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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21)] 자책골을 넣으려는 순복음 교단자기들이 하고 있는 사역을 ‘신사도운동’이라 정죄하는 순복음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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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3  01: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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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21]

자책골을 넣으려는 순복음교단
 

-자기들이 하고 있는 사역을 ‘신사도운동’이라 정죄하는 순복음 교단-
 

   
▲순복음교단 홈피 캡처.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음

 

순복음 교단(하나님의성회 여의도총회. 총회장 이영훈 목사)이 이례적으로 신사도 운동은 이단성이 농후하다면서 교류 금지와 참여 금지를 결의했다. 지난 1월 9일, 신년하례회와 제66차 제4회 정기실행위원회가 열린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들레헴성전에서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실행위 가운데서는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관심을 끌었다. 이대위는 지난 4일 회의에서 “'신사도운동'에 대해 심각하게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이대위는 "신사도운동은 이단성이 농후하여 교단 산하 목회자와 성도들의 교류 및 집회참여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장로교단들이 주로 행하는 이런 결의를 지금까지 행한 적이 없는 순복음 교단이 이례적으로 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정이철이 오순절운동과 신사도운동을 한 통속으로 몰아가자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랬을까? 아니면, 교단 소속 교회 중에 신사도적 사역을 도입하여 교회 분란을 조장하기 때문일까?

 

 

기사를 종합해 보면, 교인 수가 수천 명이 되는 순복음부평교회의 후계자가 신사도적 사역(?)을 하자 장인인 원로 목사와 갈등이 생겨 교회가 시끄럽고, 대구에서도 신사도운동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자 교단 차원에서 극약 처방을 내린 것 같다.
 


한때 한국 교회는 ‘방언을 하느냐 않느냐?’, ‘박수 치고 손을 드는 순복음식 예배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로 교회가 갈라진 적이 많다. 그때 순복음 교회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이 자기들을 핍박한다고 서러워했다. 이제 신사도운동이 자기들 보다 좀 더 앞서가자 ‘이단성이 농후하다’고 정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신사도운동 자체를 비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복음 교단의 비판에 신사도운동과 직접 상관 없는 사역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리아타임스」는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 추방을 강조하기 때문에 방언, 신유 및 축사를 하는 순복음 교단의 다른 교리나 추문은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순복음 교단은 자기들이 교리적으로 이단 시비에서 벗어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자기들이 잘 모르는 성령사역을 ‘이단성(?)이 농후하다’고 정죄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순복음 교단 이대위 결의의 몇 가지 문제점

 

 

신사도운동은 신비주의와 감정주의를 표방한다?

 

 “신사도운동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와 감성주의를 표방하고, 이런 신비적 현상을 신앙의 척도, 구원의 증표, 성령세례 받은 증거로 주장하여 정통 성경관에 이탈되어 이단 성향을 띠고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순복음 이대위).

 

 

오순절 운동의 초기에, 당시 주류 교단들은 오순절파를 ‘소돔의 영적 지도자들’, 방언을 ‘사탄의 마지막 토해낸 배설물’, 오순절의 예배를 ‘사탄 숭배’라고 공격했다 (Vinson Synan, In the Latter Days―The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in the Twentieth Century, 1984, p. 77).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 교단은 1914년에 설립되었지만 1942년에 전국복음주의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미국복음주의협회)에 가입할 때까지 이단 취급 받았다.

 

 

순복음 교단의 모태이자 오순절운동의 모태인 20세기초 미국 LA ‘아주사거리 부흥’ 당시의 기록을 보자.

 

이 운동을 반대하는 LA시의 유력 일간지는 "별난 혓바닥들의 중얼거림-신종 광신파들의 활거, 어젯밤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난 꼴불견의 현상”이라는 제목 하에 이 운동을 사정없이 매도했다.

 

또 다른 신문은 1906년의 집회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흑인과 백인이 치욕스럽게 섞여 있었다. (당시는 흑인 인종 차별이 심할 때였다.) 그들은 밤낮으로 울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었다. 그들은 뛰고, 전신을 흔들고, 최고의 높은 목소리로 부르짖고, 원을 그리면서 계속 빙빙 돌고, 톱밥 가루가 가득한 바닥에 드러누워 경련을 일으켰고, 발로 차고 데굴데굴 뒹굴기도 했다. 몇몇 사람은 정신이 나갔는지 드러누워서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신들린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성령충만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목사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애꾸눈의 흑인(윌리암 시무어)이었다. 흑인 목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릎을 꿇고 얼굴은 우유 상자 안에 숨기고 있었다.흑인 목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가끔 ‘회개하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은 같은 노래를 계속 불렀다. ‘보혜사가 오셨다.’

