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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성취③] 1-3-4 사람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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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4  20: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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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성취]

1-3-5
어떻게 비전을 세우는가 

-사람을 통해 비전을 주신다-

 

   
▲제네바 종교개혁에 매진한 파렐과 칼뱅

40대의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마르고 안색은 창백하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가진 20대의 청년과 대화하고 있었다. 청년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40대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었다.

“저는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제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을 잘 타고 소심한 편입니다. 역경에 맞설 자신도 없습니다. 게다가 몸도 자주 아픕니다. 그러니 저는 서재에나 있을 사람입니다.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책을 쓰는 일만 하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한 교회에 매일 수 있겠습니까? 제게 그런 일을 부탁하시면 안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 드리니 제 뜻을 살피시고 ‘하나님께 다른 방법으로 섬기도록’해 주십시오. ”

탁자 위의 초는 점점 타 들어 가는데 두 사람의 언쟁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나이 든 사람이 자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우뢰와 같은 고함을 쳤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선언하겠는데 고작 연구를 핑계로 내세워 우리를 도와서 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저주하실 것이오. 당신이 그리스도의 영예 보다 자신의 영예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오”

장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이때의 심정을 나중에 이렇게 표현했다.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은 조언과 간곡한 경고로서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저주로서 나를 제네바에 붙들어 두었다. 이는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나에게 얹어 잡으시려는 것 같았다.”

이 대담하고 불 같은 성격의 파렐이 이제 겨우 27세의 병약한 젊은이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폭풍 같은 격정으로 사람들과 도시들을 굴복시키는 일에 이골이 난 파렐 같은 사람이 자기 보다 20세나 아래인 이 수줍음 많은 청년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일까?

기욤 파렐처럼 복음을 위해 한 도시 전체를 정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그가 일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세심하게 계획하는 일과 확실하게 통솔해 가는 일, 그리고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 필요했다. 이런 일에 파렐은 적임자가 아니었다. 싸움에서는 누구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계획하고 강화시키는 일에는 서툴렀다. 40대의 연장자인 기욤 파렐은 칼빈 보다 먼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역부족을 느껴 젊은 칼빈을 반 강압적으로 설득시켜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한 것이다.

개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칼빈의 종교 개혁은 기욤 파렐의 강압적인 요청에 의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비전과 목표를 주시거나 새로운 사역으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많다.

   
▲영국 노예 해방 입법을 주도한 윌버포스 의원. 원 안은 멘토인 뉴턴 목사와 윌버포스 의원

영국에서 노예해방 입법을 주도한 윌리암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한때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톤(John Newton, 1725-1807) 목사와의 만남을 통해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한다.

1785년 어느 날 윌버포스는 비밀 리에 존 뉴톤 목사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윌버포스가 그 동안 하원의원으로 진출한 일, 뉴톤의 설교와 작사-유명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새찬송 305)-등에 대해 환담을 나누었다. 마침내 뉴톤 목사가 물었다.

“그런데 윌버포스 씨, 오늘의 용건은 무엇입니까?”

윌버포스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음새를 고친 후 말했다.

“저는 세상에서는 성공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제 안에 생명으로 와닿기까지 마음이 늘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멋대로 살아온 헛된 인생을 회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부유한 사업가의 집에서 태어난 윌버포스는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고, 놀기도 잘했다. 그는 이미 14세 때에 존 뉴톤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기사를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한때 그는 프랑스에 여행 가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그의 황후 마리 앙뜨와네트와 교제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두 번째로 여행갈 때 은사였던 아이작 밀너와 함께 갔는데 밀너는 기독교 경건 서적을 한 권 휴대했다. 여행 기간 내내 밀너와 윌버포스는 경건 서적의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마침내 26세가 되던 1785년 11월28일에 윌버포스는 허랑방탕한 삶을 회개하고 자기 삶을 주님께 드렸다.

그때 영국에서는 기독교 내에서 노예폐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때였고 윌버포스는 의회에 진출하여 영국 하원의원으로 섬길 때였다.

바로 이 시점에서 윌버포스는 뉴톤 목사를 비밀 리에 찾아온 것이다.

이전에 노예선 선장이었던 뉴톤 목사는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할까요? 저도 정계를 떠나서 목사님이나 요한 웨슬레 같이 목사가 될까요? 저는 이제 도박도 하지 않고 술도 끊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교계 활동도 그만 둬야 하나요? 하나님이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도원에 가서 수도승으로 살까요?”

“당신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원직에 대해서는.....”

뉴톤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당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예비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뉴톤 목사는 지긋이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말했다.

“노예 제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당연히 반대합니다. 제가 어릴 때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글을 쓴 것을 목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가서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두 주 후에 우리 다시 만나서 그 문제에 대해 상의해 봅시다.”

