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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인물] 예언과 김요한의『지렁이의 기도』예언의 은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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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2  0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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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인물]

 예언과 김요한의『지렁이의 기도』

-예언의 은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김요한 목사 저 『지렁이의 기도』 표지

한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적으로 특이한 나라다.
36년간에 걸친 일본 제국의 식민지 생활과 1950년 6·25전쟁의 처참한 동족상잔의 잿더미 위에서 불과 6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올라섰다. 기독교 전파 100년 만에 국민의 20%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 파송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다. 모두가 자랑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반목이 끊어지지 않는 것도 한국인의 특징이다.

전세계적으로 좌파 성향의 정부가 경제 파탄만을 남기고 무너졌음에도 한국에는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경제 파탄을 이끈 ‘퍼주기 정책’을 남발하면서 정권 지지도는 어느 정도 유지할 지 모르지만 속은 점점 더 곪아가고 있다.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적으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보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 상태다. 한국 기독교의 친정격이자 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북미주(미국과 캐나다)에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보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점유율이 0.5%에 불과하다.

 

450년의 전통을 가진 칼뱅주의 청교도들이 미국을 건설한 선두주자들이 지금은 북미주 내 개신교인 1억 명에 비해 겨우 52만 명밖에 안될 정도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그러나 방언, 신유, 축사 및 예언 등을 인정하는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는 미국 내에서 3,000만 명에 이르고 전 세계적으로는 7억 명 이상이나 된다. 불과 100년밖에 되지 않는 은사운동이 500년이 된 전통적 개신교 전체 인구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보수 장로교단이 강세인 장로교 대국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면서 은사주의를 비판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활거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언론 중에서도 현실을 깨닫고 이제는 은사운동 비판을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있는데,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정이철 무리들은 방언과 예언에 대해,  정윤석 무리들은 예언에 대해 아직도 비판 일로에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장로교 내에서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방언하고 신유하고 예언하는 장로교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늘어나면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은 유명무실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출판된 김요한(목사)의 『지렁이의 기도』가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요한은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 합동 소속으로 각종 무게 있는 신학 서적 출판과 학술 세미나를 통해 많은 팔로어(followers)를 보유한 인기 목회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지렁이의 기도』에서 자신의 예언 사역을 공개적으로 간증하여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신한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힌 일, 친구 목사에게 이사를 하라고 한 일, 어떤 사람의 앞으로 될 일 등을 너무 확신 있게 간증하여 그런 경험이 없는 자들을 ‘영적 소인’으로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이전에 김하중 장로가 쓴 『하나님의 대사』에서도 모두  맞힌 것만 기록하였다. 교회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100% 완벽하게 예언을 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대중적인 책들은 그런 식으로 써야 잘 팔리는 것 같다. 

 

그의 책을 긍정적으로 추천한 32명 중에는 유명 신학자는 물론 예장 합동 내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이찬수 목사와 송태근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예언 사역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점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충격적일 것이다.

 

사실 필자는 김요한이란 사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어떻게 해서 성령사역을 초토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정이철의 [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해괴한 책을 출판해 줘서 정이철을 한국 기적중지론자들에게 '신사도운동 전문가'(?)로 등업시켜 주어 성령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는가 이다. 싹수가 노란 자를 키워줬다가 지금 김요한을 제일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김요한은 은사 체험자로는 드물게 좌파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필자의 성향과는 맞지 않다. 다만 정이철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이 예언을 비판하니까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수많은 글을 통해 교회 시대의 예언의 은사에 대한 글들을 썼다.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견해와 상반되는 주장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그런 글들도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자들이 있다. 필자가 「글로리아타임스」에 예언에 대해 아무리 글을 올리고 자료를 제공해도 도무지 관심도 갖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주장만 하는 완악한 자들이 있다.

 

 

개혁주의 기적중지론의 허구
 

 

개혁주의 조직신학을 조금만 공부하면 기적에 대한 개혁주의 기적중지론이 어떤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다.

 

-기적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기적에 이런 기능도 있지만 이런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적은 사도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기적에 이런 기능도 있지만 이런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적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독특하고 비반복적인 계시사적 사건이지 교회 시대의 모범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구속사적 비반복도 있지만 모범적 반복도 있다.

-성경 기록의 완성과 함께 기적이나 예언과 같은 특별계시는 종료되었다.
→성경 권위에 종속되는 사적 계시(예언의 은사)나 기적행하는 은사는 교회시대에게 계속된다.

 -온전한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부분적인 계시는 종결되었다(히 1:1-2).
→성육신하신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시고 제자들에게 기적행하는 능력도 주시고 환상에도 나타나셨다.

