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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과새사람⑨] 지•정•의의 신앙지성적 바른 교리, 감정적 바른 경험, 의지적 바른 행위의 신앙이 필요하다
구요한 목사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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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0  19: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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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과새사람⑨]
 

지·정·의의 신앙
 

-지성적 바른 교리, 감성적 바른 경험, 의지적 바른 행위의 신앙이 필요하다-

 

   
 

“이제는 인성(人性)이다.”
“인성이 경쟁력이다.”
“스펙이나 재능 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
“인성 갖춘 행복한 삶을 살자.”
“인성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인성 갖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자.”

 

해방 70년 만에,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선진국 모임인 OECD 국가 중에서 자살율 1위, 이혼율 2위(또는 3위)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소득 양극화, 고용 불안, 노후 불안, 살인적인 경쟁으로 등으로 인해 국민 행복도는 꼴찌 수준이고, 국가 청렴도는 하위급이고, 국민들의 준법이나 윤리도덕은 수준 미달이고, 가진 자의 불법과 갑질 수준은 도를 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즈음하여, 세상에서 식견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위의 구호처럼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도 인성교육진흥법(2015.7.1일 시행)을 통해 인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진흥법은 인성교육을 이렇게 정의한다.

 

1.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2. "핵심 가치·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3. "핵심 역량"이란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을 말한다.

 

물론 이 법은 초·중등학교 학생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인성 교육은 초·중등학생은 물론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 계층에 필요하다.

 

 

기독교의 인성

 

 

세상에서 말하는 인성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음 사전).

 

1.사람의 성품

2.[심리]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思考)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

3.[기독] 예수가 지닌 사람의 속성

 

즉 세상에서 말하는 인성은, 위의 1번처럼  사람의 됨됨이, 사람의 인품(人品)이나 성품(性品)을 말한다. 성격(personality)과 성품(character)은 구분된다. 성격은 외향성이나 내향성 같은 성향이지만 성품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한다. 우리는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사람 됨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고난 기질이나 개성을 말한다. 그러나 성품은 성격과 상관없는 사람 됨됨이, 사람의 인품(人品)을 말한다.

 

인성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성품, 성령의 열매, 신의 성품, 8복 등을 말한다. 필자는 여기서는 성령의 열매, 신의 성품 또는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다양한 표현 보다는 중립적 표현인 ‘인성’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개신교 인성 개발은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유교의 성선설(性善說)이나 ‘사람은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는 심리학에 입각한 세상의 인성 교육은 좋은 면을 강화하거나 덧입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설을 주장하는 기독교 인성 개발은 그리스도가 이미 완성하신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회개와 믿음을 통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만 직접적 목적은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타락으로 인해 훼손된 거룩과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이처럼 성경은 신자의 인성을 강조하며 회개와 믿음의 결과 맺어지는 성품의 열매를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1:4-10).

 

 

그러면 성경 말씀대로 사는 신자들의 인성 수준이 세상 수준 보다 높은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개신교는 2015년 기준으로 숫적으로는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1등을 탈환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종교 선호도는 여전히 꼴찌일 것이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교회 생활-교회 출석, 새벽기도, 전도 등-은 잘 하지만 불법을 행하여서 교도소에 갇힌 교회 중직자들.

-교계에 만연한 거짓과 성추행이나 성 폭행, 논문 표절이나 설교 복사, 공금 횡령 사태들.

-청소년 사역의 선두주자였지만 상습적 성 폭행으로 추락한 목회자.

-말 안 듣는 자녀를 폭행하여 숨지게 한 신학자.

-수십 억원의 공금을 유용하여 감옥살이한 목사, 수십 억원의 공금을 도박장에서 탕진하여 감옥살이 하는 목사.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면서 사역자 간에 시기와 질투로 서로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

-불법적으로 수억의 돈을 써가면서 총회장이나 대표직 감투 쓰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

-하나님 일에 열심이지만 부부 관계나 부모 자녀 관계 및 기타 인간 관계가 엉망인 사람들.

