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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과새사람⑤] 예수님도 상처 받으셨나-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예수님께 쏟아놓자-
구요한 목사 서은혜 목사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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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0  22: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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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과새사람⑤]

 예수님도 상처를 받으셨나?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예수님께 쏟아놓자-

글 : 구요한 목사. 서은혜 목사

   
 

호레이시오 스패포드(H. G. Spafford)는 신앙이 독실한 변호사, 법학교수이자 D.L. 무디가 섬기는 교회의 장로였다. 그는 43세가 되던 1871년의 시카고 대화재에서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이 재난 직전에는 급성 전염성 피부질환으로 첫째 아들도 잃었다.

엄청난 시련을 당한 스패포드와 가족은 휴식이 필요하여 여행을 떠났다.
1873년 11월 15일, 스패포드의 아내와 네 딸을 비롯해 많은 승객을 태운 프랑스 여객선 빌르 드 아브로는 뉴욕항을 출발했다. 하지만 출항 몇 분 전에 스패포드는 급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 따라갈 생각으로 배에서 내렸다.

아내와 딸들을 태운 배는 순항하는 듯했다.
그런데 모두들 깊은 잠이 든 22일 새벽 2시, 그 배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영국 철갑선 ‘라키언’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배는 226명의 생명을 안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 스패포드의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잠기고 아내만 물 위로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스패포드의 부인은 ‘혼자만 살아남았음(Saved Alone)’이란 짤막한 전문을 남편에게 보냈다.

이 소식을 전해 받은 스패포드는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들을 잃고 정신 없이 헤맬 그의 아내가 걱정되어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너무나 힘들었다. 밤새도록 절망하며 탄식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스패포드에게 갑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평안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자 스패포드는 주님이 주신 영감으로 시를 써내려 갔는데, 그 시가 바로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 이다. 스패포드의 고백과 시에 감동을 받은 블리스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곡을 붙였다. 이 곡이 바로 찬송가 413장(새 찬송가, 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한편, 수년 전 비행기 사고로 유명한 국회위원 아들을 잃어버린 노모는 며칠 후 자살했다는 짤막한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다.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은 많은 재산과 수많은 자녀를 잃는 엄청난 충격을 당하고도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다른 사람은 아들 한 명을 잃은 후 견디지 못하여 자살까지 했을까?

성장 환경, 각자의 기질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같은 사건이지만 크게 상처 받는 사람도 있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모두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엄청난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다.

성경 인물 중에서도 극심한 고통과 곤경을 이겨 낸 사람이 많다.
부잣집 귀염둥이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이국 땅인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그 와중에도 요셉은 정절을 지키려다가 주인 아내의 모함으로 오히려 감옥살이를 했다.

신앙이 좋고 순전했던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많은 재산과 자녀들을 졸지에 잃어버렸다. 그래도 신앙을 지켰지만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고 하나님의 임재 마저 느껴지지 않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돌 맞자 순교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핍박과 참상을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성경 인물들은 마지막에는 승리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문제다.”

필자가 치유 사역을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도 잘 이겨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역경에 쉽게 무너져 버린다. 예수님은 이런 점에서도 우리 신앙의 모범이시다.

은사 사역에 빠져있을 때는 복음서를 볼 때마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만 눈에 들어왔다. 물론 기적 행하는 은사는 필요하다. 그래야 죄와 마귀의 세력 아래 있는 불신자를 제대로 전도하고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그렇게 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해 기사와 이적을 맛본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교회를 이루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교리적, 관계적, 윤리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각 교회의 구체적 문제들을 다룬 것이 바로 서선서들이다.

서신서가 무엇을 강조하는가?
체험과 외적 능력 위주의 외적 성장 신앙에서 말씀과 교리와 관계와 윤리 중심의 내적 성숙 신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성령 운동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신서를 강조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요즈음 미국 성령 운동가의 일부가 이상한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로도 다루기로 한다.

 

예수님은 은사 사역도 하셨지만, 필자가 내적 치유와 마음 사역을 하다 보니, 예수님은 생전에 우리가 당하는 상처와 아픔도 모두 당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상처를 받으셔서 내적 치유가 필요하신 분인가?
누구라도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발견한 사실은 예수님도 사람이시니까 생전에 우리처럼 여러 가지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반응이 우리와 달랐다.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으신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20).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우리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그러나 다르게 반응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어떤 고난과 곤경을 당하셨는가?
 

-원하지 않은 임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원하지 않은 임신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와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다(마 1:19). 만일 요셉이 마리아와 헤어졌다면 예수님은 유복자로 태어나셨을 것이다.