 

전통적 교단은 이런 운동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성경을 오용하고 성령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주변의 많은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이런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떤 사람은 경찰을 불러서 이 건물을 폐쇄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순복음 교단이 신사도운동식 예배를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글로리아타임스」를 통해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 이래로 장로교단이 이런 식으로 새로운 영적부흥이나 성령사역을 비판하면서 소속 목회자룰 제재하고 참여 금지를 시킨 결과 결국은 몰락했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자료 참조 :
“[신학검증(15)]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의 처참한 몰락-자동차 시대에 마차 시대 논리에 목숨 거는 사람들.” 「글로리아타임스」. 2017. 10.25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28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독약 처방이 당장의 통증은 없앨지 모르지만 결국은 교단 전체의 영적 생동력을 고사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 순복음교단은 1953년에 설립되었는데 1970~80년 대는 한국 교회와 순복음 교단 사이에 오해와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던 때였다.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한국 대부분의 장로교단은 순복음 교단을 이단시하였다. 한국에서는 한때 방언파와 비방언파의 갈등으로 인해 교회가 갈라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복음 교단과 한국 교계가 화해의 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양방의 교리적, 실천적 차이를 극복해서라기 보다 기존 장로 교단도 겉으로는 순복음 교단을 비판하면서 안으로는 순복음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성장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한때 순복음 교단의 전유물이었던 방언, 신유 및 축사는 물론 찬양과 경배에서도, 온누리교회처럼, 순복음 교단을 앞서 가는 장로 교단도 생기면서 순복음 교단에 대한 견제가 유명무실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때 비난과 천덕꾸러기였던 순복음 교단이 신사도 운동을 그런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와 선지자 직분 회복 비판

 

순복음 이단대책위원회(이대위)는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비판했다.

 

“신사도운동의 문제점은 성경적으로 주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사도들 외에 교회의 기초로서 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고 말하고, 수평적 사도와 수직적 사도 운운하며 2001년 국제사도연맹을 결성하여 '신사도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사도운동 중에서 가장 비판 받는 주제이다.
성경에는 토대적(기초적) 사도와 선지자가 있고(엡 2:20), 오중사역 은사로서의 사도와 선지자가 있다(엡 4:11). 전자는 성경을 기록하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지만 후자는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오중사역 은사로서의 사도와 선지자다.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사도와 선지자는 후자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교단들은 사도와 선지자 직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라고 정죄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오늘날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존재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WCC에 가입하거나 연계되어 천주교와 함께 서로 하나가 되는 에큐메니컬 운동(교회 일치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예장 통합, 기독교감리회 및 순복음 교단이 그렇다.

 

그런데 천주교의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정통성을 이어 받는 ‘사도’다. WCC가입 교단들이 교회 연합을 위해 천주교 교황이 ‘사도’라는 사실에는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왜 신사도운동가들이 ‘사도’라고 말하는 것은 ‘이단성’이라고 비판하는가? 왜 ‘기초적 사도’라고 공언하는 교황과는 연합을 도모하고 오중사역 은사로서의 사도를 주장하는 신사도운동은 이단이라고 정죄하는가? 성경이 그런 이중 잣대를 허용하는가? 신사도운동은 안되고 구(舊)사도 운동-천주교-은 되는 것인가?

 

 

그외에도 천주교 교리는 개신교와는 물과 기름 같은 것이 많다.
최근에는 천주교에서도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면서 루터 교단, 감리 교단 및 자유주의적 장로 교단과 공동 선언을 하여 개신교를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어떤 가톨릭 신부는 개신교(Protestants)가 항의할(protest) 이신칭의 교리를 가톨릭도 수용하므로 개신교는 이제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에 흡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 교회’라 뜻이지만 이제는 ‘로마 천주교’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표면적 주장은 동일한 것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천주교는 그리스도의 의가 주입되어 (infused) 신자가 실제로 의인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imputed) 법적 의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외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다른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다.

 

-천주교는 정경 외의 외경을 인정하고, 교황, 교회 및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격의 권위에 둔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베드로 사도의 정통성을 계승한 사도다.

-천주교는 지옥 이전 단계인 연옥을 인정한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의 지성으로 성인(聖人. Saints)의 공덕을 나눠가지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예수님은 물론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인정한다.

-천주교는 7개의 성례를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2개(세례와 성찬)만 인정한다.

-신부나 수녀는 독신으로 지내야 한다.

 

더군다나 종교개혁가에 의하면 교황은 말세의 적그리스도이고, 순복음 교단이 수용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의하면, 교황은 세계 정부의 수장인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인 ‘거짓 선지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에큐메니컬 운동은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촉진하는 세계 정부 출현 이전의 종교 연합 운동이다. 결국 WCC를 통해 천주교와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운동은 세계 정부 출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천주교의 이러한 이단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신교는 "천주교는 개신교와 다른 교리 체계를 가진 기독교 집단"이라면서 그들과 연합와 일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과 조금 다른 은사사역이나 신사도운동은 이단성(?)으로 정죄한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처사인가? 비록 친 천주교적 성향을 보여도 교인이 이탈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들과는 연합과 일치를 천명해도 괜찮고 자기들과 다른 성령사역을 하는 신사도운동을 인정하면 교인들이 그쪽으로 몰릴 것이니까 이단으로 찍는 것인가? 이런 자들은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서서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은사 전이가 비성경적인가?

