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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부흥] 아주사 부흥 110주년 기념 집회, 은혜롭게 마무리1906년 ‘아주사 부흥’은 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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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7  22: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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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부흥]

아주사 부흥 110주년 기념 집회, 은혜롭게 마무리

-1906년 ‘아주사 부흥’은 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

   
▲ '아주사 지금'의 집회 모습
   
▲ 윌리암 세이모어 목사 우측은 아주사 선교회 건물

1906년 LA에서 일어난 ‘아주사 부흥’(Azusa Revival) 110주년을 기념하면서 새로운 부흥을 사모하는 ‘아주사 지금’(Azusa Now) 집회가 2016년 4월9일 LA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약 7만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5시간에 걸친 뜨거운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졌다.

주최측은 당초에 12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교롭게도 행사 당일에 바람과 함께 오랫동안의 가뭄을 해소하는 비가 오는 바람에 실제로는 한국계 만 5000명 내지 2만명 정도를 포함하여 6만 명에서 7만5000명 정도 참석한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했다.

기념 집회를 주관한 루 잉글 목사는 이번 집회를 통해, 110년 전에 일어난 아주사 부흥이 재현되기를 사모하며 오랫동안 기도로 준비해왔다면서, 영적이고 사회적으로 분리되고 문화적으로 타락한 미국을 살리는 길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영적 부흥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천국호소운동 선교회’(Appeal to Heaven Movement) 설립자인 더치 쉬츠(Dutch Sheets)목사는 “하나님은 아직 미국을 떠나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미국을 휩쓰는 새로운 기도운동을 어떻게 시작하셨는가에 대해 말했다. “오늘 15시간 동안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오늘 모임을 통해 좋을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파이어 선교회’(Global Fire Ministries)의 제프 잰슨(Jeff Jansen) 목사는 ‘아주사 지금’이야 말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있어 온 수많은 주요한 집회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부흥 사역자이자 찬양 사역자인 조슈아 밀즈(Joshua Mills)는 하나님이 전 세계적을 일하시는 것을 다시 한 번 목격했다고 말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단순한 만지심에 의해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주사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만지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고 말했다.
 

‘아주사 그때’(Azusa Then)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은 20세기 초에 방언 운동을 시작한 찰스 파함(Charles Parham. 1873~1929)을 통해 은혜를 받은 흑인 목사 윌리암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가 LA에 도착한 후, 리차드 에즈베리의 집에서 기도모임을 하던 중, 4월9일에 에드워즈 리에게 세이모어 목사가 안수를 하자 리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이모어 목사 자신도 사흘 후에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모임 장소가 좁아져서 ‘아주사 거리 312번지’에 있는 감리교 성공회 교회로 옮겼는데 부흥의 이름은 이 거리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세이모어의 사역으로 인해 LA의 조그만 말 구유간이 세계적인 관심의 장소가 되었다.
‘아주사 부흥’에서는 방언은 물론 희귀한 기적과 신유 현상도 많이 일어났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사 집회 기간 중에 대규모의 소방대원들이 소화기와 호스를 들고 들이닥쳤다. 이웃사람들이 빌딩 전체를 휩싸고 있는 화염을 보고 불이 난 줄 알고 소방서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Liardon: Kindle location, 1856).

하나님의 영광이 건물을 덮었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려졌던 다리들이 생겨나고, 빈 곳에서 안구(눈)가 생겨나고, 암이 치유되고, 간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Welchel: 169).
 

