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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 00] 동네 의사에게 '영적 권위'를 두는 한심한 정이철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구요한 발행인  |  lifech0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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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9  19: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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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 칼럼 00]

동네 의사에게 '영적 권위'를 두는 한심한 정이철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정이철의 글을 보면 “이런 인간이 도대체 거듭나기나 했나?”라는 의문이 든다. 어떤 영적 현상에 대해 글을 쓰려면 최소한 그것이 성경적인가, 교회의 신학이나 전통은 어떠한가, 신자들의 경험이나 간증은 어떠한가, 그런 체험으로 인한 열매는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정이철에게는 이런 가이드 라인이 없다. 자기가 잘못 되었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는 교회사나 신실한 신자들의 모든 간증이나 경험을 모조리 무시해버린다. 그러면서 동네 의사의 처방전 하나로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 전체를 평가한다.

 

 

조나선 에드워즈에 대한 상반된 평가

 

일반적으로 조나선 에드워즈가 주도한 제1차 영적 대각성 당시 일어난 영적 체험에 대한 평가는 두 부류다.

 

한 부류는 친 부흥파적인 조나선 에드워즈, 마틴 로이드-존스, 존 파이퍼, 샘 스톰즈 리 스트로벨과 같이 은사적이고 영성에 열린 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반 부흥파적인 당시의 찰스 촌시, 현대의 존 맥아더, 행크 해너그라프, 닉 니드햄, 정이철이 인용한 조지 말스덴 등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이철은 당연히 반 부흥파 진영이다.

 

정이철은 조나선 에드워즈의 아내가 가진 신비하고 황홀한 영적 체험에 대한 평가를 누구에게 맡겼는가? 한국의 조나선 에드워즈 지지자인 백금산, 이상웅 등의 평가는 물론 에드워즈 자신과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와 같은 쟁쟁한 목회자나 신학자 등의 평가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에드워즈 부인 사라에 대한 동네 의사의 처방전 하나를 통해 부정적으로 평가해 버린다.

 

제1차 대각성 운동 기간 동안 인구 50만 명의 뉴잉글랜드 지방은 2만5000명에서 3만 명이 교회로 몰려오는 엄청난 양적 부흥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에드워즈 아내 사라의 증세가 우울증 인 것 같다는 동네 의사 처방전 하나로 대각성운동 자체를 부인해 버린다.

 

그리고 영적 대각성으로 교계에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며 교계는 분열된다.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기득권층과 신규층 사이에 분열을 일어나기 마련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등장으로 인한 교계의 분열, 종교 개혁으로 인한 구교와 신교의 분열 등, 새롭고 큰 운동은 기득권자을 가진 구파와 새로운 운동을 주도하는 신파 간의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서 중도파들은 신구파의 갈등과 분쟁에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제1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다. 1940년대에 접어들자 친 부흥파인 조나선 에드워즈의 새빛파와 찰스 촌시의 구빛파의 지상 논쟁으로 인해 뉴잉글랜드 교계는 분열되었지만 이후 새빛파를 중심으로 교계가 통합되었다.

 

정이철 주장대로 하면 한국 장로교는 열매가 없는 집단이다. 수백 개로 쪼개지고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단 교단은 3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정이철의 주장대로라면 예장 전체가 잘못된 것인가? 모든 분열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분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이철은 제1차 대각성이 교계의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호도한다.

 

 

동네 의사에게 영적 분별력을?

 

정이철은 영적 현상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에드워즈의 아내 사라를 진단한 동네 의사에게 둔다. 반 부흥파나 반 은사주의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한때 존 맥아더와 함께 반 은사주의 대열에 앞장 선 행크 해너그라프 등도 은사집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심리학자의 견해로 해석했다. 방언을 모르는 존 맥아더는 심리학자의 언어분석을 토대로 방언을 평가하고 축사를 모르는 그는 귀신 들린 사람을 정신과 병원에 보내기도 했다. 영적 무지한(無知漢)의 대표적 오류들이다

 

오래 전 필자가 아는 어느 목사가 성령체험을 했다고 고백하자 자유신학을 신봉하는 미국 교단에서 비정상적이라면서 심리 검사를 해야 한다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영적 무지한들의 대표적 처방들이다. 그들 주장 대로 라면 신자가 거듭났는지의 여부도 심리학자외 최종 진단을 받아야 하는가?

