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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③] 성령 사역을 대적한 자의 말로-기적중지론적은 기득권과 교단의 울타리를 보호하기 위한 비성경적 신학이다-
구요한 발행인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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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8  00: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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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한칼럼③]

성령 사역을 대적한 자의 말로

-기적중지론은 기득권과 교단의 울타리를 보호하기 위한 비성경적 신학이다-

 

릭 조이너(Rick Joyner)가 쓴 『빛과 어둠의 영적전쟁』(163-65)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릭 조이너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는 동의한다.

릭 조이는 환상 중에, 지상에서 큰 목회를 한 유명한 사역자가 천국의 변두리에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 목사는 지상에 있을 때 큰 목회를 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였고 수많은 큰 교회들을 세웠고 이들 대부분은 복음 활동에 전념했다. 그런데 그는 생애의 마지막 때쯤 너무 교만해져서 주님께서 자기를 통하지 않으면 주요한 일을 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했고, 성령운동 하는 수많은 사역자들을 해치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쓰셨을 때 그는 심하게 질투하여 그의 잘못을 샅샅이 찾아내어 세상에 노출시켰다.

그는 스스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아래 사람들을 부추겨서 그 사람들의 뒷 조사를 철저히 하고 자기 대신에 더러운 일을 하도록 시켰다. 그는 진리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두려움과 분열을 심었다. 그는 자기 의로 파멸로 향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사 그가 아주 서서히 그러면서도 비천한 죽음을 가져다 주는 병에 걸리게 하셨다. 그는 죽기 직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회개했다. 그는 지금 천국의 변두리에라도 와있는 자체를 감사하게 여겼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자기들과 출신도 다르고 다른 가르침과 사역을 전파하는 예수님을 올무와 구렁텅이에 빠뜨리려고 온갖 술수를 다 쓰다가 마침내는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

이러한 일이 오늘날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한국 교계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기존 교단의 소위 말하는 어른들(?)은 자신들이 직접 앞에 나서지 않고 아래 사람들을 동원하여 진리 수호라는 명분 하에 교인 이탈을 막고 교단의 정통성을 보호한다면서 수시로 성령운동과 성령운동하는 사람들을 핍박, 대적 및 정죄하고 있다. 그렇다고 조종자만 주님으로부터 책망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종자에게 부화뇌동하여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행동 대원들도 당연히 책망받을 것이다.

필자가 이미 여러 군데에서 언급했듯, 특히 심각한 이단 정죄는 주로 미국의 교포 교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한인 교포 사회는 바닥이 좁고, 교포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교인 수도 고만고만하다. 때문에 새로운 성령의 바람이 한 번 불기 시작하면 교인 이탈 현상이 일어나서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국 보다 더 기를 쓰고 새로운 운동을 대적한다.

표면적인 대적자들의 뒤에는, 릭 조이너가 환상에서 본 것처럼,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지역 터주 대감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미국 ‘동부의 황제’(?)로 알려진 C 목사는 대형 교회를 목회했고 신학교와 기독 언론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예장 OO 계열의 보스로서 북미주와 남미주 전체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교회 연합회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C 목사에게 눈 도장을 찍어야 할 정도이다.

이단 감별사들에 대한 재정 지원은 풍부하다고 한다. 교단 내의 어떤 대형 교회는 한때 월 1000만원까지 지원하기도 했고 지금도 수많은 교회들이 아낌 없이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몇몇 이단감별사들은 그 일만 파고 드는 것이다.

어떤 이단 감별사의 홈피에는 국내의 중대형급인 서울 강남의 W 교회, 대전의 S 교회, 경기 안산의 K 교회 등의 담임목사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교회 이름과 함께 광고 배너로 올라와 있다. 그들의 재정 후원금이 이단은 물론 성령운동하는 교회도 때려잡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단감별사들은 언론을 이용하여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 상 실수나 사소한 윤리도덕을 트집잡아 집요하게 기사화한다고 한다. 그러면 교회의 안정과 성도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할 수 없이 거액의 무마금을 지불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한 만큼의 금액이 나오지 않으면 끝까지 기사화 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단 감별사들이 얼마나 재정적으로 풍족했으면 수시로국내 세미나를 인도하고  심지어는 떼거리로 해외 원정을 가서 자비량으로 세미나를 해주었다고 현지 주체측에서 감사의 말까지 전할까?

그런 조종자가 한 번 마음 먹으면 비용을 대주면서, 글 좀 쓰는 아래 사람들을 동원하여, 사용 가능한 언론과 매스컴을 동참케하고, 새로운 조직을 급조하여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무력화시키고, 성령 운동 동참자들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교단이나 교회에 약속된 집회 일정들을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고, 장소 대관까지 금지시켜서 성령운동자들을 고립시키고 이단이나 사이비로 전락시키고 만다.

