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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④] 요한계시록과 천년 왕국(1)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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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5  20: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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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대해부④]

요한계시록과 천년 왕국(1)

- 후천년설, 세대주의 및 메시아닉 쥬 전천년설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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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의 내용은 강의 원고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 : 계 20:1-10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들어가는 말

 

천년 왕국이란 무엇인가?

천년 왕국은 실제로 존재할 왕국인가, 아니면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인가? 천년 왕국은 계시록 20장의 ‘천년 동안 다스린다’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종말에 예수님이 실제로 지상에서 성도들을 1000년 동안 다스리신다는 왕국을 말한다.

1000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킬리오이이며 이 단어에 ‘~이즘’ 즉  ‘~주의’란 단어가 붙어서 킬리아즘 즉 천년 왕국설이란 단어가 되는데, 킬리아즘 보다는 라틴어 밀레니움-천년-이란 단어가 더 대중화되면서 천년 왕국설을 보편적으로 밀레니알리즘 (millennialism)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천년 왕국 이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주장을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전천년주의자(pre-millennialist) 라고 부르며 줄여서 pre-mil(프리 밀)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모두 천년 왕국을 문자적인 1000년으로 이해한다.

이 천년 왕국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재림하신다는 주장을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후천년주의자(post-millennialist)라고 부른다. 줄여서 post-mil(포스트 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무천년설(amillennialism), 무천년주의자 (amillennialist)는 줄여서 amil(아밀)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a(아)는 ‘없다, 무(無)’라는 뜻이다. 여기서 ‘없다’는 말은 문자적 천년 왕국이 ‘없다’는 말이다.

 amil은 천년 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기간을 영적 천년으로 이해한다. 또한 amil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왕국 즉 Kingdom이 이미 임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amil이 아니라 실현된 왕국설(realized millennialism) 또는 현천년설(present millennialism)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의 천년 왕국설

 

한국은 선교가 시작 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당시에 급속하게 퍼져가던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 덕분에, 장로교는 물론 감리교, 성결교 및 오순절 교단 등 대부분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수용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로교 신학자인 박윤선, 박형룡 박사 등의 영향으로 장로교인들 사이에 역사적 전천년설을 수용하는 사람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들이 교계에 등장하면서 무천년설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아직도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상태이다.
 

미국에서도 2011년 복음주의 신학자 및 목회자들의 천년 왕국관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65%로 전천년주의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13%가 무천년주의자, 4%가 후천년주의자, 17%가 기타라고 대답했다.

65%나 점유하는 전천년주의자도 최소 4 개파로 갈라진다. 이 4개파 중 3 개파는 세대주의 종말론 계통인데, 특징은 하나님이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원하시고 유대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중심으로 단체로 구원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 개파인 역사적 전천년설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재림을 동일한 사건으로 간주하면서 재림 이후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교회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위의 3가지 전천년주의자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한편, 아직도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개신교 종말론의 원조는 무천년설이다. 무천년설은 어거스틴부터 종교개혁가인 루터칼뱅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개신교에서 지지를 받아온 종말론이지만 세대주의 종말론은 20세기 초에 형성된 종말론이다. 다만 무천년설은 세대주의 종말론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에 비해 한국 교계에 늦게 소개되고 대중화가 덜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빠졌다가 역사적 전천년설이나 무천년설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 추세에 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얼른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성경에 비추어서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비추어 보면 억지 주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주장 중의 하나가 바로 환난 전 휴거설이다. 필자처럼 초기에는 멋 모르고 핼 린지, 살렘 키르반 등의 대중적 저서의 영향을 받다가 성경을 상고하고 다른 책들도 보면서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을 지나치게 자구(단어) 중심으로 해석하고, ‘이스라엘 따로, 교회 따로’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한 잘못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들도 많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역사적 전천년설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무천년설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 전천년설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이나 무천년설로 돌아서고 있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천년 왕국설

 

여러 가지 천년 왕국설을 요점 중심으로 살펴보자.
 

1.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은 세상이 진보하고, 개선되다가 마침내 지상 낙원이 된다는 주장이다.

 

(1) 자유주의적 후천년설

예수는 하나님이나 우주의 주인이 아니라 ‘도덕적 모범’이며, 세상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쌓이면서 점점 좋아지다가 마침내 지상 낙원인 천년 왕국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2) 역사적 또는 보수주의적 후천년설

복음 전파로 인한 영적 부흥과 세상의 진보로 인해 문자적 천년 왕국을 누리다가, 잠시 후 짧은 배교의 시기 즉 선악 간의 극심한 전쟁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최후의 백보좌 심판으로 세상의 역사는 마무리 된다고 주장한다.

