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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④] 영적 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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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5  19: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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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④]

 영적 전쟁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그리스도의 군사는 '능력'과 '품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수많은 기독교 신학자, 기독교 상담학자, 선교사 및 메디컬 닥터들인 모인 심포지엄에서 린 버자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영적인 현상들을 부정하는 사람은 회의론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는 한마디로 무지한 사람이다”
(John Warwick Montgomery, ed., Demon Possession, p. 17).

상담학 박사 출신인 모 장로는 자기가 상담학에서 배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도 치유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고심하다가 필자의 『대적을 바로알자』를 본 후 악령의 장난임을 알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자라고 축사를 모두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축사 전문 목사를 수개월간 밀착 취재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심리학회 회원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축사를 인정하는 심리학자가 있는가 하면 인정하지 않는 심리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수를 믿는 여부가 지식 여부에 상관 없듯 축사 인정 여부도 지식 여부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평소에 축사에 무관심하거나 부인하던 사람들도 자기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관심을 가지지 마련이다. 사람은 똑똑한 것 같지만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기 대문이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방법

사실 오늘날에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므로 문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 싸울 것인가이다. 영적 전쟁을 강조하는 그룹 내에서도 영적 전쟁에 임하는 자세나 방법에 대해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접근 방법에 따라 필자는 편의 상, 은사주의자, 중도파 및 기적중지론자로 구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은사주의자들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야단스럽고 별나게 보인다. 이들은 중도파들의 방법은 물론 기적행하는 은사를 사용하여 소위 말하는 ‘능력대결’(Power Encounter)로 축귀를 한다.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와의 능력 대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 능력행하는 은사, 영분별의 은사 및 신유의 은사를 통해 축귀를 한다. 이들이 하는 방법은 대충 이렇다. 개인 축귀의 경우, 내담자를 위해 기도하는 중 성령께서 내담자를 괴롭히고 있는 귀신의 정체나 성격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면 안수를 하거나 예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쫓아낸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신학적인 교단이나 기적중지론적 교단의 교세가 지속적으로 쇠퇴하는 반면 성령운동하는 교회가 급성장하는 주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기적행하는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대문이다. 기적행하는 은사는 초고성능 영적 무기다. 전쟁의 승패의 무기의 성능에 달려있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성경의 기적을 부인하고,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의 기적은 인정하지만 교회 시대의 기적은 부인한 결과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잘 사용하라고 주신 고성능 영적 무기를 소용 없다고 주장하여 무장해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중도파

이들은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예수님이나 사도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귀신의 세력들은 오늘날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목회상담학적 입장에서 축귀를 한다. 이들은 축귀와 함께 과거의 상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치유하는 내적 치유를 병행한다. 내적 치유 없는 축귀나 축귀 없는 내적 치유는 지속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축귀하는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이들은 내담자와 자세한 상담을 한 후 귀신이 어떻게 하여 들어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한다. 귀신의 대부분이 사람의 죄를 통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같이 기도를 하면서 내담자에게 죄를 회개하게 한 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 한 번에 되지 않으면 여러 번에 걸쳐서 축귀를 한다.

그 동안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축귀와 관련된 성경 말씀, 책 또는 테이프를 듣게 하고, 깨끗하게 비워진 곳을 귀신들이 다시 침입하지 않게 말씀과 기도로 채우라고 가르친다(마 12:43-45). 은사주의자들이 아닌 보수주의 계통에서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축귀를 한다.

대표적인 사람들은,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티모씨 워너, Timothy M. Warner, Spiritual Warfare (Crossway Books, 1991).
-예수전도단 소속 열방대학의 딘 셔만, Dean Sherman, Spiritual Warfare (YWAM Publishing, 1990).
-해외선교단의 에드 머피 Ed murphy, The Handbook for Spiritual Warfare (Thomas Nelson Publishers, 1992) 등.

한편 내적 치유와 축귀 사역을 병행하는 사람들로서는,

-탈봇신학교의 닐 앤더슨 교수, Neil Anderson, The Bondage Breaker ; Victory over Darkness (Regal Books, 1990) 등.
-풀러신학교의 찰스 크래프트 교수, Charles Kraft, Defeating Dark Angels (Servant Publication, 1992)ㆍ「사악한 영을 대적하라」; Deep Wounds Deep Healing (Servant Publication, 1993)ㆍ「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엘리야 기도원의 존과 마크 샌드포드 부자 John & Mark Sandford, Deliverance and Inner Healing 등.
-신유사역의 권위자인 프랜시스 맥넛 박사 부부 Franscis MacNutt, Deliverance from Evil Spirits―A Practical Manual 등.

 이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기적행하는 은사를 사용하여 축귀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기적중지론을 주장하며 기적행하는 은사 사용을 부인하기도 한다. 사람이 이처럼 경험 수준, 은사 수준에 따라 제각각이다.
 

