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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과새사람②]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신자는 ‘육신에 속한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야 한다
구요한 목사 서은혜 목사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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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19  21: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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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자료-신앙 성숙도 채점표.pdf (138208 Byte)
   
 

[새마음과새사람②]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

-신자는 ‘육신에 속한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야 한다-

글 : 구요한 목사. 서은혜 목사

   

▲내 안의 겉사람이 자주 승리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 속사람이 자주 승리하면 신령한 사람이다.

들어가는 말-

개인이든 지역 교회든 우주적 교회든, 말씀훈련, 은사훈련마음훈련(생명 훈련)의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이것은 필자가 삼각 영성에서 말한 말씀의 영성, 은사의 영성합일의 영성과 같은 것이다.

필자의 신앙 여정 또한 이런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초기에는 말씀 공부에 열심을 내어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을 하다가 은혜를 받고 신학교에 가서 말씀을 더 깊이 파게 되었다. 말씀 공부에 재미를 붙이던 중 방언, 신유, 축사 및 예언과 같은 기적행하는 은사에 눈을 뜨면서 은사와 기름부음의 세계에 폭 빠져서 말씀 공부 못지 않게 오랜 세월 동안 은사를 추구하고 그런 집회에 참석하여 많은 은사도 받고 깊은 체험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내면을 살피는 내적 치유에 눈을 뜨면서 내면을 하나하나 점검하다 보니 내 마음이 마치 시궁창처럼 지저분한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온갖 미움과 분노, 염려와 두려움, 외로움과 배신감 등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도서나 자료를 실제로 나에게 적용하면서 초기에 2~3년 정도는 집중적으로 마음 청소를 한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내적 치유는 주로 아픈 상처와 나쁜 기억을 치유하는 것이다. 비록 내적 치유를 계속해 왔지만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탐욕, 정욕, 시기, 교만 등이 세상 것에 대한 유혹과 부딪치면서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마음을 뒤흔들면, 이전에 받았던 은혜도 다 까먹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서 좌절하고 낙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5).

그러던 중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로 마음훈련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음훈련은 회개와 믿음을 통해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성화 훈련(롬 6:11), 마음을 새롭게 하는 훈련이다(롬 12:2; 엡 4:22-24). 마음훈련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신앙의 기복도 줄어들고 심령 천국을 누리고 지식이나 은사가 주지 못하는 새로운 영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마음훈련을 제대로 하려고 보니 자료가 너무나 빈약했다. 요즈음 유행하는 여러 가지 영성 훈련-이전의 것을 복구한 영성 훈련이기도 하지만-의 치명적인 결함은, 대부분이 선언적이고 각론이 부족한 원론적인 훈련이라 처음에는 그럴 듯 하지만 회개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 열매가 별로 없었다.

회개에 대한 책들도 더러 있지만 주로 회개의 원론[Why]을 강조하고 각론[How]에 대한 책은 드물었다. 존 오웬이 회개를 강조하는 책을 더러 저술했지만 죄와 회개에 대해서는 많이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방법, 회개 후 믿음으로 채우는 방법, 회개 후 따르는 영적 축복들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칼뱅의 『기독교강요』에서 회개에 대한 통찰력을 많이 얻었다.

그러나 계속 회개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마음훈련을 하고 자료들을 연구하다 보니, 하나님이 죄를 깨닫는 방법(무엇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과 회개하는 방법(회개에도 방법이 있다) 등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회개만 하면 주눅들기 쉽고, 오늘날의 교회처럼 믿음만 강조하면 외식적 신앙인을 양산하기 쉽다. 제대로 된 마음훈련은 회개훈련(비움)과 믿음훈련(채움)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물이 콩에 부어지면 많은 물이 떨어지지만 콩나물로 자라는 점진적 변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형 스캔들은 물론 각종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외과 수술처럼 수술 부위를 정해 놓고 집중적으로 회개하고 죄성을 뽑아내야 변화가 가능하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있다.

