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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중지론과 성령운동(1)] 기적중지론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기적중지론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백해무익한 신학이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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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3  19: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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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중지론과 성령운동(1)]

기적중지론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1)

기적중지론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가로막는
백해무익한 신학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령운동하는 교인은
전통적 개신교인의 두 배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중대형 교회도 대부분이 성령운동하는 교회이다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지시는 예수님

들어가는 말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1990년 이래 양적 성장은 답보 상태에 있고, 대형 교회 지도자들의 잇단 스캔들, 교회 권력의 세습 등으로 종교 선호도는 불교와 천주교 다음으로 꼴찌이다. 설상가상으로 세상 재미, 경제적 불안 등으로 인해 종교적 관심도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난 일부 목회자의 교회는 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매년 3~4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2005년 정부 조사에 근거할 때, 기독교(개신교) 전체 인구는 870만 명 정도인데 이중 150~250만 명 정도를 이단으로 보면 순수한 기독교 인구는 620~720만 명에 불과하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갱신하지 않으면 2050~2060년 경에는 기독교 인구가 400만에서 300만 명대로 줄어든다고 한다.1)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2~3년 내에 빚 폭탄이 교회를 엄습한다는 사실이다.2) 이전에도 일부 교회에서 무리하게 성전을 건축하면서 빚을 못 이겨 파산하거나 성전이 이단에게 넘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빚 폭탄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2013년 기준으로 교회의 대출 총액은 4조5000억 원으로 매년 이자 부담액만 2250~5000억, 매월 187~416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 한국 교회 수준으로는 이자만 낼 수 있을 뿐이고 원금은 거의 갚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 부채로 인해, “2~3년 내에 한국 경제와 한국 교회는 외통수에 걸릴 수 있다”고 진단한다. 2~3년 후 한국 경제 위기가 한국 교회를 휘몰아치면 한국 교회는 최소한 4~5년 길게는 7~8년 정도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2020년 초반에 가야 위기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교회와는 달리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급성장하는 기독교 집단이 있다. 바로 성령 운동하는 교회들이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 신학, 기적중지론적 보수주의 신학을 견지하는 교회들은 모두가 쇠퇴 일로에 있다. 그런데 성령 운동하는 교회들은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성령 운동하는 교회는 교회갱신, 교회성장은 물론 교회재정 및 성도의 재정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류 교단의 쇠퇴와 성령운동 교회의 성장

미국의 개신 교회들은 20세기까지는 그런대로 잘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5년에 접어들자 주류 교단들-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등-은 역사상 처음으로 교세 감소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후 교세는 지속적으로 감소되었다.

1968년→1994년→2011년 (단위 : 만 명)
• 남침례교. 1600만 명에서 미세한 감소
• 연합감리교(UMC). 1100→840→774
• 성공회. 340→250→200
• 미국장로교(PCUSA). 420→370→277.

미국장로교는 2010년 동성애자 성직 임명을 허용한 이래 매년 6만 명 정도의 교인 감소를 보여왔는데, 지난 3월17일자로 동성결혼을 허용함에 따라 교단이 갈라서서 현재 교세는 200만 명 이하 수준으로 급감되었다. 미국 감리교도 내년에 동성결혼 허용 안을 논의하게 됨에 따라 찬반 양론이 거세지고 UMC한인총회는 교단 분열까지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1901년 찰스 파함으로부터 시작된 성령운동은 불과 100년 만에 로마 가톨릭 다음 가는 기독교 집단으로 성장했다.『기독교백과사전, 2001』(World Christian Encyclopedia)의 편찬자인 데이빗 배렛(David Barret)에 의하면, 2007년 현재 전 세계 개신교 인구를 11억 6172만 명으로 추산했다.