 

순복음 이대위는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은사를 안수함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을 주장함으로 마치 은사나 능력을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미국에 살면서 신앙의 초기에 2년 정도 순복음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순복음 교인이 되려면 최소한 방언은 해야 한다. 교회에서 강요하지는 않지만 교회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간다. 필자는 방언을 사모한 후 신기하게도 새벽기도 중에 혼자 기도하다가 받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모하고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당시 순복음 교단이 주도하는 기도원 집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방언 받는 것이 제 일의 기도 제목이었다. 어떤 사람은 혼자 기도하다가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의 기도를 통해 받는다. 한 사람을 중앙에 앉혀놓고 여러 사람이 빙 둘러서 그 사람이 방언 받게 해달라고 안수하거나 손을 내밀면서 기도하는 것은 흔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여 방언 받은 사람이 많다. 치유는 물론 능력을 전수 받기 위해 조용기 목사의 안수를 받는 것은 순복음 교인이라면 하나의 영광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임파테이션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왜 순복음 이대위는 자기들이 이런 것들을 먼저 해놓고 이제 와서 ‘신사도현상’이라고 비판하는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즈음 순복음 교회는 이전의 순복음 교회가 아니라고 한다. 예언은 물론 방언도 못하게 하는 교회가 많다고 한다. 주변에서 순복음 교인들이 무식하다고 하니까 신학교에는 유럽에서 자유신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많아서 영적으로 점점 죽어간다고 한다. 순복음 이대위를 이런 자들이 주도하는 것일까? 만일 조용기 목사가 알았다면 순복음의 이런 결의를 허용했을까?

 

 

물론 미국 순복음 교단이 2001년에 신사도운동을 먼저 비판했다. 미국 순복음 교단에서는 이런 사역이 보편적이 아니었나 보다. 기록을 보더라도 오순절운동의 초기에 이런 사역을 통해 방언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구하여서 받은 경우가 많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일정 방식에 의해 성령 세례 받는 것을 주장하는 오순절주의자들을 비난한다. 특히 많이 알려진 방법은 르우벤 토레이 신부의 ‘성령 세례 받는 법’이다. 서철원 교수(전 총신대 교수)은 성령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갈 3:2), 어떤 ‘조건 이행’-기도나 회개 등-을 통해 받는 것이 아니다(눅 11:13; 행 2:38 등)고 신랄하게 비판한다(서철원, 『성령신학』, pp. 41-47).  서철원의 하수인인 정이철은 이런 것을 마귀짓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 서철원은 ‘구원적 성령’과 ‘사역적 성령’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구원적 성령은 예수를 믿을 때 받지만 ‘사역적 성령’은 성령이 나누어주시지만 말씀에 기록된 사실을 믿고 사모하고 구할 때 받는 것이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러나 순복음 교단은 여기까지인가?
이들은 성령을 사모하고 구하여서 받는 것은 강조하지만 안수를 통해 받는 것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열리지 않은 것 같다. 이미 1940년대에 미국 순복음 교단의 냉랭함을 의식한 일부 순복음 교인들이 새로운 영적 돌파를 위해 기도 모임을 가졌다. 이것이 ‘늦은비 성령운동’이다. 이들은 예언 및 안수를 통한 은사 전이와 오중사역 은사의 회복을 강조했다. 순복음 교단은 이들을 비성경적이라고 지탄하고 이후 이런 교리를 이어 받은 신사도 운동을 배격한 것이다.

 

필자가 위에서 밝혔지만, 한국의 순복음 교단은 실제로 다른 사람이 방언을 받도록 기도를 하면서도 그것이 임파테이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성경에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사역적 성령’을 받는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신다(삿 6:34; 14:6;,19; 15;14 등).

-사모하고 기도하여  받는다(눅 11;13; 행 1:14; 4:31)

-말씀을 듣는 중에 받는다(행10;44-46).

-찬양 중에 받는다(대하 5:13, 14; 왕하 3;15-16).

-겉옷을 통해 받는다(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왕하 2:8-14).

-안수를 통해 받는다(신 34:9; 행 8;17; 9:17-18; 19:6).

 

성경에서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는 사례가 4번이나 등장한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대로 하는데 이게 왜 이단적인가?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처럼 이런 것은 특수한 시대에 특수한 사람들이 한 '계시적 사건이므로 우리의 본보기가 아니다'는 '구속사적 해석'을 할 것인가?

 

임파테이션이란 말은 로마서 1:11에서 생긴 단어다.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영어. Impart. Impartation)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말하는 은사(헬라어 카리스마)는 하나님의 선물, 호의지만 초자연적 은사도 된다. 사도 바울이 이 표현을 한 것은 자신이 사마리아나 에베소교회에서 한 사역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하는 이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안수기도를 통해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임파테이션)은 하등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방언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보편화 된 것은 1900년 후인 20세기 초가 아닌가? 그리고 약 40년 후에 안수를 통해서도 은사를 받는 것을 경험한 후 보편화 된 것이다.

