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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⑥] 요한계시록과 천년 왕국(3)천년 왕국은 문자적으로 존재하는가?: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비교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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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0  16: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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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⑥]

 

요한계시록과 천년 왕국(3)

- 문자적 천년 왕국이 존재하는가? :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비교 -

 

   
 

 

본문 : 계 20:1-10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들어가는 말

 

종교의 유무, 종교의 종류와 상관 없이 사람들은 이상향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늘 환난과 고난의 연속이고 불평등과 불의가 자행되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는 16세기 당시 영국의 불평등을 목격한 후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토머스 모어의 저서《유토피아》에서 묘사되는 상상의 섬의 이름이 바로 '유토피아'이다.

 

누구나 일을 하기 때문에 하루 노동 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무료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2년 농사를 지을 의무가 있다. 간통을 하거나 섬에서 탈출하려고 기도한 자는 자유인의 권리를 잃고 '노예'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일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고 같은 시민이었던 옛 동료들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토머스 모어가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유토피어를 묘사했지만 여전히 ‘자유인’과 ‘노예’의 불평등이 있는 나라이다.

 

공산주의자들도 이상향을 꿈꾸었다.

착취와 불평등으로 얼룩진 자본주의의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고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가 되고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에 이르면 세상의 낙원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공산주의는 멸망했다. 인간의 죄성, 자유와 평등의 분별력 상실, 지도자의 부패와 무능으로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을 알거지로 만들더니 결국은 무너져 버렸다.

노동자 천국을 만들겠다는 공산주의는 극소수의 지도자들이 온갖 권력과 부정을 일삼고 노동자 지옥을 만들더니 결국은 무너져버렸다. 자본주의는 일부를 부자로 만들지만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을 거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제시한다.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佛國土)를 가면 있다고 하는 이상향으로, 참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하면 죽어서 극락에 태어난다고 한다. 극락에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으며 어떤 번뇌와 괴로움도 없이 평안하고 청정한 세상이다.

 

이슬람교에도 이상향 즉 천국이 있다.

이슬람의 낙원에는 썩는 일이 없는 물이 흐르는 하천과 맛이 변하지 않는 우유가 흐르는 하천, 달콤한 술이 흐르는 하천, 그리고 맑은 꿀이 흐르는 하천이 있다고 한다. 이슬람에서는 이 세상에서 금하는 것들을 낙원에서는 아무 지장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는 술을 금했으나 천국에서는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 이슬람의 천국에서는 72명의 미녀들이 온갖 좋은 술과 산해진미를 준비해 놓고 침상에서 반쯤 드러누워 천국에 온 사람에게 온갖 서비스를 베푼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난과 불평등에 찌든 이슬람의 지하드들은 가슴에 폭탄을 두르고 히죽히죽 웃는 모습으로 자폭한다고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면 지상에서 누리지 못한 쾌락과 물질적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천국관은 어떠한가?

유대인의 천국은 바벨론 포로 이후 바리새인들 중심으로 주장해 온 ‘다윗의 자손’이 메시야가 되어 다스리는 ‘메시야 왕국’이다.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이자 군사적 메시야이다.

 

강대국에게 워낙 오랫동안 지배 당한 유대인들은 다윗 왕처럼 정치적 군사적 역량을 겸비한 메시야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강대국의 압제에서 건져내고 경제적 풍요를 주는 메시야를 꿈꾸어왔다.

 

예수님의 초림 당시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런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이미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된지 60년이 된 시점이라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으며 이때 즈음에 무장 봉기 세력인 ‘열심당’(熱心黨), 즉 젤롯당(Zealot黨)이 창설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시로 크고 작은 독립 운동을 치르면서 가득 이나 힘들게 사는 다수의 유대인들을 로마 제국의 위협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열심당원의 열심과 독립 투쟁의 절정은 A.D. 70년 예루살렘 성과 제2성전 파괴, A.D. 73년 ‘마사다’ 960 인의 자결, 인간 메시야로 추대된 바르 코크바를 통한 대(對) 로마 항쟁과 이스라엘의 멸망(A.D, 135)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심당원들을 영웅시 하지만, 만일 당시에 그들의 무력 항쟁이 없었다면 예루살렘 성과 제2성전, 이스라엘 국가와 예루살렘이라는 이름 자체는 존속되었을지 모른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어 가는 과정이었으므로 초기에는 대부분의 교부들이 유대인들의 종말론을 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을 중심으로 문자적 천년왕국설을 버리고 무천년설을 주장하면서 천주교와 종교개혁가들이 이 주장을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세대주의자나 메시아닉 쥬는 어거스틴의 무천년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떻든 오늘날의 정통 유대인들은 제3성전 건축 준비를 마치고 ‘다윗의 자손’인 정치적 메시야가 금방이라도 나타나서 자기들을 메시야 왕국으로 인도하기를 꿈꾸고 있다.