•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Independents). 4억3767만 명
• 전통적 개신교 교단그룹(Protestants). 3억8581만 명
• 러시아·희랍 정교회그룹(Orthodox). 2억2048만 명
• 영국성공회 그룹(Anglican). 8263만 명
• 기타 소수그룹(marginal Christians). 3513만 명을
   (소계. 11억6172만 명)

은사적 독립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그룹의 전체 성도 중, 은사적 성도를 10%만 잡아도 7240만 명이고 약 30%로 추정하면 2억 1721만 명이다. 이를 은사적 독립교회 그룹과 합하면 전 세계의 은사적 신자는 6억5488만 명으로서 전체의 56%에 육박하고 전통적 개신교 신자의 두 배에 육박하는데 계속 증가일로에 있다. 은사적 독립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이슬람교 증가율을 능가하는 유일한 기독교 집단이라고 배렛은 말한다.

데이빗 배렛은 20세기 초부터 성령의 파도가 계속 몰려오는데 새로 몰려오는 파도가 이전의 파도 보다 더 규모가 크다고 한다.3) 제1의 물결인 고전적 오순절운동의 규모가 6500만 명, 제2의 물결인 은사운동이 1억 7500만 명, 제3의 물결인 2억 9500만 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가 2025년에는 제1의 물결이 9700만 명, 제2의 물결이 2억 7400만 명, 제3의 물결이 4억 6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용도 폐기된 기적중지론은 추방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일부 기적중지론적 교회들이 성장하는 사례도 있지만 중대형교회의 절대다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령 운동을 하는 교회들이다. 찬양과 경배, 셀교회, 중보기도, 철야기도 등을 하는 교회라면 이런 교회는 이미 기적계속론적 은사적 교회들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의 기원은 모두 은사적 교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조용하게 정착한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보편화 되어 있는 찬양과 경배만 해도 1980년 말에는 ‘무당굿’이나 ‘광란’이라면서 배격했었고, 제자훈련도 선교단체에서 온 것이라 비판했지만 착실하게 잘 적용한 교회는 교회도 성장도 하고 열매도 좋았다.

방언만 해도 아직도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변태 방언’이니 ‘외국어 방언’이니 하고 비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유익을 누리고 있고, 음성듣기와 예언도 조심스럽게 잘 활용하여 개인적이나 사역적으로 유익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그외에 기름부음의 임파테이션 사역, 영적전쟁, 각종 셀 사역 등은 이미 정착하여 교회성장과 신앙성숙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중대형 교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적을 용인하고 있다. 수많은 성도들 중에서 기적을 통해 삶이 변하고 사역의 열매를 맺는 것을 목격하기 대문이다. 오히려 경험의 다양성이 부족한 소형 교회 목회자나 성도 중에 강성의 기적중지론자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자들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라고 말하지만(벧전 1:8), 이 말을 한 베드로도 기적을 보고 회개했고(눅 5:8), 베드로 만큼 많은 기적을 목격하고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도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성령운동하는 교회들은 이미 기적 사역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나님 나라 확장과 교회 성장은 전통이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주도하신다. 그런데 전통적인 교회가 견지하는 기적중지론은 비경적이고 인간의 편견에 가득 찬 잘못된 신학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에 재갈을 물리고 성경 위에 군림하면서 상왕(上王) 노릇을 하지만 이미 용도 폐기된 신학이요 현장이 없는 신학이다.

성경이 말하는 '기적4), 그중에서도 특히 신유, 방언 및 예언과 축사가 사도 시대 이후에는 끝났다’는 주장을 기적중지론5)(이하 ‘중지론’) 이라 하고 사도 시대는 물론 교회시대 전체에 걸쳐 기적이 계속된다는 주장을 기적계속론(이하 ‘계속론’)이라고 한다

특히 칼뱅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성주의와 계몽주의가 꽃을 피우던 전성기에 활개를 치던 중지론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결과 유럽 교회는 이제 건물, 신학 및 신학교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성경의 기적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 성경의 기적은 인정하지만 교회 시대의 기적은 부인하는 칼뱅주의 중지론을 신봉하는 교파들은 주변의 군소교단에 머물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예장 계열의 대형 교단이나 중소 교단들이 아직은 어정쩡하게 신학교에서 중지론을 가르치지만 현장은 상당수가 계속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단들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필자는 이 글들을 통해 한국의 교회와 교단들이,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중지론 신학, 하나님께는 불경스런 신학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여 마귀를 이롭게 하는 이적 신학, 목회나 사역 현장에는 백해무익한 신학이요 용도 폐기된 중지론을 이제 신학교에서 가르치지도 말고 교회에서도 즉각 폐기 처분할 것을 촉구한다.