 

-후천년설 평가 
 

자유쥬의적 후천년설은 일반 역사와 조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지나친 인본주의적 사고와 낙관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편 보수적 후천년설은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와 과학주의가 팽배하던 18~19세기에 많은 청교도들개혁주의자들(John Owen, Jonathan Edwards, Charles Hodge, Benjamin Warfield 등)이 영적 부흥과 사탄의 세력의 점진적 약화로 인한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면서 후천년설을 주창해왔다. 그러나 제1차 대전으로 인해 비관적 미래관이 팽배해지자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런데 최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고 일터 사역을 통한 ‘7 (영역)’ 정복을 통해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지향하는 성령 운동의 대부인 피터 와그너는 이전의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버리고 보수적 후천년주의자가 되었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사람들의 내면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혁되는 것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비관적 낙관주의 관점에서, 한편으로는 개인이나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섭리적 인도를 이해하면 후천년설이 주장하는 개인의 변화나 사회의 변혁은 건전한 종말론 확립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그리스도가 재림 하신 후 문자적 천년 왕국이 실현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성도들이 지상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 한다는 주장이다.

전천년설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점진적 세대주의 전천년설,  메시아닉 전천년설역사적 전천년설의 4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먼저 살펴보자.

 

(1)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세대주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7단계의 세대’로 구분하고 그 마지막에 교회 시대, 7 대환난천년 왕국 시대를 둔다.

종말 사건의 순서를 보면,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해 시작된 교회 시대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해 예언된 종말의 예언과는 전혀 상관 없는 시대이다. 교회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전파하신 왕국 복음을 거부하자, 그 축복이 이방인에게 돌아간 괄호의 시대이다.

 

괄호의 시대인 교회 시대가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통해 휴거 되고 나면,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되면서 유대인의 본격적인 구원의 역사가 시작 된다. 말하자면 7년 대환난은 구약에 기록된 유대인에 대한 예언이 실현되는 기간이다. 이방인은 어쩌다가 구원을 받는 시기이다.

7년 대환난 마지막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서 유대인이 전멸되기 직전에, 예수님이 지상 재림 하시면서 적들을 쳐부수고 유대인을 구원하신 후, 예수님을 메시야 즉 유대의 왕으로 모시고 유대인들이 이방 국가들을 다스리는 지상 천국인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유례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과 천년 왕국 사상은 원래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교(Judaism)가 묵시적 문학을 통해 내세운 주장이다. 유대인들은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면서, 내세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어 다윗 계통의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되는 황금 시대를 누린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초대 교회의 많은 교부들도 유대교의 전천년설과 지상 왕국설(천년 왕국)을 수용했다(Justin Martyr, Irenaeus, Tertullian 등). 그러나 이후 어거스틴은 무천년설로 돌아섰고 종교개혁가들도 무천년설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로마 천주교가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종교개혁가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해 낸 미래해석법의 영향으로, 1830년대에 영국의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1)가 주창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평신도 변호사인 C.I. 스코필드(C.I. Scofield)가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통해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대중화시켰다.

 

신학적으로 보면 흠집투성이인 이 주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성행하면서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때에 근본주의 신학과 함께 전천년설의 종말론을 가르치는 스코필드의 주석성경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 전 미국에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근본주의 신학(Fundamentalism)이란 20세기초 유럽과 미국에서 급격하게 확산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 장로교, 침례교 기타 교파들이 1878-1897년에 걸쳐 개최된 미국의 나이아가라 성경 컨퍼런스(Niagara Bible Conference)에서 5가지 근본 교리를 채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성경의 무오류성,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 예수님의 육체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에 기초한 신학을 말하며 이런 교리를 지지하는 사람을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s)라고 부른다.

 

또한 20세기 초에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면서 정규 신학과정을 거치지 못한 오순절주의자들이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통해 신학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세대주의의 기적중지론은 무시했지만 종말론은 물론 다른 신학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더군다나 1960년대의 중동 전쟁을 계기로 온 세상이 제3차 대전 발발의 두려움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을 때, 철저한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근거한 린지(Hal Linsey)의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와 『휴거』(Rapture)가 종교분야 서적으로는 드물게 New York Times의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천 만 부가 팔리면서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가장 인기있는 종말론이 되었다.