혹자는 필자가 기적중지론 척결에 앞장 서다가 ‘왜 갑자기 마음훈련이냐?’고 의아해 할지 모른다. 기적 은사와 마음훈련은 신앙생활의 양면이다. 초자연적 기적 은사를 통해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신자는 보이는 세상 것에 대한 미련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 더하여 질적 성장 즉 영적 성숙이 따르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이 있고 서신서가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만 강조하면 외적 성장은 따르지만 내적 성숙은 요원하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도행전적 성장과 서신서적 성숙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내적 성숙이 없으면 성경 공부나 은사 체험은 사상누각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내적 성숙은 성경 공부나 은사 체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훈련은 내적 성숙을 돕는 훈련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말씀훈련은사훈련에 더하여 마음훈련(생명훈련)에 매진할 때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
 

기독교 지도자들의 스캔들은 끝이 없다.
한 때는 목회자와 장로들이 스캔들의 주역이 되더니 이제는 신학 박사로 옮겨갔다. 부천시 박사 목사의 자녀 치사 및 유기 사건, 청주시 박사 목사의 엽기적 폭행 사건은 한국 기독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언제 어디서 또 어떤 사건들이 터질지 모를 일이다.

필자는 이 글을 그대로 올리려고 했는데, 왠지 조금 더 기다리자는 생각이 들어서 미루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또 대형 사건 한 건이 터졌다. 한국의 유명한 OOO박사 목사가 5년~7년 가까이 미국의 저명한 박사 목사인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의 설교를 표절 정도가 아니라 베껴서 할 정도이고, 보이스 목사의 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에 자기 이름을 붙여 출판한 의혹이 일고 있어 교회가 충격과 갈등에 빠져있다.

더 큰 문제는, 죄가 드러났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퇴장했으면 박수를 받을 텐데, 하나 같이 변명하고 부인하고 정당화하여 더욱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요즈음의 한국 교회는 고린도 교회의 판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중심적인 상업 도시로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우상숭배가 심하여서 12개 이상의 신전(神殿)이 있었고 신전 창녀들이 1,000명이나 될 정도로 성적 문란이 심한 도시였다.

더군다나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았지만, 파벌이 심하여 서로 간에 시기와 질투와 파당과 분쟁도 많았고, 교인들 사이에는 법적 투쟁이 다반사였다. 또한 고린도 교인은 애찬식 때 식사를 따로 할 정도로 가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이 심한 교회였다.

기적중지론자들은 고린도 교회가 은사로 말썽을 부리는 교회라고 정죄하지만 고린도교회는 은사 자랑은 물론 학문 자랑도 심한 교회였다. 아테네와 같은 학문의 도시는 아니었지만 고린도 주민들은 헬라 철학에 관심도 많고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 1:2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바울의 이런 표현은 철학적, 세상적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는 고린도 교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한편에서는 세상 학문을 자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은사 자랑을 하면서 여러 파로 나누어져서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는 골치 아픈 교회였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국 교회는 은사자도 많고 박사 목사도 많은 나라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은사자들이 윤리도덕적으로 말썽을 많이 부린다고 비판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은사자나 학문자나 오십보 백보 수준이다. 한때 유럽이나 미국의 신학교를 한국 학생이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목회학 석사(M.Div)과정은 물론 박사 과정에도 한국 학생들이 많았지만 학문적 성취가 신앙 인격 함양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이런 현상은 말세를 당한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정화 작업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성장과 성공과 간판 위주의 한국 교회가 성숙과 배려와 성결의 한국 교회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이자 채찍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 4:17-18).

 

당신은 심령 천국을 누리는가?


실정법을 어기고 스캔들이 공개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죄를 짓는 수준은 아니지만 심령 천국은커녕 부부 관계, 부모 자녀 관계는 물론 중요한 인간 관계에서 갈등과 고통을 겪는 교인들이 생각 보다 많다. 신학을 전공하고 각종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은사를 많이 받은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무기력과 탈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생각 보다 많다.

