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역•선교 > 기도
[영적전쟁①] 영적 전쟁, 어떻게 대할 것인가?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0.18  21:08:0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영적전쟁①]

 영적 전쟁, 어떻게 대할 것인가?

   
 

꽤 오래되었지만 국내의 유수 기독교 잡지에 실린 기사 하나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신학 박사 학위를 밟는 동안 독일어, 헬라어, 불어, 라틴어, 히브리어를 공부했고 영어, 교회사, 조직신학, 설교학, 성경주석 및 실천신학 과목들을 이수했다. 그리고 어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 신학자에 관한 학위논문을 썼다. 마침내 그는 원하던 바를 성취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딴 것이다. 고향에서는 친척들, 이웃들, 친구들, 춤꾼들, 악사들, 북, 개들, 고양이들 모두가 다 나와 그의 금의환향을 축하해 주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고기를 굽고 잔치를 벌렸다. . . . 그들은 춤추고, 먹고, 즐겁게 떠들며 놀았다. 그들은 마치 다른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장본인이 드디어 귀국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땅에 쓰러졌다. 그의 누이가 쓰러진 것이다. 그녀는 여섯 명의 아이를 둔 가정 주부요, 지금까지 건강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의 누이에게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비켜 서 주었다. 그리고 그를 주시했다.

“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요.”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용히 누이에게 구부리는 그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 반응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어느 꼬마가 와서 말한다.

“선생님, 가장 가까운 병원이 50마일 밖에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그리로 가는 버스가 없어요.”

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녀는 귀신 들렸어요. 병원에 데려가도 고치지 못해요.”

추장이 드디어 말은 연다.

“그대는 서양에 가서 10년 간 신학을 공부했네. 이제 자네 누이를 도와주게. 할머니의 영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어.”

그 말에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그는 (신약 성경의 축사 마저 부정한 자유주의 신학자인) 불트만의 책을 꺼냈다. 그리고 책 뒤의 색인을 찾았다. 그리고 신약의 귀신들림에 관한 불트만의 해석을 찾아 읽는다. 불트만은 귀신들림을 비신화화 시켜버렸다. 그는 자기 누이가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른다.

“아닙니다. 불트만은 귀신들림을 비신화화 시켰습니다.”

(물론 이것은 가상적인 이야기이며 실제 경험은 아니다).”
그는 현재 미국 유수신학교인 P 신학교의 교수이다. “이것은 허구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살아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라고 저명한 아프리카계 신학자인 존 F. 음비티는 말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무관심한 이유는 죄 회개만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속죄론의 결함, 인본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귀의 세력들은 말세지말인 오늘날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마귀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예화는 신학자의 누이 동생이 귀신들린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신학 박사 (또는 박사 과정자) 자신이 귀신들린 것을 더러 목격했다. 언젠가 섬기던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기도원 집회를 가졌다. 강사는 인근의 유명 신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전도사였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 전도사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갑자기 몸을 뒤틀고 헐떡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한참 후 의식을 차렸지만 본인은 왜 그런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인 주일학교 학생들은 “그는 귀신들렸다”(He is demonized)라고 수군거렸다.

P 자매는 명문고와 명문대 출신이며 미국에서도 명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기 속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다가 필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성장하면서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지나친 가정학대를 받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증오로 바뀌고 증오를 타고 악령이 틈을 탄 것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화를 한두 번 낸다고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품으면 마귀에게 발판을 제공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에게, 먼저 아버지를 용서하고 축복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차에 걸쳐 축사를 했다. 이후 그의 상태는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마귀는 신학 지식이나 성경 지식과는 무관하다. 아무리 신학 박사이고 유명한 목회자이고 경건한 신자라도 죄를 짓는 한 마귀의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귀는 죄를 타고 역사하기 때문이다(요일 3:8).

 미국의 어느 대형 교포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집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갑자기 거품을 품으며 쓰러졌다. 그런데 교회의 장로는 물론 중직들이 멀뚱히 보기만 하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기가 나서서 귀신을 쫓고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서 참았다면서 그들의 영적 무지를 한탄했다.
 

성경이 증거하는 마귀와 그의 사자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성경 특히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귀신을 쫓았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평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신학을 전공한 사람마저 귀신의 존재와 역사에 대해 왜 이처럼 무지할까?

