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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성취③] 1-3-3 재능과 은사를 통해 주신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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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9  14: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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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성취③]

1-3-3
어떻게 비전을 세우는가


-재능이나 은사를 통해 비전을 주신다-

   

▲워싱톤 카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의 출생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원 안은 카버의 동상

미국의 남북전쟁 후 피폐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흑인노예로 태어난 조지 워싱톤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는 추위와 배고픔,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혔지만 결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앙이 깊은 그는 흑인으로서의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서 농화학을 전공했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흑인들에게 농사 기술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농화학자로 섬겼다.

가난한 흑인 노예의 자녀로 태어난 그는 평생 자기 재능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다가 모든 미국인의 가장 사랑 받는 농화학자로 죽었다. 나중에 그의 출생지는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카버가 활약할 당시 미국의 남부는 오랜 기간의 면화 재배로 인해 땅의 질소가 없어져서 더 이상 면화 농사가 불가능했다. 카버는 연구 끝에 땅콩, 완두, 콩, 감자 등을 심으면 땅에 질소가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최초로 윤작제를 시도하여 성공했다.

땅콩 풍년이 들자 또 문제가 생겼다. 땅콩 수요가 없어서 농민들이 굶게 생긴 것이다.

카버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오, 하나님, 왜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쓸데 없는 질문은 하지 말고 너는 땅콩 한 줌을 갖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계속 연구해라.”

이후 그는 땅콩을 연구하여 땅콩 버터, 땅콩 식용유, 땅콩 구두약 등의 105 가지나 되는 아주 맛 좋은 음식물과 200 가지가 넘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어 가난에 허덕이는 미국 남부지역 농부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발명왕 에디슨이 그 소문을 듣고 당시로서는 거액인 10만 달러 연봉에 최신 연구시설을 제공하면서 동업하자고 제안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식물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카버를 초청할 정도였다.

그는 모든 좋은 제안을 거절하고 흑인이 세운 터스키기라는 조그만 직업훈련학원-나중에는 대학이 됨-에서 박봉을 받으면서 수백 가지 제품을 개발했다. 그중에서 단 세 가지만 특허를 출원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 놓고 공짜로 사용하게 했다.

1941년 타임(TIME) 지에서 조지 워싱턴 카버를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했다. 실제 조지 워싱턴 카버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림, 요리, 세탁, 연설,식물학,수의학 모두 해박했다.
 

미국 연방상원에서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그를 초청하여 단촐한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카버 박사에게 질문했다.

"박사님,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초인간적인 발명과 개발을 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카버 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높이 들면서 "모든 조화는 여기에서 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어떤 상원의원이 약간 비웃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아니, 박사님 땅콩 기름 짜는 법도 그 책에서 배웠나요?"

"물론 땅콩 기름 짜는 법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이 세계를 더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하여 나에게 자기와 함께 일하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를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라고 이름 짓고는 연구소 안에 성경책 이외에는 아무 책도 구비해놓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늘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커튼을 제쳐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그는 학문을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연구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속 연구하는 분야에 지혜를 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지혜와 창조의 영을 주셔서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하게 하신다.

1901년에서 1990년까지 90년간 자연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 404명의 종교 실태를 조사해 보니, 기독교 76%, 유대교 22%, 불교 0.9%, 회교 0.1%로 나타났다. 그런데 유대교(구약)와 기독교(신,구약)는 성경을 기초로 한 종교가 아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미국은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 받은 나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때 하나님을 잘 섬긴 서부 유럽도 이전의 영광만 못하지만 여전히 세계 국민소득 순위 상위이고 객관적인 인프라-민주정치, 국민의 평등과 자유, 소득 수준, 교육 수준 등-에 있어서 상위이다.

그들의 종교는 절대 다수가 기독교이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이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복을 주신다. 농경시대에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황충과 해충을 막으심으로써 복을 주셨다. 그렇다면 산업사회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복을 주시는가?
 