이후 윌버포스는 더 이상 사람들의 눈을 개의치 않고 뉴톤 목사를 자주 방문하면서 그와 상담하고 그의 지혜를 구한 결과 하나님은 그가 의회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 서는 일에 자기 인생을 바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당시 노예제도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풍요를 떠받치는 밑거름이었다.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에 관심을 가지자 당연히 기득권자들의 반대가 거세기 이를 데 없었다. 노예를 통해 부를 축적한 부유층들은 돈으로 의회의 표를 사서 노예 제도를 폐지하면 영국의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겁주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료 기독교인들 및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노예제도 폐지 입법에 자신의 전 생애를 던졌다. 윌버포스는 의회 내는 물론 의회 밖의 동료들도 규합하여 매년 노예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회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만 끌었다.

윌버포스는 실의에 찼고 설상가상으로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영적 지도자인 요한 웨슬레로부터 한 통의 편지(1791년 2월24일자)를 받았다.

“하나님이 당신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당신이 이런 극악무도한 노예 무역을 반대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사람과 마귀의 반대로 인해 지쳐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누가 당신을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니, 선한 일을 함에 있어 피곤하여 지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강력한 능력에 힘입어 계속 전진하십시오. 마침내 태양 아래서 가장 악독한 미국의 노예 제도마저 곧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웨슬레의 마지막 편지였고 웨슬레는 일주일 후에 주님 품에 안겼다. 웨슬레의 편지는 윌버포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윌버포스는 수만 장의 전단지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고, 공개 집회에서 연설했으며, 설탕처럼 노예가 생산한 물건들을 구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반대자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윌버포스를 인신 공격하고 그의 행동을 조롱하는 만화를 유포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807년, 노예무역 금지법안이 양원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노예무역을 금지할 뿐 국내에 거주하는 노예의 신분은 여전했다.

그 동안 윌버포스는 건강도 악화되어서 자신과 같은 열정을 가진 청년 파월 벅스턴(Fowell Buxton)을 후계자로 삼고 그를 의회로 인도하여 공동으로 지루한 의회 공방을 계속했다. 1823년 윌버포스와 벅스턴의 공동 발의로 노예에 대한 잔학행위 금지 법안을 상정하여 통과시켰고 마침내 1833년에 윌버포스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벅스턴이 노예제도를 완전히 철폐하는 법안을 상정하여 통과가 되었다.

노예 소유주 대표가 전체 노예상환대금으로 국가로부터 2,000만 파운드를 받고 노예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조건에 합의한 후, 일년 이내에 영연방 내에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병상에서 이 소식을 들은 윌버포스는 감개무량했다. 40여 년에 걸친 그의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영국 정부가 2,000천만 파운드의 은으로 노예를 사들여서 노예제도를 폐기하는 날을 내 눈으로 목격하게 되다니!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완수했음을 확인한 윌버포스는 나흘 후인 1833년 7월29일에 주님 품으로 돌아갔다.

일년 후인 1834년 7월31일 자정 부로, 영국연방 내의 100만 명 이상의 노예가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도를 해방한 것보다 30여 년 먼저 영국에서 무혈 노예해방이 실시된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만남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만남이다.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갈린다. 물론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소명을 위하여 부르시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계속 이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외의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한 만남이다.

일시적로 만나기도 하고, 동역자로 만나기도 하고, 멘토와 멘티로 만나기도 한다.일시적인 만남은 특별한 일을 위한 잠간의 만남이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회심을 위해 베드로의 만남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행10:9-22;44-48).

어느 날 기도하던 중 베드로는 보자기 환상을 통해 가증스런 동물을 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이방인인 고넬료 백부장이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말씀을 듣던 중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방언을 한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하나님이 이방인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말한다(행 10장 참조).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동역자(co-worker)를 붙여주신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co-worker)이지만(고전3:9),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동역자를 붙여 주신다.동역자 관계의 대표적인 예는 바울과 바나바의 예를 들 수 있다. 괄괄한 바울과 차분한 바나바는 환상적인 동역팀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평생 동역한 찬양사역자 조지 베브리 쉐아(George B. Shea), D. L. 무디와 찬양사역자 아이라 생키(Ira D. Sankey) 등을 들 수 있다.

사업계에서는 시어즈 로벅 백화점(Sears & Roebuck)의 시어즈로벅을 들 수 있다. 영업의 달인 시어즈와 시계 수리공이었던 로벅이 설립한 시어저로벅 체인점은 월마트 이전까지 미국 최고의 체인점이었다. 이처럼 사업계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은 영업을 맡고 한 사람은 관리를 맡거나, 한 사람은 경영을 맡고 한 사람은 자금을 맡거나, 또는 기술과 자금의 동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마이트로소트사의 빌 게이츠는 경영은 스티브 발머에게 맡기고 자기는 자선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구글은 레이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사람이 공동 창업했다.

서양과는 달리 한국 사람은 동업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LG의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오랫동안 잘 동역하다가 순조롭게 분가한 것은, 같은 피붙이라도 경영권 쟁탈을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는 경우가 왕왕 있는 한국 사회에 귀감이 될만하다.