중지론에 젖은 교계의 일부 언론과 SNS들-한국의『현대종교』,『세이연』,『교회와신앙』,『뉴스앤조이』,  『기독교포털뉴스』,『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미주의『크리스찬투데이』, 『뉴스M』,『바른믿음』등-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서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중지론을 고수하는 교단의 하수인 역할을 하면서 끈질기게 성령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들은 ‘은사 보다는 열매다’, ‘성장 보다는 성숙이다,’ ‘부흥 보다는 교리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은사 없는 열매, 성장 없는 성숙, 경험 없는 교리는 탁상공론이지 실재가 아니다. 성경도 사도행전에서처럼 넘치는 성령의 은혜와 표적과 기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모인 후 사도 바울을 통해 교리적, 윤리적, 관계적 문제를 해결했다.

교회사를 볼 때, 교리와 부흥이 같이 간 것은 종교개혁이 유일하다. 이후는 절대 다수의 경우가, 성경처럼 ‘부흥이 먼저고 교리는 나중’이었다. 기적중지론자들은 경험을 중시하지 말라면서도 종교개혁이란 한 가지 역사적 경험만을 유일한 표준으로 제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나 산적한 현실의 문제는 인간의 지혜나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해결하신다.

윌버 스미스는 부흥 운동들에 나타난 9가지 특성들을 요약해서 말했다.6)

1.부흥 운동들은 도덕적으로 깊이 잠든 시대와 국가적인 방탕 시기에 등장했다.
2. 부흥 운동들은 부흥의 배후에서 부흥의 능력을 힘차게 일으키는 헌신된 하나님의 종의 심정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백성들을 소생하시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하는 도구로서 쓰임 받았다.
3. 개개의 부흥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대부분의 부흥 운동이 하나님의 율법을 능력있게 증거하고 선포한 결과였다.
4. 모든 부흥 운동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결과를 낳았다.
5. 모든 부흥 운동은 우상들과 우상들이 있던 장소들의 파괴를 증거한다.
6. 개개의 부흥 사례마다 죄로부터 구별된 놀라운 실례가 있다.
7. 모든 부흥 운동에는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서의 돌이킴이 있다.
8. 거의 모든 부흥 운동에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나타난다.
9. 개개의 부흥 운동 이후에는 국가적으로 큰 번영의 기간이 따라왔다.

개인이 하는 성령 체험을 다수가 하면 영적 부흥이 된다. 영적 부흥이 오면 현실적으로 산적한 대부분의 문제-교회갱신, 교회성장, 재정문제, 사회문제 등-가 해결된다. 물론 우리는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하고 부흥을 위해 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성령이 제대로 일하시도록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 기적중지론이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다.

한국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은혜를 부어주셔도 중지론에 젖어있는 기득권자들이 성령을 소멸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기득권에 젖어있고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재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의 미래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백해무익한 중지론을 추방해야 한다.
 

칼뱅주의 기적중지론의 내막과 전개 

중지론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주창한 사람은 개혁주의의 시조인 칼뱅이다.
 

-로마 가톨릭의 도전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 칼뱅의 기적중지론

칼뱅은 한편으로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동격에 놓은 가톨릭,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들과 맞서야 했는데 이들은 모두 기적을 주장하면서 칼뱅을 공격했다. 특히 가톨릭은 칼뱅에게 ‘네 교리가 그렇게 옳다면 기적으로 증거해 보라’고 윽박질렀다.

