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목회 > 종말과신앙
[성경적종말론①] 말세와 요한계시록건전한 종말론은 <복음전파>와 <그리스도의 형상회복>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5.01  23:09: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성경적 종말론①]

말세와 요한계시록

-건전한 종말론적 신앙은 신자가 이 땅에 살면서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의 형상 회복>의 두 가지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다-

   
 

제3성전 건축설.
베리 칩(RFID) 소동.
블러드 문(Blood Moon. 피 빛 달) 현상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의 등장.
토라 뿌리 운동.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요한 종말론적 현상들이다.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임이 없다. 미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좀 잠잠하다 싶으면 또 다시 새로운 종말론적 현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달아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열기가 식어간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긴장은 어느 때보다 팽팽하여 잠시도 숨 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수시로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는 냉전체계에서 벗어나서 문화충돌, 종교충돌, 인종충돌로 인해 갈등과 전쟁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세계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빈부 차이가 현저하여 전세계 70 억의 인구 중에 극빈층이 3분지 일을 점유하고 있다. 더군다나 라 니냐와 엘 니뇨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인해 홍수와 가뭄과 지진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은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마 24장 참조). 따라서 신자라면 우리가 사는 현세가 말세 그 중에서도 말세지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말세지말이다," "말세가 가까웠다"고 하면서 ‘종말론적 현상(들)’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말세를 당한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안내는 드문 편이다.

기껏해야 일부 사교 단체에서 휴거의 날짜를 거짓 예언하여 추종자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요한 계시록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악의 세력이 미치는 않는 어느 곳으로 피신하여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식량 등을 준비한다든가, 적 그리스도가 아직 나타난 것도 아닌데 베리 칩을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메시아닉 쥬의 등장과 토라 뿌리 운동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교계에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다.
 

종말론에 대한 곱상치 않은 시선

그러나 종말론에 대한 대부분의 교인들의 시선은 곱상치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여태까지의 개인이나 우주의 종말에 관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열매가 좋지 않았다.

오래 전 한국에서는 다미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여 한 동안 교계를 시끄럽게 했고 미국에서도 심심찮게 종말론을 잘못 이해한 사이비 집단들이 집단 자살과 같은 끔찍한 일을 자행해왔고 수시로 시한부 종말론을 남발하여 ‘양 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처럼’ 식상한 소재가 되어버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론에 대해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하기 쉽다.
 

둘째, 아직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부터 데이빗 차라는 얼굴 없는 사람이 등장하여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각종 설(說)과 ‘카더라(~라고 하더라) 내용’을 담은 도서들의 재탕을 출판하여 고전적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그는 특히 세계 정부와 666의 출현 및 프리 메이슨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모 기독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비록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이들이 주인 노릇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때의 미혹에 더 이상 속지 말라는 것이 그의 말의 요지다. 음모론이든, 프리메이슨이든, 그들의 행동과 음모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할 린지의 『휴거]』를 통해 한국 교계에도 대중화 하기 시작한 종말론-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핵심은 신자들이 재림 예수와 공중에서 만나는 휴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으로 종말론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을 마치 ‘휴거’(rapture)라는 절정을 향해 진행되는 한편의 파노라마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정부와 적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지구 상에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신자는 모두 공중으로 휴거 되어 예수님과 함께 ‘구름 극장’에서 편안히 앉아서 지상에서 벌어지는 소름 끼치는 7년 환난을 유유자적하게 관망하다가, 환난이 끝난 후 예수님과 함께 지상 재림하여 문자적으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의할 때, 신자는 모두 휴거 될 것이므로 지상에서 일어나는 환난은 신자들과 상관이 없다는 잘못된 안도감을 주고 있다.

