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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13)] 이스라엘 열풍(熱風), 무엇이 문제인가?(2)메시아닉 유대인운동, 히브리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은 퇴행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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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3  20: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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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13)]

 

이스라엘 열풍(熱風), 무엇이 문제인가?(2)

- 메시아닉 유대인운동, 히브리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은 퇴행운동이다 -

 

   
 

 

 

 

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하라’는 응답을 받는다고 한다. 필자도 이스라엘의 구원이 불타오르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소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을 구원하고 선교를 하면 되지 왜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이나 히브리 뿌리 또는 회복주의(예표주의) 운동 같은 계륵 신학에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가?

 

 

 

많은 한국 신자들이 예표주의(회복주의) ‘계륵 신학’에 빠지는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많은 은사운동가들이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미 밝힌 대로 미국의 은사 운동가들 대부분은 세대주의 종말론 신봉자들이다. 그러므로 은사 운동가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IHOP의 마이크 빅클(Mike Bickle)이 메시아닉 유대인 릭 라이딩스(Rick Ridings)를 후원하고,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척 피어스(Chuck Pierce)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강성 메시아닉 유대인인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를 적극 후원하고., 그외 수많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다양한 책을 출판하고 유튜브로 비디오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동조하는 한국의 김종철(브래드 TV)이 사명감(?)을 갖고 이런 분야만 소개하고, 은사 운동에 다소 식상한 한국의 은사 운동가들이 새로운 돌파를 찾다 보니 자기들도 모르게 이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 세대주의 학자들과 은사 사역자들이 예표주의(회복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기적중지론은 칼뱅을 위시한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수백 년 동안 갈고 다듬은 신학이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가? 당연히 틀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틀린 줄 알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거나 잠시 반론을 제시했지만 자기의 사명이 아니라서 대충하고 흘려버리는 동안 기적중지론자들은 기를 쓰고 자기들이 옳다는 주장을 수많은 언론과 세미나를 통해 흘리니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옳게 보인 것 뿐이다.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예표주의(회복주의)에 동조하고 나팔을 불더라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사람 숫자가 진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유대인에 대한 동경심과 사모함 때문인 것 같다.

 

창 12장 3절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가르침에 동조하고, 유대인들이 미국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특히 한국 사람에게는 유대주의적인 것에 대한 동경심과 사대사상이 결부된 것 같다.

 

필자는 유대인들이 랍비 유대교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여 ‘지상적 축복’을 어느 정도 풍요롭게 누리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약 중심의 ‘신학’이나 ‘내면 변화’ 및 ‘영적 축복’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이런 '지상적 풍요'도 미국처럼 모든 조건이 제대로 구비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른 나라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은 아직도 가난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국가별 2916년 IQ(지능지수) 순위를 보면 한국 106(3위), 이스라엘 95(12위)다. 그런데 왜 유대인은 다방면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한국은 그렇지 못하는가? 그 차이는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탈무드 중심의 종교 교육을 더 중시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오전은 종교 교육(EQ교육), 오후만 일반 교육(IQ교육)을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인 신자들도 유대인처럼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성경 교육과 일반 교육을 병행하면 IQ가 유대인 보다 더 좋기 때문에 유대인을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힘들고 두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치유하고 회개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깃발을 흔드는 곳에 따라다니면서 열정을 퍼붓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재미도 있고 뭔가를 하는 것 같이 느낀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해봐도 시간이 지나면 열정이 시들하기 마련이고, 본인의 내면이나 삶은 변하지 않고 형편도 별로 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계륵 신학, 계륵 신앙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과 유대인의 동질성 때문이다.

 

한국이나 이스라엘은 모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소국이다. 두 나라 모두 전세계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많다.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약 700만 명이라고 한다. 유대인은 전세계적으로 약 220만 명의 디아스포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을 시기 나게 하는 이방인이 있다면 바로 한국인일 것이다(롬 11:11). 유대인을 핍박한 유럽인과는 달리 유대인을 핍박하지 않은 유일한 신앙 대국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 신자는 선교 열정도 뜨겁기 때문에 한 번 불이 붙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 신자와 한국인 신자는 찰떡 궁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신자 중에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선교사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을 선교하기 보다 메시아닉 유대인의 잘못된 신학 사상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 경력은 한국이 100년이고 메시아닉 유대인은 겨우 50년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유대인을 신학적이고 신앙적으로 인도해 가야 하는데 거꾸로다. 한국인이 유대인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끌려가면서도 유대인 선교를 한다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예표주의(회복주의) 주장의 허구

 

 

과연 ‘이스라엘’이 교회와 다른 방식으로 구원 받고 교회와 다른 특별한 소명이 있는가?