이에 칼뱅은, 교리나 행동거지가 옳지 못한 자가 행하는 기적은 사탄의 소행(전기 어거스틴의 주장 차용)8), 기적의 기능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하나님의 정당한 대표이며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과 계시를 입증하는 것(원래 가톨릭의 기적을 정당화 하기 위한 토머스 아퀴너스의 주장을 살짝 수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의 기록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물론 애굽 술사들도 거짓 기적을 행했지만(출 7:22), 거짓 선지자 발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을 했고(민 22:2, 20 23:18-24), 성윤리가 문란한 삼손이 가장 큰 능력을 행했고(삿 14:6, 19; 15:14), 불법을 행하는 자들도 예언하고 축사하고 기적을 행했다(마 7:21-23). 그러므로 기적은 교리나 윤리가 아니라 기적을 경험한 사람의 간증 기적행하는 자의 신앙 인격의 열매 등으로 분별해야 한다(마 7:15-16; 벧후 2:15; 유 1:11 등).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기적이 입증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은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았고, 성경을 기록한 구약의 선지자들-이사야, 예레미야 등-도 기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고, 성경 기록을 하지 않은 엘리야와 엘리사는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이 증거하시기 때문이다(1장4절)고 기록한다.

더 나아가서, 기적은 ‘사도성과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증거주의(evidentialism)는 기적의 목적과 기능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무시하는 비성경적 주장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출 14:4; 요 11:4; 행 3:12-13; 마 5:30-31), 믿음에 대한 반응이나 기도의 응답으로(마 9:22; 15:28; 행 14:8-10), 자비와 긍휼 때문에(마 14:14; 15:32; 20:34; 막 1:41),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요 3:2; 9:32-33; 10:25), 사도들이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기 위해(고전 2:4; 고후 12:12; 히 2:4) 기적을 행하신다.

정통 교회가 이단 교리를 비판하는 주요 쟁점 중의 하나는 흔히 이단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구절들만 골라 교리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자세히 드러나겠지만 기적중지론이야 말로 칼뱅을 위시한 대부분의 중지론자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몇몇 구절을 확대해석하여 전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중지론자들은 ‘희한하고 별난 기적 보다는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인본주의적 주장이다. 하나님이 사람 보기에 희한하고 특별한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다. 만일 중지론자들처럼 ‘기적 보다는 구원이 더 중요하고 기적이 부수적인 것’이라면 왜 하나님은 성경 시대 전체를 통해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을까? 기적을 통한 사람들의 반응과 구원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다.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9:8).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31).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막 2:12; 눅 5:26; 13:17 등).

필자는 얼마 전에도 어떤 집회에 참석했는데, 강사의 치유기도 후 불치의 병이 나았다는 몇몇 사람이 간증을 하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다. 사람들은 당연히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강사에게 집중하여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일부 능력자가 가끔 교리적, 윤리적 실수를 저지르지만 제대로 잘 하는 전체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은 무엇을 해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은사 집회나 성령집회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말씀도 듣고 치유도 받고 희한한(?) 현상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눅 5:15 참조), 집회에서 나타나는 신유와 기적, 각종 희한한 현상들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도 받게 하니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도 확장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오히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기적과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한다. 요즈음에는 어지간한 평신도들도 원어 연구하고 각종 신학 책을 섭렵하여 이전의 목회자나 신학자 수준에 오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통과 기적중지론을 논하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이런 현상을 외면하고 ‘전통이요, 말씀이요’만 외치니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이다.
 

-칼뱅의 기적중지론을 착실하게 발전시킨 구(舊) 프린스톤 신학

칼뱅의 기적중지론은 미국의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조나선 에드워즈의 설교와 책을 통해 은혜를 받은 아치볼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1772-1851)가 초대 학장이 된 프린스톤 대학에 의해 계승되었다.

