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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⑩] 휴거와 시한부 종말론(2)신자는 내일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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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7  01: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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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⑩]
 

휴거와 시한부 종말론(2)

- 신자는 내일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헬. 하르파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들어가는 말

 

휴거는 소년 시절에 나의 꿈이었다.
나는 이전에 불안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어떤 특별한 밤을 기억한다.
나는 왠지 그날 밤에 예수님이 오실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 기회를 놓치고 쉽지 않았다.

 

나는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려서 ‘뒤에 남겨놓지’(left behind) 마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꼬박 눈 뜬 채로 그날 밤을 보내면서 나의 조그만 가슴을 두근거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휴거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오늘은 존재하지 않아야 해. 어젯밤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었어야 해.”

 

기독교 환경에서 자란 수많은 소년들처럼 나는 휴거에 완전히 필이 꽂혀있었다. 나는 성경을 열심히 읽거나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나는 꼭지가 돌 정도로 종말론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은 나에게 수수께끼나 보물찾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휴거를 기다리던 그 날 밤은 물론 그외의 수많은 날들을 잊지 못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성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고 기쁘게도, 나는 휴거를 뒷받침할만한 성경적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에서는 세대주의 휴거에 빠져있는 신자들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휴거’는 교회는 휴거 되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7년 대환난을 통과한다는 세대주의 종말론의 휴거를 말한다)

 

윗글은 한때 세대주의 종말론의 휴거에 빠졌다가 『휴거를 내버려야 하는 10가지 이유』(10 Reasons Why Rapture Must Be Left Behind)를 출판한 S.D. 모리슨의 간증이다. (참조 : 여기서 ‘뒤에 남져지다’는 말은 ‘내버려지다’는 의미-필자 주).

 

 

휴거를 동반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은 한때 미국은 물론 한국 교계를 풍미했지만 그 위세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국민일보』(2016.5.9)는 미국의 설문조사 기관인 라이프웨이리서치가 1000명의 미국 교회 담임목사를 대상으로 '언제 휴거가 일어난 것인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인용하여 보도했다.

 

응답자의 36%가 '대환난 이전'이라고 말해 '환난 전 휴거'를 인정했다. 그러나 25%는 '일어나지 않는다', 18%는 '대환난 후', 4%는 '진노 전', 4%는 '진노 중', 1%는 '이미 이루어짐', 8%는 '모른다' 등으로 응답해 목회자의 3분의 1만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어 설명 참조 : ☞[종말론대해부⑨] 휴거와 시한부 종말론(1)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68

 

 

휴거는 종말론 견해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환난 전’ 휴거설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믿는 자들의 휴거→대환난→그리스도와 함께 지상 재림→천년왕국 도래 순으로 전개된다. 이는 ‘세대주의’ 종말론 신학의 견해로, 재림이 두 번 발생하는 등 이견이 많아 신학계에서는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역사적 전천년주의(미래에 그리스도가 1000년간 세상을 통치한다)’나 ‘무천년주의(천년왕국은 없으며 그리스도가 이미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각을 통치하고 있음)’는 ‘환난 후’ 휴거를 인정한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고 그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면 휴거 된다는 입장이다.

 

또 목회자들의 36%가 휴거가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응답한 목회자들의 비중은 교단 별로 루터교(60%), 감리교(48%), 장로교·개혁교단(49%), 침례교(6%), 오순절(1%) 등의 순으로 높았다(복수 응답).

 

목회자들의 신학교육 정도에 따라서도 휴거에 대한 관점이 달랐다. ‘(환난 전) 휴거가 없다’고 응답한 목회자 중 33%는 석사학위, 29%는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반면 대학 학위가 없는 목회자의 60%, 석사학위자의 26%가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었다.

 

 

휴거와 관련된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환난 전’이 아니라 ‘환난 후’ 휴거를 설명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는 환난 후 휴거를 통해 재림하는 주님과 공중에서 만나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고 해석한다.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 랭함파트너십 대표는 “이 구절로 휴거를 정당화하는 것은 성경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오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대중적 기독교의 전형”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휴거는 미국의 경우 『레프트 비하인드』라는 책과 영화 등이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모았다. 휴거의 때를 계산하기 위한 ‘휴거 시계’라는 웹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왜곡된 휴거설은 이단 사이비 종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1992년 다미선교회가 구체적인 휴거 날짜를 제시하며 소동을 일으켰고, 지난해에도 특정일에 휴거가 일어난다며 일부에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거 광신자들이 벌이는 소동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시한부 종말론 사례와 후유증

 

 

지난 글에서는 휴거란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시한부 종말론이 불발된 사례와 불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대표적 시한부 종말론 불발 사례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모든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기는 무리이므로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는 반복된다.”

 

문제는 반복되는 역사를 반면 교사로 삼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동일한 실수를 계속 한다는 데 있다. 필자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휴거나 재림 날짜는 누구도 모른다. 어떤 신학을 들이대고 어떤 계산법을 들이대어도 그것은 사이비다. 절대로 현혹되지 말기를 바란다.

 

 

몬타니스트. 2세기에 새 예루살렘이 임한다고 예언

 

기독교 역사에 가장 두드러진 재림 예언 사건은 2세기의 몬타니스트들(Montanists)이다. 몬타누스(Montanus)는 회심 초기에 예언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예언자 행세를 했다. 이들은 초기에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고 순교와 금식, 죄 회개와 믿음을 통한 고난 감수를 강조하여 교부인 터튤리안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몬타누스에게는 브리스길라와 맥시밀라는 두 명의 여선지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페푸자(Pepuza)라는 도시에 곧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성취되지 않았고 이후 다른 예언들도 많이 불발되자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전 글에서 인용)

 

 

• 실베스터 2세 교황 : A.D. 1000년1월1일을 종말의 날로 선포함

 

실베스터 2세는 999년 12월31일에 역사적으로 마지막 미사를 인도했다. 세기가 변하는 서기 1000년 새해 첫날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계시록 20:7-8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짜로부터 천 년 후인 A.D. 1000년 1월1일에 사탄이 결박에서 풀려나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한 것이다.

