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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⑤] 예언을 멸시하는 성령 소멸자들(2)김재성, 박영돈, 오명옥, 이승구, 정대운, 정윤석, 정이철, 조믿음, 최병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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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1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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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⑤]

 

예언을 멸시하는 성령 소멸자들(2)

-김재성, 박영돈, 오명옥, 이승구, 정대운, 정윤석, 정이철, 조믿음, 최병규 등-

 

   
 

 

<글 싣는 순서>

(1)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
-폴리캅, 터툴리안, 콘스탄틴 황제, 어거스틴,
존 낙스, 사무엘 러더포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입법자들,
스펄전, 록펠러, 한경직, R.C. 스프롤, 척 리프카, 정필도, 김하중 등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에 대한 태도

-기적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는 사람들
-기적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을 부인하는 잘못된 주장들 

1. 기적중지론
2. 성경의 충족성,충분성 및 계시종료론
3. 구속사적 성경 해석
4. ‘예언의 은사’가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인가? 
5. 히브리서 1장1-2절이 예언 은사의 종료를 증거하는가? 

(2)

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사적 계시’인 ‘개인 예언’을 부인하는가?

7. 기타 잡설들 : 

- 고전 13장의 온전한 것이 ‘완성된 성경’인가?(오명옥)
- 구약 시대에 사는 정이철은’ 사적 계시’를 부인한다(정이철)
-원고 없는 즉흥 설교가 비성경적이라고?(오명옥, 정이철) 
-바울은 행동할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가?(정대운)

(3)

- 하나님의 음성듣기 훈련을 하면 왜 안 되는가?(정대운) 
-정윤석의 “김미진의「왕의 음성」비판적 읽기”를 비판하다(정윤석)
-음성을 듣고 미래를 알면 ‘냉혹한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는가?(박영돈)
*바울형과 디모데형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초자연적 은사들)을 (간절히 시기할 정도로)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2).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사람, 마귀 및 문화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혜의 산물인 재능과 이성으로 문화를 만들고, 먼저 온 도적인 마귀가 이를 훔쳐가서  오남용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도적이 훔쳐간 것을 탈환하시기 위한 것이다. 영혼은 물론 문화도 탈환하신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8, 10).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9).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마귀가 하는 것을 신자들이 탈환하면 마귀 흉내를 낸다고 비판한다. 이는 창조의 영광을 마귀에게 돌리는 영적 이적 행위이다. 마귀는 결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오남용하여 먼저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마귀가 먼저 사용하는 모든 것을 탈환해야 한다.

 

하나님은 미국과 유럽에서 청소년들이 록앤롤 음악에 빠져있을 때 교회에 찬양과 경배를 허락하셔서 마귀에게 빼앗긴 수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셨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교회에서 북 치고 기타 치면 ‘무당굿’이나 ‘광란’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이렇게 하지 않는 교회가 이상할 정도이다.

 

한때 기적중지론자들은 방언 갖고 ‘개구리 소리다’, ‘마귀 소리다,’ ‘방언으로 교인들의 영적 상태가 저질화 되었다’-자기들은 영적으로 고상했는가?-면서 얼마나 시비를 걸었는가?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정이철이나 그 무리들을 제외하면 방언 갖고 시비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신학이 바뀌었나? 아니다. 방언하는 사람들이 은사적 교회는 물론 전통적 교회에서 많이 생기다 보니, 찬양과 경배가 교회의 사역의 일부로 흡수되듯, 방언도 교회의 은사로 일부로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예언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점쟁이에 익숙한 한국은 물론 서양에서도 점성술, 타롯 카드 등 각종 점술이 범람하다 보니 이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이 교회에 예언의 은사를 회복시키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도 모르고, 점술을 모방한다는 피상적인 논리, 예언과 같은 기적행하는 은사는 사도 시대에 중지되었다는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 고전 14장이 말하는 예언을 가르침이나 설교로 왜곡 해석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사역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귀신 장난이라고 폄하했다. 이런 자들에 대해 예수님이 뭐라고 책망하셨는가?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즉 성령이 하시는 일을 귀신 장난이라고 폄하하는 자들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함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하시면서, 이런 자들을 ‘독사의 자식들’(34절)이라고 강하게 질타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은 곧 마귀 새끼들이다. 마귀 새끼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의 하시는 일이 마귀가 하는 짓과 비슷하다고 해서 마귀 짓이나 귀신 장난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가?