‘아주사 부흥’이 특별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지가 바로 아주사 부흥이기 때문이다. 아주사 부흥 자체는 2006년 4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약 3년 6개월 동안 피크에 이르다가 이후 열기가 식었지만 그 동안 전 세계에서 부흥을 사모하여 몰려온 사람들이 ‘아주사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의 불을 받은 후 각자의 지역에서 성령의 불을 계속 지펴온 결과 불과 100년 만에 아주사 부흥의 영향을 받은 은사운동 교파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개신교 집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사 부흥’이 시작되자 세이모어 목사는 ‘사도적 믿음’(Apostolic Faith)이란 뉴스레터를 발행·배포하여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몰려와서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와 성령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주사 부흥은 방언 현상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쓰러지는 현상도 일어났고, 흑백 인종 분리법에 따라 인종 별로 예배 드리던 전통적 교회와는 달리 흑백은 물론 인종적 차별 없이 예배를 드리자 전통적 주류 교단들은 달갑지 않은 눈초리로 ‘아주사 부흥’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요즈음도 미국의 전통적인 교회는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종 별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은사운동 교회들은 대부분이 흑백은 물론 다른 유색 인종들이 하나가 되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이것 하나만 봐도 전통적 교회들이 아무리 교리와 전통이 바르다고 주장해도 인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전통주의자들은 사마리아 부흥이나(행 8:14-17)) 고넬료 집안의 부흥이(행 10:44-48)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반목, 인종 간의 벽을 허물었다고 신학적으로 주장은 하면서도, 그러한 현상들은 ‘계시사적으로 단회적 사건’이란 거창한 신학(?)을 말하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아직도 인종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주사 부흥 이후 여성 사역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성경 해석을 잘못하여 여성 사역자의 안수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교단이 있는데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면 인종은 물론 성적 차별도 없어진다는 사실을 성령 운동이 웅변적으로 증거해 주고 있다.
 

아주사 부흥에 대해 특히 일반 신문들이 경멸적으로 보도했는데 이것이 노이즈 마켓팅(Noise Marketing)이 되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했다. LA타임스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해괴한 말들을 지껄여대는 새로운 광신 집단의 등장, 어젯밤 아주사 거리에서 있었던 광란의 현장”이라는 머리 기사로 아주사 부흥 운동을 혹평했다.

그러나 언론의 이러한 횡포에도 교회는 매일 밤 사람들로 가득 차 교회 건물의 모든 충과 심지어 지하실까지 모두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언론의 혹평은 자멸을 초래하는 것이었고,이 운동에 대해 무료 선전을 해준 것이 되었지만,이 당시에는 이런 언론보도만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운동의 현상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불행히도 당시 수백 만의 미국인들은 이런 편협한 보도만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교계 신문들도 일반 신문과 비슷한 기사를 실어 내보냈다. 일반적으로 비교적 사려 깊고, 공정한 태도를 지닌 면접자들이 버젓이 왜곡된 기사를 싣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계속 자행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언론의 관행상 이와 같은 흥미 있는 기사가 한 번 실리기만 하면 다룬 신문들도 그 기사를 그대로 인용 보도하거나 무단으로 표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이다.
 

아주사 부흥에 대한 주류 교단들의 평가는 혹독했다.
케직 운동의 지도자로 성령 세례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내고,강의를 통해 많은 사람을 가르쳤던 르우벤 토레이 (R. A. Torrey) 신부도 처음에는 방언을 “사기 행위 " (Monkey Business) 라고 하면서 자신이 인도하는 집회에서는 방언 사용을 금지했다. 그의 가장 강도 높은 비난은 “오순절 운동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동성 연애자에 의해 창시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난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은 캠밸 모간(G. Campbell Morgan) 이 “오순절 운동은 사탄의 최후의 구토물”이라고 단언한 것이다(빈슨 사이난: 130). 미국의 주류 교단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오순절 교단’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주사 부흥이 시작된 지 8개 월 후에, 그 근처에서 나사렛 교단을 설립했던 피니어스 브리지 (Phineas Bresee) 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혹평의 기사를 썼다.