 -기적중지론자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자는 말씀 중심으로 살아서 마귀의 세력을 ‘대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상).

이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다만 성경-즉 서신서-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약 4:7-8),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게 하면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벧전 5:8-9).

대표적인 주장자들은,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How to Meet the Enemy (Victor Books, 1992).
-선교사 출신의 에드워드 그로스. Edward Gross, Miracles, Demons & Spiritual Warfare (Baker Book House, 1990).
-상담 심리학자인 데이빗 폴리슨. David Powlison, Power Encounters (Baker Book House, 1995) 등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기적중지론자들이 이런 주장을 따른다. 최근에는 김세윤 교수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맞는 말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면 된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마귀를 대적하기만 된다는 주장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며 성경을 서신서 중심으로만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은 신자들이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 쫓는 것을 하나의 ‘기술’이나 ‘방법’이라고 폄하한다.

존 맥아더의 주장을 들어 보자.

“그 이유는 영적인 전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기록한 서신서들의 거의 모든 강조점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신약의 서신서들을 읽어 보라. 오늘날의 교회를 특징 짓는 귀신의 세력들에 대한 병적인 고집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신자들에게 귀신들을 찾고, 귀신들에게 말하고, 귀신들을 대항하고, 조롱하고, 쫓아내라고 가르치는 것을 한 군데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John MacArthur, How to Meet the Enemy, p. 84).

 필자는 맥아더식의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귀신을 쫓아내면 ‘구속사적 사건이다,’ ‘계시사의 독특한 사건들’이다 면서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다가도, 오늘날의 신자들이 귀신을 쫓으면 무슨 근거로 ‘신비주의다,’ ‘무속신앙이다,’ ‘기술이다’고 폄하하는가?

그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경험의 결핍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특히 사도들의―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교리를 도출해 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축사와 관련된 구절들은 모두 사도들에게 특수한 구절들이다면서 오늘날의 신자와 상관 없는 구절로 해석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대전도명령을 기록한 마태복음 28:18-20절도 사도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오늘날―종교개혁 시대부터―의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구절이라고 해석하여 19세기 말에 윌리만 케리가 현대적인 의미의 본격적인 선교를 시작할 때까지 선교에 무관심해 있었다.

더 나아가서 맥아더의 주장은 성경해석상의 몇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그는 먼저, “A(기술)가 아니라 B(품성)”이라는 전형적인 흑백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성경은 도처에서 A(기술?)는 물론 B(품성)라고 강조한다. 신자들은 성령의 은사―맥아더가 말하는 기술―도 필요하고 성령의 열매―품성―도 맺어야 한다. 영적 군사는 전투도 잘하고 품성도 좋아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분이자(A) 내재하시는 분이다(B).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A)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다(B).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인간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더군다나, 맥아더는 ‘서신서 어디를 보아도 귀신을 쫓아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귀신 쫓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서신서들에는 한 군데에서도 기록되지 않았느냐”고 주장한다. 중지론자들에게 복음서나 사도행전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는 기록한 과거의 책에 불과하다.  즉 신약의 기사체-복음서나 사도행전-은 물론 심지어는 서신서에서도 신유, 방언, 에언 및 축사에 관한 구절들은 모두 초대 교회 시대에 중지되었고 교회 시대의 신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구절들이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중지론자들은 위의 두 구절은 사도들이나 70문도에게 주신 것이지 교회 시대의 신자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축사를 한 것은 교회 시대 신자의 본이 아니라-기사체의 기록이니까-고 해놓고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이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 쫓다가 당한 것은 우리의 본이 되므로(행 19:14-16), 위험한 축사를 아예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 즉 중지론자들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일반 신자의 본이 되지 못하고 잘못하는 엑스트라가 우리의 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성경을 이렇게 훼손시켜 놓고도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가장 잘 수호한다고 착각한다.

영적 전쟁에 관한 한, 복음서나 사도행전이 야전전투교범이라면 서신서는 내무생활규범과 같다. 사도행전에서 사도와 동역자들은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사람들을 회심시키면서 교회를 세우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갔다. 서신서는 이렇게 모인 교인들이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신학적, 관계적, 윤리적 문제를 다룬 책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영적 전쟁의 ‘전술’을 서신서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품성을 다룬 책이다. 그런데 중지론자들은 ‘구체적인 전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영적 군사의 자세에 대해서만 말한다. 자세만 제대로 되어 있고 전술을 모르는 군인이 어떻게 전쟁을 치르나?