 

 

에드워즈 아내인 사라를 진단한 의사가 기독교 신자인지, 생소한 영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있는 자인지 알 수 없다. 사라의 기복이 심한 정신 상태(?)를 감안하여 의사가 아니라도 우울증 환자나 정신병자로 진단할 수 있다. 문제는 정이철이 이런 현상을 성경적, 경험적, 신앙의 열매로 분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간증은 무시한 채 동네 의사 한 명의 견해를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정이철은 요즈음에도 정신이 불안한 사람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요즘에도 감정기복이 심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에게 '성령 안에서 안식한다'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나도 이전에 옆에서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젊은 여성을 보고 깜짝 놀랐고,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얼른 안아서 안전한 곳으로 갔다 놓았던 적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도 사라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정이철, “에드워즈 더 숭배하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틀린 『바른 믿음』. 2018.11.27).
 

 

정이철이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관찰했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30년 가까이 이런 사역을 하면서 사람들을 살펴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미 들렸던 귀신이 발작하거나 이미 들렸던 우울증이나 정신 병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경험 자체를 통해 이전에 없던 증세가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한 별 경험도 없어 보이는 정이철은 말장난하지 말라.

 

 

정이철의 상태는 확증 편향증?

 

 

정이철의 상태를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 의뢰하면 어떤 증상이 나올까? 의사가 아니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확증 편향 증세일 것이다. 확증 편향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기존에 믿는 바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 하고, 자기 생각과 어긋나는 정보는 거부하는 편향을 말한다. 요즈음 종북 좌파들에게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성향이다.

 

사람 마다 어느 정도 이런 성향이 있지만 정이철은 심각한 경우이다. 정이철은 사부인 서철원의 주장에 어긋나는 어떤 주장이나 체험도 인정하지 않는 서철원교(敎)의 광신자다. 서철원이 성령체험은 접신체험이라니까 방언을 위시한 모든 은사나 신비체험을 귀신장난으로 매도하는 확증 편향증 환자이다.

 

 

제2의 축복, 제3의 축복, 제N의 축복

 

정이철은 이미 지적한 대로 4가지 가짜 뉴스(신학)로 영적 상태를 진단한다.

 

1. 주장 : 기적이 증거한 성경이 있으므로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없다(잘못된 증거주의).
반론 : 기적은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기능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유-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영광, 믿음을 통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이 많다.

 

2. 주장 :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더 이상의 성령 강림은 없으며 교회라는 저수지에 간직된 성령이 회심한 자에게 흘러간다는 잘못된 주장이다.
반론 :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말세에-초림과 재림 사이-에 지속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신다(행 2:16-21). 사마리아 지방과 고넬료 집안에서는 성령이 내려오셨다(행 8:16-17; 10:44).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1장 제3절). 영원히 나오시는 성령이 어디로 가시는가?

 

3. 주장 : 성경 인물의 초자연적 체험과 기적 행하는 행위는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비반복적 행위이므로 교회 시대의 본보기가 아니다?(구속사적 해석).
반론 : 예수님이나 성경 인물들이 독특한 체험이나 행위(십자가 죽음, 성경 기록)을 한 것도 있지만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로 사역한 것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다. 그런 본보기를 부인하고 사역하는 교단 마다 양적으로 몰락했거나 쇠퇴하고 있다.

 

4. 주장 : 중생한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이므로 성령을 더 이상 구하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
반론 : 베드로는 중생한 후 여러 번 성령충만을 받았고 바울도 그랬다. 중생을 위한 성령세례와(고전 12:13) 사역을 위한 성령세례(성령충만, 성령체험, 성령재충만)(행 1:5; 2:4; 4;8, 30 등)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외의 잡설. 은사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900년 동안 잠잠하다가 20세기초에 시작되었나?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500년 동안 잠잠하다가 16세기 초에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나님의 섭리다.

 

정이철은 이런 가짜 뉴스(신학)로 사라의 증상을 진단한다.