“이들은 숫자적으로나 혹은 교계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보더라도 아직 한낱 보잘 것 없는 소수 집단에 불과하다………굳이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말로 표현하자면,그것은 조약돌 한 개가 바닷속으로 던져질 때 일어나는 파문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이 방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뜻 모를 소리에 불과하며,그저 무의미하게 중얼거리는 소음일 뿐이니 그들은 참으로 가련한 소란꾼들이다. 그들은 현재 신앙에 불만족하는 무리로 이전에 결코 성결케 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적인 진실된 신양을 송두리째 팽개쳐 버리고 기이하고 놀라운 기적들만을 쫓아가다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사람들이다”(사이난: 82).
 

그러나 성결운동의 부흥사인 프랭크 바틀맨(Frank Bartleman)은 비교적 정확하게 아주사 부흥을 평가했다.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자가 고침을 받으며,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으며,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되었고,또한 기름부음을 받았다. 영적인 위인들이 새로이 탄생되었으며,믿음이 약한 자들은 주 안에서 강함을 얻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촛불을 밝힌 것처럼 깊은 데까지 환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의 순간이었고,그것은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의 마음 깊은 곳의 동기까지 변화되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앞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높임 받으시고 그 보혈은 찬양 되었으며,성령은 다시 한번 영광을 받으셨다. 또한 입신의 권능이 강력하게 나타나 신체가 건장한 남자들이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풀처럼 힘없이 쓰러진 채 수시간 동안 잠자코 누워만 있었다. 이런 기세로 나간다면 앞으로 이 부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세계를 휩쓸게 될 것이다”(사이난: 81-82).
 

예수님의 공생애도 아주사 부흥처럼 3년 반 동안 지속되었는데, 예수님의 참신한 가르침은 전통적인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무리인 사두개인들의 가르침과 번번히 충돌되었다. 더군다나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제시하는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가자 마침내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함하여 십자가형에 처해 지게 만든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원하신 것이지만 하나님은 섭리적으로 불법자들을 통해 십자가형에 처하게 하신 것이다(행 2:23; 고전 2:8; 빌 2:7-8).
 

역사적으로 유명한 부흥은 대부분이 6개월이나 2~3년 정도의 단명에 불과했다. 하나님이 아무리 성령의 능력을 강하게 부어주셔도 영적 부흥은 부족한 죄인인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며, 하나님이 알곡의 씨앗을 뿌리시는 만큼 마귀도 가라지를 뿌려서 종교 지도자들의 교리적, 인간적, 실천적 차이와 부족함을 강조하여 서로 반목하고 갈라지게 만든다. 더군다나 새로운 부흥은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가르침을 동반하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기 때문에 전통적 교리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 집단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주사 부흥’ 단명의 원인들

‘아주사 부흥’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일반 매스컴과 주류 교단들의 공격 보다는 내부의 교리적, 실천적 차이와 인간적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여 3년 반 정도 지나자 분열과 반목으로 인해 부흥의 불길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무엇이 아주사 부흥을 단명에 그치게 했는가?

첫째, 메일링 리스트(우편 발송 명단) 절취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는 세이모어 목사가 발송하는 뉴스레터인 ‘사도적 믿음’을 통해 멀리 있는 사람들이 가르침이나 집회 정보를 얻었다. 아주사 부흥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주소는 대충 5만개 정도였다. 그런데 세이모어의 사도적 믿음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에서 뉴스레터 발송을 담당하던 백인 여성 클라라 럼(Clara Lum)이 5만 개의 발송 명단을 갖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세이모어 목사는 한 동안 총각으로 지내다가 1908년 5월에 신앙 깊은 흑인 여성 제니 에반스 무어(Jennie Evans Moore)와 결혼했다. 그런데 세이모어를 짝 사랑하고 있었던 뉴스레터 담당인 클라라 럼이 이를 시기하여 5만 개에 달하는 우편 발송 명단을 갖고 오레곤 주에 있는 전직 아주사 목회자였던 플로렌스 크로포드(Florence Crawford)의 선교회에 우편 명단을 넘긴 것이다. 이후 '사도적 믿음' 뉴스레터는 발송되었지만 주소지는 크로포드 선교회였다.

