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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찬양] CCM과 교회 찬양-CCM의 기원이 사탄적이고 세속적이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면
편집부  |  gloria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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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0  21: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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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찬양] 

CCM과 교회 찬양

 

-CCM의 기원이 사탄적이고 세속적이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면
세상 철학과 사이비 종교를 모방한 성경도 사용되지 말아야 하는가?-

   
▲  집회에서 찬양하는 모습. 사진은 특정 기사와 상관이 없습니다

새로운 것은 늘 생소하고 천박해 보인다.
그러나 새롭고 천박해 보이는 로마가 수준 높고(?) 문약에 빠진 헬라를 정복했고, 새롭고 천박한 미국이 유서 깊고 교양 있는 유럽을 능가했고, 생소하고 수준 낮은(?) 성령운동이 전통 깊고 신학 수준이 높은(?) 전통 교단의 교세를 월등하게 능가하고 있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도 비록 기성 세대들이 보기에는 생소하고 천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교회 찬송의 주류가 되어있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아직도 CCM의 기원이 사탄적이고 세속적이라고 하여 교회에서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CCM이라는 장르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예수 그리스도 운동이 부활하면서 공식적인 이름이 되었으며, 원래는 지저스 뮤직(Jesus music)으로 불렸다. 비록 사탄적, 뉴에이적, 세속적 노래의 형식에서 시작했지만 CCM은 ‘당대 사람들의 정서와 취향과 하나님이 하시는 새로운 일을 반영하는 크리스천 음악이다.
 

어느 명망 있는 미국의 목사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시에 새롭게 유행하는 음악에 대해 비판했다.

1. 너무나 새로워 잘 모르는 언어 같다.
2. 기존의 노래만큼 멜로디가 좋지 않다.
3. 너무 새 노래가 많아 모두 배우기가 불가능하다.
4. 이 새 음악은 혼란을 조성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점잖지 못하고 질서 없이 행동하게 만든다.
5. 경건한 가사보다는 악기에 너무 많이 치중한다.
6. 가사가 너무 세상적이고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7. 이전 세대는 이런 노래들이 없었어도 천국 갔으므로 필요가 없다
8.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들이다.
9. 신자의 시간을 너무 빼앗아 늦게까지 잠도 못자게 한다.
10. 이들 음악가들은 새파란 젊은이들이며 일부는 이상스럽고 불건전한 사람들이다 (Bob Sorge, Exploring the Worship : A Practical Guide to Praise & Worship, Oasis House, 1987, p?, 밥 소르기,『찬양으로 가슴 벅찬 예배』, p?).

놀라지 말라.
이 성명서는 1723년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찬송가-오늘날 우리가 즐겨 애창하는 찬송가에 대한 반박 성명서이다. 이 성명서는 당시 청교도들의 교회 음악관을 잘 보여준다.

당시 청교도들은 칼빈주의의 영향으로 “자기를 부정”하여 예배 시 흥미나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면 “Popery(로마 카톨릭의 제도 관습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 또는 “마귀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그들은 칼빈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여 “음악 악보를 읽고 노래를 제대로 하는 것은 마녀들처럼 악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교회 음악은 시편을 단조롭게 “창하는 것”(chanting)을 지극히 성서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악기가 세상 술집에서 유흥을 위해 사용된다고 하여 교회에서 악기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칼빈도 이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즈윙글리는 ‘마귀 소리가 난다’고 하여 교회에서 오르간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음악에 조예가 깊은 마르틴 루터는 자국어 찬송가 작사와 개신교 찬송의 기초를 세우면서 찬송가의 대중화에 힘썼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애창하는 아이작 와츠나 챨스 웨슬레의 곡들도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취급되어 핍박과 반대를 받았다. 와츠는 당시 사람들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시편만을 그것도 단조로운 음률로 부르는 것에 반기를 들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가사와 곡조로 수천 여곡을 작곡하여 일반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랬더니 당시의 기존 종교지도자들은, ‘구약에 기록된 시편만 있으면 되었지 또 다른 노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한 사람이 수천 곡이나 작곡하여 노래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았느냐?’는 등 희한한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그의 찬송은 “와츠의 변덕”(Watts' Whims)(찬송을 나타내는 Hymn과 whims은 발음이 비슷함)이라고 야유하기도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찰스 웨슬레의 찬송은 술집에서 부르는 대중가요곡에 가사만 바꾸어 붙인 것들이 많다. 그러자 기득권자들은 “교회가 규정한 운문적인 시편을 변경시키고, 관계당국이 허락하지 않은 찬송을 소개했다”고 대배심원들이 그를 고소했다.
 