필자는 이것이 궁금하여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연구했다.
그 이유는 다음 4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하나님은 축복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신다

종교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은 직업 소명론을 주장했다. 직업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소명(calling)이므로 성직자든 평신도든 주어진 직업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직업 귀천의 담을 허물었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노동을 금욕의 수단으로 여기면서 누구나 근면, 성실, 정직하게 일한 대가의 일부를 축적해도 좋다는 이윤제도를 허용했고 또한 당시에 금지된 이자제도를 허용하여 자금이 필요한 상공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독일의 막스 웨버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상술한 것처럼 종교개혁가의 이런 주장은 유럽의 산업발전과 자본주의 형성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 인간의 탐욕으로 자본주의가 변질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는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본주의는 물론 민주주의에도 모순이 많고 문제도 많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허용된 ‘최악의 제도들 중에서는 최선의 제도’이므로 단점을 보완하면서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따뜻한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자본주의 4.0, 복지 자본주의 등을 통해 전통적 자본주의의 단점을 개선하고 있다.

선진국은 제도적, 법률적으로 풀 것은 풀어서 기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구비하고 통제할 것은 통제하여 국민의 복지 수준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후진국일수록 쓸데없는 제도는 많고 꼭 필요한 제도는 미비하다.

헤르난드 디 소토(Hernando de Soto)는 팀원들과 함께 실험적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의 외곽에 작은 옷 가게를 열려고 했다. 그들은 당국의 허가를 얻기 위해 하루 6시간씩 관공서를 뛰어다녔고, 결국 289일이 지나 겨우 허가를 얻었다. 비용은 1,231달러 들었는데 노동자 월 최저 임금의 31배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그는 이집트, 필리핀, 아이티 같은 국가에서도 미로처럼 얽힌 행정절차가 국민들의 기업 의욕을 막고 있다고 했다(헤르난드 디 소토, 『자본의 신비, 자본주의가 서구에서 성공하고 다른 지역에서 실패한 이유』, 2000년 출판).

물론 우리나라는 이들보다는 낫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쓸데없이 관(官)이 치(治)하는 분야가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있어서 창의와 개방의 발목을 잡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복지의 사각지대는 많은 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의 단두대’를 외쳐도 실무자 수준까지 잘 침투가 되지 않아 아직도 사업하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구충족적 호기심과 성취 욕구를 발동시키신다.

중국의 사상사인 양수명은 문화의 3가지 성향(向說)을 통해 유럽 문명의 우위를 설명한다. (양수명, 『동서문화와 철학』). 문화의 차이란 추상적인 양식의 문제일 뿐 아니라 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차이다. 이런 문제 해결의 방법-혹은 생활 양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욕구충족 성향.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애쓰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투쟁하는 태도다. 문제에 부딪치면 늘 전진하여 착수하고 그 결과 국면을 바꾸어 욕구를 충족시킨다.

•  현실안주 성향. 문제에 부딪치면 해결하지 않고 바로 그 처지에서 자기 만족을 구한다. 가령 집이 작고 비가 새면 욕구충족의 사람은 집을 고치거나 바꾸려고 하지만 이 성향의 사람은 집을 개조하는 대신 자기 생각을 바꿈으로써 현실에 안주한다.

•  욕구부인 성향. 앞의 두 가지 성향과는 반대다. 상황이나 자기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금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상황이나 문제를 아예 취소하려고 한다.

첫째는 서양인의 성향이고 둘째는 중국인의 성향이고 셋째는 인도인의 성향이다. 욕구충족적인 서양 문화는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한 자연정복, 과학정신, 민주주의와 같은 찬란한 정신문명 및 물질문명을 이루어내었다.

-자연정복. 찬란한 서구문명은 자연정복의 집합이다.
-과학정신. 현상을 바꾸려고 하고 세분하여 분석적으로 고찰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민주주의. 각종 권위, 세력에 대한 반항, 분투, 투쟁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유럽은 성경의 가르침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욕구충족적 문화’에 눈을 뜨면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교와 도교는 안분자족 성향, 불교와 이슬람교권은 욕구취소적 문화권이다. 그 결과 소수 특권층은 무한한 축복을 누리지만 절대 다수의 백성들은 도탄에서 신음한다-그런 나라들은 지금도 그렇다. 소수 특권층의 고상한(?) 정신 문화는 절대다수 백성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들이었다.

물론 동양에서 4대 문명이 시작되고, 18세기까지 중국이 문명에서 유럽 보다 앞서 있었지만 산업은 주로 농업위주의 일차 산업이었다. 또한 비록 서양 보다 문명이 앞섰다고 하지만 장인 혼자 주물럭거리는 수준에 머물렀고 과학정신이 결여되어 기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거나 전수하지 못하였다. 만일 중국이나 인도가 유럽문명과 충돌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18세기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양수명은 진단한다.

