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신앙 > 비전
[비전과성취③] 1-3-5 성경말씀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1.01  20:03: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비전과성취③]

 1-3-5
어떻게 비전을 세우는가

성경 말씀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그는 부유한 세금 징수원인 아버지 탓에 문제아로 성장했다. 10살 때 그는 이미 도둑, 거짓말쟁이, 사기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징수해 놓은 세금을 야금야금 빼먹는 것이 취미였다. 십대에 이미 그는 심한 술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아들은 좋은 직장을 얻도록 신학교에 보냈다.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이전 버릇은 여전했다. 그는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사람들을 사기 쳐서 생긴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크리스천 친구 몇 명과 함께 기도 모임에 갔다가 자기 삶에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마음에 와달라고 기도했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그는 신학교를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신앙이 깊은 자매와 결혼하고 작은 교회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월급 대신 교회 입구에 조그만 상자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감동이 오는 대로 선물을 하라고 교인들에게 부탁했다. 이후 몇 년 동안 그들 부부는 임대료와 식료품 비용이 어디서 올 지 몰랐지만 하나님이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시는 체험을 많이 했다. 이 체험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셨다.

얼마 후 그는 좀 더 큰 교회의 청빙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예비하고 계셨다. 어느 날 그는 시편 68편을 묵상하던 중이었다.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시며……”(5절).

이 말씀이 그의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만일 하나님이 고아들을 돌보신다면 자신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는 어거스틴 프랭크란 독일인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무려 2,000명의 고아를 돌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감동 받은 그는 고아와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다. 얼마 후 그는 고아원도 설립했는데 몇 년 후 고아가 100명을 훌쩍 넘게 되었다.

그는 먹을 것을 쌓아놓고 고아들을 돌 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음식과 물건으로 그들을 돌보았다. 어느 날도 식사 시간에 고아들을 식당에 모아놓았지만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기도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빵 제조업자가 문을 두드렸다.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아들을 먹일 빵을 구우라고 하셔서 그 빵을 가져왔다고 했다.

얼마 후 우유장사가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차가 하필이면 고아원 앞에서 고장이 나서 마차를 고치기 위해 우유를 처분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고아들에게 필요한 양식의 공급을 위해 매일 2~3시간씩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의 믿음 또한 담대해졌다.

한때 그는 2,000명의 고아를 이런 식으로 돌보았다. 그는 기도만을 통하여 750만 달러를 모금했고, 나중에 189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100여 개의 학교를 지원했고, 복음 전파를 위해 수천 권의 성경과 수백만 장의 전단지를 돌렸다. 여러분도 지금쯤 눈치 채셨겠지만 그는 다름 아닌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George Muller, 1805-1898)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 간증, 설교, 문서 등을 통해 비전과 소명을 주신다.
하나님이 어떤 형태로 우리를 부르시든 그것은 성경에 부합되는 것이고 성경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조지 뮐러에게 하신 것처럼 구체적인 성경 구절을 통하거나, 때로는 성경 구절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해주셔서 비전과 목표를 주시는 경우도 있다.

성경 구절을 통해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비전을 주시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비전을 주시기도 한다. 한 개인의 범위에 국한되면 개인의 비전이 되지만 한 개인을 뛰어 넘으면 시대를 바꾸는 운동(movement)이 된다.
 

마르틴 루터의 깨달음이 촉발한 종교개혁 

종교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중세기의 여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심판 및 죽음에 대해 교육을 받아 왔다.

루터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수도사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1505년 21살 때에 에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구원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며칠씩 금식을 하고 다른 힘든 고행들도 겪었다. 루터는 '천국에 들어가는 수도사가 있다면 바로 나'라고 할만큼 수도사의 임무에 충실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떠한 방법도 고통에 빠진 그의 영혼에 평안을 줄 수가 없었다.

루터는 처음에는 하나님께 분노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구세주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심판주로 보였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17절에 기록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일까?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루터도 "하나님의 의"를 죄를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의 의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마침내 풀렸다. 루터는 비텐버거 수도원의 탑 안에서의 체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상당히 노력하였는데, ‘하나님의 의’란 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이 말을, 의로우신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밤낮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였는데, 마침내 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인해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꼈으며 천국의 출입구로 들어선 기분을 느꼈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나에게 공포심을 자아냈지만 이제는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달콤함을 주는 말이 되었다. 바울의 이 구절이 나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출입구가 되었다.”