 

 

열렬한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인 마이컬 블래크가 주장한 대로 대체주의와 회복주의의 논쟁은 성경 한두 구절의 ‘주석’이 아니라 성경 전체 ‘해석’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오늘날의 기적을 부인하기 위해, ‘성경은 사도들과 관련된 자들만 기적을 행했지 보통 사람이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한 구절은 없다’, ‘성경에 기적이 계속 된다고 말한 구절이 없다’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신약 어디에도 이스라엘 국가적 회복과 소명을 명시적으로 부인한 구절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약에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제사장 나라 역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특정한 성경 구절을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므로 예표주의(회복주의)주장의 개별적 비판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이러한 주장이 전체적으로 왜 허구인가를 직접 밝히는 성경적 증거를 먼저 제시하고자 한다. 이런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신약의 ‘교회’가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의 통합이자 확장이거나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몇 가지 결정적 펀치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첫째, 천년왕국의 거주민 문제이다.

 

 

실체주의(대체주의)에 의하면 문자적 천년왕국은 없다. 그러나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실체주의(대체주의)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구원 받은 이방인 신자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동시에 휴거 되어 천년왕국에서 부활한 영체로 지낸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동자’(슥 2:8)라고 자부하는 유대인 신자는 대부분이 중생한 보통 사람으로 지낸다. 이것 하나만 해도 유대인의 특별한 소명을 강조할 하등의 이유도 없고 천년 왕국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천년 왕국에서 지상적 축복을 누리면서 장수하는 것보다 부활한 영체가 훨씬 더 월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천년 왕국을 강조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도 진정 거듭난 신자라면 예수님이 공중 재림 하실 때 부활한 영체로 변한다.

 

 

*영적 모델과 새 창조 모델?

 

 

마이컬 블래크는 실체주의(대체주의)가 그리는 천국 모습은 천국의 영적 측면만 강조하는 영적 모델(The Spiritual Model)로서 플라톤 철학의 잔재라고 말하고, 예표주의(회복주의)가 말하는 천국 모습은 영과 육의 회복을 말하는 새 창조 모델(The New Creation Model)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실체주의(대체주의)의 전체적 천국관에 대한 몰이해에서 생긴 착각이다. 필자가 주장한 대로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 모든 신자는 휴거 되어 부활한 몸으로 변한다. 부활한 몸은 단순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영혼과 육체를 가진 몸이지만 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혼·육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영생하는 몸이다.

 

 

그런데 예표주의(회복주의)가 말하는 천년 왕국과 중생만 한 신자의 모습은 아직 완전한 새 창조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도 아니고 부활한 모습도 아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회복주의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천년 왕국의 거주민에 질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히브리식 사고와 헬라식 사고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히브리식 사고는 성경적이고 헬라식 사고는 비성경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사고방식이 다른 사고방식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게 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히브리어와 히브리 사고 방식은 경험적, 직관적, 지상적, 현세적, 폐쇄적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폐쇄적인 이스라엘의 역할에 어울리는 언어이자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헬라어와 헬라 사고방식은 논리적, 추상적, 이상적, 개방적이다. 헬라 사고 방식 덕분에 학문과 과학이 발달했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하던 헬레니즘과 싸워야 하고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더군다나 영적 진리를 지상적 유비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지상적이고 단순한 히브리어 보다는 헬라어가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헬라어로 신약을 쓰게 하신 것 같다.