 

이후 휴거, 7년 대환난, 666, 세계 정부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강조하는 세대주의 종말론은 세상에서 종말론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고개를 내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몇 년 전만 해도 라헤이(Tim Lahaye)와 제리 젠킨스가 1995년부터 공동 저술한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휴거되지 못하고 남겨짐)는 12개의 제목으로 저술되었는데 누적 판매 수가 6500만부가 팔릴 정도로 또 다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핼 린지의 저서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세대주의적 천년설에 근거한 저술들이 어지간하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 때문에, 많은 세대주의자들이 걸핏하면 종말론적 현상들-블러드 문, 베리 칩 등-관련 저서를 출판하여 돈 방석에 앉고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종말론에 대한 건전한 성경적 지식을 갖고, 종말론적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이나 내면을 살피기 보다는 매스컴을 타는 각종 종말론적 현상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의 내면 정화를 정당화하려는 성향이 다분한 것 같다.

 

그러나 필자도 수십 년 동안 종말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풍을 관찰해 왔지만, 종말론적 현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휴거의 시점을 연구해 , 본인 자신의 삶의 변화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면 모든 일을 집어치우고 휴거만 기다린다든가, 아니면 짐승표인 666을 받지 않으려고 섬이나 산으로 도피하는 현실도피적인 삶을 살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건전한 종말론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면서(살후 3:6-15), 불신자를 전도하고 주님 만날 것을 사모하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정결하게 단장하는 일에 매진하게 한다(살전 4:3-6; 5:23; 요일 3:2-3; 벧전 1:13-16 등).
 

 

(2) 점진적 세대주의 전천년설(Progressive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세대주의 종말론의 한 지류인데, 세대주의 종말론은 교회 시대는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시대로 간주한다. 그러나 점진적 세대주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교회 시대에도 어느 정도 ‘적용’되거나 ‘부분적으로 성취’되지만 천년 왕국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온전히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과 교회의 구원을 구분하고, 공중 재림을 통한 휴거와 7년 대환난,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통한 유대인 중심의 천년 왕국 통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교회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성취된다는 점진적 세대주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3) 메시아닉 전천년설(Messianic Jews Millennialism)
 

   
 

유대인 크리스천의 단체인 메시아닉 쥬는 세대주의 종말론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 방식을 구분하고, 천년 왕국에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유대인이 주도가 되어 이방 국가들을 다스린다는 주장은 동의하고 환영한다.

그러나 메시아닉 쥬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는 달리,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은 두 단계가 아니라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석한다. 바꾸어 말하면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환난 휴거를 주장하지만 메시아닉 쥬는 환난 휴거를 주장하는 것이다.

 

메시아닉 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교회를 통해 확대되고 성취되었다는 분명한 성경적 기록을 무시하고(갈 3:14; 28-29), 문자적 천년 왕국에서 ‘모든혈통적 이스라엘인들을 통해 문자적으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세대주의 전천년설 처럼, 이방인 중심의 교회와 유대인 중심의 국가적 이스라엘의 구원 방식이 다르다는 주장, 문자적 천년 왕국이 존재한다는 잘못된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도 ‘남은 자만 구원 받는다’(롬 9:6-8; 27-29; 10:5)는 성경의 분명한 기록을 부인하고 ‘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다’(롬 11:26)는 구절을 잘못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를 통하여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참고로 “온 이스라엘”은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 전체’(John Murray, A.T. Robertson등) 또는 ‘영적으로 구원 받은 모든 신자들(유대인인들과 이방인들)’(John Calvin, C. Barth 등)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국에 알려진 대표적 메시아닉 쥬로서 종말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셀 인트레이터, 다니엘 저스터조엘 리차드슨 등을 들 수 있다. 인트레이터저스터는 유대인 중심의 천년 왕국을 주장하지만 교회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부분적으로 성취된다는 종합 해석법을 취한다. 그러나 조엘 리차드슨은 철저한 미래주의 입장에서 세대주의자들처럼 천년 왕국에서만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리차드슨은 세대주의메시아닉 종말론의 기초가 되는 미래 해석법의 원조가 바로 유대인의 구원 가능성을 배제한 대체 신학을 창안한 로마 가톨릭이라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입장을 잘 대변하기 때문에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혁주의 입장에 의하면,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예언과 약속이 성취된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는 것이 해석의 기본인데, 조엘 리차드슨은 물론 대부분의 세대주의자와 메시아닉 쥬는 거꾸로 ‘혈통적이고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먼저 구약 성경을 해석하고 그 다음에 신약을 해석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더군다나 조엘 리차드슨은 이슬람의 영향력이 미국에서도 증가되고 있고, 이슬람교가 기대하는 재림주인 마흐디가 마지막 시대의 적그리스도라는 색다른 주장을 한 사람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세일 오일의 등장으로 석유값이 형편 없이 낮아지면서 그가 ‘음녀’라고 지목한 사우디 아라비아는 물론 이슬람 국가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진입하면서 그 영향력이 급속하게 감소되고 이스라엘과의 전쟁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만일 힐러린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조엘 리차드슨이나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세계주의자이자 친(親) 이슬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최순실’(?)인 이슬람 계통의 후마 애버딘의 부모가 무슬림 형제단일 정도로 클린턴은 친 이슬람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계 정부와 반대되는 신(新) 고립주의와 반(反) 이슬람 정책을 공언하고 있어 세대주의자들은 물론 조엘 리차드슨의 예측(?)도 이제는 한물 간 역사적 유물이 되는 셈이다.

