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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Q&A] 체험과 교리(2)-안수하면 쓰러지는 이상한 교회
구요한  |  jk0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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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3  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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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Q & A]

체험과 교리(2)

 -안수하면 쓰러지는 교회에 가게 되다-

 

방언, 신유, 축사 한다고 영의 세계를 모두 아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본인의 직접 체험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방언은 하지만 예언은 하지 못하는 사람, 방언은 하지만 쓰러지는 현상은 체험하지 못한 사람, 기적계속론자이지만 쓰러지는 현상이나 예언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필자와 함께 신앙생활 하던 집사 부부가 안수하면 쓰러지고 사람들이 예언하는 ‘이상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필자는 담임목사를 안심시켰다.

“목사님, 쓰러지는 것은 체면술이고 예언하는 것은 점 치는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아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이상한 교회'는 가지 않아야 할 영 순위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가깝게 신앙생활 하던 집사 부부 두 가족이 순차적으로 그 교회로 옮겼다. 참고로 말하지만 두 집사 부부 모두가 한국의 SKY 대학을 나온 수재들이다.

필자는 이때 방언을 받은 후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개혁주의 신학의 요람인 미국 필라델피아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다닐 때였다. 다니던 순복음교회도 그만 두고 섬길 교회를 찾고 있을 때였다.
 

안수하면 쓰러지는 교회

그런데 하나님은 가지 않아야 할 영 순위의 ‘그 이상한 교회’로 필자를 인도하셨다.

“왜, 하나님이 그 이상한 교회로 인도하실까? 혹시 그런 현상이 성령이 하신 일은 아닐까?”

필자는 나중을 위해 구입해 놓은 성령 관련 서적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존 화이트가 쓴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에 눈이 갔다(John White, When the Spirit Comes with Power·존 화이트 『능력표적』).

이 책을 통해, 필자는 하나님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쓰러지는 현상은 성경에도 있고, 요한 웨슬레, 조지 휫필드, 조나선 에드워즈의 영적 부흥기에도 일어난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부흥』을 통해 영국의 여러 영적부흥 현상에서도 자주 일어난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1980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 내의 성령집회 참석을 통해, 안수하여 쓰러지는 현상은 기도사역 시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직접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에 대해 성경적으로 가장 잘 변호한 조나선 에드워즈의 저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학교 재직 시 학장을 역임한 두 교수가 조나선 에드워즈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청강한 적이 있다. 한 교수는 부흥 시 나타나는 급격한 회심에 대한 현상들과 체험적 기록들을 주로 다루었고 다른 한 교수는 교리적인 면을 주로 다루었다.

시간이 있을 때면 깨알 같이 작은 폰트로 인쇄된 책을 읽느라 고생했는데 얼마 전 아마존에서 킨들판으로 그것도 아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책명 :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umes I & II. 부흥과 개혁사에서 이중 일부를 번역하여 출판했다.

이전에는 대충 넘기거나 관심도 두지 않았던 성경 구절들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삼상 19:23-24).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대하 5:13-14).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28).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아왔는데 그 나아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단 10:9).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마 17:5-6).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마 28:2-4).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 18:6).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3-5).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반대자들은 ‘이 구절은 이런 뜻이고 저 구절은 저런 뜻이다’면서 ‘쓰러지는 현상’을 부인한다.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는 구절도 오늘날 새벽기도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 왜? 예수님은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만 하셨다. 그런데 왜 오늘날의 새벽기도회는 왜 야외가 아니고 실내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도 전하는가? 성령운동파에 대한 반성령운동파의 시비가 주로 이런 식이다.
 

이상한 교회에서의 금요집회는 무질서와 혼란의 극치(?)였다.

쓰러져서 편안히 잠자는 사람, 뒹구는 사람, 앉아서 하염없이 상체를 앞 뒤로 흔드는 사람, 드러누워서 괴로워하면서 거품을 품는 사람, 80세가 넘은 은퇴목사의 사모님은 누워서 성령 춤을 추시는데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교회당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성경에도 있고, 교회사에서도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별 것도 아니게 되었다.


“꼭 쓰러져야 은혜를 받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을 혐오하는 이유는 자존심 탓도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안수 받고 쓰러진다는 것이 잘 수용이 되지 않았다.

머리에 든 것 있고 점잖은 체면에 안수 받고 만인 앞에서 꼬꾸라진다고 생각하면 맨 정신으로는 하기 힘들다. 그래서 자의식이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잘 버틴다.

