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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1)] 기적중지론은 사이비 신학이다무경험이나 나쁜 경험을 정당화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거짓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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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7  2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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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검증①]
 

 기적중지론은 ‘사이비 신학’이다

-무경험이나 나쁜 경험을 정당화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거짓 신학’이다-
 

   

▲ 기적중지론의 기수들.
유의 : 오해 없기 바란다.
기적중지론 외에 여러 면에서 우리는 이들을 존경한다.
다만 이들의 기적중지론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후의 모든 '이름'에도 편의 상 존칭과 직함을 생략하므로 양해 바란다)

 

기적은 중지되었는가?

 

장 칼뱅, 마르틴 루터,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벤자민 워필드, 루이스 벌콥, 리차드 개핀, 팔머 로벗슨, 에드윈 팔머, 존 맥아더, (행크 해너그라프) ………

(*해너그라프는 고졸 출신의 이단감별사)

 

*박형룡, *박윤선, *김의환, 김재성, 서철원, 심창섭, 양현표, 오덕교, 이승구, 정성욱, 정동섭, 조병수, 최병규......

(*박형룡, 박윤선, 김의환은 직접 경험한 후 말년에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들 모두가 한편으로는 개신교의 한 축을 형성한 개혁전통의 업적을 세운 사람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방언·신유·예언·축사는 사도시대 이후에 중지되었다는 사이비 신학, 거짓 신학, 인본주의 신학인 기적중지론(Cessationism. 은사중단론)을 주장하고 답습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과 교회 성장을 저해한 사람들이다.

 

위에서 제시한 유명한 개혁주의자들의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 신학을 고수하면서 반(反) 성령적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고 소멸하는 자들이 있다.

 

• 존 맥아더(John F. MacArthur. 그레이스 교회. 매스터신학교 학장. 『무질서한 은사주의』, 『다른 불』 저자).

한국 교계에는 유능한 강해 설교가로 알려졌지만 현대의 오순절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을 '마귀 운동'으로 규정하여 성령을 모독(훼방)하는 자이다.
 
 

김재성(국제신대 교수. 「교회를 허무는 두 대적」. 「개혁주의 성령론」저자).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는 칼뱅의 반쪽 성령론을 바탕으로 교회 시대의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한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철저하게 부인하여 성령을 소멸하는 자이다.

 

• 서철원(전 총신대 교수. 『성령 신학』저자)
 

철부지 정이철의 사부 노릇을 하는 한국 교계의 가장 수구적 기적중지론자로서 교회 시대의 은사 체험을 '접신 체험'이라 주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대표적 성령 모독자이다.

한물 간 제임스 던(James Dunn)의 견해를 추종하면서, 성령은 믿음으로만 받고(갈 3:2) 기도하거나 안수를 통해서도 받는다(눅 11:13; 행 8:17; 19:6)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부인하여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자, 신자들이 성경의 명령이나 권면으로 성령을 구하여서 받는 것을 '인간이 주도하는 운동'이나 '조건 이행'이라고 폄하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영적 소경이다.
 
 

이승구(합신대 교수).

서철원과 더불어 골수 기적중지론적 입장에서  여러 기적중지론적 언론의 고문 역할을 하면서 성령을 소멸하는 자이다.  성령의 은사나 초자연적 사역에 대해 건전한 경험도 없으면서 관련된 주제에 대한 어설픈 성경 지식과 편파적인 신학 지식으로 예언의 은사, 영적 전쟁 및 관상 기도에 이르기까지 오지랖  넓게 활동하지만 스스로의  신학적 편견과 영적 무지만 드러내고 있다.
 
 

최병규(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연구소. 기독교미래연구원[CFI]).

 칼뱅의 잘못된 기적중지론을 추종하면서 교회 시대에 나타나는 기적행하는 은사와 예언의 은사 등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을 쓰면서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



정이철(「바른믿음」).

골수 기적중지론자로 총신대 교수 출신인 서철원의 하수인으로 한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사모했지만 무위로 돌아가자 교회 시대의 성령의 외적 사역을, 미국 존 맥아더처럼, 모두 '귀신 장난'이나 '거짓 역사'로 돌리는 대표적 성령 모독자(훼방자)이다.

어떤 주장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함부로 이단이나 거짓으로 정죄하거나 만들려고 노력하고, 영성·중보기도·기름부음 같은 전문 술어가 성경적이 아니라고 시비를 거는 한국 교회의 대표적으로 분별력 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이단 감별사’-마녀사냥꾼(Witch Hunt)-이자 '이단 제조자'이다.

 

이창모(정이철의「바른믿음」 기고자. 『방언 그 불편한 진실』 저자).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과 엉터리 헬라어 실력으로 현대 교회의 은사 운동과 방언을 ‘변태 운동’이나 ‘거짓 운동’으로 몰아가면서 성령 모독죄(훼방죄)를 짓고 있다.

 

• 노우호(에스라하우스. 『방언을 검증하자』 저자).

어설픈 성경 해석과 엉터리 헬라어 문법으로 현대 한국 교회의 방언은 ‘거짓 방언’, ‘악령 운동’이라고 왜곡하고 폄하하는 성령 모독자이다.

 

기타 기적중지론에 근거한 성령 소멸자들은 다음과 같다.

 

행크 해너그라프(Hank Hanegraaff. CRI 대표).