 

 

히브리어는 지상적, 현세적 축복을 강조하고 헬라어는 내면적이고 영적 축복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는 구약에 어울리고 헬라어는 신약에 어울린다. 오히려 헬라 사상이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으로 인해 지상에서는 영적 축복을 누리지만 부활한 후에는 영·혼·육의 축복을 모두 풍성하게 누리는 사고의 확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히브리 사고는 지상적, 현세적인 축복에 국한되기 때문에 현세의 영적 축복과 천국에서의 영·혼·육의 축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꾸만 눈에 보이는 천년 왕국에 집착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 해석을 위해 히브리식 사고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한 배경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성경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구별해야 한다.

 

 

 

*왜 구원 받은 신자에 등급을 매기는가?

 

 

예표주의(회복주의)는 천년 왕국 거주민에 등급을 둔다.

부활한 신자와 중생한 신자로 구분한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기점으로 한 간발의 차이로 인해, 재림 이전에 믿은 신자는 모두 부활한 영체가 되고 이후에 믿은 사람은 천년 왕국에서 중생한 몸으로 살아간다. 과연 하나님이 신자에게 이런 차별을 두시는 걸까?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신자가 두 종류의 삶을 산다는 기록이 없다. 공중 재림 이전과 이후의 순간적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부활한 영체로 구원을 완성하고 다른 사람들은 중생한 후 천년왕국에서 천년 동안 인턴십을 거친 후 부활된다는 구절은 없다.

 

 

메시아닉 유대인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잠시 이 땅에 머무신 것이 천년 왕국에 두 종류의 신자가 거주하는 것의 견본[sample]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중에 성도들이 부활하는 것의 본보기이지 이 땅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의 본보기가 아니다.

 

 

이런 황당한 주장은 문자적 천년 왕국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오류가 낳은 비정상적 현상이다.

 

 

더 나아가서, 메시아닉 유대인이나 이에 동조하는 예표주의(회복주의)는 새 언약의 ‘영적 축복’-죄 사함, 성령의 내주 등-은 ‘교회’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새 언약의 ‘실질적 축복’은 천년 왕국에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잠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 국가’에 속한 유대인 신자가 중생한 몸으로 천년왕국에서 아무리 지상적 축복을 풍성하게 누려본들 ‘교회’에 속하여 휴거 되고 부활한 영체를 가진 이방인 신자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성경에 의하면 신자는 죽으면 모두 낙원에서 부활을 대기한다(눅 16:9-31; 빌 1:23 참조). 그러다가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시면 주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부활하고 산 자는 순간적으로 변하여 부활한 몸이 된다(살전 4:16-17; 고전 15:21). 그 다음은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하고 좋은 것을 부인하고 왜 메시아닉 유대인들을 포함한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굳이 중간 단계인 천년 왕국에서 천 년 동안 인턴십을 보낸 후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는가?

 

 

더군다나, 예표주의(회복주의)의 주장을 읽다 보면 성경의 주인공이 유대인인지 예수님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자기들을 구원하는 구세주에 불과하고 신앙생활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모세의 토라(오경) 중심으로 한다. 또한 천년 왕국에서도 예수님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허수아비 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둘째,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내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인가?

 

 

“이는 너(이스라엘)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 54:5).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렘 3:14; 31:32; 호 2:16등).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 엡 5:29-32 참조).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모세)이라”(행 7:38).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남편이시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남편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내였다가 신약에서는 ‘교회’로 바꾸셨는가(대체주의), 아니면 아내가 둘인가(회복주의)?

 

 

사도행전 7:38은 분명히 구약에서 모세가 이끌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교회’(에클레시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약 어디에도 구원 받은 백성이 모인 단체를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 모두가 ‘교회’(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자 유대인 선교사인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마 16:18).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유대인 풍습을 간직한 곳도 ‘예루살렘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행 11:22).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의) ‘교회’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행 12:50).

 

신약에서는 구약의 히브리어 ‘카할’을 교회(에클레시다)(행 7:38)로 번역한다. 그래서 실체주의(대체주의)는 구약에도 신약의 교회에 버금가는 메시야 공동체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미래에 세워질 것이므로 본격적인 교회 시대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주장이다.

성경을 보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이 사역했다. 신약 시대에도 시므온, 엘리사벳, 세례 요한 및 예수님에 성령 임했다. 그런데 모든 육체에 본격적으로 성령이 임한 것은 오순절 날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과 이후가 너무나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예수님도 미래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요 7:39; 행 1:5).

