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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 (12)] 이스라엘 열풍(熱風), 무엇이 문제인가?(1)메시아닉 유대인운동, 히브리 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은 퇴행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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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3  2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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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12)]

 

이스라엘 열풍(熱風), 무엇이 문제인가?(1)

- 메시아닉 유대인운동, 히브리 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은 퇴행운동이다 -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기적중지론을 추방하고 은사사역을 변호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사람들이 호응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자 한국 교회를 살리는 첩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은사사역자들에게 쓴 소리를 좀 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상당수의 은사사역자들이 이스라엘 열풍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사사역의 다음 단계는 변화와 성숙이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적 은사사역을 통해 회심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생기는 교리적, 관계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사도들을 통해 서신서들을 쓰게 하셨다.

 

은사운동이 많은 외적 열매는 맺지만 내적 열매를 맺지 못하여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고 본인들도 심령천국이나 관계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도행전적 외적 확장은 추구하면서 서신서의 가르침을 통한 내적 성숙과 변화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은사사역자들이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는 것 같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각종 유대인 운동들이다. 이런 운동들은 표면적으로는 ‘회복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다가오지만 실제로는 신앙을 퇴보시키는 운동들이다. 무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없는 계륵(鷄肋) 같은 운동이다.

 

 

얼마 전 필자가 은사사역을 하는 어떤 목사와 대화한 적이 있다.

 

“요즈음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운동’, ‘히브리 뿌리운동’, ‘회복운동’, ‘이스라엘 세미나’ 같은 것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요.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잠시 생각하더니) 그거, 구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 아닙니까?”

 

“네 잘 보셨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유대인 크리스천) 운동은 유대인이 구원은 예수(예슈아)를 통해서 받지만 신앙생활은 구약,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유대인의 탈무드 중심으로 하자는 운동입니다.

히브리 뿌리운동은 유대인 신자는 물론 이방인 신자도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탈무드 식으로 신앙생활하게 만들자는 운동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구약의 토라(모세오경) 중심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탈무드 중심입니다. 탈무드가 뭡니까? 예수님이 그토록 책망하신 ‘장로들의 전통’(마 15장; 막 7장)을 문서화 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회복주의는 이제 이스라엘이 종말의 시간표이고, 종말에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방 국가를 전도하여 천년왕국에서 메시야를 왕으로 모시고 이스라엘이 이방 국가들을 다스린다고 주장하는 운동입니다.

그것을 이 사람들은 성경 특히 구약의 진리를 회복하는 운동이라고 해서 회복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것은 회복운동이 아니라 과거 회귀운동이자 퇴보운동입니다. 너무나 황당한 주장들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분별력 없이 말려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기서 불이 붙었다가 좀 꺼질만하면 저기도 또 누군가가 불을 지피고 있다.
이스라엘 열풍이 무엇이길래 한국 신자들이 이처럼 관심을 갖는 걸까? 이 글은 이스라엘 열풍으로 대표되는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 히브리 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의 실체를 밝혀 신자들이 건전한 신앙관을 갖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분명히 밝혀둘 것은 필자는 이스라엘 선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자기들의 전통이자 문화인 안식일이나 절기 준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국인 신자를 포함한 이방인 신자들이 교육적이고 상황적 차원에서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고 유대식 예배를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대인 운동은 절기 준수를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마치 성경의 규범인 것처럼 강조하고, 하나님이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은 국가적이고 단체적으로 구원하시며, ‘교회’와 달리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의 특별한 소명이 있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성경해석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바로 잡아야 할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원 받은 성도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행 1:8),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빌 2:12-13). 성령을 따라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고(갈 5:16-23), 성령충만을 받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여(엡 5:18-6:10), 예수님의 상급 심판대 앞에서 땅에서 행한 일을 심판 받는다는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후 5:10). 이것은 유대인 크리스천이나 이방 크리스천의 차별이 없다.

 

하나님은 신자가 마지막 때에 주어진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그리스도의 정결한 영적 신부로 단장되기를 원하시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폐기된 절기 준수와 같은 유대인 풍습에 매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 신자들이 유대인을 선교하려다가 오히려 영적 알맹이가 별로 없는 '신종 유대주의 운동'에 빠져 귀중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허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아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누구인가?

 

 

유대인들이 장장 1900년 만인 1948년에 독립 정부를 설립한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 섭리다. 유대인들 또한 필사의 노력으로 이스라엘을 설립하여 주변 아랍연합군의 거센 공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생존해 오고 있다.
 

