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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25)] 개신교 최대 '가짜 뉴스'는 기적중지론이다서철원/정이철'의 잘못된 신학에 줄 선 교단들의 쇠퇴가 두드러짐
구요한 발행인  |  lifech06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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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7  22: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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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25)]

개신교 최대 ‘가짜 뉴스’는 기적중지론이다

-서철원정이철의 잘못된 신학에 줄 선 교단들의 쇠퇴가 두드러진다-

 

   

▲종교개혁 501주년 기념, “영성회복과 은사” 세미나에서
‘개신교 최대의 가짜 뉴스는 
기적중지론’이라고 강의하는 구요한 목사


요즈음 <에스더기도운동>에 대한「한겨레 」신문의 잘못된 ‘가짜 뉴스’ 지적으로 양측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평등 좌파는「한겨레 」신문 편을 들고 자유 우파는 <에스더기도운동> 편을 들고 있다. 전형적인 진영 논리로 각자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척하고 있지만 원칙적인 면에서 한겨레의 오류가 훨씬 많고 동조자들의 주장도 편파적인 것이 많다.
 

필자가 보기에 개신교 최대 가짜 뉴스 중의 하나는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 이후에 중지되었다는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이다. 유럽 교회는 자유신학과 기적중지론 때문에 몰락했고 미국 교회 중에서도 자유신학과 기적중지론을 수용하는 교회들은 몰락이나 쇠퇴 수준인데도 한국에서는 자유신학과 기적중지론이란 가짜 뉴스를 따르는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기존 교단에 포진하여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음 내용은 필자가 지난 10월20일,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이하여 <회개와영성회복연대>에 제출한 강의안이다. 실제 강의는 강의안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강의안을 다소 수정보완하여 자료로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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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와 성령

 

성령에 대한 교회의 이해

 

성령사역 이해에 대한 두 가지 기둥은 구원론과 은사론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분이다(엡 1:7, 13-14; 요 14:26; 15:26; 16:8-11, 13-14).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예수를 증거하게 하신다(행 1:8; 고전 12:8-10; 14:1).
 

일반적으로 전통주의는 구원론적 관점에서만 성령을 강조하고, 은사주의는 은사적 관점에서 성령을 강조하지만 구원론적 관점도 주장한다. 참고로 성경에 기록된 방언, 신유, 축사, 예언 및 초자연적 체험이 오늘날에는 중지되었다는 주장을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 Cessationism)이라 하고 이런 은사들이 계속 된다는 주장을 기적계속론(은사지속론. Continuationism)이라 한다.


기적중지론을 수용하는 전통주의 교세와 기적계속론을 지지하는 은사주의의 교세 차이는 어떻게 될까? 북미주 보수장로교단 협의회(NAPRC)가 제출한 2009~2016년 교세를 보면 전체가 52만2,863명이다. 그런데 20세기초에 시작한 오순절운동 및 은사주의 교회 성도들은 3500만 명에서 5000만 명에 이른다.


숫적으로 약 100배 차이가 난다. 왜 그런가? 전통주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인정하지 않고 은사주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은사적 교인은 약 7억 명이고 전통주의 교인은 그 반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그 차이는 계속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표적 장로교단들도 2016년 까지는 소폭의 등락을 유지하다가 2017년부터(2018년 각 교단 교세 보고)는 일제히 교세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한국 대표적 장로교단의 교세 증감세.
2017년(2018년 통계)부터 일제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특히 서철원
·정이철의 골수 기적중지론을 용인하거나 지지하면서 은사운동을 대적하거나 정죄한 보수 장로교단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잘못된 신학-기적중지론-은 교세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유럽 및 미국 교계에 이어 한국 교계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장로교단은 각성하거나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완악하여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대적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보수 장로교가 신자의 70% 정도를 점유하는 장로교 대국이다. 그러나 장로교단 내에서도 은사주의자들이 많다. 비공식 집계지만 한국 교인 중 70~80%가 방언을 하고, 깐깐하게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예장 고신도 약 2/3의 목회자나 평신도가 기적계속론을 믿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교단 실세나 신학자들 중에는 기적중지론자들이 많으므로 숫적으로 많은 은사주의자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런 현상은 바꾸어져야 한다. 왜 다수의 은사주의자들이 소수의 전통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 생활이나 은사 사역을 해야 하나? 은사주의자들이 단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나라 인구의 2~4% 정도밖에 되지 않는 패륜적 동성애자들도 오래 동안 핍박과 서러움을 겪어오다가 단결하여 정치 세력화 한 결과, 이제는 서구 선진국을 동성애 천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데 왜 하나님의 좋은 것을 가진 은사자들이 비은사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비굴하게 사역을 해야 하는가?


