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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 칼럼00] 예장 고신 양결 목사의 거침 없는 신사도운동예장 고신의 위선적 이중성, 나팔 부는 어용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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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2  17: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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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 칼럼 00]

예장 고신 양결 목사의 거침 없는 신사도운동

- 예장 고신의 위선적 이중성, 나팔 부는 어용 언론들-

 

   

▲예장 고신의 양결 목사가 주도하는 대표적 신사도운동 사역인
<오중직임세미나> 홍보 내용


예장 고신은 지난 68회 총회에서, 필자의 사상은 '현대 은사주의나 신사도 운동의 성령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이단적 판정을 내렸다. 자기들의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 신학은 옳고 필자의 기적계속론(은사지속론) 신학은 이단적이라는 것이다. 

 

예장 고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적중지론이 그처럼 옳다면 왜 전 세계적으로 그런 신학을 고수하는 교회는 망하거나 몰락할까? 유럽 교회는 거의 망한 수준이고 북미주 교회들은 몰락 수준이다.

 

   
▲기적중지론적 칼뱅주의 신학을 수용하는 북미주-미국 및 캐나다- 내 보수 장로 교회들의 교세. 개신교 신자를 1억 명으로 산정할 때 52만 명(0.5%)의 처참한 수준으로 몰락했다. 자료 : 위키피디아

 

한편, 바나 리서치 그룹(Barner Research Group)에 의하면, 1990년대에 미국 신자의 36%가 자신은 은사주의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는 그 숫자가 51%로 증가했다. 개신교회 출석자의 46%가 자신은 은사주의자라고 했다.

 

이 퍼센트를 북미주 개신교 숫자에 대입하면 북미주에서 개신교 은사주의 신자는 3600만 명에서 51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내 은사주의 교인은 보수 장로교인 52만 명의 거의 100배에 달하는 숫자다. 결국 예장 고신은 교회를 망하게 한 신학으로 교회를 흥하게 하는 신학을 이단적으로 정죄한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국 장로 교회들도 종교개혁 501주년인 올해부터 일제히 교세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소폭의 등락을 하던 장로교단이 올해부터는 일제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동시에 은사 사역자들에 대한 정죄나 신학검증 헌의도 유례 없이 많이 올라왔었다.

 

   

▲한국 주요 장로교단의 교세 증감. 2018년 통계부터 일제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국 장로교단이 1990년 이래 답보상태에 있다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는데 그와 동시에 은사사역에 대한 핍박과 대적도 더 심해졌다는 소리다.

 

장로 교단들이 은사 사역자들을 교세 하락의 희생양으로 지목하여 정죄함과 동시에 자기들의 교세도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종교개혁 500주년까지 하나님이 한국 교회들에게 자유신학과 WCC/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배교, 기적중지론을 통한 은사사역 대적 및 윤리도덕적 타락에 대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이제는 때가 지나서 하나님이 심판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인일지도 모른다.

 

유럽 교회나 미국 교회의 사례를 보면 동성애 인정 교단은, PCUSA처럼 급격하게 둘로 갈라졌지만, 북미주 보수 장로교단들처럼 은사 대적 교회들은 서서히 고사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도 이제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예장 고신이 이런 추세로 감소하면 20년 후에는 교단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예장 고신은 개혁하거나 각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적계속론을 주창하는 필자를 교단 힘을 빌어 이단적이라고 정죄했다.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과 기적계속론(은사지속론)

 

기적중지론은 사도 시대 이후에는 방언, 신유, 축사, 예언과 같은 기적행하는 은사(들)(고전 12:8-10)이나 초자연적 신비 체험을 부인하기 위해 다양한 신학을 전개한다.

 

-성경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고, 사도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이고, 전하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적이 증거한 성경을 갖고 있으므로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 없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회적이다. 이후의 성령사역은 교회라는 저수지에 담긴 성령이 이동하는 것이다(저수지론). 거듭난 개인은 이미 성령을 받았다. 성령충만은 이미 받은 내주하시는 성령을 활성화하는 것이지 다시 받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행하는 은사(들)나 초자연적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비반복적이고 독특한 사건들이다. 신자들의 본보기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중생한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다(고전 12;13). 중생하여 성령을 받은 신자는 더 이상 성령을 구할 필요도 없고 다시 받을 필요도 없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주로 위의 4가지 인위적 신학으로 교회 시대의 기적을 부인한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하실 필요가 없어서 행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학은 수많은 신학자들이 자기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 인간의 신학에 불과하다. 이러한 신학을 고수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교회들은 거의 몰락했다.