오늘날에는 이와 유사한 비판이 복음성가나 CCM에 대해 가해진다.

(1) 주관주의적인(subjectivism) CCM은 인생을 객관적 진리 위에 두기 보다 인간 경험 위에 두므로, 지나치게 예배자의 느낌과 체험에 비중을 높이 둔다.
(2) 인본주의적인(humanism) CCM은 하나님을 "사용자 편의적인" 신(user-friendly God)으로 만들어, 인생관과 세계관에서 하나님을 약화시키거나 배제하며, 결국 하나님의 초월성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율법과 인간의 죄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은 외면한다.
(3) 반지성주의적인(anti-intellectualism) CCM은 우리의 지성 보다 감정에 호소한다. CCM은 신앙의 초보자들을 위한 것이며,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심리주의적인(psychologism) CCM은 진정한 은총과 죄사함의 복음보다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사이비 심리치료를 제공한다.
(5)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에 빠진 CCM은 사업적인 경영기법과 광고 기술을 사용하여 기독교조차도 마케팅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6) 소비지상주의적인(consumerism) CCM은 소비자 중심적인 기독교를 만들어 신앙을 상품화하고,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부추긴다.
(7) 실용주의적인(pragmatism) CCM은 결과로서 모든 개념과 행동을 판단하는 세속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8) 현대 우월주의(temporal chauvinism)를 믿는 CCM은 전통을 업신여기며, "현재"가 가장 좋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CCM은 전통적인 예배를 지루하고 케케묵은 것으로 만들고, 현대인들에게 쓸데없는 관심을 끌려고 한다. 이들은 "급진적이며" 또한 "자유주의적"이다 (김정우, “신학적 관점에서 본 CCM” ; Frame, J. M,  Contemporary Worship Music: A Biblical Defense. Phillipsburg. P&R Publishers, p. 46).

거의 300년 전에 당시 새로운 노래에 대해 가해진 비판과 너무나 유사하다. 오늘날의 개신교의 찬송도 즈빙글리나 칼빈의 주장에 비하면 엄청나게 변화된 것이다. 즈윙글리와 칼빈의 편협하고 무지한 영향을 받아 단조롭게 ‘시편을 창하다’가18세기에 미국의 제1차 영적 대부흥 이래로 성가대가 생기고 음악학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개신교의 찬송가나 악기들은 영적 대부흥의 산물이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산물은 아니다. 오늘날 누가 ‘교회에서는 시편만 불러야 하고 피아노나 오르간 등의 악기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 사람을 교리적으로 바른 사람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면서 힐끗 쳐다 볼 것이다.

이런 논리로 한국의 찬송가를 비판한다면 남을 곡이 몇 곡이나 있겠는가?
한국의 찬송가를 20세기 초 미국에서 D. L. 무디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소개한 찬양의 90%가 수록되어 있다고 찬양 전문가는 말한다.

1723년에 당시 새 노래를 비판한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통일 찬송가’는 대부분이 쓰레기 통에 던져져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통일찬송가’에 익숙한 세대들이 이런 잘못된 논리로 오늘날의 CCM이나 복음성가를 비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주제 넘고 시대착오적인 주장인가?
비판자들은 거창한 신학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전통과 취향만이 성경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인들이 좋아하는 찬송가에 대한 젊은이들의 비판도 들어보자.
1984년에 미국 어느 성경대학 재학생들은 당시 어른들이 ‘가장 성경적인 노래’라고 주장하는 ‘찬송가들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 10가지’를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1. 대부분의 찬송가들은 찬양과 경배에 기여할만한 가사라기보다는 오히려 교리적이고 교훈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
2. 음악 자체가 젊고 현대적인 것과는 반대로 형식적이고 체계적이고 또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3. 가사에 사용된 단어들의 대부분이 구식이다.
4.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메마르고 생명력이 없는 [교회] 전통의 배경을 버리는 것의 일환으로 찬송가를 져버렸다.
5. 대부분의 찬송가는 활기가 빠져 있다.
6. 많은 교회들이 찬송가책들을 사들일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7. 찬송가들이 옛날 그 당시의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반영했다면 합창곡(Choruses)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반영한다.
8. 합창곡은 단순하여 집중하기가 쉽다.
9. 찬송가책을 손에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버헤드 프로젝트에 비친 가사를 보고 부르는 것에 비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10. 합창곡들은 성령의 움직임 속으로 사람들을 더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준다
(출처 미상).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기는 항상 새로운 찬송의 전성시대이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의 찬송곡들, 요한 웨슬레의 부흥 시 그의 동생 챨스 웨슬레가 지은 수천에 달하는 찬송 곡들, D.L. 무디의 전도운동 때 일반화 된 가스펠 송들, 하나님과의 친밀감 및 사단과의 영적 전투가 강조되는 20세기의 성령운동에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CCM, 사탄의 세력들을 대적하는 ‘전투찬송가’(Battle Hymn)들이 주류를 이룬다.