성경은 도처에서 말세에 사탄의 세력이 발흥하는 것을 기록한다. 성경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타락한 천사들, 즉 귀신들이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사탄은 비록 예수의 십자가 사역으로 치명타를 입었지만(요 12:31; 16:11; 골 2:15; 계 12:9), 여전히 이 세상의 신(고후 4:4), 이 세상 임금(요 12;31), 공중권세 잡은 자(엡 2:1-3), 도적,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 이리(요 10:10, 12), 원수(마 13:39), 시험하는 자(마 4:3)이다.

마귀와 그의 사자들의 활동은 이 세상의 끝까지(마 13:27-30), 불신자가 아니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워서(계 12:17), 택한 자라도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고 있으므로 신자들은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벧전 5:8),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약 4:7). 더군다나 말세지말에는 사단의 활동이 극에 달해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택자라도 미혹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식게 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마 24장).

그런데 대부분의 전통적인 신학교에서는 마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기적중지론에 젖어 신유, 방언과 예언은 물론 축사도 초대 교회 시대에 끝났다고 주장하니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르친다고 해도 조직신학의 신론(神論)의 천사론의 한 모퉁이에서 간단하게 다룰 뿐이다.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는 마귀와 그의 사자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의 유구한 5000년의 역사는 우상숭배의 역사이자 마귀 숭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귀는 조상 숭배를 빙자한 제사, 점, 굿, 토정비결, 역술, 각종 기우제, 산신제, 해신제 등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 왔다.

한국의 신자들 중에 우상숭배를 통한 제사와 점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국은 길어도 믿음의 대가 5~6대일 것이고, 상당수는 해방 후 믿은 사람들이 많아서 직·간접으로 마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신자들은 드물다. 실제로 우상숭배로 인한 마귀의 공격이나 눌림으로 고통 받는 신자들이 생각 보다 많다.

또한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 지만 기독교 인구가 20% 정도되었지만 나머지 80%의 상당수는 여전히 점치고 굿하고 제사 지낸다. 우리 나라에서는 선거나 입시 기간이 되면 있으면 이름난 역술인의 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특별 행사 기간은 물론 정치가나 사업가들은 형편에 따라 상임 점쟁이나 역술가를 끼고 인생의 길흉화복이나 중요한 결정을 의뢰한다고 한다. 얼마 전 국내 대기업의 총수가 점쟁이를 통해 주식 투자를 했다는 사실은 빙산의 일각인지 모른다.

국내 유수 방송국은 드라마를 찍을 때마다 촬영장에서 돼지머리 앞에 고사를 지내는 것을 당연한 행사로 여긴다. 모 국내 대기업은 외국에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공장을 짓지 전에 한국에서 돼지 멀기를 공수하여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은 아직도 도처에서 알게 모르게 귀신을 섬기면서 복을 비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이런 행동 모두가 당연히 귀신들에게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인 중에 30% 정도가 정기적으로 역술인이나 무당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의 역술인 협회 회원이 60만 명 정도로 목회자의 4~6배 수준이며, 한국의 무당들이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일본에 원정 사역도 자주 다닌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국산 점으로는 부족한지 서양의 타롯점 등이 버젓이 도로변이나 지하철 역 또는 백화점 앞에 자리를 만들어놓고 점 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또한 토속적인 무속 신앙에 더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동양적인 신비술인 단전 호흡, 선(禪) 등이 유행하고, 서구에서 들어온 뉴 에이지 운동 등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대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 직업과 배우자를 위해 점 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 인터넷에는 점쟁이들이 전공 별(?)로 팀 사역을 하고 부적 같은 것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더군다나 마귀는 대중문화를 통해 급속도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가는 폭력적, 선정적, 엽기적 게임이나 만화 및 웹툰, 한때 유행한 ‘해리포터 마법사’ 소설은 크리스천 가정에도 버젓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이런 것들이 마귀에게 좋은 발판을 제공한다. 그래서 특히 한국의 청소년들 중에서 귀신 들림 증세를 보이는 신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교회에서는 이런 일에 대해 애써 눈을 감거나 영적 무지로 인해 부지부식간에 장려하는 일도 있다.