임신 중인 태아는 산모의 받는 정서적 충격을 90%를 그대로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동서를 가릴 것 없이 태교가 중시되고 있다.

“스승이 10년을 잘 가르쳐도 어미가 10달을 뱃속에서 잘 가르침만 못하고, 어미가 10달을 뱃속에서 가르침이 아비가 하룻밤 부부 교합할 때 정심(正心)함만 못하다.”

임신 시 부부의 마음가짐, 임신 후 태교의 중요성을 지적해주는 말이다. 임신 12주-3개월-가 되면 태아는 신생아로 태어날 때 필요한 모든 체내 기관을 갖추고 성장, 발육하는 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태교가 가장 중요하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임신과 태교의 좋은 예가 된다.
임신하기 전부터 서원하고 이만 중에도 태교를 잘하여 사무엘이란 위대한 선지자를 탄생시켰다(삼상 1:11).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암몬 출신의 이방 여인으로서 아들을 임신하고 분명히 이방신에 빌었을 것이다.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의 완악하고 분별력 없는 처신으로 인해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왕상 14:21, 31; 12:12-20).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태교를 잘한 것 같다.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고 기뻐하니 뱃속의 세례 요한이 성령충만하여 기뻐했다(눅 1:41). 마리아는 또한 아기를 임신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마리아 찬가-을 드렸다.
 

임신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하고 그렇지 않은 것 하고 많은 차이가 난다.
한 여 집사는 큰 딸은 예수 믿기 전에 낳았고 둘째 딸은 예수 믿은 후에 낳았다. 큰 딸은 성격이 다소 우유부단하고 소심했지만 둘째 딸은 성격이 대담하고 아주 치밀했다. 큰 딸 임신 중에는 부처에게 빌었고 작은 딸이 임신했을 때는 하나님께 빈 것의 차이였다.

한국에서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임신하면 산모는 물론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가 부처나 삼신에 빌기 마련이다. 우상에게 많이 빌고 낳은 아이는 일반적으로 성격이 괴팍하고 고집이 세고 우유부단하고 혈기가 많고 권위에 대적하는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성격을 많이 타고 태어난다. 그러나 하나님께 많이 빌고 태어난 아이는 일반적으로 유순하고 순종적이고 정서가 안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내적치유 세미나를 할 때다.
세미나를 인도한 후 나이가 60정도 되는 여자 분이 찾아왔다. 세미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태아) 중에서 이런저런 고통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고 했을 때, 그 말씀이 바로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서 하라는 대로 치유했더니 60 평생 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자기는 태어나서 쭉 신앙생활을 했고 지금도 사역자로 섬기고 있으며, 그 동안 내적치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가끔 자기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삶의 허무를 느껴서 치유하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태아적 받은 상처로 인한 것이란 사실을 이번 세미나에서 알게 되었고 치유까지 받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원치 않는 아이’였다. 임신 내내 어머니는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스러웠는데 그것이 태아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중년의 잘 생긴 여 집사가 세미나 후 상담을 했다.
남편이 도대체 여성으로서의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이다. 여자가 감칠 맛이 있고 애교도 있기를 바라는데 남자처럼 거칠고 여자답게 꾸밀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그것이 좋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자매는 나이가 50가까이 되었는데도 친정에 가면 아직도 ‘네가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라면서 아쉬워한다고 한다.

여 집사는 태아치유를 받았다.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자기도 모르게 여자로서 꾸미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남편과 경쟁하기 보다는 남편의 부족함 면을 보완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란다.

아내가 변하니 남편도 변했다.

“내가 이렇게 예쁜 당신을 왜 몰라보았을까?”

대학생 자녀들 앞에서 수시로 허그(포옹)하고 뽀뽀도 하니 자녀들도 놀랐다. “한두 번 하다가 말겠지.” 한두 번에 그치지 않았다. 정상적인 부부로서 사랑을 표현하면서 알콩달콩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되었다.
 

남성성이 거세된 소위 말하는 마마보이를 남편으로 삼은 여자는 남편에게서 남성다운 의젓함과 믿음직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남편이 여자를 의지하고 기대어 살기를 원한다. 이런 남자들의 공통점은 세상과 대면하여 돈 벌기를 두려워한다. 집안에서 못 질하고 전등 가는 것조차 할 줄 모른다. 집안에서 아내가 무거운 짐을 옮겨도 멀뚱히 쳐다만 본다. 이런 남편을 만나서 속 터지는 아내들이 많다.

마마보이처럼 예쁘장하고 꽃 미남으로 생긴 남자 중에 이런 남자가 많다. 귀엽고 예쁘게 생겨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남성이 결혼하면 배우자를 힘들게 한다. 이런 남자는 남성성을 회복해야 한다.
 