 

자료 참조 :
“[성경Q&A] 기름부음 사역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성령을 나누어 주시는 사역이다.” 「글로리아타임스」2014.6.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93

 

 

순복음 교단은 성령사역을 수십 년간 해왔다.
안수하여 방언 받게도 하고 신유도 하고 축사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 외에 다른 은사를 나누기 위해 사역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은 안수를 통해 모든 다른 은사를 나눠 받는 것이 생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성경을 조금만 더 유심히 봤다면 임파테이션 사역을 잘못된 사역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파테이션 사역은 자기들이 방언 받기 위해 해 온 사역의 연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구약은 숨겨진 예수를 기록하고 신약은 드러난 예수를 기록한다. 예수에 대한 구약의 기록이 씨앗이라면 신약의 기록은 만개한 꽃이다.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 한다. 한편, 완성된 성경의 진리가 드러나는 것도 점진적이다. 초대교회에는 성경의 정경성, 예수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었다. 중세 1000년의 암흑기를 지나 종교개혁 때에는 이신칭의 교리가 확립되었다. 이것은 점진적 조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부분의 장로교 신자들은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의 모든 진리가 다 드러났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잘 모르거나 주도하지 않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으로 비판한다. 그래서 이후의 웨슬리 부흥운동, 성결운동, 오순절 성령운동, 은사운동을 모두 부인한다. 자기들의 신학이 모든 신학이나 신앙의 잣대라고 착각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들어쓰신다는 모르고 있다.

 

장로교만 그런가? 아니다. 이후 새로 생긴 운동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운동의 생성기에는 기존 교단으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핍박 받아서 고달파하지만 진리의 발견자이자 수호자라는 자부심으로 버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교단의 인정을 받고 안정세로 접어든다. 바로 이때가 문제다.

 

 

사람은 안정을 선호하지만 하나님은 안정을 싫어하시는 것 같다. 새로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가르침이나 사역만 고수하면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가르침이나 사역을 소개하신다. 그러면 바로 직전에 개혁과 부흥을 경험한 개인이나 운동이 새로운 운동을 제일 싫어하고 배격한다. 자기들이 영적 선두주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새로운 자들이 나타나서 희한한 주장을 하면서 자기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순복음 교단도 이제 이런 증세를 앓고 있는 것이다. 정말 역사는 반복된다. 그런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면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 그게 문제다.

 

 

특별한 영적 전쟁이 잘못된 것인가?

 

순복음 이대위는 신사도운동가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곳이 하나님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지역을 흑암의 세력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규정하면서 땅 밟기, 예루살렘 회복운동 등 비성서적 행위를 통해 선교지 등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국 교계에 이런 것을 최초로 소개한 사람은 바로 순복음 교단의 교회성장연구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명성훈 목사(아래 참조)이다. 이 책들에는 순복음 이대위가 이단성이라고 표현한 모든 내용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교회성장연구소장직을 이어 받은 홍영기 목사도 『중보기도 용사들아』에서 영적전쟁을 언급하면서 '지역의 영'을 타파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역 귀신을 타파하는 예언적 중보기도와
전략적 수준의 영적전쟁을 소개한 명성훈 번역의 도서들

 

그 당시 명성훈 목사는 물론 후임자들이 이런 책들을 바탕으로 중보기도에 대해 엄청 많이 가르친 신사도운동(?)의 선두주자들이다. 그들을 통해 한국 교계도 중보기도와 영적전쟁에 대해 많이 배웠다. 점집이나 술집을 찾아다니며 중보기도하고 지역에서 마귀의 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절이나 우상숭배 중심지를 찾아다니며 기도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지역 귀신' 타파를 선두에서 주장하는 피터 와그너가 편집한 『지역 귀신』이란 책에 글을 게재했다.

 

조용기 목사는 그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교회사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성령을 강하게 움직이셔서 우리가 일어나서 전투를 벌여서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세대에 큰 군대를 일으키셔서 이 목적을 이루신다.


나의 사역은 도시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아무도 오래되고 낡은 해병대 텐트 교회에 오지 않았다. 그 지역은 귀신이 크게 역사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멍에를 깨는 열쇠는 7년 동안 귀신 들려서 마비 상태에 있던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을 때이다. 몇 달 동안 기도한 결과 그녀를 누르고 있던 귀신이 마침내 쫓겨나서 그녀는 치유되었고 우리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을 위의 하늘이 깨어져서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수는 60만 명이며 1992년까지 100만 명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피터 와그너가 편집한『지역 귀신』이란 책에 글을 게재한 조용기 목사

 

그런데 순복음 교단이 이제 와서 이런 사역을 이단성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이런 사역이 순복음 교단 내에서도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까? 자기들이 한국 교계에 소개해 놓고 왜 이제와서 이런 것을을 이단성이라고 하는가? 순복음 이대위 입장에서 보면 명성훈 목사조용기 목사는 순복음 교단 내에 신사도적 영적전쟁(?)을 도입한 장본인인가?