 

그런데 정이철(「바른 믿음)과 박영돈(고신대 교수)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정이철은 예언 하는 이용규 선교사를 ‘박수 무당’이라고 하고, 박영돈은 예언 사역자를 ‘점술가’나 ‘점쟁이’라고 폄하 한다.

 

그외에, 김재성(국제신대 교수), 이승구(합신대 교수), 최병규(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 등이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고, 기독교 언론에서는 오명옥(「종교와진리」), 이인규(「평이협」,「예레미야이단연구소」), 정윤석(「기독교포털뉴스」),  정대운(정이철의 「바른 믿음」 기고자), 조믿음(「바른미디어」) 등이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은사중단론)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여 열심히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

 

신자의 삶은 죄와 죄를 타고 역사하는 마귀의 세력과의 영적 전쟁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영적 무기가 좋아야 한다. 지금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큰 소리 치는 이유도 핵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기적행하는 은사는 마귀의 진을 정찰하고 허무는 고성능 영적 무기다.

 

전통적 교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영적 전쟁을 하지만 은사적 교회는 이에 더하여 초고성능 무기인 기적행하는 은사로 영적 전쟁을 한다. 은사적 교회는 전통적 교회 보다 영적 무기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영적 고기’-회심자-를 훨씬 더 잘 잡고, 더 많이 잡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은사적 교회들이 성장하는 것이다.

 

잡힌 고기가 제대로 양육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와 관계가 있다. 전통적 교회는 은사적 교회에 대해 “은사가 있으면 뭘 하나 열매가 있어야지?”라고 비판하는데 이런 비판은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 “교리와 전통이 바르면 뭘 하나, 열매가 있어야지?” 둘 다 성령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것은 피장파장 아닌가? 그러나 은사적 교회는 ‘성장’이라도 있지만 전통적 교회는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고 오래 되었다는 ‘텃세’만 있지 않은가?

 

‘예언의 은사’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자료 :

“[성령의은사②] 3. 기적행하는 은사의 종류.” 「글로리아타임스」, 2015.06.21.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62

“[성령은사] 예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글로리아타임스」, 2014.05.01.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54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을 부인하는 잘못된 주장들

 

기적중지론자들이 오늘날의 예언의 은사를 부인하는 사이비 신학, 오류투성이의 논리 및 왜곡된 성경 해석을 이전 글에 이어 계속 살펴보자.

 

 

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사적 계시’인 ‘개인 예언’을 부인하는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하 신앙고백) 제1장1절과 10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1. 성경의 필요성과 종결성

1.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한 것으로 만드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신 이전의 방법은 지금 정지 되었다.

10. 그에 의하여 모든 종교상의 논쟁들이 결정되며, 모든 회의들의 작정들, 고대 저자들의 의견들, 사람들의 교리들, 사적 계시(private spirits)가 검토 되어야 하는 또는, 그의 선고에 우리가 희망을 거는 최고의 심판주는 다른 이가 아니라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

 

‘신앙고백’ 1장1절은 분명히 성경 66권인 정경(canon)이 완성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중지되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전의 방식들’은 꿈이나 환상과 같은 직접 계시를 말한다. 따라서 1장1절에 의하면, 신앙고백은 분명히 기적중지론적 입장이다.

 

그러나 1장10절의 private spirits이 무슨 뜻인가에 따라 ‘신앙고백’이 오늘날의 개인 예언과 같은 사적 계시의 존속을 인정하는지의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한국의 장로교는 private spirits을 ‘개인의 정신,’ ‘개인의 정신 문제로 번역하여 그 뜻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private spirits private revelation(사적 계시) 의미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신앙고백이 성안되던1600년대 당시의 영어는 영(spirit)을 계시(revelation)라는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는 강력한 정황적 증거가 있다. 당시 신앙고백 입법자들은 3부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인 예언을 실제로 하면서 개인 예언을 지지하는 존 낙스와 같은 스코틀랜드 개혁주의자들, 다른 극단인 기적중지론자들 및 중도파들의 혼합체였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에서 어떤 법안이 발의되면 각 당파의 정책과 이해 관계에 의해 원안이 수정되어 통과되듯, 신앙고백도 3가지 다른 부류의 입장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통과되었다. 그래서 1장1절에서는 ‘기록된 계시’의 종료를 확인했지만 10절에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종속되는 ‘사적 계시’의 가능성은 열어놓았던 것이다.