알렉산더는 논리적이고 변증적인 프란시스 튜레틴(Franscois Turretin, 1623-87)의 논쟁적인 신학강요』를 교과서로 삼았다. 튜레틴은 엄격한 예정론과 성경의 영감이론을 수정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조차 지나치게 논쟁적인 신학을 만류할 정도였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이후 착실한 계승자인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의 『조직신학』으로 1873년 대체되었는데 핫지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 방법에 의한 신학은 에드워즈의 신학조차 부당하게 모험성이 있는 신학으로 간주하였다. 찰스 핫지의 이성주의적 기적중지론적 개혁주의 신학은 벤자민 워필드에 의해 꽃을 피웠다.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을 가미한 벤자민 워필드의 기적중지론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1851~1921)는 화란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및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와 함께 3대 개혁주의 신학자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중지론자들인데 특히 튜레틴-하지로 이어지는 구(舊) 프린스톤 신학의 착실한 계승자인 벤자민 워필드가 칼뱅의 중지론에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9)을 가미하여 집필한 『가짜 기적』(Counterfeit Miracles, 1918)은 이후 중지론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워필드는 기적을 인정하는 가톨릭은 물론 당시 부흥하기 시작한 웨슬리 계통의 경건운동, 오순절 계통의 믿음 치유사역(Faith Healing Ministries) 및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을 통해 치유사역을 하는 이단인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의 발흥을 경계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는데 공교롭게도 벼락으로 인한 불치의 병으로 평생 고통을 받은 아내가 타계한 직후 이 책이 출간되었다.

워필드는 기적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정당한 권위를 위임 받은 대표들이라는 사실을 확증 (authentication)” 하기 위해서 일어났으며, 사도시대가 끝났으므로 기적은 “필연적으로 또는 필요에 의해 소멸되었다”(necessarily passed away) 고 주장한다.

워필드는 기적이 그렇게 끝나는 것이 성경의 ‘원칙’(principle)이며, 역사적인 ‘사실’(facts)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의 원칙에 의해서 기적은 사도시대에 끝났으므로 그 이후에 일어난 기적은 모두 “거짓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워필드는 '기적의 증인 요건'을 얼마나 엄격하게 제한했는지, 교부인 이레니우스, 순교자 저스틴, 심지어는 나중에 기적을 인정하게 된 어거스틴의 기적 기록도 두루뭉실하거나 부풀려진 소문에 불과하다면서 부인해 버린다. 한국에서는 이승구 박사10)가 용도 폐기된 워필드의 주장을 적극 활용한다.
 

-구속사적 해석을 더한 리차드 개핀의 기적중지론

이후 프린스톤 신학교가 자유주의화 되자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 1881~1937)의 주도로 1929년에 분리된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구 프린스톤 신학의 중지론을 물려받으면서 리차드 개핀(Richard Gaffin, Jr) 등이 활약했다. 개핀은 특히 구속사적 해석(Redemptive-historical interpretation)으로 중지론을 주장했다.

한국의 신학자나 목회자들 중 웨스트민스터 출신은, 1926년 구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메이첸 아래서 공부한 박형룡, 1929~50년대는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분리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박윤선, 명신홍, 한철하, 1960년대에는 김의환, 손봉호, 김명혁, 박형용, 이종윤, 신성종, 70년대부터는 옥한음, 오덕교, 김정우, 김길성, 권성수, 김재성, 박영돈 등이 구 프린스톤 신학과 개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한국 초기의 북장로교 선교사들도 대부분이 구 프린스톤 신학의 영향을 받은 중지론자들이었다. 그 결과 목회 사역의 현장에서는 표적과 기사가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중지론으로 인해 한국의 장로교는 지금까지 신학과 사역의 갈등 속에 휘말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필드의 복제판+구속사적 해석을 가미한 기적중지론자 존 맥아더

오늘날 워필드의 주장을 가장 착실하게 따르는 자가 바로 미국의 존 맥아더(John MacArthur, Jr.)11)이다. 개혁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존 맥아더는 워필드의 주장에, ‘유독 기적만이 교회 시대 신자의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구속사적 성경해석법을 추가하여 워필드의 붕어빵 같은 『무질서한 은사주의』(Charismatic Chaos)와 『다른 불』(Strange Fire)등을 통해 기적중지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2차 대전 직전에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모범적 설교(Examplar preaching)를 강조하는 것에 대항하여, 화란의 신학자들이 ‘설교는 모범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구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일어났으나 독일에 의해 화란이 점령되면서 유야무야 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학자나 목사들이 설교는 구속사적 관점과 모범적 관점의 조화를 통해 하고 있다.