태아의 성별을 위한 기도를 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성별에 만족하는 기도가 좋다. 만일 어떤 특별한 성별의 아이를 원한다면 임신 전에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즈음은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만 낳아서 공주나 왕자로 키우다 보니 역효과도 많다. 어떤 집안에서는 여자를 남자처럼 키우고 또 다른 집안에서는 남자를 마마보이로 키운다. 이런 남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면 부부 사이가 힘들기 마련이다. 남녀가 성격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관계가 되면 한 시라도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기가 힘들다.

필자의 경우도, 다양한 방법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상처를 치유해왔다.
그런데 영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태아 치유를 했다. 그랬더니 금방 주변 사람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표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편 클래식 음악이 머리를 좋게 한다고 해서 듣는다고 하는데 필자는 반대 입장이다. 클래식 음악이란 말은 상당히 고상하게 들리지만 사람은 매체를 통해 그것을 지은 사람의 영향도 함께 받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와 태아가 받아들이면 표면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좋지 않은 것들이 많다.

유명한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죽었고, 베토벤은 매독으로 귀머거리가 되었고, 모차르트는 음란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들은 음악적 천재성은 뛰어났지만 도덕성은 별로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음악이 머리를 좋게 한다고 해서 임신 중 지속적으로 들었다가는 자녀의 머리는 좋아지겠지만 나쁜 기질의 영향을 받아서 자녀의 성격도 괴팍해 질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매체-책, TV, 인터넷, 영화 게임 등-은 모두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 사람의 영적 상태가 기운을 통해 그것을 보거나 시청하는 사람에게 전이된다는 사실은 양자역학을 조금만 알면 금방 이해가 된다.

 

-유아기의 충격

예수님은 태어나자 말자 죽이려는 헤롯 왕을 피해 급히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다.

“13. 그들(동방박사)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마 2:13-15).

이런 경우 어린 아이에게 정신적 충격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든 사모님을 치유한 적이 있다.
은퇴한 남편 목사와 같이 살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수시로 마음에 외롭고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힘들다고 했다. 자기가 기억하는 한 외롭게 자란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기도했더니 유아일 때 잠시 혼자 버려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산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부모의 사정으로 인해 얼마 동안 홀로 방치되어서 외롭고 무서워서 심하게 울었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상처를 예수님께 맡기는 치유를 하자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열등감?

예수님은 외모가 볼 품도 없으시고 출신 지역이나 가문도 형편 없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일 1:45-46).

역사적으로 사농공상의 신분 제도에 익숙해 온 한국 사회는 아직도 외모, 재력, 출신 지역 등으로 인해 차별이 심하고 그로 인해 열등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특히 요즈음에는 가히 외모 지상주의라고 할만큼 각종 성형도 유행하고 몸매 가꾸기에도 열심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득의 양극화로 인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갈등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지나치면 병적이 현상이 되어 삶을 괴롭힌다.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멋진 사람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둘째,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긍지를 가져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셋째,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끊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의 고백이 당신의 고백이 되게 하라.

“8하.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하-10).
 


- 예수님은 아는 사람들에게 거절 당하셨다.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마 13:55-57).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0-11).

나라나 인종 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교권인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유독 ‘왕따’가 심하다고 한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로마 제국은 이질적인 인종과 종교를 품는 유화 정책으로 대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했다. 그러나 특히 일본이나 한국은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고 못나 보이면 구박하고 ‘왕따’시키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에 따라 배타적이고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분을 품거나 보복하지 말고 아픈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예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2-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셨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마가)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0-52).

“74. 그(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4-75).

예수님이 3년 반 동안 양육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 가시자 모두 도망쳐 버렸다. 마가는 배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죽음도 무릅쓰고 따르겠다고 큰 소리쳤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빤히 보시는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 부인했다.

배신!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원하지 않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듯, 대부분은 믿고 의지한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반응할까? 복수의 칼을 갈다가 기회가 오면 찔러 버릴까?

이번 여름과 가을에는 기대할 만한 두 가지 영화가 소개된다.
하나는 1959년에 제작한 『벤허』로서 7월초에 상영되고 다른 하나는 2016년 새로 제작한 『벤허』로서 한국에는 9월 경에 상영된다고 한다. 벤허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눈요기가 많은 화면과 신나는 전차 경기가 인상 깊은 영화다. 핵심 내용은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배신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유다 벤허는 죽마고우이자 로마군 총사령관이었던 친구 멧살라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 자신은 노예로 팔려갔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하 감방에 갇혀서 나병환자가 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유다와의 전차 경기 중에 멧살라는 마차에 치어 죽으면서 유다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말을 전해 준다. 벤허는 다시 한 번 분기충천한다.
 

