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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18)] 예언을 하려고 하라(1)교회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는 여전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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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4  2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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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18]]

예언을 하려고 하라(1)

-교회 시대에도 예언의 은사는 여전히 지속된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초자연적 은사들)을 (시기할 정도로 간절히 )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2).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

 

교회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 꿈 및 환상 등을 통해 위로, 권면, 책망 및 미래에 될 일을 인도받았다.

 

교회사를 볼 때,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 히포의 어거스틴 감독,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주요 입법위원이었던 존 낙스, 사무엘 러더포드 및 청교도인인 조지 길레스피, 윌리암 브릿지, 리차드 백스터, 설교 황제 찰스 해돈 스펄전, 석유왕 존 D. 록펠러, 며칠 전 타계한 개혁주의신학자인 R.C. 스프롤, 미국의 일터사역자인 척 리프카, 한국의 한경직 목사, 수영로교회 정필도 원로목사, 온누리교회의 김하중 장로 등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았거나 보는 사람들이다.


자료 참조 :
[신학검증④] “예언을 멸시하는 성령 소멸자들(1)” 「글로리아타임스」. 2017.7.8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01

 

뿐만 아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웨인 그루뎀, 고든 피, J. 로드만 윌리암스, 존 파이퍼, 샘 스톰즈, 막스 터너, 잭 훼이포드 같은 신학자는 물론 한국에서도 김영한, 김동수, 김상복, 김세윤, 배본철과 같은 신학자들이 교회 시대에도 하나님의 음성이나 환상과 같은 예언의 은사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현재 미국 피닉스 신학대학원 교수이다.
그루뎀은  이 책에서 전형적인 기적종식론자인 리차드 개핀(Richard B. Gaffin, Jr)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고든 피(Gordon Fee)

   
 

 캐나다 리젠트 대학 교수이며 고린도전서의 세계적인 주석가이다.
그는, ‘은사자들이 성경 보다 경험을 앞세운다면 신학자들은 성경보다는 논리를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잭 디어(Jack Deere)

   
 

 미국 달라스 신학교 구약학 박사 출신으로 은혜를 받은 후 성령의 초자연적 사역과 음성듣기를 변호한다.

 

- J.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

   
 

개혁주의 신학과 오순절 성령운동을 조화시킨 전 리버티 신학대 교수. 칼빈, 루터 및 기타 기적중지론자들을 비판했다.

 

- 존 파이퍼(John Piper)

   
 

 그는 일련의 강의에서 오늘날에도 음성듣기나 예언의 은사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 막스 터너(Max Turner)

   
 

런던 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신약 신학자로서 성령과 은사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신약이 말하는 방언과 예언을 인정한다.

 

- 번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신약학·성경해석학 교수인 포이트레스는, “고전 14:1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인간인 신학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에는 예언의 은사가 없어졌다고 주장하는가?”라고 반박한다.

 

포이트레스는 사도들의 ‘설교’나 ‘예언’과 오늘날의 ‘설교’나 ‘예언’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사도들의 설교나 예언에는 오류가 없었지만 오늘날의 설교나 예언에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도 정이철이나 다른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 못지 않게 신학교에서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리차드 개핀싱클레어 퍼거슨을 통해 개혁주의 조직신학을 배웠다. 심지어 리차드 개핀과는 수업 시간에 은사주의에 대한 논쟁도 더러 한 적이 있다.

 

어느 신학생은 달라스신학교에서 교수와 방언 논쟁을 하다가 퇴학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는 신학적으로는 기적중지론적 입장이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같은 신학교 교수이지만 번 포이트레스는 은사에 상당히 열린 편이었다. 지금도 개설되어 있는 NT853 Miracles and Miraculous Gifts(기과 기적의 은사들)란 과목(Th.M 및 Ph.D 과정)을 필자는 신학교 다닐 때 두 번이나 청강했다. 포이트레스는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는 웨인 그루뎀과 부인하는 리차드 개핀의 견해를 비교 평가한 후, 웨인 그루뎀의 손을 들어준다.


포이트레스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고전 14:1에 있는 예언의 은사를 인간인 신학자들이 왜 없다고 하느냐?”

“정경이 완성되지 않은 사도 시대에 기적이 필요했다면 오늘날 성경 반입이 금지된 오지에서 기적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정경이 완성되지 않은 당시의 예언이 정경을 가진 오늘날의 예언에 비해 더 위험하지 않았겠는가?”