물론 교회에서는 내적 치유나 각종 영성 훈련을 하지만 실제로 심령 천국, 관계 천국을 누리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사람은 생각 보다 적다. 왜 그런가? 대부분의 목회자나 교인들이 아직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장과 성공에 치중하는 것에 비해 회개와 내면의 변화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은 좋은 교인은 양성할 지 모르지만 좋은 신앙인을 양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회개하고 변화 받으면 무엇이 좋은지, 더 나아가서 어떻게 회개하고 변화 받는 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기독교인 중에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고 봉사나 구제도 타종교에 비해 제일 많이 한다. 그러나 교회의 윤리도덕 수준이나 영성은 불교, 천주교에 이어 꼴찌이므로 종교 선호도도 꼴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독교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는 동안, 그들은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정과 안식을 누리는 훈련에 열중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지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인성, 준법정신 및 청렴성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각계의 지도자들은 경제적 선진국은 물론 인성적 선진국-자기희생의 감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 일상의 사소한 에티켓 수준, 준법 정신, 청렴성 등-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을 선도해야 할 교회, 특히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지도자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후진국 수준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있으니, 교회가 비아냥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교회도 이제는 고린도 교회 수준에서 벗어나서 환골탈태할 때가 온 것 같다. 신앙도 성장하고 교회도 성장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교나 천주교 못지 않은 영성훈련, 마음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기독교계에서도 요즈음 성품훈련과 인성훈련을 강조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기독교윤리연구소는 <목회자 윤리강령 28>을 출간하면서 ‘목회자는 죄에 더 예민해야 하고…… 성직자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한다’면서 최근 신학 교육받은 자의 성적 일탈과 살인 등의 행위는 이론과 실천이 유리된 신학교육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국민일보』2016.6.17. 30면).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것들은 원론적 당위성만 강조하고 각론적 방안이 부족한 것, 좋은 성품은 강조하면서 나쁜 성품에 대한 회개는 부족한 점이 아쉽다. 기독교의 인성훈련, 성품훈련은 세상의 그것처럼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를 닮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성품을 입는 것은 물론 나쁜 성품을 고치는 회개와 믿음의 둘 다를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 좋은 말씀 듣지 않고, 좋은 내용 몰라서 이런 것이 아니다. 머리로 알아도 마음에서 나오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것이다. 죄를 이기고 선을 행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훈련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마음훈련의 유익

마음훈련의 유익은 본질적이고 지속적이다.
 

무엇보다 먼저,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누린다.

염려와 불안, 의심과 불신, 시기와 질투, 탐욕과 집착에서 해방되어 본인 자신이 고상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던 대부분의 관계-부부, 부모 자녀 및 동료 관계-가 회복된다.

어떤 목회자는 매달 은행 차입금 때문에 짓눌리다가 마음훈련을 통해 자유케된 것 하나만 해도 감사하다 했고, 어떤 사모는 교회에 문제가 터지면 드러누울 정도로 연약했는데 마음훈련을 통해 이후에는 끄덕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교인들이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어떤 전도사는 마음훈련을 통해 20년 동안 원수같던 남편과 화목해져서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요즈음 살 맛난다. 내 평생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라면서 기뻐했고, 어떤 집사는 30년 동안 군림하면서 갑질하던 남편이 변하고 덩달아 자녀도 변하여서 가정 천국을 이루고 스트레스로 생긴 가슴앓이도 깨끗하게 나아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둘째, 질병이 치유된다.

현대의 고질적인 질병의 70~80%는 심인성 질병-암, 위장병, 우울증 등-이고 그 다음이 생활 습관병-당뇨, 고혈압 등-이다. 마음훈련을 제대로 하면 심인성 질병은 그냥 낫거나 속히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심장병으로 유서를 써놓은 사람이 마음훈련을 통해 완치되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여름에도 팔이 시리던 사람이 마음훈련을 통해 완치되기도 하고, 암 치료가 후유증 없이 완치된 경우도 있다.

성경도 마음의 고통과 죄로 인한 질병에 대해 기록한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시 31:1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회개 않는 마음, 상처 받은 마음이 지속되면 기력이 쇠진해지고 뼈가 상하여 만병의 근원이 된다. 뼈에서 신체에 필수적인 골수 혈소판 백혈구 및 성체줄기세포(몸을 치유하는 부품 같은 것)가 만들어기 때문이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회 각분야에서 생존 경쟁을 위한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이다. 심인성 질병은 이제 나이를 가리지 않고 노년, 장년, 청년은 물론 초등생을 괴롭힌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의 각 분야에 영향을 미쳐 암,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면역체계 방해, 만성 피로증을 유발한다.

