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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 00] ×과 된장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조나선 에드워즈를 폄하하는 정이철의 영적 무지와 오만
구요한 발행인  |  lifech0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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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1  02: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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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 00]

×과 된장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
- 조나선 에드워즈를 폄하하는 정이철의 영적 무지와 오만 –

   
 

 

정이철이란 인간의 억지 주장을 대하면 그런 저질 인간에게는 위의 제목도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학적 실력도 별로 없고 건전한 영적 체험도 없으면서, 오지랖 넓게 성경이 지지하는 신비 체험과 기적행하는 은사를 모조리 부인하기 때문이다. 된장을 먹어보지 못한 인간이 외양이 비슷하다 해서 모두 x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 체험 모두가 뉴에이지 체험인 것처럼 오도하면서 정이철의 주장에 장단 맞추는 자들도 교계에 꽤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도 대부분이 기적행하는 은사나 초자연적 신비 체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들이다. 모르니까 뉴에이지운동이나 쿤달리니 책 좀 읽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체험과 마귀가 주는 체험을 혼동하는 것이다. 외양이나 현상이 비슷하면 모두 마귀 짓인가?

 

술이나 마약, 마음수련이나 뇌호흡, 뉴에이지운동이나 쿤달리니 각성 체험같이 마귀가 주는 쾌감이나 황홀체험은 후유증이 좋지 않고 금단 현상 때문에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다고 한다.

 

언젠가 필자는 마음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평강은 얻었지만 예수를 심하게 대적하는 자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나 황홀 체험은 늘 신선하고 후유증이나 금단 현상이 없이 천국의 기쁨을 지상에서 누리게 한다. 

 

필자도 비판자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필자도 이전에는 쓰러지는 현상은 체면술이고 예언하는 것은 점 치는 현상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이런 체험을 한 신실한 신자들을 많이 목격하자, 필자는 체험하지 못했지만 ‘저런 체험을 할 수도 있구나’라면서 체험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필자도 직접 체험하게 되자 너무나 좋았다.

 

이런 현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쓰러지는 현상은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조나선 에드워즈,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은 물론 오순절 성령운동과 현대의 은사주의 집회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가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제로 체험한 수많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간증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정이철처럼 자신의 무체험과 잘못된 교리를 바탕으로 건전한 체험을 가짜이거나 마귀장난으로 매도하는 것은 영적 무지와 오만의 소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못 먹어 본 자가 왜 먹어보고 분별하여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을 왜 무체험 중심으로 그런 것이 없다고 비판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황홀 체험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1730~1940년대)은 간단하게 정의하기가 힘들지만 조나선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인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에서 시작하여 영국의 조지 휫필드(1714~70)의 순회 설교사역, 미국 뉴잉글랜드 노댐턴 지역의 조나선 에드워즈의 사역 등을 통해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을 말한다.

 

특히 조지 휫필드의 순회 사역 기간 동안, 25,000~30,000명이 교회에 등록하는 대부흥이 일어났다. 당시 그 지방 인구가 50만 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적 부흥이었다. 제1차 대각성운동의 결과 프린스톤 대학(이후 신학대학원)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대각성 기간 중에는 생소한 영적 현상들도 많이 일어났다. 1741년 가을 경, 에드워즈는 “괴로워서 또는 너무 기뻐서 울부짖고, 기절해 쓰러진 사람들로 온 집안이 가득한 것을 보는 것은 보통의 일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에드워즈는, 자신이 주도한 부흥기간 중에 이상한 영적인 현상들을 동반하는 집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회심의 여러 양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놀라운 회심 이야기』(A Narrative of Surprising Conversions) 에 기록되어 있다.

 

조나선 에드워즈는 이런 영적 현상에 대한 성경적 분별력을 자세하게 제시했고 마틴 로이드-존스도 영국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의 현장에서 이런 현상들이 자주 일어난 사실을 기록하면서 이런 영적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쓰러지는현상⑨] 마틴 로이드-존스와 쓰러지는 현상 변호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가 말한 하나님 체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일종의 황홀경의 상태에 들어가서 자신을 잊어 버리고 강하고 유쾌한 상상의 세계로 넘어가 일종의 환상을 보고 마치 자신이 하늘에까지 올라가 영광스러운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성령께 속해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나(에드워즈)는 그러한 경우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설명하는데 마귀의 도움을 빌릴 필요가 없다.

……………………………..

이러한 것들이 광신적이거나 병든 뇌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나(에드워즈)는 내 뇌가 그런 병에 오래 걸려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것이 정신착란이라면 인간 세계가 이러한 자비롭고 온유하고 덕스럽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정신착란으로 다 사로잡힐 수 있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pp. 376-77에 인용됨).