국내의 모 유명한 목회자는 언젠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포케몬 게임-마지막 ‘몬’은 데몬(귀신. Demon)의 ‘몬’이다-이 일본 사무라이의 잔인 결투를 모방한 것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해리 포터의 마법은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인데(신 18:10-12) 상상력을 길러 준 좋은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영적 분별력이 없는 그가 잡스러운 성 추행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지탄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이전에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 전(前) 대통령은 국가적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점성술사의 자문을 받았으며 지성과 첨단 기법을 자랑하는 미국 월스트리트 증권가의 큰손들도 중대한 결정을 하기 전에 점성술사나 무당점(사이키)의 도움을 수시로 청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필자는 70년대 말에 미국에 가서 TV를 보면서 귀신 주제들이 너무 많아서 의아해 한 적이 있다. 더군다나『스타 트렉』(Star Trek)은 첨단과학과 귀신놀음이 합쳐진 인기 시리즈였다. 지금도 상당수의 소설, TV극, 영화 등이 뉴에이지 운동이나 마귀를 주제로 한 것들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도 따라가고 있다. 전생 이야기, 무속 이야기가 버젓이 안방을 점령하고 있고 역술학원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영적 전쟁에 무관심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기적중지론적 교회나 신자들은 아직도 축사나 영적 전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쉬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적하고 비판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속죄론의 결함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만 이해해왔다. 과연 그럴까?

십자가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룬 예수님의 속죄사역은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 값을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신 죄인으로 취급 받으시고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에 돌아가신 결과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러한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구체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되었다(갈 3:13).
죄지은 인간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지키지 못한다. 모든 법을 다 지키다가도 하나라도 범하면 모든 법을 범한 것 같은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약 2:10). 예수님은 죄가 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고(소극적인 순종) 또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셨으므로(적극적인 순종),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것으로 인정을 받는다.

또한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속되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므로 죄로부터의 자유는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롬 3:23; 마 1:21: 고전 15:56). 인간은 이제 예수님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죄의 모든 영향력은 물론 그 결과로부터도 자유함을 받는다(롬 6:6; 히 9:12; 계 1:5하).

마지막으로,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속되었다. 예수님의 속죄사역은 사단에게 승리하여 사단의 노예가 되었던 인간을 구속해 내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기적중지론적 보수 신학에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사탄의 속박에서 인간을 구속해 내신 승리하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해 왔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예수님이 사탄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인간을 구속했다는 사탄배상설(A Ransome-to-Satan Theory)을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이후 거의 천 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십일 세기 경 안셀름(Anselm, 1033-1109)이 이러한 교리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했다.

안셀름은「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e)에서, 예수님의 속죄사역은 사탄에게 몸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죄 지은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손상된 하나님의 명예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가 없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실추된 명예를 만족시키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켰다고 주장했다. 안셀름의 속죄론은, 예수님의 몸값은 실추된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바쳐졌다는 민사상의 책임 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상업론(Commercial Theory)라고 한다.

안셀름 이후 종교개혁가들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은 실추된 하나님의 명예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인간의 죄 값을 치르는 측면 즉 형사적인 측면에서 이해했다. 이것을 형벌대속론(Penal Substitution Theory)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형벌대속론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근간을 이루어 왔으며, 예수님의 속죄사역이 사단의 세력에 대해 승리했다는 측면은 거의 무시되어 왔다.

따라서 19세기의 저명한 개혁신학자인 찰스 하지는, 초대 교회 시대의 교부들이 예수님의 속죄사역의 핵심은 인간을 사단의 속박으로부터 건져내신 것이라는 주장은 이제 단지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관심을 가질 뿐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주장이 되었다고 단정지어 버렸다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Vol. II, Eerdmans, rpt., 1989, p. 565). 그 결과 전반적으로 서구의 개혁주의와 세대주의 보수 신학, 그의 영향권 아래 있는 한국의 신학도 예수의 속죄사역을 이야기 할 때는 주로 죄 문제만 다루고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는 영적 전쟁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부활의 권능을 강조하며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좇는 사역을, 오늘날의 우리에 대한 전도나 선교의 모범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특수한 상황으로만 이해했다. 심지어는 어떤 보수 신학자는 귀신들의 세력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위해 예수님의 지상사역 당시에 현저히 나타난 현상이며 이 세상의 마지막에 다시 그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극단론을 펴기도 한다.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죄의 값을 치르는 측면으로만 이해 해 온 보수신학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극성을 부리는 사탄의 세력의 발흥― 동방 종교의 발흥, 뉴 에이지 운동, 사탄 숭배 및 기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고조 등― 에 대해 속수 무책이며 전 세계에 걸쳐 많은 주의 사자들이 사탄의 세력들에 대해 치르는 영적인 전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오해하고 있다.