세미모어 목사에게는 이제 LA 지역 참석자 명단 밖에 없었고 이후 아주사 부흥집회의 소식을 업데이트 받지 못한 다른 지역의 참석자들의 숫자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세이모어는 명단을 회수하기 위해 오레곤 주를 방문했지만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였다.
 

둘째, 심술 궂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아주사 선교회’ 내에서는 우스꽝스럽고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참석자들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의견이 갈라지고 서로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넥타이는 장식품에 불과한 데 거룩한 사람이 넥타이를 매어도 되는가? 이 논쟁은 또 다른 논쟁을 불러들였다. 폭우를 피하기 위한 폭우 피신처를 설치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가장 우스꽝스러운 논쟁은, 이제는 마지막 때가 다 되었으므로 세이모어 같은 신령한 목사가 결혼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세이모어는 결혼하고 말았지만 이 일로 인해 충성스러웠던 클라라 럼과 플로렌스 클로포드가 세이모어 곁을 떠났고 이후 우편발송 명단 절취 사건으로 이어져서 아주사 부흥에 찬 물을 크게 끼얹는 악영향을 끼쳤다.

초기의 오순절 분열사를 보면 이런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초기의 아주사 거리의 ‘사도적 믿음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 회원들 중에서는 심술궂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타협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는데 이런 일들이 부흥이 조기에 사그라드는 것에 한 몫을 했다.

교회는 다양한 취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Keep the Main thing Main thing)이 교회이지만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단체이기 때문에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 배가 산으로 오르기 마련이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세족식을 하자는 것까지는 동의했는데 어느 쪽 발을 먼저 씻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로 교회가 갈라지는 일이 있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당사자들은 목숨이 걸린 것처럼 싸우는 경우가 많다. “아사 교생 아생 교사”(我死 敎生 我生 敎死.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살면 교회가 죽는다).
 

셋째, 찰스 파함과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1906년 아주사 부흥에 동참한 찰스 파함은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현상을 역겨워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가짜’(false)라고 정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이모어 목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역을 계속해 나갔으며, 이후 찰스 파함은 세이모어의 측근에 의해 축출된 이후 아주사 거리 인근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지만 재기하지 못했다.

요즈음에도 ‘신체적 현상’을 갖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부흥기에 나타나는 신체적 현상은 요한 웨슬리 부흥운동, 미국 케인리지 부흥운동, 제1,2차 대각성 운동 시기에도 다반사로 일어났던 현상들이다. 특히 미국 제1차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나선 에드워즈는 이러한 신체적 현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의 독특한 증거들』(The Distinguished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 first printed 1741,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7)을 통해 쓰러지는 현상 등 생소한 현상이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는 반대파의 주장을 일축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도 『부흥』(Revival)에서 이런 현상은 부흥기에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변호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모르는 자들이 이런 현상은 마귀적이다, 심리적이다, 체면술이다, 서인도 제도의 부두 현상이라면서 잘못 매도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 참조 : ☞”쓰러지는 현상 변호”(우측 상단 배너) 『글로리아타임스』

필자는 최근에, 오래 전 미주 동부 지역에서 쓰러지는 현상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오순절 교단의 지도자인 김OO 목사가 교회에 한국의 Q목사를 초청하여 집회 중 안수하여 쓰러지는 것을 허용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수하여 쓰러지고 신체적 현상이 일어나고 광란하는 것은 처음 보면 생소하지만 자주 보면 그럴 수 있거나 당연한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날씨가 오랫동안 가물면 비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런데 가뭄 후에 비가 조용히 이슬비처럼 오기도 하지만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리기도 하고, 천둥 번개와 폭우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부실했던 제방이나 뚝이 무너지기도 한다.