 

그런데 정이철은 조나선 에드워즈와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이런 현상을 지지했다고 해서 큰 일이나 난 것처럼 그들을 오순절주의자라고 맹비난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칼뱅주의자이자 개혁주의자들인 그들이 그런 현상들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현대에 와서는 존 파이퍼, 샘 스톰즈 같은 개혁주의 기적계속론자(은사지속론자)들도 조나선 에드워즈가 말하는 황홀 체험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존 파이퍼는 성경 외에 조나선 에드워즈 만큼 자신이 기독교 쾌락주의(Christian hedonism)를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에드워즈가 말하는 ‘하나님을 즐거워함’을 격찬한다. 파이퍼가 말하는 기독교 쾌락주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파이퍼가 말하는 기독교 쾌락주의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추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는 주장을 말한다.
( John Piper, “What Made Jonathan Edwards a Christian Hedonist?”).

 

또한 청교도의 신비적 영성을 연구한 탐 쉬완다(Tom Schwanda)는 『영혼의 재창조: 청교도주의의 관상적 신비적 영성』에서 유명한 청교도들이 관상적 신비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황홀경을 추구했다고 주장한다. 청교도 신비주의(Puritan Mysticism)라는 말이 가능한가? 이는 ‘똑똑한 바보’, ‘현명한 등신’과 같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가능하다.

 

미국 고든-콘월 신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인 리차드 러브레이스(Richard Lovelace)는 “청교도인들은 모든 크리스천이 신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가정했다”고 말한다.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인 J. I 패커(J.I. Packer) 박사는 쉬완다 저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쉬완다 박사는 하나님 안의 즐거움을 강화하는 통로인 관상기도를 갱신하는 (청교도 역사의) 회복이 오늘날 건전한 복음주의 영성에 훌륭한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데 나 또한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작 앰브로즈에 관한 연구서인 이 책을 열정적으로 추천한다.”

 

풀러신학교 총장인 리차드 마우(Richard Mouw)도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훌륭한 책에서 탐 쉬완다는 최근에 우리가 후회할 정도로 비밀로 하고 있었던 사실-청교도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 더 나아가서 심오한 칼뱅주의자가 되는 것 즉 신비주의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쉬완다의 저서에 의할 때, 리차드 십스(Richard Sibbs), 프란시스 루스(Francis Rous), 토머스 굳윈(Thomas Goodwin),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존 오웬(John Owen), 카튼 매더(Cotton Mather)같은 대표적인 청교도인들도 ‘관상적 신비적 경건’을 즐겼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교도인 존 오웬은 영적 결혼에 대해,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 소망, 사랑 및 은혜를 관상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교제의 작은 일부이다”고 말했다(John Owen, Communion with God, 154). 존 오웬은 또한 그리스도와 신자가 교제할 때, “부부의 감성”(conjugal affection)이 주는 상호적 성격을 이해했으며, “주님이 그들 안에서 그들이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고 말했다(같은 책, 132).

 

쉬완다는 특히 영적 결혼(Spiritual marriage)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에 대한 성서신학적 기초를 탐구한다. 영적 결혼은 클레보의 버나드, 장 칼뱅 및 청교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가서(Song of songs)의 영해를 거부한 칼뱅과는 달리 청교도들은 버나드처럼 아가서를 신비적 성서로 이해했다. 청교도들은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영적 결혼이 주는 친밀감과 기쁨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지상적인 부부의 결혼이 주는 친밀감과 기쁨도 강조했다. 물론 그들에게 영적 결혼이 육적 결혼 보다 우선한다.

 

조나선 원(Jonathan Won)의 연구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칼뱅 보다는 클레보의 버나드를 더 따랐는데, 특히 아가서의 영해가 대표적이다.
 

아이작 앰브로즈는 ‘관상기도는 감사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contemplation as gazing at God in love out of gratitude)이라고 이해했다. 많은 학자들이 청교도들의 ‘관상적 신비적 경건’을 연구했지만 앰브로즈 만큼 아가서의 성애적(性愛的) 표현을 황홀(ravishment)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드물다. ‘황홀’이란 단어는 청교도들이 영적 결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주된 단어였다. 하나님 안의 기쁨과 즐거움은 천국의 것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황홀 체험이 주는 혜택을 쉬완다는, 하나님 경험이 주는 지식에 대한 감각 또는 새로운 깨달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나 축복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 하나님을 더 사모하고 추구하려는 욕망 및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4가지로 분류했다.

