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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감정④] 시편과 감정-시편은 우리의 감정과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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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5  18: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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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감정④]

시편과 감정

-시편은 우리의 감정과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치유 목회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감정을 치유하는 것이다. 물론 치유에는 육체적, 감정적, 영적인 전반적인 치유를 망라하지만 목회 상담학적인 측면에서는 상한 감정과 나쁜 기억(damaged emotions and bad memories)을 치유하는 것이 이미 상당히 중요한 이슈로 등장해 있다.

필자는 내적치유 사역에 종사하면서 최고의 지성과 학식을 자랑하는 지성적 교인들 중에서도 감정 처리를 잘못하여 부부관계, 부모 자녀 관계 및 기타 인간관계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도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저급하다니!

하나님은 감정의 중요성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편을 선물하셨다. 물론 시편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찬송가요 기도서요 교리서요 메시아에 대한 예언서이다. 그러나 필자가 특히 여기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시편은 또한 감정에 대한 훌륭한 '상담서'(counseling book)라는 사실이다.

시편은 우리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시편은 우리의 지성뿐만 아니라 의지는 물론 우리가 실 생활에서 체험하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분노, 부끄러움, 의심, 사랑 및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감정마저 잘 반영하고 있다. 시편은 우리의 영혼을 비치는 거울이다.

칼뱅은 시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울에 비취는 것과 같이 어느 누구라도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여기에(시편에)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혹은 차라리, 성령이 여기에 모든 근심들, 슬픔들, 두려움들, 의심들, 희망들, 돌봄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이 시달리도록 익숙된 모든 산란한 감정들을 인생에게 이끌어 준다" (J. Calvin, "The Author's Preface," in his Joshua, Psalms 1-35, xxxvi-xxxvii).

시편은 주제에 따라 지혜시(1, 36,37, 49편 등), 신뢰시(11, 16, 23, 27등), 찬양시(8,19,104, 145-147등), 감사시(65,67, 75 등), 탄식시 또는 비탄시(3, 22, 31 등), 비탄시 중의 회개시(65, 32, 38, 51 등) 및 제왕시 또는 메시야 시(24, 29, 47등)로 구분된다.

이중에서도 벅찬 기쁨을 표현하는 찬양시와 감사시, 괴로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탄식시를 예로 들어 보자.

 

찬양시

찬양시는 하나님께 대한 활기찬 찬양과 분위기 및 제목에 의해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찬양시는 이전의 특별한 곤경이나 최근에 받은 어떤 구체적인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성품)이나 피조물 전체 및 인류 전체에 대해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 또는 자비로우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계시록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천군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찬송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계 4:11).

찬양시는 보호자이자 은혜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66, 100, 111, 114 및 149). 또한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33, 103, 113, 117, 145-4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시 115:1).

할렐루야의 동사인 ‘할랄’(히브리어)은 운동 경기에서 자기 편을 응원할 때 팔을 흔들며 기뻐서 승리를 외치는 열광을 말한다. 시편은 이러한 자세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 95:1).

'노래하며'의 히브리어는 라난이다. 라난은 기쁨에 차서 시끌벅적하게 외친다는 말이다. 여호와를 신바람 나게 찬양하라는 말이다. '즐거이 부르자'는 ‘루아’이다. 루아는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면서 즐거워하자는 말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 말을 '즐거운 시끄러움으로 외치자'(make a joyful noise, KJV, NRSV), '크게 외치자'(shout aloud, NIV), '기쁘게 크게 외치자'(shout joyfully, NASB)로 번역했다.

시편의 이러한 명령에 비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은 얼마나 무표정하고 냉랭한가?
 

감사시

감사시는 단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억울함이 해소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찬양이다(예, 92:1). 감사시는 주로 이제는 응답 받은 문제나 탄식이 다시 한번 언급되므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예, 92:11).

괴로웠던 형편이 이제는 하나님의 응답에 의해 나아졌으므로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드린다(예, 92:15). 그러므로 감사시에는 감사--또는 탄식--의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루아).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며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2).