-경쟁과 폭력과 왕따가 심각한 공립 학교 생활.

 

우리 모두 용서 받는 죄인이므로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는 정도로 심해도 너무나 심한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운동가들의 열매 없음을 비판하지만 심각하고 죄질이 나쁜 짓은 비성령운동가들이 더 심하다.

 

 

구원은 타락으로 훼손된 거룩과 사랑의 회복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인데 왜 교회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지성, 감성, 의지의 전인격적 신앙

 

우리의 신앙은 지성, 감성, 의지의 전인격적 신앙이다. 지적으로 알고, 감정적으로 감동받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전인격적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이나 교회사적으로 볼 때, 특정한 한 기능이 우세한 경우가 있다. 한 가지만 우세하면 신앙은 절름발이가 되게 되어 있다. 한국 교회의 신앙은 지금 지·정·의의 균형을 잃은 심각한 절름발이가 되어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지성적 신앙: 학자적 신앙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500년 전 종교개혁 3총사인 마르틴 루터, 울드리히 즈윙글리 및 장 칼뱅은 지성을 강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바른 교리를 강조했고 이후의 후계자들도 바른 교리와 신앙 고백을 중시하고 바른 교리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때마침 유럽에 불어 닥친 르네상스와 이성주의 및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가들은 이성은 중시하고 감정은 변덕적이고 저급한 것으로 취급했다. 미국의 청교도들 중에서 이성과 의지를 동시에 강조하거나 의지를 이성보다 중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나선 에드워즈처럼 감성-정서-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들의 후계자들은 절대 다수가 이성을 우위에 두는 신앙인들이었다.

 

더군다나 17세기에 접어들어 루터교, 장로교 및 개혁 교회 등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후계자들은 루터나 칼뱅 등이 버린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적 논리학을 재도입하여, 시조들의 주장을 신학화 하고 교리화 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변증법을 통해 그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성경 구절은 뻥튀기고 불리한 구절은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해석법을 견지해 왔다. 그 결과 자기들과 조금만 해석이나 견해가 다르면 비판하거나 심지어는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잘못된 전통이 지금도 한국 교회에 이어져 오고 있다.

 

(장점)

-바른 교리를 강조하고 신앙의 뼈대를 튼튼히 한 장점은 있다.

-성경 공부나 제자 훈련에 힘쓴다.

-사람들의 지적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단점)

-지나치게 교조적이다.

구원에 필수적인 일차적이고 원론적 교리와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교리를 구분하지 않고 자기들과 조금만 다르면 비판하고 대적하면서 이단이나 사이비로 정죄하기를 좋아한다. 자기들은 바른 교리를 수호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편협하고 옹졸한 배타적 교조주의(敎條主義) 때문이다. 교조주의란 원리나 원칙에만 얽매여 융통성이 없는 태도나 그러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교리를 ‘입체적이고 다양한 관점’-예, 4복음서, 열왕기나 역대기의 기록 방식 등-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적인 흑백논리’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중시하다 보니 감정적이고 경험적인 신앙을 경시한다.

그 결과 많이 알지만 행동이 부족하다. 현대의 뇌과학은 이성적이고 지식적으로 많이 알아도 정서적이고 감정적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아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 못한다고 한다. 지식적으로 알지만 정서적 감동이 없으면 샌님이나 문약(文弱)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철학자는 세상을 해석하지만 혁명가는 세상을 바꾼다.”

 

-성경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고 아는 지식을 자기 변화나 사회 변혁에 적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 고백 바르고 전통 바르지만 바른 행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정통(dead orthodoxy)의 교회, 즉 요한계시록의 에베소교회, 사데교회 및 라오디게아 교회를 양산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감성적 신앙 : 경험적 신앙, 축제적 신앙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시 68:3).