미국에서 존 맥아더에 버금가는 대표적 기적중지론자이자 이단 감별사이다. 개혁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그가 최근에 '진리'(Truth) 보다 '삶'(Life)을 추구하기 위해 부부가 관상기도를 강조하는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했다. 은사주의와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그는 CRI 대표직을 불법적으로 강탈하고 성도들의 헌금으로 초 호화생활을 한 이중인격자이다.


고경태(정이철의「바른믿음」기고자), 김주옥(한나) (정이철의「바른믿음」기고자), 김완숙(정이철의「바른믿음」기고자), 림헌원(기진협. 정이철의「바른믿음」기고자 ), 오명옥(「종교와진리」), 정윤석(「기독교포털뉴스」),  조믿음(「바른미디어」) 등이 아직도 공개적으로 기적중지론적 입장에서 성령 은사사역을 대적하고 있다.

 

다소 소강상태이지만 한때 열심히 활동한 박형택(전 합신 이단대책위원회), 정동섭(「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및 「교회와 신앙」, 「뉴스앤조이」, 「뉴스M 」,「현대종교」및 CBS 등이 여전히 기적중지론 편향의 기사나 뉴스를 생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기적중지론적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성령 소멸죄를 짓고 있는데 특히 예언의 은사나 신비적 영적 현상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이 자기들에 대해 뭐라고 증거하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필자는 이들 대부분이 전문성을 갖고 이단 척결에 헌신하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교회사를 통해 꾸준히 지속되고 수많은 정통 신학자들, 목회자들 및 성도들이 지지하고 경험하는 ‘기적행하는 은사(들)’나 ‘신비적 체험(들)’에 대해 서투르고 얕은 성경 및 신학 지식과 무경험 및 나쁜 경험을 바탕으로 대적하고 폄하하는 행위는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귀신 장난’으로 매도하는 자는 성령을 모독하는 자이고 예언의 은사와 같은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는 자는 성령을 소멸하는 자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28-30).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기적행하는 은사들)을 (간절히 시기할 정도로)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2:31; 14:1).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2).

 

 

성령의 사역적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람들

 

한편, 방언이나 예언 같은 기적행하는 은사는 부인하거나 결론을 유보하지만 성령의 외적 능력은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나선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르우벤 토레이, D.L. 무디, 존 스토트, 안토니 훼케마, 마틴 로이드 존스, 로버트 소시……김세윤, 박영돈, 이인규……

 

20세기 이전에는 방언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20세기 이전의 사역자들은 당연히 사역을 위한 성령의 역동성은 어느 정도 인정했지만 방언이나 신유, 또는 예언이나 신비적 현상들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표방했다.

 

안토니 훼케마존 스토트는 성령의 사역적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했지만 방언을 가장 신랄하게 혹평한 사람들이고, 로이드 존스도 사역을 위한 성령의 능력은 강조했지만 본인이 경험 부족인지 ‘기적행하는 은사(들)’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김세윤, 박영돈, 이인규 등은 방언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이지만 예언의 은사나 신비적 현상 및 영적 전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박영돈(고신대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 저자).  방언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예언의 은사나 신비적 현상들은 부인하는 자이다.  자신은 마치 성령의 사역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설을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건전한 성령 은사 경험의 부족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자이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 대해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나타나면-예언의 은사- 부인하고, 황홀감과 같은 극적 경험은 말하면서도 그런 것들이 나타나는 모습들-쓰러짐의 현상 등-은 부인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열려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에 경도되어 있고, 많은 책들을 통해 '내용'은 이해하지만 실제 '경험'이 없고, 성령의 권능이 '수줍음'(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역사)으로 역사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있고,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열려있지만 '과잉'을 지나치게 경계하여  '실천적'으로는 부인하는 학자 특유의 소심함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은사 운동은 다소 과잉은 있지만 양적 성장이라도 하지만 메마른 정통, 죽은 정통은 메마른 교리와 전통만 남아 있고 양적 성장도 없고 성품의 열매도 없지 않은가.  이런 책들은 초자연적 은사나 신비적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릇된 위로를 주겠지만 경험을 한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 부분이 말도 안 되는 자기 변명과 인간의 신학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인(다음카페「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예레미야 이단연구소」. 「평이협」). 목회 경험도 없고 건전한 영적 경험도 없는 감리교 평신도가 개혁신학의 투사가 되어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무고한 자를 이단과 사이비로 양산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잘난 것 같아도 자기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이들이 겉으로는 거창한 신학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경험의 범위 내에서 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직접 경험이 있으면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극력 반대하거나 유보적 견해를 취하기 마련이다. 이론적 교리적으로는 인정하더라도 실천적으로는 부인하는 영적 좀팽이들이 많다.

 
 

여러 부류의 기적중지론자들

 

이처럼 기적중지론자 중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 외의 기적적이고 역동적인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골수 기적중지론자가 있는가 하면 사역을 위한 신비적 체험은 인정하지만 구체적 은사인 방언이나 예언은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기적중지론자 중에서는 ‘예언의 은사’나 쓰러지는 것과 같은 ‘신비적 현상’에 대해서는 다소 관대하지만 방언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일부 극단주의자들 외에, 방언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아직도 예언의 은사나 쓰러지는 것과 같은 신비적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결국은 ‘경험적 주장’에 불과하다.

1980년대 말만 해도 교회에서 북 치고 기타 치면서 부르는 찬양과 경배를 ‘무당굿’이나 ‘광란’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는 교회가 오히려 이상한 교회가 될 정도로 이런 형태의 찬양과 경배가 보편화 되었다. 그렇게 비판의 기치를 높이 들던 사람들도 이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되어버렸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방언을 하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은사적 교회는 물론 전통적 교회에도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극소수를 제외하고, 방언 갖고 시비 거는 사람들은 드물다.