불안,염려 및 두려움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암, 심장병, 위장과 소화기관 장애 및 만 가지 병이 생긴다. 슬픔, 비애, 좌절, 낙담이 오래 지속되면 각종 피부병과 자살충동이 생기고, 나태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 뼈와 근육 관련 질환들이 생기고, 외로움에 젖어있으면 관상 동맥, 심장병, 뇌졸증, 유방암, 자궁암 등이 생긴다. 자기 희생과 우유부단한 사람은 암, 화병, 우울증이 잘 생긴다고 한다. 이런 병들은 마음에서 오는 대표적인 병들이다. 죄책감, 수치심, 율법주의에 젖은 사람은 호흡기 장애와 유방암을 앓는다고 한다.

이런 병들은 병원에서 완치되어도 마음관리를 제대로 하지않으면 금방 재발한다. 그러나 마음훈련을 통해 심령 천국과 관계 천국을 누리면 이런 고질적인 병들이 대부분 저절로 낫거나 현저하게 쾌차된다고 한다. 이 때문이 불신자는 물론 기독교인들도 마음훈련을 하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셋째, 범사에 형통한다.

돈 때문에 싸우던 부부가 기도 중, 싸우기 때문에 물질 축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사 59:1-3). 하나님 앞에 당당해야 기도 응답이 잘 된다.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4:14-15).


넷째, 자녀가 변하고 잘 된다.

자녀의 마음훈련은 빠를수록 좋다. 요즈음 자녀를 다스리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목회자 중에서도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마음훈련을 제대로 하면 자녀가 하나님 앞의 양처럼 순해진다.


다섯째, 은사와 기름부음이 더 강하게 임한다.

내면이 더러우면 외적으로 임한 기름부음도 금방 떠나지만 마음이 깨끗하면 기름부음이 더 오래 더 강하게 임하고 거룩한 웃음이 수시로 임한다.


여섯째, 성경 말씀이 열리고 설교 준비가 쉬워진다.

목회자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설교 준비이다. 그런데 마음훈련을 제대로 하면 성경 내용이 열리고 설교 준비가 쉬워진다. 어느 목회자는 마음훈련을 제대로 했더니 성경 어디를 봐도 내용이 마음과 연결되어 설교 하기가 너무나 쉬워졌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임재기도가 잘 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중세 수도원의 영성(“영적 결혼”), 사막 교부의 영성(“신의 성품에 참여”)이 별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것이 된다.
 

그외 에도 여러 가지 유익이 많지만 여기서는 소개하는 차원이므로 이 정도에 그친다. 우리 한국 사람은 한 번 필(feel)이 꽂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습성이 있으므로 변화와 성숙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을 알면 누구보다 마음훈련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마음훈련을 제대로 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신앙 생활을 오래했지만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교회나 신자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이런 면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육신에 속한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야 한다.

성경은 고린도 전서에서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에 대해 기록한다.

 

성경이 말하는 3종류의 사람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2:14-15; 3:1-2).
 


-육에 속한 사람(헬, 쉬키코스. a natural man, a soulish man).

육에 속한 사람은 비신자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을 말하는데 이들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죄가 무엇이고 구원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는 사람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사르키코스. a carnal man, a fleshly man).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의 어린 아이’다(고전 3:1).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신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여전히 육신의 소욕을 따라 세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성경 말씀을 삶 속에서 실제로 체험하지 못해 아직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히 5:13-14).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시기, 분쟁, 자기 자랑, 교만, 형제를 판단, 이런 저런 가르침에 잘 동요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보다는 육신의 소욕을 더 따르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 육신의 소욕보다는 성령의 소욕을 더 따르는 사람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갈 5:16-18 참조).

신령한 은혜를 많이 체험하고, 은사 체험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금방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체험은 신앙 성숙의 정도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거나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신령한 사람 (프뉴마티코스. a spiritual man) (고전 3:1)

신령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통상적으로 예언의 영이 있어서 사람의 과거나 미래를 잘 알아 맞추는 사람을 신령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을 아주 귀한 것으로 여겨서 방언하는 사람은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리므로 자기들이 할 일은 이제 천국 가기만 기다리는 되는 사람으로 착각하여 교만하게 여기면서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장 및 14장에 걸쳐서 방언 보다는 예언이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며, 아무리 좋은 은사를 가졌더라도 사랑의 동기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르쳤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기적행하는 은사가 뛰어나면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신령한 사람’이란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아무리 뛰어난 은사나 학식을 가졌더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의 동기로 사용하지 않으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신령한 사람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다.
이들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고전 3:2; 히 5:13-14), 성숙한 신앙인, 그리스도가 실제 삶의 주인이 된 사람이다. 성경에서 ‘신령한’(spiritual) 또는 ‘영적’이란 말은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 영의 사람이란 말은 육신의 생각이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은 아무리 구원을 받았어도 사람 자체가 신령하거나 영적일 수는 없다.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의 특징 비교