한편, 현재의 한국은 서양 문명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가 인간의 욕구충족적 성향을 자극하여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입히고 먹여는 놓았다. 그러나 이후의 도덕적, 정신적, 영적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오히려 ‘천박한 종교’(?)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유교나 불교에게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이제 인성 훈련에 분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 하나님의 축복은 지혜와 창조의 영을 통해서 온다. 

천지 만물과 사람의 창조주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신앙심이 깊은 개인이나 국가에 지혜와 창조의 영을 통해 복을 주신다. 전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보라. 정치적 안정, 경제적 부요, 사회적 성숙을 누리는 나라는 거의가 기독교 국가들이다.

물론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이집트 문명-도 동양이었다. 비록 서양에 먼저 기독교가 전파되고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허용된 이래 유럽은 1000년 동안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이성을 억제한 암흑시기였다.

그러나 16세기에 꽃을 피운 르네상스는 이성의 발전과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구원 교리)라는 새로운 진리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유럽은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계급적이던 천주교가 말씀(성경)의 종교인 개신교로 개편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르네상스라는 양대 축을 통해 급격하게 현대적 사회로 성장하면서 단 기간 내에 동양은 물론 다른 세계를 압도하는 현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한국 정도의 국토와 인구를 가진 영국이 산업 혁명을 주도하고 대영제국 건설의 기초를 다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국의 어느 유명한 서양철학자는, 과거 강대국의 성공 요인을 보면 ‘우연’이 많으며, 영국도 19세기에 패권 국가가 될 ‘필연성’은 없었으며 면직물 수요 급증이라는 ‘우연한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신자와 신자가 기도에 대해 토론했다.

신자. “기도를 하면 많은 응답을 받습니다.”
불신자. “그것 우연 아닙니까?”
신자. “네, 우연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그런 우연이 자주 일어납니다.”

세상적 역사관에 의하면 영국이 강대국이 된 것이 우연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구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7-8).

영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영국에 영적 부흥이 불어 닥쳤기 때문이다. 대륙의 독일과 프랑스가 자유 신학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영국은 요한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 등과 같은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영적부흥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와 창조의 영을 부어주셔서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통해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하셨다.

물론 이후 민족국가 형성과 팽창주의로 인한 탐욕과 진화론적 백인 우월주의에 의해 제국주의, 식민주의라는 역사적 오점은 남겼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유럽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이 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개신교 국가이다. 1980년대, 일본이 추락하고 유럽이 비틀거릴 때 미국은 마이트로소프트,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오라클 같은 기술 업체들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었고 지금도 애플, 구글, 페이스북, MS같은 기술 산업들이 미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가 2,000을 넘어선 것은 1987년 1월이었다. 그 당시 뉴욕타임스(NYT)나 월스트리트저널(WSJ) 과 등과 같은 매스컴들은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될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마의 10,000선이 무너지고 얼마 후 15,000선을 넘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미국에 살면서 영적부흥이 일어나는 교회를 많이 방문하면서 깨달았다.

“아,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임하고 교회가 갱신되면 경제가 부흥하는구나!”

물론 수년 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잠시 비틀거리고 있지만 이것은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므로 미국인들도 이제 탐욕을 회개하지 않으면 경제불황이 더 오래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기독교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진리를 새롭게 발견할 때 인간 이성도 새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즈음 한국에서 두뇌개발과 창의력 제고를 위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퓨전, 통섭을 통해 창의력을 제고하자면서 마치 인문학이 만병통치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인문학이 인간 이성을 감옥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윤리도덕성의 결핍으로 인해 르네상스 이후 유럽이 도덕적으로 급격하게 타락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필자도 최근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인문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통찰력은 얻지만 그것은 참 진리인 성경을 지향하거나 성경의 이해를 도와주는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만일 인문학이 그런 기여를 했다면 중국의 유교 관련 서적들, 인도의 베다, 위파샤나, 불교 문헌들이 활개를 쳤던 당시에 왜 계급제도나 카스터(Caste) 제도-인도에는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가 성행했고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는가?