필자도 초기에는 할 린지의 『휴거』를 몇 번이나 읽어 보고 종말에 관한 영화 도 보고 대부분이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지은 각종 도서나 차트를 보면서 종말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쁘고 동시에 소명감도 느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전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학교에 다니고 또한 성경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면서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성경의 여러 부분과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는 많은 성령 운동가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한 ‘선교적 사명’은 강조하지만 신자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선교적 사명은 신자 각자가 그리스도의 형상 회복을 위한 전초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도 12 제자들에게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전도한 후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지키게 하라는 ‘전도와 성화’의 포괄적인 명령을 내리셨다(마 28:18-20).
 

한국에는 선교 초기에 당시 미국에서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선교사들이 소개한 바람에 초기에는 교파를 가릴 것 없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C.I. 스코필드라는 평신도 변호사가 세대주의적 관점에서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당시 정규 신학교 과정을 거치지 못한 대부분의 오순절주의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세대주의의 기적중지론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종말론을 포함한 나머지 대부분의 세대주의 신학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고 있다.
 

셋째, 한국 교회에서는 어느 틈엔가 천국 상급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신자는 다음의 구절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늘 마음 속으로 ‘내가 죽은 후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떤 심판-이것은 구원 여부가 아닌 상급 심판-을 받을까’를 염두에 두고 신앙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0-15).

일부에서는 구원 자체가 ‘상급’이므로 ‘구체적 상급들’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물론 하나님이나 예수님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상급이지만 ‘믿음의 행위’에 대한 상급은 사람마다 분명히 다르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고백만 하고 구원 받은 강도와 평생 예수를 위해서 살면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과 천국 가는 신분은 동일하지만 상급은 전혀 다르다. 강도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지만 바울은 많은 상급을 받았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신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신앙생활도 잘 하면서 성공도 하고 부요하게 살고 큰 사역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자기 영광, 세상 영광에 빠져서 천국 상급을 까먹는 경우도 많다. 특히 큰 사역을 한 목회자들 중에서 세상에 살면서 사람 영광, 세상 영광을 너무 많이 받아서 상급을 다 까먹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도 많다.

왜 한국 교회에서 천국 상급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 사라졌을까?
교회의 세속화와 성령 운동의 잘못된 여파도 있다고 본다. ‘잘 살아보세’라는 경제 개발운동과 더불어 오순절 운동의 건강·축복 복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은 하면서도 너도 나도 따르게 되었다. 또한 성령 운동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already)을 강조하면서 눈에 보이는 ‘능력’과 ‘축복’을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not yet)인 ‘고난’과 ‘회개’는 물론 ‘천국 상급’에 대한 언급은 인기 없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후자를 더 강조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 때문이다(고후 4:18).

마지막으로, 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계시록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계시록의 해석이 너무나 다양하여 어떤 종말론이 확실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실로 한국은 ‘계시록 춘추전국 시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계는 20세기 초에 한국에 건너 온 선교사들의 영향과 할 린지를 통해 대중화 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환난 및 천년 왕국 이전 재림)을 주로 세대주의자들과 오순절 계통 교인들이 따르고,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 Pre-millennialism. 환난 후 및 천년 왕국 이전 재림)은 많은 장로교인들이 따르고 있다. 그러다가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들이 학계에 대거 등장하면서, 어거스틴 이래로 루터,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문자적 천년왕국'을 부인하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또는 성령 강림을 통해 실현된 천년왕국설(Realized Milleni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함-이 보수 장로교의 대표적인 종말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성령 운동의 대부인 피터 와그너는 한때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였는데,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도미니언’ (Dominion. 정복. 창 1:28이 말하는 문화명령의 실천)과 사회를 변혁하는 ‘7대 산(영역)’을 강조하면서 보수적 후천년설(Historic Post-millennialism)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꾸어졌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고 가정하지만 후천년설은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다가 마침내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고, 유대인이 회복되고, 유례 없는 영적 번영을 누리는 천년 왕국이 도래하며, 이후 잠시의 배교를 겪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한다.

후천년설은 원래 세상은 진보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청교도인 존 오웬, 조나선 에드워즈 찰스 핫지와 같은 개혁주의자들이 주창해 왔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세대주의 신학과 함께 20세기 초기에 인기를 끌면서 미국을 휩쓸었고 한국도 그 영향을 받아서 지금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종말론이 되고 있다.