 

불안해 하는 군중들이 수도 없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교회 종소리는 사람들에게 다음 날은 더 이상 ‘새해’가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처럼 들렸다. 예루살렘에서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신경질적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장소로 모여들었다.

 

유럽 전역에 걸쳐서 사람들은 회개의 징표로 토지, 집 및 재물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채가 탕감되고, 불륜 행위가 고백되고, 악행들이 사함을 받았다. 사업이 내팽개쳐지고, 건물들이 방치되거나 부셔지기도 하고, 농장이 방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을 대비하여 가축과 노예를 풀어주었다.


거지들이 배불리 먹고, 죄수들이 놓여나고, 면죄를 요구하는 군중들이 교회를 포위했다. 12월까지 고행자(苦行者)들이 시골길을 떠돌아다니면서 회개와 죄 죽임을 위해 서로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크리스머스 에 즈음하여 상인들은 사람들에게 물건들을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새해 전 날 밤에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올렸다. 참회의 삼베옷을 입고 몸에 재를 뿌린 수많은 군중들은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앉아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거대한 시계가 팅통 소리를 내면서 묶은 해를 몰아내고 있었다. 처음의 천 년이-A.D. 1000-임하고 시계가 멈추자 두려움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영원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자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계 소리와 교황의 목소리가 죽음 같은 침묵을 깨었다. 교황은 라틴어로 창(唱. Chanting)을 했고, 자정이 되자 거대한 종탑 위의 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불의 심판은 임하지 않았다.

 

이후 일부 신학자들이 종말의 날짜를 예수님의 탄생부터가 아니라 죽음부터 계산하여 수정했지만(약 33년 후) 여전히 종말은 오지 않았다.

 

 

재림안식교의 창시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 :

1843년 5월21일, 1844년 4월1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미국의 침례교 목사인 밀러가 ‘1840년대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한 그의 예언은 불발되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재림교(1860년)와 제7일 재림교(1863년)을 설립하여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다.

 

밀러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한 결과 예수님의 재림 시기가 성경 예언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니엘 8:14을 예로 들었다.

 

“13. 내가 들은즉 한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그 말하는 이에게 묻되, 환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단 8:13-14).

 

밀러는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임하는 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하루=천 년’으로 계산하고(2300일을 230년으로 계산), 시작 년도를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중건 명령을 내린 B.C. 457년(?)으로 잡았다. 이렇게 계산하면 종말의 해는 1843년이 된다. 그래서 그는 그의 현존 당시인 1818년부터 25년 후인 1843년에는 모든 것이 끝난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내용을 공포한 것은 1831년 이후였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편지로 질의하거나 방문하기도 하여 그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리한 64페이지 분량의 저서를 발간했다.

 

한때 무명의 목사였던 그는 이 일로 인해 1840년부터 전국적인 명사가 되었다. 추종자들이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고 졸라댔기에 그는 할 수 없이 1843년 5월21일로 정했지만 그날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유대 달력에 근거하여 1844년 4월18일을 종말의 날짜로 잡았다. 그러나 또 다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밀러는 자신의 오류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밀러의 추종자인 사무엘 S. 스노우는 ‘제7월 메시지’를 통해 1844년 7월 10일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발되자 유대 달력에 근거하여 날짜를 1844년 10월22일로 수정했다. 거듭된 휴거 날짜 불발에도 불구하고 밀러의 추종자들은 재림교를 설립하여 휴거 날짜 예측은 자제하고 있지만 지금도 예수 재림과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다.

 

 

• 미국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Chuck Smith, 갈보리교회[Calvary Chapel]) End Times in 1979) : '1981년에 휴거가 일어난다.'

(https://en.wikipedia.org/wiki/Unfulfilled_Christian_religious_predictions)

 

잘 알려진 성경 교사이자 예언가인 척 스미스는 1981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저서의 소개문에 보면 이렇게 쓰여있다.

 

“오늘날 세계 정세를 살펴볼 때, 주님의 재림이 상당히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주님은 더 기다리실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주님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것 즉 이스라엘이 건국되면 그 세대는 주님의 재림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심판의 한 세대는 40년이고 환난기는 7년이므로, 나는 주님이 환난 전의 어떤 시점에도 오실 것으로 믿는데, 그 시기는 1981년이다(1948+40-7=1981).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대의 시작을 1967년으로 계산하실 수도 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B.C. 587이래 처음으로 통제하던 해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세대의 시작이 언제일지는 확실하게 모른다.”

 


*무화과 나무 비유와 한 세대의 의미

 

결국 척 스미스의 예언도, 무화과 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시점을 이스라엘의 건국 년도로(1948년), 한 세대를 40년으로 간주하는 전형적인 세대주의 종말론의 잘못된 산물이다.

 

“32.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 24:32-34).

 

무화과 나무 비유는 나무의 가지가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 '종말의 징조가 있으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줄 알라'는 일반적 비유이지, 무화과 나무 자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마 24:32-33). 누가복음은 무화과 나무는 물론 '다른 모든 나무도 싹을 내면 사람들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눅 21:29 참조).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는 누구를 말하는가? 4가지 대표적 견해가 있다.

 

(1) 유대인이 존속하는 기간(Alford, Clarke).

(2) 그리스도인들이 존속하는 기간(Chrysostom)

(3) 당시의 사람들이 존속하는 기간(Calvin, Bengel, Bruce)

(4) 이스라엘 건국 이후(1948년)의 사람들이 존속하는 기간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30~40년을 의미하고 예수님 당시인들이 원 청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3)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람들 (A.D. 30년 경)이 죽기 전에 그의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데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실제로 제자들 중에는(사도 요한의 경우)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멸망을 목격한 사람도 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염두에 두신 것이지만 예언의 복합 성취란 관점과 이후의 문맥을 감안할 때, 궁극적으로는 재림 이전의 종말론적 현상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으로도 볼 수 있다.