이제 은사 사역자들은 서로 뭉쳐서 죽어가는 한국 교회를 살려야 한다. 기적중지론자들에게 한국 교회를 맡기기에는 사태가 너무나 심각하다.


 

성경의 기록들

 

은사사역은 성경 전체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에서 선지자나 사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 사람들이다(창 41:49; 민 11:27-29; 27:18; 신 34:9; 삼상 10:7-10; 단 5:14; 6:23; 삿 6;34; 13:25 등). 신약의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했다(행 1:8; 2:4; 8:14-17). 성경은 신자들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사역하라고 기록한다(행 1:8; 고전 14:1; 막 16:15-18). 

 

그런데 오늘날 전통주의 교회는 왜 신자들이 기적행하는 은사(들)를 받아서 사역하는 것을 반대할까? 교회사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자.


 

유대인의 기적중지론

 

기적중지론은 원래 기독교 교회가 아니라 주후 1세기부터 3세기까지 이교도(paganism), 정통 유대교 및 기독교 분파에서 발생한 것이다. 초기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기적중지론을 개발했다(신 13,18장).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서 기적이 중지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기독교 교부들에게 공격의 단초가 되었다. 저스틴(100-165년 경), 오리겐(185-254년 경) 및 키릴로스(315-386) 등의 기독교 변증가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에게서 예언의 영과 기적을 거두셔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호의의 증거로 그것들을 교회에 부여하셨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유대인의 이상한 형태의 기적관인 증거주의(evidentialism)를 채택하게 되었다. 증거주의란 기적의 주된 목적은 기적행하는 자의 교리를 인증하고 입증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말한다. 오늘날 잘못된 증거주의에 의해 기적중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초대교회 시대(A.D. 30~600년)

 

초대교회의 교부들 중에서도 기적중지론자와 기적계속론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기적중지론자들은 다음과 같다.
 

피토의 빅토리아(Victoria of Petau. 304경 사망). 계시록 주석에서 “사도들은 표적, 기사 및 놀라운 일들을 통해 불신자들을 정복했다. 이후에, 해석된 예언적 성경의 편안함이 교회의 신앙에 주어졌다.”
 

크리소스톰(Chrysostom. 347~407). “황금의 입”을 가졌다는 명 설교가인 그는 오순절에 대한 그의 첫 설교에서, ‘왜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방언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을 교인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다고 불평했다. 기적에 대한 크리소스톰의 대부분의 견해는 기적 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기적은 한때의 연약한 믿음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강력한 기적은 관찰자들의 믿음을 사악하고 연약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이 뿌리를 내리면 기적은 중지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오늘날 모든 표적 보다 가장 위대한 표적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므로 어느 누구도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외에, 우리가 기독교인의 사랑을 최고의 은사로 선택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표적이 필요 없다. 나중에 칼뱅이 크리소스톰의 기적중지론을 상당히 차용하여 사용했다.
 

그레고리 대제(Gregory the Great. 540~604). 초기에는 기적계속론자였지만 590년 경에는 변심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모범적인(?) 기적중지론을 창안했다.
 

그는 초기의 기적적인 은사(들)이 이후에는 통상적인 교회의 사역에 필요한 영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을 개발했다. 즉 예언은 설교나 가르침이 되고, 기적적인 신유는 ‘중생’이 되고, ‘소경’은 복음의 빛을 보고, ‘앉은뱅이’는 의의 길을 걷고, ‘죽은 자’는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기적계속론자들도 많이 있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00~165). 저스틴은 신유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전세계 및 여러분들의 도시에 있는 수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을 위해서, 신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좇아냈다.”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0). 이레니우스도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에서 은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그리고 틀림없이 귀신을 쫓아내어서, 이렇게 귀신 쫓김을 받아서 깨끗하게 된 사람들이 자주 교회의 일원이 된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사전 지식(foreknowledge)을 가진다.”
 