또한, 기적중지론은 기독교의 교리와 경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역사서―주로 이야기체로 기록된 사도행전, 복음서 등―가 아니라 교훈서―특히 바울의 서신서―를 주요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리를 확립시키는 데 있어서 '성경의 교훈적인 부분이 역사적인 부분에 비해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도행전이나 복음서를 중심으로 하여 마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존 스토트,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 한국기독교교육원, 1983).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성경 안에 성경’(Canon within the Canon)을 인정하는 비성서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차영배 박사는, 성경은 역사적인 부분이나 교리적인 부분이나 똑같이 우리의 신학작업에 중요하기 때문에 경중을 가릴 수 없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오히려 계시의 역사에 착근하고 있을 정도로 구원의 역사는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차영배, "J. Stott의 문제점,”성령론-구원론 부교재』, 경향출판사, 1987, p. 173.)

그런데 중지론자라고 해서 기사체에서 교리를 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고백, 선택교리, 예배의 기준, 선교와 전도, 교회의 정치제도, 유아세례 등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와 실천기준의 근거를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두고 있다(Jack Deere,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11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축귀를 하면 왜 큰 일이 난 것같이 야단법석을 부리는가?

맥아더와 같은 무경험자들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사역의 현장에서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필요할 때에는 축귀를 하여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자를 따라야 할 것인가? 어느 편이 더 성경적인가?

상담심리학자인 데이빗 폴리슨도, 신자들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에 의해 영적인 전투를 치러야 하며 ‘귀신쫓는 사역’(ekballistic mode of ministry; EMM)은 성경적인 방법이라기 보다는 이교도의 세계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예수님의 ‘능력대결의 방법’(power-encounter model)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목회적인 방법’(pastoral mode)으로 대체되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 주장의 근저에는 기사체의 복음서나 사도행전의 기록은 오늘날의 사역의 모본이 될 수 없고 서신서의 가르침만이 교훈적이라는, 서신서 우선적 해석의 전형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신학자들이 성경의 기적을 모두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해 버리듯(explain away),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귀신을 쫓은 것은 특수하고 독특한 정황에서 벌어진 현상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데이빗 폴리슨과 같은 주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이유는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마귀와의 직접적인 대결이 없는 사람들의 무경험을 잘 변호해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독특한 시대’에 거주한 ‘독특한 사명’을 지닌 ‘독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축귀를 했지만 오늘날의 신자들은 보통 시대에 사는 보통의 사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라는 주장은, 축귀를 경험하지 못한 대부분의 신자들의 실생활에서의 (축귀에 대한) 무체험을 너무나 정당화해 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전제’(presupposition)와 ‘체험의 결핍’(lack of experience)으로 귀결된다. 경험이 없으니 그런 전제나 선입견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의 구절을 “이래서 오늘날의 우리하고 상관 없다. 저래서 상관 없다”라는 식으로 설명하여 부인해 버린다.

폴리슨은 소위 말하는 ‘귀신을 쫓는 사역’을 지지하는 자들의 주장을 성경을 통해 대부분 이런 식으로 부정한다. 그리고는 가장 설득력이 약한 역사적인 사례를 기준으로 귀신을 쫓는 사역을 부정한다. 청교도들의 기록 중에 귀신을 쫓는 사역을 구사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오늘날의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자들은 왜 부르는가? 청교도들은 악기 사용을 부인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왜 악기를 사용하는가? 교회는 1,500년 동안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받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루터, 칼뱅, 즈윙글리는 왜 1500년 후에야 그런 교리를 주장했는가?

선교사 출신의 에드워드 그로스도 존 맥아더나 데이빗 폴리슨의 주장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주장 또한 전형적인 기적중지론자의 그것이다. 신자들은 서신서에 기록된 대로(서신서를 기사체보다 우위에 두는 잘못된 주장),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로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된 바울의 가르침은 기도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축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특히 복음서나 사도행전―은 분명히 말한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신자들에게는 영적 무기인 은사―이들이 말하는 기술―도 필요하고 품성도 필요하다.

김세윤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김세윤, “진정한 의미의 '영적 전쟁.”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5462.
필자는 이전에 이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중보기도’를 오해하거나 폄하하지 말라(2)-이인규의 ‘잘못된 영적 전쟁관’, 김세윤의 ‘땅밟기와 영적 전쟁의 오해’ 비판.” 『글로리아타임스』(2015년3월27일).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36.)

김세윤 교수도 ‘서신서 우선 해석의 관점’에서 영적 전쟁을 이해한다. 그는 땅밟기는 영적 전쟁이 아니며 진정한 영적 전쟁은 사단[탄]의 나라에 맞서는 것이라는 당연한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엡 6:12절을 인용하면서 땅밟기 하는 자들이 엡 6:12와 그 이하의 구절들은 잘 모른다고 주장한다.