 

이성적이고 논리적 신앙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감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운동은 영적 경험과 감정적 고양을 중시한다. 이성적 신앙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감성적 신앙을 비판하지만, 이성적 신앙의 냉랭함과 무기력에 지친 신앙인들이 감성적 신앙의 맛을 보면 열광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이성적 신앙 중심의 전통적 교회의 예배가 행사적 측면이 강한 반면 성령운동의 예배는 축제적 분위기다. 성령운동의 예배는 사람에게 내재한 유희 본능과 즐거움을 충족시켜 준다.

 

 

성령파의 예배는 음악 집회처럼 찬양과 경배를 통해 감정적으로 풍성하게 하고,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듯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에 열광한다. 학술 대회 보다 음악 집회나 스포츠 경기에 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해답이 나올 것이다.

 

 

일부에서는 감성적 성령운동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이성적 신앙의 전통적 교회로 회귀한 한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감성적 신앙을 비판하지만, 실제로 성령운동 교회의 80% 이상이 이성적 신앙에 지친 사람들의 전입으로 인한 성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감성적 신앙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이 숫적으로 볼 때 이성적 신앙을 강조하는 전통적 교단의 교세를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데가르트의 오류 ; 감정, 이성 및 사람의 뇌』(descartes’ Error: Emotioin, Reason and Human Brain)에서, 이성을 제대로 갖추었더라도 정상적 감정 기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주요한 의사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대인 관계나 사회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강준만은 『감정 독재』에서 ‘이성은 기껏해야 감정의 졸(卒)이거나 호위 무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강준만은 분노,슬픔,두려움,즐거움,사랑,놀람,혐오, 부끄러움 등 8명의 가족과 그밖의 여러 식객을 거느리고 있는 감정은 한마디로 말해 ‘행동하려는 충동’ 이라고 말한다. 행동하려는 경향성이 모든 감정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캐나다 신경학자 도널드 칸(Donald Caine)은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정은 행동을 낳는다”고 말했다.

 

미국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인 조나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기독교 감정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 감정론』(On Religious Affections)에서 "진정한 종교는 상당 부분 감정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종교적인 감정이란 그리스도 안의 사랑, 기쁨, 소망,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 죄를 미워하는 마음 등을 말한다.

 

그는 물론 진정한 종교는 감정 이상의 것이지만 감정이 없는 진정한 종교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리적인 지식과 사변만 있고 감정이 없는 사람은 종교라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

 

(장점)

-신앙에 열정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경험적 신앙은 논리적 신앙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재미를 준다.

-감성적 신앙인은 논리나 교리 중심의 이성적 신앙인 보다 사역에 대한 열정과 행동이 앞서기 때문에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한다.

 

(단점)

-교리적 뼈대가 약하여 사이비 가르침에 잘 빠진다.

-감성을 중시하고 이성을 경시하다 보니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

-영적 경험과 감정적 고양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니 영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 되기 쉽다.

 

 

-의지적 신앙 : 스포츠맨적 신앙, 수도사적 신앙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한국 교회는 지금 이성적 신앙과 감성적 신앙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이성적 신앙은 감성적 신앙의 경망스러움을 비판하고 감성적 신앙은 이성적 신앙의 냉랭함을 비판한다. 서로가 서로의 편협한 고정 관념에 갇혀서 양자가 대치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바른 교리와 감정적 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의지적 신앙이다. 의지적 신앙은 성경적 지식이나 영적 경험이 아니라 인성을 다루는 분야이다. 세상 사람들은 개신교의 교리나 감정적 체험에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예수를 믿지 않으니 교리는 무의미한 것이고, 신자들이 누리는 감정적 체험도 다른 방법으로 누리고 있으니, 결국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인성 즉 성품이다. 그래서 정직, 성실, 절제, 배려 등의 인성이 부족한 개신교인을 얕보는 것이다.

