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유•영성 > 성령과은사
[성령의은사②] 3. 기적행하는 은사의 종류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6.21  17:15: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성령의은사③]

 

기적행하는 은사의 종류

- 기적중지론을 몰아내야 교회가 산다. 오늘날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고 폄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하고 교회성장을 가로막는 주범들이다. - 

   
 

무기가 좋아야 전쟁에서 승리한다.
생활의 은사가 소총이라면 ‘기적행하는 은사(들)(Miraculous gifts)는 고성능 레이더나 미사일과 같다. 미국과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아무리 이라크 군인들이 종교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출중한 미국의 무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졌다.

기적행하는 은사는 죄와 마귀의 세력들을 쳐부수는 강력한 무기다.
생활의 은사는 주로 섬기는 은사이기 때문에 죄와 마귀의 정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데 기적행하는 은사는 초고성능 정찰 무기이자 강력한 공방(攻防) 무기다.

예를 들어,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영 분별의 은사는 죄와 마귀의 정체를 드러내는 초고성능 레이더이고, 방언과 능력 행함과 신유는 죄와 마귀의 진을 쳐부수는 강력한 공격 무기이고, 예언의 은사나 방언 통역의 은사는 고성능 레이더이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직통 전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기적행하는 은사를 수시로 행하는 기독교 교회나 단체들은 성장하는 반면 이를 부인하는 기독교 교회나 단체들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기적행하는 은사를 부인하고 폄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할 뿐만 아니라 교회성장을 가로막는 주범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적행하는 은사 체험이나 도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영적 실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사람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신앙 생활 하기 쉽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기만과 은폐의 명수인 죄와 마귀의 정체나 계략에 대해 무지하다. 그러나 기적행하는 은사와 같은 영적 레이더와 강력한 무기를 통해 죄와 마귀의 실상을 늘 접하는 사람들은 신앙 태도나 자세가 다르다.

생활의 은사는 일반적으로 존재 유무의 논란도 없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러나 기적행하는 은사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종류 별로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8절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절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절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8-10)

 

지혜의 말씀의 은사(Gift of Word of Wisdom)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따라 지혜의 말씀(로고스 소피아스)을”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지혜의 말씀’은, 사람들이 자랑하는 세상 지혜와는 달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고전 2:1-2)이 하나님의 가장 뛰어나신 지혜이므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자나 교회로 하여금 곤경이나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하거나 반대자의 주장을 침묵시킬 수 있는 초자연적인 지혜라는 주장이 보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왜냐하면 설교나 가르침은 사전 계획에 의해 준비하여 전하는 것이지만 ‘성령의 은사’는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성령님이 그때그때 넣어주시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필요하면 그때그때 할 말과 지혜를 넣어주겠다고 하셨다(눅 21:15 참조).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언변이나 능력을 말한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그의 남편 우리아에게 저지른 불륜과 불법을 알게 된 선지나 나단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다윗의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만일 직언을 했다면 다윗이 홧김에 중형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삼상 12:1-7).

솔로몬은 살아 남은 아이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의 분쟁을 초자연적인 지혜로 잘 해결했다(왕상 3;16-28).

예수께서는 자신을 올무에 빠트리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간계를 지혜롭게 대처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권위를 도전했을 때(마 21:23-27), 세금 문제 (마 22:21-22) 등.

신자들은 이리가 들 끊는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모든 은사 중에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가장 선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기적행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구하여서 매사에 지혜롭게 처신하지 않으면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물론 이런 지혜는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지만,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임하면 상황에 맞게 즉흥적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지혜를 넣어주신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Word of Knowledge)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로고스 그노세오스)을”

여기서 말하는 지식의 말씀은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정보적인 지식을 초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지식을 말한다.

선지자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부당하게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초자연적으로 알았다(왕하 5:21-24).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이 짐 보따리 사이에 숨은 사실을 초자연적으로 알았다(삼상 10:22).

엘리사는 아람왕이 침실에서 하는 내용까지 모든 전략을 알아내었다. 그러자 엘리사를 치기 위해 아람왕이 많은 병거와 군사를 보냈으나 엘리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환인 게하시가 두려워하자 엘리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게하시의 영안을 여셔서 게하시는 수많은 불 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를 방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왕하 6:14-17).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남성 편력을 알아 맞추셨다(요 4:18).