 

 

 • 에드가 휘셔넌트(Edgar C. Whisenant) : 『88년에 휴거가 일어나야 할 88가지 이유』[88 Reasons why the Rapture will be in 1988).

 

전직 나사(NASA) 엔지니어였던 휘셔넌트는 그의 저서에서 1988년9월11-13일 즉 유대인의 새해 절기인 나팔절(로쉬 하사나) 기간 중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 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 23:24).

 

그는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 연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 이내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한 세대를 30년, 40년, 또는 100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1978년, 1988년, 또는 2048년이 종말의 해가 되기도 하는데 휘셔넌트는 40년으로 간주하여 1988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 30만 부를 미국 내 목회자들에게 무료로 발송했고, 이후 450만 부가 유료로 팔렸다. 미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휘셔넌트의 예언을 중요하게 여겨서 예언된 휴거 날짜가 가까워지자 휴거에 대처하는 프로그램들을 방송하기도 했다. 그 날에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그는 다시 계산하여 1989년10월3일, 1993년 및 1994년으로 날짜를 수정했다. 이후 휘셔넌트는 1997년까지 계속하여 휴거 관련 주제를 다루었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동안 휘셔넌트는 수많은 이스라엘 여행객을 모집하여 예수님이 재림할 법한 성전산 근처의 호텔에 투숙시킨 후 재림 예정 날짜에 밖에 나가서 재림 예수를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휘셔넌트는 예수님도 ‘그 날(재림 날짜)은 모른다’(마 24:36)에 사용된 ‘안다’는 단어의 헬라어 ‘오이다’를 ‘과학적이고 성경적으로 깊이 연구하면 안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여 날짜를 계산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런데 휘셔넌트는 물론 출판사도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기는커녕 자기들 책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한국의 이장림도 그의 책에서, ‘그 날짜를 예수님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때가 되어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 날짜를 알려주셨다’는 식으로 자기 주장을 정당화 했다. 성경을 문자적·역사적 방법(Grammatical-Historical method)과 문맥으로 해석하지 않고 숨겨진 비의(祕義)를 찾는 영해와 우화적 해석을 하다 보면 성경의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건전한 성경해석학 지식이 부족한 목회자나 성도들은 전통적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우화적이고 비의적 해석을 아주 신기한 듯 수용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16번째 이유에서, 휘셔넌트는 아담은 B.C. 3975년에 30세의 나이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3975에 30년을 더하여 아담이 여자에게 탄생했을 시기를 B.C. 4005년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창조의 하루를 천 년으로 간주할 때(벧후 3:8 참조),  B.C. 4005년부터 6000년 이후는 A.D. 1995년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말하는 70번째 이레 즉 마지막 한 이레(7년)가 1988년에 시작되므로 휴거는 1988년에 일어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30살의 나이로 B.C. 3975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이나 창조의 하루를 천 년으로 계산하는 자체가 전혀 성경적,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의 건국 년도(1948년)에 한 세대(40년)를 더하면 1988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이미 핼 린지가 한 주장이다.

 

이후 그는 『89년에 휴거가 일어날 이휴 89가지』, 『1993년 나팔절(로쉬 하샤나)에 환난 전 휴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23가지 이유』,『1994년에 불, 핵 전쟁 불로 인한 지구의 멸망』등의 저서를 통해 계속 휴거 날짜와 대종말의 시기를 갱신해갔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 이장림의 휴거 날짜 예측  : 1992년 10월 28일.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이장림의 시한부 종말론과  그로 인한 후유증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다미宣敎會 時限附終末論 事件)은 대한민국에서 이장림 등이 어린 아이들의 예언을 바탕으로1992년 10월 28일에 세계가 종말하면서 휴거(携擧), 즉 예수가 세상에 왔을 때 신도들이 하늘로 들림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종말론을 주장하여 기독교 계에 파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그러나 막상 10월 28일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휴거’(携擧)라는 말은 이장림이 1978년 어네스트 앵글리의 예수 재림 소설 Raptured를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광희의’, ‘황홀한’이라는 뜻의 Raptured를 의역하여 만들어낸 단어이다. 이장림은 1987년에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예언서를 내면서 시한부 종말론을 적극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 현상이 나타나고, 1999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영향-

 

맹신도들은 종말론에 세뇌되어 학업이나 생업을 그만두거나 재산을 교회에 바치는 일이 일어났다.

 

-철도공무원이 시한부 종말론의 설교 테이프를 열차 안에서 틀다가 해직된 사례가 있었다. 이 해직된 철도공무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퇴직금을 종말론 교회에 헌납했을 뿐만 아니라, 두 자녀를 데리고 잠적해버렸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서는 당시 30대였던 주부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아들을 데리고 경남지역에서 선교를 하겠다고 가출했다.

-1991년 1월에 전라남도 강진군에서는 여고생이 부모가 종말론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음독자살을 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던 윤 모와 대학생이었던 세 아들은 모두 종말론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나고, 그 중 두 아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외국에서 순교한다며 가출하기도 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신도 10여명이 1991년 10월부터 가정을 내팽기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며 기도원에서 생활했다.

-그 외에 경찰이 확인한 종말론의 피해는 100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처벌-

1992년 9월 24일에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이장림을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1992년 12월 4일에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이장림에게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하였으며,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과 26,000달러 몰수형을 선고하였다.

 

 

이장림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에서 안수 받은 정통 교회 출신 목사였다. 그리고 이장림의 시한부 종말론에 가담한 사람들은 철 모르는 평신도들만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의 건전한 교단에 속한 목회자나 평신도들도 많았다.

 

 

이처럼 세대주의 종말론에 근거한 시한부 종말론은 미국에서 워낙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세대주의 신학과 관련 교단들,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종말론 자료들로 인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쉽게 끌려들어가는 흡입력이 있다.