 

 

그러나 실제로 기적을 제대로 체험한 기적계속론자들은 이들과 다르게 성경을 해석한다. 그러면 기적중지론자들은 왜 체험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무체험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가? 건전한 체험 없는 성경 해석은 무체험 중심의 이론적이고 사변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런데 특급 이단 제조자 정이철과 예장 고신이 이런 신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건전한 체험이 있는 기적계속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성경을 해석한다.

 

-성경이 말하는 기적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

 

성경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고, 사도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이고,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것 외에도 기적의 기능은 이외에도 많다.

 

-기적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한다(요 3:2; 9:32-33; 10:25; 14:11; 행 2:22).

-기적은 사도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고 그들의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고전 2:4; 고후 12:12; 히 2:4; 롬 15:18).

-예수―성령―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마 12:28)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기적을 베푸신다(마 14;4; 15;32; 20:34; 막 1:41; 5:19 등).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다(출 14:4; 요 11:4; 2:11; 행 3:12-13; 마 5:30-31; 눅 17:17-18).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다(출 14:31; 왕상 18:39; 요 2:11; 7:31; 11:45 등)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 기적을 행하신다(마 8:5-10; 9:1-2,22,27-29; 15:27-28; 행 14:8-10)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왕상 17:1-16; 17-24; 18:41-46 등)

-하나님의 약속에 응하시거나 또는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을 행하신다(약 4:2하; 5:14-16)

-신자들이 전파하는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막 16:20; 행 14:3)

-사람들을 모아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마 4:24-25; 행 3:9-10).

-기존의 사역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 마 8:14-15; 행 9:36-42; 고전 12:7, 14:4, 12,26).

 


물론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완전하고 즉각적인 치유를 한 기록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들 중에서는 그런 정도의 능력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배교 때문에(시 74; 77:7-14)

-율법주의(사 29:10-13)와 미지근한 신앙 때문에(계 3:16-17).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에(마 13:58; 막 6:5-6).

-고난의 구속사적 가치를 위해(고후 12:8-10; 벧후 1:6-7).

-하나님의 신비로운 주권(요 5:1-15)?

 

 

그리고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말씀과 기적으로 사역을 하였는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오늘날의 우리는 말씀만으로 사역하라고 한다. 그니까 일반적으로 그런 교회들의 성장이 지지부진하거나 몰락해 가는 것이다.

 

정이철 같은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은 그렇다면 ‘왜 교회사에 기적 기록이 없다가 20세기에 나타났느냐, 그래서 가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왜 16세기에 일어났는가? 그래서 가짜인가?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회적이 아니고 반복적이다

 

성령 강림은 말세에 그러니까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반복적으로 강림한다(행 2:17). 오순절 성령강림은 계속 반복되는 성령 강령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만 단회적이다. 개인적으로내주하시는 성령이 활성화하여 성령충만 받기도 하지만(엡 5:18), 성령강림이 개인이나 단체적으로 반복하기도 한다(행 4:30; 8:16-17; 10:44-48;19:6-7).

 

그리고 "성령은 영원히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요 15:26; 갈 4:6)(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2장3절). 만일 성령이 오순절에 한번 강림하시고 중지되었다면 영원히 계속 나오시는 성령은 어디로 가시는가? 이후의 영적부흥과 20세기 오순절운동과 은사운동은 반복적 성령강림의 증거들이다. 이런 것을 시인하는 은사적 교회는 성장하고 부인하는 전통적 교회는 쇠퇴한다.

 

 

-성경 인물의 사역과 사건은 비반복적인 것도 있지만 반복적이고 모범적인 것도 많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고 돌아가신 것, 사도나 선지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비반복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과 인격은 교회시대의 모범이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 인물들의 기적행하는 사역이나 초자연적 체험은 모두 비반복적이고 교회시대의 모범이 아니라고 한다. '구속사적으로 독특하고 비반복적'이란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고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

 

 

- 고린도전서의 (구원)성령세례는 중생을 말하지만(고전 12:13), 사도행전의 성령세례는 사역을 위한 성령세례를 말한다(행 1:5).