 

필자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나 신비적 현상도 조만간 한국 교회의 보편적 사역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찬양과 경배에 익숙한 젊은층은 물론 많은 신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듣기나 예언 및 신비적 현상은 보편적 경험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중지론은 ‘사이비 신학’이다.

 

왜 필자가 기적중지론을 사이비 신학, 거짓 신학이라고 부르는가?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 받는다 것과 같은 일차적이고 원론적 교리가 다르면 이단이다. 그러나 구원론이나 종말론과 같은 이차적이고 부차적 교리는 복음주의 내에서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성경 기록이 모호하거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적의 지속성 여부는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이 틀릴 수 밖에 없다. 틀린 쪽은 사이비 신학이자 거짓 신학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은 틀린 신학이므로 당연히 사이비 신학이자 거짓 신학이므로 교회를 위해서도 진작 추방되었어야 할 영적 적폐이다.

 

성경에도 있고 교회 시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는 기적이 교회 시대에 중지되었다는 주장만큼 사이비 신학이자 거짓 신학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거짓 신학을 가진 자들이 오히려 ‘기적이 교회 시대에도 지속된다’는 바른 신학을 가진 자들을 거짓이나 사이비로 몰고 있으니 교회가 제대로 성장하겠는가?

 

오늘날 기적중지론이 대세가 된 유럽 교회는 공동화(空洞化)된 지 이미 오래이고 미국의 기적중지론적 교회들도 모두 쇠락하고 있다. 이들에게 신학이 없고 학문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교리와 이성을 중시하면서 죄와 마귀를 이기는 초자연적 능력을 무시하니까 결국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마귀에게 집어삼킨 것이다.

 

한편, 기적계속론을 채택하는 교회들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다음은 1960년대 말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주류 교단들이 어떻게 쇠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1968년→1994년→2011년 (단위 : 만 명)

• 남침례교. 미세한 감소
• 연합감리교(UMC). 1100→840→774
• 미국장로교(PCUSA). 420→370→277
• 성공회. 340→250→200

 

『기독교백과사전, 2001』의 편찬자인 데이빗 배렛에 의하면, 2007년 현재, 전 세계 개신교 인구를 11억 6174만 명으로 추정하면서 이를 천주교를 포함하여 6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여기서 천주교 통계는 생략한다.)

 

•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Independents). 4억3767만 명
• 전통적 개신교 교단그룹(Protestants). 3억8581만 명.
•  러시아·희랍 정교회그룹(Orthodox). 2억2048만 명
• 영국성공회 그룹(Anglican). 8263만 명
• 기타 소수그룹(marginal Christians). 3513만 명
(소계. 7억2405만 명)

 

20세기 초에 방언 운동으로 시작된 은사적 독립교회는 겨우 100년이 되었지만 500년이 된 전통적 개신교 교단 그룹을 숫적으로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을 제외한 4개 그룹의 전체 성도 중, 은사적 성도를 10%만 잡아도 7240만 명이고 약 30%로 추정하면 2억 1721만 명이다.

 

이를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과 합하면 전 세계의 은사적 성도는 6억5488만 명으로서 전체의 56%에 육박하는데 계속 증가일로에 있다. 은사적 독립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이슬람교 증가율을 능가하는 유일한 기독교 집단이라고 배렛은 말한다.

 

한국 교회도 1990년 이래로 성장이 답보상태에 있는데 그나마 기적계속론(Continuationism. 은사지속론)의 교회들이 없었다면 심각한 쇠락을 맛보았을 것이다. 2015년 현재,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2005년에 비해 다소 증가한 967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중에서 이단들이 약 150~250만 명 정도 포함된 것으로 가정할 때 실제 개신교 인구는 최소 700만 명에서 최대 8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신자들이 70%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철저하게 비은사적 신자는 30% 정도에 불과한 소수이다. 그런데 이들이 언론이나 글을 통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문제이다.

 

이중에서도 성령 운동에서 시작된 현대의 찬양과 경배를 부르고, 구역 예배를 드리고, 중보기도를 하는 신자를 제외하면 순수한 비은사적 성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한국 교회는 신자 전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은사적 교회, 은사적 성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사이비 신학에 집착하여, 전체 숲은 보지 못하고 개별 나무만 보면서 아직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은사 운동을 폄하하고 대적하고 있다.

 

 

기적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들의 잘못된 주장과는 달리 기적은 지금도 계속된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기적행하는 은사’가 계속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기적계속론자(Continuationist)라고 한다.

 

- 기적의 계속성을 주장한 교부들

순교자 저스틴(100-165)
이레니우스(130-200)
오리겐(185-254)
히포의 어거스틴(354-430)(후기)
 

 

- 현대의 기적계속론자들

  (외국 : 영어 성[性] 알파벳 순)

 

학자가 아닌 수많은 현장 은사 사역자들을 제외하고도 은사사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대천덕(예수원.『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성령 세례』 저자).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Authentic Fire[진짜 불]). 미국 펜사콜라 부흥 운동의 주역으로서 존 맥아더의 말도 안 되는『이상한 불』(Strange Fire)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윌리엄 데알테가(William DeArteaga. 『성령을 소멸하는 자들』저자).