 

 

• [패밀리 라디오] 성경 교사  해롤드 캠핑 (Harold Camping): 1994년 9월6일→2011년 5월21일→2011년10월21일로 종말의 날짜를 수정

 

 

필자도 미국에 거주할 때 호기심에서 명쾌하지만 세대주의적이고 기적중지론적인 그의 강해를 라디오를 통해 한두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그가 나중에 시한부 종말론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 패밀리 라디오(Family Radio)의 성경 교사로 이름을 날린 해롤드 캠핑은 2번의 휴거 날짜 예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는 휴거 날짜를 예언하여 많은 헌금을 받았지만 모두 불발로 끝났다.

 

그는 2011년5월21일에 휴거가 일어난 후, 5개월 동안 지옥 같은 고통이 시작되면서 매일 수 백만 명 이상이 죽고, 10월21일에 전 세계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다. 그는 이전에는 1994년 9월6일에 대심판이 임한다고 예언한 적이 있다.

 

2011년 5월21일에 대한 종말의 예언은 캠핑의 패밀리 라디오 홍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그는 미화 500만 달러(한화 약 6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시한부 종말론 홍보에 쏟아 부었다. 불신 단체는 조롱했고 크리스천 단체들은 반론을 제기했다.

 

휴거 예측 날짜가 불발에 그치자 캠핑은 “그 날에 영적 심판은 임했다”고 변명하면서 신체적 휴거와 하나님의 진노의 대심판이 10월21일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역시 불발에 그쳤다.

 

 

두 번에 걸친 휴거 날짜 예측이 불발에 그치자 기독교계는 그를 ‘거짓 선지자’라고 불렀으며 그의 사역도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핑의 예언을 신봉한 한 남성은 직장을 그만 두고 1억 원 정도의 저축금도 모두 헌금한 후, 고속도로 변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사람들에게 종말을 경고했지만, 막상 무위로 돌아가자 직장도 잃고 저축금도 모두 까먹어서 망연자실하였다.

 

 

이후 캠핑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휴거 날짜 예측은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은 ‘죄악스러운’ 일이며 ‘그 날은 아무도 모른다’(마 24:36)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이 옳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휴거 날짜 예측이 무위로 돌아간 후 그가 오랫동안 운영해왔던 패밀리 라디오는 후원 헌금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영향력도 급감했다. 10월21일에 「타임 」(Time) 매가진은 캠핑의 예측을 ‘불발된 10예측 리스트’(Top 10 Failed Predictions)에 포함시켰다. 2011년 6월9일에 그는 심장마비로 입원한 후 퇴원했지만 그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2013년 12월 5일 92세를 일기로 그는 생을 마감했다.

 

세대주의자이자 기적중지론자인 해롤드 캠핑은 다른 세대주의자들과는 달리 지구 창조의 연대를 B.C. 11,013(대조. B.C. 4004), 노아 대홍수 연대를 B.C. 4990(대조. B.C. 2349)으로 계산했다. 이 날짜들을 기점으로 하여, 구약에 기록된 유대 달력에 의한 절기의 날짜들, 음력 한 달을 29.530959일로, 그레고리 달력에 의한 한 해를 365.2422일로 계산하고, 성경의 날짜 기록을 참고하여 종말의 날짜를 계산했다.

 

 

• 마크 빌츠(Mark Biltz) : 2008년에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2015년 9월28일의 블러드 문(Blood moon Prophecy) 때에,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재앙이 온다고 예언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예측한 것.

 

‘블러드 문 예언’은 마크 빌츠(Mark Biltz)가 주장하고 존 해기(John Hagee)가 동조한 묵시적 사상으로, 2014년에 시작된 테트라드(Tedtrad)를 사도행전 2:20 및 계시록 6:12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로 해석한다. 테트라드(Tetrad)는 ‘2년 내에 개기월식만 연속으로 4번 발생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이 유대인의 절기와 겹쳐질 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테트라드는 유대 달력으로 초막절인 2015년 9월 27-28일에 끝났다. 블러드 문은 달빛이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핏빛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2014년 4월과 10월, 2015년4월과 9월에도 나타났다.

 

 

2008년에, 마크 빌츠는 2008년에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예수님의 재림은 2015년 가을에 일어날 수 있다고 예언했다. 그는 천문학의 패턴을 통해 다음 번의 테트라드가 종말과 우연한 일치를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예측이 실패로 끝나자 빌츠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내린 후 테트라드의 ‘중요성’은 계속하여 강조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목사인 존 해기도 나중에 빌츠의 주장에 동조하여 『4개의 블러드문』(Four Blood Moons)을 집필하여 2014년 4월까지 아마존.com의 ‘150개 베스트 셀러 목록’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4월에는 New York Times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존 해기는, 마크 빌츠와는 달리, 특별한 종말론적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550년 동안의 테트라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나중에는 승리로 끝났었다고 말했다.

 

 

존 해기와 마트 빌츠의 주장은 USA Today나 Washington Post같은 유명 일간지의 주목을 끌었지만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았다. 「크리스천 투데이」(Christian Today)잡지의 사만다 블레이크는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월식 현상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어스 앤 스카이」(Earth and Sky) 지의 브루스 맥클루어와 데보라 비어드도 동일한 구절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는” 일식 현상도 기록되어 있다면서, 유대력은 음력이므로 테트라드의 6분지 1은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20).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계 6:12).