성령의 비가 내리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은혜의 비가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강한 폭우처럼 내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영적 부흥기나 성령 집회에서 이렇게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육신을 가진 인간의 속에 감춰있던 연약하고 죄악스런 모습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극도의 공포심에 젖은 사람이 두려워 떨거나 몸이 뻣뻣해 지고, 큰 기쁨에 취한 사람이 뛰놀고 함성을 지르고 손뼉 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운동 경기장이나 대중 음악회에서 흥분하는 것, 한국 사람들이 노래방이나 야유회에서 계급장(?) 떼고 흥겹게 놀면서 광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필자는 이러한 신체적 현상은 하나님이 잘 난 체 하는 인간의 교만과 자존심을 깨뜨리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한다. 하나님이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19-20).

성령의 권능이 강하게 임할 때 사람들이 쓰러지고  감정적 신체적 현상을 보이는 것을 천박하고 저급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극도의 공포, 통회자복 및 기쁨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이를 악물고 조용히 속으로 ‘아 두렵다,’ ‘아 슬프다,’ ‘아 기쁘다’라고 하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난 연약한 인간이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초기에 이런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물론 이런 체험이 뜸해 진다.
 

넷째, 윌리암 더햄과의 교리적 충돌이 치명타를 가했다.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던 윌리암 H. 더햄(William Durham. 1873~1912) 목사는 아주사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성령도 받고 방언도 받은 사람으로서 나중에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 교단의 설립자가 된다. 아주사 부흥에 참석하여 성령도 받고 방언도 받은 더햄은 시카고 지역으로 돌아와서 성령운동의 선봉에 서게 된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에서 성장한 더햄은 웨슬리의 감리교에서 성장한 세이모어와 교리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세이모어는 1909과 1910년에는 아주사에서 사역했지만 나중에는 두 젊은이-찰스 파함과 윌리암 더햄-에게 강단을 맡기고 전국 순회 집회에 나서게 된다. 1911년 초에 강단을 맡은 더햄은 세이모어의 성화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웨슬리의 감리교 전통에서 자란 세이모어는 성결 운동의 영향도 받아서 중생, 제2의 축복인 ‘즉각적이고 완전한 성화’ 및 제3의 축복인 ‘성령 세례를 통한 방언’을 가르쳤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에서 자란 더햄은 제3의 축복인 성령 세례는 인정했지만 제2의 축복인 즉각적 완전 성화를 비판하고 '점진적 성화'를 가르쳤다. 더군다나 더햄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다고 가르치자 많은 사람들이 더햄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때는 이미 찰스 파함의 분리 및 ‘사도적 믿음’의 우편주소를 전해 받은 플로렌스 클로포드의 지부가 미주 서부지역에서 확장되면서 아주사 부흥의 영향력이 감소하기 시작한 때였다. 또 다른 분열에 놀란 ‘아주사 부흥’의 장로들은 세이모어가 조속히 돌아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랬다. 세이모어는 조속히 돌아왔지만 더햄과의 교리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이모어는 그해 5월에 더햄을 교회에서 축출했다.