 

청교도들은 비록 로마 천주교가 말하는 ‘관상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경험적 합일’과 ‘합일 체험이 주는 황홀경’을 추구했지만 개신교의 신학적 관점에서 관상기도를 이해하고 수정한 노력이 돋보인다. 그들은 경험적 내용은 클레보의 버나드를 따랐지만 버나드가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한 반면 깔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했는데 청교도는 후자를 따랐다.

 

☞ [관상기도 특집⑦] 관상기도를 즐긴 청교도 신비주의자들
-청교도도 관상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황홀을 즐겼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청교도라면 이성적 청교도들을 강조하지만 탐 쉬완다가 말하는 청교도는 관상 기도와 신비 체험을 추구한 신비적 청교도들이다. 일반적으로 이성적 청교도들은 조나선 에드워즈가 변호한 신비 체험이나 영적 현상을 비판하지만 신비적 청교도들은 후자를 지지한다.


 

친(親) 부흥파와 반(反) 부흥파

 

조나선 에드워즈의 생전에 이미 친 부흥파의 대표인 조나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반 부흥파의 대표인 찰스 촌시(Charles Chauncy. 1592~1672)의 치열한 지상 논쟁이 부흥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에 친 부흥파는 새빛파(New Lights), 반 부흥파는 구빛파(Old lights)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친 부흥파가 우세하게 되었고 반 부흥파의 기수인 찰스 촌시는 나중에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 단일신론)의 시조로 변질되었다.

 

조지 휫필드의 열정적인 설교로 폭발된 뉴잉글랜드 지방의 부흥의 불길에 대해 곱상한 눈길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형적인 이성주의자인 제일회중교회의 찰스 촌시 목사는, 하나님의 유일한 사역은 조용하고 점진적으로 마음과 삶이 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최근 일련의 집회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종교적 광란”으로 매도했다. 오늘날 찰스 촌시의 반부흥파 신학을 계승하는 자들이 바로 미국의 존 맥아더정이철 같은 자들이다.

 

필자도 신학교 재학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은사집회에 참석하면서 집회 중에 일어나는 영적 현상-쓰러지는 현상과 황홀 체험 등-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자료들을 찾으면서 연구했다.

 

마침 신학교에서도 조나선 에드워즈에 대한 강좌(Th.M·Ph.D 과목)를 통해 조나선 에드워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적 거인에 대한 연구는 강사에 따라 관심 분야가 다르다. 학장을 역임한 두 교수의 강의를 청강했는데 한 교수는 에드워즈의 신학 중심이었고 다른 교수는 영적 체험 중심이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 중에서 에드워즈를 전공한 사람도 신학 중심인 경우가 많고 영적 체험 중심으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드물다.

 

필자는 당연히 후자에 관심을 두고 조나선 에드워드의 저서를 직접 읽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구할 수 있는 종이책은 46배판 크기에 활자가 깨알 같아서 읽기가 힘들었다. 친 부흥파 교수는 아직 출판되지 않는 에드워즈의 친필 기록을 타이프 쳐오는 학생에게 학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할 정도로 에드워즈의 영적 체험에 폭 빠져있었다. 요즈음에는 조나선 에드워즈 전집 전체가 아마존 킨들 이북(kindle e-book)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친 부흥파 교수는 특히 조나선 에드워즈의 다음의 글의 굵은 부분을 읽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그것을 마음에 적용시키는 것--영적이고 (진리를) 밝히고 거룩하게 만드는 영향력들--에 있다. 부르심 또는 복음의 제시를 영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그 영혼에게 거룩하고 신적인 축복들에 대한 어떤 영적인 감각, 또는 향기(relish)와, 하나님의 달콤하고 황홀한 은혜를 맛보게 하는데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풍성하게 충족시키시는 거룩한 장엄함과 신실성을 은혜롭게 맛보게 하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것들을 웅켜쥐도록 하여서, 그 결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확실하게 받아들여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다. . .

 

이러한 신적인 감각과 마음의 밝힘이 없이, 생각에만 영향을 끼치는 말들로만 믿게 하고 그 외의 다른 기초가 없는 것들은 맹목적인 적용에 불과하며, 이러한 것들은 어두움의 영에 속한 것들이지 빛의 영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

 

필자는 오늘날 정이철과 같은 기적중지론자이자 반 부흥파들을 보면 금방 찰스 촌시가 떠오른다. 오늘날 조지 휫필드, 조나선 에드워즈는 기억하지만 반 부흥파의 기수였던 찰스 촌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역사가 심판한 셈이다.

