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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식구원론] 문 3-1 : 성경은 구원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설명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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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4  19: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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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3-1 :

성경은 구원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설명해 달라.

 

구원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예수 믿고 죄 용서를 받아 영흔 구원을 얻는 것이 구원이다"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이다"라고 대답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이러한 대답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다양한 측면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러한 대답은 지나치게 간결하고 단편적이어서 바른 교리나 명제에 대한 고백 위주의 신앙을 양산하기 쉽다.

그래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죽으면 천국에 가는 티켓은 따 놓은 것이므로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이 세상의 법칙대로 살면 된다는 이원론을 양산하기 쉽다 즉 영혼 구원은 기독교식으로 현세축복은 불교식으로 사회생활은 유교식으로 하는 혼합 종교의 양상을 낳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혼합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구원은 현세적인 축복이나 신비적인 체험으로 왜곡 표현된다. 기독교의 핵심이 이런 식으로 변질되는 것은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는 죽은 후의 영혼 구원보다는 굶주린 배를 당장 채워주는 자가 구세주이다. 더군다나 현세 축복은 배금주의 사상이 만연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현세 축복 이상의 것이다.

또한 오늘날은 사회가 기계화 조직화 비인간화되어서 인간관계가 타산적이고 상업적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초월적인 체험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초월적인 체험을 자주하고 악령들을 대적하는 것이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결과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악령을 대적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도 아니고 초월적인 체험을 하지 못한 신자들은 신자도 아니라는 식으로 기독교의 핵심을 왜곡하는 부류들도 있다.

한편 일부 사회복음주의자들은 영혼 구원, 현세 축복, 초월적인 체험을 거부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비뚤어진 사회 체제를 개혁하고 사회적인 윤리를 실천하고 훼손된 자연을 회복하는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이 지나치게 개인의 영혼 구원, 현세 축복,  개인 체험에 치중하여 종교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사회적인 윤리나 정의의 실현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명제적인 바른 교리, 현실적인 축복, 초월적인 체험, 사회 정의와 윤리의 실현 모두를 포함한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어느 한 두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면들을 무시하면 성경적인 균형을 잃어버려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풍성한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여럿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추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이상의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다양한 측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구원의 문자적 의미

구원의 문자적인 의미는 어떤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질병, 고통, 문제, 사망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구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 구원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바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우리들에게 어떻게 알려주시는가?

하나님이 구원의 방편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 곧 성경이다(딤후 3: 15). 성경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알려주는 책이다.


·구원과 구속

구원이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일반적인 말이라면 구속(redemption)은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값을 주고 사서 자유롭게 한다는 '구원을 성취시킨 수단의 측면'을 강조한다. 구속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 즉 피 값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엡 1:7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자 구속자이시다(Jesus is our Savior and Redeemer).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것이 바로 구속이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값없이 믿기만 하면 구속을 받지만 우리가 구속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바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자들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영혼 구원을 받는 축복만 누리고 생활은 제 멋대로 해도 된다는 값싼 은혜(cheap grace)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섬기기 마련이다.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억지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감격하고 풍성하신 사랑에 메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가?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것을 현세에서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다

성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져서(saved, delivered)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구원이다(요 5:24).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생명, 생물학적인 생명 (헬라어의 비오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헬라어의 조에-)을 말한다.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이다. "옮겼느니라"의 원어의 시제는 현재완료형이다. 헬라어의 현재완료형은 어떤 행동이 과거에 일어나서 현재에도 그 효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미 생명 (조에-)을 얻었고 지금 그 생명 (조에-)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조에-)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하). 구원은 곧 죽음과 사망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죽으면 천국에 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그것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을 말한다.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도전을 준다. 아직도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 즉 신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지금 이 땅에서 누린다는 영적인 축복을 모르는 신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 회개, 무서운 하나님, 심판이라는 단어만 연상하여 늘 죄의식을 가지고 풀 죽은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구원에는 죽으면 천국에 가는 미래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거적인 구원, 지금 이 세상에서 생명(조에-)을 누리는 현재적인 측면, 죽으면 천국에 가는 미래적인 측면이 있다.
 