“개혁신학이 없어도 남미 오순절운동은 번성하고 있다. 우리 개혁주의자들은 걸핏하면 남을 가르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신학생이 방언을 하다가 웨스트민스터에서 신학을 배운 후 방언을 중지했다. 그런데 졸업 후, 자기 교회에서 방언 현상이 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포이트리스 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번 포이트레스는 다음의 소논문에서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고 있다.
 

자료 :
Vern Poythress, “Modern Spiritual Gifts as Analogous to Apostolic Gifts: Affirming Extraordinary Works of the Spirit within Cessationist Theology.”

https://frame-poythress.org/modern-spiritual-gifts-as-analogous-to-apostolic-gifts-affirming-extraordinary-works-of-the-spirit-within-cessationist-theology/

 



필자는 웨스트민스터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재성이나 박영돈포이트레스의 강의를 한번이라고 들었다면 그처럼 골수 기적중지론자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외에 예언에 대해 신학적으로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분은 다음의 책들을 같이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웨인 그루뎀 편집.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

기적중지론과 기적계속론 및 중도적인 4가지 관점에서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구요한, 『기적의 은사를 구하라』(한아북스, 2015).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사역적 관점에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의 허구를 파헤친 책.


-김동수. 『방언과 예언』(킹덤북스, 2016).

기적계속론의 입장에서 방언과 예언의 핵심 주제를 심도 있고 명료하게 정리한 책.


-김영한. 『영적분별』(킹덤북스, 2014).

중도적 기적계속론 입장에서 은사와 영적 사역 전반에 대해 다룬 책.

 

-이한수, 『신약은 성령을 어떻게 말하는가』(이레서원, 2001).

막스 터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약의 성령 지침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 시대의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는 자들도 많다. 칼뱅주의 신학을 수용하는 보수 장로교단에서는 아직도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바탕으로 기적계속론(은사지속론)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방언은 인정하지만 아직도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따르는 북미주 내 신자가 52만 명에 불과한 반면, 방언·신유·축사 및 예언을 인정하는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들이 3,000만 명을 능가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신학 논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정이철과 그의 추종자들

 

사실 필자도 이 주제에 대해 여러 번 글을 게재했기 때문에 비슷한 글을 다시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정이철은 지금도 여전히 방언을 폄하하고, 예언의 은사를 신사도적 현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가 위에 제시한 신학자들도 모두 신사도 운동가가 되어 버린다. 이런 횡포가 어디 있는가?

 

더군다나, 최근에 예장 합동 총신대 출신의 김요한 (목사)가 『지렁이의 기도』란 책이 단 기간에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요한의 책은 아직도 예언의 은사에 대한 시비가 고조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새물결플러스 아카데미를 통해 ‘지성적 신앙’을 강조하는 목사가 예언의 은사를 통한 사역을 과감하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김요한의 간증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현상들이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워낙 비판자들의 목소리가 크서 잘 소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김요한의 책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기적중지론자들은 당연히 비판하고 기적계속론자는 당연히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정이철의 비판은 도를 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김요한이 어떻게 해서 모든 은사사역을 신사도 운동으로 몰아가는 정이철의신사도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책의 출판을 허용했는가 이다. 정이철의 책을 출판하기 전에 김요한이 하나님께 문의했을까? 하나님께 문의 했다면 과연 이런 책의 출판을 허용하셨을까? 


김요한은 예언의 은사가 있지만 미국 경험이 없어서 미국 은사 사역자들에 대한 주변의 나쁜 소문만 듣고 이런 책을 출판했을까? 은사운동에 대한 다른 의견도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출판했을지 모르지만 정이철의 책이 은사운동에 끼친 폐해는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배로 보아 정이철은 김요한과 총신대 동문인 것 같은데, 정이철은 김요한의 책에 대해 비난의 독기를 뿜어내면서 이렇게 엄포를 놓고 있다.

 

“만일 머지않아 단 한 교단에서라도 김요한 목사를 사이비 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대위에 상정하고, 공식적으로 이단성 조사가 시작된다고 발표되면, 김요한 목사가 지금처럼 기세등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이 시작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김요한 목사가 겸손하고 자중하고 여러 사람들의 올바른 충고를 빨리 수용하기를 바랍니다.”

(정이철, “혹시 새물결 대표 김요한 목사는 신약의 선지자가 아닐까요?” 「바른믿음」.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15

 

 

정이철의 주장은 교회를 망하게 한 전형적인 기적중지론자들의 신학이다.
정이철은 미국 내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적 교회가 몰락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제시해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교회를 망하게 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이 진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종교 확신범이다.