‘육신에 속한 즉 영적 어린 아이’와 ‘영적으로 성숙한 신령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걸 제대로 하려면 성경 전체를 다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중요한 것 20가지만 뽑아보았다. 각자가 신앙성숙도를 체크할 수 있도록 채점표도 만들어 보았다.

☞<신앙 성숙도 채점표> 첨부파일 : 자료-신앙 성숙도 채점표.pdf

각 항목에서 우수(5점), 양호(4점), 보통(3점), 미흡(2점), 부족(1점)으로 하여 자신의 영적 성숙도를 채점해 보라. 그리고 ‘부족’이나 ‘미흡’을 받은 부분은 한꺼번에가 아니라 한두 개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회개하고 반대되는 좋은 것으로 채워라.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한두 달만 집중적으로 하면 급속한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1.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오히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

이런 사람은 조금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조금만 은사를 가지면 마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알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교만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떤 사람은 열등감을 은폐하기 위해 교만할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여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다(빌 3:7-9). 은사 자랑하는 사람, 학식 자랑하는 사람, 전통 자랑하는 사람, 소유 자랑하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3-5).
 

2. 육신에 속한 사람은 파벌과 당을 잘 짓는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사람이나 조직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긴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신자들 중에서도 나는 어느 유명한 목사의 교회 다닌다, 어느 유명한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은근히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자주 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내세우는 사람이 바로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고전 3:2-9).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소속한 교파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자기 교파에 대한 충성이 예수에 대한 충성이고, 자기 교파의 확장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편 가르기는 나 밖에 모르는 우상숭배와 유교 문화의 잔재이다. 나의 연장이 가족, 지연, 학연이고 이것이 집단이기주의로 빠진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내 것 못지 않게 남의 것, 남의 것 보다는 하나님의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3.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강하다(고전 3:3).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남을 높이고 수용한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이조 5백 년의 역사는 시기와 모함으로 점철된 당파 싸움의 역사이다. 시기와 질투는, 탐욕과 정욕 못지 않게 인간에 내재한 죄성이지만, 한국 사람에게 심하며 교회의 중직은 물론 사역자들 사이에서 더 심하다.

성경은 시기와 질투는 분노 보다 더 악독한 것이라고 기록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 14:30).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이는 그(빌라도)가 그들(제사장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마 27:18).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행 5:17).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행전 7:9).

게(crab)는 뚜껑이 없는 큰 통에 넣어두어도 도망가지 못한다고 한다. 한 놈이 도망가려면 다른 놈이 그 놈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시기와 질투가 강하면 나보다 낫거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끌어내리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여호수아를 내세운 갈렙, 바울을 내세운 바나바처럼 겸손하게 처신한다.
 

4. 육신에 속한 사람은 걱정과 근심, 염려와 두려움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심령 천국을 누린다.

염려와 불안도 죄다. 하나님 보다는 문제를 더 크게 여기고, 주님에 대한 믿음 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하려다 보니 생기는 죄악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필자는 염려와 불안도 (믿음 부족의) 죄로 여기고 몇 개월 동안 염려와 불안의 뿌리를 뽑는 회개 기도를 한 결과 염려와 불안의 늪에서 헤어난 것을 지금도 감사한다. 사도 바울은 환경을 초월하여 감옥에서도 오히려 기뻐했고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빌 3:1; 4:10).
 

5.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신앙의 기복이 별로 없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비록 예수를 믿지만 내재하는 죄성과 내주하시는 성령 사이에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 죄를 따르는 겉사람과 하나님을 따르는 속사람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으면 속사람이 강해진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겉사람이 추악하고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힘들게 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내주하는 죄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때문에 신앙의 기복이 드물다.
 