 

그런데 찰스 촌시와 티모시 커틀러 등의 영향을 받은 존 맥아더와 같은 반 부흥파들은 오늘날에도 에드워즈의 『종교적 감정론』이나 영적 현상 변호에 비판적이다. 골수 기적중지론자였던 행크 해너그라프가 인용한 닉 니드햄(Nick needham), 정이철이 인용하는 조지 막스덴(Jonathan Edwards: A Life) 등은 조나선 에드워즈가 지지한 영적 현상 등에 당연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 샘 스톰즈(ETS. 복음주의신학회 회장 역임) 등은 친 부흥파이자 에드워즈의 열광적 지지자이다. 존 맥아더나 정이철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반 부흥파이고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 샘 스톰즈 및 필자는 신비적 영적 현상들을 직접 체험했고 이들의 영적 유익을 많이 누리기 때문에 당연히 친 부흥파이다.

 

그런데 정이철처럼 반 부흥파적 성향을 가진 북미주 내 칼뱅주의는 쇠퇴하고 친 부흥파적 은사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결국 정이철은 자신이 교회를 몰락하게 하는 주장에 목숨을 거는 불쌍한 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다니는 셈이다. 정이철이란 잘못된 리더를 만나 줄을 잘못 선 자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20대80, 30대70의 법칙

 

세상에서는 신기하게도 20대80(파레토의 법칙), 또는 30대 70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느 팀의 판매 실적은 상위 20%가 80%의 실적을 올리고 나머지 80%가 20%의 실적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큰 교회에서도 20%가 80%의 활동을 하고 나머지 80%가 20%를 담당한다. 일 개미도 이런 비율로 일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일 개미 중 상위 20%를 제외한 후 활동을 관찰했더니 여전히 나머지 중 20%가 80%의 실적을 감당한다고 한다.

 

3·7법칙 또는 30대 70의 법칙도 있다. 지구의 30%는 육지고 나머지 70%는 바다다. 사람 몸의 70%는 물이다. 술 중독 부모를 가진 자녀 중 30%는 술 중독에서 벗어나고 나머지 70%는 술 중독자가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사회든 중도파는 60~70%이고 선도파와 수구파가 각각 15%라고 한다. 영적 체험의 관점에서 볼 때 골수 기적중지론적 교단인 예장 고신에도 기적계속론자(은사지속론자)가 70%라고 한다. 한국 교인 중에서 80%가 방언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보수 장로교단이나 정이철 같은 무체험자들이 오히려 큰 소리 칠까? 15%의 수구 골통 무체험자들 중에 교회의 기득권자들이나 신학자 및 글쟁이들이 많고, 체험자에 대한 시기와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적 체험 중 8~9가지가 좋은 것은 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것 1~2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은사사역에 대한 3대 반대 주장

 

이들은 이런 것들은 위험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열매가 좋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들 주장 대로라면 사람들이 많이 이는 위험한 자동차를 타지 말고 안전한 자건거를 타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가짜 뉴스인 기적중지론이 더 위험하다. 솥안의 개구리처럼 교회가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유수 장로교단은 교단에 따라 매년 중형교회에서 초대형 교회 하나 정도의 교인이 줄어들고 있다. 이단에게 교인 한 명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부 보수 장로교단의 교인들이 어디로 빠졌을까? 가나안(교회 ‘안 나가’) 교인이 되었을까, 이단으로 빠졌을까, 은사적 교회로 빠졌을까?

 

은사 체험과 음성듣기가 교회를 분열한다고? 예장 고신이 왜 분열했는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신사 참배한 자들과 함께 할 수 없어서 분열한 것을 자랑하지 않는가?

 

영적 체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확실한데 경험도 없는 자들이 그런 것이 잘못되었거나 마귀 장난이라 폄하하니 ‘진리’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분열하고 이탈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분열의 모범이고, 로마 천주교에서 분열해 온 개신교가 분열의 모범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교회에서는 정이철 같은 무체험자들이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났다고 큰 소리치니까 영적 체험자들이 치사하고 더러워서 은사적 교회로 옮기니까 전통적 교단들이 일제히 쇠퇴하는 것 아닌가?