 

물론, 인성과 성품은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성과 성품이다. 인성은 곧 예수님이 모습이자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자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신자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마 5:13-16)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아직도 인성의 중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예수 믿으면 구원은 받아놓았으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성공하고 출세하거나, 초자연적 은사를 받고 신령한 체험을 많이 하는 것이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그래서 예배 참석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교회 생활’은 잘 하지만 하나님 앞의 자기 모습이나 이웃에 비치는 자기 모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많다. 또한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목록은 제시하지만 방법론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개신교의 인성 훈련

 

개신교는 인성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성에 대한 성경 공부를 하거나 인성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으면 인성이 개발되는가? 물론 그런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아직도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성 훈련에 대해 설교조차 하는 경우도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성도들이 선호하는 설교의 주제는 은혜, 위로, 축복, 성공, 능력 등이다 반면, 회개, 변화, 성숙과 같은 주제의 설교는 별 인기가 없다. 이는 정치가들이 복지와 일자리 공약은 선호하지만 그에 부수되는 세금 증세는 공약으로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증세 없이 어떻게 복지 혜택을 늘이는가? 이렇게 했다가 국가 부도를 경험한 유럽의 Piiggs(처음의 4개국에서 나중에 6개국으로 확산) 국가들이 반면교사가 되어 한국에서도 무작정 퍼주기는 자제하지만, 요즈음도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퍼주기 공약을 내세우는 철부지 대선 후보자들이 많다.

 

교회도 세상처럼 영적 포퓰리즘에 젖어서 성도들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를 설교하는 목회자는 별로 없다. 성도들에게 독이 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설탕과 사카린 같은 설교만 하고 있고 성도들 또한 당장 달콤하니까 이런 종류의 설교를 선호한다.

 

어느 설교 분석가가 한국 대형 교회 어느 목사에게 질문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주로 제사장적 설교(위로와 소망)입니다. 선지자적 설교(책망과 훈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잘 되지 않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잘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몸에 나쁜 음식이나 식사는 잘 절제하면서 왜 영혼에 나쁜 설탕 같은 설교는 그렇게 선호할까? 몸에 해로운 것은 금방 알지만 영혼에 해로운 것은 금방 분별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는 했지만 인성이 부족한 절름발이 신앙인이 너무 많다. 비록 성공하고 출세는 했지만 내면을 다스리지 못해 급 추락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개신교가 숫자는 제일 많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은 많지만 종교 선호도에서 꼴찌인 것이다.

 

 

*불교, 천주교 및 개신교의 인성 훈련

 

비교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불교나 천주교는 인성 훈련을 어떻게 하는가?

 

불교는 욕망, 분노, 무지의 3독(三毒)이 인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란 인식 아래 3독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8정행’(8가지 바른 행동)을 시행하면서 수행한다. 물론 한국 불교도 타락하여 80% 정도가 기복신앙을 추구하지만, 적어도 수행을 제대로 하는 불자는 평생 동안 인간에게 내재하는 3독을 제거하는 수행을 한다. 그 결과, 오늘날 욕망과 정욕이 극대화된 서양 사람들은 비움의 노하우를 불교로부터 배우고 있다.

 

감정지수(EQ)를 주장한 다니엘 골먼은 물론 서양의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도나 티벳에 가서 비움의 노하우를 전수 받고 와서 현대의 서양인들에게 마음 비움을 가르치고 있다. 그 방법이 단순하고 효과적이어서 오히려 한국의 불자들이 서양 방법을 도입하여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정심(평강)을 누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마음 수련, 단월드 및 템플 스테이에 많은 기독교인들도 참석한다고 한다.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니까 이런 곳에라도 가는 것이다.

 

 

천주교는 일찍이 반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일환으로 이냐시오의 로욜라(1491~1556)를 중심으로 전도, 교리 확충 및 영성훈련을 통해 가톨릭의 부흥을 주도해왔다. 로욜라가 주창한 영성훈련의 핵심은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은 훈련이란 개념이 아직도 없다. 개신교는 아직도 ‘더 많이, 더 많이’(more, more)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보기에 개신교인은 탐욕스럽고 천박한 사람으로 보인다.

 

 

물론 개신교는 한국의 경제 성장기에는 돋보이는 종교였다.