 

한때 린지가 유럽 연합(EU)이 재생 로마 제국이고 10개국이 가입하면 열 뿔이 되어 세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한 것을 보고 ‘한 세대’(40년)가 지난 1988년에 휴거가 된다고 그럴 듯 하게 예측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불발했다.
 

작년에는 수많은 블러드 예측자들이 이구동성으로 2015년 9월에 대변혁이 일어난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불발했고, 이제는 조엘 리차드슨이 이슬람 연합군이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고 이슬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하여 한 동안 인기를 누리다가 또 다시 불발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세대주의자들은 예측이 끊임없이 불발됨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신학 체계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또 누군가가 희한한 날짜 계산법과 허황한 시사(時事) 진단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자주 강조하지만 누구보다 유대인들의 구원을 소원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 뉴욕의 맨해튼에서 유대인 사이에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다. 영업 책임자도 유대인이고 영원 사원도 유대인이고 관리직도 유대인이고 대부분의 바이어들(Buyers.구매 담당자)도 유대인이고 회사 촉탁 변호사도 유대인이었다.

더군다나 뉴저지에서 허드슨 강을 관통하는 링컨 터널을 통해 매일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일은 교통지옥을 통과하는 일이지만 유대인 절기인 가을의 초막 절기에는 유대인 보스들이 한 주 정도 쉬는 바람에 평일에도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텅 빌 정도로 유대인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살았다.

 

거주 지역도 유대인들이 관장하는 학군이었다. 크리스머스 시즌에 유대인 방송에서는 ‘메리 크리스머스’가 아니라 ‘해피 하누카(성전봉헌절)’라고 인사한다.

(*하누카. 성전봉헌일 또는 수전절. B.C.164년 경 헬라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왕이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핍박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돼지 제사를 강요하는 것에 분기하여 유대인들이 봉기를 일으켜 성전과 나라를 탈환한 날을 기념하는 유대인 광복절 즉 ‘빛의 절기’이다. 양력으로 11~12월경)

더군다나 목사가 된 후 유대인의 교육법과 재정법을 연구하면서 유대인의 저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하고 부러워한 사람이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해서는 어느 알고 또한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메시아닉 쥬가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무시하고 신약 시대에도  마치 자기들이 특별한 선민처럼 모나게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다(갈 3: 14, 28-29; 엡 2:14-15). 갈 3:28을 원문 대로 직역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가 (구분이) 없으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성막의 휘장이 찢어지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았던 율법의 담이 허물어지고 모두 한 새사람으로 재탄생-중생-되었다(엡 2:14-15). 또한 예수님은 신자들이 주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셨다(요 17:21-23).

그런데 세대주의자와 메시아닉 쥬는 신약 성경의 분명한 구절들을 부인하고 구약 중심의 잘못된 신학으로 ‘이방인 따로, 유대인 따로의 구원’을 주장하여 교회의 분열을 방조하고 있다.

 

이런 신학이 메시아닉 쥬의 등장 이전까지는 신학 이론으로만 존재했지만 메시아닉 쥬가 등장하면서 이런 신학을 실제로 적용하고 더 나아가서 구약의 토라(율법), 그중에서도 제의법-안식일, 음식정결법 및 절기 준수 등-를 이방인 신자들도 지켜야 한다는 히브리 뿌리운동이 가세되면서 개신교계는 지금 갈등과 혼란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신학적 소양이나 영적 분별력이 별로 없는 브래드 TV의 김종철 감독이 팩션(fact+fiction)이나 시사 해설서 같은 극단적 세대주의와 메시아닉 쥬 종말론을 무분별하게 소개하고 있고 한국의 많은 목회자와 사역단체 및 성도들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다.
 