 

더군다나, 그들은 초대 교회 시대인 1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62번의 테트라드 현상이 나타났지만 8개만이 유대인의 절기와 겹쳤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런 현상은 존 해기나 마크 빌츠가 말한 것처럼 드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4개의 개기월식 중 3개는 이스라엘 땅에서 보이지도 않고 마지막 한 개만 보였다고 한다. 존 해기나 마크 빌츠가 강조하는 만큼 테트라드가 성경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Space.com을 위한 기고문에서 지오프 개허티는 “종말의 예언이…… 삶에 활력을 부어주는 현상인데 이를 재앙의 전조로 간주”하는 일을 개탄스러워 하며,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될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2014년 1월에, 「이스라엘 크리스천 증언」(Christian Witness to Israel)의 사무총장인 마이크 무어는 마크 빌츠와 존 해기의 주장을 비판하는 장문의 논문을 게재했다. 무어는 월식 현상에서 성경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도출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마크 빌츠는 예측이 빗나가자 모 인터뷰에서 ‘반드시 일어난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면책 조항을 들먹거린 후,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거나 잘못된 방법론을 회개하기는커녕 나팔절에 일어나는 휴거는 7년의 안식년(슈미트) 초에 일어나므로 앞으로 7년 후인 2022년을 기대한다는 의중을 내비치었다. 실제로 한 유대인 랍비는 두 별의 충돌을 근거로 2022년을 지구 대종말의 때로 예언하기도 했다.

 
 

이상 역사적으로 악명 높았던 시한부 종말론 불발 사건의 원인과 후유증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필자가 이미 여러 군데서 말한 대로, 복음주의 내에서 일어난 시한부 종말론은 대부분이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의 건국과 1967년 메시아닉 쥬의 등장, 한 세대를 40년으로 계산하거나, 유대 달력에 의한 가을 절기를 중심으로 예측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세대주의 종말론이 유대인 종말론과 혼합하여 새로운 시한부 종말론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자 중에는 자신의 예측이 틀리면 즉각 사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지역 아무개 한인 선교사가 [브래드 TV]의 김종철과의 인터뷰에서, ‘그 날과 그 때는 모른다’(마 24:36)는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구약의 가을 절기를 통해 ‘그 날과 그 때는 알지만 그 해[year]는 모른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더 나아가서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하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신자들은 매년 가을 절기인 나팔절(로쉬 하샤나) 즈음에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가서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들에 의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핵 전쟁을 동반한는 아마겟돈 전쟁 이후의 사건인데 그때에도 성전산과 예루살렘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까?

 

이들은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속 사역을 통해 종말의 완성-재림을 통한 천국의 도래- 외에 모든 것을 성취하신 예수 안에서 절기와 장소가 폐기되었다는 위대한 사역을 외면한 채, 초등학문이자 예표이자 그림자에 불과한 구약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구원은 성령으로 받았지만 삶은 율법으로 마치려는 신종 유대주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 교계에는 요즈음 이장림의 휴거 불발 사태와 같은 극심한 후유증은 드물지만 지금도 수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이러한 유사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서 정작 성경이 분명히 기록하는 일들에는 소홀하고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과 유사 시한부 종말론의 원인과 폐해들

 

 

세대주의 종말론, 랍비 유대교 중심의 메시아닉 쥬 종말론을 포함한 유사 시한부 종말론의 잘못된 가정과 그로 인한 폐해를 살펴보자.

 

 

첫째, ‘즉각적 휴거’냐, ‘필연적 휴거냐’가 차이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세대주의 계통 종말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하시라도 가능한’(at any moment) ‘즉각적 휴거’를 주장한다. 영어로는 imminen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후천년주의자나 무천년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하시지만 지금 즉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재림 전 어떤 사건들-복음의 전파 등-이 성취되면 반드시 오신다는 ‘필연적 휴거’를 주장한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지만 즉시는 아니다’(approaching but not immediate)는 의미로 impending을 사용한다.

 

단어상으로는 두 단어가 동의어지만 내포하는 신학적 의미는 서로 다르다. 편의상 전자를 ‘즉각적 휴거’, 후자를 ‘필연적 휴거’라고 이름 지어서 생각해 보자. 성경적으로 각 구절을 비교·대조하자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핵심 사항만 살펴보기로 한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즉각적 휴거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든 2000년이 지나도록 아직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즉각적 휴거론자들은 어느 시대든 아무런 조건 없이 즉각적 휴거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래서 요즈음에도 하시라도 즉각적 휴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연적 휴거론자들은 휴거가 반드시 일어나지만 지금 즉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야 하고, 유대인의 충만한 숫자가 회심되어야 하고, 외적 천국이 어느 정도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둘 다 틀렸다기 보다는 둘 다 옳을 수 있지만 둘 다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약점도 있다. 신학자들은 양자의 갈등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하시라도 주님의 재림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지금 당장 주님이 재림하시더라도 될 만큼 삶을 정리하면서 깨어서 재림을 기대하는 긴장 상태에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재림만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매일 점검하여 죄와 세상적 탐욕을 버리고 영적 신부로서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기 정화에 힘써야 한다(엡 5:7; 요일 3:2-3; 계 19:7-8).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이 내일 오실지 일년 후에 오실지 20년 후에 오실지 모르므로 100년 대계를 세워서 주어진 소명을 온전히 감당해 가야 한다. 이것이 건전한 종말론적 삶이다.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휴거만 기다리면서 자기 변화와 사회 변혁에 소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재림을 기대하는 긴장감이 결여되어 하나님 나라 일에 대한 열정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신자는 어제 구원 받고 오늘 신앙 생활하고 내일 떠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유사 시한부 종말론은 ‘도피주의’를 양산한다.