나병 환자 골짜기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간 벤허는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슬픔과 분노를 가누지 못한다. 벤허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중이었다. 예수님에게 물을 갖다 주던 벤허는 오래 전 자기가 노예로 팔려가던 중 나사렛에서 자기에게 물을 떠주던 사람임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때 유다는 그 물을 마시면서 삶에 대한 용기와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기적이 일어나서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깨끗이 낫는다. 벤허는 예수님의 십자가 바로 아래 서서 예수님의 피가 빗물과 섞여서 땅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얼마 후, 집에 돌아온 벤허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에 독기가 빠지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벤허는 여종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기 직전, 나는 그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5)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
“그 순간에조차 그런 말을?”
“그래 그랬어. 바로 그 음성이 내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놓게 했어.”

바로 그때 어머니와 여동생이 온전하게 치유된 것이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예수님도 두려움과 공포를 당하셨다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8-39).

당시의 십자가 형벌은 정치범이나 흉악범이 최고의 고통을 당하면 서서히 죽게 만드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끔찍한 형벌을 생각하니 두려움과 공포가 앞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순종하셨다.

염려, 불안 및 두려움은 분노와 함께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
미국의 신문상담가인 앤 랜더스씨는 매월 1만 여 통의 상담 편지를 받는데, 그중 압도적으로 많은 상담 제목이 ‘두려움’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건강을 잃어버릴까 봐, 재산을 잃어버릴까 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까 봐, 직장을 잃어버릴까 봐, 더 나아가서 삶 자체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5대 불안이 있다. 안보 불안, 주거 불안, 건강 불안, 교육 불안, 노후 불안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한 신문의 통계는 총칼보다 더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무기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그 신문은, 자기 나라 사람 중 일본군이나 독일군을 대항하여 직접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 수는 35만 명인데 비해 남편이나 아들을 전장에 보내 놓고 그에 대한 근심으로 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심장마비 내지는 기타 질환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무려 일백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의사들은 염려와 두려움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계속 증거한다.
고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90%가 감기나 가슴앓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에 대한 두려움, 직장을 잃고, 나이를 먹고, 건강을 잃는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염려와 두려움은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다.
 

염려, 불안 및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범브렌트 목사는 감옥에 갇혔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그런데 그는 성경말씀에 “두려워 말라”라는 말씀이 366회나 기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일 한 번씩-윤달까지 고려하여-이 말씀에 의지하여 어떠한 환란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이 기쁨과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아라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마음 훈련의 초기에 염려와 불안부터 척결하기로 했다.
특별하게 염려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래를 생각하면 괜히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염려와 불안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 부족에서 오는 죄로 여기고 집중적으로 마음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했더니 염려와 불안의 뿌리가 뽑혔는지 더 이상 염려와 불안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이후 환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염려와 불안감이 생기면 금방 주님께 문의한다. 주님 ‘이것, 염려할 일입니까?’ 그러면 대부분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석과 대처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어느 목사는 매달 밀려오는 건축 융자금 등의 돈 문제로 질식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마음 훈련을 통해 염려와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한 후 날라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사님, 저는 이것 하나 해결된 것만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자는 염려, 불안 및 두려움을 하나님께 제대로 맡기면 심령 천국이 임한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5, 33)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예수님은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하셨다.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 27:29-30).

유교의 동양권에서는 죄 보다는 체면을 중시한다.
유명인이 불법에 연루되어 연일 매스컴에 이름이 보도되고 일부 수사관의 강압적 태도로 인한 수모와 멸시를 당하지 못해 가끔 자살하기도 한다. 특히 갑질이 심한 한국에서 못 가진 자는 온갖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당하면서 살아간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을 품으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릴 것인가, 포기하고 좌절할 것인가, 다른 을에게 분노를 전가할 것인가?

이전 글에서, 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치솔로 변기를 닦은 빅토 프랭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힘이 없을 때 원수를 갚는 최고의 방법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이렇게 하면, 첫째 내 마음에 한·울분·응어리가 쌓이지 않고, 둘째 하나님이 원수를 변화시켜주시기도 한다.
 

-예수님도 외로움을 당하셨다.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모두 도망쳐버렸고 혼자 제사장들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홀로 외롭게 심문을 받으셨다.