 

즉 신앙고백에 의하면, 기록된 성경은 완성되었지만 완성된 성경에 종속되는 ‘사적 계시’ 즉 개인 예언은 존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바이런 커티스가 논문에서 주장했고, 포이트리스(미국 웨스트민스터 신대원 교수)와 ‘예언의 은사가 신약시대에도 지속된다’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웨인 그루뎀이 지지한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에 의해 예언의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주장은 이제 설 땅이 없어진 것이다. 신앙 고백에 의하면, 기적중지론도 ‘모든 회의들의 작정들’,고대 저자들의 의견들’, ‘사람들의 교리들’에 불과하므로 이제는 성경의 재조명을 받아서 모든 신학교와 모든 교단에서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아직도 신앙 고백이 ‘사적 계시’인 개인 예언을 부인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자료 참조 :

“[개인예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사적 계시’ 인정.”「글로리아타임스」, 2016.03.27).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15

 

 

7. 기타 잡설들

 

- 고전 13장의 온전한 것이 ‘완성된 성경’인가?(오명옥)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헬. 파우오)지식도 폐하리라(헬. 카탈케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8-10).

 

고전 13장이 말하는 ‘온전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라는 해석이 정설이다. 대부분의 개혁주의 기적중지론자들도 지지하는 해석이다. 다만 벤자민 워필드와  같은 일부 기적중지론자들이 ‘온전한 것’을 ‘완성된 성경’이라 해석하지만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또한, 리차드 개핀 같은 기적중지론자가 ‘온전한 것’을 주님의 재림이라 해석하더라도, 이는 방언이나 예언이 그치는 시기에 대한 구절을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그러나 본문을 제대로 해석하면, ‘온전한 것 즉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분적인 계시에 불과한 방언이나 예언은 그친다, 폐지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명옥(「종교와 진리」)은 ‘온전한 것’을 ‘신약성경의 완성’이라고 말하면서 계시가 기록으로 완성된 이후에는 방언이나 예언이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동사 자체에 그런 뜻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더 나가아서, 오명옥의 주장대로 ‘온전한 것’이 신약 성경이라면, 신약 성경을 가진 우리는 이제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모든 것을 온전히 알게 되는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성경이 완성될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렇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완성된 성경이 있고 신학 박사가 되고 목회를 수십 년 해도 여전히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이고 부족하기 마련이다.

 

또한, 고린도전서의 기록 연대는 A.D. 55년경이고 신약의 마지막 성경인 요한계시록은 AD 81~96년경에 기록되었는데 몇 십년 후에 없어질 방언과 예언을 왜 고전 14장에서는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라고 하는가?

 

더군다나, 방언이나 예언이 성경 완성 직후나, 다른 기적중지론자들이 잘못 주장하듯 재림 이전에 중지되는 것이라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7절에서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기록한 것은 한낱 겉치레 인사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이처럼 오명옥의 해석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석이다. 그런데도 오명옥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신학을 증명하기 위해 한두 구절의 성경 해석을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오명옥은 이렇게 엉터리로 성경을 해석해 놓고, 음성을 듣거나 예언 사역하는 자들을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통탄할 일인가?

 

오명옥은 또  “고전 14:39에서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전 14:1)는 말씀은 예언 받기를 사모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문서에 기록,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이런 의미이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오명옥은 고전 14:1의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예언하려고 하라”는 말씀은 교묘히 피해간다. 여기서는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동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오명옥 식으로 표현하면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하려고 하라’는 우스꽝스러운 의미가 된다. 그래서 고전 14:39과 연결시켜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필자가 예언은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라는 주장을 비판한 것처럼, 성경을 말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사람을 분별하는가?(고전 14:29)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가?(고전 14:30). 제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만 하기 바란다.
 

오명옥의 홈피에는 얼굴도 없고 약력도 없다. 누구인가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얼마 전 한국의 유명 목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이단이나 사이비로 판단하고 정죄했지만 오히려 정통 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은 『교회와 이단』(이대복. 주영흠 등)이란 잡지에서 취재 부장을 한 사람이었는데, 이제『종교와 진리』로 이름을 바꾸고 자신이 발행인이 되어 여전히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과 해괴한 성경해석으로 은사 사역자나 치유 사역자를 때려잡는 못된 짓을 하고 있다.

