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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17)] 패잔병 ‘정이철파’의 처절한 발악정이철파가 은사운동과 천주교를 엮을 줄 벌써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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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4  00: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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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17)]

 

패잔병 ‘정이철파’의 처절한 발악

- 정이철파가 은사운동과 천주교를 엮을 줄 벌써 알고 있었다
방언이나 중보기도를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는 영적 좀팽이 정이철 -

 

   
 

 

패잔병 정이철이 말도 안 되는 주장과 논리로 은사운동을 신학적으로 공격하다가 실력이 달리니까 일부 골통 보수 예장 교단을 사주하여 필자를 폄하하려 했고, 그래도 필자는 굴하지 않고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의 처참한 몰락을 객관적 수치로 증명했다.

 

참고 자료 :

“[신학검증(16)] 게임은 끝났다 Game Is Over!” -하나님을 대적한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의 처참한 몰락. 2017.10.30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30

 

“[신학검증(15)] ‘마차 시대’ 논리에 목숨 거는 사람들”-기적중지론을 고수한 보수 칼뱅주의의 초라한 몰락. 2017.10.25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28

 

 

그랬더니 정이철이 이제는 은사운동과 천주교를 한 통속으로 몰아서 공격하고 있다.
이런 일은 필자가 이미 예상한 바다. 필자도 미국에서 일부 은사 운동가들이 로마 가톨릭에 호의를 갖고 있는 것에 적이 놀란 적이 있다. 개신교 자체가 천주교의 교리적 오류와 각종 실천적 오류에서 벗어난 운동인데 개신교 신자들이 은사운동을 하면서 천주교에 호의를 갖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자유주의 성향의 개신교 단체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이란 명목으로 천주교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고, 말세에 종교 통합에 이은 세계 정부 설립과 함께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 징조인가 의아해 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보수 장로 교인들이 정이철 무리들처럼 기적중지론자가 아니듯, 미국의 모든 은사운동가들이 친(親) 천주교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반(反) 천주교적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은사운동가들도 반(反) 천주교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정이철은 일부 현상을 전체 현상으로 성급하게 일반화 하지 말라. 그런다고 해서 당신이 고수하는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이 옳은 것은 아니다.

 

 

동종교배는 쇠퇴하고  이종교배는 번성한다

 

 

흔히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천주교와 오순절 운동 신학 류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성경적 복음(?)을 전한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국 망해가는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붙잡고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옥쇄(玉碎)라도 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순결한 성경적 복음'은 '기적을 거세한 무기력한 복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성경 대로 기도하고, 복음 전하고, 봉사하고, 전도한다. 그러면서 성경 도처에 기록된 기적은 쏙 빼버린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나 말씀을 기록한 사도들도 기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자기들이 뭐 잘났다고 기적만 쏙 빼고 말씀을 전하는가? 그러니까 기적중지론자들의 교세가 전 세계적으로 쪼그라드는 것 아닌가?

 

같은 종 끼리의 동종교배(同種交配)를 반복하면 유전자에 결함이 생겨 환경변화에 취약해지면서 결국에는 종이 사멸한다. 반대로 다른 종과의 이종교배(異種交配) 또는 ‘잡종교배’를 하면 1세대에서는 우성형질만 나타나는 ‘잡종강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주교는 각종 교리와 문화를 지나치게 포용하면서 번성해왔다. 한때는 조상 제사를 금지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교리가 아닌 문화적 차원에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칼뱅주의는 지나치게 배타적이어서 자기들이 세운 교리나 전통(문화)과 조금만 다르면 비판하고 배척해 왔다.

 

이들의 명분은 복음의 순결성(?)을 보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500년이 지난 지금 교세가 멸망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만 것이다. 보수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해서 미국 개국의 공신인 보수 칼뱅주의가 아직도 개신교 종주국인 미국에서 점유율이 0.5%정도의 멸망 수준으로 몰락했는가? 그러면서 아직도 자기들이 잘났다고 떠들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한국의 장로교단들도 미래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번성만을 위해서 천주교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문제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뱅주의처럼 배타적 순결성(?)만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다. 보수 칼뱅주의는 배타적 동종교배만을 고집하다가 결국은 망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칼뱅의 성령론'을 전공했다는 신학자들과 이에 물든 자들이 칼뱅주의 몰락을 촉진하고 있는 셈이다. 성령은 두 가지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속사역을 적용하시는데, 칼뱅은 '구원적 성령'은 강조했지만 '은사적 성령'은 부인하거나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이철 같은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칼뱅주의가 한때 번성했으니까 영원히 번성할 줄 잘못 알고, 자기들이 할 일은 목숨을 바쳐 그것을 보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만 옳다는 배타적 순결성(?)의 닫힌 동굴에서 벗어나서 다른 운동의 좋은 것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천주교 같은 '교리나 문화 수용적 자세'가 아니라 '교리나 문화 개혁적' 자세'를 가지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은사운동은 교회가 2000년 동안 부인하고 억눌러왔던 사도행전적 성령사역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사도행전적 초자연적 사역을 인간의 교리와 전통이 부인해 온 것을 하나님이 성경 대로 회복하시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은사운동을 대적하는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런 개인이나 단체가 잘 될 리 없다. 성령 소멸죄나 성령 훼방죄(모독죄)는 왕정시대에 비유하면 역모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이철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모든 은사운동을 마귀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망해가는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의 최후의 발악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고 자기들이 가진 조그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이철에게 동조하는 무리들이 한국 교계 여기저기에 많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도 세리나 창기 같은 죄인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셔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알만한 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성령사역을 귀신장난이라 폄하하는 자들에게는 '독사의 xx들아', '화 있을진저' '성령모독죄(훼방죄)를 짓는 자들'이라며 신랄하게 책망하고 대적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신자라면 정이철 같은 패악한 무리들은 끝까지 대적하여 교계에서 추방시켜야 한다.

