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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⑦] 다니엘의 ’70 이레’는 무엇인가?궁극적으로 교회의 고난과 회복에 관한 예언이다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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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2  19: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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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⑦]
 

 다니엘의 '70 이레'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교회의 고난과 회복에 관한 예언이다-
 

   
 

본문 : 단 9:24-27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리고, 또한) 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들어가는 말

 

세대주의 종말론의 핵심은 교회의 휴거와 세계 정부의 출현, 7년 대환난 기간 중 이를 지배하는 적그리스도의 출현, 적그리스도와 유대인과의 언약에 의한 제3성전 건축, 후 3년 반 동안의 극심한 박해와 유대인의 대거 회심 및 아마겟돈 전쟁, 예수의 재림과 유대인 중심의 천년 왕국 시대로 요약된다.
 

세대주의 종말론에 의하면, 유대인은 교회 시대에는 소수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지만 7년 환난 기간 중에 국가적, 단체적으로 대거 구원을 받는다. 즉 7년 대환난은 유대인의 국가적 구원을 위한 기간이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라 이스라엘 구원과 교회의 구원 방식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메시아닉 쥬는 1970년대 이후 유대인이 대거 회심한 것은 유대인을 민족적으로 구원한다는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에 의하면 유대인의 대거 구원은 휴거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메시아닉 쥬는 휴거 이전에 이미-1970년 대- 유대인의 대거 구원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어느 한쪽이 틀릴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시나리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니엘 9장 24~27절의 해석이 중요하다. 세대주의는 이 구절들을 통해 7년 대환난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정사실화 하기 때문이다.

 

종말론에서 다니엘 9장의 70이레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어떻게 보면 세대주의와 개혁주의가 종말론에서 갈라지는 핵심 주제가 바로 다니엘 9장의 ‘70번째 이레’와 관련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다니엘의 70이레가 해석이 까다롭고 복잡한 것 같지만 어떤 신학적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해석의 갈래가 분명해 진다.

 

*다니엘 9장은 메시야 공동체의 고난과 회복에 관한 예언

 

다니엘 9장은, 다니엘이 70년 만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끝날 것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25:11-12; 29:10)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단9:2). 다니엘은 다리오 왕 원년인 B.C. 538 년에 70년 포로의 기간이 다차고 있음을 깨닫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70년의 포로 기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예루살렘 침입으로 인해 제1차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B.C. 605년부터 스룹바벨의 인도로 제1차로 귀환한 B.C. 537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민족의 귀환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만 1년이 채 남지 않은 때에 이 사실을 깨닫고 기도한 것이다.

 

기도의 목적은 2절의 “예루살렘의 황무함”(2절하)에 대한 간구이며, 다니엘의 관심은 단순한 죄 용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다.  다니엘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이유는 '주의 성'(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스라엘)을 위해서이다.

 

지금 거룩한 성은 황폐하였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7절). 죄를 범한 결과가 이러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 예언되어 있다(11절; 레26:31-33; 신 28:64).

 

이제 그들이 포로에서 벗어나고 예루살렘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죄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니엘이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에(20절), 천사장인 가브리엘이 빨리 찾아와서 하나님의 계시를 주었다. 따라서 가브리엘이 주는 '70 이레'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따라서 9장 전체의 주제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고난'과 '회복'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 공동체의 고난과 회복에 관한 예언이다.

 

 

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해석의 차이

 

세대주의는 다니엘 9:24-27은 민족적,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구절로 해석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일차적으로는 민족적, 혈통적 유대인의 회복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성된 신약 공동체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 결과 세대주의는 24절의 회복의 구절은 천년 왕국에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개혁주의는 교회 시대에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27절의 “그”(He)를 세대주의는 적그리스도로 해석하지만 개혁주의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70번째 이레’도 세대주의는 휴거로 교회 시대-지금까지 2000년 가까이 지속됨-가 끝난 후의 기간인 ‘문자적 7년 동안의 환난 기간’으로 해석하지만 개혁주의는 전 3년 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3년 반이지만, 후 3년 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의 상징적 기간으로 해석한다. ‘70번째 이레’ 해석의 핵심과 차이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해석의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70번째 이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70 이레의 ‘이레’의 의미

 

원문은 70 ‘이레’ (7일. Week)를 ‘70의 7’로 기록한다. 70년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 생활을 한 기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레(7)이란 숫자는 무슨 의미인가?