역사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성령을 소멸해 왔는가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대표적 기적중지론자인 행크 해너그라프와 존 맥아더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잭 디어(Jack Deere. 전 달라스신학교 교수.  『놀라운 성령의 은사』, 『놀라운 예언의 은사』). 대표적 기적중지론자였다가 기적계속론자로 변한 그는 이 2권의 책에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적극 변호한다.

하워드 어빈(Howard Ervin. 미국 오랄로버츠 신대원 교수. Conversion-Initiation-Baptism[회심-시작-세례]). 서철원 등이 추종하는 제임스 던(James Dunn)의 잘못된 성령 세례관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고든 피(Gordon Fee. 캐나다 리젠트대학 교수. 『성령: 하나님의 능력 주시는 임재(상•하)』, 『성령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바울,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저자). 고린도전서 주석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그는 ‘기적행하는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적극 변호한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미국 덴버신대원 교수. 『조직신학』,『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저자). 특히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서 리차드 개핀의 기적중지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그의 『조직 신학』은 복수의 예장 교단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잭 훼이포드(Jack Hayford. “영광의 주님 찬양하세”작사. 킹스 대학교 총장). 축사와 음성듣기를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크레이그 키너(Craig S. Keener. Miracles : The Credibility of the New testament Accounts). 기적중지론에 대한 체계적 반론은 물론 수년 동안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기적을 실제로 체험한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도 담고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loyd-Jones). 기적행하는 은사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사역을 위한 성령의 능력-설교, 쓰러짐, 기쁨 체험 등-을 인정했다.

존 파이퍼 (John Piper. Desiring God.org 미국 베들레헴침례교회). 기적행하는 모든 은사 및 예언의 은사를 적극 변호한다. 그는 웨인 그루뎀이나 마크 드리스콜과 더불어, 칼뱅주의의 ‘5대 핵심교리’는 수용하지만 교회 시대의 기적은 인정하는 ‘신 칼뱅주의자’(New Calvinist)이다.

번 포이트리스(Vern Poythress. 미국 웨스트민스터신대원 교수). 성령의 은사 및 예언의 은사를 변호한다.

존 루스벤(Jon Ruthven. 버지니아 리젠트신학교 교수 On the Cessationism of the Charismata). 벤자민 워필드의 『가짜 기적』을 가장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샘 스톰즈(Sam Storms. 미국 브리지웨이교회. 미국 복음주의신학회 대표). 기적행하는 모든 은사 및 예언의 은사 적극 변호한다.

막스 터너(Max Turner. The Holy Spirit and Spiritual Gifts[성령과 은사] 저자). 영국의 신학자로서 방언 및 예언의 은사를 적극 변호하며 벤자민 워필드의 『가짜 기적』을 비판한다. 김동수(평택대 교수), 이한수(총신대 교수)의 스승이다.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 버지니아 리젠트신학교 교수. Renewal Theology I. II. III). 개혁신학의 기초 위에 열린 자세로 기적행하는 모든 은사를 성경적, 신학적으로 변호한다. 한국의 많은 오순절  교단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기적계속론자-한국 : 가나다 순)

 

 (신학자)

김동수(평택대 교수. 『신약이 말하는 방언』,『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번역]). 방언 및 예언의 은사를 적극 변호한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 『영적 분별』 저자). 방언, 신유 및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이고 유보적이다.

배본철(성결대 교수.『성령 보고서』 저자). 기적행하는 은사를 변호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이고 유보적이다.

안영복(전 고신대 교수. 『성령론의 바른 이해』 저자). 총신대 차영배 교수의 견해에 적극 동조하다가 고신 교단에서 배척되었다.

이한수(총신대 교수. 『그리스도인과 성령』막스 터너와 공저). 기적행하는 모든 은사를 변호하고 벤자민 워필드의 『가짜 기적』을 비판한다.

차영배(전 총신대 교수. 『성령론-구원론 부교재』저자). 기적행하는 구체적 은사 보다는 사도행전적 성령의 외적 역사를 모두 인정한다.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존 스토트 및 리차드 개핀 등의 ‘오순절 성령강림 단회설’을 비판한다.

 

(목회자, 사역자 및 선교사)

 

구요한(「글로리아타임스」.「글로리아영성센터」. 『기적의 은사를 구하라』저자). 방언, 신유, 예언 및 축사를 강조하고 신비적 현상을 변호하는 은사 사역자이자 언론인으로서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의 적극 활용, 전파 및 변호에 앞장서고 있다.

김성곤(「두날개선교회」). 예장 합동 소속으로 안팎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공개적으로 성령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김하중(「온누리교회」 장로. 『하나님의 대사 1,2,3』 저자). 외교관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현장에 적용한 사례를 책으로 출판했다.

손기철(「온누리교회」 장로. 『고맙습니다, 성령님』등의 저자). 신유 사역자로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인정한다.

여주봉(「포도나무교회」.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저자).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신비적 경험을 인정한다.

이용규(『내려 놓음』, 『더 내려 놓음』 저자).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예언을 인정한다.

정필도(부산 「수영로교회」 원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방언 신유와 축사를 한국 교회에 대중화시켰다.

하용조(「온누리교회」 설립자). 장로교이면서도 오순절 교회 보다 더 진하게 각종 성령운동을 펼쳐나갔다.

 

 (단체)

예수전도단(YWAM).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선교하는 단체이다.