 

김정은(북한 독재자), 정이철(틀린 『바른믿음』 대표), 이만희(신천지 이단 창시자)의 공통점은?
(*내용 추가 : 이 글을 올린 후에 정이철이 말도 안되는 비교 글을 올려서 비판 내용을 추가한다)
 

정이철은 조나선 에드워즈, 조셉 스미스(모르몬교 창시자), 찰스 피니(미국 제2차 대각성운동 지도자)의 공통 분모는 그들 모두가 숲에서 큰 영감을 얻고 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조나선 에드워즈의 신비 체험을 조셉 스미스의 그것과 동일시 한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이철, 이만희의 공통 분모는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문서선교나 매스컴을 통해 자기들의 사상을 전파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은 정이철은 김정은 같은 독재자, 이만희 같은 이단 괴수 무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정이철 주장의 논리적 오류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특별 은혜도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허용된 일반 은혜의 수단, 도구, 방법에 의해 전개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적 저능아가 아니면 이런 유비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자기가 비판하는 그 논리로 자기가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계에서는 이런 논리적 오류가 만연하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교회에서의 악기 사용을 금지했다. 세상의 술집에서 사용하는 불결한(?) 악기를 거룩한 교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 이주해 온 청교도들은 초기에는 멜로디가 있는 노래는 천주교의 찌꺼기라고 하여 칼뱅이 가르친 대로 단순한 창(chanting)만 했다.
-교회는 초기에 마귀 소리가 난다고 하여 오르간 사용을 금지했다.
-1980년대 말에는 교회에서 북 치고 기타 치는 것을 비판했다. 점쟁이가 북을 치고 유흥소에서 기타를 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기가 무슨 죄가 있냐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666의 도구라 해서 사용 금지 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다.
-인터넷 초기에 음란물의 도구이므로 사용 금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뉴에이지운동이나 쿤달리니 각성 체험에서 쾌락과 황홀을 추구하므로 기독교의 신비 체험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불교도 찬불(찬양)하고 기도하고 보시(헌금)한다. 기독교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불교나 기독교는 동일한가? 불신자가 보기에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는 비록 종교행위라는 외양은 비슷하지만 핵심적 가르침이나 알맹이는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영적 체험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나 비기독교 할 것 없이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영감을 얻는다. 그러나 예수를 더 잘 알기 위해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가 역사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영감을 주신다. 부처나 잡신 이름으로 구하면 잡신이 비슷한 영감을 준다. 정도가 심하면 유사 종교, 사이비 종교 창시자가 된다. 

 

정이철 주장 대로 하면 산(山) 기도하는 신자는 모두 잘못된 사람이다. 불교의 중들이나 자칭 도사들이 산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산 기도자인 모세도 정이철에 의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자인가? 정이철 무리들은 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하나님의 일을 폄하하지 말라. 스스로의 지적 수준이 저능하고 영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만  드러낼 뿐이다.

 

 

가짜 뉴스인 ‘기적중지론’에 집착하는 정이철 무리들

 

다음은 정이철이 조나선 에드워즈에 대해 쓴 글에 대한 반론 댓글에 대한 정이철의 댓글이다.

 

정이철 (댓글) 2018-11-15 09:16:39
에드워즈는 이미 예일 칼리지 대학원 때 분명한 회심을 경험했고, 성령세례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때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1737년 성자의 아름다움의 환상을 볼 때에는 이미 목회를 한참 동안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현상으로서 매우 위험함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비판 : 성령 세례  한번 받으면 추가적 재충만은 없다는 잘못된 주장)

 

정이철 (댓글) 2018-11-15 18:16:39
지금 성령체험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드워즈가 사도 요한처람 환상으로 성자의 신적 아름다움을 직접 보았다는 것이 사실인가? 으데(에드)워즈나 우리에게 그러한 특별계시 체험이 가능한가?

 

그런 일은 성경기록자들인 사도들에게는 가능하고, 성경 66원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성경 66권이 완성된 후에게 일반 신자에게 그런 특별계시가 일어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서서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가 환상으로 성자의 신적 아름다움을 맛보는 특별한 경험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비판 : 초자연적 체험은 성경 인물들만 하고  교회 시대 신자들은 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주장-구속사적 성경해석의 잘못된 적용).
 

더우기 그가 집회를 인도할 때, 쓰러지고, 울고 웃고, 실신하고, 몸이 떨고 ... 이런 괴이한 현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비판 및 설명 :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연약한 사람이 영적,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임. 일부러 조작하면 안되지만 자연스럽에 일어나는 현상을 금지할 필요도 없음. 이런 영적 현상 체험을 통해 은혜 받고 변화 받는 사람이 많음).


 

정이철의 주장은 아래의 4가지 가짜 뉴스(신학)에서 맴돌고 있다.

 

 

1. 주장 : 기적이 증거한 성경이 있으므로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없다(잘못된 증거주의).
반론 : 기적은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기능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유-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영광, 믿음을 통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이 많다.

 

2. 주장 :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더 이상의 성령 강림은 없으며 교회라는 저수지에 간직된 성령이 회심한 자에게 흘러간다는 잘못된 주장이다.
반론 :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말세에-초림과 재림 사이-에 지속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신다(행 2:16-21). 사마리아 지방과 고넬료 집안에서는 성령이 내려오셨다(행 8:16-17; 10:44).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1장 제3절). 영원히 나오시는 성령이 어디로 가시는가?