 -방언은 초자연적으로 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이다.
→그런 현상도 드물게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의 언어다.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가르침이나 설교의 은사이다(고전 14:1).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사전 계획과 준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즉흥적으로 넣어주시는 계시의 은사다(고전 12:10; 14:1, 29-30).

 

자료 참조 :

“왜 성령운동을 대적하는가(1)-신학적 오류.” 「글로리아타임스」. 2014.4.2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9 

“왜 성령운동을 대적하는가(2)-사고의 오류와 논리의 오용「글로리아타임스」. 2014.5.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60

 “[기적중지론과 성령운동(1)] 기적중지론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기적중지론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백해무익한 신학이다.” 「글로리아타임스」. 2015.9.1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80

 

 

이런 기적중지론은 칼뱅 이래 450년 동안 칼뱅주의자들이 자기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정당화 하고 기적을 행한다는 반대파들을 비판하고 대적하는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이런 잘난 신학을 가진 개신교의 선두주자요 미국의 건국에 이바지한 칼뱅주의 청교도들의 후손이 왜 미국에서 점유율 0.5%로 몰락했는가? 한 마디로 신학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장로교 강세국인 한국에는 망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붙잡고 교회를 유지하거나 신학교 직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도 이제는 미국 교계를 닮아가고 있다. 기적중지론이 소수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한국 보수 장로교 내에도 은사사역의 거센 물결이 여기저시 도도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지금 기적을 앞장 세운 예장 합동의 두날개선교회가 교단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은사사역 백화점인 예장 통합의 온누리교회가 대형교회로 건재하고, 한때 두날개선교회를 완강하게 대적했던 예장 합신이 두날개선교회를 문제 삼지 않기로 결의하고, 꼴보수 예장 고신의 중형교회인 부산생명수교회가 빈야드운동(?)이나 신사도운동(?)을 공개적으로 주도하고, 성향이 불분명했던 예장 대신(백석)의 부산영락교회가 신사도운동가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은사사역자들을 초청하여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은사운동이 한국 보수 장로교회에도 골고루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기적중지론에 집착하여 성령을 소멸하고 심지어는 성령사역을 귀신장난이라 하여 성령 모독죄를 짓는 자들도 있다. 정이철 무리와 정윤석 무리가 대표적이다. 그들 사이트는 지금 김요한의 성토장이 되었다.

 

김영봉. “<지렁이의 기도>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 「뉴스앤조이」. 2017.12.9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410

(*정윤석의 「기독교포털뉴스」가 기사 공유)

이창모. “김요한 [지렁이의 기도]는 공개적으로 책망 받아야 한다-이창모 목사의 김요한 지렁이 잡기 1.” 「바른믿음」. 2018.1.18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9 

임진남. “성부께서 아들을 통해 계시를 완성하고 종결시켰다.” 「바른믿음」. 2018.1.1.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0

장운철. “위험한 지렁이의 기도-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대표의 기도체험, 성경과 거리 먼 신비주의.” 「기독교포털뉴스」. 2018.1.11.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77 

정이철. “새물결 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는 직통계시를 즐기는 사람인가?” 「바른믿음」. 2017.11.30.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08 

정이철. “혹시 새물결 대표 김요한 목사는 신약의 선지자가 아닐까요?” 「바른믿음」. 2017.12.11.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15

 

그외에 중도적 입장의 글도 있다.

 

양봉식. “[직격대담 ] <지렁이의 기도> 저자 김요한 목사
"출간  1개월에 1만부 판매 핫이슈… 은사논쟁 재점화.” 「교회와 신앙」. 2017.12.17.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50

 

여기에 이제는 이창모(「바른믿음 」기고자), 임진남(「바른믿음 」기고자), 장운철(「기독교포털뉴스」 기고자)도 가세하고 있다. 요즈음 이런 자들이 속속 모이는 곳이 있다. 바른 「교회와 이단」이란 곳이다. 이 사이트를 보면 신사도운동에 대한 비판 글들이 잔뜩 올라와 있다. 이들은 모든 성령운동을 신사도운동으로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성령을 소멸하는 자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교회와 이단」 사이트 홈피 캡처-일부 수정하여 편집. 한국의 대표적 영적 소경인 서철원(전 총신대 교수)을 중심으로 정이철과 정윤석 무리들이 포진해 있다. 「글로리아타임스」의 신학검증을 주도한 예장 대신(백석)의 김정만과 예장 고신의 김홍석도 여기 모여 있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당연히 문제가 없고 필자가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필자가 실제로 음성을 들은 유명인들,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한국의 신학자들을 인용했다면 적어도 언급은 해야 하는데 이런 자들에게는 마이동풍이다.

 

정이철의 앵무새 같은 주장을 들어보자.