 


- 신비적 현상들-쓰러짐, 진동, 웃음 등-을 경험하고 변호한 사람들

 

조나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미국 제1차 대각성운동 지도자.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의 독특한 증거들』(The Distinguished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 first printed 1741,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7).『종교적 감정론』등). 부흥 기간 동안 일어난 각종 신비적 영적 현상들-쓰러짐 등-을 가장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감리교 창시자). 사역 기간 동안 사람들이 쓰러져서 은혜 받고 변화 받는 현상들이 수시로 일어났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미국 제1차 대각성 운동 지도자). 웨슬리의 집회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자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이후 자신의 집회에서도 사람들이 쓰러지고 울부짖는 현상들이 수시로 일어나자 생각을 바꾸었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 미국 제2차 대각성 지도자). 교회사에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난 것을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의 집회에서 동일한 현상들이 일어나자 생각을 바꾸었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loyd-Jones. 웨스트민스터 채플. 『부흥』, 『성령 세례』저자). 유럽의 여러 영적 부흥 기간 동안 일어난 영적 현상들-쓰러짐 등-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빈슨 사이넌(Vinson Synan. 버지니아 리젠트대학 학장. 저서 : In the Latter Days[20세기 성령운동] 저자).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회사 전문가.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방언과 같은 은사는 물론 쓰러짐, 진동 등의 영적 현상들이 다반사로 일어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쓰러지는 현상과 그에 동반되는 현상들은 교회사를 통해 유명한 사역자들의 집회에서 자주 일어난 현상들이자 위대한 칼뱅주의 신학자인 조나선 에드워즈나 뛰어난 강해설교가인 마틴 로이드-존스도 적극적으로 변호한 현상들이다. 그런데 교회사나 영적 경험에 무지한 자들은 이런 현상들을 ‘극단적 신비주의’, ‘빈야드 현상’이나 ‘신사도 현상’ 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참고 자료 :

-“쓰러지는 현상 변호” 『글로리아타임스』홈피 우측 배너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22&view_type=sm

-“거룩한 웃음 변호.” 『글로리아타임스』홈피 우측 배너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22&view_type=sm

 

 

왜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이 아직도 성행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회사에서, 기적행하는 은사를 인정하고 사역에 잘 적용한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 그런데 왜 기적중지론자들은 성령 모독죄나 성령 소멸죄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들이 의의 일꾼인 양 착각하고 있는가?

 

 

1. 칼뱅의 잘못된 영향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초기에는 기적중지론자였다가 나중에 자신이 신유와 축사를 경험한 후 다소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개신교 기적중지론의 기초를 놓은 사람은 장 칼뱅이다. 그는 로마 천주교나 급진파들의 기적론에 대항하기 위해 기적중지론 신학의 기초를 쌓았다.

 

그 결과 칼뱅의 추종자들인 3대 개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및 벤자민 워필드는 물론 절대다수의 칼뱅주의자들이 칼뱅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거나 악화시켜왔으며 이들이 각 신학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기적중지론을 확산시켜왔다. 한국의 기적중지론 신학자들 절대 다수도 이들의 잘못된 신학 영향을 받으면서 각계각층에 포진하여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

 

 

2. 나쁜 경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겅 보고 놀란다.”

 

한국의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많지만 정부에서 기득권 유지와 오남용을 방지 하기 위한 각종 과잉규제로 옭아매기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교계도 마찬가지다. 종교개혁 당시 칼뱅은 로마 천주교와 일부 급진적 좌파들이 기적을 오남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당시까지 존재해 왔던 전기(前期) 어거스틴, 크리소스톰, 그레고리 대제 및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적중지론을 체계화하고 대중화하여 기적중지론의 기초를 다졌다. 이것이 당시로서는 로마 천주교나 급진파를 대적하는 강력한 약이 되었겠지만 나중에는 부메랑이 되어 칼뱅이 세운 개신교를 무너뜨리는 독배가 되고 만 것이다.

 

칼뱅의 기적중지론의 요지는 이렇다.

 

“교리나 행동거지가 옳지 못한 자가 행하는 기적은 사탄의 소행이다”(전기 어거스틴의 잘못된 주장 수용).

“기적의 기능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하나님의 정당한 대표이며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과 계시를 입증하는 것이다”(로마 가톨릭의 기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토머스 아퀴너스가 개발한 기적중지론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은사운동가들의 교리적 오류(?)를 들먹거리지만 실제로는 은사자들의 윤리도덕적 해이를 꼬집어서 은사운동을 비판하고 대적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그렇다면 행동거지가 옳지 못한 개혁주의자들의 개혁신학도 사탄의 소행이나 가짜인가?

 

이런 짓은 ‘x묻은 개가 x묻은 개를 탓하는 격’이다. 바른 교리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은 스캔들을 일으키는가? 한국 교회의 부정과 비리가 은사운동가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는가?

 

10억 교단장 선거, 교회 세습, 논문 표절과 복사, 상습적 성추행, 공금횡령 등으로 보자면 비은사적 교회 출신들이 숫자가 많기 때문에 더 많다. 비판자들은 이들의 비리는 개인적 비리로 치부하면서 은사자들의 비리는 단체적 비리로 매도한다. 자기들이 저지르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저지르면 불륜인가?

 

물론 은사자들이 신학적이고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은사를 오남용 하는 사례는 있지만 이것은 기존 교단 총회나 노회 및 교회의 임직원의 횡포나 비리와 비교하면 막상막하라고 할 수 있다. 교리 바르고 전통 바르다고 자동적으로 신앙성숙의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은사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신앙성숙의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신앙성숙의 열매는 두 진영 모두 통회자복하고 회개해야 할 숙제이다.