 

“그때에 나 다니엘이 3이레 동안 슬퍼하며~”(단 10:2).

 

여기서의 ‘3 이레’는 three weeks days, 즉 3주(히. 솨부아)+ 날들 days(히. 욤)이고 그래서 21일이다.

 

실제의 숫자로 보는 경우에는 이레를 '7일(七日)' 이든지, 아니면 '7년(七年)'으로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레를 '7일'로 본다면 70의 7곱은 490일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것을 이스라엘의 회복 기간으로 보기에는 너무 짧다. 따라서 '이레'는 '7년'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칼뱅, 헹스턴버그 등의 개혁 신학자들은 물론 세대주의자들도 수용하는 견해이다.

 

 

-70이레 동안 일어날 일

 

70이레는 고난과 회복의 기간이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세대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이스라엘 민족이 주도하는 천년 왕국에서 성도들이 누릴 복된 삶의 모습으로 해석한다. 24절 마지막의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를 거룩한 장소로 해석하여 천년 왕국에 세워질 성전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24절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결과로서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로 재림까지의 과정 속에 성취될 일로,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으 받는 것은 예수가 메시야로 등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외에 Keil, Young 등은 그리스도 재림 이후에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누릴 구원의 완성으로 해석한다.

 

 

왜 70이레를 7이레, 62이레 및 1이레로 나누었을까?

 

성경이 3부분으로 70이레를 3부분으로 나눈 것은 한 부분마다 어떤 획기적 사건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함락에서 재건까지 7 ‘이레’=7x7=49년, 성전 재건에서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62’이레’=62x7=434년으로 해석하지만 마지막1이레?=7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70이레의 시작 점이 언제인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메시야 예수)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단 9:25).

 

3 가지 주장이 있다.

 

(1) 고레스 왕의 칙령(BC 539/538)(대하 36:22-23; 사 44:28)-개혁주의 입장.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BC 538)에……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대하 36:22-23).

 

 (2) 에스라에게 내린 아닥사스다 칙령(B.C. 457)(에스라 7:11-26).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스 7:20절).

 

(3) 느헤미야에게 내린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B.C. 444)(느 2:1-8)-세대주의 입장.

 

그(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느 2:5).

 

이중에서 (2)의 견해는 취하는 자가 거의 없고, (1)의 견해는 개혁주의가 (3)의 견해는 세대주의가 취한다.

 

세대주의자들은, (1)의 견해가 인용하는 구절은 ‘성전 중건’에 대한 구절이지 ‘예루살렘 성’의 중건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70이레 시점을 B.C. 444로 잡는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세대주의자들의 반론을 반박한다.

 

첫째, 70이레의 시작은 고레스 칙령부터 계산하여(대하 36:21-22) 이스라엘의 포로시대가 끝나고 예언의 성취가 시작된 시기인 B.C. 538/539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점을 B.C. 444로 잡으면 다니엘이 회복의 예언을 받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한 B.C. 537년과 무려 93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루살렘 성’과 ‘성전’ 중건 명령은 동시적인 것이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기간은 ‘문자적 기간’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벨론 포로 기간의 70년은 문자적으로 70년이 아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바벨론의 멸망 시기는 B.C. 539년이다. 그런데 70년의 시점이 여러 가지다.

-B.C. 612년 니느웨의 함락 시기로 보면 73년이다.

-B.C. 605년은 갈케미시 전쟁이나 느부갓네살의 왕위 계승 시기이므로 B.C. 539년까지는 66년이다.

-B.C. 597년의 포로 시작 시기부터 계산하면 58년이다.

-B.C. 586년의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과 성전 파괴 시기부터 계산하면 47년이다.