 

 

위의 책의 출판 날짜를 보라. 셋 중 둘은 출판 날짜가 작년이다. 이런 책들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곳이 하나님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지역을 흑암의 세력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규정하면서~”라는 표현은 낯이 익다.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이승구 교수(합신대 교수)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바른 미디어」 화면 캡처1
   
▲「바른 미디어」 화면 캡처2

 

이승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순진한가를 성경을 통해 잠시 살펴보자. 순복음 교단이나 다른 교단에서도 개인 축사는 많이 하지만 개인 축사 이상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모르는 것 같다. 기적중지론적 교회는 축사조차 가르치지 않고 개인 축사는 가르치더라도 장소와 지역에 대한 영적전쟁은 교회에서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인해 이 세상과 사람은 마귀의 수중에 들어갔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이 사실조차 모른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착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마귀에게 세상의 불법적 통치를 허락하시고 이제 신자를 통해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그게 바로 복음 전파이다.

 

눅 4:5-6
5.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마 11:28-29.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엡 2:-3.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고후 4:3-4.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계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 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이처럼 마귀는 하나님께 속한 신자 외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자도 죄를 지으면 그만큼은 마귀에게 틈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께 속하고 마귀가 다스리는 특정한 지역이나 영역이 없다’는 주장은 지극히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성경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단순히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시다’는 막연한 신학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나치 독일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했듯, 사탄이 불법 찬탈하고 있는 적지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땅을 해방시키는 것은 결국 그 땅의 주민을 해방시키는 것이므로 그 땅의 주민을 관장하는 영을 ‘지역의 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하등 잘못된 표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어떤 기관이 서울에 있으면 서울지방OO청, 대구에 있으면 대구지방OO청이라고 한다. 지방OO청은 관할 지역의 거주민을 관할한다. 그러므로 지역의 영은 특정한 지역에 머물면서 거주민을 괴롭히는 영이다. 그런 영을 '지역의 영'이라고 해서 하등 문제가 될 것 없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악영은 '지역'이 아니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서 '지역의 영'이란 용어 사용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비판자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지역의 영에 관심이라도 있는가?
비판자들은 걸핏하면 '내용' 보다는 '용어' 사용을 트집잡는다. '영성'이 아니라 '경건'이다, '중보기도'가 아니라 '청원기도'다, '영적 전쟁'을 마귀를 대적하는 것에 국한시키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는 식이다. 용어 사용이 좀 서툴러도 내용이 바른 것이 나은가, 용어 사용은 잘 하면서 내용 없는 것이 나은가? 당연히 전자이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내용'은 없으면서 '용어'만 갖고 트집 잡는 이조 시대의 탁상공론적 유생들과 같다.

 

물론 신약의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itant)이므로 신앙생활 자체가 영적 전쟁이다.  
신자는 육신과 세상, 이를 타고 역사하는 마귀의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 싸우는 방법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 회개와 믿음을 통해 거룩해 지는 것 및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죄와 싸우는 것은 회개라고 부르고 사탄의 세력과의 싸움을 영적 전쟁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사탄과의 싸움은 육신의 죄와 세상적의 죄 및 이를 타고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과의 전쟁을 포함하기 때문에 훨씬 더 성경적인 용어다. 필자는 용어를 비판하는 자들에 '한번이라도 귀신을 제대로 쫓아 본 적이 있고 영적 전쟁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비판자들은 신자들이 사탄의 세력과 영적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원론이라고 하는데 이런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원론이란 동일한 힘을 가진 선과 악의 대결을 말한다. 그러나 신자가 죄와 싸우고 죄를 타고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것은 이원론이 아니라 '이미'와 '아직은 아니다'의 긴장 상태에서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싸우는 것이다. 성경도 분명히 그렇게 기록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신자와 사람의 단체, 제도, 종교 및  산업의 뒤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과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자의 싸움이다)

 

결국 신자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신의 죄와 세상의 죄 및 이를 타고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영적 전쟁을 짧은 지식으로 함부로 이원론이라 폄하하지 말기 바란다.

 

한편, 마귀는 조무래기 귀신들만 데리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대장급 고수들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권세들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구절을 조금만 깊이 연구해 보면, 여기서 말하는 통치자들, 권세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고수급 마귀의 세력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지역의 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지역과 산업과 종교를 관장하는지를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사탄 바로 아래 계급의 고수급으로 사람들의 죄를 발판으로 특정 지역이나 산업이나 종교를 관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실 때 내리신 10대 재앙은 ‘애굽의 10대 신들’을 심판하신 것’이다(출 12:12). 10대 신들이 관장하는 지역, 산업 및 특정 분야들이 있다. 하나님이 애굽의 10대 신들을 심판하신 후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것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강한 자인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마귀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을 구원시키시는 것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마 4:1-11; 12:28-29).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인류의 죄값을 치르신 것은 물론 마귀의 세력을 일망타진 하신 것이다(골 1:13-15; 2:14-15).

 

 

그러나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지만 내재하는 죄와 싸워야 하듯,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의 세력에게 치명타를 안기셨지만 마귀는 여전히 이 세상의 임금이요 신이다(눅 4:4-5; 고후 4:4).