성경도 도처에서 새 노래를 부르라고 권면한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시 33;3).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시 98:1)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사 42:10).

새 노래는 기존의 노래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거나, 전혀 새로운 가사와 곡조의 노래를 말한다. 사람은 편하고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 머물거나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신자들이 옛 노래만 부르면 과거와 전통에 매이기 쉽고 새롭고 진취적인 하나님의 일에 둔감하여 무관심하거나 대적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적이고 교리적 찬송가도 필요하고 감성적이고 간증적인 찬송가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이나 속성을 기리는 것이면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고, 곤경에 빠진 인간의 신앙체험이나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사역에 감사하여 찬양하는 것은 인간을 향한 복음성가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분류하면 시편의 찬송시를 제외한 탄식시, 지혜시, 감사시, 회상시, 신뢰시가 모두 복음성가의 범주에 들게 된다. 이스라엘인들은 지혜시, 회상시, 탄식시 등을 구분하지 않고 공중 예배에 골고루 사용했다. 현대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영적으로 깨어 있고, 문제나 고통이 더 적고, 핍박이 더 적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더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찬송시만 부르란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찬양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이때는 인간 전체에 대한 은혜라는 의미가 짙지만--‘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요,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건져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그분의 속성까지도 찬양한다는 것이 무난한 주장이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시편에 있어서의 찬양시와 탄식시』’(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한다는 찬양과, 하나님이 인간에 하신 일을 감사하는 찬양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일 예배나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기리는 찬송가만 부르고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드러내는 복음성가나 CCM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골수 전통주의자들이 아직도 있다.
 

필자가 신학교에 다닐 때 어느 동문이 이상한 교회에서나 복음성가나 CCM 을 공중예배 시에 부르지만 자기 교회는 찬송가(?)만 부른다고 했다.
필자는 질문했다.

     필자 : “당신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은 예배 시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동문 : “글쎄 애들은 그런 노래-CCM과 복음성가-만 부르고 찬송가는 도대체 부르지 않는다.”
     필자 : “내가 듣기에는 우리 학교 전도사들이 봉사하는 모든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다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데?”
     동문:  “그렇기는 하죠”
     필자 : “그렇다면 큰일 났네. 교포 교회 모두가 2세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만드네. . .”
     동문 “………”


CCM은 교리가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으로 CCM에 대해 무차별적 비판의 폭탄을 퍼붓는 비판자들이 아직도 있다.

다음 글을 보자.

“CCM에 대한 더 가혹한 비판은 CCM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음악의 장르와 연관된 것으로서,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즉 CCM은 그 기원에 있어서 리듬 앤 블루스와 록큰롤이라는 두 뿌리를 가지고 있는 데, 전자는 흑인 연주자들이 성적인 문제를 노골적으로 그들의 가사에 반영하며, 후자는 반항과 성적인 방종을 고무하기 때문에, 이런 두 유형의 음악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CCM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이 문제를 달리 말하자면, 소위 "세속적 음악"의 첨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록 음악 속에 어떻게 "경건한 기독교 음악"을 담을 수 있는가?" 즉 "기독교 및 교회 음악"이 "세속 음악의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신앙의 타락과 변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 는 우려를 하게 된다.”(김정우, “신학적 관점에서 본 CCM”)
 

이런 비판은 필자가 도처에서 누누이 말한 ‘논리적 오류’인 ‘일반은혜의 혜택의 오류’, “유추의 오류”에 해당된다.

-A교회는 예배 때 찬송하고, 설교하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예배 후에는 봉사하고, 전도한다.
-모르몬교에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A교회는 모르몬교다?
 

무엇이 기독교적인 것과 세상적, 유사종교적인 것을 구분하는가?

첫째, 교리적인 것이다.
기독교와 타 종교를 기본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교리다. 기독교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이다. 이것과 다른 것은 배격해야 한다.