 

오늘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메시아닉 쥬의 천국관도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정통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인간 메시야’가 아니라 ‘재림 예수’가 자기들을 문자적 천년 왕국으로 인도하여, 자기들(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다스리는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과 낙원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이들과는 다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주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산 자는 그대로 휴거되어 영체-부활한 몸-로 변한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과 같은 중간 지대는 필요가 없다. 신자에게 중간 지대가 있다면 그곳은 낙원이다(눅 16:19-32; 23:43; 고후 12:4) .

 

예수를 믿고 죽으면 낙원에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음부로 간다. 낙원은 천국 대기소이고 음부는 지옥 대기소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자는 ‘영생의 부활’로,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나서(요 5:29), 심판을 받은 후 신자는 천국에 가고 불신자는 지옥에 간다(계 20:11-15).

 

물론 우리 세대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살아있는 신자는 공중으로 휴거되어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살전 4:16-17; 고전 15:50-52).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먼저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마 24:14).

 

2015년 현재, 세계 인구 73억 중 32억 명이 복음을 들었다. 미전도 종족 6,817개 지파로서 41억 명이다. 2020년에 미전도 종족이 없어져서 모든 족속이 복음을 듣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때 예수님이 재림하실까?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말의 정확한 뜻을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예측해 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우주의 종말’보다는 ‘개인의 종말’에 더 관심을 갖고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일상 생활에 임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난 글에 이어 ‘문자적 천년 왕국’이 왜 상상의 왕국인가를 살펴 보자

 

 

3. 사탄의 결박 시기가 예수님의 초림 때인가, 재림 때인가?

 

전천년주의자들에 의하면, 사탄의 결박은 예수님의 재림 이후 천년 왕국 시작 직전에 이루어진다(계 20:1-3). 이들에 의하면 계시록 20장 자체가 재림 이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초림 때에 사탄을 결박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8-29).

 

계시록과 마태복음(막 3:27도 사용)에 사용된 ‘결박하다’는 단어는 모두 헬라어 ‘데오’이다.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천년’이란 단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먼저 성경 여러 군데에서 사용하는 ‘데오’라는 간단한 단어부터 먼저 해석했어야 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이 구절에서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 나라-왕국(The Kingdom of God)-가 이미 임했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간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금식 후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기 때문이다(마 4:1-11 참조).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왕국-가 이미 임하였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간다고 말씀하신다.

 

 

반대자는, 사탄이 결박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는 찾느냐(벧전 5:8)고 반문한다. 그래서 사탄은 초림 때에 일시적으로 결박 당하지만 재림 때에 온전히 결박 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결박하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사탄은 비록 결박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또 한 번 치명타를 입었지만(골 2:14-15), 여전히 이 세상의 임금이요 이 세상 신이다(엡 2:2; 고후 4:4; 요일 5:19).

 

그러나 구약에서처럼 이스라엘을 제외한 온 세상을 미혹하는 영이 아니라 신약에서는 세력이 제한된 영이다. 이미 결박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심판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한 심판은 무천년설이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전천년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사탄 결박과 천년 왕국의 사탄 결박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식으으로 문자적, 단어 중심적으로 해석하면 사탄의 패배가 너무나 많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12-14장 : 계 12장에 하늘에서 사탄의 세력이 미가엘에 의해 패배한 사건이 나오고, 13장에 마귀의 하수인인 짐승이 등장하고,  14장에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큰 추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큰 포도주 틀에서 시행된다.

15-16장 : 15장 2절에 또 짐승을 이긴 자들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16장13절에 또 사탄의 삼위일체가 등장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멸망된다.

17-19 장 :  17장에 또 14장에서 멸망한 바벨론과 음녀가 등장하고 짐승도 등장한다. 18장은 이미 14장에 기록된 바벨론의 멸망을 자세히 기록하고, 19장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공중에서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고, 땅에서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잡혀 산 채로 유황불에 던져진다.