 

 

교회란 개념도 마찬가지다.

물론 본격적인 교회 시대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교회(에클레시아)를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란 넓은 의미로 사용되면 구약에서도 교회가 존재했고, 예수님 사역 당시에도 존재했다. 구약이나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도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성도들의 모임을 단순히 ‘교회’라고 불렀지 ‘이스라엘’이나 ‘메시아닉 회중’라고 부른 흔적이 전혀 없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하고 절기는 지켰지만 이스라엘이란 국가적 차원의 구원에 대해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더군다나,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들으라”(행 2;14, 22; 3;12; 4:10 등)고 했지만 막상 이 사람들이 회심하여 모인 단체는 ‘교회’(행 5:11; 8:1, 3 등)라고 불렀다. 또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 2:38)고 했지 이스라엘이 단체적으로 구원 받는다는 언급은커녕 암시조차 한 적이 없다.

 

 

물론 메시아닉 유대인은 ‘교회’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회중’(congregation)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성경은 ‘신자들의 모임’을 ‘예루살렘 회중’이라고 부르지 ‘국가적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성경은 ‘이스라엘 국가’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중 ‘남은 자’가 메시야 공동체인 ‘교회’였듯 신약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교회’의 구성원들이지 ‘교회 따로 이스라엘 따로’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이스라엘은 누구의 몸인가?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엡 5:29-30).

 

교회는 그(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가 아니라면, 신약의 이스라엘은 누구의 몸인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구세주에 붙은 몸인가? 성경 어디를 봐도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구절은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별개의 몸이 아니라, 한국 교인이 전체 교회의 한 지체이듯, 교회라는 몸 안에 포함된 한 지체이다.

 

 

하나님이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특별히 언급하신 것은 유대인이 비록 복음을 거부했지만 그들이 구원의 은혜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예표주의(회복주의)는 ‘교회’와 ‘이스라엘’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성경 구절을 자기들 유리하게 해석하지만 막상 둘의 실질적인 차이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스라엘이 특별한 소명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기껏 한다는 말이 말세에 ‘이스라엘 국가’가 제사장 나라로서 이방 국가들을 회심시키고, 천년 왕국에서 메시야를 왕으로 모시고 유대인들이 이방 국가들에게 유대인의 율법-토라(모세 오경)-을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말세에 유대인이 이방인을 회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시기 나게 하여 회심시키는 역할을 한다(롬 11:11-12; 25-26).

 

 

또한, 천년 왕국에서의 역할 또한 유대인 중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속한 이방인 신자들은 대부분이 부활한 영체로서 중생만 한 신자들을 다스린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중생만 한 신자 중에는 유대인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다스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굳이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소명이 있다면 교회의 한 지체로서 유대인을 구원하는 소명이다. 이는 한국인 신자가 한국인을 전도하고 일본인 신자가 일본인을 전도하는 차원이다. 하나님은 민족과 문화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민족과 국가별로 따로 살게 하셨다.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도 초기에는 불신 유대인들을 제대로 구원하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다. 한국인 신자가 불신 한국인을 전도하고 양육하기 위해 한국적 문화를 유지하듯, 메시아닉 유대인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크리스천에게 핍박 받아온 불신 유대인들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자기들의 문화적 유산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와는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다 보니 외부의 크리스천들이 보기에 또 다시 배타적이고 접근하기 힘든 ‘까칠한 선인장’ 같은 유대인으로 인식이 되고, 메시아닉 유대인들도 사람이 좀 늘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생기다 보니 또 다시 배타적 선민 의식이 발동하여 정도 이상으로 오버한 것 같다.

 

 

정리하면, 신·구약의 다른 불분명한 모든 구절을 차치하고 이 몇 가지 결정적 증거들만 봐도, ‘교회’와 달리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소명이 있고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허수아비 같이 실체가 없는 주장이다.

 

 

그외에도 예표주의(회복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반증이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 정도만 하기로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한 주장인가를 독자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에 대한 메시아닉 유대인의 비판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1900년 동안 ‘장로들의 전통’인 랍비 유대교(바리새 유대교)의 ‘탈무드’를 ‘구약 성경’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1,900년간 지켜온 버팀목이 바로 탈무드이다.

