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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특집⑦] 관상기도를 즐긴 청교도 신비주의자들청교도도 관상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황홀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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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2  22: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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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특집 ⑦]
 

관상기도를 즐긴 청교도 신비주의자들

 
탐 쉬안다의 『영혼의 재창조: 청교도주의의 관상적 신비적 영성』
(Soul Recreation: The Contemplative-Mystical Piety of Puritanism, 2012.4.11)

소개

 

   

탐 쉬안다 박사.영혼의 재창조: 청교도주의의 관상적 신비적 경건』(번역 안됨)
(Soul Recreation: The Contemplative-Mystical Piety of Puritanism, 2012.4.11)

관상기도를 비판하던 자들이 코가 납작해질 일이 생겼다.
관상기도 비판자들은 주로 개혁주의 보수 장로교인들인데 이들이 신앙 전통의 뿌리로 여기면서 자랑하는 청교도들이 전반적으로 관상기도를 즐겼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장로교는 칼뱅주의 신학과 청교도 신앙을 유산으로 이어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신비주의’를 배격하는 것을 최고의 사명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관상기도(Contemplation. Contemplative Prayer)를 ‘중세 신비주의’나 ‘뉴에이지식 영성’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 장로교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청교도인들 대부분이 관상기도를 즐겼다고 한다.

청교도(Puritans. 淸敎徒)는 어떤 사람들인가?
『다음 국어사전』은 청교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16세기 후반에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聖公會)의 종교 개혁을 더욱 철저하게 실천하려고 한 성공회 안의 일파 및 그 흐름에 동조한 프로테스탄트 각 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쾌락을 죄악시하고 사치와 성직자의 권위를 배격하였으며 철저한 금욕주의를 주장하였다.”


전통적인 청교도

전(前) 합동신학대학원(합신총회 신학교) 총장인 오덕교 교수는 “청교도는 성경 대로 믿고 성경 대로 예배하며, 성경 대로 교회를 운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자 하였다”는 말을 서두로 청교도 영성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오덕교. “현대 영성신학과 청교도.” 기독교학술원 편.『개혁주의 영성의 기초』. 267-87).


다음은 오덕교 교수가 말하는 ‘청교도 영성’에 대한 요약이다.

‘청교도 영성’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편협하게 성경만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청교도 운동은 미국의 독립 전쟁 이후 팽배하기 시작한 이성주의에 의해 과격한 종교사상으로 간주되어 배척되어 왔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청교도는 위선적 종교이자 현세의 행복을 거부하는 금욕주의자로 폄하되고 나다나엘 호손의『큰 바위 얼굴』과『주홍 글씨』를 통해 마녀 사낭꾼으로 간주되는 직격탄을 맞아 청교도 배척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1930년에 들어서자 우연히 무신론자인 하버드대학 영문학 교수인 페리 밀러(Perry Miller)가 미국 초기의 영문학을 연구하던 중 청교도 사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평생 청교도를 연구했으며 이를 기화로 1965년부터 본격적으로 청교도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 작업이 활발해졌다.

초기에는 청교도의 정치사상이나 경제관, 교리나 교회 정치 분야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는 청교도의 가정생활과 경건생활, 1950년대 이후에는 청교도의 경건생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 이르면서 청교도 영성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청교도 신학에서 경건 즉 영성에 대한 연구가 늦어진 것은 일반적으로 청교도 연구가들이 개혁파 신학자들인데 이들은 ‘영성’이란 단어에 부정적이고 영성운동은 로마 천주교나 오순절성령운동 및 현대 세속주의 심리학에서나 다루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영성 개발에 대한 관심은 종교개혁 이후, 종교개혁을 저지 하기 위해 로마 천주교의 이그나시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 1495-1556)가 반동 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일환으로 예수회(Jesuits)를 창시하고 천주교의 결속을 위해 영성훈련을 강화했다. 그는 자아성찰과 묵상, 철저한 참회를 통해 일종의 황홀경과 종교적 환상을 체험한 후, 1541년『영적 훈련』(Spiritual Exercise)을 출간하여 영성운동을 통한 천주교의 갱신을 주도했다.