 

 

아직도 방언 갖고 시비 거는  정이철

 

 

특히 정이철은 아직도 방언 갖고 으르렁거린다. 그의 입에는 ‘거짓 방언’ '귀신 방언'이란 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방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방언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아는가?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한국 신자의 70% 정도가 방언을 한다고 한다.

 

필자 또한 하나님이 주신 방언의 축복을 30년 이상 누리고 있다.
어느 바보 같은 마귀가 필자에게 ‘거짓 방언’을 주어서 필자가 방언을 하면 심란한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더해주는가? 필자 주변의 많은 신자들도 방언이 주는 이런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미국의 퓨 포럼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은사운동 교인들이 비은사운동 교인들 보다 훨씬 더 성경을 사랑하고 신앙생활도 성경적으로 더 잘한다고 한다. 어느 바보 같은 마귀가 '거짓 방언'을 주어서 은사주의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오히려 더 잘하게 만드는가?

 

자료 참조 :

“존 맥아더의『다른 불』비판(2)” 중 퓨 포럼 조사 결과 참조.「글로리아타임스」. 2014.4.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4

 

 

이 모두가 장 칼뱅의 엉터리 방언관을 답습하고 악화시킨 그 잘난 개혁주의 신학자들인 안토니 훼케마, 팔머 로벗슨, 존 스토트, 리차드 개핀 존 맥아더의 엉터리 방언관을 더 사악하게 답습하고 헬라어 기본 문법도 틀리는 이창모의 엉터리 방언관을 정이철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보기도' 갖고 이단 시비 벌이는 영적 좀팽이 정이철

 

 

개신교에서 당연하게 하는 새벽기도와 대심방 행위, 설교란 단어는 원래 기독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새벽기도 하셨다는 기록은 있지만, 시작은 불교 사찰 승려들이 새벽 예불 드린 것, 무속의 여성들이 새벽에 정화수 떠 놓고 신들에게 빌던 것이다. 그러다가 선도(仙道) 수행자였던 길선주가 새벽기도, 통성기도, 철야기도 하던 것을 목사가 된 후 기독교에 적용했고, 이를 통해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이 일어나면서 새벽기도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 프로그램이 되었다.

 

대심방은 원래 마을 무당들이 연말연시에 집집 마다 돌았는데, 선교 초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기독교에 도입한 것이다. 설교(說敎)란 단어는 불교의 설법(說法)에서 생겼다.

 

 

성경도 기존에 있던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당시 존재하던 문화를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이 할례 하기 이전에 이미 이방 나라에서 할례를 시행했다. 성경 주제의 핵심인 언약의 형식도 당시 존재하던 강대국과 약소국의 국제조약 형식을 본받은 것이다.

 

구약의 엘로힘은 대문자로 사용하면 ‘하나님’(God)이고 소문자로 해석하면 ‘신들’(gods)이다. 로고스는 예수님에게 적용하기 이전에 이미 헬라 스토아 철학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원리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신약의 ‘하나님’(헬라어. 데오스)도 이미 헬라 신화의 ‘신들’(gods)에게 사용하던 단어들이다.

 

하나님의 특별은혜는 일반은혜의 바탕 위에 이루어진다.

 

기독교도 출판, 방송, 인터넷,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세상이나 사이비 종교들도 그렇게 한다. 사이비 종교도 ‘구원’ ‘영생’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기독교도 사용한다. 초대교회는, 세상 술집에서 악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악기 사용을 금지했고, 오르간은 마귀 소리 난다고 금지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당이 북을 사용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북 사용하는 것을 이단시 했다.

 

“도구가 무슨 죄가 있나?”