‘믿음과 행위(공로)’가 함께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천주교의 교리와 결별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개신교가 새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루터교나 장로교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o Christo),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Soli Deo Gloria) 위하여 란 ‘5가지 오직’(Five Solas)의 기치로 개신교란 새로운 큰 물줄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두 교파는 ‘이신칭의’로 인한 신자의 신분 변화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성경의 다른 면-성화, 역동성 등-을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다.

하나님은 이후 영국의 요한 웨슬레와 성결 운동 등을 통하여 신분의 변화는 물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중요시한 ‘성화’를 강조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간의 교육이나 의지에 치중하여 역동성을 상실하자 하나님은 오순절 운동을 통해 성령의 역동성을 강조하게 하셨다.
 

방언운동으로 알려진 성령운동이 시작된 것은 20세기가 들어서는 1900년이었다. 1900년에 미국의 성결운동에 소속되어 있던 찰스 파함(Charles Parham. 1873~1929)이라는 목사가 1895년부터 성령 운동을 시작해서 캔서스주에 벧엘 성경학교를 세웠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세례의 외적인 표적’이 무엇인지 연구해 오라고 숙제를 내었다. 이후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성령세례의 외적인 표적은 방언’이라고 대답했다. 그 동안 모두 방언을 체험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어 오순절 교단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고전적 오순절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 운동은 점차 확산되어 기존의 교단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근엄하고 까다롭던 성공회의 데니스 베넷(Rev. Dennis J. Bennett, 1917~ 1991) 신부가 ‘나도 방언한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기존의 교단인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에도 성령운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령세례의 외적인 표적은 방언만이 아니라 다른 표적들도 있다는 좀 더 넓은 입장을 견지했는데 이를 은사운동이라고 한다.

이후 1980년대에는 신약의 신자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사와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주장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교단에 속하지 않은 독립 교회들을 통해 제3의 물결운동이 일어나 성령운동의 폭이 넓혀졌다. 또한 1990년대에는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은사가 활성화되면서 교회가 잃어버린 사도적 은사가 회복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모든 개혁운동에는 주변의 광신자가 있다” 

어떤 운동이든 성경의 새로운 진리가 드러날 때는 기존 집단과 심각한 패러다임 충돌을 일으킨다. 새로운 교리 운동은 항상 “주변의 광신자들”(lunatic fringes)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 말은 미국의 데오드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모든 개혁운동에는 주변의 광신자가 있다”(Every reform movement has a lunatic fringe)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교회의 개혁에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예수님이나 제자들도 당시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주변의 광신자들이었다. 종교개혁가들도 주변의 광신자들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무능과 부패, 전통과 성경을 동격에 두는 교리적 오류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으로”의 바탕 위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주창한 종교개혁가들은 목숨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새로운 교리 확립에 전 생애를 바쳤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백 년 정도가 지나자 유럽은 이제 로마 가톨릭, 루터의 루터교회 및 칼뱅과 즈윙글리의 개혁교회가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면서 안정세에 접어들자 개혁교회들은 이제 자기들의 시조의 주장들을 정당화하는 교리화 작업에 들어가면서 교회는 다시 고백과 전통을 바르지만 삶이 따르지 못하는 죽은 정통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때 하나님은 주변의 광신자인 영국의 요한 웨슬레를 들어쓰셔서 개혁교회들이 소홀히 여긴 성화를 강조하게 하셨다. 요한 웨슬레가 주장한 완전성화가 비록 개혁주의자들이 보기에는 교리적 허점이 있어 보이지만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성결을 도모하는 웨슬레 운동은 영국을 거쳐 미국에 전파되면서 성결운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완전 성화와 성결 운동이 형식과 율법주의에 빠지자 하나님은 찰스 파함과 같은 주변의 광신자들을 들어쓰셔서 방언운동을 통한 성령운동을 주도하게 하셨다. 정규 신학교육울 받지 않은 목회자들이 사도행전의 성령 세례를 통한 방언과 신유를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기존 교계는 발깍 뒤집어졌다.