그러다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유대인들 특히 미국 유대인들이 대거 예수를 믿고 회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이전처럼 ‘히브리 크리스천’9Hebrew Christian)이라고 부르다가 숫자가 늘어나자 자기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메시아닉 유대인은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전에는 예수를 믿고 이방인 중심의 교회에 흡수되어 유대인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다가 1970년 이후 유대인들이 갑자기 많이 회심하기 시작하자 자신들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방인 교회와는 다른 유대인 크리스천 모임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이다.

 

이들은 이방인 교회와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예수 대신 예슈아, ‘교회’ 대신 ‘메시아닉 회중’, ‘목사’ 대신 ‘랍비’라 부르고, ‘십자가’ 대신 ‘메노라’(촛대)를 비치하고, 특히 안식일과 절기 준수를 강조한다. 이들은 초대 교회 시대의 12제자나 바울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메시아닉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겉은 크리스천이지만 속은 유대교 신자들이다.
구원은 예수를 통해서 받지만 신앙생활은 자기들이 1900년 동안 행해 온 탈무드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2,500년 동안 탈무드를 통해 민족의 구심점을 유지하면서 교육 받고 생활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사고 방식이나 생활 습관은 금방 바꾸어지지 않는다.

 

탈무드가 무엇인가?

예수님을 가장 대적하고 사도들을 가장 핍박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인 ‘장로들의 전통’(마 15:2; 막 7:3 등)을 문서화 한 것이 바로 탈무드다. 장로는 ‘유대인 랍비’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성전 파괴와 디아스포라 이후 사두개파와 에세네파는 사라졌지만 바리새파들이 살아남아서 ‘장로들의 전통’을 문서화하는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를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성문 토라(오경)도 받고 구전 토라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바리새주의 랍비들이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유대인 중심으로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주석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 혹독하게 비판하신 ‘장로들의 전통’이며 유대인이 디아스포라가 된 후 문서화 한 것이 탈무드로서 유대교의 핵심 교과서를 이룬다.

 

 

한국에서 불교나 유교 생활에 익숙한 불신자가 예수를 영접해도 생각이나 생활이 금방 기독교식으로 바꾸어지지는 않는 것 보다 더 심하다. 메시아닉 유대인은 바꾸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겉으로 힘차게 주장하면서 포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자체가 유대교에서 분파되었기 때문에, 얼른 생각하면 메시아닉 유대인이 구약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약을 신약의 기초 없이 유대교 식으로 해석한 탈무드의 가르침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와 개신교의 차이

 

유대교와 기독교는 핵심 교리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유대교는 삼위일체나 원죄 교리를 믿지 않고 메시야는 신성(神性)을 가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를 자기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메시아닉 유대인 중에서 이중 한두 가지 교리에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요즈음 한국 교회의 인기 강사로 자주 초청 받는 메시아닉 유대인인 요셉 슐람원죄 교리를 믿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히브리 대학에서 유대교를 연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겉은 크리스천이지만 속은 철저히 유대교 신자다.

 

그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아담의 죄성이 사람에게 전가된 것은 믿지만 아담의 죄책이 사람에게 전가된 것은 믿지 않는다. 그는 “우리는 아담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에 죽는다. 나는 아담의 죄가 아니라 내 죄에 죄책을 지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외에 그의 인죄론(人罪論)에도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Israeli Christian Scholar Explores Three Questions All Religions Aim to Answer,” Christianity Daily, 2015.7.29.
http://www.christianitydaily.com/articles/5180/20150729/israeli-christian-scholar-explores-three-questions-religions-aim-answer.htm)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유대인이 하면 무엇이든지 좋고 옳을 것이다는 선입견에서 이런 강사들을 무분별하게 초청하는 것 같다.

 

필자가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신학 자료들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은 지금의 개신교 전체를 유대교에 기반한 메시아닉 기독교로 회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어리숙한 한국 신자들을 지금 제일 만만한 목표로 삼는 것 같다.

 

 

메시아닉 유대인의 종말론과 구원론

 

 

한국에도 잘 알려진 메시아닉 유대인인 아셀(키스) 인트레이터(Asher Keith Intraterer)와 댄(다니엘) 저스트(Daniel Juster)는 메시아닉 유대인 종말론을 강조하고, 마크 빌츠(Mark Biltz)는 구약의 절기를 통한 휴거 날짜 계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아셀 인트레이터댄 저스트는 다소 온건한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종말론이나 천년왕국론, 히브리 뿌리운동 및 회복운동의 핵심은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마크 빌츠는 유대인 달력에 의한 절기와 블러드 문(blood moon)을 중심으로 휴거 날짜를 계산하여 2015년에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자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다시 책을 써서 절기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2015년 블러드 문과 함께 경제적 소요를 예측했지만 실제는 휴거 날짜를 예측한 것이다. 그는 ‘자신은 과학과 성경을 근거로 예측했을 뿐인데 왜 자기를 공격하느냐?’고 반문한다.