20-22장 : 20장은 사탄의 삼위일체의 대장인 사탄이 결박되었다가 천년 후 잠시 놓여나서 열방을 미혹하다가 패배하여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는 기록이 나온다.

 

즉 계시록은 적어도 4 군데에서 사탄의 결박과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니라 동일한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은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가 심판 받은 것이고, 20장은 사탄이 심판 받은 것으로서 다른 심판이라고 해석한다. 단어만 다르면 다르게 해석하는 전형적 오류이다. 사탄의 삼위일체는 수사적 표현이지 그것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짐승이나 거짓 선지자는 사람 뒤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역할을 다른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즉 사탄이 정부 지도자에게는 짐승으로, 거짓 종교 지도자에게는 거짓 선지자로 역사하는 것이다.

 

조지 래드도 세대주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비판하면서 19장과 20장의 사탄의 심판을 이중적으로 해석한다. 계시록을 주제별 반복이 아니라 시간 순서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맥적, 주제별로 보면 12장, 15장, 17장, 20장으로 시작되는 삽경에 등장하는 짐승, 거짓 선지자 또는 사탄의 심판은 동일한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반복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20장은 19장의 연속이 아니라, 또 다른 에피소드의 시작 부분인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기록이다.

 

 

4. 성경의 자연스런 읽기와 ‘히브리 문학 구조’-

'시간적 연속 사건'이냐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이냐?

 

전천년주의자들은 성경을 자연스럽게 읽으면 예수님의 재림 후 천년 왕국이 오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럽게? 그렇다. 생각 없이 얼른 읽으면 맞는 것처럼 보인다.

 

19장의 예수님의 재림과 혼인 잔치는 분명한 재림 사건이다. 그리고 난 후 20장에 천년 왕국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재림 후 천년 왕국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한번 읽고 얼른 해석이 되는 구절이 많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나 한번 얼른 읽고 대충 해석하면 의미를 잘 모르는 구절도 많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오늘날의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 구절을 쉽게 해석한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까지 교회는 1500년 동안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 해석했다.

 

그래서 늘 죄를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을 그렸다. 그러다가 성령의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의라는 깨달음이 왔다. 이신칭의로 대표되는 종교 개혁의 시작이다.

 

*계시록은 카이애즘 구조로 되어 있다.

 

계시록 20장의 천년 왕국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읽으면 계시록 20장은 이전의 19장의 시간적 연속 사건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계시록의 사건들, 특히 4장에서 19장까지의 사건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듯 시간적 연속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주제별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계시록 내용을 '시간적 연속 사건들'로 이해하면 천년왕국주의자가 되고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으로 이해하면 무천년주의자가 된다.

 

계시록을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런 읽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구조의 연구에 의해 발견된다.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구조 중의 하나는 강조하는 단어나 구절을 중간에 위치하는 카이애즘 방법이다. 헬라 논리는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서두에 두는 두괄식, 마지막에 두는 미괄식 및 혼합식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 약식을 강조점을 중간에 두는 경우가 많다.이것을 헬라어 카이 (K), 영어 K,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카이애즘(Chiasm), 키아즘 또는 교차 병행구조라고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2~14장은 은사장이자 사랑장이다.  고전 12장은 은사의 종류에 대해 기록하고, 13장은 사랑장, 14장은 은사 사용법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13장의 역할은? 은사를 구하거나 사용할 때 사랑의 동기로 하라는 말이다. 사랑장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좀 복잡하지만 계시록 4-22장은 동일한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6개의 삽화, 또는 삽경(揷景)을 기록한 책이다. 한 삽경 마다 초림과 재림 사이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은 초대교회 시대의 사건을 많이 기록했지만 뒤로 갈수록 종말의 시대를 강조하고 마지만 삽화인 20~22장은 최종말과 천국에 대해 기록한다. 이런 것을 점진적 병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이라고 한다.

 

 

사건이 바뀔 때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또 내가 보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헬라어 kai ,즉 영어의 and, now로 변역된다. 이 단어 도한 시가 순서라기 보다는 다른 장면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이지만 화면의 특성상의 제한으로 시청자는 시간 순서로 시청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동일하거나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의 사건이나 환상도 마찬가지로 한 사건이나 환상은 시간 순서일 수 있지만 “또~”로 연결되는 환상은 반드시 시간 순서가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반복적으로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언약신학자 즉 개혁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3대 개혁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 윌리암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 및 번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 등이 주창하고 한국에서는 권성수, 조성호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조성호는「복과 영광으로 가득 찬 요한계시록」에서 카이애즘(키아즘)에 의한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카이애즘을 기초로 한 점진적 병행법에 의하면, 계시록의 1-3장, 4-7장, 8-11장, 12-14장, 15-16장, 17-19장, 20-22장은 모두 동일하게 초대교회와 종말의 사건을 기록하는데, 초기의 장들은 초대교회 시대의 사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후기의 장들은 종말의 사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한다. 물론 사람마다 분류법이 다소 차이가 있다.