 

“(김요한이 음성 들은 것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계시 수납자들이었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했다면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사람의 이성과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성경기록자들에게 임하였으므로 그들이 초월적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을 성경으로 기록하였다.

……………………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신구약 66권으로 종결되었고, 이제 더 이상의 하나님의 계시가 없기 때문이다. 김요한이 주장하는 ‘땅에서 하늘로, 내재의 세상에서 영원의 세계로, 시간의 영역 속에서 초월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만드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독교 안에 없다”(정이철, “김요한의 방언, 방언통변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 「바른믿음」. 2018.1.21).

 


 

정이철은 여전히 '계시종료론'과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입장에서 성경 인물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전형적인 기적중지론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왜 없는가? 어거스틴, 콘스탄틴 대제, 존 낙스, 찰스 스펄전, 한경직, 정필도 목사 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정이철은 이런 객관적 자료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기적중지론 신학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영적으로 완악해도 이렇게 완악할 수가 없다.

 

독재자나 진짜 악인의 특징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조그만 힘만 남아도 끝까지 대적하다가 멸망 당하거나 자멸한다. 정이철 무리들이 대표적이다. 현실적으로 숫자가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의 몰락과 은사주의의 성장을 여실히  증명해도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자기 주장만 녹음된 기계음처럼 반복하고 있다.

 

자료 참조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본 사람들-어거스틴, 콘스탄틴 황제 및 한경직 목사.” 「글로리아타임스」. 2014.5.1.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53 

“[신학검증(18]] 예언을 하려고 하라(1)-교회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는 여전히 지속된다.” 글로리아타임스」. 2017.12.24.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49

 

 

정이철의 하수인인 이창모도 이에 가세하여, 김요한 목사의 예언은 성령을 빙자한 빗나간 ‘점쟁이 놀음’이며 『지렁이의 기도』가 실상은 [붉은 용의 주문]임을 「바른믿음」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라고 다짐한다. 김요한 목사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바르게 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판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이창모,「바른믿음. 2018.1.18).

 

이창모는 방언도 모르는 유명한 기적중지론자들의 견해와 엉터리 헬라어 문법으로 교회 시대의 방언을 ‘거짓 방언’이라 폄하하더니 이제 어떤 기적중지론자들을 인용하고 어떤 엉터리 헬라어 문법을 사용하여 현대의 예언을 부인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글로리아타임스」는 이창모의 주장을 예의주시하면서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성경과 거리가 먼 ‘틀린 믿음’인가를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다.

 

이창모에 의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본 어거스틴, 콘스탄틴 대제, 존 낙스, 찰스 스펄전, 얼마 전 타계한 R.C. 스펄전, 한경직, 정필도 목사 등은 모두 ‘점빨’이 강하고 ‘붉은 용의 주문’을 외운 사람들인가? 아무리 무식해도 유분수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이런 영적 무지를 스스로 공개하는가?

 

임진남(「바른믿음 」기고자)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계시라며(히 1:1-2)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이고 ‘아들을 통해 계시가 다 주어졌으므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계시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이후 사도나 제자들에게 기적행하는 능력을 주시고(행 1:8; 2:1-4), 아나니아나(행  9:10-16)바울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서 말씀을 하시는가(행 9:4-6; 16:9)? 그들도 예수만 바라보면 되지 왜 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윤석은 「글로리아타임스」가 자신의 잘못된 예언관을 비판한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인 김영봉(목사)과 장운철(목사)의 견해를 싣고 있다.

 

김영봉은 이전에 잠시 밝혔듯이 자기 경험의 잣대로 김요한의 주장을 비판한다. 김영봉은 김요한의 『지렁이의 기도』의 추천사를 거절했는데 그 이유가 신학적, 성경적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경험’을 넘어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김영봉. “지렁이의 기도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 「뉴스앤조이」. 2017.12.09).

 

스스로를 은사지속론자라고 주장하는 김영봉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방언, 통역, 축사, 신유, 입신 같은 모습을 일상사처럼 보고 자랐다고 하면서도 김요한이 전기 차단기가 내려진 상태에서도 전기가 들어와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의심쩍어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므로 ‘사실 관계’가 의심쩍다면 저자나 주변 사람에게 확인해 보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왜 자신의 ‘경험 수준’이 들어가는가? 자신의 경험 수준이 신앙의 잣대인가?

 

 

장운철은 한때 이단감별사였다가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20년간 다양한 사이비 종교를 취재했는데 그들 중 소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자들이 다수 있었다고 하면서 기독교 안에도 이런 자들이 있는데 이런 음성듣기는 잘못된 것이라면서 몇몇 신학자들을 인용한다.