(자료 : “변승우의 신사도운동 난리난리 법썩.” 『종교와 진리』[2017.05.28])

 

 

*추가 : 김대운과 임진남의 '잘못된 방언관'

 

최근에 김대운(정이철의「바른믿음」 기고자)도 오명옥처럼, ‘온전한 것’인 성경이 완성되면 부분적인 예언이나 지식이나 방언은 스스로 없어지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온전한 것’이 헬라어의 중성이고 예수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여성형이므로 온전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 아니라 완성된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 해석의 기본은 문맥 중심으로 해석하고, 덜 분명한 구절은 더 분명한 구절로 해석하는 것이다. 헬라어 단어의 성[gender], 수[numbers], 시제[tense] 등은 이런 것들이 분명하지 않을 때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과 14장 및 고린도전서 전체의 문맥에 의할 때,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교회가 존재하는 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 완성된 성경이라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김대운, “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치게 될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바른믿음, 2017.07.14)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904)

 

또한, 임진남(정이철의「바른믿음 」기고자)은 ‘방언은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라는 망발을 하고 있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적으로 알려준 것이다’고 그는 주장한다. 각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복음이란 증거가 되는가?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들었다고 했지 그것을 듣고 회심했다는 증거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왜 바로 다음에 베드로가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아람어로 설교했을 때 사람들이 회심했는가?

 

또한 고전 14장14절에서 분명히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으로 기도한다’고 표현하는데, 임진남은 무슨 권위로 방언이 기도의 은사가 아니고 복음을 증거하는 외국어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이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고 하는가? 여기서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이다.

 

방언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방언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비밀을 말하는 영언’(고전 14:2) 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다 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해석을 하는 것이다.

(임진남, “방언은 기도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 증거의 은사이다.” 바른믿음, 2017. 7.8)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897)

 

이처럼 정이철과 그 무리들은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초자연적 은사를 부인하기 위해 성경 위에 올라타서 성경을 난도질하고, 교회사적 자료도 기적중지론자들의 편파적 주장만 제시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하는 영적 이적 행위를 스스럼 없이 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사는 정이철은 ‘사적 계시’를 부인한다

 

정이철은 예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서 예언이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예언은 모든 사람에게 사사로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전체 백성에게 말씀을 주시기 위해 선택된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이 다른 백성들에게 전하였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개인적으로 예언을 받은 사람들도 있으나,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 백성 전체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말씀을 주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공적 계시는 종결되었고 대신 사적 계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성경과 예언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정이철, “예언과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바른믿음」, 2107.6.19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884

 

누가 성경과 예언에 대해 잘 모르는가?

정이철이야 말로 성경과 예언에 대한 무지한 자이다. 정이철은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하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 계시의 점진성에 위배된다. 구약의 희미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분명한 계시를 기록하고 있는 신약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구약에서는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모세나 선지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했지만 신약에서는 성령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임하여 각 종류의 사람들이 예언을 한다고 기록하고(행 2:17-18; 19:6), 교회 생활의 보편적 지침서인 서신서에서는 신령한 초자연적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되 특별이 예언을 하려고 하라면서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명령한다(고전 14:1, 39).

 

그리고 사도시대 당시에도 사도들처럼 모든 신자에에 적용되는 무오류한 하나님의 예언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도들의 예언의 보다 급(級)이 낮다고 할 수 있는 개인 예언을 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행 15:32).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행 21:8-9).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행 21:10).

 

여기에 인용된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등급의 평범한 신자들이다. 구약의 선지자의 카운터 파트가 신약에서는 사도들이고 신약의 선지자(예언자)는 주로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예언하는 자들이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모든 육체-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져서 예언을 한다는 말씀의 구체적 사례들이다(행 2:17-18).

 

그런데, 정이철은 신약의 선지자도 구약의 선지자와 동격으로 착각하여 신약 시대에는 예언이 중지되었고, 공적 계시인 성경 기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사적 계시’ 즉 개인 예언은 더 이상 없다는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리차드 개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이철과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말로는 성경적, 성경적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들의 무경험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위에 올라타서 성경 내용을 함부로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정이철은 또한 신앙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합니까?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성경,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 뿐입니다…… 힘써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신앙과 마음이 무르익으면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얼마든지 모든 위기와 어려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날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수고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직통으로 “이래라! 저래라!”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듣기, 방언통역, 예언 등을 의지하면, 우리의 신앙은 일평생 제자리걸음이고, 영원히 귀신의 놀이마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정이철의 원론적 주장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진리의 성령이 구체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정이철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원론적으로만 주장하면 구체적 각론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여기에 기적중지론자들의 맹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소원, 기쁨이나 확신 및 열린 환경 등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면 오히려 내 생각이나 환경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워서 신앙이 일평생 제자리 걸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성경 인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음성듣기나 예언을 통해 삶의 목표가 결정되고 그에 따르는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선지자들, 사도들 모두가 음성이나 환상과 같은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들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 이전처럼 음성이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 인도하신다. 정이철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이 말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의 구체적 방법들이다. 구체적 사례들은 이 글 제1편의 서두에 나오는 어거스틴, 스펄전, 존 낙스, 한경직 등의 간증들을 보기 바란다.