 

 

20세기 초기에 휴거를 강조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D. L. 무디의 수용에 힘입어 전도의 열풍을 가져왔다. 이런 전통을 이어 받은 오순절파와 은사주의도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면 주님이 재림하신다(마 25:14)는 열정으로 전도와 선교에 박차를 가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만 강조하고 자기 변화와 사회 변혁을 소홀히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님은 열심히 전도는 하지만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한국 교회가 종교 선호도가 꼴찌로 지탄을 받는 이유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는 하지만 삶의 본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벽기도 거르지 않고 일년에 100명이나 전도한 장로님이 파렴치한 불법 행위로 구속되고, 청소년 사역의 선두 주자 목사가 지속적 성 폭행으로 면직되는 것과 같은 비윤리적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 운동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양적 성장에 기여는 했지만, 세대주의의 운명론적이고 도피적인 종말론으로 인해 사회 변혁에 무관심하여 동성 결혼과 성 정체성 상실 및 이슬람 준동 등을 방관하여 오히려 평신도 수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선교지에서도 많은 선교사들이 내면 정화가 되지 않아 시기와 질투가 심하거나 현지의 영적 기류에 눌려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소명은 불타오르지만 선교 준비와 내면 정화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와 선교도 행하고 내면 정화와 사회 변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한부 종말론의 실제 사례에서 보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예언된 휴거 날짜가 임박해 지면 정상적인 삶을 내팽개치고 몰현세적인 도피주의자가 되어 예언이 불발되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가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혹시 자신이 휴거되지 않으면 뒤에 남겨져서[left behind] 적그리스의 짐승 표인 666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떼를 지어 산악 지방이나 무인도로 피신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근거로 마태복음  24장6절의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는 구절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A.D. 70년 디도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공격 당시에 ‘유대에 있는 자들’에게 국한된다. 실제로 당시에 유대인들은 결사항전을 외쳤지만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동생의 인도로 산악 지방으로 피신하여 많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한때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사방이 돌산으로 둘러싸인 산악 지방인 페트라로 피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모두가 페트라라는 좁은 지역으로 무슨 방법-비행기, 선박?-이동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요즈음처럼 GPS나 위성추적 시스템이 발달하고 각종 신형 폭탄이 개발된 현대에서 어디로 도망간들 적그리스도 세력이 발견해 내지 못할까? 또한 지하에 숨어본 들 수십 미터 지하 벙커를 파괴하는 벙커버스터 폭탄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을까?

 

적그리스도의 666을 ‘컴퓨터 칩’으로 오해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기회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적그리스도의 666 짐승 표는 사람 몸에 넣는 칩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유형적인 칩이라면 내가 아무리 거부해도 그들이 필요하면 나를 잠시 마취시킨 후 잠깐의 수술로 몸 안에 너무나 쉽게 이식할 수 있는데, 성경은 짐승 표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기록한다(계 20:4). 성경은 짐승 표를 이마나 손 등에 맞는다(계 14:9)고 했는데 베리 칩은 손목에 이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유형적 칩이나 물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유사 시한부 종말론은 ‘음모론’과 ‘비관론’에 근거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위시한 유사 시한부 종말론은 음모론과 비관론에 근거한다.

 

*음모론에 근거한 세대주의 종말론

 

천주교의 예수회와 이의 영향권 아래 있는 프리 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세계 정부를 수립하여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을 획책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한때 기승을 부렸다. 오바바 정부에서 그랬고 미국 대선 후보자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유사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세계주의를 타파하려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주의 음모론은 한물간 주장이 되어버렸다.

 

 

*운명적 비관론에 기초한 세대주의와 유사 시한부 종말론

 

더군다나, 세대주의와 유사 시한부 종말론은 세상은 점점 나빠진다는 비관론에 근거한다. 이들은 세상을 변혁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운명론에 빠져버린다. 신자는 개인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만 몰두해야 하고 전도 받은 사람을 악한 세상에서 보호하기 위해 교회에 가두어놓아야 한다는 비관적 미래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세대주의 종말론의 스케줄 대로 간다는 운명적 비관론에 사로잡혀서 개선하거나 대적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사에 무관심한 결과 유럽 교회는 동성 결혼과 차별금지법 수용 및 이슬람 허용으로 크리스천의 설 땅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미국도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만일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었다면 다문화수용과 인종차별 철폐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미국도 서서히 유럽처럼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 있지도 않을 세계정부 출현과 적그리스도의 지배라는 허황한 종말론 떠들고 있는 동안 마귀는 문화와 제도를 통해 동성 결혼 허용, 종교차별 금지법 및 이슬람의 적극 수용이란 계책을 통해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휴거 이후 세계정부 출현과 적그리스도의 지배, 이스라엘이 종말의 시간표라는 허황한 종말론에만 빠져 있었다면 동성 결혼과 차별금지법 및 이슬람의 준동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다행히 영국 교회가 반면 교사가 되고 미국의 환경에 자극되어,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국가의 제도와 다문화 수용이라는 인본주의를 통해 기독교를 고사시키려는 계책에 눈을 떴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새해 벽두부터 국가인권위원회나 국회 및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수시로 동성애 허용과 차별금지법을 상정을 거론하거나 상정하고 있고, 더군다나 동성 결혼과 차별금지법을 공공연하게 용인하는 자가 만일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기독교의 최후 보루는 하루 아침에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기독교인들이 사회나 정치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낙관주의냐 비관주의냐

 

"세상은 점점 나아지는가, 아니면 나빠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빈부 격차와 부정 부패와 대량 실업과 음란과 방탕의 심화, 동성 결혼 합법화 등을 이유로 세상이 점점 나빠진다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다. 개인, 교회 및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세상이 상당히 개선된 것을 본다.

 

- 구약에서 소돔과 고모라, 로마 시대의 동성애, 로마의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 등을 보면 동성애와 음란 행위의 폐해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세기에 영국과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기타 다른 나라들은 20세기 초의 근대화와 2차 대전 이후부터다.

 

- 여성이 참정권을 가진 것은 20세기 초반이고 미국에서도 동부 명문 대학에 여성 입학이 허용된 것은 20세기 중반에 불과하다.

 

 

- 인권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김정은이 측근을 수시로 숙청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경악하지만 솔로몬도 왕으로 등극할 때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다윗 때의 공신들을 제거했다. 이조시대의 이방원(태종)도 권력을 잡은 후, 처남들은 물론 가까운 측근이나 공신을 모두 제거한 후 왕권을 확립했다.

 

왕조시대에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적을 제거하거나 숙청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요즈음의 민주 국가처럼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정상적인 것은 전 세계적으로 몇 백 년이 채 안 되고 한국은 겨우 몇 십 년이다.