사실 한국 장로교는 예정과 선택, 구속사적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구세주 예수는 강조하지만 신자의 도덕적 모범(Moral example)이신 예수님을 경시한 결과 각종 윤리도덕적 스캔들의 단초를 제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지론과 마찬가지로 구속사적 해석도 반대파의 오류를 비판은 하되 건설적인 것은 수용해야 하는데, 반대파의 주장을 아예 거부하다 보니 빈대는 잡았을지 모르지만 자기의 초가삼간은 태운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구속사적 설교는 모범적 설교로 보완을 이루었지만, 신학은 그대로 유지되어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Ridderbos), 리차드 개핀(Richard Gaffin, Jr), 존 스토트(John Stott) 등에 의해 ‘성경의 기적행하는 은사나 행위를 모두 구속사적으로 해석하여 교회 시대 신자의 모범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의 기적은 우리의 본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구속사적 기적중지론을 따르는 자라고 보면 된다.

한편, 워필드의 영향을 받은 세대주의 기적중지론자들은 존 월부어드(John Walboord, 1910~2002), 메릴 엉거(Merril Unger, 1909~1980), 루이스 체퍼(Lewis Chafer, 1871~1952) 등을 들 수 있다.

현직인 CRI(기독연구원) 대표직을 불법 강탈하고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헌금으로 번영복음자 못지 않게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행크 해너그라프(Hank Hanegraaff)12)도 맥아더 못지 않게 기적중지론을 설파하지만 여러 가지 추문과 공금 유용 스캔들로 인해 이전에 비해 기세가 많이 꺾인 형편이다.
 

경험적 성경 해석과 논리적 성경 해석, 논리적 해석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

이상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중지론은 반대파를 대항하기 위해 급조된 비성경적 신학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처럼 수많은 신학자, 목회자 및 성도들이 중지론에 설득되고 있을까? 자신들이 건전한 경험이 없고 주변의 나쁜 경험-은사자들의 교리적 윤리도덕적 미성숙, 교만과 엘리트 의식 등-에 의해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왜 성경을 경험으로 해석하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경험이 성경을 우선하면 안되지만 성경은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구절들이 너무나 많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사상은 이론과 경험을 구분하는 헬라 사상이 아니라 이론과 경험을 같은 것으로 보는 히브리 사상이다.

히브리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경험적, 관계적 지식도 필요하다. 그런데 구 프린스톤 신학은 종교개혁가들이 버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법과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의 영향으로 경험을 거세하는 논증적 신학으로 변질되어 성경을 인간의 논리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또한, 나쁜 경험을 핑계로 기적을 배척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다.
인도의 간디는 ‘기독교인만 아니라면 기독교는 믿어 볼만한 종교’라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기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한 기독교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혹시 당신도 간디와 같은 논리로 기적을 경원시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기 바란다. 기적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기적을 오·남용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기적은 유익한 것이 너무 많다. 잘 모르면 나쁜 한두 개만 부각되지만 제대로 알면 좋은 것 수십 개가 보인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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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

1. 최윤식,『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1』, 생명의말씀사, 2013, p.40-41.

2. 최윤식,『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2』, 생명의말씀사, 2015, p.29-51.

3. David Barret, “15. The Worldwide Holy Spirit Renewal,”  Vinson Synan, The Century of the Holy Spirit: 100 Years of Pentecostal and Charismatic Renewal, 1901-2001,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2001, Kindle e-book.