오리겐(Origen. 185~254).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하는 교부인 오리겐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에 의해 우리도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나 마귀의 힘으로 치유될 수 없는, 슬픈 곤경과 마음의 혼란들, 미친병 및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질병에서 놓여난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키프리안(Cyprian. 200-258)

라틴어 교부인 키프리안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밤에 보는 환상 외에도 낮에도 순진한 어린 아이들이 성령 충만하여 황홀한 상태에서 눈으로 환상을 보고, 주님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가르치시기를 원하는 것들을 듣고 말했다.
 

펠루시움의 이시도어(Isidore of Pelusium. 450년경 사망). 사랑이 최고의 은사라는 크리소스톰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애굽의 사막 교부(desert father) 수도사인 이시도어는 “만일 교사들의 삶이 사도들의 행동을 회복한다면, 기적은 아마 지금도 일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초기에 그는 기적중지론자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나중에 불치의 암에 걸린 친구가 기적적으로 낫게 되자 기적중지론을 버리고 기적계속론자로 돌아서고, 유명한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에 70건 이상의 기적 사건을 기록했다.
 

그러나 나중에 칼뱅, 벤자민 워필드나 존 맥아더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후기 어거스틴이 아니라 전기 어거스틴의 주장을 인용한다.
 

정리하면, 교부들 중에서도 기적중지론자가 있고 기적계속론자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교회는 기적중지론을 따른 칼뱅의 주장을 계승해 왔다.


 

초대교회의 기적중지론에 영향을 끼친 사건들

 

기적중지론자들은 초대교회 이후 기적행하는 은사는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교회사가 이를 증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잠시 살펴 본 바와 같이 역사란 누구의 관점에서 기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의 일련의 연구는 교회가 어떻게 기적행하는 은사를 소멸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1세기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는 사제들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사도 시대 이후 교회의 계급 체계가 형성되고 각 도시를 담당하는 주교(Bishop)가 임명되고 사제와 평신도가 구분되어 주교와 사제들이 교회의 사역을 주도하면서, 98%의 평신도들은 구경꾼이 되고 예언과 치유 은사는 교회의 정식 직분자의 기능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예언의 은사는 몬타너스의 등장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몬타너스의 후유증으로, 자라 보고 놀람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교회는 이후부터 예언의 은사와 기타 기적행하는 은사를 색안경을 끼고 보면서 적극적으로 배척하기 시작했다.
 

둘째, 기적중지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각종 교리의 형성이다. 신학은 삼위일체의 본질,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성령의 인격과 같은 변증적이고 교리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게 되어 성령의 은사나 성령 안에서의 일상생활은 자연스럽게 이런 교리들에 종속되어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4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수도원 운동은 은사가 아니라 철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치유와 축사의 은사를 받았지만 당대의 스토아 학파와 신플라톤 철학에 압도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고통과 질병을 용기있게 감내해야 한다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울러 모든 신자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성경의 핵심으로 이해했다(고후 1:5-7; 빌 3:10).


 

중세 가톨릭 교회의 기적관(A.D. 590~1500)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거스틴은 초기에는 중지론자였지만 나중에는 친구의 기적적 치유를 목격하여 계속론자로 변신했다. 그러나 결함이 무엇이든지 간에 많은 결함을 지닌 카톨릭 신학은 어거스틴의 원래의 기적중지론을 거부했다. 카톨릭 신학은 기적과 치유와 성령의 은사가 (비록 드물더라도) 계속 일어 난다는 믿음을 유지했다. 이 점은 기적들을 모조리 부정했던 신교도의 입장보다 우수한 것이었다.

 

토머스 아퀴너스(Thomas Aquinas. 1225~74). 중세 천주교 신학의 대가인 아퀴너스는 20세기까지 영향을 끼친 기적중지론의 모형을 개발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입각한 기적중지론을 창안했다.
 