 

사라가 체험한 괴이하고 신비적인 현상은 현대의 오순절 운동에서 ‘성령재세례’가 임할 때 주로 발생한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들을 그것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에드워즈는 그런 체험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해야 할 높은 경지의 성령의 사역이라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교회를 떠나 신사도운동하는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인가?”

……………..

그리고 훌륭한 교부들과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복음 사역에서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일들, 즉 쓰러짐, 입신, 황홀경 신비체험, 몸의 마비, 몸의 진동 등의 현상들이 에드워즈의 부흥사역에서 많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워즈가 말씀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상한 성령의 역사를 동반하는 말씀의 사람, 즉 요즘의 신사도영성을 발휘하는 칼빈주의자와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정이철, “에드워즈 더 숭배하지 말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틀린 『바른 믿음』. 2018.11.27).

 

정이철은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무조건 신사도운동으로 매도한다. 이런 현상과 체험은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제1차 대각성운동 당시의 조나선 에드워즈, 탐 쉬완다가 말하는 청교도인인 존 오헨, 리차드 십스, 현대에 와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 샘 스톰즈 등도 지지하는 영적 체험이다. 이들도 신사도운동가들인가?

 

정이철은 다른 사람에게 '조나선 에드워즈를 숭배(?)하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서철원 숭배사상을 버려야 한다. 사람의 평생에 멘토를 잘 만나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인데 정이철은 서철원이라는 영적 왕소경을 잘못 만나서 자신은 물론 수많은 사람을 영적 구덩이로 인도하고 있지 않은가?

 

 

-중생, 제2의 축복, 제3의 축복, 제N의 축복

 

정이철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 제임스 던의 중생=성령세례라는 가짜 뉴스를 답습하는 서철원교(敎)의 광신자다. 정이철은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는 더 이상 재세례, 재충만을 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면서 재세례를 강조하는 로이드-존스를 이단 취급한다.

 

한국 장로교 내에 박영돈(예장 고신대 교수)을 위시하여 아직도 이런 주장을 고수하는 기적중지론자들이 많다. 이들은 중생 이후에 오는 재충만(세례) 주장은 요한 웨슬리와 오순절주의자들의 잘못된 신학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중생 이후의 성령 재충만(세례)를 최초로 주창한 사람들은 칼뱅주의 청교도인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캐나다 교회 연감 1990-96』에 보면 의미 있는 통계가 나온다. 이 연감은 지난 30년간 여러 교단의 교세 증감을 기록한 책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요한의 물세례는 상징이고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의 성령 세례는 동일하게 구원을 받는 성령 세례라고 해석하는 기적중지론적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등은 교세가 감소했다.

 

 

그러나 두 가지 성령 세례를 구분하여 비록 구원받는 성령 세례를 받았더라도 능력받는 성령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해석한 남침례교단의 일부, 오순절계통이나 은사주의 계통의 교단은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하는 교회의 대부분은 후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령 세례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령 세례에 대한 주장은 중생(제1의 축복), 성결(제2의 축복. Purity) 및 능력(제3의 축복. Power)에 이르는 제3의 축복까지 주장한다.

 

청교도. 중생 이후의 ‘구원의 확신’을 위한 성령 세례를 강조했다(존 오웬, 토머스 굳윈, 마틴 로이드-존스). 이처럼 ‘중생 이후의 성령 체험’은 원래 칼뱅주의 청교도가 시작한 교리이고 나중에 로이드 존스가 확인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가 칼뱅주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성령 세례’ 대신에 ‘제2의 축복’이나 ‘완전 성화’ 체험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후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가들이 차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제2의 축복인 성령 세례(성령 체험)를 비판하고, 특히 정이철은 로이드 존스를 포함하여 중생 이후의 성령 체험 주창자들을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누워서 침 뱉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주의. 중생하면 성령세례(고전 12:13)를 받는다. 더 이상의 성령을 구하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제임스 던, 서철원, 박영돈, 정이철 등).

 

성결운동. 중생한 자도 제2의 축복인 성결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완전성화). D.L. 무디와 토레이의 부흥운동. 제2의 축복으로 성결(purity) 대신 능력(power)을 채택했다.