적극적이고 긍정적 사고 방식과 열심으로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수준이 올라가서 ‘성장 보다는 분배’, ‘성공 보다는 인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불교와 천주교는 적어도 이런 훈련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또한 실제로 다양한 인성 훈련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는 아직도 인성 개발에 대한 인식이 약해서인지 교회에서 별로 가르치지도 않고 있다.

 

물론 아직도 건강이나 재정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평신도의 삶은 물론 목회자의 빈익빈 부익부도 심하다. 그러나 이제는 보이는 축복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성(즉 성화)을 동시에 추구하지 않으면 성공조차 제대로 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인성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대통령 자격의 제1순위가 정직이었다.

 

 

필자가 불교나 천주교의 예를 든 것은 그들의 ‘본질’은 틀리지만 ‘방법’은 본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인성의 중요성과 인성 교육의 방법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신앙의 의지적인 면이다.  인성은 지적 가르침이나 감성적 경험으로 어느 정도 개발되지만 제대로 하려면 의지력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이성적 신앙 생활을 강조하는 사람은 사도행전 보다는 교리의 집합체인 서신서를 선호한다. 그러나 서신서는 ‘교리’는 물론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성적 신앙인은 교리 부분은 강조하지만 실천 부분은 무시한다. 그러다 보니 실천은 없는 사변적 교리 논쟁만 일삼는다.

 

한편 감성적 신앙인은 사도행전의 성령의 능력은 강조하지만 표적과 기사를 경험한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관계적 가르침을 강조한 서신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교리적 지식도 약하고, 인간 관계도 별로이고, 윤리도덕 의식도 빈약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서신서는 이성적 신앙인이나 감성적 신앙인 모두에게 필요한 중요한 성경책이다.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서의 전반부는 교리를 강조하고 후반부는 실천을 강조한다. 전반부는 ‘하나님에 대한 서술’(Divine Indicative)이고 후반부는 ‘사람에 대한 명령’(Human imperative)이다. 후반부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이렇게 사역하셨다’(전반). 후반부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되라, 이렇게 하라’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로마서.
전반부(1~11장). 후반부(12장 이후).”그러므로, 형제들아~”(롬 12:1).

-에베소서.
전반부(1~3장). 후반부(4장 이후). “그러므로, 주안에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엡 4:1).

-골로새서
전반부(1~2장). 후반부(3장 이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유감스럽게도, 일반적인 개혁주의 조직신학을 보면 서신서 전반부의 교리적 부분은 지나치게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지만 후반부는 지나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당연히 교리적 지식이 풍부한 만큼 인성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다.

 

 

*인성의 결실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에 비례

 

무엇이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결실을 얻기 마련이다.

지성적 신앙인은 교리와 신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잘 알지만 감성적 경험과 의지적 인성은 취약하다.

감성적 신앙인은 감성과 경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잘 알지만 지성적 교리와 의지적 인성은 취약하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지성적 신앙과 감성적 신앙에는 각자가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결실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지성적 신앙과 감성적 신앙이 의지적 인성의 열매로 연결되지 못하면 사상누각이 되어 버린다. 이성적 신앙은 신앙의 뼈대이고 감성적 신앙이 신앙의 풍요로움이라면 의지적 인성은 신앙의 반석이기 때문이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제 의지적 신앙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때이다.

 

 *의지적 인성 개발 노하우

 