성령 세례와 능력을 강조한 D. L. 무디의 동역자인 르우벤 토레이 신부조차 오순절 성령운동을 사탄 운동으로 비하하고 방언은 사탄의 배설물이라고 혹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탄 운동으로 비하되던 오순절 성령운동이, 1960년대에 기존 교단으로 전파되면서 은사운동이 되고, 1980년대에는 제3의 물결운동, 1990년대 이후에는 신사도운동으로 확산되면서, 불과 백년 만에 로마 가톨릭 다음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개신교 집단-침례교,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등-을 능가하는 가장 큰 개신교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통적 개신교 집단은 쇠퇴일로에 있지만 은사운동 집단은 계속 성장 일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기적중지론이 죽어야 한국 교회가 산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비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시작으로 한 성령운동이 기존 교단에도 확산되어 현재 성령운동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이 각 교단 마다 중·대형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새벽기도, 삼일 예배(주중예배), 주일예배 및 주일저녁 예배를 중심으로 성수주일과 십일조 생활을 주로 강조해 온 전통적인 교회생활에 성령운동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찬양과 경배, 철야기도, 금식기도, 소그룹 모임, 중보기도와 영적전쟁, 더 나아가서 내적치유, 셀그룹 운동, 일터 사역운동 등은 모두 성령운동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요즈음 이런 것을 하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의 다수의 장로교단들은 사역의 현장에서는 표적과 기사가수시로 일어나는데도 신학적으로 잘못된 기적중지론을 고수하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연 기적중지론 신학을 지속적으로 고수할 만큼 한국 교회가 여유가 있는가? 1990년 이래로 교회 성장은 답보 상태에 들어가서 명목상으로는 현상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들의 스캔들과 신자들의 윤리도덕적 삶의 저하로 종교 선호도는 불교와 천주교에 이어 꼴찌이니 가득 이나 진리의 상대주의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전도가 잘 될 리 없다.

세상의 기업들이 M&A(merger and acquisition. 기업인수합병)를 하여 세를 불리듯 일부 교단들이 M&A를 통하여 몸집을 키우고 세를 불리지만 한국 교회 전체의 성장과 성숙에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허세에 불과할 뿐이다. 교회의 몸집이 커지면 단체장이나 임원들의 목에 힘이 더 들어가고, 이권이 많아져서 오히려 부정과 부패의 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칼뱅과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했듯 이제 개신교회는 기적중지론을 추방하는 제2의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구원에 관한 일차적인 교리는 단순하지만 그외의 부차적인 교리의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교파가 생기고 같은 교파 내에서도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 당시에는 성찬식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파벌이 형성되었다.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에 대항하여 루터는 공재설, 즈윙글리는 상징설, 칼뱅은 성령 임재설을 주장했다. 오늘날 성찬식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개신교 교파 간에 갈등은 없다. 초기에는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중지론은 다르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가 “지속된다, 아니다”의 심각한 문제이다. 성찬식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교회 성장이나 성숙이 저해 받는 일은 없지만 기적중지론과 기적계속론의 여부에 따라 교회 성장은 확연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객관적인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성숙하지만 숫적 성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할 만큼 자신감이 차 있는 교파가 있는가? 전체 교회를 볼 때, 숫적 성장 없는 신앙 성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기록한 책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사도행전을 끝으로 기적행하는 능력의 역사가 끝났고 이제는 기록된 말씀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잘못 주장하니까 능력이 없어 교세가 감소하고 기적계속론자들은 교회가 사도행전 이후의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기적중지론은 말로는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충분성을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만든 신학으로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는 기적을 부인하여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성경의 충분성을 저해하는 잘못된 신학이므로 이런 잘못된 신학은 이제 교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한다. 기적중지론이 죽어야 교회가 살기 때문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이 성령운동의 오남용과 지도자들의 윤리도덕적 실수를 탓하면서 성령운동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종교개혁 지도자인 루터, 깔뱅 및 즈윙글리가 개혁운동을 추진하면서 반(反) 유대인운동, 반대파 학살, 규정 미수행자를 잔인하게 처형한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기적중지론자들은 로마 가톨릭, 급진적 광신자들이 주장하는 기적을 부인한 것 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들에게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 마저 부인해 버린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자충수요, 빈대 잡기 위해 자기들의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요, 구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성경 진리를 수호한다고 착각하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을 대적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처럼, 실제로는 참된 지식이 없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실시간인기기사
회사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후원안내회원자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110 Nuuanu Ave, Honolulu, HI 96817 USA  |  대표 구요한  |  청소년보호책임자 구요한
Mail to: gloriatimes77@gmail.com
Copyright © 2018 글로리아타임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