 

초기 오순절운동(찰스 파함, 윌리엄 시모어). 중생하고 성결의 성령을 받아도 능력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제3의 축복)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성회(미국 순복음교단 설립자 윌리엄 더햄). 중생과 능력 및 점진적 성화를 주창하면서 자기에게 성령을 받게 한 찰스 파함과 윌리엄 시모어가 성결의 영을 주장한다고 해서 교단에서 추방했다.

 

바른 견해. 중생-성결-능력의 제3축복에 이어 제4, 제5, 제N의 축복도 가능하다(안토니 후크마, D.A. 카슨). 성결과 능력의 영은 순서가 바꾸어 질 수도 있다. 요한 웨슬리도 중생-성결-능력의 영을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정리하면, 성령세례나 성령체험은 이론적으로 평생에 무한대로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정이철 같은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은 중생할 때 한 번 체험하는 것이 전부라고 잘못 주장하면서, 평생에 여러 번 체험하는 사람을 오히려 잘못된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정이철 추종 교단들-확실하게 분열하거나 쇠퇴한다

 

신기하게도 정이철의 주장을 따라 은사사역을 “참여금지”나 “이단적”으로 결의한 예장 백석대신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예장 고신은 2017년 한 해에 교세의 5%가 쇠퇴했다. 이런 추세라면 예장 고신은 20년 전후에 교단 자체가 소멸될 지도 모른다. 

 

예장 백석대신은 세상적 M&A (합병과 인수)방법으로 교세를 불렸다가 고등법원의 불법 통합 판결로 인해 600 교회가 이탈했고, 통합을 주도한 전광훈 목사 계열의 100교회가 이탈을 준비하고, 이전에 통합되었던 1,000여 개 교회가 11월부로 이탈을 선언했다.

 

이게 우연일까?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다. 그나마 한국 보수 장로교단 중에서 이단 정죄를 잘 하지 않아서 기특하게 봤더니 교세가 좀 커지자 덩치 값 하느라고 은사사역을 정죄하다가 자기들이 심판을 받아 교단이 좍좍 갈라진 것이다.

 

예장 백석대신이 생명사역과 성령사역을 강조하는데,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고 회개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어떤 생명이 나오고 어떤 성령사역을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생명사역 자체가 세상 욕심과 불법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인데 이런 것 하지 않고 말로만 생명사역 한다고 떠들면서 인위적이고 불법적 통합으로 덩치를 키우려니까 하나님이 갈라놓으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기본적 성령운동은 하는 순복음교단은 최근에 하나님의 은혜로 통합되어 교인 수 180만 명의 한국 3대 교단으로 발돋움했다. 예장 백석대신이 차지했던 3위 자리를 순복음 교단이 차지한 것이다. 방언조차 부인한 예장 백석대신 자리를 하나님이 순복음 교단에게 주신 것이다.

 

예장 고신은 은사운동을 정죄하면서 자기 교단 내에서 노골적으로 신사도운동을 하는 부산생명수교회(양결 목사)는 감싸는 위선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여성에게 목사 안수는 주지 않으면서 여성 목사로서 큐티운동에 성공한 김양재 목사의 큐티는 소개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김양재 목사의 큐티운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예장 고신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신학 다르고 행동 다른 이중적 행태다. 하나님이 이런 위선적 교단을 그냥 두실까?

 

못된동이처럼 주제 넘게 한국 교계에서 이단(적)이나 참여금지 같은 결의를 제일 많이 한 곳이 예장 고신이다. 그들은 이제 북미주의 보수 장로교단들 처럼 교세 하락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정이철과 정이철 추종 세력들은 이 점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칼뱅주의 청교도는 400년 전에 미국 교계를 선점했지만 400년이 지난 지금 교세 52만 명-미국 개신교인 1억 명의 0.5%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반 은사주의와 반 부흥파의 끈질긴 비판과 핍박을 이겨낸 은사주의자들은 3,500만~5,000만 명이 되고, 전세계적으로는 8억 명 가까이 성장했다.

 

 

지금 정이철이란 인간이 망한 장로교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신비적이고 초자연적 체험, 기적행하는 은사를 모조리 부인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교리도 중요하지만 교리를 체험하고 교리 대로 살게 만드는 초자연적 체험과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면 무엇이 남는가?