6.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조정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사람을 섬기고 위해서 기도한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 있는 자의 갑(甲)질이 수시로 매스컴을 장식한다. 이조 시대의 사농공상 계급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기록한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이나 미국인은 좀 가졌다고 우쭐대고 행세하는 것이 예외적인 반면 한국에는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은 이방인 지도자는 군림하고 통제하는 자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섬기는 자라고 하셨다(눅 22:25-26). 육신에 속한 사람은 군림하고 통제할 때 쾌감을 누리지만 신령한 사람은 섬길 때 기쁨을 누린다.
 

7. 육신에 속한 사람은 혈기를 잘 부리고 고집이 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유순하고 온유하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8).

혈기와 고집 때문에 사업 망하고, 교회 망하고, 가정 망하고, 관계 망한 사람들이 많다. 혈기는 마귀의 전형적인 기질이고 고집은 죄인의 전형적인 기질이다. 특히 혈기는 우상숭배가 심하고, 강대국의 압제와 가진 자의 수탈에 짓눌린 한국인 다수에게 고질적인 성격이고 고집은 우상숭배가 심한 가정 출신에서 심하다.

한국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조그만 잘못도 소송으로 몰고 간다. 한, 울분, 응어리가 치유되지 못하고 승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혈기의 반대는 인내이고 고집의 반대는 온유-잘 길들여진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8. 육신에 속한 사람은 판단 정죄와 참소를 잘 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이해가 깊고 남의 잘못을 통해 자신을 살핀다.

우상숭배가 심한 다수의 한국 사람에게 많은 고질적 기질이다. 한국인은 뒤에서 수군거리고 비방하기를 잘하며, 사소한 일로 판단정죄를 잘하고, 조그만 불이익만 당해도 참소하고 고소한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소송율이 3~4배로 높다고 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9. 육신에 속한 사람은 거짓, 사기, 불법을 잘 저지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코람 데오’(神前 의식) 신앙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다.

최근 일본의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저널은 “한국인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일삼는다”면서 한국의 위증죄, 무고죄 및 사기죄 입건 수준은 일본 전체의 66배, 인구 대비 165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기 피해액은 43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한국이 세계 제일의 사기 대국이자 부패 대국이라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한국의 매스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기 사건, 표절 사건, 부정부패 사건이 머리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성경은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왜 한국이 거짓 공화국인가? 우상숭배가 심하고, 이조 500년의 유교로 인한 체면과 외식 문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결핍과 졸부의 양산으로 인한 일확천금과 성공지상주의, 끊임없는 외우내환(外憂內患)으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성향은 신자에게도 만연하다. 수많은 목회자나 박사의 저서나 논문 표절 사건, 기독 실업인의 사기와 불법 사건은 불신자나 다를 바 없다. 하나님 나라 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하나님에게는 동기나 과정이 선하지 않으면 결과는 의미가 없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10. 육신에 속한 사람은 체면과 외식이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솔직하고 투명하다.

“악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이해하는 데는 ‘이미지’, ‘외형상’,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말이 퍽 중요하다. 그들은 선해지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선해 보이려는 욕망은 불처럼 강하다. 그들의 ‘선함’이란 모든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 선함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짓이다.”

“악한 사람들의 주된 동기는 위장인 까닭에 악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발견되는 장소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교회다. 우리 문화에서 교회의 집사나 눈에 띄는 다른 높은 직분자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악을 잘 숨길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자신의 악을 숨길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도 악한 사람들은 똑같은 성향을 나타내 '괜찮은' 힌두교도, '괜찮은' 회교도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종교인들 거개가 그런 악한 사람들이라든가 사람들의 종교적인 동기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한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보장하는 위장과 은폐를 찾아 그 경건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에 있다.”

(출처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인간은 죄인이므로 누구에게나 위선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특히 체면과 형식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로 인해 신앙 생활에서 위선적인 요소가 많다.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드러나지 않는가? 외부의 도전이나 자극을 받으면 위선적 행위가 너무나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교회 생활 보다는 신앙 생활잘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신령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성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고쳐나가는 사람이다.
 

11.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혼이 연약하여 위기와 어려움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위기나 어려움을 잘 견딘다.