 

계시록의 큰 사건 하나 하나가, 비록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성행하여 신자들이 핍박과 고통을 받지만 종말에는 의인이 반드시 승리하고 악인은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점진적 병행법의 의해 반복되는 7개 그룹은 다음과 같다.

 

 
   
 



(1) 1-3장: 소아시아의 7교회

 

요한이 환상을 통해 본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이다. 그러므로 이 일곱 교회가 시간 순으로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를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 교회를 상징한다기 보다는 일곱 교회 전체가 교회 시대의 각 시대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이다.

 

 

(2) 4-7장: 7인 재앙
 

7인의 환상에 대한 기록이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책을 받아 7 인을 떼서 7인 재앙을 세상에 내리신다. 세상에서 고난 받고 핍박 받던 교회가 어린 양의 승리에 동참한다.

 

(3) 8-11장: 7 나팔 재앙
 

7 나팔 재앙을 묘사한다. 특히 9장은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하여 하늘에서 떨어진 한 별을 대장으로 하는 귀신들의 활발한 활동을 묘사한다.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두 증인은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짐승과 싸웠지만 역부족하여 사망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다(11장).

 

(4) 12-14장: 여자, 용 및 짐승들
 

교회를 상징하는 여인이 아들 그리스도를 낳는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지만 오히려 십자가의 보혈에 패배하여 하늘에서 쫓겨나 이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인 그리스도인을 대적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한다. 또한 용의 사주를 받은 짐승이 열 뿔 권세를 휘두르며 세상의 정부와 단체를 통해 성도들과 싸우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지만(13장), 결국은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의 승리로 끝난다(14:14-16).

 

(5) 15-16장: 7 대접 재앙
 

7 대접 재앙을 묘사한다. 귀신의 영(들)이 사주를 받아(16:13-16)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여 죄악과 우상숭배로 타락한 큰 성이 무너진다(16장).

 

(6) 17-19장: 바벨론과 짐승의 멸망
 

어린 양이 백성과 열국과 무리를 유혹하여 음행하게 한 짐승과 음녀를 대항하여 싸워 이긴다(계 17:14). 무너진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가 되고(계 18:2) 바벨론은 영원히 멸망했으며 천국에서는 찬양과 함께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예비된다(계 19:1-10). 이때 하늘이 열리며 신랑되신 예수께서 종말론적인 용사이신 하나님으로서 천국천사를 거느리고 백마 타고 오셔서 맹렬한 진노를 만국을 다스리시며(계 19:11-16),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혀 유황 불못에 던져진다(계 19:19-20).

 

(7) 20-22장: 사탄의 결박과 놓임, 천국-새 하늘과 새 땅
 

옛 뱀이요 사탄이자 마귀인 용이 예수님의 40일 금식과 공생애 사역을 통해 결박되어 힘을 많이 잃었지만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잠시 놓여 만국을 크게 미혹하다가 마침내는 사로 잡혀 유황불 못에 던져진다(20장).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여 구속 받은 백성들이 모두 애통도 눈물도 없는 그곳으로 들어가서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저희와 함께 하셔서 세세토록 기쁨과 평강을 누린다(계 21). 생명수가 흐르는 그 성에는 다시는 저주가 없다(계 22장).