 

또한, 왕조시대나 북한에서는 권력자인 김정은의 비위를 조금만 거슬려도 참형을 면치 못한다. 회의 시간에 졸았던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 안경 닦았던 장관급이 고사포 형이나 총살형을 당하는 것이 북한에서는 보통이다.

 

남한에서도 군사독재 시절에 이랬다면 죽지는 않았더라도 정보기관에 잡혀가서 심한 고문과 매질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남한에서는 대통령을 욕하고 삿대질을 해도 아무런 처벌을 당하지 않는다.

 

 

- 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요즈음 보다는 이전의 봉건 국가나 왕조 시대에 차이가 더 심했다. 현대에는 평등과 복지 개념이 발달되면서 양극화가 과장되었을 뿐이다. 왕조 시대에는 왕족과 일부 권문세족이 국가의 부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백성들은 양식이 부족하여 풀뿌리와 나무 껍질과 같은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공산주의의 등장과 몰락도 마찬가지다. 가진 자 중심의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의 천국을 약속했던 공산주의자는 오히려 더 '사악한 소수의 가진 자'가 되어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모든 사람을 거지로 만들다가 결국 망해버렸다.

 

 

필자가 초등학생, 중학생 때인 1960년대만 해도 집집 마다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가 많았고 역전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상이군인들이 모여서 구걸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볼펜이나 문방구를 파는 아이들도 많았다. 물론 아직도 빈한층이 많지만 그래도 과거 보다는 낫지 않은가?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연휴 마다 해외 출국 여행객은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필자가 종합상사에 근무하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만해도 한국에서 중소기업 사장도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다. 외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외화가 부족하여 해외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어지간한 사람도 해외 여행을 내 집 드나들 듯 한다.

 

 

- 생활 환경만 해도 그렇다.

한국 백성이 언제부터 자가용 타고 다니고 집집 마다 에어컨과 냉온수 샤워 시설의 혜택을 누렸는가? 필자가 사회 생활을 하던 70년대 중반만 해도 자가용, 에어컨 및 냉온수 샤워 시설은 특수 부유층만 누리던 것이었다. 지방 공장에서는 한 여름에도 작업 방해가 된다고 해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가용, 냉온수 샤워 및 에어컨은 기본이다.

 

한 인텔리 탈북자에게 ‘남한에 와서 제일 누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선 글래스를 끼고 자가용을 모는 것이 제일 좋다’, 다른 탈북자는 ‘여행을 마음대로 해서 좋다’, 다른 강제 수용소 탈북자는 ‘마음 놓고 다니고 배 굶지 않아서 좋다’고 대답했다. 남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것이 로망이라고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삶을 누렸는가?

 

이래도 세상이 점점 나빠진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다수의 언론과 정치가들은 국민들에게 이미 이룬 것을 누리는 법을 가르치기는커녕 부족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 물론 가진 자의 탐욕과 무관심을 시정해야 하지만 못 가진 자의 분노와 좌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유럽의 교회가 쇠퇴하고 유럽 국가가 타락한 것은 세상이 점점 나빠지기 보다는 신앙을 버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신자들의 나태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의 싸움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귀와 악령들에 대한 영적 전쟁이다(엡 6:12). 예수님은 계시록의 7교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싸워서 ‘이기는 자’가 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계 2~3장). 유감스럽게도 유럽의 교회는 이런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유럽은 사도 바울이 선교한 초기 지역으로 기독교 문명이 우세하여 종교개혁을 낳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복음주의(보수주의)에서도 기적중지론을 주창하면서 교회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인본주의로 인한 동성애 수용과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켜 기독교의 입지가 엄청나게 좁아졌다.

 

무분별한 다문화수용과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한 결과 무슬림의 범람으로 인해 이제 유럽 국가의 정체성 마저 흔들릴 지경이 되었다. 마귀의 세력들은 이처럼 다양한 전략으로 세상을 공략하는데 신자들은 영적 전쟁의 고삐를 놓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인본주의 발상을 수수방관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신자는 나쁜 것은 개선해가야 하고 좋은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 그런데 운명론적이고 비관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세대주의자들이나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사회적 개선을 보는 안목이 없다. 구원 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구원 받은 사람이 사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운명론적으로 교회가 휴거 되고, 7년 대환난을 마친 후 천년 왕국이 오면  이상적인 세상이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세상에 만일 세대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만 살았다면 이 세상은 ‘또 다른 중세 암흑시대’처럼 사회 변화가 없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사회 정의를 주장하고 ‘공평’과 ‘정의’를 주장하면서 사회 변혁을 시도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사회 복음에는 순기능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 내면의 죄악과 개인별 능력 차이를 무시한 채, ‘가진 자에 대한 분노’와 과정적 평등이 아니라 ‘결과적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진보파는 ‘샴페인 좌파,’ ‘강남 좌파’가 되어 자기들은 특권과 반칙을 누리고 자기 자녀들은 특목고와 해외 유학을 보내면서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제다. 자기나 자기 자녀에게도 좋으면 다른 사람도 하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평등이자 정의가 아닌가?

 

 

요약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나쁜 것은 개선하고 좋은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 운명론에 젖어 수수방관하면 세상은 나빠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너무나 자주 암송하는 주기문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왜 기도는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되도록 행동은 하지 않는가?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비관적 낙관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세상은 점점 좋아지지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분야가 많다. 더군다나 세상의 종말이 100년 후에 오더라도 개인의 종말은-아무리 장수시대라도-대충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각자는 언제 올 지 모르는 우주의 종말 보다는 곧 다가올 개인의 종말에 대비하여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인의 종말이야 말로 여러 가지 이유로 예기치 않은 뜻밖의 순간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천국은 지금도 계속 안팎으로 확장 중에 있다. 그런데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런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안목이 없다. 자기 변화와 사회 변혁 및 천국 확장에는 별 관심이 없고 대부분이 그저 말초적이고 부분적이고 현상적 종말론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나빠진다는 가정 하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불신자를 구원하여 교회라는 방주 안에만 가두어놓고 휴거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사 시한부 종말론은 ‘고립주의’와 이단 사이비를 양산한다.