 

한국 교회가 윤리도덕성의 부재로 인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내면의 정화와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도 시원찮은 판국에, 신앙적 알맹이도 별로 없는 허접한 종말론으로 신자들을 붕뜨게 만들어서 마치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세대주의자들도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위해 깨어서 준비하라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 대신 현란하고 센세이셔널 한 종말론적 현상만 잔뜩 부각하여 기대와 불안감만 조성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과 성령 강림 이래로 교회는 이미 종말에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요즈음만 종말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아니다. 초대 교회 당시는 물론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할만한 종말론적 현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건전한 종말론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주어진 소명에 충실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단장하는 것이다.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3.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세대주의 계통 전천년설의 신학적 평가

 

   
 


이처럼 세대주의 계통의 3가지 전천년설은,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국가적 민족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장점은 신자들이 ‘하시’[immenent]라도 휴거될 수 있다는 긴박감 때문에 전도의 열정이 강하다. 이 때문에 세대주의 종말론은 19세기 말에 전도자인 D. L. 무디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20세기 초에 자유신학을 대처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주창하면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갔다.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도 대부분이 이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세대주의 종말론이 전도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정상적 삶을 부인하면서 몰현세적이고 도피적인 삶을 부추기고, 666의 짐승 표나 순교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 같다.
 

신학적으로도 세대주의 종말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많은 해석법이다.

 
 

(1) 로마 천주교가 조작한 미래 해석법
 

천주교와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종교개혁가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고안해낸 대표적인 미래 해석법이 바로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종말론대해부③] 종말의 예언은 언제 성취되는가?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250

 

 

(2)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

 

세대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자기들의 해석은 문자적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문자적 해석은 문맥적 해석이 아니라 단어 중심적 해석이다.

 

대표적 오류들 :

 

-교회, 택함을 받는 , 성도를 구분하는

세대주의자는 교회는 환난 전 휴거 되고 7년 환난 중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택함을 받은 자’와 ‘성도’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택함을 받은 자’ 및 ‘성도’를 모두 동의어로 사용한다.

 

-여호와의 아내 다르고, 예수님의 신부 다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다(렘 3:14; 31:32).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엡 5:25-33; 계 19:7-8). 그런데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빌 2:6; 딛 2:13 등). 그러므로 여호와의 아내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처럼 구약의 이스라엘-남은 자-은 신약의 교회-참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개의 몸을 가지셨는가?

신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3). 그런데 세대주의자와 메시아닉 쥬는 구원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 받지만 구원 받는 방법은 이스라엘 다르고 교회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데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다른 몸인가? 그런데 왜 이들은 이스라엘과 교회가 다르다고 우기는가? 문맥 중심이 아니라 단어 중심 해석의 전형적인 오류이다.

 
 

(3) 구약 중심의 성경 해석?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속사의 관점, 약속과 성취의 관점 즉 신약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세대주의와 메시아닉 쥬는 구약의 관점에서 먼저 해석하고 신약을 해석한다. 본말이 전도된 해석이다.

이들에 의하면, 천년 왕국 시대에는 사람들이 구원만 예수를 통해 받고 신앙생활이나 예언 성취는 모두 구약 식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원은 예수를 통해 받았으므로 제3성전에서 속죄제사가 아니라 기념 제사를 드린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말이 없다

 

이들이 인용하는 겔 43:18-27에는 분명히 속죄 제사를 드린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스코필드는 이 구절을 굳이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전의 존재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세대주의는 교회가 휴거 되면 적그리스도를 막는 성령도 거두어지는 역(逆) 오순절 현상이 일어나서 세상이 구약 시대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해서인지 그대로 수용한다.

 
 

(4) ‘문자적 해석’과 ‘평이한 의미 해석’-법 조문 해석과 성경 예언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세대주의는 문자적 해석 즉 Literal interpretation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또한 Plain meaning rule (평이한 의미 해석법)이라고 한다. Plain meaning interpretation은 법조문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왜 세대주의자들이 이런 용어를 사용할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세대주의 신학의 시조인 넬슨 다비C.I. 스코필드가 변호사 출신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Plain meaning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도 로스쿨에 다닐 때, 법률해석은 평이한 의미 법칙에 의해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왜 그런가? 법(法)은 현재 시대에 가시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조문이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해석해서도 안 된다. 필자도 이런 훈련을 받은 후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도 그렇게 해석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았다. 사람은 자기가 훈련 받고 아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주의 시조인 넬슨 다비와 C.I. 스코필드는 법조문의 해석과 예언의 해석 방법을 구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말한 대로 법조문은 현재 시대의 보이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조문이고 해석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예언은 수 세기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언하는 사람 자체도 자기가 한 예언의 이미를 때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은 예수에 대해 어떻게 예언했는가?
마 3장에 보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심판주로 예언했다.
 

