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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④] 구요한과 정이철의 충돌은 한국교회의 충돌
구요한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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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21  18: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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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
 

구요한과 정이철의 충돌은 한국교회의 충돌이다
 

-반성령운동파의 기적중지론과 성령운동파의 기적계속론의 충돌이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구요한파는 상승하고 정이철파는 하락세에 있다-

- 한국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

 

며칠 전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말레이시아 소속 민항기가 친 러시아 반군의 미사일에 격추되자 러시아와 미국의 냉전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고 있다. G-2로 급성장한 중국은 곳곳에서 국경 충돌을 일으키고 있고, G-3로 전락한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헌법을 재해석하여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중국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남한의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김정은 독재 정권은 휴전선 가까이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한과 대치와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며칠 앞둔 한나라당과 새정련은 당의 명운을 걸고 한 자리라도 더 국회로 보내기 위해 치열한 정치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언론, 인터넷 및 SNS에서는 사사건건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고 있다. 직업 전선, 입학 전선 등 사회나 세상 곳곳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투쟁의 역사다.

필자가 얼마 전 한 권으로 된 ‘세계사’, ‘기독교회사’를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역사는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이익 집단 간의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강한 자는 언제,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약자를 짓밟기 마련이고 약한 자는 순진하게 강한 자의 ‘의’(義)와 ‘인’(仁)과 자비를 기대하다가는 어김 없이 강한 자의 밥이 된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계는 어떤가?
사랑과 평화를 주장하는 기독교계는 세상과 다른가?
유감스럽게도 세상과 다르기는커녕 오히려 세상 보다 더 지독하고 더 악랄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기독교계다.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세력에게 도그마(dogma. 독단적 교리)의 칼을 휘두르며 사소한 트집을 잡아 이단·사이비로 정죄하기를 밥 먹듯이 한다.

우리는 구원에 필수적인 ‘일차적 교리’는 순교를 각오하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부차적인 교리’는 성경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토머스 캠벨(Thomas Campbell)이 말한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매사에는 사랑으로”(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은 이런 것에는 상관도 없이 가르침이 자기들과 조금만 다르고,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현상이 조금만 일어나면 일단 ‘이단, 사이비, 거짓 영, 귀신 장난, 거짓 그리스도, 불건전한 신비주의’ 등으로 정죄해버린다. 표면적으로는 교리가 다르다고 하지만 교인 이탈, 헌금 부족, 기득권 유지와 같은 실질적 요인이 더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 당시나 사도시대에 기득권자인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이나 사역을 사사건건 비판하고 정죄하듯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구요한과 정이철의 충돌은 교리의 충돌, 이익의 충돌
 

필자인 구요한과 성령운동 대적자인 정이철과의 최근의 공방은 이러한 전쟁의 한 가지 모습이다. 물론 다수의 중도파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충돌은 정이철로 대표되는 전통적이고 기득권자인 한국의 기적중지론적 장로교 및 유사 교파와 구요한으로 대표되는 성령운동파 간의 교리 충돌, 이익 충돌인 것이다.

정이철은 기적중지론, 계시종료론, 반쪽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따르는 전통적인 장로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예장 고신, 예장 합신, 예장 대신 및 예장 백석 등의 대부분이 이런 주장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구요한은 장로 교단, 오순절 교단, 성결 교단 및 일부 독립 교단의 성령운동파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장로교가 70%에 육박하는 장로교 대국이기 때문에 아직은 정이철파가 공적인 면에서나 숫적인 면에서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이철파는 하락세에 있고 구요한파는 상승세에 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극단적인 정이철파는 겨우 몇 백만 명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 하락세에 있고 구요한파는 6억 명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이슬람교를 능가하는 유일한 기독교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교회는 이제 나무만 보면서 우물 안에 갇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숲을 보면서 기독교 백년대계를 세워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고사해 버릴 지도 모른다.

교세 성장이 답보 상태에 있고,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형 스캔들로 인해 종교 선호도가 불교, 천주교 다음으로 꼴찌인 기독교계(개신교)는 8월로 예정된 로마 교황의 방문으로 인해 최소 100만 명의 교인 이탈이 생길 것으로 교계 지도자들은 추산하면서 우려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개신교인이 적어도 200만 명 정도가 이탈해야 한국교계가 정신 차릴 것이란 자조적인 주장도 한다.
 

한국 교계,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성령운동을 대적하는 것을 계속 묵인하고 장려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닫힌 문을 활짝 열 것인가?
 

한국 교계에 이렇게 제안한다 

필자는 한국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각 교단, 단체 및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마르틴 루터처럼 과감하게 개혁을 주도하자

각 교단이나 단체에서 마르틴 루터처럼 세상 안락이나 자기 영광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교회를 개혁할 선구자, 개척자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개인의 사역이나 안위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마르틴 루터처럼 과감하게 기득권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결단이 필요한 때에 기득권과 안정된 사역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한 후 죽어서 예수님을 만나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너는 내 교회가 필요한 결단의 때에 네 사역에 편안하게 안주하여 자기 영광, 세상 영광만 누렸구나?”라는 책망을 받지 않을까?
 

둘째, 각 교단과 신학교는 골동품이 된 신학을 배격하거나 수정하자

성령운동을 대적하는 골동품 신학인 기적중지론과 계시종료론을 폐기하고 반쪽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모범적 성경해석으로 보완하자.

-기적중지론 :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에 끝났다. 기사와 이적은 사도와 그의 제자들이 정경(정경. Cannon)이 완성되지 않은 특별한 시대에 복음을 능력있고 급속하게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교회 시대에는 완성된 성경이 있기 때문에 이런 초능력은 더 이상 필요 없으며 또한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신학.