구원의 미래적 측면이 강조된 이유

구원의 미래적인 측면이 주로 강조된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미래의 천년왕국시대에나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시대 이전의 세대에 사는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죄 회개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나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나 요한복음이 말하는 생명(조에-)은 미래 천국은 물론 현림 천국을 포함한다. 한국 선교사를 역임한 간하베(미국명 하비 콘) 교수는 하나님 나라―구원―의 현재성에 대한 오해가 한국을 포함한 피선교국의 보수신학의 결함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둘째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측면에서만 강조하고 부활의 영광의 측면은 소홀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회개, 고난, 순종은 강조되어 왔지만 신자들이 현재 성령 안에서 누리는 신령한 축복인 의, 기쁨(희락) 평강은 거의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결과 신자들은 십자가의 고난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도 누려야 한다.

한편 일부에서는 부활의 영광을 왜곡된 방향으로 강조한다. 이들은 신령한 체험이나 기적 행하는 은사들, 현세적인 축복―물질, 건강―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물론 부활의 영광은 이러한 것들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십자가의 고난, 바른 대인관계, 사회적인 정의와 윤리의 실천적인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몰현세적이고 이기적인 기복신앙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다.
 

·구원은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훼손되었는가? 완전히 훼손되었다기 보다는 왜곡되고 일그러졌다. 고장 난 자동차가 일부 기능은 하지만 수시로 고장이 나고 말썽을 부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지고 고장이 났기 때문에 삶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죄로 인해 하나님을 직접 섬기고 교제(예배)하는 길이 끊어졌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 의로움, 거룩함(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엡 4:24; 골 3:10). 이것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한다.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엡 2:1).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성과 감정과 의지와 만물통치권(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도 타락되었다. 비록 타락한 후에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성, 감정, 의지와 만물통치권이 남아 있지만 약화되고 왜곡되었다. 사람은 이성으로 과학과 학문을 하고, 감정으로 느끼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미워하며, 의지로 뜻을 세우고 관철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한다. 그러나 모두가 타락한 이성, 타락한 감정, 타락한 의지, 타락한 통치권이다.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 이전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담이 만물의 이름을 모두 지을 만큼 이성이 발달하였지만 오늘날 아무리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고 아담의 이성을 따르지 못한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인간도 끝까지 순수한 감정을 지니지 못하고 어떤 인간도 끝까지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은 완전히 타락한 이성, 감정, 의지, 만물통치권을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우상(돈, 명예, 권력, 이념 등)이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비록 양심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고 자비와 인자를 베푸는 성품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정도로 약화되고 말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타락한 사람의 의는 한낱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다.

손상되고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 존 칼빈은 말했다. 창조된 원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죄로 인해 완전히 잃어버린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 의로움,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를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 사람을 입어라"(엡 4:24; 골 3:10 참조).

동시에 죄로 인해 약화되고 오용되는 지성, 감정, 의지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 가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한다. "너희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 원래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히 1:3).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이나 행동을 닮아 가는 것이며, 훼손되고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며 가장 큰 행복과 기쁨과 보람을 주는 삶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죄와 죽음에 대한 경고는 창세기 서두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소위 말하는 견습 기간을 두셨다. 그 기간 동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경우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셨다(창 2:17). 뱀으로 가장한 사탄이 이 사실을 알고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간하고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만든다(창 3장).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유혹에 빠진 아담과 이브는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고 그 결과 하나님이 되기는커녕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죄의 결과 죽음과 고통이 따르고 병마가 따르고 시련이 따른다. 죄는 우리들을 철저히 타락시키려고 지금도 도처에서 맹수같이 도사리고 있다(창 4:7). 죄를 지은 인간은 이제 죄의 종노릇을 하면서 산다(요 8:34하). 죄의 종이 된 인간에게는 죽음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들을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요일 3:5).


·사탄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이다

성경에서 사탄(히브리어 사탄)은 주로 구약에서 사용되며, 마귀(헬라어 디아볼로스)는 주로 신약에서 사용된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은 히브리어인 사탄을 마귀로 번역했으며, 그 뜻은 대적자, 참소자이다.  따라서 사탄이니 마귀가 주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사람을 참소하는 것이다.