그런데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가만히 들어보니 예수님이 심판은커녕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는 구세주가 아닌가?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이 바로 오실 이 즉 메시야 인가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가(마 11:3) 라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유대의 종교 지도자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가?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자기들을 로마의 정치에서 구해내고 경제적 풍요를 줄 다윗 계통의 지상적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낫게 하시니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장들에게 잡혀가서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는 말씀을 하시니, 가장 측근인 가룟 유다가 자기가 기다리던 지상적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를 팔아버리고 유대인들도 십자가게 못 박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그래서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도 다윗 계통의 지상적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이나 메시아닉 쥬는 구약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하는 예언의 의미, 즉 이스라엘 고토가 회복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재건되고,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된다는 예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메시야 왕국인 천년 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기대했다고 주장한다.
 

지상적 풍요를 줄 메시야를 기대하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기대에 어긋한 ‘초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이제는 세대주의자들이나 메시아닉 쥬는 ‘재림 예수’가 지상적 메시야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다. 이들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구약 중심의 성경 해석에 매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뭔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5) 언약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을 따르는 개혁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행위 언약 (covenant of works)과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으로 구분한다.

행위 언약이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중보자가 필요하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타락 이후 예수님을 중보자로 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구원 받게 되었다. 이것은 은혜 언약이다. 이처럼 언약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언약 신학이라고 한다.

 

물론 언약 신학도 각 세대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노아 시대든, 아브라함 시대든, 모세 시대든, 신약 시대든 모든 사람이 은혜 언약 아래 있는 시대이고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다만 구원 계시의 정도가 예수님 성육신 이전에는 희미했을 뿐이다. 그래서 모세 시대에는 짐승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키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언약 은혜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정을 해주셨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 그 자체로는 구원을 못 주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온전하게 이루게 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이제는 예수를 믿으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동참하게 된다(갈 3:14; 28-29).

그런데, 세대주의자나 메시아닉 쥬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은 천년 왕국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우긴다.


 

-이방인은 휴거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고 유대인은 천년 왕국에서 장수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세대주의는 교회는 환난 전 휴거 되어 영체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영체가 무엇인가? 부활한 몸이 아닌가?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다. 칭의-성화-영화로서 구원의 최종 단계이다. 이처럼 유대인 덕분에 우발적으로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이방인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시 휴거와 동시에 구원이 완성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은(슥 2:8), 교회가 휴거 되고 난 후에, 지상에서 적그리스도를 ‘막는 자’인 성령이 거두어지고(살 2:7), 계 9장의 무저갱에서 황충 같은 귀신들이 떼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란과 핍박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국가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성령이 지금 교회 안에 계시고 귀신이 잠잠해도(?) 회심하기 어려운데 그런 극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대거 회심한다는 주장 자체가 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이렇게 힘들게 믿은 후 설상가상으로 적그리스도 세력의 공격이 시작되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겨우 살아 남은 후,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시면서 적군들을 쳐부순 후, 재림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천년 왕국에서 유대인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산다고 주장한다. 그래 보았자 천년 왕국은 현세와 천국의 중간시대일 뿐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세대주의 주장대로 하면, 이스라엘은 7년 동안 전무후무한 혹독한 대환난을 통과한 후 중간 시대인 천년 왕국에서 산다. 그러나 이방인은 교회를 통해 환난 전에 이미 휴거되어 구원의 완성인 영체-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산다. 누가 더 격이 높은가? 천국에서 영체로 사는 이방인의 교회인가, 받으면서 살지만 중간 시대인 천년 왕국에 사는 유대인인가?
 

천국이 훨씬 더 좋은 곳이 아닌가?
천년 왕국이 지나면 유대인들도 다시 천국에서 살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세대주의자들이나 메시아닉 쥬들은 이방인 보다 훨씬 못한 천년 왕국 종말론을 고집하는가?