 

메시아닉 유대인도 비록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했지만, 이전에는 신·구약 보다는 랍비 유대교의 정수인 탈무드의 가르침대로 신앙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다.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메시아닉 유대인은 모두 구약에 정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구약을 바리새인의 관점에 해석한 ‘랍비 유대교’에 정통한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대교 분파들

 

메시아닉 유대인 중에서도 강성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다.

이것은 이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 어떤 유대인 종파에 속했는가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유대교에는 대표적인 3대 종파가 있다.

 

정통파 유대인(Orthodox Jews)은 ‘613개 계명’의 철저한 준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개혁파 유대인(Reform Jews)은 계명들을 신약에 비추어서 적절한 것만 준수할 것을 주장한다. 가장 많은 유대인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한다. 보수파 유대인(Conservative Jews)은 개혁파에 대한 반발로 생겨서 철저한 계명 준수를 강조하지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것을 주장한다.

 

한국에 잘 알려진 히브리 뿌리운동 주창자들은 아마 정통파 유대인 출신이거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메시아닉 유대인 중에서도 온건파는 히브리 뿌리운동 보다는 유대인의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의 메시아닉 유대인의 등장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18세기부터 유대인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히브리 크리스천들이 있었고, 특히 미국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벌인 단체도 많았다.

 

그때까지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 크리스천은 40만 명 정도가 되며 교회 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이 이방인 생활에 동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메시아닉 유대인이 가시적 단체로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독립과 1970년 대 이후 메시아닉 유대인의 등장이 마치 종말론의 이정표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전에 이미 많은 유대인들이 크리스천으로 회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전에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허용하시지 않다가 1970년대 이후에 허용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귀환한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전도하게 하기 위한 섭리로 이해해야지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에 대한 히브리 크리스천(메시아닉 유대인)의 반론

 

 

또한 모든 ‘히브리 크리스천’이나 메시아닉 유대인이 제의법 준수를 강조하는 메시아닉 유대인의 히브리 뿌리 운동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초기의 저명한 히브리 크리스천 지도자였던 데이비 배런(David Baron)은 당시에 이미 유대인 정체성과 제의법 준수를 강조하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은 '분열적이고 미성숙하며 이단'이라고 정죄했었다.

 

 

요즈음에도 ‘메시아닉 유대인는 분열하지 말고 교회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도 있다. 45년간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사역을 해 온 바룩 마오즈는 유대적 관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강조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기독교를 유대 전통으로 대체하려는 극단주의 메시아닉 유대인은 잘못하면 이교적 종파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대인들은 독특한 유대적 정체성과 전통을 지켜야 하지만 가정에서만 지키고, 교회와 다른 차별적 용어 사용과 관습을 자제하고, 메시아닉 교회를 해체하고 모든 유대인들은 기독교 교회로 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룩 마오즈. "메시아닉 유대교는 이교적인 종파가 될 것입니다" http://www.godpeople.com/?C=523).
 

 

미국 플로리다 펜사콜라 부흥의 주역이었던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같은 메시아닉 유대인 학자는 ‘메시아닉 유대인은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탈무드가 아니라 구약 자체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Michael Brown. "Jewish Roots". Chosen People Ministries. Retrieved September 9, 2015).

 

 

*히브리(유대인) 뿌리운동에 대한 메시아닉 유대인의 반론

 

 

메시아닉 유대인인 스탠 텔친(Stan Telchin)은 유대인 율법과 이방인의 실천 여부가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나는 상당수의 유대인 신자들이 메시아닉 유대인 회당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내 유대인 신자 중 5% 이하가 그곳에 출석한다. 내가 그곳으로 인도한 많은 유대인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실체가 아니라 만화를 보는 것 같다고 불평한다.”