 

 

구약에서는 다니엘이 중보기도를 통해 ‘지역의 영’ 즉 '국가의 영'을 물리친 기록이 나온다.
다니엘이 21일 금식 기도를 한 후 가브리엘 천사장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기도 응답이 바로 되었지만, 오는 도중에 바사 왕국의 군주가 막으므로 미가엘 천사장의 도움으로 이제야 늦었다고 설명한다(단 10:12-14).

 

 

가브리엘 천사장을 막은 ‘바사 왕국의 군주’는 누구인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사람이 아니라 영물일 수 밖에 없는데 바사 왕국을 담당하는 영이다. 이후 이 영은 헬라 군주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한다(21절).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짐승은 로마 황제를 다스리는 영이다. 로마황제를 다스리는 영은 결국 로마를 다스리는 영이다. 계시록 7교회에 등장하는 사탄의 회당은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들 뒤에서 역사하는 종교 관련 영들이다(계 2:9, 13; 3:9).

 

 

이 정도만 해도 성경에 의하면 국가, 지역, 종교, 산업을 통해 역사하는 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영들이 없다는 주장은 성경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비성경적 주장이다. 이런 영적 진리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실천에 옮긴 단체가 바로 예수전도단(YWAM)이고 피터 와그너는 이들의 가르침과 사례를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공 수사관의 의하면, 남한이나 북한에서 오고가는 전파가 엄청 많다고 한다. 북한에서 남파 간첩과 교신이 엄청 많지만 일반 시민은 잘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다. 영적 전쟁과 중보기도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중보기도의 은사나 소명을 받은 자들이 이런 힘들고 드러나지 않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판자들은 비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멀리서 하는 기도와 현장 기도의 차이

 

 

이승구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 꼭 그 지역에 가서 기도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물론 멀리서 기도하는 것이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바른 미디어」 화면 캡처3
   
▲「바른 미디어」 화면 캡처4

 

그러나 멀리서 하는 것과 현장에 가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차이를 모른다. 현장에 가면 영적 감각이 열린 사람은 그 지역의 영적 분위기를 쉽게 감지한다. 공기 좋은 야외에 있다가 사람들이 많은 밀폐된 공간에 가면 답답하듯, 현장에 가면 영적 분위기를 상대적으로 쉽게 감지하여 기도의 효과도 높아질 수 있다.

 

 

*영적 전쟁의 실제 실례

  
 

이러한 영적전쟁은 금방 열매를 맛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사례는, 다음의 동영상에서처럼, 중미 과테말라의 알모롱가(Almolonga) 시의 기적적 변화다.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알모롱가는 술집이 즐비하고 술 중독자와 범법자가 넘치고 가난과 폭력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였다. 그러나 마리아노 리스카헤 목사가 지역의 영인 ‘마시온 신’을 제압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적적인 신유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오기 시작하여 24개의 교회가 생기고 주민 80~90%가 신자이다. 교회에만 영양력을 끼친 것이 아니다. 술집이 36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고, 1994년에는 도시에 있던 4개의 감옥이 모두 문을 닫고, 거리에는 성경에 나오는 장소 이름을 본 딴 상호를 가진 가게들이 많이 생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 부족으로 농사가 시원치 않던 지역에 지하수가 터지면서 농사가 너무나 잘되어서 부자 마을이 되었다.

 

 

영적전쟁을 통해 모든 도시가 이런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전쟁은 여러 가지 영적 돌파를 이룬다. 예수 전도단의 존 도슨이 남미의 아르헨티나 어느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미지근했다. 기도를 하던 중, 이 지역의 주된 죄악은 ‘교만’이라는 음성을 듣고 대신 회개 한 후, 복음을 전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했다.

 

 

미국의 한 지역은 살인과 폭력 같은 강력 범죄가 끊어지지 않아서 주민들도 방문하기를 꺼리는 지역이었다. 한 선교사가 기도하던 중 범죄의 원인은 ‘살인’이라는 음성을 들었다. 선교사는 인디언 부족을 통해 오래 전에 한 인디언 부족이 다른 인디언 부족을 몰살하여 피해자의 원한과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두 부족을 설득하여 화해의 예배를 드렸다. 가해 부족의 대표가 조상들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했고 피해 부족 대표가 가해자 부족을 용서했다. 이후 강력 범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런 것들이 모두 지역의 영을 대적하는 전략적 영적전쟁의 열매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모르는 자들은 이런 것들이 비성경적이니 어쩌니 한다. 물론 이런 기도를 하더라도 일시적 효과만 있기도 하고 장기적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과테말라의 알모롱가 처럼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일부에만 끼치기도 한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일시적이고 부분적 효과만 있는 사례 몇 가지를 들면서 이런 기도 전체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불신자를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한다고 해서 모두 교회에 정착하고 성숙한 신자가 되는가? 그런 신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신자도 있다. 마찬가지다. 기도의 효과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반짝 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영향이 전체에 미치는 경우도 있고 부분적으로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도를 하는 경우와 하지 않는 경우의 차이는 크다. 이런 기도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전체적으로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교회는 쇠퇴한다.