-계시종료론 :
완성된 성경 안에 우리의 신앙에 필요한 모든 계시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적 계시인 예언, 환상 등은 더 이상 필요도 없고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신학.

-구속사적 성경 해석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속의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성경 인물이나 사건은 구속사적이고 계시적인 사건들이므로 교회 시대 신자의 모본이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주장. 예수나 성경 인물은 교회시대 신자가 걸어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갔지만(비반복성), 인격과 사역의 모범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반복성).

-논리적 오류 :
성령운동파들에게서 일어나는 생소하고 희한한 영적현상은 심리 현상, 불교, 힌두교, 무교 등 사이비 종교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그런 현상은 심리적 현상이나 귀신 장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오류. 하나님의 특별은혜는 일반은혜의 도구, 언어, 습관, 문화, 방법 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양은 사이비 종교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경전, 기도, 헌금(시주),전도(포교), 찬송 등-는 사실을 오해하는 논리적 오류.

정이철로 대표되는 반성령운동파들은 주로 이 4가지 잘못된 교리나 패러다임으로 성령운동이나 성령운동파들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관점이 다른 신학은 포용이 가능하지만 잘못된 신학, 틀린 신학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이제 잘못된 기적중지론, 계시종료론은 폐기하고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모범적 성경해석으로 보완하자. 그 대신 기적계속론을 가르치자.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 고든 피(Gordon D. Fee), 잭 디어(Jack Deere), 존 파이퍼(John Piper), 조나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마틴 로이드-존스(Martin LLoyd-Jones), 차영배 등과 같은 기적계속론적 개혁주의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들을 가르치자.

또한, 신학생들에게 교리사(교리의 역사)는 물론 부흥사(부흥의 역사)도 가르쳐서 교회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성령이 실제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가르치자. 그래서 생소하고 희한한 영적현상을 배격만 할 것이 아니라 부흥기에는 으례 따르는 현상들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자. 그래서 이런 걸 갖고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소모적 투쟁에서 벗어나자.
 

셋째, 품성 교육을 강조하자

기독교인이 타 종교에 비해 사회적으로 성공도 많이 하고, 봉사나 구제도 많이 하지만 ‘삶의 본’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 선호도가 낮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통적 장로교는 예수를 ‘구세주’(Savior, Redeemer)로 보는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자유주의가 말하는 ‘도덕적 모범’(Moral Example)이신 예수님을 자유신학과 함께 내팽개쳐버렸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자 삶의 모범이시고 사역의 모범이시다. 또한 성경 인물은 우리의 사역과 인격의 모범이자 반면교사이다.

한편, 성령운동파는 누가의 ‘사역적이고 경험적인 성령’(Ministerial and Experiential Holy Spirit)을 강조하다 보니 바울 서신서가 말하는 ‘중생시키고 성화시키는 성령’(Regenerating and Sanctifying Holy Spirit)에 대해 취약하다. 성령운동파는 전자(사역) 못지 않게 후자(품성)도 강조해야 한다. 품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많은 수고를 하고서도 예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 있다(마 7:15-27).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사도행전적인 영적부흥이 일어날 때만이 하나님의 교회는 갱신되고(renewed) 부흥된다(revived). 일회성이나 이벤트성 회개집회나 기도집회에서 벗어나 전 교회적 차원에서 부흥을 위한 기도모임을 조직하고 기도를 훈련하고 활성화 하자. 동시에 역사적 부흥에 대한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자.

물론 부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지만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자.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고 끈질기게 기도하자.

-둘째, 죄를 회개하자.

한국민의 70~80%가 아직도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있다. 제사 지내고, 점 치고, 굿하고, 토정비결, 사주팔자, 궁합을 보고, 부적을 붙이고 산신제, 해신제, 기우제, 귀신적 전설이나 민속행사 등을 문화행사로 장려하고 있다. 또한, 불교를 회개하자. 불교는 종교를 가장한 이 세상 신 마귀의 하수인이며 기독교를 가장 대적하는 종교이다. 또한, 유교의 악 영향으로 인한 나, 내 가족, 내 것, 내 편, 내 정당, 내 교회, 내 교단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배려·섬김·나눔은 무시하는 성공과 출세 일변도의 죄를 회개하자.

한국 국민에게 뿌리깊은 한·울분·응어리를 치유하고 탐욕, 정욕, 각종 중독, 낙태, 자살, 불법, 사기, 참소,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와 윤리도덕적 타락을 회개하고 무기력, 자포자기와 절망을 하나님의 소망과 위로로 채우자.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은 돌발적이고 생소한 모습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부흥을 그처럼 역설하고 기대한 아이언 머레이(Iain H. Murray)는 하나님이 부흥을 주셨지만 자기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라고 해서 부흥을 부인했다.

한국의 어떤 신학자는 한국 장대현 교회 부흥과 미국·남미의 오순절 부흥을 비교한 후, 한국의 부흥이 가장 성경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런 독단적이고 편파적인 평가가 한국 내에 배타적이고 편협한 기류를 형성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과 성령운동을 오히려 대적하게 만든다. 내 신학, 내 경험, 내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기대하자.
 

이 4가지를 제대로 실현하면 잠시 개별 교회나 단체의 숫자 등락은 있겠지만 전체적인 교인 수가 증가하고 교회도 건실해져서 한국 교회가 재도약하는 전기가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
 

수정 : 2014.07.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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