 

 

리차드 피셔(Richard Fisher)는, 만일 텔친의 통계가 옳다면 미국 내 메시아닉 유대인 회당 출석자의 95%가 이방인 신자이고 유대인 신자는 5%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유대인도 거부하는 유대주의 형태로 이방인들이 회심한다는 우스운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Fisher, G. Richard, “BEWITCHING BELIEVERS THROUGH THE HEBREW ROOTS MOVEMENT.”(히브리 뿌리운동을 통해 신자들을 유혹하는 일) 2014.1.1.
https://www.thebereancall.org/content/january-2014-bewitching-believers-hebrew-roots)

 
 

유대인 신자인 스티븐 캐츠(Steven Katz) 도 이런 우려를 표명한다.

 

유대인 뿌리운동의 대부분은 실제로 후기 유대인·랍비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방인들이 유대인 전통을 준수하는가의 여부는 예루살렘 공회(행 15장)에서 판가름이 났다는 사실이다. 놀랄만한 사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The Jewish Roots Movement: Flowers and Thorns,” 2001.3.1. http://www.nowtheendbegins.com/jewish-christian-exposes-hebrew-roots-movement-cult)

).

 

또 다른 메시아닉 유대인인 랍비 스탠 파르(Stan Farr)는 “우리가 메시야처럼 되기 위해 토라를 연구하기 시작할 때 피해야 할 함정이 있다. 그중의 하나는 미쉬나와 탈무드를 연구하는 것이다. 히브리 뿌리운동가들 중에 미쉬나나 탈무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랍비 유대교는 메시아닉 유대교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RabbiYeshua.com. Kehilat Sar Shalom).

(*미쉬나. 구전(말)으로 이어 오던 ‘장로들의 전통’을 문서로 기록한 것이 ‘미쉬나’이고 미쉬나를 설명하고 주석한 것이 ‘게마라’이다. 미쉬나와 게마라를 문서로 출판한 것이 ‘탈무드’다. 따라서 탈무드는 ‘장로들의 전통 해설집’이다)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댄 저스터도 “유대인 뿌리운동의 위험”이란 글에서 일부 메시아닉 유대인의 극단적 견해를 비판하면서 시정해야 할 3 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 오류는, 이방인 크리스천들도 유대인처럼 모든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뿌리 운동가들은 민수기 15:16의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를 인용하면서 이방인 크리스천도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행 15:20)이나 갈라디아서의 경고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설명해 버린다. 갈 5장은 분명히 이방인은 할례를 하거나 토라(모세오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기록한다(갈 5:2-3).

뿌리운동가들은 또한 신자라면 누구나 히브리 달력에 의한 절기들과 매주 안식일(샤바트)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달력 사용에 대해서는 유대인과 크리스천 사이에 아직도 논쟁이 많다.

(둘째 오류는 본 주제와 관련이 없어서 생략함)

셋째 오류는, 기독교의 절기(부활절과 크리스머스)는 이방 절기라는 주장이다.
크리스천의 3가지 중요한 절기는 유대 절기를 기독교화 한 것이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인 성(聖)금요일(Good Friday), 초실절은 부활절, 칠칠절은 오순절이다. 물론 기독교는 구약의 절기 개념과 연관시켜서 이런 절기들을 지키면 도움이 된다. 절기 날짜가 유대 달력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절기의 기독교화를 이교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이다.

크리스머스가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일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메시아닉 유대인인 존 피서 박사는, 경건한 신자들은 크리스머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이고 부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고 주장한다. 주일이 부활절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이것은 1800년 동안 지켜온 전통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일이나 부활절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결론적으로, 일부 극단적인 뿌리운동가들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하나님의 교회 내에 분열, 혼란 및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댄 저스트는 결론 내린다(Daniel Juster, “the Danger of Jewish Roots Movements.”
https://www.tikkunministries.org/newsletters/dj-sep14.php).

 

요약하면,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이나 이에서 파생된 히브리 뿌리운동(유대인 뿌리운동, 토라뿌리운동)은 유대인 크리스천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운동들이다. 그런데 일부 한국 신자들은 마치 이것이 성경의 새로운 가르침인 양 나팔을 불어대고 학위를 제공하는 신학교까지 만들어서 사역자를 양산하는 한심한 일들을 하고 있다.

 

 

 

왜 메시아닉 유대인의 성과가 저조한가?

 

 

필자는 지난 글에서 반 세기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의 성과가 상당히 저조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독자 여러분의 참고를 위해 여기에서는 숫자만 간단히 밝힌다.