참고로 골수 기적중지론자인 미국의 존 맥아더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이다. 그는 기적중지론을 주창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의자 행세를 하다가 종말론에 대해서는 개혁주의의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과 대척점에 있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창하고 있다.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이 역사적 전천년설이 아니면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것과 대조된다.

또한, 맥아더는 7년 환난 중에 베리칩을 받더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극성파들의 주장을 부인한다. 참고로, 한국의 대부분의 장로 교단은 존 맥아더와 동일한 견해를 제시한다.

(*천년왕국을 중심으로 한 종말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한다).
 

‘정치는 싫지만 내가 투표를 하지 않으면 더 나쁜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장로교 대국인 한국에서 장로교는 칼뱅이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아서인지 절대 다수인 장로교에서 종말론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시한부 종말론이나 극단적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휘둘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활개를 칠 때마다, 미국의 출판계에서 대중적 차원의 세대주의적 관점의 종말론적 자료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데 비해, 장로교적 관점은 ‘그런 것이 신학적으로 틀렸다’고 지적만 할 뿐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대중적 출판물들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서나 세미나나 유튜브(YouTube)를 통한 자료를 통해 관심과 스릴(?)을 제공하는 잘못되거나 극단적인 종말론에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들도 쉽게 물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유사한 견해를 가진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하고, 김종철 감독의 다큐 물인 『제3성전』이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유사한 종말론을 암시하면서 한국 교계에 다시 한번 종말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는 여느 개신교처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유대인으로서 주로 유대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지만, 메시아닉 쥬의 구약적 율법의 회복에 호감을 가진 비 유대인들 중 한국 교인들도 동참하고 있다. (‘메시아닉 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필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종말론과 계시록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며,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이런 문헌과 저런 기록을 통해 종말론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며, 건전한 종말론을 위해서는 종말에 대한 다양한 해석법을 공부하여 객관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계시록의 해석 관점 

종말론과 계시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계시록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록의 해석이 상당히 복잡한 것 같지만 해석의 몇 가지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상징과 비유와 숫자가 많은 계시록의 특정한 개별 구절의 해석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한 구절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의 해석을 어렵게 보는 이유는, 계시록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그 책의 기록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계시록의 기록의 특성을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해석 원칙은 다음과 같다.


계시록은 예언서이다(계 1:3; 22:6, 18)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forth-telling)과 앞으로 이루어 질 일(fore-telling)을 기록한 것이다. 여느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예언서인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며 동시에 앞으로 될 일을 기록한 책이다.
 

계시록은 서신서이다

계시록은 신약 성경의 서신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서언, 본문, 결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계시록은 서신서이기 때문에, 교회 시대의 어느 특정한 한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위한 책이다.

따라서 계시록 4장 이후는 교회의 휴거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나는 7년 대환란을 묘사한다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계시록의 말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이외의 6 교회와 계시록 5-22장까지는 신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 되고 만다.

그 결과 기록 당시 로마 당국의 핍박을 받은 신자들, 일본의 전제주의나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으로 인해 핍박 받은 한국의 신자들, 지금도 적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나 제도에 의해 고통 받는 북한의 신자들,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대적하고 핍박하는 이슬람 국가의 신자들과 계시록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앞으로 다가 올 ‘7년 환난’이라는 가상의 기간 동안 신자들이 핍박 받는 것에만 적용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이런 해석은 다음에 언급하는 미래 해석법의 전형적인 오류라고 하겠다.
 