비기독교인은 듣기 싫겠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혜에 의해 나름대로 어느 정도 문화와 문명은 이루지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신 28:15이하 참조).

“문화는 종교의 산물이고 종교는 문화의 배경이다.”

현대 사회는 탈종교화 된 세속 사회이므로 가능하면 종교의 역할을 축소시키려 하지만 인간은 종교가 만들어낸 문화란 틀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한국도 60년 전 6·25사변의 잿더미 위에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세상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 한국인의 교육열과 근면을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꼽는다. 세상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한국에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국운 융성기에 있다. 세계 최초의 발명과 발견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한때는 한국의 신학생이 미국 신학교를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한국의 디자이너 후보생들이 미국의 디자인 학교인 FIT나 파슨스 스쿨 재학생의 절반을 육박하고, 최고 권위인 영국의 디자이너 상들을 한국인이 휩쓸고, 유럽 디자인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땅 좁고 천원자원이 부족한 한국인에게 지혜와 창조의 영을 물 붓듯 부어주셔서 경제를 발전시키시고 또한 한류열풍-가요, 배우, 탤랜트, 스포츠, 디자인, 음식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신다. 물론 이 축복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축복이 아니라 아시아를 섬기고 열방을 섬기라고 주신 축복이다.

어떤 사람은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하는 사람이 모두 크리스천인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독실한 불교 계통 신자이고 요즈음 뜨는 경영 컨설턴트나 학자 중에도 불교 계통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그런데 그들의 국적이 어딘가를 살펴보라. 절대 다수가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기독교 국가 출신들이다.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나님이 어떤 나라를 축복해 주시면, 비록 어떤 특정 개인이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 나라 전체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영향권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지혜와 창조의 영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도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참고로 지금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IT 4인방 중, MS의 빌 게이츠는 개신교,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유대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거도 유대인이다. 즉 IT 4인방 중 4분지 3이 성경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이거나 유대인이란 말이다.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그래드월은,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은 물론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을 누려왔다고 말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자수성가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자기 혼자 잘 나서 성공한 것 같지만 소속된 사회나 국가의 인프라가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만일 빌 게이츠(MS), 스티브 잡스(Apple), 마크 저커버거(Facebook), 래피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Google)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모두 ‘대학 중퇴’라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못하여서 공시족(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족)이나 되었을 것이라면서 창업과 벤처기업을 가로막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자조적인 말을 한 사람도 있다.

인터넷 상에 이런 글이 떠있는 것을 여기에 옮겨본다.

“밀라노비치는 미국민을 소득수준에 따라 똑같은 크기-상위 5%, 하위5% 등-로 20 등분한 다음, 구매력을 감안한 ‘지구상’의 소득 분포와 상관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미국에서 당신이 최하층(바닥5%)의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해도 세계 기준으로 당신은 상위 30%에 육박하는 생활수준을 향유하고 있다. 브라질이나 중국, 인도에서 맨 바닥층은 하루 1 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같은 극빈곤자라도 국적에 따라 삶의 질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

더 웃기는 것은 인도 최상위 5%의 평균 소득 수준이 미국 최하위 5%의 그것에도 모자란다는 사실이다. 이걸 보면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의 질이라는 게 나만의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이 인도에서 태어나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상위 1%안에 들지 못하는 이상 미국에서 복지연금 받아 생활하는 실업자보다 구매력이 높지도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저어기 북에서 태어났다고 상상해 본다면…..”

이런 여러 사실을 감안하면 ‘명상 그 자체’가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주도하는 창의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명상은 방법이나 도구일 뿐 그 알맹이인 창의력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이 주인이시며 재물 얻을 능력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다. 물론 이 세상은 아직도 마귀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돈을 벌고 사업이 번창할 수 있다(눅 4:5-6).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 8:17-1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하나님)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호 2:8-9).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축복은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통해서 온다.

자기계발 서적에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다음의 예화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배경이 비슷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적 있다. 학창시절에 미래의 명확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학생은 3%, 비교적 단기 목표를 가진 학생은 10%, 희미한 목표를 가진 학생은 60%, 아무런 목표가 없는 학생은 27%였다.