베드로는 기도 중에 두 사람의 이방인이 자기를 찾아올 것을 알았다(행 10:17-23).

그러나 때로는 말씀을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괴로움이 어떤 것인가를 엘리사에게 알려주시지 않으셨다(왕하 4:27).

어떤 사람은 이것을 ‘투시의 은사’라고 하는데 성경적으로 말하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이다.
지식의 말씀은 상담 사역이나 중보기도 할 때 많은 유익이 있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스런 문제를 숨기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정말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 답답해할 때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많은 도움을 준다.

언젠가 여고생 한 명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하러 왔다.
여고생을 위해 기도하던 중, 어떤 사람이 거울 앞에 자꾸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거울 앞에 자꾸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혹시 거울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랬더니 여고생과 같이 온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여고생은 대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여드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로 거울을 자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단쳐보았지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여고생은 자신이 거울 보는 것을 하나님도 문제 삼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제하겠다고 했다.

어떤 부부는 둘 사이에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기는 한데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군데 다녔지만 뾰쪽한 해답이 없었다. 어느 날 필자가 아내 집사를 위해 기도했더니 ‘남편을 주로 섬기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랬더니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 좋겠소’라고 말했고 남편은 바로 이것이 자기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대학생일 때 아내는 아르바이트 공부 지도를 받은 여고생이었다. 여고생일 때 선생님은 하늘과 같았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에 대한 아내의 환상은 깨어졌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기대 이하의 못난 남자임을 알고 난 후부터 20여 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내는 남편이 하는 말에는 사사건건 반박하면서 남편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회개하면서 둘의 사이가 점점 좋아졌고 남편에게는 원하던 여러 가지 초자연적 은사도 열렸다.

 

믿음의 은사(Gift of Faith)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피스티스)을”

신자는 믿음 생활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자라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지식적인 동의로서의 믿음
귀신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약 2:19). 이런 지식적이고 정보적인 믿음이 구원에는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원 얻는 믿음(롬 1:17; 히 10:39 등).
당사자가 하나님 앞의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가장 중요한 믿음이다.

일반적인 믿음
신자들이 통상적으로 예배 참석하고 말씀 보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등의 신앙 생활 전반에 필요한 믿음을 말한다. 물론 이 믿음에도 신앙의 초보자가 가지는 ‘약한 믿음’과 오랜 신앙 생활을 통해 연단된 ‘강한 믿음’이 있다(롬 14장 참조).

열매로서의 믿음
신앙 생활을 통해 끝까지 충성스럽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이다(갈 5:22). 개역성경에는 ‘충성’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원어는 피스티스이며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번역된다.

은사로서의 믿음(고전 12:9)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이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노아, 25년 동안 기다려서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이 좋은 예이다.

또한, 초자연적인 보호에 대한 믿음이다.
사자굴 속에서 살아남은 다니엘(단 6:16-17, 19-23), 풀무불 속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단 3:8-30)의 믿음이다.

핍박과 고통을 이겨내는 믿음이다(히 11:36-40).

빗나간 교인들을 담대하게 꾸짖는 믿음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무절제와 부도덕을 담대하게 꾸짖었다(고전 4:4, 5).

병 낫고 귀신을 쫓아내는 믿음이다.
병이 나은 중풍환자(마 9:2), 혈루병이 나은 여인(마 9:20-22),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고친 여인(마 15:22-28), 하인의 중풍병을 낫게 한 백부장(마 8:5-10)의 믿음이다.

로마 천주교의 무능과 부패에 대항하여 과감하게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 기도로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린 조지 뮐러, 믿음으로 불치의 병을 낫게 한 수로보니게 여인 등이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의 은사는 내부에서 어떤 강한 믿음이 솟아나서 그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믿음의 은사가 작동하면 환경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온다(마 17:20). 믿음의 은사가 작동할 때에 그 믿음을 행하는 자의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넘친다.

믿음의 은사를 개발하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의 은사를 가지면, 아직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하기 때문이다(히 11:1).