 

 

이러한 해석법에 의할 때, 계시록은 비록 사탄이 잠시 동안 승리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패배하여 지옥의 불못에 던져지고 교회는 승리할 것이므로, 신자들은 비록 현재 어떠한 핍박을 받더라도 신앙을 버리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점진적 병행법에 의해 계시록을 해석할 때 문자적 천년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시록의 기록이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이냐, '시간적 연속 사건'이냐의 문제는 신학적 전제(前提)나 패러다임에 관한 문제이다. 전자를 선택하면 문자적 천년 왕국은 없는 것이고 후자를 선택하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와 ‘불분명한 구절은 분명한 구절에 의해 해석한다’는 대전제에 의할 때, 점진적 병행법에 의한 해석은 다른 성구들(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임함과 사탄의 결박, 재림 직후의 현상에 대한 기록 등)의 지지를 받지만 시간적 연속 사건으로 해석하여 ‘천년 왕국’의 존재를 지지해주는 다른 구절들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대표적인 주창자인 조지 G. 래드도 천년 왕국에 대한 개념이 계시록 20장 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런데 계시록의 사건들을 시간적 연속 순서로 해석하다 보니 계시록 19장에서 명확하게 기록된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등장하는 20장의 ‘천년 동안 다스린다’는 구절을 문자적 천년 왕국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천년설처럼 계시록의 기록을 동일한 사건들의 반복으로 해석하면, 계시록 20장~22장은 동일한 사건의 마지막 7번째 기록이기 때문에 또 다시 초대 교회부터 교회 시대 전체의 기록이 된다.

 

 

이런 해석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왕국-의 임함, 예수님의 초림 때 사탄을 결박하신 것, 예수님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 재림 이후 천지가 불에 타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는 것과 같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 결과 당연히 ‘천 년’이란 기간은 10x10x10의 완전수의 상징적 기간이 되고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중간인 천년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점진적 병행법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 20장1절은 헬라어 접속사 카이(kai)로 시작되는데 어떻게 앞 장과 구별되는 새로운 내용인가, 7인, 7나팔 및 7대접 재앙은 연속되는 사건인데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을 구분되는가 라는 반문이 제기된다.

 

전문적인 설명이지만, 헬라어 카이가 일반적으로 And(~와, 그리고)로 번역되어 앞 글과의 연속을 나타내지만 문맥에 따라 Then이나 Now로 해석되어 앞 글과의 전환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어 성경 중에서도 NKJV이나 RSV는 ‘Then’으로 NIV나 NASB는 ‘And’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다른 성경 구절들은 많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나 기타 전천년설이 주장하는 문자적 천년 왕국은 성경이 아니라 인간의 신학에 의해 탄생한 가상의 나라에 불과하다.

 

 

 

5.  천년 왕국의 거주민들은 누구인가?

 

전천년주의자들의 치명적 약점은 천년 왕국의 거주민들에 대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천년 왕국의 거주민들은 누구인가?
 

세대주의자들은, 7년 환난 전에 휴거한 성도는 몸이 변한 영체로 공중에서 예수님과 혼인 잔치를 즐기는 동안, 지상에서 7년 동안 혹독한 환난을 이기고 구원받은 다수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동시에 천년 왕국의 거주민이 된다고 한다.

 

즉 휴거 되어 영체가 된 신자들은 주로 천국에 거주하고 지상의 천년 왕국에는 중생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영체가 되어 천국에 사는 이방인들은 지상에서 재판 할 때 가끔씩 내려와서 왕 노릇한다고 한다.

 

 

또한, 전천년주의자들은 중생한 자들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 중 일부가 천년 왕국 마지막 때에 사탄의 미혹에 빠져 곡과 마곡을 전쟁을 일으킨다고 한다. 재림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고, 사탄도 결박되었지만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여 마지막에 사탄과 결탁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한다.

 

얼른 들으면 너무 그럴듯한 말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황당한 주장들이다. 어떻게 해서 우연히 구원 받은 이방인의 교회는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살고, 하나님의 눈동자인 유대인은 중간 지대인 천년 왕국에서 사는가? 그리고 왜 굳이 천년이란 인턴 기간 후에 천 년으로 가는가?

 

 

*다른 전천년주의자들의 거주민에 대한 불확실성

 

환난 전 휴거를 부인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나 메시아닉쥬 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천년 왕국 거주민의 정체성은 세대주의자들 보다 더 황당하다.

 

이들에 의하면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은 거의 동시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신자들은-죽은 자와 산자든-모두 휴거되어 부활의 몸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지상에서는 대 심판이 내려져서 살아남는 불신자는 아무도 없다. 즉 대 심판 후에 살아남은 자는 휴거 된 신자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조지 래드는 천국 왕국의 거주민은 ‘신자로서 환난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이라고 한다.