저명한 조직신학자인 존 머리는 속죄 사역을 죄로부터의 구속으로만 이해해온 보수신학의 결함을 지적하고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사단의 세력을 제압하고 그들의 세력에서 인간을 구속해내는 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로부터의 구속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신이며 공중권세 잡은 자이며,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 하는 영에 대해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확보하신 승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적절히 이해되거나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죄와 악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교활함, 간교성, 교묘함, 권능, 사단과 그의 군대들과의 끊임없는 활동을 포함하는 하나의 왕국으로 이해해야 한다(엡 6:12).

또한 어두움의 권세의 파멸이 이러한 구속적인 성취의 범위 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속이란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눅 22:53)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가 대적하신 것과 영광의 주가 이 세상의 임금을 쫓아내시면서 이룩하신 것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 Eerdmans, 1989, p. 50.)

-계몽주의의 영향

살아 계신 하나님의 초능력을 부인하고 귀신의 세계를 부정하던 서구 사회가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는가? 중세기의 사람들은 그래도 하나님이 우주를 관장하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16세기에 인본주의 산실인 르네상스에 이은 종교 개혁과 과학 및 철학이 발달하는 계몽주의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19세기에는 물질주의와 이성주의가 서구의 주요사상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기본적인 가정은, 인간이 모든 것의 기준이며 인간의 이성이 모든 가치 판단의 최종 권위를 가진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하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물질주의자들(과학자들)은 보이고 실험이 가능하고 증명될 수 있는 것만 사실로 인정한다. 이성주의자들은 모든 경험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이 말하는 귀신의 존재들을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자연의 힘과 법칙들이 발견된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선한 영이건 악한 영이건 할 것 없이 도대체 영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가 없다. 병과 또 그 치유는 모두가 자연적 인과율에 돌려야 하는 것이지 마귀의 장난 또는 악한 귀신의 저주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전깃불과 무선전신을 사용하고 또 현대 의학의 내과 외과의 발견들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신약성서에 나타난 영들의 세계와 기적들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Rudolf Bultman, Kerygma and Myth , Harper, 1961, pp. 4-5).

기적중지론자들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오해하여 성경의 귀신들은 인정하나 오늘날의 귀신들의 존재는 부정해 버리고, 자유주의자들은 과학을 바탕으로 하여 성경에 기록된 귀신의 존재들을 부정해 버려, 서로가 귀신들의 정체를 가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일부에서 귀신론의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면을 오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단과의 영적 전쟁은 여전히 크리스천의 제일 중요한 사명중의 하나가 아닌가?


-세계관의 차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지식인들과 제3세계인―아시아, 아프리카 및 남미인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현대의 지식인들은 병이 나면 병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병의 원인은 세균이며 병원이 이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제3세계인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모든 물질에는 영이 있다는 정령주의(Animism)을 믿는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악령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들은 질병의 원인은 귀신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병이 나면 동네의 무당(Witch Doctor을 찾아간다. 오늘날 전세계 인구의 삼분지 이를 차지하는 비기독교인 중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지역― 특히 10/40 윈도우 이내 ―에 살고 있다.

제3세계의 이러한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서구의 선교사들은 당연히 많은 결실을 내지 못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파하는 서구 선교사들은 주민이 아프면 페니실린이나 현대적인 의약품을 갖다 주었다. 주민들이 병의 원인을 귀신 탓이라고 하면 이들은 굳이 세균의 탓이라고 우기며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현대문명을 전파했다.

그러나 특이한 정신질환(귀신들림증 등)이 첨단 과학의 소산이라 해서 약으로 치료될 리가 만무하다. 선교사들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원주민들은 교회의 모임에는 나오지만 가족 중에 귀신들림증 환자가 있으면 동네 무당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성경의 충분성을 주장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파하는 선교사들에게 원주민들의 정신질환은 예외란 말인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정신질환을 선진국에서는 병원에 맡겼고 제3세계에서는 무당에게 맡겼단 말인가?

이처럼 영적 전쟁에 대해 전혀 무장되지 않은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귀신들의 공격을 받아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일부 선교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실을 스폰서에게 보고하면 재정지원에 큰 차질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진국 같은 문명 세계보다는 지능이나 문명 수준이 낮은 제3세계 사람들이 더 많이 귀신들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3세계는 문명 세계가 말하는 우상숭배나 미신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귀신들린 사람이 어느 쪽에 많은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귀신은 인간의 문명이나 지식 수준이 아니라 죄의 다소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흥을 주도하며 축사를 강조하는 카를로스 아나콘디아(Carlos Annacondia)가 처음으로 독일에서 집회를 가졌을 때 주최자들이 아나콘디아에게 말하기를, 독일은 남미와 달리 귀신이 별로 없으므로 남미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사역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나콘디아는 말하기를, 일인당 쫓아낸 귀신 수를 비교해 보면 남미 사람보다 독일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C. Peter Wagner & Pablo Deiros, ed., The Rising Revival, Venture, CA: Renew, 1998, pp. 25-26).