 

정이철 말 대로라면 이런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수고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직통으로 이래라! 저래라!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듣기, 방언통역, 예언 등을 의지하여, 그들의 신앙은 일평생 제자리걸음이고, 영원히 귀신의 놀이마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된다. 과연 그런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오히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다.

 

오히려 정이철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바울 이전의 사울처럼 힘써 자기 의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고(롬 10:2-3), 열심히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 원고 없는 즉흥적 설교가 비성경적이라고?(정이철, 오명옥)

 

오늘날 기적중지론자들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즉흥적으로 설교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즉흥 설교가 마치 잘못된 방법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오명옥, “천안 영성마을 박전도 원장, 민간신앙에 기독신앙 입고 신내림 식 주장!”

박 원장 또한 원고 없는 설교를 하고, 안수와 통변, 예언 집회와 영성훈련을 하고 있으며, ‘피의 증상’을 말하며, ‘눈 안수’를 하고 있다. 「종교와 진리」, 2017.7.4

http://www.churchheresy.com/news/articleView.html?idxno=258)

 

정이철은 이용규 선교사가 “‘설교하러 오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설교 내용을 바꾸라고 하셨다!’ ... 이렇게 말하는 설교자들은 매우 위험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통으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비난하면서 “이용규는 선교사의 탈을 쓴 고학력 박수무당”이라고 정죄한다.

(정이철. “이용규는 선교사의 탈을 쓴 고학력 박수무당,” 「바른믿음」, 2017.5.10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851)

 

정이철은 “강사로 초청받아 가는 사람은 그 교회에서 전할 설교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설교 준비는 설교자의 신학과 지성과 인격의 기도의 산물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 설교를 준비하여야 한다. 설교 준비는 결코 하나님의 직통의 가이드를 받아서 작성하는 신비적인 사역이 아니다”고 말한다.

 

정이철은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즉흥적으로 한 성경적 방법은 비난하고 사람들이 교회사를 통해 일반적으로 해온 전통적 방법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설교자는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기도 하지만 때를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도 필요하다. 둘 다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에는 미리 준비해서 설교했다는 기록이나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정이철은 오히려 성경적 방법이 비성경적이라고 잘못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이철은 음성 듣는 자체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이런 직통 계시가 사라진 근거로 히 1:1-2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1절을 들먹인다. 이에 대해서는 앞 글에서 자세히 비판해놓았다.

 

결론적으로, 정이철은 잘못된 신학과 성경 해석으로 오늘날의 음성듣기나 예언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이철이 틀렸고 성경 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즉흥적으로 설교한 이용규 선교사가 옳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틀린 자들이 더 큰 소리를 치는 희한한 세상이다. 정말 말세는 말세인 모양이다. 성경을 엉터리로 해석하는 정이철 같은 ‘거짓 교사’나 ‘거짓 선지자’들이 더 활개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바울은 행동할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가?(정대운)

 

정대운(정이철의 「바른믿음」 기고자)은 예수전도단이 음성을 듣고 전도 장소를 정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수전도단은 국내외 전도 여행을 자주 다닌다. 이 또한 어느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을 들은 후에 떠난다. 당연히 이런 무속 신앙 같은 행위 또한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바울은 선교 여행시 선교팀이 모여 어느 곳으로 가야하느냐는 것을 묻지 않는다. 바울과 그 선교팀들이 먼저 무릎 꿇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모였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어서 정대운은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바울은 속수무책으로 성령의 말씀을 듣는다. 머리를 조아려 집중하여 기도하며 선교지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고 꿈속에서 분명하게 자기의 진로를 막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대운은 이렇게 결론 짓는다.

 

성경적 근거가 없더라도 이미 하나님의 음성은 지금 들리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시키면 어떤 성경적 이론으로 설명해도 그 생각을 변화시키기 힘들다.  문희곤 목사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성경을 깊이 연구한 이후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음성은 지금도 우리 귀에 생생히 들려주신다는 명제를 세운 이후 성경을 상고한 경우이다.”