 

사도행전은 (사역)성령세례를 성령충만, 성령을 받는다, 성령이 내려오신다,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다양한 표현을 한다. 사역성령세례 즉 사역성령충만은 반복하여 받을 수 있다. 베드로는 자주 성령충만을 받았다(행 2:4; 4:8, 30등). 오늘날 D.A. 카슨이나 안토니 후크마  같은 신학자들도 제2의 축복은 물론 제3, 제4 및 제N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은사주의자들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예장 고신은 기적계속론을 주장하는 필자를 이단적이라고 정죄한다. 정이철([틀린] 『바른 믿음』)은 미국의 존 맥아더를 닮아서 방언을 포함한 모든 은사사역을 귀신장난으로 폄하하고, 박영돈(예장 고신대교수)은 쓰러지는 현상을 ‘능력의 마귀화’, 예언은 ‘점치는 것’으로 폄하하자 필자도 대응 수위를 맞추어서 그들을 성령소멸자와 성령모독자라고 비판했다고 해서, 무분별하고 공격적이라면서 이단적이라고 정죄한다.

 

정이철이나 박영돈처럼 예언이나 쓰러짐을 귀신 장난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이고 필자처럼 적극적으로 변호하면 균형이 깨진 편향된 주장이고 한국 교회에 큰 혼란과 폐해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정이철과 박영돈이 은사사역을 귀신장난이라고 저주한 것은 균형 있고 분별력이 있고 방어적이고 한국 교회에  질서와 유익을 가져오는가? 한국 교회 핑계 대지 말라. 너희 교단 교인 동요할까봐 그런 것 아닌가?

 

그러면서  예장 고신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이 입에 달고 하는 소리는 은사사역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적중지론이 더 위험하다.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솥안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이다.

 

쓰러지는 현상이 한국 교회에 소개된 지 30년, 예언 사역은 20년 정도 되었고 초기에는 사람들이 지나친 호기심과 선입견을 가졌지만 그동안 절제와 자정 능력이 생겨서 그로 인해 혼란과 폐해를 불러올 위험성은 없다. 오히려 기적중지론에 경도된 교단들이 솥안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간 경우가 더 많다.  남 탓하지 말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라.

 

필자는 성경 대로 한 것이다. 예언을 멸시하는 자는 성령소멸자이고 성령사역을 귀신 장난으로 매도하는 자는 성령모독자다.

 

“18.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19.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살전 5:5:18-29).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28-30).

 

이럼 구절에 대한 해석도 기적중지론자와 기적계속론자는 다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기적에 과한 구절은 무슨 구절이든지 꽈배기를 꼬아서 ‘그건 그런 뜻이 아니다.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설(說)을 늘어놓는다.

 

설(說. 이론), 설(說. 소설), 설(舌. 혀).

 

자기들의 무경험을 정당화 하기 위해 머리와 입만 살아서 소설을 쓰면서 성경의 기적을 요리조리 부인하는 자들이 기적중지론자들이다. 이런 자들도 기적 체험을 진하게 한두 번 하면 설,설,설이 바뀌어 진다. 그런 사람이 예장 고신에도 있다. 바로 부산생명수교회 양결 목사다

 

 

양결 목사와 은사운동 / 신사도운동

 

 

양결 목사처럼 방언, 신유, 축사, 예언, 임파테이션(은사전이)는 물론 신사도운동가들과 공개적 교류를 하는 목사가 어떻게 예장 고신 내에서 건재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예장 고신은 이런 사역을 모두 불건전하거나 이단적이라고 정죄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예장 고신은 자신들이 스스로 '이단(적) 옹호교단'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셈이다.

 

필자는 양결 목사의 사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예장 고신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하는 것이다. 양결 목사처럼 내 교단 안에서 은사운동 하는 것은 로맨스고 내 교단 밖에서 하는 것은 불륜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세계 신사도운동의 대표인 체안 목사 초청 집회 광고. 부산생명수교회 홈피 캡처
   
▲세계 신사도운동가들과 교제하는 양결 목사. 체안(세계 신사도운동 HIM, WLI 대표). 홍정식(한국 HIM, WLI 대표), 김혜자(신사도운동가들초청 집회인 '주의 길을 예비하라 대표), 양결 목사 페이스북 캡처.
   