구원은 죄로 인해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강할수록 어두움의 세력들의 대적도 강하다. 빛이 어두움을 드러낸다. 구약에도 사탄과 그의 성격이나 하는 일이 군데군데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어두움의 세력들의 정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성경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타락한 천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을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사탄은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치명타를 입었지만, 여전히 이 세상의 신, 이 세상 임금, 공중권세 잡은 자, 도적,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 이리, 원수, 시험하는 자이다. '마귀와 그의 사자들'의 활동은 이 세상의 끝까지,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워서, 택한 자라도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고 있으므로 신자들은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벧전 5:8),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약 4:7). 더군다나 말세지말에는 사탄의 활동이 극에 달해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택자라도 미혹하려고 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식게 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마 24).

그러므로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구원사역의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까지 보수교회에서는 이점을 거의 무시해 왔다. 그 이유를 여기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통적 속죄론의 결함 : 죄 사함은 강조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은 소홀

즉 죄로부터의 구원만을 강조한 보수신학의 속죄론의 결함과 둘째 영적인 세계를 무시한 계몽주의의 대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보수주의는 지금까지 구원을 주로 죄 사함이라는 측면에서만 이해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접근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개국은 물론 최고의 문명국에서조차 사탄의 세력들이 심각하게 발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죄 회개와 용서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오지의 선교사는 물론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신실한 주의 사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존 머레이는 속죄사역을 죄로부터의 구속으로만 이해해온 보수신학의  결함을 지적하고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고 그들의 세력에서 인간을 구속해내신 측면을 고려해야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Eerdmans, 1989), p. 50.

둘째 이성주의는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이성주의와, 실험가능하고 증명 가능한 것만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과학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인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이 말하는 귀신의 존재들을 부정한다.

이와 같이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오해하여 성경의 귀신들은 인정하나 오늘날의 귀신들의 존재는 부정하고, 이성주의자들은 과학을 바탕으로 하여 성경에 기록된 귀신의 존재들을 부정해 버려서 귀신들이 정체를 가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기독교 저술가 C. S. 루이스의 주장이 새삼 돋보인다. "인류가 마귀에 대하여 빠질 수 있는 두 가지 동등한 비중의 상반된 실책이 있다. 하나는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믿기는 믿되 귀신에 지나친 관심, 건강치 못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귀신은 이 두 실책을 똑같이 기뻐한다. 그리고 물질주의자(전자의 실책)와 마술성향자(후자의 실책)를 똑같이 기뻐하며 환영한다"(C. S. Lewis, Screwtape Letters·「악마의 편지들」서문에서).

그렇다. 마귀는 일부에서 지나치게 귀신들의 존재를 강조하게 만들어서 다수로 하여금 귀신의 존재에 대한 혐오증과 무관심을 유발하게 하여 그들의 계략을 위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에서 귀신에게 지나친 비중을 둔다고 해서 귀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들의 악랄한 수법을 방관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오늘날의 귀신의 사역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 할수록 귀신들은 더욱 신이 난다. 그들은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언제나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지만 '아직' 완전히 승리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러한 중간시대에 살고 있다. 중간시대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이 있다. 사탄의 무리들은 이미 전쟁에는 패했다는 것이다. 이제 십자가의 군병들은 두려운 마음 없이 담대하게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패배한 적의 잔당들을 소탕해야 한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으로 인한 치열한 전쟁

신자들은 적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이기셨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는 원칙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실제로 영적전쟁에 필요한 작전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여 국지전(신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참패를 당하는 수가 상당히 많이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써 죄의 권세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죄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우리 중에 누가 예수님께서 죄의 권세를 이기셨으므로 죄에 대해 걱정할 것 없다고 장담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탄의 영향력도 이와 같다. 비록 사탄은 패배했지만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주의 백성들을 더욱 악랄하고 교묘하게 괴롭힌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늘 '근신하고 깨어서' 마귀의 세력들을 대적해야 한다.

신약시대에 와서 영적전쟁은 이제 적군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회심시켜 예수를 구세주로 모시게 하는 전도의 형태를 지닌다. 승리하신 예수님께는 이제 인간이 만든 성전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신자의 몸 속에 영원히 거하시면서, 첫 인간 아담이 사탄에게 잃어버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되찾으신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족속을 우리 손에 붙이셨다지만 여전히 전쟁을 여전히 주도하신다.

그러나 재림 때에 사탄의 세력은 완전히 멸망 당하여 신자들의 지리하고 처절한 영적인 전쟁은 막을 내리고, 죄도 없고 사탄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의 주님이시자 신랑이신 예수와 함께 걱정 근심 없이 천년만년 세세토록 종말론적인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산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완성이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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