 

왜 비판하는가?

역사적으로 유대인 절기와 블러드 문 현상이 겹치는 날에 재앙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이나 인류의 전체적 재앙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세에는 전쟁과 기근과 역병과 자연 재앙이 수시로 일어나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마 24:6), 빌츠는 그것이 마치 끝인 양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 예측이 틀리자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반드시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마크 빌츠의 치명적 잘못은 휴거 날짜를 계산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막 13:32).

 

 예수님은 재림의 (헬. 헤메라. day)과 시간(헬. 호라. Hour)을 모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빌츠는 봄 절기(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를 통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가을 절기(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도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란 가정 하에, 재림 년도(year)는 모르지만 ‘가을 절기 계산에 의해 재림의 월(month)과 날(day)은 알 수 있다’면서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봄 절기가 성취된 것은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기 이전에 율법 아래 사셨고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 및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메시야를 지향하는 구약의 예표적인 율법들 특히 제사의식법-제사, 절기, 성막 또는 성전과 희생 제사-은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제 가을 절기(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는 상징적으로 남는 것이지 더 이상 문자적 성취는 없다.

 

메시아닉 종말론을 강조하는 아셀 인트레이터 저스터는 그래도 가을 절기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지 상징적으로 성취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한 발 뒤로 뺀다. 그러나 마크 빌츠를 비롯한 일부 강성 메시아닉 유대인은 봄 절기처럼 가을 절기도 문자적으로 성취된다고 잘못 확신하고 있고, 한국 신자들 중에서도 이런 황당한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메시아닉 유대인의 히브리 뿌리운동

 

 

히브리 뿌리운동(Hebrew Roots Movement)은 유대인 뿌리운동(Jewish Roots Movement) 또는 토라 뿌리운동(Toeah Roots Movement 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메시아닉 유대인이면서 히브리 뿌리운동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주창자는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 마크 빌츠(Mark Biltz) 및 조엘 리차드슨(Joel Richardson) 등이다. 특히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하이들러는 한국 교계에 히브리 뿌리운동을 본격적으로 전파한 강성 메시아닉 유대인이자 히브리 뿌리운동가이다.

 

 

로버트 하이들러는, 초대교회는 능력과 은혜로 충만했는데 1세기에 들어서면서 헬라 교부들이 구약의 절기 준수를 포함한 유대적 전통을 무시했고, 4세기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유대인 전통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결과 교회는 오아시스에서 사막화되었으므로, 구약의 율법과 절기 준수를 회복할 때 교회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로버트 하이들러와 같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를 죽였고, 유대인들이 A.D. 70년과 A.D. 135년에 무모하게 로마 제국에 대적하다가 대패하여 전 세계로 흩어진 자기들의 과오는 언급하지 않고, 콘스탄틴 대제 이후 유대인이 크리스천이 되더라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한 것에 한(恨)이 맺혀, 구약의 제사 의식법(음식정결법, 안식일 준수와 절기 준수)을 회복하는 것이 마치 성경적 회복 운동인 양 오도하고 있다.

 

로버트 하이들러 류의 황당한 주장에 미혹되어,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등한시 한다. 많은 한국 신자들도 이러한 주장에 미혹되어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고 유월절에 양고기를 먹는 것이 초대 교회의 좋은 유산을 이어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로머트 하이들러 류의 히브리 뿌리운동가들을 따라 유월절에 양고기를 먹고, 십자가 대신에 메노라(등대. 촛대)를 비치하고, 탈릿(유대인 기도 가운)을 쓰고 기도하고, 쇼파르(양각나팔)를 불고, 신약에서 폐기된 ‘안식일 예배’(샤바트. 금요 저녁 또는 토요 아침 예배)와 구약의 '7대 절기'를 지키고, ‘초막절’(9-10월 경)을 성대하게 치르고, 일년에 한두 번씩 이스라엘에 가서 히브리 식 예배에 참석하고 인증샷 찍는다고 더 영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는가?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한 것은 구약의 절기 같은 제사의식법을 잘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들-도덕적 죄악들-을 심하게 저질렀기 때문이다(사 1:11-20 참조). 즉 십계명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3-14).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애 2:6).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안식일, 월삭과 절기 같은 날들을 잘 지켜도 우상을 숭배하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면 이 모든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드신다.

 

예수님이 누구 보다 제사의식법인 율법을 문자적으로 잘 지킨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율법 준수와 같은 겉 행위는 잘 지켰지만 율법의 핵심은 버렸고, 속은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마 23장 참조).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3-25).