 

 

*한국에서 인기가 시들한 이유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우상숭배가 심하고, 점집이 많고, 불교와 사당이 많고, 지역에 따라 정기적으로 산신제와 해신제를 지내는 한국에 가장 필요한 복음 전파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한때 한국에서도 이런 중보기도 운동이 성행했지만 금방 시들었다. 왜 그런가?


필자도 이런 기도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째, 자신의 성결이 우선이다.


자신의 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죄를 타고 역사하는 마귀의 진을 무너뜨리는 기도를 하면 엄청난 역공이 와서 삶이 피폐해 진다. 지역이나 나라의 죄를 회개할 때 자신의 죄를 미리 하거나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영적 전쟁의 범위를 너무 크게 잡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나라와 민족은 물론 도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 없이 막연하게 그런 식으로 기도하면 지치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어렵다. 이런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체적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전, 필자의 교회가 들어있는 건물의 같은 층 옆에는 철학관, 아래층에는 영적으로 센 강신무가 들어있어서 중보기도를 통해 쫓아낸 적 있다. 어떤 지역의 이면 도로에 있었을 때는 주변에 점집이 130개 이상이었다. 중보기도를 하는 대형 교회의 담당 집사가 그 지역의 점집을 일일이 헤아려보았다고 한다. 그러니 기도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꿈에 이상한 것이 나타나고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 집중 기도했더니 주변의 한두 개는 사라졌는데 나머지는 여전했다. 한 교회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교회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런 기도를 할 때는 자신의 영력, 주변의 환경을 면밀히 검토하여 혼자 하거나 필요하면 주변 교회와 연합하여 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점집이 즐비한 지역, 절이 많은 지역, 산신제나 해신제를 정기적으로 지내는 지역에서는 교회 연합을 통해 이런 기도를 해나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정이나 사업장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다.
언젠가 지방을 순회할 때 아는 목사 한분이 자기가 아는 권사님이 영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건물 아래층은 사업장이고 윗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오랫동안 딸이 방안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것이다. 잠을 자려고 누워있으면 섬뜩한 기운이 심해서 다른 곳에서 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래층에서 사업하는 남편 장로의 사업도 딸이 방안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시점부터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딸의 방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영적전쟁에서 배운 대로 그곳에서 무슨 죄가 저질러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곳에서 저질러진 죄를 대신회개하고 그 죄를 타고 역사하는 영을 쫓았다. 기도하면서 섬뜩한 기운이 제거되었다는 돌파가 느껴졌다. 다음날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에 소개한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권사님의 딸이 2~3년만에-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편안하게 숙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날에는 사업장을 위해서 기도하러 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사업장 군데군데를 기도하며 다녔다. 그런데 어느 한쪽에 갔더니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권사님에게 물었더니, 자기들도 섬뜩해서 그쪽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원인 분석을 위해 기도하면서 몇 가지 원인을 찾아내었다. 간단하게 기도한 후 다른 일정이 있어서 다음날 한번 더 오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약속이 취소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남편 장로의 사업은 그 지방 교회협의회에 물품을 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소속된 예장 OO교단이나 교회협의회 사람들에게 축사에 대해 소문이 나면 찍히므로 남편이 약속을 보이코트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속으로 웃었다. 그 잘난 예장 교단 장로가 사람 눈치 보느라고 딸이 수년 동안 고통을 받이 왔고, 자신의 사업이 수년 동안 침체해도 예장 교단의 체면 때문에 보이코트 한 것이다. 장로교 교인이라고 해서 귀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잘못된 신학이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성도님이 가게를 팔려고 내놓았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아서 마음 고생이 많았다. 가게 현장에서 가서 기도했다. 가게 안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기도하던 중 구석의 쪽방에 가서도 기도했다. 갑자기 시꺼먼 물체가 보이면서 계단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가게를 팔게 되었다.

 

 

교회당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다.
언젠가 몇 명의 목사님들과 함께 모 지방의 A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강대상 근처에서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기도를 위해 눈만 감으면 주변에 누가 있는 것처럼 섬뜩한 기운 때문에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은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면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섬뜩하기도 하고, 또 어떤 목사님은 열정적으로 설교하거나 찬양하는 중 갑자기 영적 냉기가 들면서 열정이 싸그라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A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 팀은 그 교회당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교회의 강대상과 주변 및 교회당 전체를 위해 영적 전쟁의 요령 대로 30분 정도 기도했더니 어떤 돌파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영의 세력을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사님에게 강대상 근처에 가서 기도해 보라 했더니 거짓말처럼 섬뜩한 기운이 없어졌다고 한다. 사후 관리도 중요하므로 기도하는 요령을 가르쳐 드렸다. 알면 쉽고 모르면 당한다.
 