 

단어, 악기, 어떤 행위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가 갈라지는 것이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탈취물’로 성막을 제작하게 하셨다. 조폭이 칼을 쓰면 흉기가 되고 의사가 칼을 쓰면 이기가 된다. 그렇다고 확연한 종교적 냄새를 풍기는 천주교의 '성호 그리기'나 불교의 '108 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초자연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정이철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초자연적 능력은 모르고 마귀론만 연구하는지-실제로는 마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신자들이 초자연적 능력을 좀 행하기만 하면 마귀에게 영광(?)을 돌린다. 마치 하나님은 팔짱 끼고 계시고 마귀만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세상에도 진짜가 있으니까 가짜가 있는 법이고, 진짜가 좋을수록 가짜가 더 성행하는 법이다. 북한에서는 100달라 짜리 위폐만 제조하고 그 이하는 하지 않는다. 동일한 노력으로 왜 가치가 낮은 돈을 제조하겠는가? 마찬가지로 마귀는 하나님의 진짜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모방하여 자기 것 인처럼 사람들을 오도한다. 방언, 예언, 신유, 쓰러짐의 현상 등은 진짜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짜도 많은 법이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가짜가 많다고 해서 진짜를 포기해야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짜로 가짜를 물리쳐야 한다. 그것이 진짜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런 은사나 체험을 통해 성경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면 진짜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 능력을 체험했다고 해서 성품의 열매를 금방 맺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바른 교리를 공부하고 고백해도 윤리도덕적 비리를 저지르는 신자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은사자나 체험자들이 성품의 열매를 금방 맺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은사나 체험이 가짜라고 성급한 결론은 내린다.

 

그렇다면 바른 교리를 고백하는 전통적 교회 신자들은 왜 성품의 열매를 제대로 못 맺는가? 정이철의 논리대로 하면 교리가 틀린 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가 고수하는 교리는 모두 성경적이라고 착각하는가? 성경 말씀은 성령과 상관이 없는가? 전통적 교회야 말로 성령이 오로지 말씀을 통해서만 역사하는 것처럼 강조하지 않는가?

 

   

▲정이철의바른(?)믿음사이트 캡처

그런데 정이철 같은 영적 좀팽이는 이런 기본 진리조차 모르고 있다. 교회에서 초자연적 역사가 조금만 나타나면 마귀 탓으로 돌린다.

 

이제는 천주교가 은사운동을 따라 하니까 천주교와 은사운동을 한 통속으로 몰아붙인다. 개신교가 천주교에 호의를 베푼다고 해서 개신교를 비판하더니 이제는 천주교가 개신교를 따라서 은사운동을 해도 개신교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자기들처럼 보수 칼뱅주의만 고수하다가 북미주의 보수 장로교처럼 망해가는 것이 성경적인가?

 

또한, 정이철은 한 동안 ‘영성’이란 단어로 시비를 걸더니 이제는 ‘중보’란 단어로 한국 교계 기도운동의 숨통조차 막으려고 한다. 정이철 주장 대로라면 성경도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성경에도 세상 ‘단어’나 ‘관습’을 차용한 기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중보(자)’란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전한 모세에 대해 사용되었다(갈 3:19,20). 이때의 중보는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 전달하는 중간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신학적으로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평케 하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mediator)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런데 신자가 중보자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나 단체 및 국가 등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도 중보기도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때의 중보기도는 영어의 intercession을 번역한 것이다. 한글 사전은 mediator나 intercessior을 모두 ‘중재자, 조정자, 중재인’으로 번역한다.

 

한국 교회에 누가 어떻게 해서 intercession(중보), intercessory prayer(중보기도), intercessor(중보자, 중보기도자)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십여 년 전에 이 단어 갖고 시비가 일어나자 일부 교단에서는 ‘중보기도’ 대신에 ‘청원기도’나 ‘중재기도’란 단어를 사용하도록 권장했지만, 이미 중보기도란 단어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중보기도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정이철은 ‘중보기도’란 단어를 갖고 다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중보란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사용되었고,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중보자 수준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에 중보기도란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면서,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은사은동가들과 한국의 대표적 지도자들을 모두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고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번 반론을 제기했지만 정이철은 마치 신 나치주의자나 열혈 백호주의자처럼 막무가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남에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다.

 

참고 자료 :

“[정이철비판③] ‘중보 기도’를 오해하거나 폄하하지 말라(1).” 글로리아타임스 2015.3.20.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31

 

 

단어는 과학이 아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한때 미국에서 모 대통령이 어떤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령으로 고치려고 했다가 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포기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과 동명이인이 있으면 강제로 개명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민주국가인 남한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이 현직 대통령과 같다고 해서 개명을 하라 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이철은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이시기 때문에 ‘중보’란 단어를 사용하면 비성경적이고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모세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는데도 말이다. 정이철 주장대로 하면 ‘종교개혁’, ‘개혁신학’이나 ‘개혁전통’이란 단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개혁’이란 단어는 예수님이 구약시대를 신약시대로 전환시키신 구속사역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10). 정이철의 주장대로 라면 ‘개혁’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장로교인들은 모두 이단이나 사이비가 되어야 한다.