 

한국 교회가 예배나 성회가 부족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는가?
한국 교회만큼 예배의 종류가 많고 자주 모이는 교회도 드물다. 그러나 종교 선호도는 꼴찌다. 왜 그런가?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딤후 3:1-5 참조). 겉은 거룩하나 속과 행위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 운동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는 별 관심도 없고 절기 같은 율법 준수를 좀 지키면 뭔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정리하면, 메시아닉 유대인이 강조하는 히브리 뿌리운동은 바리새주의 가르침을 문서화 한 탈무드를 지키자는 운동이지 기독교 운동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너무나 교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은 잘 분별하지 못하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이 탈무드 가르침인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외부에는 알리지 않는다.

 

 

 

대체주의(Supersessionism)와 회복주의(Restorationism)

 

대체주의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신약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대체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자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회복주의는 이런 주장을 극렬히 반대한다. 이들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원 방식과 사명을 구분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교회에도 주어졌지만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특별한 소명의 약속도 여전히 유효하므로 이 약속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메시아닉 유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회복주의자(들)’라고 보면 된다.

 

 

한때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제외하는 주장 자체를 대체주의(Supersessionism),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또는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의미로 성취신학(Fulfillment Theology)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개념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것 같다.
열렬한 회복주의자인 마이컬 블래크는 대체주의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혜택에서 유대인들이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주장을 강성 대체주의(Strong supersessionism), ‘유대인도 여전히 구원 혜택에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을 온건 대체주의(Moderate supersessionism)라고 부른다(Michael Vlach, Has the Church Replaced Israel? Kindle edition).

 

대표적으로 마르틴 루터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칼뱅을 위시한 상당수의 청교도나 개혁주의 신학자들-헤르만 리델보스, 존 머레이 등-이 후자에 속한다고 회복주의자인 블래크(Vlach)는 말한다.

 

마이컬 블래크는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존 맥아더가 운영하는 매스터즈 신대원 출신이자 그곳 교수이며 열렬한 회복주의자다. 블래크는 한국인이 주최하는 이스라엘 세미나 주강사로 자주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왜 대체주의인가?

비록 이스라엘의 구원을 인정하지만 이스라엘 특유의 소명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대체주의자이고 인정하고 회복시키려는 자는 회복주의자라고 블래크는 정의한다.

 

 

*’회복주의’는 실속이 없는 ‘계륵 신학’이다

 

메사아닉 유대인은 물론 미국의 상당수의 은사 운동가들도 회복주의를 지지한다.
미국 은사운동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IHOP(국제기도의 집)의 마이크 빅클(Mike Bickle)은 릭 라이딩스(Rick Rydings)를,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의 바통을 이어 받은 척 피어스(Chuck Pierce)는 로버트 하이들러(Robert Heidler)를 지지하니까 미국은 물론 한국의 많은 은사주의자들도 분별력 없이 멋 모르고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과 히브리 뿌리운동에 빠져 들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대체주의가 성경적 신학이자 실체주의(Antitypism) 또는 실체 신학(Antitype theology)이고 회복주의는 회귀주의(Regressionism) 또는 예표 신학(Type theology) 또는 알맹이가 없는 그림자 신학이다.  뭔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살펴보면 살코기가 없는 닭뼈 같은 계륵 신학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많은 한국 신자들은 유대인이 종말의 시간표이자 구속사의 주인공이고, 초대 교회의 좋은 전통을 이어 받는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각종 유대인 운동에 쉽게 빨려 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창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운동(Regression)이자 퇴행운동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후에는 대체주의를 실체주의로, 회복주의를 예표주의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소명이 있는가?

 

 

예표주의(회복주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소명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지만 몇 가지 대표적 주장이 있다.

 

첫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원 받지만 유대인은 이스라엘 국가를 통해 단체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둘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이스라엘이 종말의 시간표라고 주장한다(마 24:32).

셋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출 19:6) 이방 국가들을 전도할 책임과 특권이 있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넷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문자적 천년 왕국에서 구약에 기록된 제사와 절기를 회복하고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이방 국가들을 다스린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음식정결법, 안식일 및 절기를 준수 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가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원 받지만 유대인은 이스라엘 국가를 통해 단체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이런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로마서 9장~11장은 비록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구원의 혜택이 이방인에게 넘어갔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들어오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지 이스라엘이 미래에 국가 단위로 구원 받는다는 주장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암울한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이 실의에 찬 유대인들에게 선민 사상을 고취하고 민족적 구심점을 제시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인위적으로 고안해낸 유대주의 사상이다.