사실 히브리어에서는 '찬양하다'라는 말과 '감사하다'라는 말의 의미에 별차이가 없다. 둘 다 어떤 행위에 대해 감사하고 칭송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다만 시편의 구분의 편의상 찬송시와 감사시를 구분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찬양하고, 찬양은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한다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인위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탄식시 

감정의 치유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편의 장르는 탄식시(The Lament)를 들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탄식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 괴로움, 슬픔, 분노, 수치, 불만 등의 감정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괴로움을 당하거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감정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신앙생활에서 뒷걸음질치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을 속이거나 제대로 풀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가? 탄식시는 이에 대한 훌륭한 해답을 제공한다.

탄식시는 개인이나 단체가 겪는 고통을 심도 있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두려움, 부끄러움, 까닭 없는 주위의 거센 핍박, 자신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때의 괴로움 등등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자신의 심정과 생각을 어떻게 토로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러한 시편에서 벗어나는가를 보여준다.

시편 150편 중 탄식시가 약 62편에 속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만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는가? 이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사는 오늘날의 성도들도 이스라엘 백성 못 지 않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탄식시는 시간과 공간과 문화를 초월하여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위로와 평강을 제공한다. 필자도 괴롭고 슬플 때는 탄식시에서 시인이 괴로움을 토로한 것처럼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심령에 놀라운 평강을 얻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회개시

탄식시 중의 회개시는 시인이 자기의 죄된 생각이나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뼈아픈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시다. 시편 6, 32, 38, 51, 102, 130, 143이 대표적인 회개시이다.

시인은 6편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몸에 병을 얻었을 때의 괴로움을 아래와 같이 하나님께 호소하며 선처를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훌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시 6:1-2).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험한 전투에 보내어 죽인 후 선지자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후 자신의 죄를 통회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시편 51편은 회개시의 정수로 꼽힌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자비를 쫓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히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할 때에 순전하다 하시리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4, 17).

시인은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의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과 죄사함 받았을 때의 자유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죄를 고백)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나를 주야로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미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편 32:1-6).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죄를 저질렀더라도 회개만 하며 언제나 징계를 돌이키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회개시'의 본을 따라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우리의 심령이 치료 받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온다.
 

원수 갚기를 구하는 시

탄식시에는 또한 시인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주위에서 대적들이 핍박하여 괴롭힐 때에도 '하나님께 그 원수를 갚아 달라'고 간절히 구한다. 여기에서 죄가 없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기를 대적하는 자의 핍박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완전히 무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롬 3:23).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니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9-11).

시인은 때때로 곤경에 처해 있는 자신을 얼른 구해주지 않는 하나님께 대해 원망어린 호소를 한다.이러한 시는 주로 "언제까지. . . ", "어느 때 까지. . ." 또는 "어찌하여. . . "란 말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돌아가실 때 괴로워하시면서 크게 소리 지르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를 인용한 시편 22절이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시편 22:1-2).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사람의 발길은 뜸해지고 하나님의 응답은 요원해지고 괴로움에 쌓여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몸부릴 칠 때 어느 정도 원망하는 것도 용납하신다.

이럴 때에는 예수님께 탄식시를 노래할지어다. 예수님도 당신과 같은 외로움과 고통을 이미 2천년 전에 당하셨기에 당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지어다 (히 4:15-16)
 

저주시(Imprecatory Psalms)

"그 연수를 단축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하고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 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소서"(시 109:9-11).

“아니, 하나님의 백성이 남에게 이러한 저주의 기도를 퍼붓다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구약 시대에는 원수를 이렇게 취급했는가?

'저주시'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해를 받아왔고 심지어는 뛰어난 성경학자들조차 저주시를 열외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교회에서나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등한시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저주시를 잘 이해하여 제대로 활용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풍성해지고 감정이 살찌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분은 James E. Adams, War Psalms of the Prince of Peace--Lessons from the Imprecatory Psalms, P & RP, 1991을 참조하기 바란다).