▲HIM 집회에서 강의하는 양결 목사. 페이스북 캡처
   

▲중보기도와 영적전쟁 세미나 홍보. 부산생명수교회 홈피 캡처

   
▲부산생명수교회의 예언, 예언적 중보기도, 임파테이션 사역 홍보. 부산생명수교회 홈피 캡처
   
▲양결 목사가 공유한 쓰러지는 사역. 페이스북 캡처
   
▲양결 목사의 기름부으심 사역-치유와 축사, 중보기도 및 예언 사역
   
▲유명 신사도운동 강사 바바라 요더 초청 <예언 및 중보기도 집회> 광고.
예장 고신 부산생명수교회(양결 목사) 홈피 캡처

 

그런데 일부 어용 언론들-『현대종교』와 『교회와신앙』은 예장 고신의 이런 이중성은 말하지 않고 예장 고신의 필자에 대한 정죄만 대서특필하고 있다. 둘 다 예장 통합 관련 언론들이다.

 

지금 예장 통합은 명성교회 세습 문제, 신학생들의 동성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한국 WCC의 원조 교단이다. 이런 흠집 투성이의 교단이 기적중지론의 입장에 서서 예장 고신의 입장을 두둔할 입장인가?

 

그렇다면 은사사역 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온누리교회와 은사사역을 공개적으로 하는 손기철 장로, 김하중 장로 및 김성진 장로도 이단적 교회이고 이단적 인물 아닌가? 그렇다면 예장 통합은 이단(적) 옹호 교단 아닌가?

 

 

예장 고신 내에서 양결 목사가 버티는 이유는, 양결 목사가 예장 고신 내에서 정치력이 있든가, 부산생명수교회가 중형교회(약 500명의 교인)이기 때문에 교단 탈퇴를 하며 교세가 줄어들기 때문에 알면서도 치외법권 지대를 양보해 준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양결 목사는 필자 이상으로 각종 은사사역은 물론, 신사도운동 사역이라 비판하는 오중사역을 전공하여 자기 교회는 물로 두루 다니며 세미나를 하고, 심지어는 세계적인 신사도운동가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을 강사로도 초청하고 있다.

 

필자는 양결 목사는 하나님이 죽어가는 예장 고신을 살리라고 박아놓은 불씨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만일 예장 고신이 양결 목사를 교단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세워서 개혁과 부흥을 도모하면 전혀 새로운 교단으로 거듭날 것이요, 그렇지 않고 박영돈 신학을 고수하면 솥 안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몰락해 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장로교단이나 각 교단 안에 아직도 성령의 불씨를 키우는 사역자들이 많다. 실제로 각 교단에의 기적계속론자들이 다수다. 문제는 교단 내의 기적중지론들이다. 아직도 각 장로교단 내와 각 신학교에 기적중지론 신학자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고, 나이 들고 정치력 있는 전통주의자들이 큰 목소리로 기적중지론울 고수하면 다수의 기적계속론자들은 움츠리고 만다. 이게 문제다. 목소리 크고 정치적 영향력 있는 기적중지론자들이 교단을 망치고 있다.

 

 

어제 재미있는 비디오 하나를 보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개방 이전에는 전통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그러던 중 한국이나 일본 모두 양이(洋夷. 서양 오랑캐)들의 압도적 무력을 내세운 문호 개방 압력에 직면했다.

 

일본은 양이의 무력(武力)과 제도를 재빨리 도입하여 제국주의 국가가 되고, 한국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굳게 닫고 유교의 ‘성리학’이 나라를 지켜 줄 것이라고 착각했다. 결국은 근대 서양 문명과 무력으로 무장한 일본에게 병탐 되어 36년간 굴욕의 노예생활을 했다.

(*성리학. 중국 송나라를 망하게 한 이론 중심의 유교 학문. 탁상공론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좋아한 유학[儒學]이다)

 

지금 한국교계도 비슷한 기로에 서있다. 은사운동은 일부 기이한 자들의 행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세계적으로 주도하시는 운동이다. 일본이 서양 문명을 재빨리 도입하여 강대국이 된 것처럼, 은사사역을 재빨리 도입하는 교회나 교단은 성장할 것이요, 구(舊) 조선처럼 ‘영적 성리학’이라 할 수 있는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면 서서히 몰락해 갈 것이다. 선택은 각자와 각 교단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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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2)] 박영돈의 일그러진 성령론 비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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