필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모저모로 믿음 훈련을 많이 받았다.
때로는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훈련도 받았다. 이런 때 하나님의 음성 듣는 은사가 없었더라면 아마 질식했을 것이다. 직접 듣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경 말씀은 믿음을 불러일으킨다(롬 10:17; 엡 6:17). 어려운 환경에서 음성을 통해 계속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주셨기에 때로는 힘들지만 소망을 갖고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었다.
 

병 고치는 은사(Gifts of Healings)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각종 병들 고치는 은사들(카리스마타 이아마톤)을”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자연적인 재능과는 상관이 없이 특별한 방법으로 그 사람을 들어 쓰신다. 병 고치는 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신속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병을 고친다.

많은 경우, 병 고치는 은사는 안수를 통하여 시행된다.
필자의 경우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마음에 뜨거움이 임하거나 전기 같은 따뜻한 전류가 방전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면 신유의 은사가 작동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혈루증 앓던 여자가 예수의 몸에 손을 댈 때 예수께서 치유의 ‘능력’(헬라어 뒤나미스)이 나간 것을 아셨다(막 5:30). 때로는 특정한 병에 대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권위 있게 명령을 하거나, 기도자도 모르게 상처 부위에 손이 가거나, 환자의 아픔이 기도자에게 전이되는 ‘부위’를 통해 병을 진단하여 낫게 하기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안수 기도 없이도, ‘누구의 어떤 병이 나았습니다’는 식으로 하나님이 치유하신 사실을 선포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이 미리 치유하신 후 은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내적 치유를 제대로 하면 병이 낫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질병의 70~80 퍼센트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심인성 질병이므로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면 몸의 병이 낫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산후 조리를 잘못하여 이후 20 여 년 동안 날씨가 좋지 않으면 어깨가 저리고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러던 중 필자가 하는 새마음 회개기도-치유와 회개기도-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나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새마음 회개기도를 지속하다 보니 고질적인 심장병도 나았다고 한다.

유의점 :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성경 어디에 상처 부위에 손이 가서 치유했다는 기록이 있고, 환자의 아픔이 전이되는 곳을 통해 병을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에 관한 모든 기록이 성경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조차 전화나 컴퓨터나 인터넷의 사용을 허용한 기록이 성경에 있는지의 여부는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또한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주신 일반 은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성령이 주신 은사가 작동하는 방법도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모든 사례를 기록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도 요한도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며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는 유쾌한 과장법을 사용한다(요 21:25). 그만큼 말씀이나 은사의 구체적인 적용은 천차만별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은사 사역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경우가 많다(고전 12:6). 그러므로 은사 사역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한다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역의 모습은 사람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성경의 예시는 ‘예증적이지 철저한 것이 아니다’(illustrative, not exhaustive)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필자는 사회 생활을 한참 한 후에 신학을 공부했다.
신학 공부를 하는 동안 깨달은 사실은, 일부 신학자들이 삶의 다양성이나 영적 체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때로는 성경을 지나치게 편협하고 편파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또한, A=B, B=C이면 당연히 A=C인 것처럼, 비록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더라도 성경의 다른 기록을 바탕으로 ‘당연하고 필연적인 추론’(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by deduction)을 통해 성경적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가 임하고 작동하는 방법이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비성경적이다, 잘못된 것이다’라는 비약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유의 은사는 원어 대로 번역하면 ‘병들 고치는 은사들’(gifts of healings)(9절)이다. 복수형을 이중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사람에 따라 병을 고치는 은사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의사 중에서도 안과 전문의가 있고 내과 전문의가 있고 일반 의사가 있듯이, 신유 은사자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주로 암을 고치고 어떤 사람은 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또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을 고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병은 의사를 통해 고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의술을 초월하여 은사를 가진 사람을 통하여 병을 낫게 하심으로써 그 사람을 구원하거나 믿음을 더하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신다.

또한 의술의 도움으로 치료 받는 환자일지라도 그를 위해 기도할 때 회복 속도가 빠르거나 고통이 경감되며 또한 성도간에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 은혜적인 신유의 은사와 일반 은혜적인 의술을 병행하여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한 후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에 부담이 되어 병자를 위한 기도를 주저한다. 그러나 병자를 긍휼히, 불쌍히 여겨서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관심을 그 사람에게 전하고 병자 또한 그런 것들을 느끼므로 병자를 위해 기도하기를 주저할 필요는 없다. 이럴 경우 치유 여부는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능력 행하는 은사(Gift of Workings of Powers)

“어떤 이에게는 능력들을 행함(에네르게마타 뒤나메온)을”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성경에서 능력은 종종 기적이나 표적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도를 통해 능력을 전이하는 은사라고도 한다.