위기와 곤경에 처했을 때, 사람 마다 나라 마다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은 위기에 처해도 공개적으로 감정 표시를 잘 하지 않고 절제를 잘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한국인은 공개적으로 펑펑 울면서 슬픔과 분노와 한을 쏟아놓는다. 아마 일본 같은 지진이 한국에도 자주 일어난다면 나라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정권 물러가라고 연일 데모를 할 지도 모른다. 육신에 속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2. 육신에 속한 사람은 본능적 욕구를 잘 통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을 욕구를 잘 통제한다.

요즈음 한국은 가진 자의 수난 시대이다. 유명 인사들이 성 추행, 불법 뇌물 수수 등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을 장식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상습 성 추행, 학위 논문 표절 및 공금 유용 등은 이제 스캔들 필수 과목에 들어갈 정도이다. 이제는 신학자들이 각종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신학자의 수난 시대이다. 성장과 성공에 매진하면서 본능적 욕구를 통제하는 훈련을 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어떤 커리큘럼을 보더라도 이런 훈련을 제공하는 학과나 프로그램이 없다.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신학 공부 많이 하고 은사 많이 받는다고 해서 이런 욕구가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xxx급 포르노, 도박이나 각종 폭력적, 엽기적 행동을 어린 아이는 물론 성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접하면서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목사가 여성들을 몰카를 찍다가 체포되고, 사회적 명사가 우연한 기회에 젊은 여성을 성 추행하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히 성적 성향이 비정상적이라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향에 벌거벗게 노출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13. 육신에 속한 사람은 조급하고 잘 덤벙거린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신중하고 속이 깊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잠 29:20).
 

14. 육신의 속한 사람은 자기 열심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자기 의 보다는 하나님의 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15.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기 기분이나 감정에 쉽게 좌우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꾸준하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의 신앙은 ‘냄비 신앙’이라고 한다. 은혜 받을 때는 확 달아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떤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것같이 말하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다 잊어버린다.

요즈음 ‘성인 아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정서, 사고력, 판단력은 아이의 수준에 멈춘 사람을 말한다. 교회에도 이런 성인 아기가 많아서 자신도 괴롭게 남도 힘들게 만든다.

신앙 생활 하다 보면, 누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한 말을 하면 잘 참지 못하고 온 교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신앙 생활 같이 하다가도 누가 자기에 대해 한 두 마디 책망하거나, 자기를 좀 알아주지 않거나, 자기 보다 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 상처 받고 토라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속사람으로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겉사람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겉사람으로 일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거나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금방 시험이 들어 토라진다.
 

16. 육신에 속한 사람은 욕망과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절제와 비움 훈련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잘 내려놓는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사람들 중에 의지와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의지와 욕망이 강한 사람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하며 어지간한 시험이나 굴욕도 잘 참는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 일도 이런 식으로 한다.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평신도는 사업 성공, 목회자는 목회 성공이 곧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성장과 성공을 통해 자신의 에고와 허영심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라고 말했다.
 

17. 육신에 속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18. 육신에 속한 사람은 의심과 불신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특히 신학자나 목회자 중에서 자유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의심하면서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불교에 심취했거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혼미, 허무, 공허, 무기력, 좌절, 낙심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령한 사람은 이런 성향들과도 싸워서 승리하는 사람이다.
 

19.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의를 위해서는 강한 자에게도 사자같이 담대하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약육강식의 원칙에 의해 강한 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거나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갑질하고 조정, 군림, 통제하는 성향이 강하다. 세례 요한, 예수님 및 사도들이 힘 없고 연약한 자의 친구가 되면서 동시에 권력이 있는 기득권자들과 성령 사역을 대적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당당하게 대적한 것과는 차이가 많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겁쟁이였지만 성령 체험 후에는 사자같이 담대해졌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 28:1).
 

20.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입술이 거칠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언어가 순화된 사람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최근 필자는 어떤 은사 사역자의 유튜브(YOUTUBE) 강의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말끝마다 ‘새x’란 단어가 입에 달린 것은 보통이고, 교인들이 몰려가는 것을 ‘x떼 같이 몰려간다’는 식으로 말을 하여 강의를 듣는 내내 거북했다. 사역 좀 성공하고 능력 좀 나오면 그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은가?

이름이 알려진 한 대형 교회 목회자는 공개 집회에서 어떤 사람을 세워놓고 무안을 주는 것이 특기(?)다. 그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내용은 좋은데 목사가 강의 중에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은 불의를 잘 참지 못하고 영력을 과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한 마디로 공적 매너와 교양과 에티켓의 부족이다.