 

 

3. 무경험

 

자유주의자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의 신적 영감성을 부인하고 성경의 기적을 부인한다. 그들은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는 기적도 당연히 부인한다. 한편 기적중지론적 보수주의자는 성경의 기적은 인정하지만 교회 시대의 기적은 부인한다. 자기들에게 건전한 영적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왜 성경을 경험으로 해석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자기들은 ‘왜 무경험과 나쁜 경험으로 성경을 해석하는가?’ 기적중지론자들은 은사운동가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들은 무경험에 의한 인간의 논리나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 잭 디어(전 달라스신대원 교수), 박형룡(전 총신대 교수), 박윤선(전 총신대 교수), 김의환(전 총신대 교수) 등….

 

이들도 모두 처음에는 기적중지론자였다가 이런 저런 형태의 기적을 직접 경험한 후 기적계속론자가 되었다. 기적중지론이란 사이비 신학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확신(?)하다가 자신이 직접 기적을 경험해 보면 기적중지론이 얼마나 실체가 없는 허황한 신학인가를 금방 알게 된다.

 

 

요즈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도 사람마다 종류가 다르고 정도가 다르다. 그래서 자기가 경험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일례로, 요즈음 한국 교계에서는 방언 갖고 비판적인 사람이 드물다. 정이철이나 이창모 같은 자가 아무리 방언을 폄하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꺼덕도 하지 않는다. 방언을 하는 한국 신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정이철도 신유에 대해서는 별 비판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교계에서는 방언이나 신유는 인정해도 음성 듣기나 예언, 축사나 영적 전쟁 및 신비적 영적 현상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김세윤(풀러신학교 교수), 김재성(국제신대 교수), 박영돈(고신대 교수), 이승구(합신대 교수), 정성욱(미국 덴버신학대 교수), 최병규(고신총회 이대위) 등이 대표적인 비판자들이다. 자기들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은 현장 사역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

 

결국 비판자들은 표면적으로는 거창한 신학을 내세우지만 자기들 경험 수준에서 기적행하는 은사를 비판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경험한 것은 수용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과 정죄를 눈길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성령을 모독하거나 소멸하면서도 영적으로 무지하여 자기들이 마치 성경의 수호자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구속사적 성경 해석과 모범적 성경 해석

 

기적중지론자들이 애용하는 성경해석 방법 중의 하나는 구속사적 성경 해석(Redemptive-historical interpretation)이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란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의 장점은 성경 기록을 신자 개인이 본 받아야 할 단순한 모범이 아니라 구원 계시 전개의 역사적 관점에서 구원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이를 오남용하여 기적중지론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구속사적 해석에 젖어있는 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구속사적으로 독특하고 단회적이고 비반복적인 사건이지 개인이 본 받아야 할 경험과 모범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성경 인물이나 사도들이 기적을 경험하고 행한 것은 성경 기록을 위해 구속사적으로 획기적이고 독특하고 단회적이고 비반복적인 사역이지 교회 시대의 신자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적중지론자들이 이런 엉터리 해석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요즈음 정이철이 시도 때도 없이 써먹는 해석 방법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속사적인 면도 있지만 동시에 신자가 본 받아야 할 모범을 위해 기록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그러므로 성경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어느 하나를 무시하고 다른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절름발이가 된다. 설교에서는 구속사적 해석과 모범적 해석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유독 성경의 기적 해석에서 기적중지론자들이 구속사적 해석을 악용하고 있다.

 

구속사적 해석은 하나님이 사람에 주신 모방 본능을 부인하는 인간의 논리에 불과하다. 대학생선교회(CCC)가 누가복음을 바탕으로 제작한 『예수』(Jesus)영화를 본 제3세계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예수님이 하신 대로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명령하여 병도 낫게 하고 귀신도 쫓아낸다.

 

예수를 믿는 어린 아이에게 눈을 감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고 질문하여-예를 들어, ‘예수님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라고 하면 잠시 후 예수님도 보고 음성도 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자기들의 무경험이나 반대파들의 나쁜 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기적중지론에 매여 마음문을 열지 않으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자료 참조 :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기적중지론(1)-성경은 대부분이 신자의 ‘본보기’를 위해 기록된 책이다.”『글로리아타임스』(2016.04.23).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21

 

‘기적이 증거하는 성경 기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 없다’?

 

그렇다면 복음의 불모지에 가서 전도할 때, ‘이것은 기적이 증거한 성경 말씀이므로 믿으라’고 한다고 사람들이 금방 회심하는가, 아니면 초자연적 능력으로 그들의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날 때 더 쉽게 회심하는가? 당연히 후자이다.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자 중에는 헬라어 신약 성경을 통째로 암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모범인 예수는 강조하지만 구세주 예수는 믿지 않는다. 기적이 증거한 성경 말씀을 암기할 정도로 사랑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그가 왜 거듭나지 못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읽는 자에게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일반 종교 서적이나 다름없다.