 

그러면 왜 율법을 준수하는가?
이들은 ‘은혜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율법 준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다시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중적 구원론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어디에도 이스라엘이 단체적으로 구원 받는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단체적 구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고 오히려 유대인의 거부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간다고 하셨고(마 21:33-43),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아 들으라”(행 2:2, 36; 3:11 등)고 했지만 구원은 ‘각각’ 받는다(행 2:38)고 말했다.

 

결국 메시아닉 유대인의 구원사상은 성경에서 도출해낸 주장이 아니라 바리새 유대교의 주장을 성경적 주장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이스라엘이 종말의 시간표라고 잘못 주장한다.

 

메시아닉 유대인과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고토(故土. land of Israel)) 회복, 이스라엘 건국(?)과 알리야(유대인의 귀환)를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본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상태가 국제 정세의 상태이자 종말 현상의 바로미터(지표)이므로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인용하는 ‘무화과 나무’ 비유는 누가복음에서는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마 24:32; 막 13:28; 눅 21:29)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무화과 나무를 단순히 계절이나 시대의 징조로 사용된 것이지 이스라엘의 건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구약 예언의 성취도 아니고 종말의 시간표도 아니다.

 

 

또한, 실체주의자들(대체주의자들)은 신약 시대에서는 구약이 말하는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일반 은혜의 혜택으로 본다. 하나님이 유대인의 남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을 한 곳에 모아 전도하고 신앙생활 잘하도록 건국을 허용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이런 주장을 극렬하게 비판하면서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항변한다. 과연 그런가?

 

 

*예수님의 이스라엘 멸망과 회복의 예언

 

1948년에 고토를 회복하고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예언의 성취라면, 그 이전에 고토를 잃어버리고 흩어진다는 예언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흩어진 시기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유대인의 국토 상실과 디아스포라 및 회복의 예언은 누가 했는가?
바로 예수님이 ‘악한 농부 비유’에서 하셨다(마 21:33-46; 막 12:1-12; 눅 20:9-18). 내용이 길므로 전 구절 게재는 생략한다.

 

“그 악한 자들(유대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이방인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마 21:41).

“포도원 주인(하나님)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유대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이방인들)에게 주리라”(막 12:9).

“(하나님이)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이방인들)에게 주리라 하시니”(눅 20:16).

 

마태복음에서는 다시 이 사실을 강조하신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7-39).

 

 

A.D. 70년의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 예언은 종말론에 대한 ‘감람산 강화’에 포함되어 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2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그러면, 이스라엘이 언제 땅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흩어졌는가?

정확한 시점은 A.D.135년 바르 코크바 전쟁 이후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미 이스라엘 땅에 거주했었다. 다만 주권만이 로마 제국에 손에 넘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과 유대인의 귀환은 바벨론 포로가 끝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귀환하고 제2성전을 건축하면서 이미 성취된 것이다.

 

비록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헬라와 그후의 다른 국가에 의해 시달렸지만 나름대로 독립을 유지해 왔고, B.C. 166~143의 마카비 반란에 이어 B.C. 142~67 동안 유대인의 독립 국가인 하스몬 왕조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B.C. 63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넘어갔다.

 

어떻든 유대인은 한 동안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고토 회복과 알리야 예언이 1948년에야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은 객관적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A.D. 70년과 A.D.135년의 두 번의 봉기를 통해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한 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유대인들이 가장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 ‘바룩 하바 브셈 아도나이’(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 아닌가? 이것은 유대인들도 1948년의 건국과 귀환은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의 심판과 회복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스몬 왕조가 설립되어 100년 정도 유지된 사실을 축소하고 폄하하면서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대인이 마카비 혁명(BC 166-43)과 하스몬 왕조(BC 142-67)를 통해 약 100년 정도나 독립 국가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성경 예언의 성취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국지적 독립이었으며, 이스라엘이 열방에 알려져서 이방의 빛이 되거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고토로 귀환하지 않았고,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으로 알려져서 이방인들이 방문하지도 않았고, 메시야의 초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폄하한다.

 

 

이런 주장은 인본주의적 주장, 과거 소급적 주장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라면,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도 구약의 온전한 성취가 아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했던 유대인들도 한꺼번에 귀환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몇 번에 걸쳐 나누어서 귀환했고 모든 디아스포라가 귀환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란 별도 책이 있을 정도로 이를 분명히 귀환 예언의 성취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런 논리를 현대의 이스라엘에 적용하면,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형태의 세속국가이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가 아니므로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의 일부 정통 유대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가 인위적으로 건국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도하신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아직도 고토의 일부 밖에 회복되지 않았고, 현재 이스라엘 거주 유대인은 44%이고, 전세계 유대인 인구의 40%에 달하는 미국 거주 유대인은 알리야를 하지 않고 있고 그외 디아스포라는 16%이다.