 

3. 주장 : 성경 인물의 초자연적 체험과 기적 행하는 행위는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비반복적 행위이므로 교회 시대의 본보기가 아니다?(구속사적 해석).
반론 : 예수님이나 성경 인물들이 독특한 체험이나 행위(십자가 죽음, 성경 기록)을 한 것도 있지만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로 사역한 것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다. 그런 본보기를 부인하고 사역하는 교단 마다 양적으로 몰락했거나 쇠퇴하고 있다.

 

4. 주장 : 중생한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이므로 성령을 더 이상 구하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
반론 : 베드로는 중생한 후 여러 번 성령충만을 받았고 바울도 그랬다. 중생을 위한 성령세례와(고전 12:13) 사역을 위한 성령세례(성령충만, 성령체험, 성령재충만)(행 1:5; 2:4; 4;8, 30 등)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외의 잡설. 은사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900년 동안 잠잠하다가 20세기초에 시작되었나?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500년 동안 잠잠하다가 16세기 초에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나님의 섭리다.

 

정이철은 위의 4가지 가짜 뉴스를 성경이나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의 간증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정이철은 이 4가지 가짜 원칙에 위배되는 주장이나 체험은 모두 가짜이거나 귀신 장난으로 여긴다. 방언이나 건전한 신비 체험이 없는 자들에게는 이런 주장이 전가의 보도다. 자기들의 무체험을 너무나 잘 변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험있는 사람에게는 희대의 가짜 뉴스다.

 

누가 옳은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 신자의 2/3가 체험하는 방언이나 영적 체험을 가짜라고 하는 정이철이 옳은가,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기적계속론자들이 옳은가?

 

첫째, 양적 성장과 쇠퇴가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한다.

 

정이철의 주장을 따르는 기적중지론적 칼뱅주의는 유럽, 한국 및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쇠퇴하거나 몰락하고 있다. 유럽 교회는 이미 망했고 북미주 내 기적중지론적 칼뱅주의는 전체 개신교 1억 명 중 52만 명의, 초라한 수준으로 몰락했지만 오순절주의나 은사주의 교인들은 3500만 명에서 5000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런 일이 우연이 아니다. 기적중지론적 칼뱅주의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영적 부흥과 은사운동을 지속족으로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현재의 수준으로 교세가 쪼그란 든 것이다. 자신들은 경험 보다 교리를 중시한다 했지만 기적중지론이란 잘못된 교리에 기초하여 비판했기 때문에 스스로 판 올무에 빠진 것이다.

 

제1차 대각성운동 이후1801년 미국 장로교의 바톤 스톤 목사(1772~1844)가 주도한 케인 리지 부흥운동 당시에는 제1차 대각성운동 못지 않은 생소한 영적 현상들이 일어났다. 쓰러지는 현상, 경련 현상, 웃고 우는 현상 등이 각 연령층의 신자들에게 일어났다.

 

스톤 목사는 집회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이것은 내가 목격한 어떤 행위보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사람은 행복에 겨워 입이나 코가 아니라 완전히 마음으로부터 노래를 부르는데 계속 소리를 내었다. 그러한 음악은 주위의 모든 것을 조용하게 하여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정말 천상의 것처럼 아름다웠으며 듣든 사람 중에 싫증 내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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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목사는 결론짓기를 “이상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고 광신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좋은 결과들이 각 마을마다 목격되고 인정되었다”(Sidney E. Ahlstrom, 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Yale University Press, 1972, p. 434-35)고 말했다.

 

자료 참조 : :”[쓰러지는현상⑦] 케인리지 부흥운동과 쓰러지는 현상-이후 본격적인 교단 시대가 시작되다.” 『글로리아타임스. 2014.4.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45

 

케인 리지 부흥운동의 결과 미국의 개신교 전체가 부흥을 맛보았으며 기독교는 본격적으로 교단 시대로 접어들었다. 당시 교단의 규모는 오늘날의 규모에 비하면 영세하지만 장로교, 감리교 및 침례교의 순이었다.  그러나 부흥의 결과 많은 혜택을 본 것은 주로 감리교와 침례교였다.

 

이들은 부흥의 여세에 힘입어 남서부 각 지역으로 활발한 전도사업을 벌였다. 침례교가 급성장한 것은 영적인 활력과 개인의 회심을 강조한 때문이었다. 침례교는 장로교만큼 열심은 아니었지만 장로교와 달리 목회자의 교육요건이나 노회의 헌법을 강조하기 않았기 때문에 사명을 받은 평신도가 자비로 교회를 개척해 가며 전도사업을 확장해 갔다. 