 

2012년 기준으로, 전세계 유대인 인구 1,375만 명 중,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35만/1,375만=2.5%이다. 미국 내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17만 5천~25만/545만=3.3%~4.6%, 이스라엘 내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1만~2만/590만=0.17%~0.34%에 불과하다.

 

그토록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은사운동가들이 유대인 운동에 대거 동참하고 한국에도 동참하는 단체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실적은 미미하다. 왜 그럴까? 예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완악한 것은 정평이 나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는 크리스천에 대한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게 저조한 실적의 전부일까?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정죄하면서 순교도 마다 않은 초기의 한국 교회도 이 보다 실적이 더 좋았다.

 

필자는 이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기도했다.

 

하나님이 몇 가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첫째, 절대 다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지상적 메시야’ 기대 사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필자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연구하면서, 유대인들의 메시야 왕국-천년 왕국-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이나 인생의 최대 목표는 다윗 같은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이상적 메시야 왕국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종말론을 연구하면서 ‘천년 왕국이 있다, 없다’면서 논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천년 왕국이 영원한 로망이다.

 

천년 왕국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한국인이 통일을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메시아닉 유대인은 한국인의 이런 성정을 알고,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편에 서면 하나님이 한국 통일을 도와주신다는 감언이설(?)로 한국 신자들을 꼬드기는 것 같다.

 

물론 한국 통일은 중요하다.

제대로 된 한국인 치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통일 보다 한국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가 더 중요할 것이다.

 

 

*메시야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예수님을 죽였다

 

 

유대인들의 메시야 기대 사상은 예수님의 초림 즈음에 극에 달했다.
먼 동방의 박사들이 불원천리 하고 이스라엘에 찾아올 정도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이방 나라에게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초림 예수를 죽인 것은 예수가 그들을 로마의 폭정에서 해방시켜 주리라고 기대했던 지상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제자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상적 메시야인’가 하고 헛된 기대를 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취임하면 좋은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툼까지 했고, 가룟 유다는 예수가 지상적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를 은 30에 팔아버렸다.

 

그런 예수님은 제자들이 승천 이전까지 ‘이스라엘이란 세상 나라 회복’(행 1:6)에 마음이 팔려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나 가타부타 하지 않으셨다. 왜? 말로 설명한들 메시야에 대한 고정관념이 하루 아침에 바꾸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답을 피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서 세상 나라 보다 ‘하나님 나라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행 1:8). 이후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는 세상 나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닉 유대인이나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구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성취해 줄 지상적 메시야를 아직도 기대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직전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고 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가타부타 대답하시지 않은 것에 대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분명하지만 때는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하셨다고 해석한다.

 

이런 해석 자체가 아직도 유대인들은 지상적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다. 당연히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이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메시아닉 유대인은 여전히 지상적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다

 

 

오늘날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은사운동가들이면서 왜 ‘지상적 이스라엘 회복’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는가? 필자는 이 주제를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께 심각하게 질문했다.

 

“하나님,
성경적으로 보면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를 외적으로 확장한 초대 교회 교인들은 이제 교회 내에서 교리적, 신학적, 관계적,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왜 구약으로 회귀하고 있습니까?”

 

은사운동에 예언 (사역)자는 많지만 바울처럼 제대로 된 교사가 없어서 그렇다.”

 

 

그런 것 같다. 미국 은사운동가들 중에는 유난히 예언 사역자가 많다. 대부분의 사역자에게 예언 사역은 기본이다. 그리고 미국적 실용주의 정신과 지상적이고 현실적 축복을 강조하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보이는 축복과 성장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고 내면적 변화와 성숙에는 별 관심도 없고 뚜렷한 가르침도 없다.

 

은사사역과 예언사역이 성경 말씀의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다 보니, 선정적인 현상과 신기한 예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건전한 가르침 보다는 희한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육적 욕구가 온전하게 채워지는 천년 왕국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가르침을 성경적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여기서 유대인 달력에 의한 절기 중심의 ‘휴거 날짜를 예측’ 하면 우르르 몰리고, 저기서 블러드 문이나 일(월)식 예언이라고 하면 금방 달려가고, 다른 데서 숫자로 예언하면 우르르 몰리고, 메시아닉 운동이나 히브리 뿌리운동이라고 하면 또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시간이 지나 보면 이 모든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본인들도 알게 된다.