 

 

교조적인 교리만 남는다. 그러니 칼뱅주의 장로교가 미국 내에서 망해간 것이다. 정이철이란 인간은 이런 통계가 눈에 안 보이나? 망하려면 혼자 망하지 왜 수많은 사람 망하게 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레 같은 글들을 써대는가?

 

 

-교리와 경험-교리 강조자들의 몰락

 

 

신학교 다닐 때 한 교회사 교수는 강의할 때마다 “저들은 경험을 중시하지만 우리는 교리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그 교수는 이성과 논리 중심의 교리를 감성 중심의 체험 보다 우세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신학교들의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물론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교리는 구원과 관련된 일차적, 원론적 교리가 아니라 영적 경험과 관련된 이차적, 부차적 교리를 말한다.

 

필자가 졸업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프린스턴신학교의 좌경화에 반대한 그래삼 메이천이 동료 교수와 함께 1928년에 세운 신학교이고 정통장로교회 (OPC)소속이다.  그런데 90년 가까이 수많은 탁월한(?) 기적중지론적 신학자를 배출한 정통장로교회 교세는 겨우 3만 명이다. 이런 신학교의 가르침을 아직도 한국 많은 장로교단이 고수하고 있다. 그외에도 이런저런 신학교에서 이런 신학을 전공한 자들이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장로교단들이 이제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좌경화된 프린스턴신학교가 소속된 미국장로교회(PCUSA)는 한때 장로교의 면을 세워주다가 동성 결혼 문제로 갈라져서 교세가 200만 명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보수 장로교회로는 아메리카장로교회(PCA)가 그나마 30만 명 정도의 교세를 유지한다. 개신교인 1억 명의 미국에서 보수 장로교회는 군소교단 수준에 머물고 있다.

 

 

만일 한국의 장로교단들이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을 미국처럼 허용했다면 한국의 장로교단들도 미국처럼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은사운동의 거대한 바람이 불 때마다, 평소에는 갈라져 있다가 이런 때는 서로 잘 연합하여 ‘이단적’이나 ‘참여금지’를 남발하여 울타리를 지켜왔고, 일부 교단의 목회자들은 교단의 눈치를 보면서도 은사운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나름대로 교세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은사사역에 열린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지속적 교세 하락은 불 보듯 뻔한 데 기존 교단 내에서 누구 하나 거론하는 사람이 없다. 전통적인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과감하게 폐기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도 없고 그냥 지내자니 좌불안석인 사람도 많다. 이제 교단이 울타리 쳐주고 교회 성장 도와주던 시대는 지났다. 목회자나 신자가 각자도생해야 한다. 신자들도 이름 있는 교단이나 교회 보다 제대로 된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이름 있는 교단이나 교회가 구원 주고 구원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체험이 뉴에이지 체험이라고?

 

 

틀린 『바른 믿음』에 글을 쓰는 김주옥(한나) 선교사(?)은 몇 년 전 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기가 미국에서 은사운동하는 릭 조이너 목사 교회에 2~3년(?) 다녔는데 은사체험을 못 했다면서 은사운동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질문하길래 은사운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대답해줬다.

 

이후 로마 천주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길래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은사운동에 대해 딴지를 걸길래 그런 이메일 그만 보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정이철에게 붙어서 필자를 신사도운동가로 매도했다. 자기가 신사도운동 교회에서 능력 받고 은사 체험하려고 몇 년 다닌 주제에 필자를 신사도운동가로 매도한 것이다.

 

 

김주옥은 한 동안 천주교에서 전향한 알베르토 리베라 신부의 글을 올리더니 요즈음에는 뉴에이지 관련 글도 올리면서 “성령운동, 영성운동, 뉴에이지, 신사도, 대각성신비주의 비슷 비슷”이란 선동적 제목으로 마치 성령운동이 뉴에지 운동과 비슷하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김주옥, “성령운동, 영성운동, 뉴에이지, 신사도, 대각성신비주의 비슷 비슷.” 틀린 『바른 믿음』, 2018.11.28).

 

 

필자는 이미 30년 전에 뉴에이지 운동을 연구하고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상대로 교육을 한 적이 있다. 뉴에이지 운동과 정통 교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독교나 유사종교는 행위적으로는 찬송(찬불), 설법(설교), 보시(헌금) 등의 유사 종교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신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겉 모양은 비슷하다. 그래서 불신자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기독교(개신교)는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요 14:6; 행 4:12).