둘째, 문화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 은혜는 일반 은혜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세상이나 유사종교에서도 사용하는 언어, 악기, 수단, 방법 자체는 대부분이 중립적인 것이다.

성경조차 세상의 언어, 풍습, 문화를 차용하여 기록된 책이다.

(언어)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성경 기록 전에 이미 존재하던 언어들이다.
자연히 성경에는 세속적인 단어들이 난무하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들어보자.

-엘로힘(히브리어)
영어 성경에서 하나님(God)은 단수 대문자로, 다른 ‘영들’(gods) 즉 귀신들은 복수 소문자로 번역한다.
-데오스(헬라어)
문맥에 따라 하나님(God) 또는 신들(gods)로 번역하는데 헬라 신들인 제우스 등에 사용하던 언어이다.
-로고스(헬라어)
원래 스토아 철학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적 원리란 의미로 사용했는데, 신약에서 말씀(로고스)이나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씀’(요 1:1)으로 사용했다.
-프뉴마(영, spirit), 쉬케(영혼, soul)
성경 기록 훨씬 이전부터 헬라 철학에서 사용하던 단어들이다.

(풍습)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의 형식’은 당시 유행하던 강대국과 약소국의 국제조약 형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당시 강대국과 약소국은 서로가 조약을 체결한 후에 돌판에 조약 내용을 기록하여 돌판 하나씩은 각국의 신전(神殿)에 보관했다. 따라서 십계명을 새긴 모세의 두 돌판은 각각 내용의 반을 새긴 것이 아니라 돌판 하나마다 10계명 모두가 새겨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성경도, 반대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이나 사교적 단어나 풍습’으로 도배가 된 책이다. 그렇다고 성경이 잘못되었는가? 아마, ‘개혁주의 입장에서성경을 비판’하면 성경도 사이비 종교나 세상 철학을 모방한 문서가 될 것이다.

통일교, 불교도 ‘한글’로 경전을 제작하고 기독교도 그렇게 한다.
통일교, 불교도 ‘문서 선교’, ‘인터넷 선교’하고 기독교도 그렇게 한다.
불교에는 ‘찬불가’가 있고 기독교에는 찬송가가 있다.
불교도 ‘율동’으로 부처를 숭상하고 기독교도 ‘율동’으로 하나님을 찬미한다. 그러므로 ‘방법’이나 ‘형식’이 동일하다고 해서 ‘내용’이나 ‘의도’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나 ‘수단’이 확연하게 분별되는 불교의 ‘108배’,천주교의 ‘성호 그리기’를 인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셋째, 취향과 정서의 문제이다.
문화와 취향은 대부분이 같이 간다. 필자는 어릴 때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대중가요’와 ‘뽕짝조’ 노래를 좋아하다가 대학 가서는 영어로 된 팝송과 당시 건전 가요 보급운동을 통한 가요들도 좋아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보니 한국 찬송가의 상당 수가 박수 치면서 노래 부르기 쉬운 뽕짝 조들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에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찬양과 경배곡 및 CCM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팝송’과 유사한 형태들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지역교회협의회에서는 이런 찬양에 대해 ‘(북 치는) 무당굿이다,’ ‘광란이다’ 면서 성명서를 발표하곤 했다. 유력 기독교 잡지나 신문에는 내로라고 하는 예배 전문자들이 출연하여 시끄럽고 요란하고 감성적인 찬양과 경배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보니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무당굿하고 광란하는 교회로 변해갔다.

당시 보수주의 교단 소속의 한 목사는 필자와 대화 중, “그런 찬양을 교인들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장자 교단인 예장 xx 총회장을 역임한 어느 목사도 필자와의 사석에서 “요즈음에는 그런 찬양를 하지 않으면 청년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학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은 CCM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목회나 사역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청년이나 현대인의 취향을 반영하여 CCM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인가?

필자는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자들이 틀렸다고 본다. 찬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교리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나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성적이고 문자세대이며 대중가요나 뽕작조에 젖은 어르신들은 느리거나 구슬프게 부르는 찬송가가 익숙하지만 감성적이고 영상세대이자 감미롭고 빠른 템포에 젖은 젊은이들은 CCM을 좋아한다. 흑인은 흑인영가 풍으로 구슬프고 애잔하게 찬송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광란적으로 춤 추면서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특정 문화나 특정 형식의 찬송을 편애하실까?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각자의 방법으로 찬송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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