신유, 귀신 쫓기를 제외한 기적적인 능력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miracles), 표적(signs), 능력(power) 및 기사(wonders)의 예는 너무나 많다. 여기서는 몇 가지만 간단하게 제시해 본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한 엘리야(왕상 17: 8-16).
-이스라엘에 삼년 반 동안 비가 멈추게 했다가 오게 한 엘리야(왕상 17:11; 18:41).
-엘리야의 간구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젖은 제물을 다 태우고 주변의 도랑물을 다 마르게 한 일(왕상 18:37-38).
-뛰어서 아합왕의 마차를 앞지른 엘리야(왕상 18:46).
-겉옷으로 쳐서 물을 가른 엘리사(왕하 2:14).
-선지자 에스겔이 성령의 인도로 다른 장소로 옮겨짐(겔 37:1).
-성령이 빌립을 홀연히 다른 장소로 인도하심(행 8:39)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쓰러짐(삼상 19:24; 대하 5:14; 단 10:9; 행 9:34; 계 1:17).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마 14:25).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요 2:7-10).
-오병이어로 남자 오천 명을 먹이시고(마 14:14-21),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마 15:32-38).
-풍랑을 꾸짖어서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마 8:16).
-안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은사를 받는 일(행 8:17; 19:6) 등.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 행함은 마술쟁이와 같이 센세이셔널한 묘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은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다는 표적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은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자 자비심의 발로이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능력을 베푸셔서 고통 당하는 그의 백성을 건져내신다. 그러므로 능력 행하는 은사는 지금도 계속 된다.

한편, 능력을 행하는 은사를 가진 자들은 주님처럼 고통을 당하는 주의 백성을 불쌍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자들은 당연히 주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요 4:19; 9:36-37), 기적을 행하신 예수를 전파한다(막 5:19; 요 4:29). 그러므로 능력을 행하는 은사는 구원과 전도의 좋은 수단이 된다.

한편 기적은 능력 행함을 믿지 않는 자들을 더욱 강퍅하게 만들기도 한다(마 13:57-58; 막 3:1-6; 요 9:34, 40).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다(마 13:14-15; 요 9:41).

 

예언의 은사(Gift of Prophecy)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프로페테이아)을"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대언(forth-telling. 마 7:22; 26:68; 고전 14:1, 3-5, 24, 31, 39; 계 11:3)과 예언(fore-telling. 마 15:7; 요 11:51; 벧전 1:10; 유 1:14)으로 구분된다. 대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이고 예언은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대언의 말 속에 미래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이다.

흔히 예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점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여, 어떤 어려운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해법을 기대한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과 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점은 사람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어떤 사실이 운명적으로 일어남을 말해주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사람과 환경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제1 세대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불순종으로 인해 못 들어갔듯이, 당사자의 순종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무효화되기도 한다.

한편, 아직도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를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기적행하는 은사는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기적 중지론의 입장과 ‘다른 책들-복음서나 사도행전-에 비해 서선서들이 교리적으로 우선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신서인 고린도전서에 “예언하려고 하라”(고전 14:1)는 구절이 있으니까 예언에 대해 부인할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그것을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설교나 가르침은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언의 은사는 다른 기적 행하는 은사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다. 누가 계획을 세워서 이렇게 저렇게 예언하겠다면서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예언의 4가지 기능

일반적으로 예언의 기능은 다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언은 위로하고, 권면하고, 안위한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 14:3).

필자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너는 내 것이라’는 음성을 듣고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되는 일도 없고 자화상이 낮아져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고 보배로운 자녀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예언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 주신다.

-예언은 우리를 책망하고 훈계한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하나님의 자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 있을 때 하나님은 책망과 훈계의 채찍질을 하신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로 이런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환경을 통해, 사람을 통해, 지나가는 말을 통해, 예언의 말씀을 통해, 또는 기도 중 마음에 오는 책망을 통해 인도하신다.