25년 후 다시 조사를 해보았더니 분명한 목표를 가진 3%에 속한 학생은 각계의 정상급이 되어 있었고, 비교적 단기 목표를 가졌던 10%에 속한 사람은 중상층, 희미한 목표를 가졌던 60%에 속한 사람은 중하위층이었다. 그러나 무계획한 사람은 빈곤층에 머물면서 사회를 원망하고 국가를 원망하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 당신의 미래가 학벌, 배경, 부유한 부모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즉시 생각을 바꾸어 당신의 미래에 대한 분명하고 장기적인 비전부터 설정해 보라. 분명한 목표와 불타는 소원은 심해에 묻혀있는 재능을 태산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엔진이다.
 

댄 케네디는 말더듬이었다.
어느 날 그는 비저닝(Visioning, 비전을 실제로 마음에 그리는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했다. 그는 오늘날 1회 강연에 1억 원 이상을 받는 유창한 강사가 되어 있다. 그는 주로 동기부여와 비저닝에 대해 강의한다.

폴 마이어는 보험 판매원이 되기 위해 원서를 내었지만 56번이나 퇴짜를 맞다가 57번 만에 겨우 보험 판매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입사한 지 고작 3주 만에 상사로부터 “자네처럼 고객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처음 봤네. 당장 나가주게”라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보험왕이자 동기부여강사이었다. 27세에 이미 보험판매 수당만으로 백만 장자가 되었고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 무려 40개가 넘는 기업을 소유하고, 30여개 이상의 자선단체와 사역을 돕고 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동기 부여 강의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성공의 75%는 분명한 목표 설정 덕분이고 나머지 25%는 집중, 열망, 준비 및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예수 믿으면 모두 부자가 되는가? 우리 나라 재벌이나 부자들을 보면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개인적으로 보면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이 노(No)일 수도 있다. 비록 예수를 믿어도 믿음의 과정에 있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나 자발적인 가난 등의 이유로 인해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잘사는 사람을 보면 크리스천이 드물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 세계에서 부요한 서부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은 모두 기독교 국가이다. 국가가 부유한 것은 개인이 부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 사는 일본이나 싱가포르, 최근 급부상하는 중국은?
이들은 원래 잘 산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유럽이나 미국의 문물들을 열심히 잘 받아들였기-복사-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50년 정도 먼저 명치유신(1858년)을 통해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에 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어 한때 아시아를 지배했고 오랫동안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유지하다가 얼마 전 중국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 일본은 혼란 중에 있다. 이전까지는 오리지널 보다 더 뛰어난 복제기술로 잘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고 새로운 창의력도 잘 생겨나지 않는다. 우상숭배가 심한 나라에는 지혜와 창조의 영이 잘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에는 기독교가 한국 보다 먼저 소개되었지만 지금 기독교 보급률은 인구 전체의 0.4%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개신교 인구 20%와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중국이 지금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 한 것도 압도적인 인구를 바탕으로 한 저(低) 임금과 유럽이나 주로 미국에서 훈련받은 우수한 인재들을 대량 확보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몇 년 전 『대국굴기』(大國崛起, 역사적으로 우뚝 선 선진강국)란 TV 특집을 통해 역사적으로 대국굴기한 나라들인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델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을 열거하면서 그 나라들이 대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한 가지 중대한 실수는 이들 9개국들 중 일본만 제외하고는 모두 한때 기독교가 왕성할 때 대국으로 굴기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때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선진 유럽, 미국 및 러시아의 기술을 복사하거나 도입하여 전투기, 항공모함, 우주선 같은 첨단 기술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당 독재로 인한 국민의 민주화 요구, 빈부 격차, 부정부패, 기독교 탄압, 전기, 물, 인력의 심각한 부족 현상, 소수 민족의 문제 등으로 인해 앞으로 5년~10년 이내에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기 영광, 세상영광을 위한 성공이다. 모든 재능이나 창의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나에게 부여된 재능을 나의 영광, 세상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오남용하는 것이다.

요즈음 자기계발과 성공철학 서적과 세미나들이 한국에서 확산되면서 성공을 부추기고 있지만 그와 못지 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바로 성공하려고 하는 마음의 동기이다. 신자의 경우,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내 영광이나 세상 영광의 동기로 아무리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비저닝해 보았자 헛일만 하기 쉽다.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하나님의 지혜와 창조의 영이 풍성하게 임하고 일도 형통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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