 

 

둘째, 하나님은 유대인의 교만과 조급증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다.

 

 

유대인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죽인 대가로 1,900 년 동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설음과 고통을 당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저주’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퍼부어졌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 된 소식이 퍼지자 전 세계인들은 경악하면서 유대인을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유대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기적적 섭리로 이스라엘 국가를 1,900년 만에 설립했다. 1967년 예루살렘 탈환 후에는 유대인들이 대거 회심하기 시작하자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구약의 예언이 하나하나 성취 된다는 감격에 잠겼다.

 

그런데 자신감을 얻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유대인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국가를 주시고 회심을 주신 것을 겸손의 기회로 삼지 않은 것 같다. 감격도 잠시, 또 다시 과거의 배타적 선민의식과 우월 의식이 발동한 것 같다.

 

중국이 100년 동안 빌빌하다가 힘을 얻자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면서 갑질하듯,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확인하자 또 다시 배타적 선민의식을 발동하여, 자기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표이고, 세상의 중심이고, 메시야를 중심으로 이방 국가를 통치하는 제사장 나라라고 뻐기면서, 자기들의 제의법 문화 준수-안식일 및 절기 준수-를 강요하는 소위 말하는 문화 제국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 특유의 조급증도 발동한 것 같다.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정도 이상의 핍박을 받은 것도 섣불리 잘난 체 하다가 당한 것이 많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로 타국에 얹혀 살지만 똑똑하고 잘나서 사회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면서 잘난 체 하다가 절대 다수인 본국민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핍박을 받은 사례도 많다고 한다.

 

 

지금 유대인들이 또 다시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일부 메시아닉 유대인은 이렇게 주장한다.

 

-오늘날 교회가 생기를 잃은 것은 초대교회의 좋은 전통인 절기를 준수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걸 제대로 회복해야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대로 하여 교회가 생기를 얻는다.

-유대인 교회가 유대인 정체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교회의 진정한 개혁이나 회복은 없다.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는 초대 교회의 진정한 기독교(유대인식 기독교)-유대식 예배와 정체성 유지 및 절기 준수 등을 금지-를 말살한 장본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천년 왕국의 예표이다.

-개신교 신학은 모두가 대체 신학이자 마귀 신학이다.

 

 

무지한 일부 사람들은 이 주장에 동조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다. 예수님 보다는 유대인들이 마치 성경이나 역사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절기나 제의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책망 받고 심판 받았는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잘 지켰다(사 1:13). 그런데 율법의 가장 핵심인 십계명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절기나 음식정결법 등은 너무나 잘 지켰지만, 우상을 숭배하고 이웃에 악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다.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오늘날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에 중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은 음식정결법과 안식일 및 절기만 잘 지키면 자동적으로 속이 정결하고 깨끗해지는가? 유대교의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그들은 구약 율법을 문자적으로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메시아닉 유대인도 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동조자들도 분별력 없이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나가는 말

 

 

지금의 메시아닉 유대인은 큰 소리치고 잘난 체 할 때가 아니다.
조엘 리차드슨처럼 자기들이 예수를 죽여서 심판 받고 1900년 동안 디아스포라가 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자기들을 핍박한 이방 교회의 회개만을 촉구하는 것은 문제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이 운동이 시작된 지 반 세기가 되어가지만 한때 반짝 하다가 지금은 생각보다 유대인 회심자가 별로 늘지 않고, 알리야 운동 또한 몇 년 전부터 소강 상태에 빠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영적 교만과 교리적 변질이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 성장의 큰 걸림돌이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동조자들은 아직도 이런 소경들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오늘날의 메시아닉 유대인이나 동조자들은 무엇보다도 이 말씀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 7:6-8).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3-26). *

 

 

참고 서적 및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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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Carter. “9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Rabbinic Judaism.”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9-things-you-should-know-about-rabbinic-judaism.

“Messia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essianic_Judaism. “Origins of Rabbi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Origins_of_Rabbinic_Judaism

“Rabbi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Rabbinic_Juda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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