 

정이철은, 마치 산헤드린으로부터 크리스천 체포 영장을 받은 사울(바울)처럼, 자기가 한국 보수 장로교의 위임장을 받아 은사주의를 때려잡는 ‘종교 경찰’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한국 일부 보수 장로 교단이 자신의 주장을 따라 몇 명의 신학 성분을 검증한 것에 힘입어 지금 정이철은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다.

 

사울(바울)의 나중은 어떻게 되었는가?

 

행 26:14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롬 10:2-3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나마 사울(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회개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았지만 정이철이 사울 처럼 되리란 보장은 없다. 잘못하면 성령 모독죄로 지옥 갈 지도 모르는 일을 정이철은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정이철은 지금 은사운동이 하는 모든 사역을 귀신 장난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막 3:28-30.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그러므로 이런 정이철을 동조하는 자들도 성령 모독죄로 인해 지옥 갈 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정이철 스스로 밝힌 것처럼,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정이철은 글로 독을 뿜어도 소용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 수하처럼 움직이는 보수 예장 교단 내 몇몇 추종자들을 선동하여 신학 검증이란 핑계로 그들을 정죄하여 교계에서 매장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정이철의 이런 영향을 받은 탓인지 예장 대신(백석)의 이대위(위원장 김정만)는 「글로리아타임스」가 “신사도운동가들이 가르친 비성경적인 예언과 중보기도가 결합된 예언적 중보기도 사상을 가르친 점…..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중요한 부분을 부정하고 반박한 점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런 혐의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도 다시 한번 예언의 은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필자가 예언의 은사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도 ‘공적 계시’인 성경의 완성은 주장하지만 ‘사적 계시’(private spirits)인 예언의 은사는 여전히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세계적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과 번 포이트리스의 지지를 통해 소개했는데, 김정만은 이를 트집 잡아서 「글로리아타임스」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중요한 부분을 부정하고 반박한 점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 것 같다.

 

자료 참조 :

 “[개인예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사적 계시’ 인정.” 글로리아타임스. 2016.3.27.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15

 

 

만일 김정만이 지적한 것처럼 ‘예언이 신사도운동가들이 가르친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필자가 위에 제시한 어거스틴이나 한경직, 정필도 목사는 물론 세계적인 신학자들이나 한국의 수많은 신학자들도 “신사도운동가들이 가르친 비성경적인 예언”을 가르친 혐의로 신학 검증을 받아야 할 판이다.

 

더군다나 예장 대신(백석)의 설립자이자 백석대 총장으로 새로 취임한 장종현 총장은 ‘공부만 한 학자들이 성령체험·은사를 부인한 것’을 지적하고 이전에는 이런 신학이 없었어도 목회자들이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신학교 커리큘럼을 신학이 아니라 성경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예장 대신(백석) 증경 총회장을 역임한 전광훈성령 세례를 말하지 않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신 서울신앙고백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예장 대신 백석대학교 최갑종 전 총장은 ‘신자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지향하는 칼뱅주의 예정론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필자의 주장에 비해 훨씬 더 앞서간 것들이다.


그런데 김정만은 이런 모든 주장에는 귀를 닫고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정이철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여, 은사운동을 대변하는「글로리아타임스」의 신학을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필자는 그래도 장로교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가능하면 장로교도 인정하는 신학자들을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장로교 신학자 아니라도 은사운동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예언 사역자다. 그런데 김정만은 이런 자료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편파적인 정이철 무리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학 함량 미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만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를 대적하는 처사요, 신학적 무지요,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요, 누워서 자기 교단 얼굴에 침 뱉는 행위요, 교단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영적 갑질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김정만이 이런 허황한 갑질에서 지금 즉시 벗어나기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바이다.

 

자료 출처 :
“[사역스케치 (04)] 예장 대신(백석) 내의 은사 사역자들-
부산영락교회, 청교도영성훈련원 및 그레이스 힐링교회.” 글로리아타임스. 2017.12.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43

 

 

 예언의 은사, 왜 부인하는가?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이 예언을 포함한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는 기적중지론 신학은 450년 동안 머리 좋은 수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철통 같은 방어망을 형성해 놓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노력과 공부를 하지 않으면 깨기 힘든 신학 체계이다. 너무나 그럴듯하고 철저하게 신학적 포장을 해놓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은 쉽게 설득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람은 똑똑한 것 같아도 자기의 인식이나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방언도 하고 음성도 듣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안수하여 쓰러지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대뜸, “그것 빈야드 현상 아니냐?’며 마음문을 닫았다.