입이 거친 OOO 목사를 ‘빤스 목사’로 인터넷에 올려서 명예훼손죄로 약식 기소로 벌금형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지난 5월27일 승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청 형사4부는, O 목사가 입을 가볍게 놀려서 명예 훼손의 위험을 자초한 면이 있다면서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한 기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일부 교회 부목회자는 ‘언어 폭력에 운다’고 한다(국민일보. 2016. 6.16. 26면). 일부 부목회자는 담임 목사와 교회 중직자, 평신도로부터 무시, 인격모독, 비난 등의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한다. 담임 목사와 성도 중 상당수는 부목회자를 그들의 감정을 해소하는 약소한 존재로 여긴다고 한다.

내가 은사 좀 가지고, 큰 교회나 큰 사역 좀 가졌고,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공적 집회나 사석에서 반 말, 저속한 언어나 쌍말을 하고 사람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은 모두 자기를 내세우는 겉사람의 언행들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미천한 종을 대하더라도 공손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빌 2:1-4).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벧전 2:9).
 

그외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의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지만, 요약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속사람과 겉사람과의 전쟁에서 겉사람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주일 성수나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외형적인 것에는 금방 익숙해지지만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겉사람은 좀처럼 잘 극복이 되지 않는다.

비록 서서히 개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쁜 성향이나 고질적인 기질들은 특정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평생 따라다니고 결정적인 순간에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어 평생 쌓아올린 공적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하면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갈 수 있을까?
 

성경에 의하면, 신앙 성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사람의 적극적인 성화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사기꾼 야곱을 20여 년의 징계와 연단을 통해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시키셨다. 하나님은 요셉, 모세 및 다윗을 쓰시기 전에 각각 13년, 40년 및 13년이라는 장 기간의 연단을 통해 변화시킨 후 들어쓰셨다.

그러나 사울과 솔로몬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세상 영광을 맛본 탓에 쉽게 무너져 버렸다. 신앙 성숙이 제대로 되지 않고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성공해 버리면 무너지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고난과 연단이 필요하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고난은 유익이 많다(약 1:2-4; 벧전 1:6-7).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고난만으로는 부족하다. 40년 동안 연단을 받은 모세는 마지막에 분노를 참지 못하여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민 20:10-13), 13년 동안 광야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다윗도 왕이 되어 밧세바를 성폭행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끔찍한 사고를 쳤다.

한국에서 대형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초기에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았지만 그동안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나 집착이 잠시 잠복해 있었을 뿐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후 사역이나 사업이 성공하여 교만하고 방심하여 고삐가 풀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가능성이 농후하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1-23).

그러므로 나를 힘들게 하는 고질적인 죄성은 평소에 집중적 회개를 통해 제거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표면으로는 잠잠한 것 같지만 유혹의 환경이 열리면 자신도 모르게 죄악이 순간적으로 드러나서 좌절하게 하거나, 죄에 무감각하여져셔 평생 쌓아 올린 공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분노, 정욕, 교만, 시기, 두려움, 나태와 무기력, 이기심, 탐욕과 집착 등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뿌리뽑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셋째 하늘에 가서 온갖 신령한 체험을 하고 죽은 자도 살린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어떤 사람은 죄를 한 번만 회개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필자는 반문한다.

“오랫동안 미워한 사람에 대해, 미워한 죄 한두 번 회개했다고 해서 마음의 미움이 없어졌습니까?”
“아, 그렇군요. 미움의 뿌리를 뽑아야 하는군요.”

죄된 행위는 죄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죄된 행위의 회개는 물론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죄성의 뿌리도 뽑아야 한다.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마 15:18-20 참조).

하루 샤워하지 않으면 찝찝하고, 이틀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고, 사흘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안다. 그런데 매일 쉴새 없이 악이 흘러나오는 마음 샤워는 얼마나 자주 하는가?

성화의 과정은 회개와 믿음의 연속 과정이다. 회개만 강조하면 주눅이 들고 믿음만 강조하면 바리새인 같은 외식적인 신앙인을 양산하기 쉽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에 양면이 있는 것처럼 동시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회개는 믿음으로 하는 회개(believing repentance)요, 우리의 믿음은 회개하는 믿음(penitent faith)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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