예언 사역 하다 보면 이 부분부터가 힘들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지적 받으면 고마워하는 경우는 드물고 반발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서로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전달할 때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한 후에, 확신이 오거나 신뢰 관계가 형성된 후에 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전하지 말고 본인이 잘못을 직접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예언은 중요한 결정을 돕는다

예언은 하나님의 지혜와 뜻이 담긴 말씀이다. 사업 상의 중요 결정, 자녀의 취학이나 입학, 결혼 문제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면 대개의 경우 인간적인 생각과 경험으로 결정하여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뜻이 처음에는 좀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순종하면 결국 좋은 열매를 거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예언을 듣기보다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기도하여 결정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준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다리 환상을 보여주셨고, 요셉에게 형들이 절하는 꿈을 보여주신 후 이후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러나 예언은 점치는 것과 다르다. 사람은 예언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에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약속이 이루어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신다. 이 때문에 큰 약속을 받은 사람은 크게 연단 받고 훈련 받는다.

예언의 분별

구약에서는 예언이 틀린 경우에는 예언한 사람이 돌 맞아 죽는다. 그러나 모든 육체-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예언의 영이 임하는 신약에서는 예언을 분별하여 사용하라고 기록한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0-22).

어떻게 분별하는가?

-예언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요 16;13-14).

-내용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성경 말씀은 100% 성령의 감동을 받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개인 예언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성령의 조명 수준이다(딤후 3:16; 고전 2:14).

-예언의 말씀은 이루어져야 한다(신 18:20-22).

또한 유의해야 할 일은 어떤 경우에는 예언이 비록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예언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신 13:3). 또한 비록 예언은 맞지만,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불순종으로 인해 예언의 약속이 무효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하나님이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시는 비전이나 축복의 예언은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적인 예언’이 대부분이다. 큰 비전이나 약속을 받았다면 그 예언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지기 위해 연단과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예언이나 사적인 계시는 분명한 성경 구절의 지지가 없는 한 교리화되어서는 안 된다(딤전 6:3).
어떤 한 예언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때 그때 필요한 예언을 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어떤 한 예언에 지나치게 매이는 것은 좋지 않다.

-꿈이나 환상의 경우 해석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림의 해석은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영적·성경적·신학적 훈련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자기 지식이나 경험의 수준에서 즉흥적으로 잘못 해석하여 문제를 야기시키는 경우가 많다.

-중대 결심이나 미래의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예언의 말씀과 함께 여러 가지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한다.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들은 음성이나 한두 가지 예언의 말씀을 과신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중대 사항을 결정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두르시지 않는다. 충분히 기도하고 생각할 여유를 주신다.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탐욕으로 밀어붙이면 대부분의 경우 일을 그르친다.

사용상의 문제점

예언의 은사도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한 가지 은사이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해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정당한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예언의 은사는 있지만 성경적, 신학적, 인격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서 단독으로 사역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담임 목회자나 당회와 같은 권위의 감시 아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글로리아타임스』 기사 참조 바람 :

신사도운동 대해부③] 예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54

[신사도운동 대해부④]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본 사람들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53

[신사도운동대해부⑤]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존재하는가?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52

 

영 분별의 은사(Discerning of spirits)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디아크리세이스 프뉴마톤)을”

‘영들을 분별한다’는 말은 그것의 원천이 하나님, 마귀 및 사람이냐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의 몇 가지 예를 먼저 살펴보자.

-거짓 선지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거짓 영의 정체를 알아맞힌 선지자 미가야(대하 18:18-23).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예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요청한 베드로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정체를 아신 예수(마 21-23).

-사람의 마음의 상태와 생각을 알아맞힌 예수(마 9:4, 13; 15:8; 요 1:47; 2:25).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3-4).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 2:25).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탄의 책동으로 헌금을 속인 사실을 안 베드로(행 5:1-11).

-비록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말했지만 점치는 여종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귀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바울(행 16:16-18).
 

이런 것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거나 깨닫게 해주신다.
언젠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마음에 자꾸만 의심이 임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분이 저의 어떤 면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전이된 것이었다.