 

 

기독교나 타 종교 공히 경전이 있고, 문서선교, 인터넷선교, 교육하고, 봉사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일반 은혜의 산물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에서 신비 체험하고, 황홀체험하고, 넘어지고 뒹굴면 불건전한 것으로 간주하고 뉴에이지 현상이나 쿤달리니 각성이라고 하는가?

 

 

한국의 주류를 이루는 장로교가 이런 분야에 오래 동안 무관심하거나 배척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케인리지 부흥운동, 제1,2차 대각성운동, 오순절운동 밑 현대의 은사운동에 보편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난 현상들인데 보수 장로교 신학이 이런 현상들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핍박해 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체험과 감정을 경시하는 칼뱅주의 기적중지론 신학이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장로교의 소요리 문답 제1은 이렇다.

 

문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은 실제로 하든 못 하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나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잘 모른다.

 

시 35: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68: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심하) 즐거워할지어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성안자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유익과 축복을 익히 알고 체험한 자들이다. 그런데 후진들이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은 소홀히 취급했다. 이런 편협한 신관(神觀)은 예배에서도 드러난다. 거룩한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므로 끽 소리도 내지 말고 아멘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박국 2: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대부분의 장로교 예배에 참석해 보면 아직도 행사인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즐거워하는 예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예배가 그 모양이고 설교도 나른하고,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도 나타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이겠는가? 이런 예배가 시들은 영원을 제대로 소생시킬 수 있을까?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 초월적인 하나님도 말하지만, 사랑의 하나님, 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기록한다. 사랑의 하나님, 내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신자는 기뻐 뛰놀고 즐거워하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그윽하고 점잖은 기쁨이 아니라 강렬하게 분출하는 기쁨, 파안대소 등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조나선 에드워즈나 그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삶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영적 능력을 제대로 공급 받아서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정이철과 그 무리들은 성경의 다음 단어들을 곰곰이 묵상해 보기 바란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구약에서

 

(히브리어) 알라츠. 기뻐 날뛰다,  크게 기뻐하다.

삼상 2:1 :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알라츠)

시 9:2 :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알라츠)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 68:3 : 의인은 기뻐하여(알라츠)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 (심하)

 

(히) 심하. 지극히 즐거워하다.

 

시 21:6 :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심하)

시 45:15 : 저희가 기쁨(심하)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시 68:3 :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심하)

 

(히) .  너무 기뻐서 (몸을) 빙글빙글 돌다.  또는 '소마약'이나 '수스'라는 단어로도 사용됨. 이들의 뜻은 쾌활한, 명랑한. 즐거운이란 뜻임. '라난'은 기뻐서 큰 소리로 외치다는 뜻.

 

시 2:11 :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길).

시 32:11 :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소마약) 즐거워할찌어다(길)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라난).

시 9:14 :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길).

 

-신약에서

 

(헬라어) 카라(명사) 또는 카이로(동사)

신약에서 주로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뜻은 조용한 기쁨, 또는 쾌활하고 명랑함이다.

 

마 2: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박 박사들은 별을 보았을 때, 너무나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원어를 직역하면 And seeing the star, they rejoiced a tremendously great joy이다. 여러분은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를 때 어떻게 하는가? 입을 꾹 다물고 표정을 죽여가며 속으로 ‘아, 기쁘다’라고 하는가? 이렇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함성을 지르고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날뛸 것이다.

 

큰 기쁨이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절제의 은사(?)를 발휘하여 입을 꽉 물고 조용히 웃는다면 정신이 살짝 나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기쁨이 임할 때 기뻐 날뛰고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동박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아마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외에도 ‘카라’를 사용한 구절들이 더러 있다.

 

롬 14: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카라)이라.

갈 5:22-23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 카라)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빌 4: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카이로)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헬) 아갈리아오. 크게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

 

마 5 12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아갈리아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눅 10 21 :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아갈리아오)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처럼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너무나 기뻐하셨다. 구원을 받은 신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자다.