 

국가에 대한 국제적 인준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긴 일이지 이전의 고대 국가에서 국가 설립을 인준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메시야(예수) 이후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바벨론 포로 이후의 귀환도 성경적 성취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한때 중동 전쟁으로 인해 시한부 세대주의 종말론과 이스라엘 중심의 종말론 탄력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즈음 이스라엘 관련 국제 뉴스는 뜸하고 북한의 도발 야욕으로 인해 한국이 오히려 세계 열방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막대한 석유 자금으로 테러를 지원하고 이스라엘 축출에 열을 올렸던 아랍 국가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셰일 오일 생산으로 인한 석유 가격의 폭락으로 재정이 거들나게 생겼다. 이들도 이제는 석유 외의 다른 것으로 먹고 살기 위해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므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국력을 소모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긴장이 소강 상태로 들어가 버렸고 이스라엘이 세계 역사의 종말의 주무대에서 당분간(?) 퇴장한 것 같다. 고립주의를 표방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 정부 출현과 적그리스도의 등장 가능성도 요원해 졌고, 베리 칩 같은 666파동도 사그라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종말론적 사건 추적을 전문 사역으로 하는 미국의 수많은 종말론 사역 단체들이 이제는 한국 전쟁, 일식과 월식, 지진, 홍수 등 자연 재앙으로 종말론 현상들을 부추기고 있다.  예수님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런 것들은 종말의 현상들이지 이것들이 끝은 아니라 오히려 재난의 시작이라고(마 24:7-8).

 

그러면 왜 이런 종말의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가?

신자들은 세상 일이나 세상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하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면서 긴장감을 갖고 신앙생활 하라는 것이다. 신자 각자에게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우주적 종말 보다는 개인적 종말을 위해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신부로 단장되라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시는 것이다.

 

정리하면,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은 구약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 은혜의 산물이며 이스라엘이 종말의 시간표도 아니다.

 

 

셋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출 19:6; 사 49”6) 세계의 중심이고 이방 국가들을 전도할 책임과 특권이 있는 나라라고 잘못 주장한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물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셨다. 그러나 개인, 단체 및 국가에 대한 성경의 예언은 대부분이 조건부이다.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바로 앞 절에 조건이 나온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지만 불순종하자 모두 광야에서 죽고 순종한 제2 세대가 축복을 이어받았다.

 

이후, 이스라엘의 축복과 저주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했을 때의 축복과 불순종했을 때의 저주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의 역사서들은 ‘신명기의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이 순종했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만 불순종했을 때의 저주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징계-를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시로 하나님의 언약에 불순종하여 책망과 훈계를 받다가 결국은 멸망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시고(요 1:4,9; 8:12), 신자 모두가 세상의 빛이다(마 5:14). 그러므로 이스라엘만이 ‘이방의 빛’이라는 주장은 구약의 주장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축복과 소명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굳이 ‘이스라엘만의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우겨 대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도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고 바울도 로마서에서 복음 전파가 유대인에게 먼저이고 나중에 헬라인이라고 기록했다(롬 1:16).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또 다시 불순종하자 복음 전파의 축복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갔다(마 21:33-46).

 

로마서 11장에서도 구원의 순서가 유대인의 복음 거절→이방인에게 넘어감→이방인의 충만한 수→유대인의 남은 자 구원이다. 즉 구원의 순서가 처음에는 유대인이고 나중에 이방인이었지만(롬 1:16) 이후에는 순서가 바뀌었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는 것이다’(마 19:30; 20:16; 막 10:31; 눅 13:28-30). 그러므로 신약에 의하면 이방인 신자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의 눈에는 이런 구절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저 먼 옛날의 구약 예언에만 목 매달고 있는 것이다.

 

 

*예표주의(회복주의)의 성경 해석의 치명적 오류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이 왜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가?

 

구약을 먼저 해석한 후 신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신약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구약을 먼저 해석하고 신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특히 댄 저스터는, 구약을 먼저 해석해야 하고 신·구약에 내용이 충돌하면 구약 우선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에언의 복합 성취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모두 최종말의 미래에 성취된다(미래 해석법)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중간성취나 과정은 모두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약속 성취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약의 갱신이나 변경을 모르고 한번 약속은 무조건적으로 성취된다고 잘못 가정하기 때문이다.

 

댄 저스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취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약속이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약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는 소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는데, 정작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성경 구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도 12제자들과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회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대다수의 백성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복음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 혜택을 이방인에게 돌리신 것이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구원하신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간과하고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약속이 무조건으로 성취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무리한 성경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정리하면, 교회 시대에는 복음이 먼저 이방인에게 충만하게 전파되고 그 다음에 유대인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구약의 예언은 변경되어 제사장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할도 중지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지금의 이스라엘은 선교의 대상이지 자신들이 이방인을 구원할 여력도 없다.