 

또한 당시에는 성공회의 한 지부 정도로 취급된 감리교는 순회 설교제도를 통해 자발적인 방법으로 전도사역을 확장해 갔다. 또한 감리교는 다른 교단들이 지나 치다고 채택하지 않은 케인 리지 캠프미팅과 같은 캠프미팅 부흥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상당한 성장을 이루었다.

(*캠프 미팅, Camp Meeting: 미국이 서부로 확장되던 시절에 야외에서 캠핑하면서 가진 집회).

 

한편 장로교는 많은 손해를 입었다. 부흥운동에 가담한 장로교의 지도자들은 소속 교단으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장로교의 성장은 다른 교단에 비해 훨씬 뒤지기 시작했다. 장로교는 교육과 헌법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입각한 교리체계는 개척지의 요구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장로교는 교리문답 체계와 지속적인 설교와 잘 교육 받은 사역자를 중심으로 한 “가르치는 교회”가 되기를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부흥회적인 설교 스타일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교단에서 갈라지는 것이었다. 케인 리지 부흥 이후 교단의 분열이 계속되어 장로교가 가장 타격을 입고 침례교도 다소 타격을 입었다. 이후 미국 내에서 교단의 서열은 침례교, 감리교 및 장로교의 순으로 굳어졌다(같은 책, pp. 435-45).

 

케인 리지 부흥운동 및 미국의 초기에 나타난 부흥 기간 중에 일어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기독교회사』잡지(Christian History, 제14권 1호)는 ‘캠프미팅 부흥운동 특집’을 통해 자세히 소개했으며 수석 편집인인 마크 갤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이후, 제1,2차 대각성 운동 및 오순절 운동 및 은사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장로교는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결과, 이제는 미국 내에서 장로교는 군소 교단으로 전락하고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을 수용한 신흥 교단들이 미국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7년 통계부터는 대표적 장로교단 교세가 일제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정이철의 주장에 동조하여 은사사역을 정죄한 예장 백석대신은 좍좍 분열되고 예장 고신은 2017년에 교세의 5% 가까운 2만 명이 줄어들었다. 한국의 보수 장로교회들이 선조들의 잘못된 교리와 습관을 답습하고, 정이철 같은 자들과 어울리면서 은사운동을 핍박하고 대적하는 한 앞으로도 몰락의 길로 치닫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 교계에서 추방되어야 할 대표적 영적 소경들

 

둘째, 조나선 에드워즈는 영적 체험 자체가 성령의 사역이라고 변호하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모든 영적 현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찰스 촌시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 마귀의 역사 및 사람의 모방과 흉내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참조 : “[쓰러지는현상⑥] 조나선 에드워즈와 쓰러지는 현상.” 『글로리아타임스』. 2014.4.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

 

특히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할 때 가라지를 뿌리는 마귀의 역공이나 사람의 흉내도 있을 수 있으므로 요한일서 4장 1절~8절을 바탕으로 설교한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의 독특한 표식들”을 바탕으로, 진정한 부흥의 5가지 요소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 사역이 진짜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그것이 세상적인 것을 대적하는가?
-그것이 사람들을 성경으로 인도하는가?
-그것이  (성경) 진리를 향상시키는가?
-그것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키는가?


 

정이철은 조나선 에드워즈가 교회에서 추방된 이유는 영적 부흥의 잘못된 열매인 것처럼 오도하는 글을 썼다. 부흥을 경험했다는 에드워즈의 교회가 교회 중직 자녀들의 스캔들에 휩싸이고 그로 인해 에드워즈가 교회에서 해고된 것처럼 오도한 것이다. 그러다가 정이철은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다른 글을 통해 에드워즈가 해고된 것은 반쪽 언약(중도 언약. Halfway-covenant)에 대한 교인들과의 견해 차이로 인해 투표 결과 9;1이라는 압도적 다수결(?)에 의해 해고된 것이라는 사실을 적시했다.