아퀴너스에 의하면, 기적의 중심적 기능은 기독교 교리의 신적 기원과 진리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자신의 당대에 기적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기적을 통해 믿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증거했기 때문에 더 이상 교리를 입증할 기적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종교개혁 시대(A.D. 1517~1648)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오늘날에는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귀를 쫓아내고, 소경이 다시 보는 기적이 눈에 보이게 일어나지 않지만, 요 14:12의 말씀처럼 더 큰 기적이 영혼에서는 일어난다고 말했다. 루터는 비록 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기적은 ‘과거’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장 칼뱅(John Calvin. 1509~64). 개신교 기적중지론의 대부는 칼뱅이다. 칼뱅은 크리소스톰, 전기 어거스틴 및 아퀴너스 등의 신학과 이론으로 무장한 칼뱅은 『기독교강요』 “서문”에서 가톨릭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칼뱅은 ‘우리에게 기적을 요구하는 그들은 부정직하게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미 기적으로 입증한 바로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거짓으로 고안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이런 목적을 이미 달성했으므로 우리가 전하는 말을 더 이상 기적으로 입증한 필요가 없다. 그런데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가톨릭에 기적이 지금도 지속된다고 하니 그런 기적은 사탄이나 적그리스도가 행하는 기적임에 틀림 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칼뱅은 성경의 주석 군데군데에서 자신의 당시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한 탓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했다.


 

계몽주의 시대(1650-1790년 경)

 

계몽주의 시대에는 개신교적 성경의 권위에서 인간의 이성 중심의 권위로 전환되는 심오한 변동이 일어난 시기이다. 계몽주의 시대에 몇 가지 중요한 기적중지론이 발전되었다.
 

첫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그 운행은 자연 법칙에 맡기셨다(이신론. Deism). 이런 전제와 함께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기적이 기독교의 권위를 입증하는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둘째, 이신론자들과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종교적 교리의 독단(dogmatism)을 부인하고 자신들의 인간적 독단을 주창했다.
 

마지막으로, 이신론자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기독교 계시의 역사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의심스러운 열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계시의 신빙성 때문이고, 둘째는 믿지 못할 교부들의 간증을 바탕으로 한 로마 가톨릭의 규칙과 전통 때문이고, 셋째는 계시와는 독립적으로 “상식”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자연” 종교에 대한 이신론자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영적 부흥의 지도자들: 조나선 에드워즈, 조지 윗필드, 요한 웨슬리

 

칼뱅주의 5대 강령을 수용하면서도 신유, 방언과 예언 및 축사가 교회 시대에도 계속된다고 주장하는 신칼뱅주의 주창자인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를 역임한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내가 존경하고 나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온 역사적으로 모든 위대한 목사와 교사들(장 칼뱅, 마르틴 루터, 존 오웬, 조나선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벤자민 워필드, 내 부친)이………표적과 기사가 사도시대만을 위해 존재했다는 주장하는 그룹에 속해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이후 그의 부친은 계속론자로 전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찰스 스펄전 등 몇 명이 실제로 기적중지론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심오하고 통찰력 있는 신학으로 필자를 신학적, 영적으로 성장시킨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기적중지론자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처럼 유명한 신학자들도 인간적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유한하고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존 파이퍼가 말한 대로 이미 살펴본 칼뱅이나 루터는 물론 미국의 제1차 영적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조나선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등은 기적중지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성주의의 기세가 등등했던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이다.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조나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58)는 기적행하는 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언, 기적, 예언의 은사 등과 같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는 ‘특별한 것’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통상적인 섭리에서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다루시는 통상적인 섭리가 아니라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사도나 선지자 및 초대 교회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 주어져서 세상에 교회를 창설하고 설립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성경 기록이 완성되고 기독교 교회가 완전히 창설되고 설립된 이후에 이 특별한 은사들은 중지되었다.”