 

 

 

넷째,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문자적 천년 왕국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인 제사와 절기를 회복하여 이방 국가들을 다스린다고 잘못 주장한다.

 

 

필자는 문자적 천년 왕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인정한다 해도 천년 왕국에서 토라(모세 오경)의 모든 가르침이 온전히 회복된다는 주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부인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인해 제사 제도가 모두 폐기되었다고 기록하는데(히 8:13; 9:10; 10:1), 왜 천년왕국에서 제사 제도가 다시 회복된다고 하는가? 이들은 ‘속죄 제사’가 아닌 ‘기념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이들이 인용하는 본문에는 오히려 ‘속죄 제사’를 강조하고 있다(겔 43:18-27).

그런데 이 내용이 불편하니까 다른 모든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속죄 제사만은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자의적 성경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예표주의자(회복주의자)는 헬라 교부들이나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음식정결법, 안식일 및 절기를 준수를 회복해야 한다고 잘못 주장한다.

 

 

필자가 이미 밝혔듯이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회복하여 지켜도 좋다. 이것들은 그들의 전통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나 사도 바울도 이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방인 크리스천들은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행 15:1-21)에 의해 면제되었다.

 

그런데 A.D. 4세기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유대인 정체성을 부인하게 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지금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는 한(恨)으로 남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요즈음 같은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이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에 약 40만 명의 유대인 크리스천이 거주했으며, 이들 중 일부가 요즈음 같은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시도했지만, 분열을 조장하고 ‘이단성’이 있다는 다른 유대인 크리스천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7년에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탈환함과 동시에 미국 유대인들이 ‘예수 운동’을 통해 많이 회심하면서, 여기저기서 또 다시 유대인 정체성을 살리자는 운동이 제기되었고, 1970년대 말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리하면, 이런 것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정하는 자는 회복주의자고 그렇지 않은 자는 대체주의자다. 그러므로 비록 이스라엘의 ‘구원’은 말하지만 ‘회복’을 말하지 않으면 대체주의자이고, 이스라엘의 구원(salvation)과 회복(restoration) 을 동시에 주장해야 회복주의자(예표주의자)라고 블래크는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예표주의(회복주의)의 주장은 허구이자 비성경적 주장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물론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필자의 주장을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을 잠재울 결정적 주장도 갖고 있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밝히기로 한다.

 

 

 

반 세기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의 초라한 성적

 

 

통계적으로 보면, 반 세기 남짓한 메시아닉 운동의 성과는 다소 초라하다.
메시아닉 유대인 인구는 2012년 현재, 미국 내에서는 17만 5000~25만 명 정도, 이스라엘에는 1만 명 ~2만 명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35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2012년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 유대인 인구는 1,375만  명 정도이다. 미국 내 유대인 인구가 545만 명(39.6%),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가 590만 명(43.9%) 정도이고 나머지는 기타 국가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들(16.5%)이다.

 

그렇다면, 전세계 유대인 인구 중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35만/1,375만=2.5%. 미국 내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17만 5천~25만/545만=3.3%~4.6%, 이스라엘 내 메시아닉 유대인 비율은 1만~2만/590만=0.17%~0.34%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알리야 운동도 2013년 이후로는 부진하다고 한다.
알리야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을 회복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꿈이다. 오늘날 전체 유대인 중 40% 정도가 미국에 거주하는데 삶이 안정되고 미국의 삶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로 귀환하지 않고 있다.

 

 

물론 외적 통계가 모든 운동의 기준은 아니다.

이단들처럼 비성경적이라도 회원이 급성장 하고 재정도 풍족할 수 있고, 회개운동처럼 지극히 성경적이라도 인기가 없어서 실적이 초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은사운동가들이 유대인 운동에 대거 동참하고 한국에도 동참하는 단체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실적은 생각 보다 미미하다.

 

 

이런 저조한 실적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답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조한 실적을 염두에 두었는지, 예표주의자들(회복주의자들)은 ‘온 이스라엘’(롬 11:26)은 미래의 대종말에 구원 받을 유대인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상당수의 회복주의자들이 ‘온 이스라엘’은 ‘모든 유대인’이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데 ‘남은 자’에 대한 신·구약의 기록이나 로마서 9장~11장의 문맥을 볼 때,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아무튼 ‘온 이스라엘’을 먼 미래의 예수님 재림 직전의 대종말에 성취될 예언(?)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저조한 실적이 예표주의(회복주의) 운동에 별로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댄 저스터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이방인 교회와 이스라엘이 주안에서 하나 되고(요 17장),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룩 하바 ~’를 외칠 때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이 대거 구원 받는 엄청난 부흥이 일어난다고 한다.