김세윤 교수는 ‘전술’과 ‘태도’를 혼동하고 있다.
땅밟기가 하나의 ‘전술’이라면 엡 6:12이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진리를 굳게 지키고, 의를 행하며, 열심히 돌아다니며, 화평의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을 하나님께 화해시키고, 이웃과 이웃을 화해시키며, 핍박을 믿음으로 이겨 내는 것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영적 전쟁'이다”고 주장한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론이지 각론이 아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하시면서 군대 귀신, 벙어리 귀신을 쫓았고, 사도 바울도 점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았다.

귀신 쫓는 것은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전쟁을 치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자 은사이다. 권세나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기술이나 방법이라 하여 부인한다면, ‘설교학,’ ‘조직신학’ 등 ‘학’(學)자가 붙는 모든 과목의 교육은 중지되어야 한다. 이들 또한 일정한 ‘방법’과 ‘기술’로 말씀을 전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잘하지만 내부 규율을 잘 지키지 않는 군인, 내부 규율은 잘 지키지만 전쟁을 잘 하지 못하는 군인을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은사 없이 품성만 있는 신자, 품성은 없고 은사만 있는 신자를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은사와 품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 A or B)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한 것”이다(A as well as B). 성경이 말하는 다양성과 입체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양자택일의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이지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다.

축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귀신을 한 번이라도 실제로 쫓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경험 만능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 중 상당수는 실제 경험이 없으면 지극히 추상적인 논리로 해석되거나 영해(spiritualization)될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

더군다나 중지론자들은 겉으로는 거창한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귀신 쫓는 것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에게만 ‘독특하고 비반복적인 일들’ 일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경험의 결핍’을 카버하기 위해 ‘구속사적인 성경해석’ ‘서신서 우선해석’ 방법을 오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구속사역의 독특성은 이런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축귀 사역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보수신앙과 동등 수준의 학력을 가진 신학자나 목회자들 중에서도 축귀 체험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그러므로 축귀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경험주의자나 신비주의자라고 비판하기 전에 "내가 혹시 무경험을 바탕으로한 논리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는 불건전한 이성주의자가 아닌가?”를 먼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오늘의 우리들과는 독특하고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축귀는 성령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행할 수 있는 능력이자 권세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엑소시즘'(귀신 쫓는 행위. exorcism)이 사교에서 주문을 외우고 제사를 지내면서 귀신을 쫓는 행위이므로 오늘날의 신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엑소시즘이란 말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성경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된 동사는 ‘에크발로’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엑소시즘이라면 금방 이교도의 축귀 행위를 연상하여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역사적인 예수를 구세주로 모시는 교회에서 주문을 외워 귀신을 쫓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일부에서 안찰 등을 하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세 가지 방법 모두를 지지한다

축귀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가지 입장을 볼 때 성경은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세 가지 모두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을 주장하고 다른  방법들을 무시하는 것은 성경이 기록하는 다양한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역사는 다양하다. 또한 사람에 따라 받은 은사가 다양하다. 현대의 전쟁이 육·해·공의 입체적인 전쟁이듯 마귀의 세력을 대항하는 십자가 군병들의 전쟁도 입체전을 치러야 한다.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말씀에 바로 서 있는 사람들은 구태여 중도파의 축귀 방법이나 능력대결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여 마귀를 대적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은 기독교가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00년을 넘었고 신자들도 5천 년의 우상숭배에 젖어있다가 기독교에 당대에 입문했거나 서너 세대에 불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아직도 국민의 70~80%가 제사, 점, 굿에 익숙하고, 불교 등 토속 종교는 우상숭배의 산실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 가족이나 본인이 불교, 점, 굿 등을 심하게 한 사람은 비록 예수를 믿고 영혼 구원은 얻었지만 아직도 우상숭배로 인한 기질과 영향력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마귀의 공격이 심하여서 삶의 여러 분야에서 마귀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신자들이 본인은 물로 전도를 위해서도 중도파의 방법이나 은사주의자들의 다양한 전략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오랫동안 사이비 종교에 물들어 있었거나 어릴 때의 상한 감정이나 고질적인 악습에 의해 침입한 귀신들은 한번 축귀한다고 쉽게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평생 동안 한을 맺히게 한 원수를 단 한번 용서한다고 해서 금방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어떤 경우에는 장시간에 걸쳐 회개하고 축귀해야 한다. 또한, 때로는 당사자 자신이 마귀의 세력에 너무나 오랫동안 눌려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에 의한 능력대결에 의해서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성도의 성화는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나야 함을 물론 마귀의 세력과도 치열한 전쟁을 치러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아직도 우상숭배가 심하고 현대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엽기적, 폭력적, 선정적 자극물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에게 발판을 제공하기 쉽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무기와 태도, 은사와 열매가 같이 가야지 어느 하나만 강조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면 절름발이가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자는 다양한 영적 전쟁의 전술을 숙지하여 유비무환의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5, 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상).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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