선진국이나 문명국에는 오히려 교만의 영, 미움의 영, 시기의 영, 색욕의 영, 탐욕의 영, 교파의 영, 학파의 영, 지연의 영,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영, 분열의 영들이 후진국에 비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들은 대부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본인들은 그 정체를 제대로 잘 구분하지 못한다.
 

영적 전쟁에 대한 신자의 자세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극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일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어서 다수 사람들이 마귀에 대한 혐오증과 무관심을 유발하게 하여 그들의 존재를 위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불건전한 귀신론자들이 귀신에게 지나친 비중을 둔다고 해서 귀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들의 악랄한 수법을 방관하는 불건전한 이성주의자들의 어리석음 또한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C.S. 루이스는 이에 대해 적절하게 권면한다.

“우리 인류가 마귀에 대해 저지를 수 있는 두 가지 동등하고 반대되는 오류가 있다. 하나는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믿기는 한데, 그들에 대해 너무 지나치고 불건전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마귀는 물질주의자나 마술사들이 저지르는 이 두 가지 오류를 모두 좋아한다”(Lewis, C.S. 1988. The Screwtape Letters. New York and Scarborough, Ontario: New American Library. Xix).

그러나 말처럼 균형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마귀의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면 된다?”

그런데 마귀의 존재를 제압하지 않으면 눌려서, 주님을 바라보려고 해도 방해를 받아서 잘 바라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말은 또한 죄에 신경 쓸 것 없이 주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말과 같다. 마귀는 죄를 타고 역사하기 때문이다(요일 3:8).

또 어떤 한국의 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처음에 마귀론을 쓰려고 했지만 공격이 너무나 심해서 천사론으로 돌렸다. 그러므로 마귀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좋다.”

마귀는, 자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제일 좋아하고, 둘째, 존재 하더라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마귀는 끝까지 싸우는 그리스도의 전사를 두려워한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은 이원론적 구도는 성경적이 아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탄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사탄은 패배했지만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주의 백성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자신들이 실제로 당해 보지 않는 자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당해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가족이나 친지나 교인 중에 귀신이 들려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보다 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언젠가 중대형교회 보수주의 계통의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도 축사에 관심도 없었고 신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었는데, 청년 신자들 중에 귀신 들린 자들이 워낙 많아서 귀신 관련 책 20여권 정도를 사서 기도원에 가서 읽으면서 귀신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졌다면서, 그중에서 필자의 책이 신학적·실천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필자의 『대적을 바로알자』는 현재 절판 중이다. 곧 출간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다른 목회자도 보수적 장로교 신학교 출신으로 마귀의 존재에 무관심했는데 외아들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일으켜서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고치지 못하다가, 이것이 귀신의 장난인 줄 알고 마귀에 대한 온갖 서적과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제는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죄는 물론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요일 3:4-8).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죄의 왕노릇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있다. 예수님께서 죄의 권세를 이기셨으므로 죄에 대해 걱정할 것 없다고 장담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사탄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마귀[devil]는 사탄[Satan]의 별칭이다. 마귀는 ‘나누고 참소하는 자’라는 뜻이고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는 뜻이다. 귀신[demons]이나 악령[evil spirit]들은 마귀의 졸개들이다).

불신자들은 이미 그들의 포로가 된 자들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엡 2:2).

사탄의 세력은 불신자가 아니라 택한 자를 미혹하여 넘어뜨리기 위해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 마귀가 쫓겨날 때까지(계 21:10) 그들의 세력과 투쟁해야 한다.
 

대적에 대한 바른 이해의 필요성 

우리는 어느 한 쪽 극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죄의 세력만 강조하여 마귀에 무관심하거나 마귀의 존재만을 강조하여 죄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마귀는 일부 사람들에게 귀신들의 존재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어서 다수로 하여금 귀신의 존재에 대한 혐오증과 무관심을 유발하게 하여 그들의 계략을 위장한다.

한국 교계는 아직도 불건전한 이성주의자들과 기적중지론자들의 득세로 인해 귀신 이야기만 하면 무속적이고, 불순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율법의 저주, 죄의 권능 및 사단의 권세로부터의 구속이라는 다각도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죄와 사단의 세력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를 무시할 때 치명적인 결함이 생긴다.