(*히브리어 ‘바룩 하바 브셈 아도나이’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 23:39)란 의미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하는 통곡하는 자들(계 1:7; 슥 12:10 등)이 모두 구원 받을 자들이라고 희한하게 해석한다. 예수님을 찔러서 죽인 사람들이 죽은 지가 오래되는데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가? 이것은 구원 받을 사람들이 아니라 심판 받을 사람들을 가리키는 구절이다.

 

 

아셀 인트레이터는 나팔절과 초막절 사이의 2주 정도의 기간-문자적 기간인지 상징적 기간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중에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일어나는데 이 기간 중에 엄청난 영적 부흥과 사탄의 핍박이 공존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규모 추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면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이스라엘의 대규모 구원과 그들이 말하는 이스라엘을 통한 이방인들의 대규모 구원이 예수님의 지상 재림 직전의2주 정도의 짧은 기간 중에 일어난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인지 과장인지 분별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메시아닉 유대인의 천년 왕국에 대한 지나친 집착, 신약이 아닌 구약 우선의 성경 해석, 구약의 예언의 문자적 성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점, 국가에 대한 예언은 무조건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점, 고질적인 유대인 특유의 배타적 선민의식으로 인해 이런 무리한 해석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 마저 들기도 한다.

 

 

나가는 말

 
 

필자는 누구보다 은사운동을 변호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을 따르는 미국의 은사사역자들이나 한국의 사역자들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사도행전적 표적과 기사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면 이제는 서신서적 양육과 내면 성숙으로 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뛰어난 은사 사역자였지만 동시에 뛰어난 교사이자 양육자였다.

 

지금 많은 은사운동가들이 메시아닉 유대인 운동의 랍비 (바리새) 유대교 식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데 전망이 밝지 않다. 특히 은사운동이 서신서적 바른 교리와 내면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언제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위험한 운동이 되기 쉽다.

 

 

지금 여러 징조를 통해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하고 신부 단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유대 달력 계산이나 해와 달의 징조를 보고 휴거 날짜나 계산하고, 누구 말처럼 어린 양과의 혼인 잔치 예행 연습에 불과한 절기나 지키고, 있지도 않은 예표주의(회복주의)에 귀중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허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예표주의(회복주의)라는 영적 껍데기를 하루 빨리 벗어버리고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참고 서적 및 자료 :

 

Blaising, Craig A and others. eds. Three Views on the Millennium and Beyond.
Biltz, Mark, God’s Daytimer; 마크 빌츠, 『하나님의 시간표』
Brand, Chad O., ed. Perspectives on Israel and The Church.
Gundry, Stanley. ed. Five Views on Law and Gospel.
Heidler, Robert. The Messianic Church Arising: Restoring the Church to Our Covenant    
       Roots;   로버트 하이들러. 『메시아닉 교회: 언약의 뿌리를 찾아서』.
Hoekema, Anthony, The Bible and The Future;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Intrater, Keith. From Iraq to Armageddon; 키이스 인트레이터. 『그날이 속히 오리라』.
Juster, Daniel. Jewish Roots: A Foundation of Biblical Theology; 댄 저스터. 『유대적 뿌리』.
Juster, Daniel & Intrater, Keith. Israel, the Church, and the Last Days.
Ladd, George. E. The Blessed Hope: A Biblical Study of the Second Advent.
Pate, C. Marvin., ed. Four Views of the Book of Revelation.
Poythress, Vern. Understanding Dispensationalists; VERN S. 포이쓰레스.『세대주의 이해』.
Richardson, Joel. When A Jew Rules the World.
Riddlebarger, Kim. A Case for Amillennialism: Understanding the Endtimes.
Rudolph, David & Willitts. Joel. Introduction to Messianic Judaism.
Stern, David H. Restoring the Jewishness of the Gospel: A message for Christians.
Storm, Sam.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Vlach, Michael, Has the Church Replaced Israel?


김정환, 『대체 신학: 교회가 과연 이스라엘을 대체했는가?』.
류모세. 『유대인 바로보기』.
번 S. 포이쓰레스. 『요한계시록 맥잡기』.
우광호. 『유대인 이야기』
이한수. 『복음과 율법』.
홍의식. 『유대인 이야기』.
 

Joe Carter. “9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Rabbinic Judaism.”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9-things-you-should-know-about-rabbinic-judaism.

“Messia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essianic_Judaism. “Origins of Rabbi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Origins_of_Rabbinic_Judaism

“Rabbi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Rabbinic_Judaism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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