한국 사람의 동업은 서로 머리가 되려 하고, 업무분장이 애매하고, 신뢰 문제로 인해 분쟁이 끊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 기업은 대부분이 자녀나 친족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히 대기업의 경우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족의 틀을 벗어나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하는데 한국 기업에서는 이게 잘 되지 않고 있다.

요즈음, 한국에도 창업이 많이 일어나고 부부 공동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제일 좋은 동역자는 부부이다. 특히 소규모 자영업에서는 부부만큼 든든한 동역자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의 사역에서 목회자의 경우는 사모가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동역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동역자를 달라고 기도하고 또한 동역자를 주시면 동역을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필자도 인생을 살아보니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적 네트워트를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미리 깨우친 민족이다.
 

멘토와 멘티의 만남 

멘토(mentor)와 멘티(mentee)로서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 또는 선구자와 후계자로서의 만남이다. 잘 알다시피 멘토(mentor)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 왕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가장 절친한 친구인 멘토에게 아들의 교육을 부탁했다. 멘토는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왕자의 친구이자, 상담자, 아버지로써 그가 훌륭한 리더가 되도록 지도했다.

오디세우스 왕이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다시 돌아 왔을 때, 왕의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다. 오디세우스 왕은 자신의 아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친구를 '멘토'라 불렀고 돌봄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 불렀다. 이후 멘토는 상대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가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 인생의 안내자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세와 여호수아,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만남을 말한다. 칼뱅과 파렐, 윌버포스와 뉴톤의 만남도 이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영적 생활에서 하나님, 마귀 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이 영적 지도자라고 한다. 평생의 신앙생활에서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신앙생활의 색갈이 달라지고 성숙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 낭자들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는 LPGA미국 프로여자골프대회에 최근 혜성 같이 나타난 대만의 청야니가 랭킹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청야니는 미국 올랜도에 있는 레이크노바 골프앤클럽에서 사는데 이 집은 예전에 골프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투어 전진기지였다. 창야니는 소렌스탐의 집을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소렌 스탐의 모든 것을 벤치마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을 눈앞에 둔 청야니가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어떤 대가(大家)라도 처음에는 모방하고 그 다음엔 창조적으로 모방하고 그후에 진정한 창조를 한다.『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과거의 훌륭한 인물들에게 자문을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훌륭한 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하여 그들의 행동방식을 파악하라. 그리고 그들이 승리를 거둔 이유와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여 전자는 모방하고 후자는 삼가라. 무엇보다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훌륭한 인물들, 후세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는 유명한 인물들, 행동과 업적의 위대함으로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인물둘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라. 알렉산더 대왕이 아킬레스를, 시저가 알렉산더를 모방했던 것처럼 말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실질적인 멘토링 관계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청야니나 마키아벨리처럼 벤치마킹을 하거나 조언을 통해 간접적인 멘토링을 하는 것도 좋다.

헨리 포드와 16세 연장자인 발명왕 에디슨의 우정은 남 달랐다. 포드가 자동차에 대한 꿈을 이야기 했을 때 다른 사람은 모두 비웃었지만 에디슨은 “젊은 친구여, 바로 그것이로구나, 틀림 없다”면서 격려했다. 에디슨이 실용적인 알칼리 전지를 만들자 포드는 이를 T모델 자동차에 장착했고 에디슨 연구소가 불타 없어졌을 때 포드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일본의 성공학자 혼다 켄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자신 규모가 1억엔 이상인 일본의 백만장자들은 39%에게 자기 인생의 스승인 멘토가 있었고 그 미만의 자산을 가진 일본인은 평균 26%가 멘토를 가졌다고 한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12).

유명한 사람들일수록 더 멘토가 필요하다. 일본의 전 수상은 자기에게 3명의 조언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한 의사, 세상 인심을 알려주는 언론인, 가치를 위한 성직자이다.

투자의 귀재 워린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유명하다. 홍콩의 한 투자가는 211만 달러(26억원)를 내고 그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3시간 정도 이야기했다. 그 이전 해에는 65만 달러였다. 그런데 투자가는, “한 푼도 아깝지 않다. 나는 이후 3배 정도 투자 이익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한 마디에는 수십 년의 노하우와 내공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쉐어 그룹(Share group) 또한 필요하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서로 나누고 권면하고 도전을 주는 쉐어 그룹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고통은 나누면 반감되고 비전은 나누면 배가 된다. 그러나 반대자와 함께 하면 찬물을 끼얹는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2년에, 10년 이내에 인간이 달 위를 걷게 하겠다고 선언하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케네디는 그들과 만나지 않고 가능하다고 말한 과학자들만 만났다. 그들은 반대 과학자들이 말한 불가능한 이유들에 대해 조목조목 해결책을 찾아냈다. 결국 1968년 8월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달 위를 걸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일생 10계명에서 말했다.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나에 버금가는 혹은 나 보다 나은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라.”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

"이 곳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을 부하로 선택하여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묻혀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비전과 목표를 주시고 새로운 사역으로도 인도하신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열심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이고 그 다음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신자라면 여러 가지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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