려하여 해석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의미로 과대 일반화시켜 상반되는 다른 구절을 무시하는 것은 건전한 성경해석이 아니다.

 

 

특히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자기들이 선호하는 몇 구절이나 개념들-선택, 예정, 이신칭의, 토기장이 권세 등-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상반되는 구절들을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성향이 아주 농후하다. 기적중지론처럼 성경에 없는 것도 이론과 사변으로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기발한 천재들(?)이 많다.

 

이런 자들은 조직신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먼저 성경이 그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를 성경 전체를 통해 주경신학적(성서신학적)으로 고찰한 후 해당 구절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황금구절인 요한복음 3장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다. 여기서는 사람의 믿음이 강조된다.

 

그런데,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를 인용하면서 신자의 믿음 여부와는 상관 없이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이 홀로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처럼 확대해석한다.

 

 

구어체로 기록된 성경은 문맥에 따라 상호 배타적 표현-반대되는 다른 주장을 제외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목사는 설교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 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설교하기도 했다. 과연 그런가? 사도 바울은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다”(고전 15:14)고 고백했다.

 

그래서 십자가파는 ‘바울은 십자가만 안다’, 부활파는 ‘바울은 부활만 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와 부활 둘 모두가 중요하다고 기록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자유의지의 긴장과 갈등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자유의지도 마찬가지다. 주권파들은 하나님은 당연히 주권적이시므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강조하고 사람의 자유의지는 무시하거나 소홀히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성경적 해석이 아니라 인위적인 해석이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을 허용하신 것처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람이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사람에게 허용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자가 믿음에서 떠나거나(딤전 1:19’ 4:1; 5:8, 12등), 예수님이 믿음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는 자를 버리신다(계 2:7, 11등)는 구절들을 고려하여, 요한복음 10장28절의 해석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본인 스스로 믿음에서 떠나거나 내가 버린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고전 6:9-10) 은 모두 불신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석해야 ‘한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 옳은 것처럼 증거되기 때문이다. 서신서는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에 보낸 짧은 편지인데 그 짧은 편지에서 왜 사도 바울이 교회 내의 불신자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많은 시간을 허비할까?

 

불신자들은 말 그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인데 떠날 믿음이 어디 있고, 짓지 않을 죄가 어디 있는가? 이런 당연한 주장을 왜 사도 바울이 공 들여서 하는가? 성경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사도 바울은 믿는다는 신자들이 환난과 시험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고,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불신자들처럼 ‘불의한 일들을 계속 저지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즉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자유의지는 같이 가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하나님이 구원을 주도하시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자유 선택권-을 하나님이 허용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느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무시하지 않는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하나님의 인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사람의 결단)”(골 1:29).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사람에 대한 명령) 23. (왜냐하면)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선도)(빌 2:12-13).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

 

전통적 구원론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주장한다(엡 2:8-9). 그렇다면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아서 구원 받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은 사람들 지옥에 보내시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저 유명한 이중예정론-택자와 불택자를 미리 정했다는 주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혁주의 내에서도 이중예정론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엡 2:8이 말하는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구원 받는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도, “선택된 자들이 그들의 영혼의 구원을 믿을 수 있는 신앙(믿음)의 은혜는 그들 마음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이며, 보통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말씀의 사역과 동시에, 성례의 집행과 기도로 말미암아 증가되고 강화된다”(제14장1절)고 기록한다.

 

즉, 성령과 말씀이 신자의 영혼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믿음 자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믿음을 수용할 수도 있고 거부하거나 억누를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불신자에게는 ‘믿음을 가져라’, 신자에게는 ‘믿음에 자라가라’(살후 1:3) 고 촉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고 두루뭉실하게 표현하여 요한복음 3장16절의 “예수를 믿는 자”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구원 받기로 예정된 자라고 해석한다. 즉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정하셔서 믿음을 주시는 자는 구원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자유의지가 들어갈 틈바구니가 없다.

 

 

성경 기록 자체가 문어체이며,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거나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전통적 구원론자들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안경을 쓰고 다른 구절들을 축소해석하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권인 것처럼 무리하게 해석하여 사람의 자유의지의 영역을 축소시킨 결과,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비교할 때 사람의 악행이나 선행은 별 볼일 없는 것이 되므로 사람의 선행에 별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선행과 악행이 하나님께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제1세대를 멸망시키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제2세대 후손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셨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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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서적 :

 

기사, 소논문, 주석 자료 등은 필요하면 글 중에서 인용할 것이다. 참고서적을 소개하는 이유는 필자가 구원론을 다룸에 있어, 독자들에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단행본들을 읽고 참고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고경태 외 9명.『현대 칭의론 논쟁-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 고찰』(CLC, 2017).
권연경. 『행위 없는 구원』(SFC, 2015).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총신대학교 출판부, 2000).
김세윤. 『구원이란 무엇인가』(두란노아카데미, 2011).
______. 복음이란 무엇인가(두란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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