 

(*반쪽 언약[중도 언약half-way covenant].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온 칼뱅주의 목회자들은 1660년 당시, 세례는 받았지만 회심 체험이 없는 성도들의 교회 정회원 권리와 그들 자녀들의 유아 세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격한 규정이 느슨해져서, 교회는 반쪽 언약[half-way covenant]이란 제도를 도입하여 자녀들에게 유아 세례는 주었지만 회심 체험이 없는 성도들에게 교회 정회원 권리나 성찬 참여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에드워즈의 할아버지 목사인 솔로몬 스토다드 목사는 반쪽 언약을 도입하여 오랫 동안 양적 성장을 도모했지만 에드워즈는 부흥을 경험한 이후 반쪽 언약을 철폐하고 회심 체험이 없는 성인 교인의 성만찬 참석을 거부했다. 그러자 교인들은 에드워즈와 심각한 갈등에 쌓이게 되었고 이 안건을 회중 투표에 붙여서 교인들은 9;1의 압도적 차이로 에드워즈의 주장을 반대하고 그를 해고했다.

 

오늘날 교회에도 에드워즈처럼, 세례를 받았더라도 확실한 회심 체험이 있는 교인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아무리 대형교회 목사라도 에드워즈처럼 해고되지 않을까?

 

그런데 정이철은 꼼수를 사용하여 이런 사실과 에드워즈의 부흥 현상 지지를  연결시키면서, 에드워즈가 마치 부흥의 잘못된 결과로 인해 해고된 것처럼 오도하다가 양심에 찔렸는지, 별도의 기사를 통해 에드워즈가 중도(반쪽) 언약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나가는 말

 

이제 팩트(사실. Facts)는 주어졌다. 성경 기록에도 있고 교회사에도 증거가 있고 오늘날에도 조나선 에드워즈가 말하는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70%~80%에 달하지만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자들은 20~30%에 지나지 않는다. 정이철이 아무리 목숨을 걸고 반 은사운동을 벌여도 그는 무체험자 20~30%의 최극단에 속하여 '자기 의'가 뻗쳐서 하나님을 열심히 대적하는 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기적계속론자나 영적 체험자들은 서철원과 그 하수인인 정이철 무리 같은 소수자들에게 더 이상 휘둘리거나 눈치 볼 필요 없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가르쳐야 한다. 일부 교단에서 으름장을 놓아도 그것은 종이 호랑이의 절규에 불과하다. 그들도 내심으로는 안절부절하지 못할 것이다. 은사사역을 공개적으로 수용하자니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자가 없고 부인하자니 교인 이탈을 막을 방도가 없어서 좌불안석일 것이다.

 

필자는 30년 가까이 이런 사역을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가 제시한 5가지 열매를 맺는 것을 목격해 왔고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 사역을 해보지도 않고 체험을 통해 성도들의 삶을 검증하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것에 대한 비판적인 서적이나 뉴에이지 관련 서적 몇 권을 읽어보고 아는 체하는 정이철과 같은 가짜들은 이제 한국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만일 성도들 중에서도 자신이 건전한 영적 체험을 원한다면 정이철이나 박영돈(예장 고신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저자)같은 가짜에 줄서서 덜한 것(less things)으로 만족할 필요가 없다. 신자에게 3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 마귀 그리고 영적 멘토다. 정이철과 박영돈 같은 가짜에게 줄서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신령한 축복과 담 쌓고 미지근한 신앙생활에 만족하겠다는 사람들이다.

 

신령한 영적 체험은 성경 인물들이나 하고, 성령 세례-중생-를 한 번 받았으면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정이철이나 그런 체험이 없는 가짜들이 자기들의 무체험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짜 뉴스’(신학)이다. 정이철의 거짓 주장과는 달리 필자는 물론 한국 교인 2/3가 지금도 그런 체험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필자는 성경 구절 암송을 통해 일주일간 에드워즈가 말하는 신령한 기쁨과 황홀감을 누린 적이 있다. 이 경험이 사모되어 오래 동안 별짓을 다해보았지만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잊어버리고 내적치유와 새마음회개훈련에 열중했다. 그랬더니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6개월 동안 기쁨과 황홀경을 누린 적이 있다. 이때 환경은 오히려 힘들었지만 입에서는 감사와 찬송이 나오고 마음에는 기쁨이 평안이 넘쳤다. 

 

이후 회개와 채움의 기도를 조금만 해도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면서 기쁨의 웃음이 솟아난다. 그러면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은 일시에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 내가 심령 천국을 누리니 아내와 자녀들과도 관계 천국을 누린다. 요즈음 보이는 세상 것들은 좀 가졌지만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이철의 거짓말과 달리 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영적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는 분이시다. 다만 신자들이 정이철 같은 거잣말쟁이에게 속거나 구하여서 누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체험이 없다고 주장하는 정이철의 거짓에 속지 말고 실제로 받아서 누리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영적으로 유익할 것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자신이 못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받은 것이 가짜나 귀신 장난으로 매도하면 성령 소멸죄에 이어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하는 성령모독죄(훼방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초자연적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1).

 

“2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27.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3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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