 

정대운은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인 사실임을 증거하기 위해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제시하는데 이런 주장을 ‘침묵에 의한 논쟁’ (Argument form silence)이라고 한다. 성경 구절이 말하지 않는 것에 의해 자기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쉽다.

 

예를 들어, 정통 개신교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마 28:19).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구절이 나온다(행 2:38; 10:48 참조). 정대운의 주장대로 하면 베드로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원니스(Oneness) 오순절운동가’이다. 왜냐하면 ‘예수 이름으로만 세례를 받으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이런 오순절 운동 교단이 있다.

 

또한, 필자는 한국의 한 목사가 이 구절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이고, 세례는 예수 이름으로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전통적 교회를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에 의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런 형식을 갖추지 않은 기도가 많다. 특히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사도들이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여 모두가 성령충만을 받았다(행 4:24-31).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은 있는데, 마무리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행 2:30-31)라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잘못 기도한 것인가?

 

로마 천주교는 ‘마리아가 죽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고, 마리아가 남자와 동침한 사실이 없다고 해서(마 1:25), 마리아 승천설과 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주장한다. 이 정도만 해도 ‘침묵에 의한 논쟁’ 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다.

 

줄이고 줄여서 기록한 성경 기록은 법정 변론서나 논문처럼 모든 상황이나 필요를 다 기록할 수 없다. 성경 인물이 당시의 상황에서 상식적이고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일부러 기록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성경 인물들이 화장실 갔다는 기록이 없으니 그들이 화장실을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정대운은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의해 바울의 행동을 살펴보지 않고 이야기체(narrative)인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음성듣기나 예언을 통해 행동했느냐의 여부를 증거하려다 보니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한 후에 행동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바른 성경 해석법이 아니다. 그 보다는 음성 듣기나 예언에 대해 성경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 바울은 예언의 은사에 대해 기록했고(고전 12:10; 14장), 개인적으로 예언의 은사도 있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 성경 해석을 해놓고 정대운은 자기가 가장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오히려 “예수전도단의 하나님 음성듣기는 비성경적인 이단현상”이라고 함부로 정죄하고 있으니 이런 자야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자요 이단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성경에는 바울이 사도행전 16장9절에서 받은 마게도니아 환상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인지 바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온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없다. 설령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일지라도 이후에도 바울이 무작정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음성이나 환상을 주실 것을 기다렸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학습 효과’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그러나 이런 은사가 열렸다고 생각하여 이것 저것 문의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음성을 들려주셨고 나중에는 환상도 보여주셨다. 이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음성이나 환상을 보여주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체적인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것이 많다.

 

그러므로 정대운이 “바울은 선교 여행시 선교팀이 모여 어느 곳으로 가야하느냐는 것을 묻지 않는다. 바울과 그 선교팀들이 먼저 무릎 꿇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모였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명시적으로 기록한 구절도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정대운 식으로 주장하면, 오늘날 사전 설교 준비를 하고 원고를 작성하여 설교하는 목회자는 모두 비성경적인 사람들이 된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이런 식으로 설교했다는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정대운도 아마 사전 설교 준비를 하여 설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대운이야 말로 비성경적 방법으로 설교하는 사람이 아닌가?

 

상대방을 치기 위해 정대운이 개발한 어설픈 성경 해석과 잘못된 논리가 오히려 자신을 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이등이라고 할 텐데 괜히 잘난 체 하면서 남을 비판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영적 무지와 비성경적 관행만 드러낼 뿐이다.

 

 

결국 정대운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오늘날의 초자연적 은사를 부인하기 위해 자기들 유리한 대로 성경 해석을 왜곡하고, 자기들이 하는 것은 모두 옳다는 교만과 옹졸한 배타성에 의해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사사건건 비판하고 시비를 건 바리새인들처럼, 상대방을 비판하려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비성경인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전도단이 전도 지역과 선교 지역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음성을 듣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사전에 준비하여 설교한 적이 없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사전에 설교를 준비하여 하는 것이 비성경적이 아니듯, 예수전도단이 하나님께 문의하여-물론 분별이 필요하지만- 선교지를 선정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자는 주요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성령의 은사와 일반은혜적 지식과 지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이상한 일로 여기고 이단시 하는 사람이 오려 이단적이고 이상한 사람이다.

 

자료 :  정대운. “예수전도단의 하나님 음성듣기는 비성경적인 이단현상.” 「바른믿음」, 2017.06.29)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89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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