더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많은 추종자들과 함께 인근에 더 큰 장소를 얻어서 밤낮 기도회와 집회를 가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더햄을 따르면서 아주사 선교회는 사실 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요즈음 한국에서 성령 운동 사람들도 교리적 차이로 갈등과 분리를 겪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장로교 대국으로 교인의 70퍼센트가 장로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도 장로교 보다는 순복음은 물론 감리교나 성결교 계통에서 성령 사역에 더 개방적인데, 이런 경우 영적 지도자들의 신앙 노선이 다를 경우, 결정적 순간에 분열을 가져오기 쉽다. 이단 시비로 시달리는 어떤 성령 운동 단체는 후계자인 아들이 부모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같은 성령 운동을 하더라도 취향이나 사역의 강조점이 달라서 분열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기적의 은사를 구하라』에서 밝힌 것처럼 신자는 중생한 후(제1의축복), 제2의 축복인 즉각적 완전성화 체험은 물론 제3의 축복인 성령세례 (또는 성령체험) 모두가 가능하다. 아직도 제2의 축복은 물론 제3의 축복을 인정하지 않는 골수 기적중지론자들이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무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영적 은혜를 사모하는 신자라면 웨슬리와 같은 완전 성화 체험 또는 황홀 체험은 물론 방언 체험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신자에게는 완전 성화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도 ‘점진적 성화’가 당연히 필요하다. 요한 웨슬리도 ‘점진적 성화’를 인정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윌리암 더햄이 당시의 르우벤 토레이나 D. L. 무디가 주도하는 성결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완전 성화’를 부인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추측된다. 토레이나 무디는 ‘사역을 위한 성령의 능력’은 인정했지만-방언과 같은 은사는 부인했다-웨슬리의 ‘완전 성화’는 수용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더햄이 추종자들과 빠져 나간 후, 세이모어는 매일 집회를 주일 집회로 한정하고 재기를 시도했지만 나중에는 겨우 20명만 남게 되었다. 영적으로 지치고 심신이 피곤했던 세이모어는1922년 9월28일에 영면했고 이후 아내가 직분을 계승하여 8년 동안 잘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세이모어 부인 목사가1931년에 ‘아주사 선교회’를 빼앗으려는 일단의 무리들과 일련의 법정 소송을 벌이자, 시 당국은 골치거리를 제거하기 위해 아주사 부흥의 상징인 건물 소재 지역을 ‘소방 지역’으로 규정하고 건물을 철거해버렸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오순절 교단에게 매입 의사를 타진했으나 관심을 보이지 않자 건물 자체를 철거해 버린 것이다. 세이모어 부인 목사는 1936년에 영면했다.
 

마지막으로, 인종 차별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사 부흥의 단명의 결정적 원인은 인종 차별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은 비록 남북전쟁의 결과 법적으로 흑백 인종차별은 없어졌지만 1960년대까지 남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흑백 차별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20세기초인 1900년대에 흑인인 세이모어 목사가 영적 부흥을 주도한다는 사실에 많은 백인들의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백인들이 주도하는 일반 매스컴이나 교계 신문들도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나는 회심이나 치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인종적 갈등과 실천적, 교리적 차별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햄이 추종자들과 빠져나간 후 세이모어 교회에는 거의 대부분이 흑인들만 잔류하게 되었다.
 

맺는 말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1906년과 1909년 의 3년 반 동안의 ‘아주사 부흥’이 오순절 관련 교단과 20세기 성령운동의 시초였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나님이 주도하시지만 부족한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부흥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비판자들이나 기적중지론자들은 단점만 강조하고 장점은 무시해 버린다. 그 결과는? 똑똑하고 신학적으로 잘 난 신학자들(?)이 주도하는 유럽처럼 교회가 텅 비거나 미국의 전통적 교회처럼 쇠퇴하거나 고사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영적 부흥을 전향적으로 평가하면서 좋은 것들은 취하고 나쁜 것들은 버리거나 시정하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
 

참고 자료 :

빈슨 사이난, 『20세기 성령운동의 현주소』(도서출판 예인, 1995).

Tommy Welchel, The True Stories of the Miracles of Azusa Street and Beyond, 2013, p.169.

Roberts Liardon, God’s Generals, Kindle location, 1856.

Vinson Synan, The Century of the Holy Spirit -100 Years of Pentecostal and Charismatic Renewal, 1901-2001, Thomas  Nelson Publishers, 2001, Kindle locations  790-1364.

Lou Engle, “What is Azusa Now?” www.thecall.com/azusa.

Jennifer LeClaire , “The Nation-Shaking Prophetic Download I Got at Azusa Now.” Charisma Magazine, April 12, 2016.

J.D. King, “Why the Azusa Street Revival Ended.” Charisma Magazine.  April 11,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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