 

벧전 1:6, 8-9: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아갈리아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카라) 기뻐하니(아갈리아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계 19 7 : 우리가 즐거워하고(카이로) 크게 기뻐하여(아갈리아오)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때로는 조용하고 달콤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때로는 파안대소와 박장대소가 나올 정도로 기쁨이 분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혼의 구원을 받은 신자가 과연 얼마나 이런 기쁨의 삶을 사는가? 늘 파안대소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주 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이철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시기에 대해 기록한 한 구절을 인용한 후(요 3:8) 신자는 하나님 기쁨을 지속적으로 체험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위에 필자가 예로 든 구절들은 성경이 아닌가? 성경도 모르고, 건전한 체험도 없는 자가 가만이나 있지 왜 설쳐서 웅덩이에 구정물만 일으키는가?

 

 

영적 분별법

 

신비 체험은 하나님, 마귀 및 심리 현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온다. 세상의 마음수련이나 불교의 명상이나 템플 스테이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으므로 그런 장소에 가는 자체가 영적으로 위험하다. 더군다나 불교 음악, 뉴에이지 음악을 듣고 만트라(귀신 이름) 등을 부르면 영적으로 좋지 않다.

 

이들이 주는 체험이 비슷한 것 같지만 알맹이는 다르다. 영적 체험이 없는 사람은 X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한다. 정이철도 잘 모른다고 한다.

 

성령이 에드워즈에게 달콤한 능력으로 찾아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은 사람이 마치 바람과 같은 성령을 감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는 없다고 하셨다. 성령의 역사하심의 열매와 결과를 보고 성령이 일하셨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언제나 성령은 그 자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알리시지 않고, 자신이 오고 가는 것을 사람에게 들키시지도 않는다. 항상 성령은 성경의 말씀을 앞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며 일하신다. 그런데 에드워즈에게 찾아온 성령은 자기의 존재를 특별한 방식으로 드러내어 에드워즈에게 달콤한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

에드워즈의 ‘성령의 달콤한 영향력’ 표현은 참으로 모호하다. 과연 무엇을 가지고 성령의 달콤한 영향력이라고 말하는지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고, 신비주의 성향에 해당된다고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증거하고, 성경의 말씀을 전파하고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만 역사하신다고 예수님께서 성령의 사역을 정의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의 달콤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고 신비적이고 위험스러운 말이다.

(정이철, “백금산이 에드워즈의 이단성을 더 높은 신앙으로 승화시켰나?” 틀린 바른 믿음. 2018.11.25).

 

정이철은 “성령이 에드워즈에게 달콤한 능력으로 찾아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고, 신비주의 성향에 해당된다고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라고 반문한다. 정이철이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이런 체험을 해보지 못한 소수 그룹일 것이다. 신앙생활 그토록 오래 했으면서 이런 체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인간이 가만이나 있지 뭐가 잘났다고 떠들어대는가?

 

 

오늘날 정이철처럼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면 기쁨과 즐거움, 마음에 하나님 사랑의 달콤함이 느끼지고, 말할 수 없는 평안도 임한다. 그러므로 정이철은 자기가 체험이 없으면 체험한 신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지 왜 족보도 알 수 없는 동네 의사 말 듣고 이런 체험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는가? 정이철은 왜 수많은 신자들의 증언 보다 동네 의사의 말에 더 무게를 두는가? 건전한 체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흠집 내는 것 밖에 더 있는가?

 

 

새로운 풍조는 교회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뉴에이지운동, 불교, 힌두교 및 쿤달리니 요가 등은 모두 범신론적 유사종교다. 이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열반에 이르거나 우주나 타자와의 합일을 통해 기쁨이나 황홀 체험을 추구한다. 물론 요즈음 일부 신자들이 세상적 방법으로 황홀체험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왜 세상 사람들이나 신자들이 이런 것을 추구할까? 세상 사람들이 불교의 명상이나 뉴에이지운동의 방법으로 마음의 평안이나 초월적 기쁨을 주는데 교회가 주지 않으니까 호기심이나 절박한 심정에서 이런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승헌은 뇌호흡을 통해 학생들에게 공부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데 왜 교회는 비판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세계적 기업인 구글이나 IBM에는 최고영성책임자(CSO. Chief Spiritual officer)가 명상훈련을 통해 직원들의 영성을 관리하여, 결석율을 낮추고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삼성그룹이 2000억원을 들여 경상도 지역에 영성센터를 개설한다고 한다. 주로 불교나 뉴에이지의 영성훈련이 대부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비판만 하고 불구경하듯 뒷짐 지고 있을 것인가?