로욜라의 영성신학은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1515~1582)에 의해 계승되었다. 테레사는 인간의 죄가 욕심에서 온다고 주장하면서 무념무상의 상태를 유지하며 명상의 삶을 살 것을 제안했다. 하나님의 사랑 또는 내적 계시의 황홀경 속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이 믿어질 때까지 하나님을 묵상할 것을 역설하였고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 하는 관상기도를 주장하고 실천했다.

로마 천주교에서 시작된 영성운동은 18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예수회 수사인 지오바니 스카라멜리(Giovanni Scaramelli, 1687~1752)에 의해 체계화되었는데, 그는 영성신학을 신비적 신학(mystical theology)과 고행적 신학(ascetical theology)으로 나누었다. 신비적 신학의 방법은 아빌라의 테레사의 방법을 제안했고, 고행적 방법은 죄와 세상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정화하는 방법(Purgative method), 신적인 계시를 받는 조명적 방법(Illuminative method), 신과의 영적 합일을 이루는 통합적 방법(Unitive method)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천주교 영성신학은 ‘극단적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퀘이커 교도 창시자인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의 신령적 신비주의(Spiritual Mysticism), 오순절 운동 등의 개신교에 소개되고 자리잡게 되었다.

영성신학은 또한 현대 심리학을 통해 기독교계에 정착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과정신학자인 조시야 로이스(Josiah Royce, 1855~1916)와 20세기 초반에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와 같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감정과 종교적 충동 관계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하면서  인간의 영성개발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제임스는『종교 체험의 다양성』(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에서 종교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주관적 종교 체험을 종교의 본질로 소개했다.

제임스의 사상은 로마 천주교 신학자·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휘겔(Baron Friedrich von Hugel, 1852~1925)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휘겔은 무미건조한 사변적인 신학을 버리고 종교의 근저에 있는 제도적 지성적 신비적 요소를 지적한 후, 신비적 요소를 통한 영성개발을 주장했다.

휘겔의 영성신학은 영국의 성공회 신자이자 영적 실천가인 에벌린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의『신비주의』(Mysticism)을 통해 영국에 소개되었다. 언더힐은 종교 체험을 심리학과 철학에 접목시켜, 아빌라의 테레사부터 뵈뫼에 이르는 신비주의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분석하였고, 그녀의 사상이 윌리암 제임스를 통해 미국에 소개되었다.

종교 체험이 심리학과 철학,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영성신학은 20세기 중반에 전 개신교계로 확산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확산으로 종교에서 신비성이 약화되자 많은 이들이 신비와 종교적 체험을 높였고 그와 함께 영성은 기독교의 중심 신학이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현대의 많은 신학교들이 영성신학을 도입하여 실천신학 분야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영성운동은 하나의 보편적 신학운동이 되었다.

그러면서 오덕교는, “청교도의 영성 사상은 신비주의자나 로마천주교회, 또는 현대 오순절주의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청교도)은 신령적인 신비주의와는 달리 성경 교훈의 실천을 통한 경건을 강조하였다. 신비주의자들이 신적인 존재와 만나 교류하는 것을 신학의 본질로 두었지만 청교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가운데 실천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경건을 실천하고자 했다”(같은 책. 274)고 말하면서 신비주의와 신비적 체험을 배격한다.

오덕교는 또한 “로마천주교도들이 성화나 성상을 바라보거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고자 한 것과는 달리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만을 묵상하고 하였다. 오순절주의자들이 은사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고 하였지만 청교도는 풍성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였다”(같은 책, 275)고 말한다.