 

감리교의 시조인 요한 웨슬리, 미국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 당시의 조지 휫필드나 조나선 에드워즈의 사역 및 마틴 로이드 존스 등이 이런 현상을 경험하고 지지한 사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이철 같은 자들은 아직도 이런 현상을 ‘빈야드 현상’으로 매도한다.
 


한편, 필자가 아는 어느 목사는 방언과 쓰러지는 현상 및 각종 신유에 대해서는 활짝 열려있으면서도 자기가 듣지 못하는 음성듣기나 예언은 신비주의라고 부인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수준을 영적 카트 라인으로 생각한다. 자기 보다 심하면 신비주의자고 자기 보다 못하면 냉랭한 전통주의자다.

 

 

“진짜가 있으니까 가짜가 있다”

 

만원 짜리 위조 지폐나 오만원 짜리 위조 지폐는 있어도 2만원 짜리 위조 지폐는 없다. 2만원 짜리 진짜 지폐가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먼저 온 마귀는 도둑이다(요 10:8). 마귀는 창조의 능력이 없으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자기 것처럼 오도한다.

 

그런데 영적 체험이 없는 자들은 진짜가 가짜 흉내를 낸다고 오해한다.
정이철의 무리는 방언은 사탄의 옹알거림, 예언은 점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한국 사람은 점쟁이에 워낙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으므로 예언을 점치는 것으로 오해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초기에는 그랬다. 사람은 자기 경험이나 인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세상적으로는 앞서 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가 도둑질한 것을 회복하셔서 마귀의 계략을 무력화 시키신다.

 

마귀가 록앤롤 음악을 통해 젊은 이들의 영혼을 도둑질 할 때 하나님은 교회에 찬양과 경배를 허락하셔서 젊은이들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다. 마귀가 동서양은 막론하고 각종 점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때 하나님은 예언의 은사를 활성화시켜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마귀가 명상기도를 통해 동서양 사람들을 유인할 때 하나님은 관상기도 즉 임재기도를 회복시키셔서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잘 모르는 자들은 교회가 세상이나 마귀적인 것을 따라간다고 비판한다. 본말을 모르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도둑인 마귀가 먼저 와서 빼앗아 간 좋은 것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무경험에 의한 신학과 경험에 의한 신학

 

기적중지론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다른 사람을 통한 '나쁜 경험'이나 자신들의 '무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논리’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기적을 부인하고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기적은 인정하지만 교회 시대의 기적은 부인한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는 성경의 기적으니 물론 교회 시대의 기적도 인정한다. 누가 더 성경적인가? 모두가 자기들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숫자가 누가 가장 성경적인가를 증거한다.

 

자유주의를 표방한 유럽의 기독교는 망했고 미국의 자유주의 교회도 하락 추세에 있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라고 자부하던 칼뱅주의 보수주의도 미국에서 몰락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은사주의 교회들만 성장하고 있다. 이 사실만도 봐도 은사주의가 가장 성경적이라는 사실이 증거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는 신학적 이유?

 

 

기적중지론자들은 자기들에게 예언과 같은 초자연적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자기들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 받은 영적 장자이자 선배이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믿는 자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자기들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고 자기들과 교리도 다르고, 자기들이 보기에 열광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사람들에게 초자연적 은사나 체험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계시종료론)
 

더 이상의 계시를 말하는 것은 성경 내용을 가감하는 것이다.

 

계 22:18-19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언의 은사는 성경 기록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공적 계시인 성경 계시에 종속되는 사적 계시다. 성경이 헌법이라면 예언의 은사는 헌법에 종속되는 법률이나 시행령 수준이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가 성경의 권위나 종결성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물론 통일교나 모르몬교 같은 이단이 있다.
그러한 이단은 성경의 주요한 핵심 진리와 상충되기 때문에 연구도 많이 되어 있고 이단이라는 사실을 금방 안다. 그리고 이단은 아니지만 ‘이단성 있는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전통적 신자는 물론 은사적 신자 중에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려는 요지는 잘 알려지고 신학계나 교계에서 검증 받은 자들이 주장하고 인정하는 여러 은사 사역을 잘못된 것으로 보는 기적중지론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필자가 늦은 나이에 직장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여러 가지로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한 것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는 내 것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귀로 듣는 음성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지만 귀로 듣는 것만큼 또렷한 음성이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이 소프라노냐, 바리톤이냐고 시비를 거는데 사람의 육성은 아니고 마음의 소리 즉 ‘세미한 음성’(왕상 19:12 참조)으로 들린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마디가 현실과 미래에 대한 나의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고 개인적인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자체가 큰 위로이고 소망이었다.