필자도 처음에 잘 넘어지지 않으니까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마음 문을 열지 않으니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하여 불편한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계속 안수 받다 보니 어느 새 익숙해 졌다. 안수 받고 그 맛을 알면 이거야 말로 굴러들어온 행운이자 축복이다. 어떤 중견회사 사장은 한국에서 출장 올 때마다 바쁜 틈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어 안수를 받고 천국 여행(?)을 즐기곤 했다.
 

“왜 신앙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지 않고 남의 힘으로 하려고 하느냐?”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목회자에 비해 기도도 적게 하고 영력도 약하다. 그래서 목회자를 통해 말씀도 듣고 가르침도 받고 상담도 받지 않는가? 비판하는 사람은 왜 자기 혼자 힘으로 하지 않고 남의 힘을 빌려서 설교 듣는가? 마찬가지다. 안수를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 전이를 받으면 나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든 은혜와 능력을 충전 받을 수 있다.

비판하는 자는 주로 실제로 체험을 하지 못했거나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실제로 안수 받아 보지도 못한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안타까운 것은 체험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 중의 일부가 나중에 비판자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예민하여 집회 근처에 가거나 안수자의 눈만 바라보아도 전이가 되어 쓰러진다. 그러나 서서 오랫동안 간절히 안수하고 기도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이런 사람이 제일 힘들다. 어떤 사람은 미는 것도 아닌데 휘청거리다가 바로 서기를 몇 번씩 반복한다. 안수하는 사람도 힘들고 본인도 힘들다.

안수하는 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상대에게 얼마나 전이되는지를 어느 정도 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이 넘어진다. 그런데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전이되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장풍도사 인가, 휙휙~ 하면서 쓰러뜨리게!”

과학은 성경의 바른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육안으로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각 물체를 초고성능 현미경으로 보면 에너지 파장으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빈 공간처럼 보이는 우주는 에너지 파장으로 꽉 차있고 사람, 동물, 식물 및 심지어 무생물도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현대의 양자역학이 밝힌 사실이다.

우리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포근하고 편안한 기운을 느끼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차갑고 무거운 기운을 느낀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파장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사람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면 설렁한 것은 사람의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통해서도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좋은 기운을 느끼려고 한다.

사람이 어떤 한 곳에 뜻을 모으고 집중적으로 오랫동안 소원하면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과학이 증명한다. 사람에게서 나간 에너지가 물질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을 받은 물질이 적정한 때에 소원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마법도 아니고 요술도 아니고 뉴에이지도 아닌 양자역학이 밝힌 자연적 사실(facts)이다. 자기계발식 소원 성취의 기원을 신사고운동이나 뉴에이운동에 두는 사람은 현상과 방법의 유사성만 살폈지 하나님이 자연계 속에 제정하신 법칙이란 사실은 모른다.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의 자녀보다 세상 사람이 더 잘 유용한 것뿐이다.

20세기 전까지 서구 과학은 ‘정신과 물체는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원론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양자역학은 정신과 육체, 마음과 물질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긍정의 힘, 믿음의 힘, 말의 힘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한때 신비주의로 오해 받았던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이다.

요즈음에는 양자역학에 대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면 오늘날 성령운동 집회에서 나타나는 영적 현상에 대해 많은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양자역학을 통해 영적 사역, 마음 사역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하나님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무한광대한 에너지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의 무한광대한 에너지로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삼라만상이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하고있다. 성경에서 (spirit)은 루악(구약의 히브리어)과 프뉴마(신약의 헬라어)인데 원래 바람, 공기, 호흡, 기운, 돌풍이라 뜻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영은 인격체이자 에너지체이다. 이 단어 앞에 ‘하나님의~’이나 ‘거룩한~’이 붙으면 성령(The *Holy Spirit)이시고 ‘악~’(evil)이 붙으면 악령(*evil spirit) 즉 귀신이 된다.
(*원어에는 대문자와 소문자 구분이 없지만 영어로 번역할 때 하나님(God), 성령(the Holy Spirit)는 대문자로 표시한다.)
 

성경에도 루악과 프뉴마가 생기나 기운으로 번역된 구절이 많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루악)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6,8,9,10 등).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루악)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사 11:4; 40:7 등).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프뉴마)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등).