 

어떤 목사님이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기도 요청을 했다.
자기 교회당 건물 천정에서 수시로 쿵꽝쿵쾅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쥐나 무슨 동물이 있나해서 쥐약도 놓고 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여전하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천정의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장에 갈 일이 있어서 가서 기도했다.
영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동안 영적전쟁을 위한 기도를 한 후 후속조치를 위해 그곳 목사님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부탁했다. 이후 천정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교회들만 그럴까? 별난 교회들만 그런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받는 목회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또한 교회당이 영적으로 오염되어 있더라도 영적으로 둔해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은 물론 장소에서도 악령들이 발판을 삼고 역사한다. 그러므로 교회당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장소가 교회로 사용되기 전에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그 장소에서 고사 지내고 굿 했을 수도 있고, 그 장소 사용자들이 불화와 반목과 음란의 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죄들을 타고 악령들이 역사하여 기도와 말씀 전파를 가로막고 교인들 간의 불화를 조성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런 영들을 제압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이 '지역의 영'을 위한 중보기도와 영적전쟁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모르는 자들은 이런 기도를 '미신적이다', '비성경적이고 신사도적인(?) 예언적 중보기도'라고 비난한다. 누가 비성경적인지 모르겠다. 교회에서 이런 걸 해주지 않으니까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용한(?) 점쟁이라도 찾아가는 것이다. 허락한다면 필자는 비판하는 자들의 가정이나 사무실 또는 교회당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고 싶다. 과연 그들의 장소가 영적으로 얼마나 깨끗한지 알고 싶다.

 

 

셋째, 지속적인 연합 기도가 중요하다.

 

특정한 ‘마귀의 진’이나 지역을 위한 기도를 할 때는 개인이나 한 교회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나 교회가 연합해서 하는 것이 좋다.  특히 특정 지역이나 건물에서 땅밟기 기도를 할 때는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정리하면, 지역의 영을 타파하는 영적 전쟁 기도는 아직도 개발할 여지가 많다. 좁게는 가정, 사무실, 직장에서 넓게는 지역이나 국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제대로 활용만 하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의 성장에 아주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상숭배가 심한 한국에서 제일 필요한 프로그램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인해 나이를 불문하고 귀신들려서 힘들어하는 신자들이 많다고 한다. 장로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고 옥한음 목사도 어려움을 토로했고 예장 OO의 중견 목사 한 분도 청년들 중에 귀신들린 자들이 워낙 많아서 축사 관련 책을 20 권 정도 사서 기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중에 필자의 저서도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구요한, 대적을 바로알자. 현재 절판 중. 신규 출판을 위해 개정 중에 있음).

 

그런데 이런 축사사역이나 영적전쟁 사역이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고 기적중지론에 젖어서 잘 모르는 자들이 모든 것을 귀신파, 인터콥 및 신사도 운동의 불건전한 사역 등으로 매도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미국 순복음 교단도 공식적으로는 신사도운동의 여러 가르침을 부인하지만 지역 교회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적극 수용하고 심지어는 강사를 초청하는 교회들도 많지만 교단에서 강제로 제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교단 차원에서 ‘어떤 운동을 불건전하므로 접금 금지나 참여 금지’를 해놓고 실제로 소속 교단 목사가 이런 운동을 하더라도 쉬쉬하면서 용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교단 외의 운동가들은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단성이나 사이비로 정죄해 놓고 막상 자기 교단 소속 목사가 그런 사역을 하면 눈을 감아버리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한국 교단의 실정이다. 그런 운동을 하더라도 우리 교단에 와서 교세를 키워주면 눈 감아주겠다는 것인가?

 
 

한편,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직전 총회장인 조지 우드(George Woo)와 하나님의 성회 소속 오럴 로버츠 대학의 빌리 윌슨(Billy Wilson) 총장은 E21 운동(Empowered 21)의 공동 회장이다. E21운동은 2033년 오순절 날까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성령의 능력과 임재를 체험하게 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 단체에는 천주교 신부는 물론 수많은 신사도운동가들이 핵심 요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순복음 교단 소속의 많은 교회들도 사도와 선지자 직분은 사용하지 않지만 신사도운동의 다른 가르침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신사도운동에 대한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교리 입장은 사문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의 순복음 교단은 뒤늦게야 사문화 된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교리 입장을 지금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결의를 발표해서 누구를 보호하겠다는 것인가?
자기 교단 내에서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을 막겠다는 것인가 외부에서 주도하는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운동을 당장의 이익과 안정을 위해 대적하면 결국은 쇠퇴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부딪친 종교 지도자들, 교회사를 볼 때 로마 천주교와 종교개혁가들, 영국에서 칼뱅주의와 웨슬리안 주의, 미국에서 주류 교단과 오순절 운동, 이제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 오순절 운동과 신사도 운동이 부딪치고 있다. 기득권층과 새로운 운동은 부딪치기 마련이다. 기득권층은 늘 새로운 운동을 이단이나 이단성으로 정죄했지만 결국은 새로운 운동에 밀리거나 도태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나쁜 역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글로리아타임스」는 순복음 교단 이대위가 이 결의를 자진 철회하거나 교단 총회에서 이 결의를 기각하기를 촉구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교단 자체의 앞날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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