 

위대한 부흥운동가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70)도 이렇게 반문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더 큰 기적이 행해지는 것을 매일 목격하고 있는데 병든 몸이 치유되고 소경이 다시 보는 기적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17세기 영국의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은 이렇게 말했다. “그 자체로 우리의 심적 기능을 능가하는 은사 [방언, 예언, 치유능력]는 오래 전에 중지된 성령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며, 오늘날 그런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행세하는 것은 열광적인 기만으로 의심받는 것이 마땅하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기적은 중지되었지만 사도시대가 아니라 로마제국이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을 때 중지되었다고 주장했다. 웨슬리는 교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한 것이 기적이 중지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웨슬리는 기적이 중지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떤 종류나 정도에 상관없이 기적을 행하시는 그분의 주권적 능력을 배제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도시대나 키프리안 시대는 물론 어떤 시대에도, 모든 것이 회복될 때까지, 기적이 제한되었다는 성경 기록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이런 종류의 위협(기적중지론)을 관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을 보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웨슬리는 기적이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공식화되면서 중지되었지만 경험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중지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여 이후에 기적이 나타나도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reckinride Warfield. 1851~1921)

 

프란시스 튜레틴-찰스 하지로 이어지는 구(舊) 프린스턴 신학의 착실한 계승자인 벤자민 워필드가 칼뱅의 기적중지론에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을 가미하여 집필한 『가짜 기적』(Counterfeit Miracles, 1918)은 이후 기적중지론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의 폐해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Scottish Common Sense Philosophy)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사람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알 수 있다는 사상이다. 진리는 정적인 것(static)이고 공개적인 것이므로 시공을 초월하여 누구나 검증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 여부도 관련된 증거를 모두 취합하여 검증한 후에 결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식 철학’은 특히 미국 장로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대 학장인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의 존 위더스푼(John Witherspoon) 목사는 스코틀랜드의 상식 철학을, 벤자민 워필드가 서거한 1921년까지, 신학교 교육에 철저하게 적용시켰다. 워필드는 ‘상식 철학’의 마지막 주창자인 제임스 맥코쉬(James McCosh)가 신학교의 학장일 때인 1868년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제자였다.
 

프린스턴의 ‘상식 철학’은, 누구든지 자신의 경험적, 변증적 관점이나 기적중지론적 논증에 따라 이성적으로 종교적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워필드는 이런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워필드는 신학하는 인간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낙관했다고 할 수 있다.
 

김영한 박사는 “특히 찰스 핫지 (Charles Hodge)와 워필드 등의 구(舊)프린스턴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한국 장로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러한 신학적 편견(기적중지론)에 집착하여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시키는 잘못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고 주장한다.
 

김 박사는 또한 “은사중지론-기적중지론(cessationism)의 거두(巨頭)인 워필드가 유신론적 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 였다는 사실은 세상사에 대하여 그가 초자연적 개입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상사를 오로지 다윈 진화론의 적자생존의 법칙에 맡기려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한수 교수는 맥스 터너(Max Turner)의 평가를 바탕으로 ‘상식 철학’의 허구를 비판한다. 이한수 교수는 “워필드가 추종하는 상식 철학과 그것에 기초한 실재론적 인식론은 오늘날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식 철학에 내재된 치명적인 약점은 '상식' 이란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니라는데 있다. 사람들은 동일한 증거를 두고도 전혀 반대되는 결론들을 끌어내곤 한다”고 비판한다.

 

계몽주의의 고전적 물리학과 현대의 양자역학 워필드의 견해는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은 물론 계몽주의 시대에 개발된 존 뉴톤(John Newton. 1725-1807)의 고전물리학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전물리학의 세계는 정신과 물질은 분리되어 있고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 하나님이 제정하신 자연 법칙에 의해 운행되는 닫힌 세계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발달된 양자역학(Quantum Physics)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만물은 서로가 에너지를 통해 연결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양자역학은 심지어는 자연 과학의 연구조차 연구자에 따라 세우는 가설이나 취합하는 자료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칼뱅의 기적중지론 답습 및 개악 워필드는, 기적은 원래 예수님에게 내재해 있던 능력이 사도들에게 전이된 것인데, “사도들이 하나님의 정당한 권위를 위임 받은 대표들이라는 사실을 확증 (authentication)”하기 위해서 기적이 일어났으며, 사도시대가 끝났으므로 기적은 “필연적으로 또는 필요에 의해 소멸되었다”(necessarily passed away)고 주장한다.
 