어떤 학자들은 70년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던 해부터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해까지의 기간인 B.C. 586~516년으로 계산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벨론의 1차 침입이 시작된 B.C. 605부터 고레스의 칙령으로 인한 1차 귀환 시점인 537년으로 계산한다. 전자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사적 의미'로, 후자는 유다의 실제 포로 기간을 강조한 '역사적 의미'로 해석한 것인데, 대체로 후자의 견해가 많은 지지를 받는다. 후자의 경우에도 정확하게 말하면 68년이나 69년이다. 이 경우에도 ‘문자적 70년’은 아니다.

 

그렇다면 70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한번도 안식년을 지킨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70년의 포로 기간은 그들이 490년 동안 지켜야 했던 70번의 안식년을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한꺼번에 지키게 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무리가 많다.
포로 기간의 시점을 B.C. 605년이라고 할 때, 여기에 490년을 더하면 605+490=1,095년이 된다. B.C. 1095년은 다윗(재위 기간 B.C. 1077~1037년)과 이스라엘의 착한 왕들인 솔로몬, 여호사밧 등의 치세 기간을 훨씬 앞선다. 이런 시기에도 이스라엘 (또는 유다) 백성들이 안식년을 한번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더군다나 <카일 & 델리취 주석>은 사사 시대에조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켰다고 주장한다(역대하 36:21 주석).

 

일반적으로 “70”은 하나님의 진노의 기간, 하나님의 방문하심이 있기 전의 황량한 기간을 의미하므로 굳이 ‘문자적 70년’은 아니다.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대하36:21-2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슥 1:12).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사 23:15).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겔 4:6-8)에 의하면, 이스라엘 족속의 범죄 기간 중 왼쪽으로 눕는 기간은 390일이고 오른쪽으로 눕는 기간은 40일이다. 하루를 일년으로 잡으면 4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 70년도 정확한 기간이 아니다. 3차 공격으로 남유다는 B.C. 586에 완전히 멸망했고, 1차 본토 귀환 시기는 B.C. 537년으로 49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숫자를 문자적이 아니라 ‘전환적인 사건’에 맞추어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69이레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다.

 

“예순 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 9:26)

 

개혁주의자나 세대주의자는 70이레 시점이 다르고 계산법이 다소 다르지만 69이레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건으로 이해한다.  7 이레와 62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메시야가 돌아가신다. 여기서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자연사가 아니라 처형된다는 말이다. “한 왕”은 A.D. 70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파괴한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이고 “백성들”은 로마 군사들을 가리킨다.

 

문제는 마지막인 ‘70번째 이레’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27절의 ‘그’가 누구인가가 먼저 해석되어야 한다

 

단 9:27절의 “그”는 누구인가?

 

-메시야인가 적그리스도인가?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confirm), 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27절에서 행동의 주체인 “그”(He)라는 주어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없지만 이후의 동사들이 남성 단수이므로 “그”(He)라고 넣어서 해석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는 말하는 “그”는 누구인가? 26절에 의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메시야도 될 수 있고 ‘한 왕’으로 해석하여 최종말에 재생한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세대주의는 ‘그’를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이들은 69번째 이레와 70번째 이레 사이에는 시간적 공백이 있는데 그 기간은 괄호의 시대인 교회 시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의 대전제는 다니엘의 예언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고, 미래 해석법에 의해 7년 대환난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가정해 놓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괄호의 시대인 교회가 휴거된 후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인 이스라엘과 마지막 한 이레인 7년 동안 언약을 맺고 제3 성전 건축을 허락한다.  이후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란 구절을 볼 때 제3성전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상상하여 해석한다.
 

세대주의는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인 후 3년 반에 ‘제사를 금지하고,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한다’는 것은 마 24:15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의미 즉 적그리스도가 제3 성전에 자리하고 하나님 행세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7년 대환난 마지막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적그리스도에게 임한다고 해석한다.
 

세대주의자들은 27절의 “그”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하기 위해 다니엘 7, 8장의 적그리스도인 안티오쿠스 왕을 억지로 끌어와서 해석한다. 이들은 7년 대환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곱의 환난의 때’(렘 30:7)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27절의 “그”를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을 들어본 사람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교계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세대주의 종말론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떤 성도가 예장 합동 계열의 이단 전문가에게, “27절의 ‘그’가 예수라는 해석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이 분의 대답은 책망 일변도로 답변했다.