오덕교는 더 나아가서 “성화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은혜의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고 개인적으로 경건을 실천함으로 이루어진다. 청교도들은 성경 읽기, 설교, 공적인 기도, 시편 찬송, 성례를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간주하였고, 이를 활용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고자 하였다”고 말한다(같은 책, 279).
 

청교도 신비주의(Puritan Mysticism)

그러나 오덕교의 주장과는 달리 청교도들이 전반적으로 로마천주교인들 못지 않게 신비적 체험과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관상기도를 즐겼고, 그 결과로 오는 황홀 체험도 누렸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속속 발표되고 있다.

탐 쉬안다(Tom Schwanda) 교수의 저서도 그중의 하나이다.
휘톤대학(Wheaton College)의 실천신학 교수인 탐 쉬안다 박사는 최근 발간된『영혼의 재창조: 청교도주의의 관상적 신비적 경건』(Soul Recreation: The Contemplative-Mystical Piety of Puritanism, 2012.4.11)에서, 통상적인 견해와는 달리 ‘대부분의 청교도들이 관상기도를 즐겼다’고 말한다.

저자가 목회할 때, 영성의 고갈을 느껴서 천주교의 신부에게 영성에 관한 자문을 구했을 때, 신부는 개신교 전통에서 영성의 뿌리를 찾으라고 권면했다. 이후 교인들이 영성에 대한 자문을 구했을 때 저자는 똑 같은 대답을 해주었지만 교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런 연구를 할 관심이나 실력이 없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주교 계통의 영성 서적을 주로 읽는 것을 보았다. 이에 도전을 받은 저자는 연구를 통해 ‘17세기의 청교도인들이 관상적 신비적 경건(Contemplative-mystical piety)을 추구하고 즐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청교도인이라고 하면 영적으로 냉랭하고, 율법적이고, 삶의 모든 즐거움을 거부하고, 성적(性的)으로 절제하고, 열정이 결핍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16~17세기의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은 가톨릭의 영성, 그중에서도 ‘기독교 역사의 마지막 교부’로 불리는 프랑스 클레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의 영성을 많이 수용하고 인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저자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인인 아이작 앰브로즈(Isaac Ambrose, 1604~1664)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당시 청교도인들이 관상기도를 보편적으로 즐겼다는 사실을 역사적 문헌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저자가 앰브로즈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그에 대한 연구가 희박하고, 그는 지성적이고 감성적인 당시 청교도인의 표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교도 신비주의(Puritan Mysticism)라는 말이 가능한가?
이는 ‘똑똑한 바보’, ‘현명한 등신’과 같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가능하다.

미국 고든-콘월 신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인 리차드 러브레이스(Richard Lovelace)는 “청교도인들은 모든 크리스천이 신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가정했다”고 말한다.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인 J. I 패커(J.I. Packer) 박사는 쉬안다 박사 저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쉬완다 박사는 하나님 안의 즐거움을 강화하는 통로인 관상기도를 갱신하는 (청교도 역사의) 회복이 오늘날 건전한 복음주의 영성에 훌륭한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데 나 또한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작 앰브로즈에 관한 연구서인 이 책을 열정적으로 추천한다.”

풀러신학교 총장인 리차드 마우(Richard Mouw)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훌륭한 책에서 탐 쉬안다는 최근에 우리가 후회할 정도로 비밀로 하고 있었던 사실-청교도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 더 나아가서 심오한 깔뱅주의자가 되는 것 즉 신비주의에 대한 가르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저자는 개신교 신비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에 따른 3 부류의 학파를 소개한다.

첫째, 구(舊)학파들은 신비주의는 퀘이커교 신자나 소요파 신자(Ranters)들과 같은 급진파에 국한되는 것으로 좁게 정의한다.