저주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의 배경이 되어 있는 언약의 축복과 언약의 저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인은 자기 개인의 원수에 대해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공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대로 시행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무한한 축복을 내리시지만 그를 대적하는 무리들에게는 끔찍한 형벌을 내리신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 ."(신 31:19).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공의 심판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탄식시의 구성

이와 같이 개인이나 단체가 괴로움이나 고난에 처해 있을 때 탄식시는 훌륭한 기도요 찬양이다. 탄식시는 대체로 8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시편 3편을 예로 들어보자.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편 3편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기원 또는 청원(1상)

시인(詩人-시편 저자)은 먼저 호소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을 부른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부를 때 '은혜로시고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등의 장황한 수식어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여호와여!"라고 진실하고 간절하게 부른 것도 긴 것 못 지 않게 효과적이다.

(2)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

기원은 보통 '하나님께 대한 호소'와 같이 나타난다. 시인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호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사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시 28:1).

시련과 고통이 닥쳐오는데 곧 응답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원망이 어린 목소리로 어서 행동하시라고 간절히 울부짖기도 한다.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시 83:1).
 


(3) 불평 (1절하-2)

불평은 탄식시의 핵심이다. 불평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왜 호소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불평을 솔직하고 힘있게 털어 놓아 문제가 무엇이며 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가를 알린다. 다윗의 '대적'은 우리가 당하는 문제나 고통을 의인화 한 것이므로 어떠한 구체적인 문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한편 '대적'은 또한 인격체인 사단의 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꼭 고난이나 핍박의 상징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성도들의 싸움은 구약과 같이 형과 육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내주하는 죄 (롬 7:17-18)와 악의 영들에 대한 싸움 (엡 6:12) 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나 고민을 다윗의 불평과 같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아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고백하라는 것이다. 탄식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 우리의 속 마음을 완전히 풀어 놓을 사람이 없을 때가 있다. 아무리 믿을 만한 친구나 심지어는 목사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다. 잘못 털어 놓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께 상담자에게 고백하듯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 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솔직히 고백하기를 원하신다. 내가 김 집사를 미워하는데 미워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니까 사랑은 해야 되겠는데 마음이 우러나오니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의 이러한 심정을 솔직히 하나님께 고백한다.

"하나님, 김 집사를 사랑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김 집사가 저를 이렇게 괴롭혔고 저렇게 괴롭혔습니다. 저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김 집사를 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 "

상담할 때 내담자가 자기의 고민을 동정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에게 고민을 얘기하는 중에 스스로 문제의 해결을 보듯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 넣지 못하는 심령 깊숙이 쌓인 고민을 하나님께 진솔하게 털어놓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불평에 곡을 붙여 노래를 하면 상승 작용을 하여 더욱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4) 신뢰(3-6)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 놓은 시인은 곧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시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불평을 털어 놓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또한 문제를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처리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적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해결책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5) 죄의 고백 또는 무죄의 확언(시편 3에는 없음)

시인이 고난이나 핍박을 받는 이유가 자기의 죄 때문이면 시인은 자기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회개시'가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이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니이다"(시 38:3-6).

마음 속에 숨긴 죄로 인하여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는' 사람이 있는가? 시편 38편 또는 회개시를 읽고 그대로 죄를 고백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얻어 평안함을 누릴지어다.

시인은 또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죄가 없는 데도 문제나 핍박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 하나님께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며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시 7:1-5).

회개하지 않은 큰 죄가 없고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겼는데도 까닭 모르고 영문모르게 '사자같이 찢고 뜯는'문제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마저 의심할 때가 있는가?  탄식시를 부르며 하나님께 그 괴로움과 억울함을 호소할지어다.

(6) 구원 또는 건져냄(7상)

시인은 하나님께 문제로부터 자신을 건져내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7) 찬양(8절)

시인은 문제를 해결해 주신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의 찬송을 드린다. 구약에서는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감사제와 함께 찬송을 드렸다. 시편 3편에서 시인은 문제에서 건져내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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