 

필자는 그들의 고집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목사님과 대화 중에 일부 통찰력을 얻었다. 즉 세상에 살면서 천국의 능력인 성령 체험을 통해 황홀 체험을 자주 하는 사람은 천국을 사모하지만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천국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말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이다.
고후 12장의 기록처럼 천국 구경을 하고 온 사도 바울은 하루라도 빨리 천국을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실상이 무엇인지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지상적인 것을 더 추구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국이 주는 영적 축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 내용은 당시인의 수준에 맞추어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그 당시인들에게 익숙한 단어나 환경을 통해 어떻게 천국을 묘사할 것인가?  4~5살 난 어린 아이에게 네가 어른이 되는 20살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해줄까? 피자나 아이스크림 많이 사주고, 멋있는 장난감 많이 사준다고 해야 어린 아이에게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
 

그리고 20세가 되었을 때 약속대로 아버지가 피자나 아이스크림, 그리고 장난감 자동차를 사주면 아이가 더 기뻐할까? 아니면,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를 선물로 주는 것을 더 기뻐할까?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재림 때에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방인과 유대인 구분 없이- 무한도 신용 카드(천국)를 선물로 주신다는데 세대주의자들과 메시아닉 쥬는 굳이 어린 시절-구약-에 약속한 피자와 햄거버 및 장난감 자동차(천년 왕국)를 달라고 철부지처럼 어리석은 떼를 부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방인의 교회는 휴거 되어 영체-구원의 완성-가 되는 데, 유대인은 천년 왕국에서 중생한 몸으로 온갖 지상적 축복을 누리면서 장수한들 완전한 천국의 삶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혈통적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이스라엘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가 구약 예언의 수혜자이고 더 이상 혈통이나 민족의 구분이 없는 새사람이다.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14, 28-29).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자기(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나가는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세대주의자나 메시아닉 쥬가 배타적 선민 의식에서 ‘이방인 중심의 교회’와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의 구원 방식’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문자적 천년 왕국에서 메시야를 중심으로 유대인이 이방인을 다스린다는 잘못된 주장에서 제발 좀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의 메시아닉 쥬는 큰 소리칠 입장이 아니다.
조엘 리차드슨처럼 자기들이 예수를 죽여서 심판 받고 1900년 동안 디아스포라가 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자기들을 핍박한 이방 교회의 회개-대부분이 로마 가톨릭이 저지른 죄이지만 개신교도 신학적, 심정적으로 회개할 필요는 있다-만을 촉구하기 보다는, 『한 새사람』(One New Man)의 저자인 르우벤 도런(Reuben Doron)처럼, 오히려 낮아지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과 동시에 가해자의 죄 회개를 촉구하면서 한국과 같은 기독교인들의 협조를 간절하게 구해야 될 판이다.
 

왜냐하면 메시아닉 쥬가 생성된 지 반 세기가 되어가지만 한때 반짝 하다가 지금은 생각보다 유대인 회심자가 별로 늘지 않고, 유대인의 귀환 운동인 알리야 운동 또한 몇 년 전부터 소강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감히 말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조금 열리기 시작하자 유대인들이 겸손하지 못하고 고질적인 배타적 선민 의식을 또 다시 발동하여 종전에 사용하던 히브리 크리스천이란 명칭을 버리고 배타적인 메시아닉 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사도들도 이방인 신자에게 지우지 않았던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 유대주의자가 되면서 하나님의 호의에서 다시 한 번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실제로 보면 메시아닉 쥬가 강조하는 히브리 뿌리운동, 유대인 뿌리운동 또는 토라 뿌리운동은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그토록 책망하신 ‘장로들의 전통(유전)’(막 7:5 참조)를 회복하자는 ‘유대교 회복운동’이지 ‘초대교회 회복운동’이 아니다.

 

비록 지금의 메시아닉 쥬는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만 생활은 ‘장로들의 전통’(성문 토라[모세오경] 보다 구전 토라를 중시하는 탈무드 중심의 랍비 유대교. 613개 계명 강조)을 중시하는 유대교 식으로 하자는 것이 바로 히브리 뿌리운동이다. 이 주제는 구약과 랍비(바리새) 유대교 및 기독교가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꼼꼼히 분석해 보지 않으면 분별이 쉽지 않다.  필자는 나중에 이 주제를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구약의 율법에는 제의법, 시민법(민·형사법) 및 도덕법이 있다. 제사법, 음식정결법, 안식일 및 절기 준수를 규정한 제의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통해 폐기되었고(히 9:11-12, 23; 10:1-2 등), 시민법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인해 민주 국가에서는 국가가 관장하게 되었고, 도덕법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히브리 뿌리운동가는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도 절기를 지켰으므로 우리도 지켜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서 신약 시대에도 제의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유월절, 오순절 및 초막절에 왜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각자 지키는가? 그것은 왜 강조하지 않고 절기의 기계적인  ‘준수’만 강조하는가?
 