계시록은 묵시 문학의 형태를 지닌다

묵시 문학이란 주전 200년에서 주후 100년 사이에 성행하던 유대인의 문학 형식이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유명한 성경 인물의 실명을 사용하여, 세상의 종말을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묵시문학은 현재의 인간 역사(history)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하며, 두 개의 엄청난 초자연적인 세력―주로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을 기록하여, 악하고 불의한 현 세대와 의롭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내용들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마치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모처에 재림하신다는 식의 주장은 삼가 해야 한다. 계시록의 핵심은 비록 신자들이 현세에서는 사탄의 공격으로 고통을 받지만 종말에는 하나님이 악한 세대를 멸하시고 의롭고 영화로운 세대를 만드신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계시록은 예언서이자 서신서이며 묵시 문학의 형태를 취했다는 원칙을 고려할 때, 계시록은 핍박과 고통과 환란에 처한 신자들에게, 비록 잠시 악이 성행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소망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은 초대교회 신자들이나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받은 한국의 신자들은 물론 지금도 도처에서 핍박과 환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 계시록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이런 다양한 관점이 아니라 한 두 가지 관점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그 뜻이 왜곡되거나 과장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계시록의 여러 가지 해석방법
 

계시록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계시록에 대한 해석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석자가 이 네 가지 중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종말론에 대한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마치 어떤 색깔의 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는가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미리 지적하지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나 이에서 파생되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절대 다수가 미래 해석법을 취하면서, 극단적이고 경직적 문자적 성경 해석에 의해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이분법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교회’와 ‘유대인’의 구원을 구분하지 않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이라고 비판하는데, 교부들이나 개혁주의자들 중에서도 로마서9-11장에 근거하여 교회의 구원과 달리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계시록을 해석하는 대표적인 해석 방법은 다음과 같다.

과거 해석법

계시록의 내용이 초대교회 당시에 모두 이루어졌다는 해석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하는 주장이다.

이런 방법으로 해석하면,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의 핍박에서 구원된다는 소망을 주는 책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로마제국으로, 로마 황제 숭배를 촉구하는 사교의 제사장을 거짓 선지자로 이해한다.

당시 연약한 교회는 로마제국의 위협으로 인해 박멸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요한은 이런 위협에 처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곧 구원하실 것이므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라고 기록한 책으로 이해한다.
 

역사 해석법

계시록을 초대교회부터 대종말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시대 전체에 대한 기록으로 이해한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이 주로 한 주장인데 계시록의 해석을 유럽의 역사와 대비하여 해석한다. 이 해석의 주요 특징은, 천주교 가톨릭 교회는 짐승이고 교황은 거짓 선지자라고 해석한다.
 

이상주의 해석법

역사적인 해석법이 계시록의 기록과 구체적인 역사를 대비시켰다면, 이상주의 해석법은 계시록의 특정한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이해하여 교회시대 전체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일반적 원칙에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핍박은 어느 한 특정한 시대나 한 사건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시대 전체에 걸쳐 교회를 핍박하는 적대적인 세력 전체를 상징한다. (예, 짐승은 로마 제국, 천주교, 히틀러의 3제국, 공산주의. 이슬람 국가 등).
 

미래 해석법

할 린지를 위시한 세대주의자들이나 오순절주의자들이 주로 하는 주장이다. 특히 세대주의 전천년주의자들은 계시록의 7교회는 초대교회(에베소교회)와 말세의 교회(라오디게아교회)를 시간 순서로 기록한 것이며, 4장 이후는 교회가 휴거된 이후 일어나는 7년 대환란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주장대로 한다면 계시록은 초대교회의 핍박 받은 신자들이나 일제 시대에 고통 받은 한국인 순교자들은 물론 지금도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에서 핍박을 받는 신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 되고 만다. 계시록이 교회 시대의 신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기록된 서신서라는 사실에 위배된다.