둘째 학파는 고백주의적 개혁파들로서 이들은 신비주의를 좁게 정의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넓은 의미로 정의하여 청교도 내에도 ‘관상적 신비적 경건’(contemplative-mystical piety)이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가 속한 셋째 학파는 신진 학자 그룹으로서 ‘관상적-신비적 경건’이 주류 청교도들에게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 믿는다. 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3학파들 사이에는 대화가 별로 없다는 점을 저자는 인정한다.  
 

리차드 십스(Richard Sibbs), 프란시스 루스(Francis Rous), 토머스 굳윈(Thomas Goodwin),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존 오웬(John Owen), 카튼 매더(Cotton Mather)같은 대표적인 청교도인들도 ‘관상적 신비적 경건’을 즐겼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청교도 시대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시대’라고 평가하는 김남준은 관상기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는데 그가 전도자로 자처하는 존 오웬이 ‘관상적 신비적 경건’을 즐겼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물론 이런 일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국의 Q 목사가 외국 대학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Martin Lloyd-Jones) 목사의 설교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로이드 존스 목사는 정규 신학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정작 Q 목사는 로이드 존스 목사가 성령의 외적 사역에 열려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성령 사역을 비판하고 있었다.

존 오웬은 영적 결혼에 대해,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 소망, 사랑 및 은혜를 관상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교제의 작은 일부이다”고 말했다(John Owen, Communion with God, 154). 존 오웬은 또한 그리스도와 신자가 교제할 때, “부부의 감성”(conjugal affection)이 주는 상호적 성격을 이해했으며, “주님이 그들 안에서 그들이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고 말했다(같은 책, 132).
 

저자는 특히 영적 결혼(Spiritual marriage)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에 대한 성서신학적 기초를 탐구한다. 영적 결혼은 클레보의 버나드, 장 칼뱅 및 청교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가서(Song of songs)의 영해를 거부한 깔뱅과는 달리 청교도들은 버나드처럼 아가서를 신비적 성서로 이해했다. 청교도들은 영적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영적 결혼이 주는 친밀감과 기쁨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지상적인 부부의 결혼이 주는 친밀감과 기쁨도 강조했다. 물론 그들에게 영적 결혼이 육적 결혼 보다 우선한다.

조나선 원(Jonathan Won)의 연구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깔뱅 보다는 클레보의 버나드를 더 따랐는데, 특히 아가서의 영해가 대표적이다.
 

아이작 앰브로즈는 ‘관상기도는 감사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contemplation as gazing at God in love out of gratitude)이라고 이해했다. 많은 학자들이 청교도들의 ‘관상적 신비적 경건’을 연구했지만 앰브로즈 만큼 아가서의 성애적(性愛的) 표현을 황홀(ravishment)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드물다. ‘황홀’이란 단어는 청교도들이 영적 결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주된 단어였다. 하나님 안의 기쁨과 즐거움은 천국의 것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황홀 체험이 주는 혜택을 저자는, 하나님 경험이 주는 지식에 대한 감각 또는 새로운 깨달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나 축복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 하나님을 더 사모하고 추구하려는 욕망 및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4가지로 분류했다.

청교도들은 비록 로마천주교가 말하는 ‘관상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경험적 합일’과 ‘합일 체험이 주는 황홀경’을 추구했지만 개신교의 신학적 관점에서 관상기도를 이해하고 수정한 노력이 돋보인다. 그들은 경험적 내용은 클레보의 버나드를 따랐지만 버나드가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한 반면 깔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했는데 청교도는 후자를 따랐다.

신자는 중생할 때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이후의 연합 체험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것임을 청교도들은 확인했으며, 황홀 체험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응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이해했다.
 

소개자는, 청교도들이 관상기도를 즐겼다는 그 사실에 놀랐고 또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마음은 성령이 신자 모두에게 주신 마음인데 신학적 편견, 소개의 부족 및 기도의 부족으로 활성화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탐 쉬안다의 것과 같은 저서와 연구가 한국 교계 특히 관상기도와 신비주의를 매도하는 보수 장로교에 많이 알려져서 그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축복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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