워필드의 주장은 한 마디로 성경의 주석적 근거가 없는 “자신의 경험 또는 무경험”에 의한 논쟁에 불과하다. 기적중지론자인 리차드 개핀 교수(Richard Gaffin, Jr)조차 워필드의 주장은 주석적 근거가 없는 역사적인 경험-또는 무경험-에 의한 주장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이상에서 잠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기적중지론은 편견과 독단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논리를 앞세워 성경의 기록을 왜곡하여서 반대파들을 대항하기 위한 논증법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성령세례 논쟁

 

『미국•캐나다 교회 연감 1990-96』에 보면 의미 있는 통계가 나온다. 이 연감은 지난 30년간 여러 교단의 교세 증감을 기록한 책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요한의 물세례는 상징이고 고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의 성령 세례는 동일하게 구원을 받는 성령 세례라고 해석하는 기적중지론적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등은 교세가 감소했다.
 

그러나 두 가지 성령 세례를 구분하여 비록 구원받는 성령 세례를 받았더라도 능력받는 성령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해석한 남침례교단의 일부, 오순절계통이나 은사주의 계통의 교단은 급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하는 교회의 대부분은 후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령 세례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령 세례에 대한 주장은 중생(제1의 축복), 성결(제2의 축복. Purity) 및 능력(제3의 축복. Power)에 이르는 제3의 축복까지 주장한다.
 

청교도. 중생 이후의 ‘구원의 확신’을 위한 성령 세례를 강조한다(존 오웬, 토머스 굳윈, 마틴 로이드-존스). 이처럼 ‘중생 이후의 성령 체험’은 원래 칼뱅주의 청교도가 시작한 교리이고 나중에 로이드 존스가 확인했다. 그런데 요한 웨슬리가 칼뱅주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성령 세례’ 대신에 ‘제2의 축복’이나 ‘완전 성화’ 체험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후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가들이 차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제2의 축복인 성령 세례(성령 체험)를 비판하고, 특히 정이철은 로이드 존스를 포함하여 중생 이후의 성령 체험 주창자들을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누워서 침 뱉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주의. 중생하면 성령세례(고전 12:13)를 받는다. 더 이상의 성령을 구하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제임스 던, 서철원, 박영돈, 정이철 등).


성결운동. 중생한 자도 제2의 축복인 성결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완전성화).
 

무디와 토레이의 부흥운동. 제2의 축복으로 성결(purity) 대신 능력(power)을 채택했다.
 

초기 오순절운동(찰스 파함, 윌리엄 시모어). 중생하고 성결의 성령을 받아도 능력의 성령을 받아야 한다(제3의 축복)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성회(미국 순복음교단 설립자 윌리엄 더햄). 중생과 능력 및 점진적 성화를 주창하면서 자기에게 성령을 받게 한 찰스 파함과 윌리엄 시모어가 성결의 영을 주장한다고 해서 교단에서 추방했다.
 

바른 견해. 중생-성결-능력의 제3축복에 이어 제4, 제5, 제N의 축복도 가능하다(안토니 후크마, D.A. 카슨). 성결과 능력의 영은 순서가 바꾸어 질 수도 있다. 요한 웨슬리도 중생-성결-능력의 영을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20세기의 기적중지론

 

20세기에 새로 추가된 기적중지론은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의 저수지론에 의한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 제2차 대전 전(前) 화란 개혁주의자들의 자유신학의 ‘모범적 성경해석’에 대항하기 위한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의한 기적중지론, 제임스 던(1939~)의 ‘중생이 성령 세례이므로 더 이상의 성령을 구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들이다.

 

전통적 개혁주의 기적중지론

 

전통적 개혁주의 기적중지론은 다음의 4가지 '가짜 뉴스'에 기초를 두고 있다.

 

1. 기적이 증거한 성경이 있으므로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없다(잘못된 증거주의). 기적은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기능 외에도 수많은 다른 기능이 많다.
 