“27절의 그는 적그리스도다.
어디서 그런 잘못된 말을 듣고 왔느냐?
안식교에서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도 종말론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E. J. Young, 간하배, 박윤선 같은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이 “그”를 메시야로 해석했고 요즈음 현역인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G.K. Beale, Vern Poythress 및  Sam Stormes, Kim Riddlebarger 같은 무천년주의자들이 “그”를 메시야로 해석한다.
 

그런데 개혁주의 계통인 고신대의 모 교수는 “그”를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끊어졌던 그’ 즉 ‘죽임을 당했던 메시야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고 반문하는데, 27절을 26절의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7절은 26절의 시간적 연속이 아니라 앞의 구절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병행 구절로 이해하면 “그”는 ‘메시야’이다.

 

-히브리 운문의 평행법 문학 구조

 

개혁주의는 왜 27절의 “그”를 메시야로 해석하는가?

26절과 27절을 ‘시간적 연속 사건’으로 해석해도 “그”를 적그리스도나 메시야로 해석하는 것은 임의적이다. 26절에 매시야도 나오고 한 왕인 적그리스도의 모형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27절은 ‘시간적 연속 사건’이 아니라 26절의 ‘반복이나 설명’으로 이해하면 그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히브리 문학 형식 중에서 시편과 같은 운문(韻文)은 평행법이란 독특한 문학 구조를 갖고 있다. 평행법은 한 줄이나 한 행이 다른 줄이나 행과 대구를 이루는 것이다.


(1) 동의적 평행법(Synonymous parallelism. 同義的 平行法).
 

이 구조는 첫 구절의 사상을 둘째 구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시법이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시 3:1).
 

여기서 ‘대적’과 ‘치는 자’, ‘많은지요’와 ‘많소이다’는 서로 동의적 평행을 이룬다.

 

(2) 대조적 평행법(Antithetical parallelism. 對照的 平行法)
 

첫 구절의 사상과 대조되는 구절을 둘째 구절에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시 20:8).
 

‘그들’과 ‘우리’, ‘엎드러 지고’와 ‘바로 서도다’는 서로 대조된다.

 

(3) 종합적 평행법(Synthetic parallelism. 綜合的平行法)
 

첫 구절의 사상을 둘째 구절에서 반복, 확장, 또는 상세하게 설명하는 형식이다. 첫 구절에서 완성하지 못한 사상을 둘째 구절에서 완성하는 방법이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시 92:9).

 
여기서는 둘째 구절이 첫 구절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니엘 9장 26절과 27절은 종합적 평행법을 이룬다. 27절은 26절의 ‘메시야’의 활동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리고, 또한)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렇게 해석할 때, 26절의 메시야가 끊어지는 기간과 메시야가 사역을 시작하는 기간이 다소 중복된다. 물론 이렇게 해도 27절의 “그”가 하는 일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적그리스도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메시야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의 주장을 보자.

 

-메시야가 맺은 언약인가, 적그리스도가 맺은 언약인가?
 

그 다음, 27절의 “그”가 메시야이신 이유는, 다니엘이 받은 예언인 24~27절은 적그리스도가 맺는 언약이 아니라 메시야가 맺는 언약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27절).

 

언약을 굳게 맺는다’는 말은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언약을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가바르는 ‘기존의 언약을 확인하다’(confirm), 기존의 언약을 팽배하게 하다(prevail), 기존의 언약을 굳게 하다(make it strong)는 뜻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히, 베리트 covenant)이란 단어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과 연관된 단어이다. 마귀의 세력이 ‘언약’을 체결한 적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마귀는 모든 것을 사기와 불법으로 강탈하는 것이지 언약을 체결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에 의해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회복하시는 것을 ‘언약을 확인하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언약이라고 해석한다(렘 31:31; 히 8:8). 물론 이런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언약을 확인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던 언약을 확인하고 확장하는 것'이므로 '미래에 대한 예언인 새언약을 확인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메시야의 사명은 ‘새 언약’을 통해 ‘옛 언약’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24절).

 

위의 내용은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적 표현들’이다. 다음의 구절들을 비교해 보라.