의지적 인성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사도 바울은 의지적 신앙의 방법으로 당시 인기 있고 유행하던 스포츠 용어를 차용한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헬. 귐나조)  8. 육체의 연단(헬, 김나시아)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여기에 사용된 ‘달음질하기’, ‘싸우기’,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다,’ ‘연단하라’ 및 ‘연습’이란 단어에 유의하라. 모두가 스포츠 용어들이다. 스포츠맨들이 어떻게 훈련하는가? 바른 훈련 방법을 한두 번 읽고 “아, 이제 되었다”고 하는가?” 아니면, “야,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라면서 기뻐하면서 덩실덩실 춤 추고 마는가? 아니다.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하고 잘 하는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한다.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을 끊임 없이 반복하면서 훈련한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였던 유승민은 백 핸드 스트로크를 잘 하기 위해 그것만 하루에 2000~3000번 연습했다고 한다. 피규어 스케이팅의 김연아는 점프하여 몸 세 바퀴 반을 돌고 접지하는 ‘트리플 악셀’ 연습을 하루에도 수백 번 씩 한다고 한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자들이 자신의 부족한 성품을 고치기 위해 이렇게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한 적이 있는가? 소원하는 은사나 축복을 위해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오랫 동안 반복적으로 구하는 경우는 있지만, 자신 안에 내재하는 욕망과 집착, 시기와 모함, 분노와 미움, 교만과 갑질, 거짓과 불법, 참소와 정죄, 체면과 외식, 이기심과 배타심, 혈기와 고집, 혼미와 무기력 등의 나쁜 성품을 고치고 주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이것들을 기도 제목으로 정하고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물론 요즈음에는 내적 치유도 있고 고질적인 담배 끊기, 술 끊기, 분노 다스리기 등의 훈련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위에 열거한 고질적인 나쁜 성품들을 고치기 위해 기도 제목으로 정해 놓고 하는 사람을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한 방’[one shot]에 고쳐주시기를 바란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한 방에 회심했고(행 9:3-9), 한 방에 성령충만도 받고(행 9:17-18), 삼층천에 올라가는 신비 체험(고후 12:1-4)도 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스포츠맨처럼 지속적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경건의 연습을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어쩌다 한두 번 큰 것 내려놓고, 어쩌다 한두 번 거액의 헌금을 하고, 어쩌다 한두 가지 나쁜 기질을 고친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나쁜 기질의 치유는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라 평생 지속적으로 해가야 한다. 한 가지가 고쳐지면 또 다른 것이 고개를 쳐든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삶'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빌 3:13-1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5).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은 어느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 가야 한다. 처음에는 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서면 이것처럼 복된 훈련도 드물다. 훈련이 자유를 주고 훈련이 온전함을 만든다.

 

(장점)

-나쁜 성품을 고치고 좋은 성품을 입어간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간다.

-인성이 개발되면 영적 체험의 강도와 깊이가 강화된다. 필자도 이전에 어쩌다가 한두 번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 체험(성령 체험, 황홀 체험)을 누렸지만 인성 훈련을 제대로 하고 난 후에는 이런 체험을 수시로 누리고 홀리 래프터도 자유 자재로 누리게 된다.

-각종 초자연적 은사가 쉽게 임하고 정도도 강화된다.

-“덕성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Virtue itself is the reward). 성령의 열매는 언젠가 미래에 맺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 내가 누리는 것이다.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풍성하게 누린다.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서 천국 상급을 더 사모한다.

-사람에 대해 인내하고 용납하고 미운 사람도 금방 용서하고 축복하게 된다.

-인성이 개발되면 재능 개발도 쉬워지고 창의력도 풍부해 진다.

-이제는 인성을 제대로 갖춘 자가 성공도 제대로 하고, 성취한 성공을 제대로 누리고 또한 끝까지 유지한다.

 

(단점)

-이전의 ‘사막 교부들’(Desert fathers)은 사람의 노력에 의한 금욕을 통해 인성을 개발하려고 했다. ‘목적’은 좋았지만 ‘방법’이 틀렸다. 그러나 개신교 인성 훈련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 구속 사역에 힘 입어, 그리스도의 모습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하심에 대한 사람의 책임 있는 반응이다.

 

 

필자는 지성적 신앙 및 감성적 신앙의 과정을 거치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거의 20년 가까이 의지적 신앙 훈련 방법을 개발해 왔으며 이것이 주는 영육간의 축복을 어느 정도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이제 이 훈련이 한국 교회 전체에 전파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사역에 임하고 있다.

 

 

한국 교회!

 

지성적 신앙이나 감성적 신앙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들에 더하여 이제는 의지적 신앙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스포츠맨처럼 의지를 발동하여 인성을 개발해 나가면 본인의 신앙 성숙과 관계 회복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한국 교회는 다시 한 번 우뚝 서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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