필자가 아는 어떤 목사는 한때 대형 교회에 부흥회 약속이 잡혀있었는데, 반대자들이 그 교회 담임 목사에게 강사에 대한 험담과 각종 비리를 제보하는 등 엄청난 압력을 가해왔지만 초청 목사는 그래도 교단 내에 위상이 있어서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미주 목회자들이 한국 유명 목사를 강사로 하는 집회 광고를 내었더니 반대자들이 한국 미국 대사관에 비자 거부요청 전화를 하고 투서를 하여 비자 발급이 하루 이틀 지연된 사례도 있다. 이처럼 반성령운동파들은 성령운동을 반대하기 위해 언론은 물론 시정 잡배, 조폭 및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악용하는 온작 추악한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래서 성령운동가들의 활동이 수그러들면 한 때 동요했던 그들의 교회는 잠잠해 지고 교인 이탈 현상은 수그러든다. 영적 현상을 잘 모르는 신자들은 경험적으로 좋은 것을 좀 누리지 못해도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에 헛된 안도감을 갖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제(2014/07/07) 저녁 늦게 이단 제조자이자 감별사인 정이철이 전화를 했다. 
수많은 신실한 주의 종들과 성령운동을 이단으로 낙인찍은 그는 필자가 그를 비판했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발행인이 구요한인데 목사입니까?', '교회 이름은 무엇입니까?'고 물었다. 필자가 '그런 정보는 네이버, 다음, 구글 등에 [구요한 목사]란 이름으로 검색하면 된다, 할 말 있으면 글로 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성령운동은 누가 합니까?'라고 물어서 얼떨결에 "성령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고 대답했다. 

"성령이 왜 오셨죠?"

필자는 기가 차서 전화를 끊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이 왔다. 필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보았는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신사도 운동하시는 구 목사님!
어떤 교단에 소속해 있나요?
소속 교단의 총회장님, 또는 이대위 위원장님과 대화를 좀 하려고  목사님이 소속한 교단을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직접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교단에 속하셨고, 어디에서 안수 받으셨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반석장로교회
정이철 목사"

정이철은 필자에게 다짜고짜 "신사도 운동하시는~"으로 낙인 찍어 버린다.
정이철의 눈에는 성령운동하는 사람은 모두 신사도 운동가이다.
필자는 그런 책들은 보지만 그런 운동하는 사람하고 어울린 적도 없는데 정이철은 어느새 필자를 신사도 운동가로 낙인 찍어버렸다.

언젠가 예영수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정이철이 목사님을 신사도 운동 신학자라고 부르더라'고 했더니 예 목사는 깜짝 놀랐다. 예 목사 자신은 신사도 운동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있는데 성령운동을 변호한 것이 어느새 정이철에 의해 신사도 운동가, 신사도 신학자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언젠가 만난 Z 목사도 자신은 '신사도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인데 자신도 모르게 정이철의 무리들이 어느새 자신을 신사도 운동가로 찍었다'고 한다. 정이철과 같은 이단 감별사들의 전형적인 수법 아닌가?

그리고 정이철은 필자에게 '소속 교단이나 총회장, 이대위 위원장이 누구인가'를 왜 묻는가?
글로리아타임스에 올라온 글에 대해 글로 답변하면 된다. 필자는 심문하듯 정이철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필자도 정이철이 소속된 'CRC(교단) 한인교회'에 아는 사람이 있지만 정이철에 대해 조회해 보지 않았다. 도처에 퍼져있는 그의 글만 봐도 비판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필자가 소속된 교단의 총회장이나 이대위 위원장과 통화하려 하는가?
발상 자체가 불순하다. 필자와는 신학적으로 논쟁이 안되니까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압력을 넣으려고 그러는가? 그런 발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필자는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지 단체나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원한다면 언제든 교단을 만들 수도 있고 이대위를 세울 수도 있다. 교단이 뭐 그렇게 대단하고 이대위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어쩌면 반성령운동파들은 하는 짓이 이렇게 똑 같을까?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미국의 독립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한인 교단이 뭔가해서 미주 예장 OO 교단에 가입하려 할 때 묻는 질문이 '어느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느냐?'였다. 자기네 교단이 무슨 벼슬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나? 정식으로 가입해서 보니 영적으로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영적으로 죽으있으면서 잘 난 체 하기는......."

곧 다른 한국 예장OO 교단으로 적을 옮겼다. 그런데 이곳은 성령운동에 대해서는 열려있었으나 완전히 정치판이었다. 현실적인 딜렘마였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는 독립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가 성령운동하는 인터넷 매체를 하려다 보니 단체에 누가 될 것 같아 얼마 전 탈퇴했다. 현재 필자가 가입한 교단은 필자의 문서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예장 교단이다.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교인 이탈을 방지 하기 위해 예수님을 사사건건 대적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과 똑 같은 행태를 오늘날에도 정이철 무리들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제거하면 태평성대를 누릴 것으로 착각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이 오늘날의 성령 대적자들은 어떻게 심판하실까?

하나님의 성령 사역을 대적하는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해서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사역도 번창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시는 것인가?