 

이런 음성이 성경 기록에 무엇을 더하는 것인가?
이런 음성이 비성경적인가? 아마 누구라도 이런 음성을 처음 들으면 “야, 나도 드디어 음성을 들었구나.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기억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구나”라면서 은혜에 감격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은 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과 훈계, 주요한 결정 및 미래에 될 일을 말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음성을 듣기 전과 들은 후의 신앙 생활은 여러 모습으로 달라진다.


 

- 성경만으로 충분하다

 

원래 성경의 충분성 교리는 천주교의 전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천주교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동격에 두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전통에 우선한다.

 

또한, 성경의 충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딤후 3:16을 인용한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물론 성경은 신자의 신앙의 표준이자 원칙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수많은 개인의 모든 구체적 상황이나 세세한 필요까지 다 기록한 것은 아니다. 예언의 은사는 이런 간격을 메워 준다. 자세한 사례는 서두의 간증들과 바로 위의 필자의 간증을 참조하라.

 

 

- 성경은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 인물들이 초자연적 경험을 한 것은 ‘신자의 본보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으로 독특한 계시적 사건이다’고 거창하게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무경험을 정당화하고 경험자들을 비판하는 인간의 신학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박 선교사가 선교지에 대해 기도한다고 하자.
선교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어떤 지역 선교사의 설교나 글을 보고 도전을 받았을 수도 있고, 우연히 단기 선교를 갔다가 선교지를 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의 마게도니아 환상처럼(행 16:9), 기도 중에 특정한 지역에 가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다.

 

기적중지론자들은 바울의 환상은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에서 성령이 개입하신 것이므로 비반복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보여주신다. 이것이 기적중지론자와 기적계속론자의 차이다.

 

설교에서는 구속사적 해석과 모범적의 해석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성경 해석 특히 기적의 해석에 있어서는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이 구속사적 해석을 신봉하고 있다.

 

정이철은 전형적인 기적중지론자로서 성경의 모든 초자연적이고 특이한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사건은 우리의 본이 아니라 특수한 시대에 특수한 사람을 통해 특수한 목적을 가진 계시적 사건이므로 비반복적이고 우리의 본이 아니다’는 식이다. 구속사적 해석은 신학적 의미는 있지만 모범적 해석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다리 한 개로 성경 교리를 세우는 불완전한 신학에 불과하다.

 

이제 선택은 간단하다.
이런 해석을 하는 보수 칼뱅주의는 몰락하고 모범적으로 해석하는 은사주의는 성장한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해석을 따를 것인가? 신학적으로는 고상하고 번드레하지만 교회를 망하게 하는 ‘구속사적 해석’을 따를 것인가, 신학적으로는 단순하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교회를 성장하게 하는 ‘모범적 해석’을 따를 것인가?

 

자료 :
“[성경해석] 구속사적 해석과 기적중지론-성경은 대부분이 신자의 ‘본보기’를 위해 기록된 책이다.” 글로리아타임스. 2016. 4.2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21

 

 

*바울형과 디모데형

 

많은 기적중지론자들은 자기들은 기적이 별로 없어도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디모데형이다. 가족이나 부모들이 모두 특정 교단에 다닌다. 이사를 가도 같은 교단 교회를 찾는다. 소명을 받아도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교단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거나 이후 같은 교단의 교회로 청빙 받아서 소형교회-중형교회로 옮기고 운 좋으면 대형교회로 옮긴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언을 통한 특별한 인도가 별 필요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의 사례를 보면, 디모데가 이런 타입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3대의 모태신앙이고 성격도 다소 소심하고 은사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르다.

말 타고 가다가 부활한 예수를 극적으로 만나 회심했고,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 체험도 했다. 이후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성령의 인도를 받고 다니면서 기적을 행하면서도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고 내일을 기약하기 힘들 삶을 산 적이 많다. 바울형에게는 이미 주어진 것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경우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대부분의 장로교는 이미 많은 것이 주어졌다.