4. 성경에는 기적(Miracle)이란 말은 없고 표적과 기사(Signs and Wonders), 권능(power), 일(work, 요한복음) 및 유사어로 권세(authority)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편의상 이것들을 일괄적으로 기적이라고 부른다.

5. cessationism을 사람에 따라 은사중단론, 은사중지론, 은사종식론이라고 부르지만 필자는 기적중지론을 선호한다. 기적중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적과 기적행하는 은사(고전 12:8-10)가 중지된 것이지 일반적인 은사는 여전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또한 ‘종식’이라는 드물게 사용하는 단어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중지’라는 단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기적중지론자(cessationist)라고 부른다. 반대로 기적이 사도 시대 이후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 계속된다는 주장을 기적계속론(continuationism), 주장자를 기적계속론자(continuationist)라 부른다.

6. 윙키 프리트니 지음,『기독교부흥사』,도서출판 나침반, p. 20, 피셔『생명을 주는 부흥』, p. 63, Fischer, Riviving Revivals.

7. 어거스틴은 전기(前期)에는 기적을 부인했지만 후기(後期)에 불치의 암에 걸린 친구가 기적적으로 낫게 되자 기적중지론을 버리고 유명한 『하나님의 도성』에 70건 이상의 기적 사건을 기록했다.

8. 워필드는 칼뱅의 신학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 미국의 종교계를 휩쓴 스코틀랜드의 “상식 철학”(Scotland common sense philosophy. SCSP)을 도입함으로써 오히려 칼뱅주의를 오염시켰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한다.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은 토머스 레이드(Thomas Reid. 1710-1796)에 의해 유명해져서 나중에는 유럽과 미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레이드의 상식 철학은 유럽은 물론 미국의 사회학, 심리학, 문학, 경제학 및 정치학은 물론 철학 및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식 철학은 모든 사람을 미국의 정치, 사회 및 종교적 일정에 동참시킨다는 미국의 반(反) 엘리트적 민주주의 비전과 찰떡 궁합을 이루었다.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의 영향이 기적중지론자들이 엘리트적인 기적과 기적 은사자들을 경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식 철학은 특히 미국 장로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린스톤 신학이 채택한  상식 철학은 한 마디로 말하면, 누구든지 자신의 경험적, 변증적 관점이나 기적중지론적 논증에 따라 이성적으로 종교적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워필드는 이런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워필드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낙관했다고 할 수 있다.

총신대 이한수 교수는 맥스 터너(Max Turner)의 평가를 바탕으로 상식 철학의 허구를 비판한다.

“워필드가 추종하는 상식 철학과 그것에 기초한 실재론적 인식론은 오늘날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식 철학에 내재된 치명적인 약점은 '상식' 이란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니라는데 있다. 사람들은 동일한 증거를 두고도 전혀 반대되는 결론들을 끌어내곤 한다.

워필드가 생각한 것처럼 만일 기적들이 지닌 신적인 성격이 상식적으로 자명하고 성경의 기적들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상식이 추론될 수 있다면 세상에는 더 이상 불신자들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상식에 기초해서 위필드와 같이 신적인 기적들로 추론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거부하지 않는가? 이것은 상식 철학의 논거가 빈약할 뿐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이한수, “신약의 전망에서 평가한 은사중지론,”『신학지남』(神學指南). 2008年 여름호(통권 제295호), 2008.6, 157-178 (22 pages).

9. 이승구, “치유와 치유 집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국민일보』, 2015. 6.2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126165&code=11171396&cp=nv. 2015.9.12).

10. “존 맥아더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를 비판한다”『글로리아타임스』2014. 4. 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2

“존 맥아더의『다른 불』비판(1)-존 맥아더가 통일교도라고?”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3

11. “해너그라프, CRI 대표직을 불법 강탈하다,” 글로리아타임스』, 2014. 4.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7.

“행크 해너그라프의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 비판,” 2014. 4.29.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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