 

“43. 그들이 내 법도를 싫어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그 땅은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리라 44.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레 26:43-4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메시야의 구속사역으로 제사 제도는 폐기 되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27절 중).

 

‘이레의 절반’은 예수님의 공생애부터 십자가 구속사역까지 3년 반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십자가 구속사역을 통해 구약의 제사 제도를 폐기하셨다. 이것은 새 언약으로 옛 언약을 굳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 8:6,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1).

 

예수님이 새 언약을 통해 제사 제도를 폐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 유대인들이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27절 중)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A.D. 70년의 제2성전 파괴를 통해 이제는 우상에 불과한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셨다.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27절 하).

 

그러므로 “그”를 적그리스도로 잘못 해석하고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27절 중)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마 24:15)로 잘못 연결하여, 마치 적그리스도가 제3성전 건축을 허가한 것처럼 상상력을 발동하여 제3 성전 건축을 당연시 하는 것은 건전한 성경 해석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나 ‘성도’가 ‘성전’이다. 더 이상의 ‘인위적 성전’은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 자체이시고(요 1:19-2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전의 기능이 중지되었고(히 8:1-2; 9:9-10), 교회와 신자 각자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데(고전 6:19), 왜 인간이 만든 제3성전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또한,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을 성지(聖地. Holy land)나 성시(聖市. Holy city)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나 성령이 계시는 곳이 거룩한 곳인데 지금의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에 구약처럼 하나님이 계시는가? 한때 성지나 성시였을지 모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더 이상은 아니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0-24).

 


더군다나 오늘날 제3성전 건축을 주관하는 단체는 정통 유대인이 주관하는 산헤드린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단체요 초대 교회를 가장 심하게 핍박한 자들이 계승자들이다. 이들은 신약 성경을 인정하지 않고 초림 예수가 자기들이 기대한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고 해서 잡아죽인 자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구약 대로 지금 제3성전을 지을 계획을 모두 세워놓고, 제사장을 훈련시키고, 구약의 희생 제물인 붉은 송아지를 양육하고 있고, 재림 예수가 아닌 자기들이 세운 ‘정치적 군사적 메시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메시아닉쥬도 산헤드린이 제3성전 건축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세대주의자나 메시아닉쥬는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므로 제3성전에서 ‘속죄 제사는 드리지 않고 ‘기념 제사’만 드린다고 한다.

 

성경에 이런 말이 어디 있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신학의 산물이다. 왜 신약의 신자들이 그들의 잘못된 주장에 놀아나야 하는가? 성경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브래드 TV의 김종철 감독은 『제3성전』이란 영화로 재미를 보았는지, 요즈음은 아예 ‘제3성전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제3성전’에 대한 기사를 시시콜콜히 뉴스로 전하고 ‘구약의 절기’를 강조하는 메시아닉쥬들을 계속 발굴하여 인터뷰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한심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절기는 ‘여호와의 절기’이기 때문에 모든 신자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도 모르고 건전한 해석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구약은 ‘감추어진 예수’를 기록하고 신약은 ‘드러난 예수’를 기록한다. 성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다(눅 24:27, 44; 요 5:39).

 

구약 성경은 예수를 통해 성취된 신약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통해 분명히 폐기하신 ‘구약의 절기’를 오늘날의 성도들 모두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을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도자, 안내자)이자 예표이자 그림자에 불과한 구약의 율법을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가르침 보다 우위에 놓는 것은 회복(Restoration)이 아니라 쇠퇴나 회귀(Regression)에 불과하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열심히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다(롬 10:1-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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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국
서울대와 웨스트민스트 신학교 유학 및 미국과 카나다 토론토에어포트 교회 등 최근의 영적 부흥의 현장에서 사역한 경험으로 많은 책을 저술하고 영성사역을 하고 있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신학자요 영성가인 목사님답게 종말론의 최대 난제인 이 문제에 대한 여러신학적 견해와 원문인 히브리어 문장구조 분석으로 바른 해석을 하고 있어 그간의 견해의 오류를 밝히고 바른 해석을 시도하고 있어 다음 내용이 기대가 됩니다.
(2016-12-26 2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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