 

자신들만이 특별한 깨달음과 계시를 받은 선택된 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유대교의 한 계파인 에세네파(Essenes)가 이런 파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에세네파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한 갈래였다. 이 무리는 '정의의 스승'(teacher of righteousness) 이라 불리는 사람이 이끌었으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율법과 제사 등 형식과 권위에 치우친데 비해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웠다.

 

에세네파 신자들은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 등을 모두 함께 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여 하나님과 한 몸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들은 세상이 마지막에 이르면, 그들 '빛의 아들들'이 '어두움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에세네파 교인들은 금욕, 기도,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계속해 왔다. 그들이 집단금욕 생활을 한 이유는 메시야가 곧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구분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재림 예수가 아니라 유대교가 말하는 정치적, 경제적 메시야를 기대했던 것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이런 종파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이단 종파들이다.

이들은 인간인 자신들이 ‘메시야,’ ‘예수 대리자,’ ‘참 사람,’ ‘두 증인,’ ‘ 재림주’ 또는 ‘보혜사’(성령)라고 주장하면서 교주가 되어 자신들만의 종파를 구성하고 배타적인 신앙 생활을 한다. 한국의 문선명(1945-2012. 통일교), 안상홍(1918-1985. 하나님의 교회), 정명석(1945~. JMS) 및 이만희(1931~. 신천지) 등이 대표적이다.

 

제대로 거듭난 신자에게는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면서 자칭 ‘메시야’라고 사칭하는 이단들에 대한 분별력을 주신다(요일 3:5; 롬 8:16; 고전 12:3; 요일 2:20-23 등).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의 현혹에 농락된다는 것은 개신교 정통 신학의 기본 진리에 무지하고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기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말세를 강조하면서 ‘메시야’를 사칭하는 인간은 모두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살전 2:3-6; 요일 2:8-22; 4:2-3 등)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아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고 또한 미혹되지도 않을 것이다.
 


 

나가는 말

  
 

결론적으로, 휴거나 재림 날짜 및 지구 대재앙을 예측하는 시한부 종말론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신자는 내일 예수님이 오시지만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건전한 종말론적 신앙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은 유사 시한부 종말론들이 너무나 그럴듯하고 무기력한 신앙 생활을 자극하는 활력소로 잘못 알고 맹신적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한국 신앙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세대주의나 성령 운동 단체들이 주장하고 있으니 더 솔깃해 하는 것 같다.

 

세대주의 종말론과 메시아닉 쥬 종말론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장점 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다. 필자는 미국의 성령 운동이 사도행전의 성장과 확장에서 서신서의 성숙과 변화로 변해가기를 기대해 왔다. 그런데 율법과 형식을 강조하는 메시아닉 쥬 운동으로 빠진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세계 기독교를 주도할 때

 
 

선교 100년을 통해 유례 없는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가 이스라엘과 유대인 선교의 소명을 갖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자 축복 받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 기독교가 유대인 선교와 메시아닉 쥬를 인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메시아닉 쥬의 미성숙한 신학에 설득되어 휘둘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자는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필자는 세상의 종말과 메시아닉 쥬의 등장 및 한국 교회의 사명에 대해 심각하게 기도해왔다. 이후 내린 결론은 이제 한국 교회가 다시 한 번 세계 교회에 우뚝 설 때가 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유럽 교회의 신학과 미국 교회의 신학, 성령 운동 및 종말론 등을 수입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교회가 이런 것들을 성경과 시대 상황에 맞게 상황화하여 유럽과 미국 교회는 물론 메시아닉 쥬에게 수출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은사운동’과 더불어 자기변화와 내면성숙을 위한 ‘성화훈련’을 합친 ‘통합운동’이다. 신약의 교회는 사도행전의 성령을 통해 외적으로 확장해왔다. 유럽과 서구의 전통적 교회가 이것을 무시하는 기적중지론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공동화(空洞化) 되거나 쇠퇴하고 있지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인정하는 교회들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양적 성장을 해가고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모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사도들에게 서신서를 통해 양적으로 성장한 교회들의 교리적, 윤리적, 관계적 문제를 해결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통해 성장한 교회들은 이제 서신서를 통해 성숙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특히 미국 은사 운동의 많은 교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메시아닉 쥬 운동을 통해 오히려 내면 성숙을 역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이 틈새를 파고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눈동자라 부르셨지만(슥 2:8 참조), 이제 한국을 영적 눈동자로 부르셔서 소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롬 2:28-29), 육신적 가족이 예수님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인 것처럼(마 12:50), 하나님의 뜻을 행할 영적 한국이 하나님의 진정한 눈동자가 되어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감당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이제 한국 교회가 세계의 복음화 운동은 물론 이스라엘 선교도 보다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민족적 자긍심이 약하고 서양에 대한 사대사상이 있어서 한국이 세계 선교를 주도한다는   비전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을 수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잠시 주춤하지만 한류 열풍이 세계를 흔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국 교회가 주도할 복음 전파의 길을 미리 닦아 놓으신 것이다. 잠시 후 정치가 안정되면, 비 온 후 땅이 굳어지듯, 한국은 다시 한 번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및 기독교계에 우뚝 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한국은 안보와 경제적 우려를 보이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자는 힘을 모아 하나님의 지혜로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돌릴 자가 차기 대통령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기도 중에 이런 모습을 보았다.
 

창공에서 두 날개를 펄럭거리는 거대한 독수리(미국)가 땅에서 솟아오르는 용(중국)을 압도하면서 그에 빌붙은 새끼 독사(북한)를 제압하고, 원숭이(일본)는 독수리의 눈치만 보고 있는 동안, 은빛 비둘기(남한)가 찬란한 빛을 뿜으면서 푸른 창공을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제 다시 한번 영육간에 한국 교회와 한국을 높여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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