한때 기(氣. force, energy, spirit), 기운이라고 하면 이상하게만 여겼지만 기운에는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이 있다. 성령 하나님의 기운은 좋은 기운이고 악령의 기운은 나쁜 기운이다. 기도가 많이 쌓인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도가 잘 되고 목사님의 설교도 잘 되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나 다른 장소에 가면 기도가 잘 되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다.

그 이유는?

그 장소에 하나님의 기운인 성령이 아니라 나쁜 기운인 악령의 기운, 사람의 기운, 세상의 기운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냐고?
일반적으로 기도 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기도 좀 해 보면 '그냥' 알아 진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주는 '직관적 지식'이다. 신자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만남이자 대화이고, 하나님과 많이 만나면 하나님의 영이 많이 임하고 영안이 열려서 성령의 임재와 악령에 존재에 민감해 진다.

기도를 많이 하거나 영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님의 성령의 기운이 크게 머물거나 크게 임하신다. 이런 사람이 선포하는 설교에는 힘이 있고 내용이 단순해도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다. 그러므로 설교는 신학적으로 건전하고 좋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기도로 발전된 성령의 기운이 기름부어 질 때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안수를 받으면 전류처럼 뜨겁거나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상하거나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과학적인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의 능력에 예민한 사람이 안수하고 기도하면 ‘손수건’이나 ‘앞치마’는 물론 ‘그림자’도 성령의 도구가 될 수 있다(행 5:15; 19:12). 양자역학에 의하면 인격체와 물질, 물질과 물질이 유의미한 접촉을 하면 서로 다른 인격체/물질의 성향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것은 미신이나 신비현상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밝힌 과학적 ‘사실’(fact)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이 안수하거나 기도하면 성령의 권능이 강력한 에너지 파장 형태로 피안수자에게 전이되어 피안수자는 전기에 감전되듯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지게 된다.

사도 바울이 양자역학이 밝힌 과학적 사실을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을 이렇게 요약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

그러면 반성령운동파는, ‘바울과 같은 사도들은 구속사의 독특한 시대에 살다가 간 독특한 사람들’이며, ‘사도적 이적은 성경 기록을 위한 계시적 이적’이란 난해한 용어를 들이대면서 ‘오늘날의 우리는 완성된 성경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이적은 필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성경 기록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교회시대의 신자에게 기사와 이적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헛소리'(Nonsense)라고 20세기 최고의 설교가이자 마지막 청교도인으로 불리는 마틴 로이드 목사는 잘라 말한다.

'사도들도 복음 전파를 위해 기사와 이적이 필요했는데 교회 신자들에게 필요없다는 주장은 우리가 사도들보다 더 잘났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자인 번 포이트리스 교수는, '사도들이 성경이 없을 때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면, 오늘날 성경이 없거나 성경 반입이 금지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기사와 이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그런 지역-중국이나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는 기사와 이적이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고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손을 휘젓거나 안수하여 쓰러지는 것이 장풍으로 쓰러뜨리는 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장풍을 하는 사람도 나름대로 오랫동안 기를 축적해 온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의 내부나 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여 순간적으로 기 에너지를 발산할 때 맞는 사람은 쓰러진다. 성령 장풍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았거나 오랫동안 기도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이다. 양자역학의 원리에 의할 때 세상의 기운이든 하나님의 기운이든 역사하는 방법은 같다. 언젠가 에너지 측정 장비로 측정해 보면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경우 성경은 성령을 인격체로 묘사하지만, 구약에서 사사에게 임하신 성령,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은 ‘인격체로서의 성령’(Holy Spirit as Person) 보다는 ‘일하시는 성령’(Holy Spirit at work), ‘권능으로서의 성령’(Holy Spirit as power)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권능으로서의 성령은 주로 외부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치유, 응답, 체험은 하지만 인격체로서가 아니어서 그 사람의 인성(성품의 열매)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한편, 반성령운동파는 인격체로서의 성령을 강조하여 정직하고 성실한 면은 있는데 권능이 결여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일은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시 그 이상한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신기한 것은 안수사역은, 저녁 8시30분에 시작한 금요예배가 1부 예배로 끝나고 밤 11시에 시작되는 2부 집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집에 갈 사람들은 가고 남아서 안수 받을 사람, 안수 받지 않으면서도 신기한 현상을 구경하려는 사람, 남아서 계속 찬양하는 사람, 뒤에서 받아 주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한 판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2부 집회는 보통 새벽 2시까지 지속된다.