예수님이 절기를 지키신 것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기 이전에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 부활 및 성령 강림을 통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시고 예언을 온전히 성취시킨 후에는 율법 그중에서도 특별히 제의법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 것은 중지되었다(히 10:1 등). 사도 바울이 절기를 지킨 것은 교리적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이고, 또한 상황적 이유 즉 전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을 위해서는 율법-특히 절기법-을 지켰고 이방인을 위해서는 지키지 않았다.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0-21).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갈라디아 유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저주를 받으라’는 극단적 표현을 했지만(갈 1:8), 디모데가 유대인에게 전도하기 위해 할례 받는 것은 상황적이고 문화적 차원에서 허용했다(행 16:3). 그러므로 메시아닉 쥬는 자신들은 전통을 따라 제의법을 지키면 되는 것이고, 이방인 신자는 유대인 선교나 교육적 차원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용인되지만 다른 이방인 신자에게 교리적으로 강조하고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들은 제의법은 강조하면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도덕법 준수는 왜 강조하지 않는가? 유대인들은 제의법만 지키면 내면이 정결해 지고 악에서 멀어지는가? 결국 그들은 아직도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처럼 유대인처럼 신앙 생활해야 제대로 신앙 생활한다는 배타적 선민 의식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유대인의 율법의 멍에를 지우지 않겠다는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이다(행 15:28-29).
 

이 결정은 누가 했는가? 결정을 주도한 야고보 및 사도들 모두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메시아닉 쥬는 유대인 사도들 보다 더 권세가 있는가? 왜 성경에서 유대인 사도들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금지한 율법 준수를 이방인 신자들에게 강요하는가?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책망을 받은 것은 제의법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도덕법 위반-을 저지르고,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인 정의, 긍휼, 믿음을 저버리고(사 1:11-15; 롬 2:26-29; 마 23장 특히 23:23등), 예수를 그들이 고대하던 지상적 메시야가 아니라고 해서 십자가에서 처형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은 모든 신자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지만 유대인들이 악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그들과 후손들이 예수 죽인 죄값을 1900년 동안 혹독하게 치른 것이다(마 23:37-39; 27:25).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안식일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3-14).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19-2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3,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5).

 

이처럼 히브리 뿌리운동을 강조하는 극우 메시아닉 쥬는 마음의 동기와 내면의 정결 및 도덕법 준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제의법-그것도 일부- 준수만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회복주의(Restorationism)라기 보다는 회귀주의, 퇴화주의(Regressionism)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 대로 일주일에 한 번 샤바트(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일년에 7개의 절기를 준수한다고 하자. 그래 봤자 7일+52주 하여 총 59일이다. 그러면 나머지 300여 일은 어떻게 신앙 생활 할 것인가? 신약적으로 말하면 신자는 매일 성령 안에서 유월절과 무교절(회개), 초실절(부활의 생명) 오순절(성령충만)을 지키고 나팔절(천국의 기쁨), 속죄일(회개) 및 초막절(감사)도 미리 지킬 수 있다.
 
 

신앙적으로 볼 때,  500년 전통의 개신교 신학을 이어 받고 100년 전통의 신앙을 가진 한국 교회가 이제 겨우 50년 전통을 가진 메시아닉 쥬를 인도해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꾸로 메시아닉 쥬에게 끌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랍비 유대교를 따르는 메시아닉 쥬를 구약과 신약에 달통한 것으로 오해하고, 유대인들이 랍비 유대교 중심으로 생활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재정적으로도 성공한 것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신학과 신앙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메시아닉 쥬 중에도 여러 파가 있다.
극우 히브리 뿌리운동과 세대주의 식 미래주의 종말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대인 뿌리운동 보다는 유대인 회심에 중점을 두는 사람도 있고,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운동이든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하듯 메시아닉 쥬 운동도 좀 그런 것 같다. 그러므로 유대인 구원과 선교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신자들은 탄탄한 신학으로 무장하여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 알맹이가 별로 없는 메시아닉 쥬 종말론과 히브리 뿌리 운동에 휘말리기 쉽다.

 

필자는 유대인들이 랍비 유대교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여 ‘지상적 축복’을 어느 정도 풍요롭게 누리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약 중심의 ‘신학’이나 ‘내면 변화’ ‘영적 축복’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이런 '지상적 풍요'도 미국처럼 모든 조건이 제대로 구비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른 나라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아직도 가난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분별하여, 우리 모두가 제대로 된 종말론을 가져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행하는 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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