성령 운동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필자는 이 사실이 늘 궁금했다.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면서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자기 의에 도취된 자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릭 조이너의 책에 등장하는 그 지도자는 그나마 죽기 직전에 주님이 자비를 베푸사 몸을 치셔서 회개하게 하셨다. 한국에서도 대형 교회를 목회했고 아직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Q 목사가 생전에 성령운동을 대적하여 지옥에 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그도 생전에 병을 앓는 동안 회개의 기회를 갖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생전에 성령운동에 관심을 가졌지만 사람의 영광,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여 성령 사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생전에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그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렵고 떨릴 따름이다.

 

둘째, 성령 사역을 대적하는 자들은 성령이 주시는 특별한 축복에서 제외된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사람일 때는 성령이 임하여 새사람도 되고 예언도 하고 그를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두려움이 임할 정도였다(삼상 10:6; 10:10;11:6).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시기하고 대적하기 시작하자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임하여 죽을 때까지 고통을 당했다(삼상 16:14, 23 등).

오늘날의 성령운동 대적자들도 마찬가지다. 신약 시대에 성령은 신자에게 내주하시기 때문에 구원의 성령이 떠나시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반대자들이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필자는 방언, 예언, 신령한 노래 및 임재기도 등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경험적 축복을 누구보다 풍성하게 누리고 있다.

이론적인 신학이나 성경 지식이 신앙의 뼈대를 세우고 지속적인 구원을 이루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경험적, 은사적 성령은 이런 것들을 더욱 풍요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입술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해 냉랭하고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입술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실제로 맛보지 못하여 메마른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로는 하나님 나라 일을 한다고 하지만 초자연적 은사가 없으면 영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죄를 제대로 회개하고 마귀의 세력을 효과적으로 대적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예언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면 자기는 열심히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자기 의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성령 사역은 보이지 않는 영의 일이기 때문에 오류도 있고 과장도 있다 그러나 오류, 과장,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부인되어야 한다면 이런 것을 부인하는 기적중지론과 같은 교리가 오히려 오류, 과장, 위험성이 더 심하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사와 능력을 교리의 상자 속에 가두어 놓고 인간이 편하고 익숙한 방법으로만 신앙생활을 하여 바리새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인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은사나 경험을 부인했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나 회개를 통해 ‘신령한 맛’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틀렸다. 내가 속았다.”

성령운동 반대자들도 이런 맛을 제발 좀 보기 바란다.
 

셋째, 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이 영적 지식을 무시해왔다

필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에 무슨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았다.
물론 2천년 동안 교회가 축적해온 신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신앙은 뼈대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뼈대는 기초에 불과하다. 기초가 좋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영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품성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교리가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만든다.

논리적, 학문적 교리만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초자연적 경험이 없으면 무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로 성경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기사와 이적을 부인하는 기적중지론, 사적 계시인 음성듣기나 환상을 부인하는 계시종료론, 성경 인물이 교회 시대 신자들의 모범이 되는 것을 부인하는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같은 ‘반쪽 신학’이나 ‘거짓 신학’이 난무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성경 지식이 아니라 학자들이 자기들의 무경험을 변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거짓 논리에 불과하다. 초자연적 영적 체험이 없으면 아무리 세계적인 신학자라도 방언 하는 어린 아이, 귀신 쫓는 어린 학생 보다 영의 세계에 더 무지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학문적 지식 못지 않게 영적 (경험의) 지식이 실제로 신앙생활에서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반성령운동파들은 아직도 이성주의가 꽃 피던 수백 년 전의 낡은 이성적, 논리적 신학으로 경험시대, 감성시대, 직관시대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려 하니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성령운동파들은 걸핏하면 ‘성령 운동이 개혁주의 신학과 위배된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개혁주의 신학과 위배되는지’ 묻고 싶다. 반대자들이 말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정확하게 말하면 '기적중지론적 개혁신학'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개혁신학을 견지하면서도 초자연적 은사를 인정하는 신학자들도 많다. 미국 피닉스신학대학원의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미국 버지니아 주 리젠트 대학의 로드맨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와 존 루스벤(John Ruthven),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번 포이트리스(Vern Poythress), 한국에서는 총신대의 차영배 교수, 숭실대의 김영한 교수 등이 기적계속론적 개혁주의자들이다. 필자 또한 기적계속론적 개혁주의자라 할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는 캐나다 리젠트 대학의 고든 피(Gordon D. Fee), 미국 달라스신학교의 잭 디어(Jack Deere), 존 파이퍼(John Piper) 등이 기적계속론적 보수주의자들이다.
 

반성령운동파들은 앞으로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반대한다”, “장로교 신학과 다르다” 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기적중지론적 개혁주의 입장에서 반대한다,” “기적중지론적 장로교 입장과 다르다”는 식으로 색깔을 분명히 하기 바란다.

기적중지론과 같은 거짓 신학으로 오늘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성령운동을 대적하는 자들은 잘못된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영적 능력을 받고 영적 풍요로움을 풍성하게 누리기 바란다. 그래야 자기도 살고 남도 죽이지 않고 살리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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