 

계 20장 4절

-순교를 한 사람들의 영혼(첫째 부활)
-짐승표를 받지 않고 환난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자들

 

누가 환난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자들인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은 환난 후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어떻게 신자로서 휴거되지 않고 중생한 신분으로 살아 남아서 지상의 천년 왕국에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적, 신학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세대주의자들은, 만일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동시적 사건이라면 계시록에 기록된 그 많은 심판이 어떻게 순간적으로 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조지 래드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조지 래드의 주장 대로 라면 환난 중에는 사탄의 핍박과 하나님의 심판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메시아닉 쥬인 아셀 인트레이터는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는 적어도 15일 정도의 시차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메시아닉 쥬 답게 구약의 절기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나팔절-속죄일-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1일-10일-15일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나팔절에 교회가 휴거-부활-되고 이후 ‘문자적 8일 또는 상징적 8일’ 동안 하나님의 진노가 땅에 임하며, 속죄일에 은혜의 영이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한 후,  8일 후 초막절에 천년 왕국 입국식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휴거와 하나님의 대심판 및 지상 재림을 통한 천년 왕국 입국 사이에 약 15일 정도-문자적 기간인지 상징적인 기간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휴거된 후 중생한 사람들이 천년 왕국의 거주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셀 인트레이터는 천년 왕국의 거주민을 4가지로 분류한다.

 

-예수님의 재림 당시에 첫째 (몸이) 부활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천년 왕국에서 주된 역할을 하면서 다스린다.

-둘째 부활 (심판의 부활)때까지 심판 받지 않은 불신자들

-첫째 부활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백보좌 심판 때에 (몸이)부활한다.

-마지막으로, 천년 왕국에 거주하는 신자와 불신자들

이 사람들은 특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 즉 첫째 부활을 한 사람들이 다스린다.

 

복잡하다!

결국 그들이 기대했던 천년 왕국에도 오늘날처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산다. 다만 부활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주제가 있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이 무엇인가?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6, 13-14).

 

첫째 부활이 있으면 둘째 부활이 있을 것이고, 둘째 사망이 있으면 첫째 사망도 있을 것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첫째 부활'은 영적 부활인 '중생', '둘째 부활'은 '몸의 부활'로 해석한다. '첫째 사망'은 '육적 사망'이고 '둘째 사망'은 최후의 영적 사망 즉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사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전천년주의자들은 '첫째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시 일어나는 '생명의 부활',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 즉 ‘둘째 사망’으로 해석한다.

 

천년 왕국의 거주민에 대한 주장으로 돌아가자.

 

메시아닉 쥬는 부활한 성도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지상의 천년 왕국에서 같이 거주한다고 한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몸으로 이 땅에 사신 적이 있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 살아난 수많은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부활한 사람과 중생한 사람이 섞여서 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이 지상에서 짧은 기간 산 것과 부활한 수많은 사람과 그외의 수많은 사람이 섞여 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부활한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하고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사람들이지만 중생만 한 사람들은 환경이 지금 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공의 제한을 받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부활한 사람은 생각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금방 가는데, 중생한 유대인들은 그 당시 첨단 교통수단이라 해도 일일이 가서 타고 내려야 한다.  누가 더 수준 높은 생활을 하는가? 부활한 이방 교회인가, 중생만 한 유대인인가? 이방인이 훨씬 더 수준 높은 생활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세대주의자나 유대인들은 천국에 바로 간다는 무천년주의자들의 주장을 부인하고, 굳이 천국의 예비 단계인 천년 왕국에 간다고 주장하는가? 왜 그들은 천국이란 더 좋은 것 준다는 사람을 비판하고 천국 보다 훨씬 못한 천년 왕국에서 만족하려는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세상을 한 번 휘둘러보겠다는 배타적 선민 의식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메시아닉 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생하지 않은 유대인도 천년 왕국에 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거듭나지 않아도 대종말의 심판도 받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천년 왕국에서 산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천년 왕국 기간 중에도 회심하는 자들이 생긴다는 말인가?

 

 그리고 성전 자체이신 예수님이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왜 인간이 지은 성전에서 기념 제사를 지낸다고 주장하는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사람들은 이해가 된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6. 전천년주의자가 말하는 천년 왕국은 실제로는 천국이다.

 

 

예수님이나 서신서도 ‘이 세상과 저 세상’, ‘이 세대’와 ‘올 세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눅 20:34-35).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히 6:5).