 

성경 말씀만을 통해서 믿는 사람도 있지만 기적을 통해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기적을 행하면서 말씀을 전했는데, 교회 시대의 신자들은 말씀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나는 예수님이나 사도들 보다 더 잘났다. 그들은 말씀과 기적으로 사역했지만 나는 말씀만으로 사역할 수 있다’는 주장 밖에 되지 않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 4:23-24).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

 

“내(사도 바울)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기적중지론자들은 ‘기적이 기록된 성경 말씀을 증거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적은 필요 없다’는 헛된 주장을 한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오히려 거꾸로 성경이 기적을 증거한다. 성경이 없으면 사도 시대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현대의 기적을 부인하고 비판하다가도 자기가 한번 경험하면 신기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런데 간절히 구해도 받지 못하면 은사 대적자로 돌변한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더러 있다. 정이철(「바른믿음」)이 대표적인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도 한때 은사를 간절히 구하여 신유는 경험했지만 다른 은사를 받지 못했고, 자기 교회가 모 은사 사역단체로 인해 초토화되자 은사운동 대적자로 돌변했다고 한다. 정이철이 운영하는「바른 믿음」에는 지금 이런 무리들이 모여서 지속적으로 은사에 비판적 글들을 써대고 있다. 이런 것도 모두 무경험이나 나쁜 경험으로 인한 것이다.

 

더군다나 기적중지론자들이 선호하는 서신서에서도 ‘기적행하는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후 12:3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기적행하는 은사들)을 (간절히, 시기할 정도로)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오늘날, 성령운동가들이 신학적이고 신앙적으로 더 잘나서 초자연적 은사를 받아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말씀 대로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여서 받는 경우가 더 많다. 필자도 오랫동안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여서 모든 은사를 다 받았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뭐라고 항변하는가?

 

‘성령의 은사는 성령이 하나님이 뜻대로 나누어주시는 것이다’(고전 12:11)면서 구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한다. 성령은 누구에게 뜻대로 나누어주시는가? 드물게 가만히 있는 자에게 나누어주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뜻대로 나누어주신다(고전 12:31; 14:1).

 

그런데 서철원(전 총신대 교수)같은 골수 기적중지론자나 박영돈 같은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신자들이 (초자연적)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여서 받으면 ‘조건(들)을 통해 받는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성경이 신자들에게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조건 이행’으로 잘못 이해한다.

 

신자들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여서 받는 것도 ‘조건 이행’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입만 벌리고 있어야 하는가? 성경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라면,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것도 ‘조건 이행’이고,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읽고 신앙 성숙하려고 노력하는 ‘조건 이행’이다. 이들은 신자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 은혜요 성경적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그들이 신학 공부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셨는가?

그들이 학위 취득하려고 별 노력을 다하는 것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고 신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여 기적행하는 은사들을 구하여서 받는 것은 ‘조건 이행’인가? 제발 좀 헛된 착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기적은 성경 시대는 물론 교회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된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은사적 교회의 교세는 확장되고 비은사적 교회의 교세는 쪼그라드는 것이다.

 

 

한국의 예장 합동, 예장 통합 예장 대신(백석) 같은 대형 교단은 은사사역에 대해 찬반론이 혼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예장 통합의 온누리교회, 예장 합동의 풍성한교회(두날개선교회) 등의 일부 대형교회들이 담대하게 은사사역을 밀고 나가고 많은 교회들도 따르기 때문에 그나마 대형 교단의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이들 교단에서 은사적 교회를 제하여 버린다면 교세가 군소교단으로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장 고신이나 예장 합신처럼 박영돈(고신대 조직신학 교수)이나 이승구(합신대 조직신학 교수)를 앞세워서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면서 수시로 성령을 소멸하는 한 이들은 군소교단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미래 성장도 불투명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처럼, 현대의 기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무경험이나 상대방의 나쁜 경험을 정당화 하거나,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박해한 종교지도자들처럼 기득권을 유지하여 교인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기적중지론이란 사이비 신학이자 거짓 신학에 집착하는 것에 불과하다.

 

 

4. 은사의 오남용 
 

 

일부 사역자들이 기적행하는 은사를 오남용하기 때문에 은사 사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은사 사역자들 중에서 기본 인격이나 교리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은사 사용의 방법이지 은사 자체가 아니다.

한때 운전면허증 취득을 쉽게 하자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고 해서 이후 운전면허 취득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 어떤 것의 오남용의 대안은 바른 사용이나 사용 요건의 강화이지 철폐가 아니다. 그런데 기적중지론자들은 은사자들의 오남용을 이유로 기적행하는 은사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그렇다면 직위를 오남용하는 교단 총회장,노회장, 당회장, 목사나 장로의 직분도 없애자는 소리는 왜 하지 않는가? 오히려 무교회주의자들을 비판하지 않는가? 기적행하는 은사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거나 오남용을 이유로 부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유익하고 효율적인 것 중에 위험하거나 오남용의 소지가 없는 것이 없다. 전기, 가스, 자동차 등은 삶의 필수가 될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사고도 많이 나고 큰 사고 한 번 나면 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도 따라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 없애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人災) 라고 한다.


초자연적 은사 사역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역자들 중에 성경적이고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함부로 휘두르고 말썽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초자연적 은사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위해서도 심판의 자리를 마련해 두셨다. 그러나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은 한 적이 없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또한 아무리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사역한다 해도, 인간의 죄성과 이를 타고 역사하는 마귀로 인해 하나님의 사역을 100%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은사사역자나 비(非) 은사사역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은사 사역의 근원이 성령인지 악령인지는 '분별의 문제'이지 '사용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은사 사역자에게 성령과 마귀의 '양 신'이 역사한다고 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가 없으면 영 분별의 능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 짓을 하면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실제로 더 많다.

 


5. 말씀과 은사의 분리

 

비 은사주의들은 은사주의자들에 대해 "왜 말씀 중심으로 신앙 생활 하지 않고 은사 중심, 경험 중심으로 신앙 생활 하느냐?"고 반문한다. 도대체 말씀 중심의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말씀 중심이면 찬양, 기도, 봉사, 헌금, 전도도 하지 않는가? 이런 행동들은 왜 하는가? 성경 말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행동으로 하는 것 아닌가?
 