그래서 디모데 타입들이 많은 것 같다. 450년 된 칼뱅주의 신학과 100 년 가까이 된 장로교 전통 등 모든 영적 면에서 ‘장자’이다. 한 동안은 별 문제가 업었지만 이제는 성장도 답보 상태에 있고 주변에서는 은사 운동가들이 성가시게 군다.

 

그런데 신학도 조잡하고 성가시게만 구는 줄 알았던 은사주의 교회들이 성장한다. 칼뱅주의가 세계적으로 신학계는 물론 교계를 주름 잡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국 내 점유율 0.5%로 형편 없이 몰락해버렸다.

 

이제는 은사자들의 열매가 좋지 않고, 은사는 위험하고, 은사는 무속적이자 열광적이라고 배척할만한 근거도 희박하다. 전통적 교회는 자신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버리고 새로운 은사운동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면 된다. 이미 한국 교회는 전통적 교회든 은사적 교회든 은사주의 사역을 많이 도입했다. 찬양과 경배, 구역 예배나 셀교회, 중보기도 등을 도입한 교회는 이미 은사적 교회다. 그외에 로이드 존스 식의 성령의 능력을 통한 설교나 기도의 능력을 활용하는 목회자도 많다.

 

 

나가는 말

 

제대로 기도하는 목회자나 성도 중에는 이미 음성 듣기나 예언에 열려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가 만나 본 신자들 중에서도 자기들이 기도 중에 스쳐가는 ‘생각’이나 어떤 ‘깨달음’이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시초라고 하면 “아, 그건 내 생각인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음성 듣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음성 듣고 환상 보는 것이 뭐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말 마지막 때라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본다. 그런데 기적중지론 신학자들이 극단적인 사례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경계하다 보니 이미 듣고 있으면서도 억누르는 사람도 많다.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나 환상은 선험적인 것이다.
사람처럼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연구하고 따져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정곡을 찌르는 음성을 간단하게 들려주시지만, 그 안에는 위로나 권면, 책망이나 훈계, 방향 설정이나 미래에 될 일에 대한 것들이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나님이 간단하게 들려주시는 한 마디 음성, 꿈 또는 환상을 통해 신자는 위로와 소망을 얻고,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주 개인적이고 친밀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신앙생활에서 활력과 열정을 회복하고 유지한다.

 

 

또한,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많은 도움이 된다.
사소한 일은 한번의 듣기로도 결정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결정의 경우 반복해서 들려주시고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서 확인도 해주신다.

 

물론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정기적인 읽기와 묵상은 물론 갑자기 상황에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신다. 이 모든 것을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 부르고, 이런 음성 듣기나 환상을 정기적으로 듣거나 보고 그런 것들이 삶을 통해 검증되면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신자나 교회에 예언의 은사처럼 유익한 은사는 드물다.
비판자들은 극단적 경우만 보고 예언의 은사를 부정하는데, 이는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해서 마차나 자전거 타자는 주장이나 다름 없다. 영적인 일에도 가성비가 중요하다. 예언은 위험의 요소도 있지만 예언이 없어서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서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전통적 교회나 자유주의 교회가 쇠퇴하는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함 없이 인간적 생각으로 과거의 전통과 잘못된 신학이 진짜라고 믿고 거기에 매이다 보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과거에 아무리 잘 나갔더라도 끊임 없이 기술 혁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망하듯 개인이나 교회라는 집단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전통과 영광에 매여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에 둔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대적하면 개인은 신앙적으로 퇴보하고 교회나 교단은 답보 상태에 빠지거나 쇠퇴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전통적 교회나 자유주의 교회가 쇠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는 교회는 전반적으로 성장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주신 후에는 팔짱만 끼고 계시고, 신앙이나 교회의 운영은 사람이 성경을 활용하는 것에만 맡기셨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기적을 행하셨다. 사도들도 말씀을 받아서 성경도 기록하면서 기적도 행하고 때로는 성령의 직접적 인도하심도 받으면서 복음 사역을 감당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가 뭐가 더 잘났다고 성령이 기록된 말씀만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하는가?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 보다는 성경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께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섭리는 자연 법칙에 맡기셨다는 이신론(理神론)처럼,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성경만 맡기신 후 팔짱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

 

성경에서처럼 하나님은 신자와 교회의 주인으로서 지금도 신자나 교회를 개인적이고 친밀하게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음성 듣기나 예언은 그러한 관심과 인도하심의 표현 방식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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