 

중간 시대인 천년 왕국에 대해 성경은 별도로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에 대해 조지 래드는 궁색한 논리를 전개한다.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점진적 계시의 측면에서 천년 왕국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말 장난에 불과하다. 천년 왕국처럼 중요한 사안을 구약이나 신약에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천년주의자들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왕국이기 때문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천년 왕국은 노아 홍수 대심판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홍수 심판 이전에 사람들이 천 살-1000년-가까이 산 것처럼 천년 왕국에서는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장수한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영혼만 통치하시는 기간이지만 천년 왕국 시대에는 영혼을 물론 육체적 재정적 욕구가 충족되는 이상향 같은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천년주의자들이 인용하는 구약의 구절들 천년 왕국이라기 보다는 천국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대표적인 세대주의자인 스코필드의 『스코필드 주석성경』은 이사야 65:17-25의 제목으로 “저주가 제거된 새로운 땅에 건립된 천년 왕국의 모습”(Millennial conditions in the renewed earth with curse removed)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17절-19절은 분명히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하는데 그 내용이 계시록 21:1-4과 거의 일치한다(계 21:1-4).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그런데 이런 내용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사 65:20-25)이 천국 보다 못한 천년 왕국의 모습을 그린 구절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다. 이사야는 65장에서 천년 밖에 지속되지 않은 시대가 아니라 영원한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해, 세대주의자나 메시아닉 쥬인 댄 저스트는, 이사야 65장20절에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는 말을 거론하면서, 이 구절은 영원한 상태가 아니라 천년 왕국의 모습을 그리는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댄 저스트는 구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천년 왕국을 말하기도 하고 천국을 말하기도 한다는 희한한 주장을 한다.

 

 

물론 사 65장20절의 해석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사야는 25장8절에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천국에서 죽음은 없다. 또한 65장19절에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기록한 것은 천국에는 죽음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29절의 표현은 문자적 표현이 아니라 새 땅에서는 ‘죽는 어린이가 없고 100세 이전에 죽는 노인이 없다’(20절)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주민들이 장수한다는 사실을 100이란 완전수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구약 당시에는 영생이란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기록한 것이다.

 

 

또한, 다음 구절들을 보자.

 

스코필드는 이사야 11:6-10의 제목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회복될 다윗의 왕국: 특징과 범위”(Davidic kingdom to be restored by Christ: its character and extent)이라고 붙이면서 천년 왕국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구절들에는 새 하늘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새 땅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 천년 왕국에 대하 기록이 아니다.

 

사 11:9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기록하는데, 세대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천년 왕국에도 나중에 불신자들이 존재하여 마지막에는 사탄의 하수인인 곡과 마곡-세대주의자들은 러시아라고 주장한다-과 연합하여 신자들을 향해 대전쟁을 벌인다고 주장하는가?

 

 

다음에는 에스겔 40장과 47장을 보자.

 

『스코필드 주석성경』은 에스겔에서 “천년 왕국의 성전과 예배”(The Millennial Temple and Its Worship)(겔 40:1-47:12)와 “천년 왕국 시대의 토지 분배”(The Division of the Land during the Millennial Age)(겔 47:13-48:35)란 제목을 달았다.

 

이 환상은 B.C. 500년 경, 바벨론에서 돌아올 포로들이 재건할 제2 성전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스코필드는 이스라엘이 천년 왕국에서 건립할 제3성전으로 이해한다. 물론 이 환상을 통해 미래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영광의 모습을 묘사하지만, 이런 구절들이 천년 왕국 시대에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가장 수용하기 어려운 주제는 천년 왕국의 성전에서 동물 제사 특히 속죄 제사(겔 43:18-27)를 계속 드려야 하는 것인가 이다. 그런데 스코필드 주석은 이 표현이 부담스러웠던지, 동물 제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만일 그렇다면 성전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메시아닉 쥬도, 예슈아(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기 때문에, 천년 왕국에서는 성전에서 속죄 제사는 드리지 않고 기념 제사만 드린다고 하는데 에스겔 43:18-27은 분명히 속죄 제사를 드린다고 기록한다.

 

18-26절가지는 속죄 제사에 대한 구절이고 마지막 27절에 감사제를 드린다고 기록한다. 문자적 해석과 문자적 성취를 강조하는 메시아닉 쥬가 속죄 제사는 드리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한 주장인가?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의 기록은 포로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좋았던 시절을 상기시키면서, 미래에도 그런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말들이므로 내용을 굳이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에스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의 환상(47장)은 계시록 22장의 강물을 연상시킨다. 특히 마지막의 겔 47:12은 계 22:1-2와 동일하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 47: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그러므로 에스겔 40장~48장은 천년 왕국이 아니라 천국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보자.