은사 사역도 마찬가지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 인물들이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교회 시대의 신자들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은사 사역은 말씀 중심의 신앙 생활과 분리를 하는가? 비 은사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은 말씀 중심이고 자기들이 하지 않는 은사 사역은 말씀 중심이 아닌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는 은사 사역도 지극히 '말씀 중심의 신앙 생활'이다. 성경 말씀에 있는 대로 하기 때문이다. 비 은사자들은 제발 좀 자기 중심적인 착각과 편견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경험도 그렇다. 우리의 신앙은 지성, 감성 및 의지의 전인격적 신앙이다. 경험은 감성적 측면에 해당된다.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하나님 경험'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경험이 아니라 성경 인물이 경험해 왔고 성령의 역사에 의해 교회사를 통해서도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한 경험이다. 물론 이런 경험이 100% 순수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 나라 일에 열심을 내고 하나님을 인격적, 개인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성품의 열매는 천천히 따라온다.  바른 교리 배우고 고백한다고 금방 그 사람이 성품이 변하고 성인이 되는가? 마찬가지다. 아무리 강렬한 하나님 경험을 해도 성품의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진다.

 

인간의 이성, 감성 및 의지는 모두 타락한 이성, 감성 및 의지다. 감성과 경험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이성도 타락했기 때문에 오류가 많다. 기적중지론이 타락한 이성의 대표적인 오류이다. 그러므로 경험에 다소 오류와 과장이 있다고 부인한다면 이성의 오류인 여러 가지 신학, 특히 기적중지론 신학이야 말로 당장 폐기되어야 할 신학이다.

 

은사 사역자들이 교만하고 잘 난 체한다고?
요즈음 인터넷과 지식의 발달로 인해 성경 공부 좀 하고 신학 책 좀 봤다고 정규 신학 과정을 거친 목사도 가르치려는 꼴 불견의 평신도가 얼마나 많이 있는 줄 아는가? 은사만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도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가?

 

그렇다면 지식은 교만해도 괜찮고 은사만 교만해서 안 되는가? 사람이 덜 되면 지식이든 은사든 독이 되고 사람이 제대로 되며 이 둘 모두가 약이 된다. 우리는 은사 사역을 무비판적으로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은사 사역에도 수정되고 개선될 점이 많다. 그러나 은사의 오남용이 은사를 부인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 은사자들은 은사 사역자들의 '성품의 열매'를 말하기 전에 '너부터' 좀 잘 하기 바란다.

 

 

6. 기적중지론은 교단의 하수인인 ‘어용 언론’이자 ‘어용 신학’

 

상당수의 학자들은 기적중지론적 견해를 행여라도 비판하면 당장 교단 신학교에서 잘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기적중지론이란 ‘어용 신학’을 변호할 수도 있고, 기적중지론 언론들은 후원금을 받기 위해 후원자들의 식성에 맞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릴 수도 있고, 정이철이나 일부 과격분자처럼 신학적이고 영적으로 무지하여 자기 의에 차서 현대의 기적을 대적하는 것은 물론 ‘영성’, ‘중보기도’, ‘기름부음’ 같은 단어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헛된 열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파는 자들이 아니면 영적으로 게으른 자들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영적 제4차 혁명의 시대에 영적 제1차 혁명의 이론을 갖고 와서 떠들어대는가? 기적중지론으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쇠퇴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이 전 세계를 통해 하시는 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기적 행하는 은사를 비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때로는 글을 강하게 쓰니까 좀 살살 하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적중지론자들은 지나치게 완악하고 기득권이나 이권에 개입된 거머리 같은 자들이고 입에 달린 말이 ‘이단’이나 ‘이단성’이기 때문에 살살 하면 오히려 얕보고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도 강한 자에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는 그들처럼 걸핏하면 ‘이단’이나 ‘이단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단은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 간다는 소리 아닌가?

 

오히려 성령의 사역을 ‘귀신 사역’이라 정죄하는 자들이 금생이나 내세에도 용서 받지 못하는 성령 모독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예언이나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는 자들이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다.

 

 

7. 양 도적질?[sheep stealing]

 

전세계적으로 은사운동 교회들이 급성장하는 주된 이유는 그중 70~80%가 전통적 교단에서 수평 이동한 ‘전입 신자들’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은사적 교회는 양무리 단속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예수님 당시에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자 종교 기득권자들은 기득권 유지와 시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물론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역을 한 것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다.

“이는 그(빌라도)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마 27:18).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행 5:17-18).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성령 운동이나 은사 운동으로 인해 심각한 교인 이탈을 당한 비(非)은사운동파들은 예수님처럼 문자적으로 죽일 수는 없으니까 온갖 잘못된 신학과 조작된 사실을 근거로 주도자들을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여 그나마 남은 교인들의 이탈이라도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적중지론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문자 세대인 서양의 신학자들이 만들어 낸 사이비 신학이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는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유럽이나 북미 중심의 북반구에서 경험과 직관을 중시하는 아시아·남미·아프리카의 남반구로 축이 이동되고 있다.

 

더군다나 21세기는 문자 보다 영상, 이성 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세대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젊은층이나 아시아·남미·아프리카 인들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기적중지론은 허구와 탁상공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전체적인 추세를 외면한 채 사이비 신학인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는 자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면 자기들의 더러운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거나 소멸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잘못된 신학과 자기 의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26:14-15).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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