 

정이철은 제발 영적 좀팽이 짓 그만 하라.

오늘날 개신교인 중에서 중보기도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왜 스스로의 무지를 이토록 공개적으로 드러내는가?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한국 교계에 정이철의 이런 엉터리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교회를 망치기로 작정한 자들 같다.

 

 

 

은사를 대적하는 자들의 특징

 

 

특히 정이철처럼 은사운동에 대해 사악하게 대적하는 자들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기는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했지만 받지 못한 경우이다.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침묵을 지키지만 정이철 같이 자기 과시나 욕망이 강한 자들은 은사 대적자로 돌변하기 쉽다. 지금 정이철은 물론 그의 무리 중에 그런 자들이 더러 있다. 한편, 극히 드물지만 받은 은사의 용도나 유익을 제대로 몰라서 거두어 가달라고 한 후 대적하는 자들도 있다. 이창모옥성호 같은 자들이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은사운동에 심취했을 때이다.

 

특히 목회자이거나 신학자인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도록 배운 지식으로 은사를 대적하는 책을 써서 분풀이한다. 모 신학자는 사모가 그랬고 또 다른 신학자는 아들이 그래서 분풀이하는 책을 써서 성령사역을 대적하고 성령을 소멸하고, 심지어는 성령사역을 마귀 사역으로 폄하하여 성령 모독죄(훼방죄)까지 범하고 있다.

 
 

그 다음, 성령사역으로 인해 교인들이 이탈하거나 교회가 흔들리는 경우이다.



한국 교계에서 교단 차원으로 가장 많이 벌어지는 경우이다. 어떤 운동이나 지도자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기 마련이다. 그러면 교단의 노회에서 신학 검증을 의뢰하는 요식 행위를 거쳐 정도에 따라 ‘접근 금지’, ‘교류 금지’, ‘참여 금지’ 또는 ‘이단성’이란 딱지를 붙여서 교인들의 이탈을 방지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모방할 수 있는 것-찬양과 경배, 제자훈련, 소그룹 모임 등-은 뒷문으로 받아들이고 모방하지 못하는 것은 ‘불량 딱지’를 붙여서 ‘적어도 우리는 이단이나 사이비는 아니다’는 그릇된 인식을 교인들에게 심어주어 자기도 천국 축복을 누리지 않고 교인들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 정이철은 첫째와 셋째 경우에 해당된다. 첫째는 인터넷 글을 통해서이고 셋째는 정이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필자가 다른 곳에서 밝힌 대로, 미국의 장로교는 제1차 대각성운동 때부터 이런 짓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교리적 울타리를 친다고 해서 교인들이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비방하고 협박해도 좋은 것이 있으면 교인들은 미련 없이 떠난다. 그 결과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북미주 보수 장로교단들이 처참하게 쪼그라든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비판하고 대적할 것이 아니라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신천지나 통일교가 이단인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건전한 교단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가르침이나 운동은 무조건 경계가 아니라 선별적 수용의 대상이다.

 

목회자의 은사나 영성이 높으면 교인들에게 다른 곳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필자가 이전에 섬긴 교회에는 한국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로 찍은 단체의 교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신자들이 교회에서 별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인들의 은사나 영성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으니까 이런 자들이 교인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조금만 인기를 끄는 새로운 운동이나 사람이 있으면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는가? 표면적으로는 교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은사나 영성 면에서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고도 자신들이 공(公) 교단이고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의 사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그런 짓거리들을 모르실 줄 아는가? 그런 짓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 줄 아는가?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잘아는 대형 교회의 모 목사는 생전에 성령사역을 크게 두 번이나 대적하여 천국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소문도 많이 돈다. 설령 천국에 갔더라도 상급은 모두 까먹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정이철 류에게 경고한다.

제발 하나님의 성령을 대적하고 모독하지 말라. 대안은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반(反) 천주교적 이면서 성경적인 은사운동을 통해 지금이라도 답보 상태에 빠져있는 한국 교회에 성장 동력을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이철과 그 뒤에서 사주하는 서철원은 지난 수년 동안 엉터리 기적중지론으로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을 비방하거나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하고 모독해 왔는가를 깨닫고 통회자복하고 회개하라. 그리고 정이철 류에 부화뇌동한 자들도 회개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기회-만일 구원을 받았다면-라도 주실지 모른다. 성령사역을 귀신 장난으로 폄하하는 성령 모독죄(훼방죄)(마 12:31-32; 막 3:28-30; 눅 12:10)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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