 

 

삶의 절박한 문제가 많고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은 많은 데 교회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니까 크리스천의 30%가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목회자는 10만 명인데 무속인은 10배 이상인 100만 명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단기 코스를 통해 역술원을 개설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으로 점집을 찾는 자가 많다는 소리 아닌가? 교회는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신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대안을 제시하셨다. 1980년대에 록앤롤 음악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하나님은 찬양과 경배를 통해 교회에 청년들은 인도하셨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으로 점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자 하나님은 교회에 예언의 은사를 회복하셨다.

 

이제 현대의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이 범신론적 명상과 뉴에이지적 기쁨과 황홀체험에 빠지자 하나님이 이전의 신비적 청교도들이 누렸던 관상기도와 황홀체험을 교회에 회복하시는 것이다.

 

 

마귀와 세상 종교가 하는 좋은 것은 모두 도둑인 마귀가 훔쳐 간 것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러므로 교회는 마귀에게 빼앗긴 좋은 것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회복해야 한다. 마귀에게는 창조의 능력이 없다. 마귀는 하나님의 좋은 것을 도둑질하여 왜곡하고 오남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잘 모르는 자들은,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외양과 형식만 보고 세상이 하는 것을 교회가 하면 세상 풍습을 따른다고 한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에게 창조의 능력을 귀속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오류는 피터 존스(Peter Jones)의 저서인 On Global Wizardry(세계적인 마법 풍조)이다. 피터 존스는 전 세계적으로 신비주의(Occultism)가 범람하는데 교회도 이방 풍습을 수용한다고 비판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세상에서 신비주의가 난무하다.
-교회도 이런 이방 풍습을 도입하고 있다.
- 그러므로 잘못된 것이다.  

 

그의 삼단 논법을 도입하여 다른 것을 예로 들어보자.

-불교에서 찬불하고, 설법하고, 시주한다.
-기독교도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유사종교의 풍습을 도입하고 있다?

 

그는 필자가 누누히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특별게시도 일반계시의 방법이나 장에서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삼단논법을 전개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나 신자들이 명상이나 황홀체험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양적으로 침체된 한국 교회에 좋은 황금 어장이 된다. 록앤롤 음악에 빠진 청년들을 찬양과 경배를 통해 교회로 인도했듯, 이제 교회가 이런 훈련을 제공하면 불신자는 교회로 몰려올 것이고 기존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양적 성장의 기회를 잡을 것이다.

 

 

한때, 교회에서는 기타 치고 북 치는 찬양과 경배에 대해 ‘무당굿이다,’ ‘광란이다’ 면서 난리를 부렸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찬양과 경배를 하지 않는 교회가 이상한 교회가 되어버렸다. 황홀 체험과 기쁨 체험도 마찬가지다. 정이철과 같은 수구골통들은 비판하지만 이미 한국 교계에 많이 퍼져가고 있다.

 

 

필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평안 및 황홀체험을 오래 동안 누리고 있다. 이런 훈련을 하다 보니 불교, 뉴에이지 운동 및 세상 심리학도 어느 정도 연구했다. 이후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황홀체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조나선 에드워즈가 5가지 훌륭한 분별법을 제시했다.

 

-그 사역이 진짜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그것이 세상적인 것을 대적하는가?
-그것이 사람들을 성경으로 인도하는가?
-그것이  (성경) 진리를 향상시키는가?
-그것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키는가?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오래 동안 누리지만 후유증 하나 없고 금단 현상도 없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달콤함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깊어지고 있다. 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정이철이나 김주옥도 먹어보려고 힘썼다가 못 먹어보니 심통이 나서, 신포도 이야기의 여우처럼, 진짜를 가짜라고 떠들어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먹어 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정이철이나 김주옥 등의 허접스런 주장에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모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오라. 알고 나면 너무나 간단한 비법, 그러나 아주 성경적이고 유익한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조나선 에드워즈처럼 또는 그를 능가하는 달콤하고, 신선하고, 기쁘고 평안한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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