이 주장의 주요 특징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날카롭게 구분하여, 구약에 기록된 미래적인 예언은 교회와는 상관없는 이스라엘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여 이것이 천년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계시록 해석의 대원칙이 네(요한)가 본 것과 (과거)과 이제 있는 일과(요한의 현재) 장차 될 일(요한 이후의 장차) 임을 감안한다면, 계시록의 대부분을 대종말의 미래 사건으로만 해석하는 미래 해석법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종합 해석법

계시록은 과거 해석법, 역사 해석법, 이상주의 해석법 및 미래 해석법 전체의 종합적인 원칙 하에 해석되어야 한다. 계시록은 초대교회 신자들은 물론 교회시대―유럽은 물론 전세계의 교회―전체를 통해 모든 신자와 교회를 핍박하는 모든 세력들에게 적용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7 교회는 시간 순서가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교회이다. 7 교회는 요한 당시에 실제로 존재한 교회이며, 오늘날의 교회 또한 7 교회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즉 오늘날의 교회 중에서도 에베소 교회,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첫사랑과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신앙의 형식주의, 관념주의, 전통주의에 젖은 소위 말하는 '죽은 정통의 교회’가 있고, 또한 버가모나 두아디라교회와 같은 ‘이단성 있는 교회’도 있다. 예수님은 죽은 정통의 교회나 이단성 있는 교회를 똑같이 칭찬하시고 똑같이 책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물론 빌라델비아 교회나 서머나 교회같이 칭만만 받는 교회도 있다.
 

시간 순서냐, 주제별 순서냐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시간 순서로 해석할 것인가, 동일한 사건의 반복으로 해석할 것인가?
 

*세상의 역사관과 기독교적 역사관

세상의 역사관은 순환론적이고 반복적인 역사관이지만 기독교의 역사관은 창조와 진행과 대종말을 향해 진행되는 일직선적 역사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역사관에 반복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 만사가 대종말을 향해 일직선으로 진행되지만 대부분의 종말론적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종말을 향해 진행된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질병과 핍박과 환란과 같은 종말론적 현상들은 예수님의 초림 이래로 지금까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꾸준하게 반복되면서 진행되어 왔고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천년설은 직선법 역사관을 강조하면서 이런 현상들이 마치 대종말의 때에만 일어나는 것처럼 주장한다.

미래 해석법은 계시록의 사건을 시간 순서에 따라 해석하기 때문에 계시록 4장 이후는 (휴거 당한) 신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 되고 만다. 계시록의 4장에서 20장까지는 이 땅에 남은 불신자들에게 임한 7년 대환난을 묘사한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시간 순서가 아니라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록은 전체적으로 7개의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기록한 책인데, 초기부분은 초대교회에 대한 기록이 많고 후반에 갈수록 대종말에 관한 기록이 많다. 이런 기록법을 "점진적 병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이라고 한다.

즉 계시록의 1-3장, 4-7장, 8-11장, 12-14장, 15-16장, 17-19장, 20-22장은 모두 동일하게 초대교회와 종말의 사건을 기록하는데, 초기의 장들은 초대교회 시대의 사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후기의 장들은 종말의 사건을 보다 자세히 기록한다. 계시록의 큰 사건 하나 하나가, 비록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성행하여 신자들이 핍박과 고통을 받지만 종말에는 의인이 반드시 승리하고 악인은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계시록은 일부에서 말하듯 휴거에 동참한 신자들은, 불신자들이 지상에서 7년 동안 대환난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과 함께 구름 극장에 앉아 유유자적하는 신앙생활을 그린 것이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는 적대적인 세력의 핍박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절개를 버리지 않은 신자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는 소망과 위로의 책이요 찬양의 책이다. 신약에서 유독 계시록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자주 기록된 이유이다(계 4:8-11; 5:9-14; 7:9-12; 11:16-18; 15:2-4; 19:1-8).

"할렐루야 구원과 능력과 영광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 .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도다"(계 19:1, 6). *

 

[관련기사]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실시간인기기사
회사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후원안내회원자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5610>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39길 21-19, 201호  |  대표전화 : 0707-554-0585  |  팩스 : 0504-037-0050  |  Mail to : gloriatimes@naver.com
발행인·편집인 : 구요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요한 발행인  |  후원계좌 : 국민은행 529401-01-218720 예금주 임마누엘선교회  |  사업자등록번호 : 123-89-06414
Copyright © 2017 글로리아타임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