필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막 듣기 시작했을 때, 어떤 사역자를 위해 기도하는데, 의심과 시샘의 기운이 필자의 마음에 느껴졌다. 또한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그 사람이 ‘과장되고 지나친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바로 그때 ‘저 사람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또한 내용이 성경적이거나 중립적이라도 여운이 좋아야 한다.
바울은 처음에는 빌립보의 점 치는 여종이 하는 말을 분별하지 못했다. 내용이 너무나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

그러나 바울이 심히 괴로워지자 그것이 귀신의 장난인 줄 알고 예서 이름으로 쫓아내었다(행 16:18).

이처럼 때로는 내가 들은 음성의 여운, 즉 뒷 맛, 뒷 기운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음성은 힘든 소명의 경우, 마음의 부담은 주지만 기쁨, 평안, 소망 확신이 온다(약 3:17-18; 갈 5:22). 그러나 마귀의 음성은 여운이 괴롭거나 짜증스럽거나 불안하거나 심통이 나거나 시기가 치밀기도 한다(약 3:14; 딤전 1:7).

장소를 위한 영적 청소

특히 장소를 위해 기도할 경우, 성령은 그 장소에서 어떤 죄가 저질러졌고 어떤 영이 역사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시는 경우도 있다(레 18:24-29; 기타 레 20:22; 민 35:33-34; 사 34:11-15; 계 18:2 참조).

다른 장소를 이전하는 경우-주거지 이사, 사업장이나 교회당 이전 등-필자는 반드시 영적 청소(spiritual housecleaning)를 할 것을 권한다. 영적 청소란 특정 장소에서 저질러진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발판으로 삼아 역사하는 영들을 쫓아내는 일을 말한다.

먼저 그곳에서 저질러진 죄에 대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어떤 죄목-예를 들어, 탐욕, 미움, 원망 등-을 알려주시고 또 그 죄를 타고 역사하는 영의 실체를 보여주시기도 한다.

영적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정에서는 짜증, 불화, 반목이 심화되거나 기도가 잘 되지 않고 가족에게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사업장에서는 사업이 잘 되지 않고 각종 문제가 터지기도 한다. 교회당에서는 말씀, 찬양, 기도가 잘 되지 않고, 성도 간에 불화와 반목이 증가되기도 하고, 양적 질적 부흥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이전에 어떤 죄가 저질러졌는지를  잘 모르면 포괄적으로 회개하고 이를 타고 역사하는 영을 쫓아도 그 장소의 영적 분위기가 달라진다.

 

방언·방언 통역의 은사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게네 글로손)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헤르메네이아 글로손)을."

이에 대해서는『글로리아타임스』 기사 참조 바람 :

[방언특집①]방언이란 무엇인가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07

[방언특집②] 방언받기 훈련을 하면 왜 안 되는가?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08

[방언특집③] 방언 통역의 은사
http://www.thegloriatimes.org/news/articleView.html?idxno=109
 

일반적으로 방언은 다른 8가지 은사에 비해 처음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난 후 방언기도를 많이 하고 나면 영의 세계에 민감해져서 다른 은사를 받는 것이 쉬워진다.

20세기 초, 방언으로 시작된 오순절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독교 집단이 되었고 한국도 1960년대에 순복음교회를 통해 방언이 소개된 이래로 이제는 교단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방언 은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방언을 집요하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무리들이 있고, 이러한 영향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성령운동을 앞장 서서 하던 대표적인 몇몇 대형교회에서 방언을 ‘절제’(?)시킨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방언은 기도의 은사이므로 다른 은사의 통로 역할을 하는 은사인데 방언을 절제(?)시키면 다른 은사가 열리는 통로가 봉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 결과 성령이 소멸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곳에 임했던 기름부음은 더 사모하는 곳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구원 받은 신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임하는 것 보다 더 귀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신자가 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곧 성령이 아닌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신자는 성령을 소멸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불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 5:19).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 1:6). *

   
 

 

[관련기사]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실시간인기기사
회사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후원안내회원자유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5610>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39길 21-19, 201호  |  대표전화 : 0707-554-0585  |  팩스 : 0504-037-0050  |  Mail to : gloriatimes@naver.com
발행인·편집인 : 구요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요한 발행인  |  후원계좌 : 국민은행 529401-01-218720 예금주 임마누엘선교회  |  사업자등록번호 : 123-89-06414
Copyright © 2017 글로리아타임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