복음주의 신학자인 메릴 엉거는 이렇게 말했다.

"마귀론적 현상들은 고대시대의 가장 오랜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서 거의 보편적으로 유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구별할 수 있는 이해력이 없이는 너무나 혼잡한 여러 사람들의 종교적인 현상들과 생활관습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온전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종교를 연구하는 학도로서 이런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는 그가 자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이 어떻든 간에 정확한 평가나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메릴 F 엉거 지음,『성서적 마귀론』, 요단출판사, 1980, pp. 21-22).

그러나 마귀에 대해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 많은 신자들이 마귀에 대해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꺼린다.

마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귀에 대한 책을 저술한 많은 사람들이 "왜 좋은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하필이면 마귀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고민을 했다.

클린턴 아놀드는 저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귀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하고 놀라게 만든다. 나는 차라리 이것을 무시하고 즐거운 다른 것을 토의하고 싶다. 나는 많은 신자들이, 특히 악령과 사탄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대해  동일하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주제를 무시할 수 없다. 악은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악의 문제를 다루는 법을 알기를 원하면, 우리는 성경이 심각하게 주장하는 것-사탄과  그의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삶에 강렬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기꺼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 교회는 이 주제에 충분하거나 심각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학생들이 이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들은 서구 교회의 풍성한 성경적 가르침에 감사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영물에 대한 적절한 기독교적 전망을 개발하는 것은 기본적인 관심사이다.”(Clinton E. Arnold, Power of Darkness : Principalities & Powers in Paul’s Letters, IVP, 1992, 11-12).

성공회 신부인 마이클 하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이것(마귀론)이 불쾌한 주제라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쩌면 순조로운 교회생활의 단정함을 어질러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류의 단정함이라면 보존할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우리로 하여금 영적 전투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마취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들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을 닫는다는 것은 곧 어둠의 세력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성령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음 문을 걸어 잠그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력들을 능히 정복하시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기를 원한다. 우리가 그 세력들에 대항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 세력들의 활동으로 바깥으로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이컬 하퍼,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 두란노, 1993, p. 17).

둘째, 많은 신자들이 마귀에 대해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 시간에 공개적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설교를 했다가 역공을 받고 몸 져 누웠다고 한다.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 기독교 관련 신문을 발행할 때, 뉴에이지 운동을 다루려고 했을 때 어떤 목사가 자신이 기사를 쓰겠다고 자청했다. 그런데 마감일이 다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대답을 머뭇거렸다. 재차 물으니 역공을 받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고 한다.

마이컬 하퍼도 이런 우려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인 부흥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주제라고 역설한다.

"이것은 다소 위험한 주제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최근 꽤 오랜 기간 동안 교회의 진리 변호는 그 힘을 많이 잃어버렸고 우리의 적은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성령은 그 적을 밝히 가려내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능력 있는 공격 앞에 노출시켜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 pp. 16-17).

도날드 기 목사는 마귀에 대한 일반인들의 두려움과 편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장 영적이고 헌신된 일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귀신의 능력과 영적인 기만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왜곡되고 과장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보통 신자들도 쉽게 분변할 수 있는 방법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사단의 주요 전략은 기만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켜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이러한 분야에 대해 무관심하게 하는 것이다." (Donald  Gee, Concerning Spiritual Gifts, Radiant Books, 1980, p. 23).

그러나 불쾌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중요한 전쟁을 피해야 할까?

남·북간에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는 남한은 북한의 상황이나 전략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려고 치열한 첩보전을 벌인다. 적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국방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역공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의 신분의 확실성,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여러 가지 영적 무기를 잘 활용하고 영적 자세로 제대로 무장하면 두려울 것 없다(엡 6:11-17). 훈련되지 않은 신자는 마귀나 귀신 이야기만 들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두려워하지만 제대로 훈련된 성도는 오히려 당당하고 담대하게 맞설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2).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

   
 

[관련기사]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실시간인기기사
회사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후원안내회원자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5610>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39길 21-19, 201호  |  대표전화 : 0707-554-0585  |  팩스 : 0504-037-0050  |  Mail to : gloriatimes@naver.com
발행인·편집인 : 구요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요한 발행인  |  후원계좌 : 국민은행 529401-01-218720 예금주 임마누엘선교회  |  사업자등록번호 : 123-89-06414
Copyright © 2017 글로리아타임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