2.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더 이상의 성령 강림은 없으며 교회라는 저수지에 간직된 성령이 회심한 자에게 흘러간다는 잘못된 주장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말세에-초림과 재림 사이-에 지속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신다(행 2:16-21). 사마리아 지방과 고넬료 집안에서는 성령이 내려오셨다(행 8:16-17; 10:44).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1장 제3절). 영원히 나오시는 성령이 어디로 가시는가?
 

3. 성경 인물의 초자연적 체험과 기적 행하는 행위는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비반복적 행위이므로 교회 시대의 본보기가 아니다?(구속사적 해석). 예수님이나 성경 인물들이 독특한 체험이나 행위(십자가 죽음, 성경 기록)을 한 것도 있지만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로 사역한 것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다. 그런 본보기를 부인하고 사역하는 교단 마다 양적으로 몰락했거나 쇠퇴하고 있다.
 

4. 중생한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이므로 성령을 더 이상 구하거나 받을 필요가 없다? 베드로는 중생한 후 여러 번 성령충만을 받았고 바울도 그랬다. 중생을 위한 성령세례와(고전 12:13) 사역을 위한 성령세례(성령충만, 성령체험, 성령재충만)(행 1:5; 2:4; 4;8, 30 등)은 모든 신자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외의 잡설. 은사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900년 동안 잠잠하다가 20세기초에 시작되었나?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운동이라면 왜 1500년 동안 잠잠하다가 16세기 초에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고민은 해보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나님의 섭리다.
 

그러나 교회사를 볼 때, 성경의 모든 진리가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점진적으로 드러났다. 혹사는 이를 성경 기록의 점진적 계시와 비교하여 계시의 점진적 조명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초대교회(A.D. 600년)까지는 정경의 확정, 삼위일체, 에수님의 인성과 신성 교리가 확립되었다. 중세 100년의 암흑기를 거친 후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을 통한 이신칭의 교리, 18세기 요한 웨슬리와 이후의 성결운동, 19세기 말의 전도 운동(D.L. 무디. 르우벤 토레이), 20세기 초의 오순절 성령운동을 통해 숨겨졌던 성경의 진리가 점진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적중지론적 개혁주의자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기들만 제대로 들어쓰신다는 착각과 오만으로 다른 운동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다가 마침내 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정리하면, 기적중지론자들은 위의 4가지 ‘가짜 뉴스’를 통해 자신들이 초자연적 체험을 하지 못하고 초자연적 은사를 받지 못하거나 구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다. 한편 훨씬 더 많은 신자들이 이런 '가짜 뉴스'에 속지 않고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은사나 능력을 사모하고 구하고 받아서 지금 잘 누리고 잘 사용하고 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초자연적 은사들)을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7).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20세기 은사운동 개요

 

크레이그 키너(Craig S. Keener)의 『기적: 신약 사례의 신빙성』(Miracles: The Credibility of the New Testament Accounts, Baker Academic, 2011)에 의하면, 지난 30동안 전 세계적으로 은사운동의 성장에 대한 ‘표적과 기사’의 기여율이 70%라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회심자의 반 이상이 치유를 경험했고, 에콰도르에서는 20%이상이 치유 경험을 통해 회심했고, 필립핀에서는 인터뷰 한 사람의 83%가 치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400년 전에 미국에 소개된 칼뱅주의 청교도의 후손인 보수 장로교인은 현재 52만 명으로 몰락했지만 불과 100년 전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과 은사운동에 의한 교인 수는 3500만명~5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오순절 성령운동. 20세기 초에 찰스 파함(1873~1929)이,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 세례의 외적 표적은 방언(행 1:5; 2:4)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1906년, 흑인 목사인 윌리암 시모어(1870~1922)의 아주사 거리 부흥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방언, 신유, 축사가 주요 사역이다.

 

늦은비 성령 운동(욜 2:23). 1948년, 오순절 교회의 냉랭함과 제도화에 식상한 캐나다 오순절 교인들을 통해 시작된 운동이다, 이들은 오순절교회의 가르침과 사역에 더하여 안수를 통한 치유, 은사전이와 예언사역을 강조하고,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주장했다.