그때는 교회당을 신축하기 전에 조그만 단층 짜리 가정집 형태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이다. 좁은 본당에는 작은 접의자로 좌우 통로도 없이 가득 채우면 150명~170명 남짓 앉을 수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2시간 이상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그 후에도 남아서 2~3시간 정도 더 기도 받으면서 성령의 만지심을 누린다.

한편, 지하 식당에서는 새벽이 넘어도 집에도 가지 않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기에 바쁘다. 이야기 재미에 푹 빠져서 차나 커피 및 친교 음식도 없다. 쓰러져서 안수 받는 것은 졸업한(?) 사람들의 간증이 주요 주제이다. 안수 받고 쓰러져서 은혜를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강도가 약해지거나 더 이상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쩌다 한두 번씩 안수를 받고 충전을 받는다.

미국의 이민 생활은 고달프고 힘든 삶이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육체 노동으로 먹고 살 때이다. 야채가게, 생선가게, 편의점, 세탁소 등. 그래서 이민 교회의 예배 시간이 길면 목사님은 지탄을 받는다. 필자의 지인이 출석하는 한 정통교회는 수요예배 시간이 한 시간만 넘으면, 목사에게 피곤하니 설교 짧게 해달라는 압력성(?) 부탁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상한 교회’에서는 주일예배, 수요예배는 물론 금요예배 시간의 기본이 2시간이고 금요예배는 2부까지 있다. 그래도 교인들은 즐겁게 예배에 참석한다.

언젠가 외부 강사가 와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 새벽 3시까지 강의했는데 불평하는 사람 한 명 없고 먼저 집에 가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과연 어느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가?
물론 요즈음 예배에 이런 열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요즈음에도 일반적으로 성령운동파의 집회 시간이 반성령운동파의 집회 시간 보다 훨씬 길다.

필자가 3년 동안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방언하고 예언하고 안수하여 쓰러지고 웃음이 터지는 현상은 분명히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필자는 3년 동안 그들의 교구장으로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들은 진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일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자영업자도 많았지만 고학력의 전문직도 많았다. 고학력 전문직이기에 머리로 할 수 있는이론적 가르침 보다 초월적 체험을 오히려 더 사모한 것 같다. 성령 운동에 주로 무식자나 가난한 자만 몰린다는 것은 옛날 말이다.

’그 이상한 교회’의 신자들은 세상 일 보다는 영적 일을 더 사모하고, 목사나 교역자를 영적 지도자로서 깎듯이 대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전도에 열심이고, 헌금 잘 내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신앙의 열매이다.

비판하는 목사들도 이런 교인들을 담임해 보고 싶을 것이다. 영권이 서지 않고 뺀질뺀질하면서 말 잘 듣지 않는 교인들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이는가? 그렇다면 성령운동 대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그런 사람 찾아가서 무릎 꿇고 머리를 내밀어라. 그래서 영력을 키워라.

필자는 2003년까지 미국에 거주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령사역 하는 미국의 많은 교회들을 15년 동안 방문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성장하는 교회는 대부분이 성령운동하는 교회들이다. 주류교단인 침례교회는 물론이고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및 장로교회는 지금도 하락 일로에 있다. 그 덕분에 한인 이민교회는 이들의 교회당을 임차하여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윌로우클릭이나 새들백교회 같은 비은사적 독립교회나 성령운동 하는 교회들은 성장 일로에 있다. 기존 교단의 기적중지론으로 인한 성령의 역동성의 결핍, 교단의 무능과 부패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반성령운동파들은 아직도 우물 안의 영역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한국교회, 예수가 버린 기적·신비현상에 집착한다?”
“성령운동이 교회성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교회, 정신차리지 않으면 신사도운동에 잡아 먹힌다?”

이런 헛소리를 대문짝 만하게 올리는 기독교 매체들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당을 지어 성령사역을 대적하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지금은 교회의 난세이다. 교회 성장은 답보 상태이고 종교 선호도는 꼴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교단의 무능과 부패, 비전과 방향성의 결핍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전통적 교회와 교단에 대한 충정이 있어도 영적 판세를 잘못 읽으면 고려 말의 최영 장군처럼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까지 몰락으로 이끌 수 있다. 지금은 영적 판세를 잘 읽고 지혜롭게 대처할 때이지 보수와 수구만을 외칠 때가 아니다.  반성령운동파들은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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