 

『스코필드 주석성경』은 이사야 2:1-4의 제목으로 “다가올 천년 왕국의 환상”(A Vision of the coming Kingdom)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다가올 천년 왕국에서는 전쟁이 없으므로 무기가 필요 없다(4절)고 한다.

 

그러나 세대주의 종말론에 의하면, 천년 왕국에서 전쟁이 영원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년 왕국의 마지막에 곡과 마곡의 대전쟁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구절도 천년 왕국이 아니라 천국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약의 천년 왕국은 실제로는 천국으 모습이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천년 왕국의 모습이 아니다. 계시록을, 주제별로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시간 순서로 해석하다 보니 천 년이란 단어에 부딪쳐서 무리하게 천년 왕국을 고집하다 보니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무천년주의자의 기적중지론 비판

 

종말론에 관계 없이 기적중지론자도 있고 기적계속론자도 있다.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들은 상당수가 세대주의 종말론을 따르지만 기적계속론의 입장이고, 존 맥아더와 같은 전형적인 세대주의자들은 대부분이 기적중지론자들이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 중에서도 기적중지론자가 있고 기적계속론자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메시아닉 쥬 중에는 기적계속론자들이 많다.

 

그런데 무천년주의자들 중에는 기적계속론자들이 드물다.

사실 무천년 종말론의 핵심은 영적 천년 왕국인데 영적 천년 왕국의 핵심은 이미 천년 왕국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특히 헤르만 리델보스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의 특징이 귀신의 제압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한 것이라고 해놓고 교회 시대에는 표적과 기사가 중지되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안토니 후크마도 리델보스의 천국의 특징을 인용하면서도 방언조차 부인하는 기적중지론자이다. 이 얼마나 모순된 주장인가?

 

이들이 성령의 외적 능력은 속 빼고 무천년설을 주장하니 비록 신학적으로는 옳은 주장일지는 모르지만 미지근하고 무미건조한 종말론이 되어 버린다. 교회 시대는 비록 환난과 핍박이 지속되지만 동시에 천국 축복의 일부를 누리면서 말씀과 기적을 통해 복음이 담대하게 전파되는 시기가 아닌가?

 

 

필자는 무천년설을 지지하지만 여기에 성령의 기적행하는 능력을 가미해야 성경이 말하는 제대로 된 종말론이 된다고 믿는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 2:17-18).

 

예수님의 초림과 성령 강림으로 종말은 신자들의 삶에 성큼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무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을 수용하는 장로교인들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수용하는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들에 비해 전도나 선교에 대한 열정과 긴박감,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이 희박한 것은 올 세대 즉 내세의 능력인 성령의 외적 능력을 부인하거나 과소 평가하기 때문이 아닌가

성령은 ‘올 세대의 능력’이기 때문에 성령에 사로잡히다 보면 금방이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 같은 긴박감이 들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말세에 즉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오순절 성령강림과 같은 성령을 계속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눅 11:13처럼 하나님께 성령을 계속 구하여서, 사탄의 핍박과 환난을 담대하게 이겨나가면서,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 *

 

 

주요 참고 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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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ce, Robert H. The Book of Revelation.
Pate, C. Marvin., ed. Four Views of the Book of Revelation.
Pentecost, J. Dwight. Things to Come: A Study in Biblical Eschatology.
Poythress, Vern. Understanding Dispensationalists; VERN S. 포이쓰레스.『세대주의 이해』.
Richardson, Joel. When A Jew Rules the World.
_______________, The Islamic Antichrist; 조엘 리차드슨.『마지막 때와 이슬람』
Riddlebarger, Kim. A Case for Amillennialism: Understanding the Endtimes.
Ryrie, Charles C. Dispensationalism-Revised and Expanded.
Scofield, C.I., editor. The New Scofield Reference Bible
Storm, Sam.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Walvoored, The Rapture Question. Revised and enlarged Edition.

---------. Revelation (The John walvoord Prophecy Commentaries).

김정환. 『이스라엘과 대체 신학』.
권성수. “재림과 말세의 징조-마태복음 24장을 중심으로.”『목회와 신학』.
이한수. 『복음과 율법』.
댄 저스터, “이스라엘과 종말.” 『목회와 신학』.
번 S. 포이쓰레스.『요한계시록 맥잡기』.
조성호, 『복과 영광으로 가득찬 요한계시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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