 

은사운동. 1960년대에 성공회의 데니스 베넷(1917~1991) 신부를 통해 방언 운동이 기존 교단에 퍼지기 시작한 은사운동이다. 이들은 성령체험을 하면 방언은 물론 여러 가지 다른 현상도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제3의 물결 운동. 1970년대 풀러신학교 교수인 피터 와그너 교수(1930~2016)와 존 윔버 목사(1934~1997)가 실시한 기적 교육을 통해 시작된 운동이다. 이들은 모든 신자를 능력 전도자와 능력 치유자로 무장시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고 주장한다(엡 4:12).
 

예수전도단(YWAM). 로렌 커닝햄(1936~ )이 설립한 선교단체로서 내적치유와 하나님의 음성듣기, 전략적 중보기도와 영적전쟁을 주요 사역으로 하고 있다.

 

신사도운동. 1990년대에 피터 와그너가 시작한 운동이다. 이전의 모든 은사사역 위에 사도와 선지자 직분(직임. office)(엡 4:11) 회복을 통해 교회성장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도모하는 운동이다.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 직분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사도와 선지자는 성경을 기록한 ‘토대적 사도와 선지자’가 아니라 ‘교회를 개척하고 돌보는 사도와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교회 분립 운동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 ‘대형 교회 한 개 보다 중형 교회 10개가 낫다’는 슬로건도 있다. 교회 분립 운동은 탐욕의 대상이자 성장 정체에 빠진 한국 교회에 대한 좋은 처방전이다.


신사도운동의 핵심이 바로 성령의 은사와 리더십에 의한 교회 개척과 분립 운동이다. 그런데 이런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를 ‘사도’와 ‘선지자’라고 성급하게 명칭하는 바람에 거부감을 일으켜 교회 개척과 분립이라는 좋은 의도와 열매가 가려져 버렸다..


또한 한국에 신사도운동을 소개한 자들도 교회 개척과 분립이라는 원래 목적 보다는 기름부음 전수-물론 좋은 것이지만-에만 치중하다 보니 영적 동력을 상실한 것 같다.

 

신칼뱅주의. 칼뱅주의의 5대 강령에 입각한 구원론을 수용하며, 감정 보다는 심오한 교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 성화를 주장한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조나선 에드워즈의 주장을 따르고, 문화적으로 친근하여 예배 시간에 CCM을 부름은 물론 복장도 탈 전통적이며, 기적계속론을 주창하는 개혁주의자들이다.
 

존 파이퍼, 웨인 그루뎀, 마크 드리스콜 등이 주요 주창자인데, 특히 보수적인 침례교와 침례교신학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성장하고 있다.


 

나가는 말

 

성경의 교리와 실천은 교회 시대를 통해 지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성경에는 있지만 교회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기득권에 젖은 자들은 보수와 수구에 안주하기 보다는 개혁과 변화란 성장통을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생소한 은사 사역을 비판하고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는 교세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사실을 오늘날의 통계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구호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해야 한다.


그런데 정이철처럼 목숨을 걸고 역주행하는 인간을 추종하는 불쌍한 자들이나 교단들-예장 백석대신과 예장 고신 등-도 있다. 소경을 따르는 소경들도 구덩이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정이철은 최근의 한 강의에서, 조나선 에드워즈가 철저한 칼뱅주의자이지만 오순절주의자가 주장하는 신비적 체험을 옹호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강의했다.

 

필자는, 조나선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오히려 기적중지론적 칼뱅주의자들이 본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전한 영적 체험이 없는 자들에게는 무엇이든 (잘못된) 신비 체험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신비 체험을 하는 신자들이 많은데, 비록 그가 당시 계몽주의 영향으로 초자연적 은사는 부인했지만 신비 체험과 영적 현상을 긍정하고 분별력을 제시한 것은 교회의 큰 축복이다.

 

건전한 영적 체험이나 은사 체험이 없이 이런 것들을 비판하는 정이철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야 말로 개신교 최대의 가짜 뉴스인 기적중지론의 희생자들이다. 이런 ‘가짜 뉴스’를 제작하고 가르치고 전파하고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큰 화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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