사람이 외로운 환경에 처하면 처음에는 ‘내가 못나서 이렇구나’라는 자격지심과 함께 나중에는 자기를 홀로 내버려둔 가족이나 친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고, 더 나아가서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 분노가 쌓인다고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좋은 친구이시다.
보혜사 성령의 헬라어는 파라클리트인데 원래 의미는 ‘전쟁터의 단짝 파트너’를 말한다. 사람의 위로가 없을 때 성령 하나님이야 말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는 친구이시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7-1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위로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홀로 된 사람 중에 외로워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에 열중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거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결혼했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홀로 된 사람은 가능하면 좋은 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셨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인간적으로는 억울함을 하나님께 토로하셨다.

억울함이 쌓이고 쌓이면 한·울분·응어리가 된다.

형들에게 꿈 자랑했다가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 주인 마님의 심기를 거슬려서 감옥살이까지 한 요셉.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연단시키신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다.

인간적으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억울함을 맡기는 기도가 필요하다. 시편의 탄식시가 좋은 기도문이 된다.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시 43:1-2).


-예수님은 온몸이 마비되고 통증이 오는 고통을 당하셨다

십자가형은 피가 서서히 빠지면서 온 몸에 마비 증상과 고통이 임하면서 죽어간다고 한다.

조니 에릭슨은 17세에 미국 대서양 연안의 체사픽 만(灣)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몸이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에 척추가 부셔졌다. 물에서 구조되었을 때 그녀는 어깨 아래의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병원에서 의사는 그녀의 머리 양쪽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서 철심을 박고 그곳에 케이블을 연결하여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침대에 꽁꽁 묶여서 2시간 마다 한번씩 침대 위에서 돌려져야만 했다. 한 번은 천장을 바라보고 한 번은 바닥을 바라봐야 했다.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그녀는 평생 불구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너무나 상심하여 차라리 죽고 싶었다. 비록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사고 이후 그녀의 신앙에 혼란이 왔다. 그녀는 ‘왜 하나님이 자기와 주변 모든 사람의 치유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신디는 침대 옆에 앉아 조니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마침내 신디는 다급하게 외쳤다.

“조니, 예수님은 너의 마음을 알고 계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왜냐하면 그분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때가 있었거든.”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거니?”

신디는 계속 말했다.

“사실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봐.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셔서 등에도 상처를 입고 계셨어. 예수님도 자세를 바꾸거나 몸을 편하게 하고 싶으셨을 거야.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어. 십자가에 예수님은 못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으셨거든.”         

신디의 이 한마디 말은 조니의 일생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한 마디였다.
자기와 똑같은 괴로움을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당하셨다고 생각하니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도 사라졌다. 신디를 통해서 조니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나중에 남편이 된 켄 타다(Ken Tada)와 조니는 「조니와 친구들」 (Joni and Friend. JAF)란 이름의 국제장애인선교회를 1979년에 창설하였고 사역이 번창하여 2006년에는 조니와 친구들 국제장애인센터(IDC)을 설립하였다. 조니는 2005년 미국 국무부의 장애인 고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예수님과 스데반의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기도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신자가 적어도 이런 기도를 하면 한·울분·응어리는 없어질 것이다. 필자의 사역을 통해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누린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용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이런 기도를 했기 때문에 급속한 치유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나가는 말

이상 필자는 예수님이 생전에 당하신 시험과 고난을 어떻게 대처하셨는가를 살펴보았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이미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마음을 제대로 다루기 못해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은 고사하고 부부 관계, 부모 자녀 관계는 물론 사회의 대인 관계, 교회의 목사와 성도 관계 및 성도간의 관계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교회가 열심을 내고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 교회 생활, 봉사와 구제와 선교 잘 하는 신자는 양성했을지 모르지만 내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다 보니까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가정 생활, 신앙생활 및 사회 생활을 골고루 잘 하는 신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에서 은사 사역자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능력은 나오는데 사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사는 사역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은사 사역자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남은 도우면서 자신은 돌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쉽다. 마음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은사 사역으로 인한 역공과 후유증으로 인해 사역 도중에 또는 말년에 고통 받는 사람도 많다.

또한, 마음 훈련은 외지의 선교사들에게 더 필요한 훈련이다.
오지의 선교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했던 한 선교사가 마음 훈련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는 수시로 단기 선교를 통해 제3국에서 목숨을 걸고 선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는 마음 훈련을 받던 중, 하나님이 10년 전에 자신에게 이런 훈련을 하라고 하셨는데 여러 번 경고를 받았지만 기회를 놓치다가 이제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교지는 한국과는 영적 환경도 다르고 영적 공격이 더 심한 곳이다.
마음 훈련을 제대로 하여 겉사람을 깨고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지 않고, 외적 훈련만 받고 타지에서 선교하다가 영적 눌림으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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