 

즉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인 박영돈(예장 고신대 교수), 이승구(예장 합신대 교수) 및 미국의 골수 기적중지론자이나 성령운동을 마귀운동으로 폄하하여 정이철에게 지극히 악한 영향을 끼친 존 맥아더(그레이스 교회)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존 맥아더는 기적중지론은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신봉하면서 종말론 철저한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다.

 

그외에 이런 자들이 참고로 하는 책은 미국의 2대 이단 감별사인 존 맥아더 행크 해너그라프의 저서들이다. 미국에서 이단 감별사로 존 맥아더와 쌍벽을 이루던 행크 해너그라프는 작년에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다고 한다.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웟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중국 신자들의 ‘사랑’을 체험한 후 ‘자신이 과연 진짜 신자인가?’를 회의한 후 아내의 인도로 진리(truth) 보다는 삶(life)을 택하기 위해 개혁주의에서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허구 헌 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새로운 운동을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고 물고 뜯어 보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아무런 영적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행크 해너그라프는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왜 골수 개혁주의자라고 자처하던 그가 하필이면 천주교처럼 성상을 섬기는 그리스 정통교회로 간 것일까? 정이철의 무리들도 나중에 어떻게 변신될 지 의문이다.

 

 

장운철은 음성듣기에 대한 책 10권 정도를 보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신학적으로 무게 있는 책들은 보지 않은 것 같다. 필자가 자주 제시하는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이나 『예언의 은사』 및 고든 피의 저서들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기적중지론자들만 나열하고 있다.

 

그외에도 예언의 은사를 주장하는 학자로는 존 루스벤, 존 파이퍼, 샘 스톰, 막스 터너 등이 있고 한국 학자로는 김동수, 김상복, 김영한, 배본철, 이한수 등이 있다. 장운철은 이런 학자들의 견해는 살펴보았는지 궁금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신학자 몇 명만 언급하면서 음성듣기나 예언의 은사를 비성경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성경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건전한 태도가 아니다.

 

또한, 장운철은 예언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유익한 것치고 위험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무엇이든 잘 모른 자에게는 위험한 것만 보이고 잘 아는 자에게는 좋은 것을 살리면서 조심하여 위험은 피하고 있다.

 

그리고 장운철은 “우리같이 성령의 은사가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요” 라는 푸념이 생길 수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성경에 답이 있다.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 Cor. Follow the way of love and eagerly desire spiritual gifts, especially the gift of prophecy(NIV).

 

한글 성경은 원문을 좀 밋밋하게 번역했는데 영어NIV가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번역하고 있다. 즉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흔히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 뜻대로 나누어주시므로(고전 12:11), 하나님이 알아서 나누어주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인 고전 14:1에서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사모하고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명령한다. 즉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 뜻대로 나누어주시지만 많은 경우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나누어주신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그런데 은사가 없는 사람은 과연 이렇게 간절히 구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알아서 주실 것이므로 주시면 받고 안주시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구할 마음이 없는 것 보디 하나님이 주시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유럽이나 북미주는 물론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도 예언의 은사를 인정한다. 그리고 방언과 예언을 포함한 고린도전서 12장의 9가지 기적행하는 은사를 인정하는 교단들이 전세계적으로 교회성장을 주도하고 있고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장로교회는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은사를 받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기적중지론자들은 지극히 비성경적인 사람들이다. 성경에 있고 지금도 나타나는 은사를 없다고 하는 그들이 과연 성경 말씀을 바로 믿고 성경을 제대로 읽는 사람들일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기적을 기록한 책인데,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신 후에는 기적을 더 이상 행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면 왜 오랫동안 기적이 나타나지 않다가 20세기 초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는가? 그렇다면 왜 종교개혁은 1,500년이 지난 16세기에 시작되었는가? 이런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봐야지 신학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이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또 하나의 글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대답하면, 교회사를 통해 은사나 나타났지만 교회가 억제했고, 은사자들 또한 오남용으로 인해 교리적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의 성령운동은 교회사적으로 유례가 없이 100년 이상 동안 지속되면서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시정하면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초기에는 무학력자나 저학력자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학력자와 지식인들이 대거 동참하면서 기적행하는 능력과 탄탄한 신학을 기반으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가는 말

 

 

김요한의 『지렁이의 기도』는 한국적 상황에서 드물게 예장 합동 목사가 예언의 은사사역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년 전에 온누리교회의 김하중 장로가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을 써서 음성듣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었지만 동시에 정이철 같은 자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어서 비판하는 바람에 한국 교계에 음성듣기의 바람이 잠시 주춤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김요한 목사가 32명의 추천서를 담은 음성듣기 책을 출판하여 단 기간 내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교인들이 음성듣기를 사모하고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반대자들의 경거망동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좋은 은사를 소멸하는 일이 더 이상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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